소설리스트

귀환정령사-58화 (58/241)

00058  의뢰  =========================================================================

불릿과 올리비아는 그날부터 3일간 움직이며 반대파들을 해치웠다.

처음 그들이 해치웠던 이들은 반대파와 관련되긴 했으나 별로 대단치 않은 위치에 있거나, 대부분이 불한당인 이들이었다.

불릿이 생각하기로 어린 영주를 무시하는 자들이 밑의 수하들이 당한다고 영주를 경계하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예 손발을 잘라버려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후 처리한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올리비아와 호흡을 맞추며 유인 후 시체를 매장하는 방식으로 연습(불한당들로)을 한 후 반대파가 되는 인물들에게 다가갔다.

“으악!”

그들은 저번의 기사나 병사들처럼 대놓고 올리비아에게 수작을 걸진 않았으나 함정에 빠뜨리긴 쉬웠다.

굳이 함정이 있는 곳까지 유인하지 않더라도 올리비아의 고혹적인 육체미에 매혹된 이들을 상대로 몇 초가 걸리는 구덩이를 시전하기란 매우 손쉬웠다.

올리비아가 시선을 사로잡고, 불릿은 흙덩이와 함께 구덩이에 매몰시키고 갈아버리면 끝.

단지 이 계획을 실행하려면 몇 초 동안 그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해야 했는데, 올리비아가 도와주어 한결 수월해진 것이다.

“발바트 경, 세뇨르 경은 참석하지 않았으므로 이번 회의는 가결되었음을 알립니다.”

땅-. 땅-!

“이건 음모요!”

어린 영주, 콜드가 참석한 회의장은 빈자리가 많았는데, 그 면모를 보면 모두 그를 반대하던 반대파의 인물들이었다.

아직 제거당하지 않은 반대파의 인물 중 꽤나 힘이 있던 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섰다.

“모두 실종이나 행방불명이 되었는데, 이건 영주의 암살에 의서해서가 아니오?!”

“무례하오, 시져스 경!”

“어떻게 단 3일 만에 대부분의 가신들이 없어진단 말이오! 이게 암살당한 것이 아니라면 내 손모가지를 걸겠소!”

영주파와 반대파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싸우자 콜드가 나서서 그들을 진압했다.

“시져스 경, 무엇이 잘못됐단 거지요?”

“네 이놈! 내 선대 파르탄 영주께 충성을 바쳤으나 네놈에게까지 바친 것이 아니다! 당장 잘못을 고하지 못하겠느냐!”

울긋불긋,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활화산처럼 변한 시져스의 태도에도 콜드는 느긋함을 고수했다.

콜드는 편안한 자세로 상석에 앉아서 그에게 대꾸했다.

“그런가? 그렇지요? 저에게 충성을 바치신 것이 아니란 말이지요?”

“이런 잔악무도한 놈! 그들을 어떻게 한 것이냐! 모두 죽인 것은 아닐 터!”

“저런, 죽였다니요. 말이 심하시군요. 그저 그들은 스스로의 업보에 짓눌린 것뿐인데 말이지요, 그렇지 않은가, 시져스 경?”

“저, 저런!”

“여봐라! 뭣들 하느냐! 시져스 경이 돌아가신다고 하지 않느냐!”

평소 존댓말이 몸에 배였던 콜드가 하대를 하며 사람들을 부리자 시져스가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이내 분노한 채 목청이 터져라 소리친다.

“이거 놓아라! 내 절대 충성을 맹세하지 않을 것이야아!!”

시져스는 기사와 병사들에 의해 질질 끌려 나가 회의장에서 쫓겨났다.

쾅!

시져스를 비롯한 반대파인원들이 회의장에서 사라지자 콜드는 싸늘하게 식어버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잘 가시게, 시져스 경. 아니, 반역자 시져스.”

작별인사를 왜 혼자서 하는 것인지 그의 심복들은 알 수 없었으나 이 상황이 영주가 꾸민 것이라 짐작해 소름이 돋는 그들이었다.

다그닥, 다그닥-.

덜그럭…

“감히 날 몰아내?”

마차를 타며 이동하는 시져스는 화를 참지 못하는지 시종일관 씩씩 성을 내었다.

“내가 이 영지를 어찌 키워냈는데!”

키우긴 했었다. 다만 그것을 전대 영주가 사망한 뒤로 말아먹어서 문제지.

그러나 시져스 같은 인물은 자신이 잘한 것만 기억하기에 잘못을 꼬집어도 소용이 없었다.

“남아있는 자들을 모아다가 영주를 없애야겠어. 섭정노릇이라도 하려했더니 고약하기 그지없군!”

분을 참다못해 어린 영주를 살해하려는 시져스의 심성이야말로 고약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텅 빈 거리를 달리던 시져스의 마차는 문득 창문 밖으로 향한 시져스의 시선에 의해 멈추게 되었다.

“마차를 세우거라!”

“워워, 멈춰라, 멈춰.”

마부가 마차를 세우자 시져스는 대뜸 마차에서 내리더니 자신의 시선이 향한 곳으로 걸어갔다.

뚜벅, 뚜벅.

척.

그의 발이 멈춘 곳엔 매우 아름다운 여성이 걸어가고 있었는데, 옷차림을 보니 거의 헐벗듯 하고 있었다.

“창녀인가?”

몸을 파는 여성이 아니고서야 저렇게 몸을 드러내고 다닐 리가 없었다.

허나 천박한 신분이라 할지라도 저 정도로 아름답다면 데리고 살만했다.

벌써 지긋한 나이가 돼버린 시져스였으나 그 또한 이전의 기사처럼 아랫도리가 반응하는지 슬쩍 허리를 뒤로 뺐다.

“험험, 내 저 여인을 구제해줘야겠구나.”

몸을 파는 여성들은 대부분 생계적인 이유로 화류업계에 뛰어든다.

그러니 귀족의 첩이라도 된다면 성공하는 셈. 그렇기에 그녀들은 귀족과 대면하게 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유혹하려 애를 썼다.

그리고 그런 경우를 많이 보아왔고, 해먹었던 시져스이기에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다.

‘정 안 되면 다시 팔아버리면 되겠지.’

쓰다 질리면 버리거나 판다. 그것이 평민을 대하는 귀족들의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너는 여기서 기다리거라.”

“예, 주인님.”

마부는 노예가 아니었으나 노예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채무관계에 얽힌 상태였으니 말이다.

그가 공손이 허리를 굽히며 인사하자 시져스는 여인의 뒤를 따라갔다.

“거기, 앞에 가는 여자! 기다려 보거라!”

그가 말을 검에도 여성은 발길을 재촉했다.

“어허, 기다려 보래도!”

여성이 발걸음을 재촉하다 이내 골목길로 쏙 사라지자 화가 치솟았다.

“이년이? 감히 내 말을 무시해!”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사라져버린 육감적인 여인에게 화가 난 시져스는 험악한 말을 내뱉었다.

“엉만진창으로 갖고 논 후에 매음굴에 처박아 주도록 하지! 건방진 것!”

이전에도 그런 경험이 있던 듯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발언.

저 뒤편에서 그의 말을 들은 마부가 남몰래 혀를 찼다.

“쯧, 불쌍한 여인이 이렇게 또 가는구만.”

그가 불쌍해 하더라도 마부가 어찌할 방법은 없었다. 자신도 빚이 쌓인 상황에 누굴 구해준단 말인가?

그렇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긴 시져스는 여인이 사라진 골목길로 홱하니 몸을 틀었다.

휙!

“이년, 잡았다!”

시져스의 눈에 보이는 것은 도망가는 듯하더니 나무상자에 앉아 유혹하는 것인지, 다리를 꼬고선 매끈한 다리를 뽐낸 후, 손으로는 가슴을 받쳐 한껏 끌어 모은 지방(?)을 과시하는 여성의 자태였다.

“이리로 오세요…….”

“꿀꺽. 네, 네 이년! 어째서 도망간 것이냐!”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키고서야 소리를 버럭 지르는 시져스. 그런 시져스에게 여성이 고혹적인 음성으로 유혹했다.

“민망하게…, 이리로, 이리로….”

“꿀꺽. 크흠, 큼. 이제 보니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로구나! 험험험.”

어느새 발딱 선 사타구니를 움켜쥔 시져스가 나이도 잊고선 입에서 단내를 풍기며 다가가니, 갑자기 바닥이 풀썩 꺼져버렸다.

“어억?….”

그리고 연이어 터지는 음성.

“가동.”

슈슈슈슈슉!

푸확-!

터져버린 살덩이에서 피가 솟구치려했지만 흙덩이가 곧바로 흙으로 덮어버리며 그것을 막았다.

이내 꾸물럭꾸물럭, 바닥이 애벌레처럼 움직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시져스가 세상에 존재했다는 흔적이 사라져버렸다.

연이어 벽이 사라지더니 불릿이 나와 그녀의 몸을 로브로 가리면서 그가 벽으로 위장하고 있던 골목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콰드드드득-

그들이 빠져나가자 흙덩이가 잠시 골목길을 바라보더니 돌벽을 일으켜 세워 중간을 막아버렸다.

………

그들이 사라진 골목길엔 이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불릿도, 올리비아도, 시져스가 세상에 존재했다는 증거도.

* * *

반대파가 사라지고 난 후 파르탄 영지는 점차 안정을 되찾아 갔다.

불릿이 반대파와 함께 영지의 불한당들을 싸잡아 처리했기 때문인데, 그래서 그런지 영지의 인구수가 조금 줄어든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선량한 주민들의 얼굴은 밝았는데, 자신들을 괴롭히던 이들이 사라졌으니 해방된 느낌일 것이다.

게다가 영주가 직접 발표한 포고문에 세금을 낮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모두가 그를 칭송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칭송의 주인공인 콜드 파르탄은 이번엔 몰래가 아닌, 영주성에 직접 불릿 일행을 초대하여 만찬을 즐기게 되었다.

“대단히 고맙습니다.”

화려한 음식으로 가득 찬 식탁을 두고 콜드가 고개를 숙이자 이를 불릿이 막았다.

“영주는 쉽게 고개를 숙여선 안 되오. 다음부턴 정중하게 인사를 하되, 고개를 숙이지 마시오. 하더라도 살짝만 숙이고.”

이 와중에도 자신에게 충고를 해주는 불릿이 고마운지 콜드는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저에게 있어 은인되시는 분에게도 고개 숙이지 못한다면 이 쓸모없는 모가지를 잘라야하지 않겠습니까?”

“…뭐야. 볼레트, 저런 건 또 언제 가르쳤어?”

불릿의 건너편에 자리 잡은 올리비아가 몰래 속삭였다.

그녀는 이전처럼 퇴폐적인 느낌이 아닌, 말 그대로 ‘아름답다’는 탄성이 절로 튀어나오는 차림을 하고 있었다.

여행 중에 이런 복장을 가지고 다닐 리는 없으니 이것은 어린 영주의 작은 배려라 봐야했다.

하지만 식사를 하는 데에 방해가 되지 않는, 실용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복장이기에 매우 값비싸보였다.

그녀 또한 이 복장이 마음에 들었는지 연신 들여다보며 즐겁게 고기를 썰고 있었다.

“일한 뒤의 음식만큼 맛있는 것도 없지.”

식사예절엔 이런 게 있다. 먼저 입을 크게 벌리지 마라, 입안의 내용물을 보이지 마라, 음식은 천천히 먹어라.

그에 반대 올리비아는 약간 거친 동작으로 식사하고 있었지만 예법에서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였기에 딱히 눈살이 찌푸려지지 않았다.

오히려 외모가 출중한 올리비아가 그러니 생기발랄해 보일뿐이었다.

그렇게 그들이 만족스런 식사를 마쳐가자 영주가 뒤에 서있던 시종에게 신호를 주었다.

그러자 시종의 뒤편에서 다른 이들이 다가와 올리비아와 불릿에게 상자를 건네주었다.

불릿과 올리비아가 상자와 콜드를 번갈아보자 그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훌륭히 의뢰를 수행하셨으니 이건 그에 대한 보상입니다. 열어보시길.”

“얼마나 들었으려나….”

올리비아는 흥미가 돋는지 혼잣말을 하며 상자를 열었다.

딸칵.

“…마정석?”

그녀의 말에 불릿도 자신의 상자를 여니, 안에는 기이한 흐름이 감지되는 마정석 3개가 담겨있었다.

“중급 마정석 1개와 하급 마정석 2개, 그리고 여행에 필요한 경비는 떠나실 때 받아가시면 되겠습니다.”

“나는 펜던트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했는데, 무리하는 거 아니오?”

중급 마정석부터는 단순히 가지고 싶다하여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정석을 나누는 기준이 최하급부터 최상급까지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등급일 뿐이고, 현실은 하급도 구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하급 마물에게서 나오는 마정석이 하급에서 중급 사이의 품질을 지녔으니, 이것이 얼마나 귀한지 말할 필요가 있을까?

올리비아가 눈을 반짝이며 이리저리 둘러보는 사이, 불릿은 상자를 닫고 콜드의 눈을 주시했다.

그의 시선을 받자 콜드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잇는다.

“중급이라고 하지만 그것들은 세월이 오래지나 품질이 상당부분 손상된 상태입니다.”

“약간 손색이 있는 게, 영주님 말씀대로 온전한 중급이라 부르기엔 무리가 있군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여러분께 부담 없이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같은 등급의 마정석이라도 그 안에서도 또 다시 품질이 나뉜다.

불릿이 건네받은 마정석은 긴 세월의 풍파를 이기지 못해 상당량의 마기가 빠져나간 상태라 중급이라 부르기엔 조금 민망한 물건이었다.

그래도 하급 마물에게서 나온 것과 비등한 가치를 지녔기에 결코 싸구려라 부를 순 없었다.

“그리고 펜던트는 어디까지나 착수금이었으니 마음 쓰지 마시길.”

“……잘 쓰겠소.”

그렇게까지 말하니 불릿도 더 이상 사양하지 않고 상자를 갈무리했다.

그에게 있어 마정석만큼 필요한 물건은 없었으니 말이다.

불릿이 물건을 받자 비로소 의뢰는 종료가 되었고, 어린 영주, 아니. 이제는 당당히 한 지역의 군주가 된 콜드 파르탄은 흐뭇하게 웃으며 만찬은 종료되었다.

* * *

다음날이 되어 파르탄 영지를 떠날 때가 되자 불릿은 올리비아와 단 둘이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함께 동행했던 상인들은 이미 떠난지 오래라서 또 다시 걸어서 이동해야 했는데, 걷는 것 자체엔 익숙해져서 별다른 거부감이 없었다.

‘떠나기 전에 선물 하나는 주고가야겠지.’

자신이 해준 것도 많지만 이곳에서 얻은 것도 많았다. 마탑에 의뢰를 넣을 수 있는 펜던트, 조금 모자라지만 틀만으로는 중급에 올라있는 중급 마정석과 하급 마정석.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였던 콜드 파르탄이 자신에게 보여준 호의에 조금은 보답해도 괜찮을 터였다.

“흙덩이여, 잠시 이리 오시게.”

- 응.

이유를 묻지도 않고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는 흙덩이.

전날 만찬 때 함께하지 못해서 그런지 더더욱 붙어있으려 했다.

불릿은 한쪽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맞추더니 흙덩이에게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흙덩이여, 이 땅에 축복을 내려주게나.”

땅의 정령사가 내리는 대지의 축복. 이것 때문에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만물의 근원이라는 둥, 풍요의 여신이라는 둥으로 불리는 것이다.

- 그게 뭐야?

“음, 축복이란 상대의 앞날에 행운이 깃들거나 좋은 일만 바라는 것으로…, 뭐, 그런 의미네. 이 지역의 땅에 정령력을 듬뿍 넣어주시게.”

- 많이?

“흠…. 그래, 많이.”

- 알았어.

우우우웅-

흙덩이가 기운을 뽑아내기 시작하자 흙덩이와 손을 떼고서 일어서는 불릿.

땅의 정령이 직접 행하는 대지의 축복이라는 행사의 장엄한 광경을 보며 불릿은 생각했다.

‘중급에 올랐다면 반영구적으로 유지가 가능했겠지만…, 적어도 올해 농사는 망치지 않겠지.’

“아, 이쁘다….”

올리비아는 흙덩이가 대지와 공명하며 정령력을 흩뿌리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고, 불릿은 그런 올리비아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대지의 축복이라는, 그들만의 축제를 끝마치자 불릿과 올리비아는 파르탄 영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오늘 밤 12시에 뵙겠습니다.

추천과 선작,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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