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정령사-53화 (53/241)

00053  파르탄 영지로  =========================================================================

덜컹.

덜커덩-, 덜컹.

상인들과 합류한 덕분에 불릿은 수레에 앉아 편히 이동할 수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말들은 살아남았기에 짐을 옮기는 데엔 지장이 없던 것이다.

그들은 수레에 앉아 상단의 대표인 센슨과 대화하며 파르탄 영지에 관한 정보를 습득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파르탄 영지의 상황이 안 좋다 이거요?”

불릿의 물음에 센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네, 그렇습니다. 현 파르탄 영지의 영주 콜드 파르탄은 전대 영주인 크루크 파르탄이 전쟁에서 사망한 후 급하게 계승했는데, 여기서 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전대 영주인 크루크 파르탄은 흑마법사와의 전쟁에서 전화에 휩쓸려 죽었다고 한다.

마법사였던 점이 악영향을 미친 것일까. 기사나 용병으로 대체할 수 없는 주전력을 영주라는 입장에서도 강제로 차출되게 만들 정도로 연합체 놈들은 간악했던 것이다.

‘간악한 놈들. 내 기필코 벌을 줄 것이야.’

자신 또한 연합체의 등살에 떠밀려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겪은 일들을 나열하면 치가 떨려도 모자랄 지경.

파르탄의 영주 또한 전쟁 때문에 희생당한 희생자였던 것이다.

“그의 아들이 영지를 계승했지만, 어린 나이가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재능은 있지만 그것을 꽃피우기엔 열다섯이라는 나이는 너무도 어리지요.”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어린 소년이 영지를 이끌기엔 지금 시대가 평화롭진 않았다.

덕분에 파르탄 영지는 몬스터가 들끓기 시작해 얘기를 나누는 와중에도 등장할 정도가 된 것이다.

“볼레트, 저놈들은 내가 잡을 거니까 넌 나서지마.”

편히 이동해서일까? 올리비아는 몸이 근질근질하다는 것처럼 이곳저곳을 주무르더니 폴짝 뛰어올라 수레에서 내려섰다.

“…올리비아가 처리하겠다고 말하니 하던 얘기를 계속해보시오.”

“그녀 혼자만으로도 괜찮겠습니까? 오크는 힘이 강해서 한 대라도 맞았다간….”

센슨은 올리비아가 걱정되었는지 연신 시선을 주며 불릿에게 물었으나 불릿은 걱정되지 않는다는 듯 뒤도 안 돌아보고 센슨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올리비아는 데빌로안 영지에 출몰한 마물토벌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소. 올리비아를 전사가 아닌 여인으로 보는 것은 그녀를 욕되게 하는 것이오.”

무의식중에 엄중한 기운을 흘리며 센슨에게 대꾸하자 센슨은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조아렸다.

“죄, 죄송합니다. 저도 데빌로안의 마물토벌에 대해선 익히 들었습니다. 저분이 소문의 발키리였군요.”

“발키리?”

불릿은 처음 듣는 얘기였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모르셨습니까? 마치 천상에서 내려온 여전사와 같다하여 발키리라 불리는 여검사를 말입니다. 볼레트님의 말씀대로라면 그녀가 바로 발키리입니다.”

“발키리라….”

발키리는 주신의 전사들로, 오직 처녀들로만 구성됐다고 전해지는 반신(半神)을 뜻했다.

실제로는 비명을 꽥꽥 지르며 처절하게 싸웠던 것이 미화되어 전해졌다는 소식에 불릿은 내심 헛웃음을 지었다.

‘역시 소문이란 믿을 만한 게 못 되는군.’

“그리고 볼레트님은 아이언가드라고 불리십니다.”

“아이언가드?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자신에게도 별명이 붙었단 소리에 의아함을 드러낸 불릿. 그러자 센슨도 신이나 입을 나불대기 시작했다.

“듣기로는 땅에서 거대한 벽이 솟구쳐 아군을 보호하고, 발키리를 마물에게 닿을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주었다 하여 아군을 수호하는 자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아이언가드라니, 대체 어디서 철벽(鐵壁)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인가.’

불릿이 땅의 정령을 다루지만 겨우 하급 정령으로 광물을 다루는 것은 무리다.

무겁고 복잡한 성분의 금속을 그가 무슨 수로 다루겠는가, 이 말이다.

나중에 흙덩이가 상급에 올라서면 모를까, 지금으로썬 어림도 없는 상황.

다시금 소문이란 믿을 게 못 된다고 다짐하게 만드는 소리였다.

‘전대 영주가 사망하여 몬스터가 들끓는 영지라…….’

문득 불릿은 자신의 영지도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하는 불안감이 치솟았다.

이곳엔 어리나마 영주라도 있지, 자신의 영지인 바포 변경 백작령은 그야말로 텅텅 빈, 무주공산인 상태였던 것이다.

불릿은 파르탄 영지의 어린 영주 콜드 파르탄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흑마법사와 연합체, 이놈들은 대체 언제까지 우릴 희롱하는 것인가!’

콜드 파르탄과 불릿의 공통점은 흑마법사와 연합체로 인해 슬픔을 겪은 피해자들이란 점이었다.

불릿은 결사대의 죽음과 본인 스스로도 죽음을 경험했었고, 콜드 파르탄은 친지의 죽음과 그로인해 몬스터가 들끓고 있는 경영난을 겪고 있었다.

파르탄 영지를 보고 있노라면 안타까운 자신의 현실과 대조되었기에 불릿은 콜드 파르탄에게 알 수 없는 호감이 이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헌데 진짜로 이상하긴 하군.’

지금도 올리비아가 검으로 목을 쳐내는 오크처럼, 이상하리만치 몬스터가 많이 등장했다.

관도에서조차 몬스터가 떼거지로 나타나면 인간이 살 수 있을 턱이 없었다.

평소에는 이렇지 않은 것, 평범함을 벗어난 현상엔 언제나 이유가 있었다.

바로 전의 영지, 데빌로안에서도 이와 같은 경우를 겪었기에 위화감이 더욱 심화된 상태.

게다가 자신의 곁에서 멀뚱멀뚱 상인을 쳐다보는 흙덩이가 일러줬단 말.

- 탁해. 똑같아

그 말이 지금 상황에서 머릿속에 경종을 울려주고 있었다.

‘과인의 영지도 이러하진 않겠지?’

자신의 영지도 이렇게 몬스터에게 침범당하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졌다.

무능한 영주, 언제나 자신을 절제하고 탐욕을 경계한 불릿이 그러한 영주로 불리우게 된다면 이 얼마나 치욕스런 일이란 말인가!

바포 변경령을 지켜왔던 가문의 인사들에게 고개를 들 수도 없거니와 먼저 타계한 부모들에게 죄송스런 마음을 떨칠 수 없을 것이다.

“볼레트님?”

대화 도중에 생각에 잠긴 불릿에게 센슨이 말을 걸어왔으나 그의 귀엔 센슨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허나 갈 길이 바쁘다 한들, 마물이 등장했을지도 모를 이곳을 외면할 순 없다.’

10번 잘해도 1번 못하면 사람들은 두고두고 그것만을 얘기한다.

그래서 평민들이 보기엔 귀족과 왕처럼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들이 항상 탐욕스럽고 못되며 무능한, 그런 인물로 묘사했던 것이다.

남들 위에 서려면 무능해선 절대 불가능했다. 유능한 인물, 남들보다 하나라도 더 잘해야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이다.

“센슨, 파르탄 영지가 이렇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소?”

“아마 몇 달 안 됐을 겁니다. 아, 그러고 보니 데빌로안 영지와 시기가 비슷한 것 같군요?”

센슨은 자신이 말하면서 한가지 사실을 깨달았다는 점에 감탄사를 터뜨렸다.

“이야, 어째 시기가 공교롭군요?”

“…그렇구려.”

‘마물에 관한 일이 우연일 리가 없지.’

데빌로안 영지나 파르탄 영지나, 둘 다 마물이 등장할 여건이 조성되어 있지 않았다.

파르탄 영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으나 데빌로안 영지에서 마물이 발견됐으니 이곳에서 그럴 확률이 농후했다.

지금도 몬스터가 이상할 정도로 많이 출몰했으니 불릿은 거의 확신에 가까운 예상을 하고 있었다.

“볼레트! 여기 좀 봐!”

어느새 몬스터를 모조리 처치한 올리비아가 팔을 흔들며 불릿을 향해 환히 웃고 있었다.

아무리 연기라지만 어느 정도 체면을 지키고 싶었던 불릿은 손만 흔들어주며 소리는 지르지 않았다.

“뛰어난 검사 시라고 하더니, 과연 소문대로시군요. 아름답고, 강한 게 신화 속에 등장하는 발키리가 연상됩니다.”

센슨은 감탄을 하면서도 불릿의 눈치를 봤는데, 그것은 뛰어난 실력임은 맞았으나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니 센슨의 말은 일종의 아부, 그 이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동행분이 저렇게 뛰어나시니 좋으시겠습니다.”

‘아부는 신분과 직위를 가리지 않고 다들 비슷하게 하는군.’

그러나 불릿이 겪어온 것에 비하면 센슨의 아부는 그 수준이 낮았다.

그렇다고 심드렁하게 대하면 용병답지 않은 모습이기에 훗날 용병 볼레트와 ‘백작 불릿’이 동일인물임을 비교당하지 않으려면 행실을 약간 가볍게 할 필요가 있었다.

‘…이미 늦은 것 같기도 한데.’

다만, 불릿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현하려다보니 지나친 면이 없잖아 있었다.

‘신분설정을 약간 수정해야겠구나.’

볼레트라는 용병이 불릿의 사제나 수제자 비슷한 존재였다고 하거나 그도 아니면 남들이 납득할 만한 이유를 만들어야 했다.

갑자기 젊어졌다고 하면 대체 그 누가 믿겠느냐, 이 말이다.

혹시나 불노불사에 관한 헛소문이 퍼진다면 그의 영지는 삽시간에 폐허가 되어버릴 지도 몰랐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등줄기가 싸해지는 것을 느꼈다.

“괜찮으십니까? 안색이 나쁘신 것 같습니다만….”

- 불릿, 어디 아파?

덥썩.

이젠 어디가 아프다 싶으면 다짜고짜 손부터 잡고 보는 흙덩이.

기운을 소모해 치료하려는 기색을 보이자 불릿은 다급히 그것을 말렸다.

“그만, 그만. 괜찮네, 흙덩이여. 전혀 아프지 않으니 자네의 기운을 좀 더 소중히 대하시게.”

“괜찮으신 겁니까?”

“괜찮소. 잠시 쉬면 멀쩡해지니 신경 쓸 것 없소.”

이 광경을 멀리서 바라보던 올리비아는 전투현장을 정리할 새도 없이 급하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정말 마음에 안 드는 육체야.’

감정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몸, 불릿에게 있어선 젊어져도 하등 쓸모가 없다 여겨지는 육체였던 것이다.

* * *

챙, 채채챙!

올리비아는 사방에서 날아드는 독침을 쳐내며 상인들을 지켜내고 있었다.

“돌벽!”

- 돌벽…

드드드드득!

땅에서 가로세로 2미터의 돌로 된 장벽이 솟구쳐 나와 상인들에게 접근하는 고블린을 막아내었다.

“끼긱?!”

“죽음의 대지!”

- 지옥송곳… 많이.

슈슈슉! 푸슈슈슈슉!

자기들 나름대로 작전을 구사한다고 흩어져서 다가오던 고블린들은 이 한방의 기술에 모조리 쓸려나갔다.

“퀘….”

단발마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한 고블린은 그대로 죽었는데, 이 광경을 지켜보던 상인들은 수레에 숨은 채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었다.

덜덜덜-

“으으…, 매우 끔찍한 광경이다.”

“센슨님, 이번 상행만 끝나면 그만두고 싶은데요.”

“저, 저도요.”

상인들의 대답에 센슨은 침음성을 흘렸다.

“크음…….”

무리도 아니었다. 눈앞에서 용병들이 죽어나갔고, 자신들도 죽었을 마당에 불릿과 올리비아가 아니었으면 몬스터에게 어찌됐을지 몰랐다.

행상이라는 것이 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만큼 위험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자신들이 하던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깨달은 상인들은 더 이상 행상인 짓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후우, 자네들이 그리 말하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일단 이번 상행은 마무리하고 봅시다.”

“알겠습니다!”

“네!”

다행히 그들을 이해한 센슨이 이를 받아들이자 상인들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소규모 상단의 단주인 센슨으로서는 뼈아픈 일이었지만 센슨도 더 이상 위험을 고사하고 싶진 않았다.

‘이번 상행만 마치면 나도 어디 한적한 곳에서 가게나 열어야겠군.’

“후욱, 후욱.”

상인들이 저마다 생각을 하며 몸을 사리는 동안 불릿은 기술을 연마하느라 많은 정령력을 소모시켰다.

“아무리 개량시켜도 지옥송곳은 어쩔 도리가 없군. 후우….”

지옥송곳은 돌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돌은 구체화하기 힘든 물질, 당연히 흙으로 이루어지는 주먹 쾅보다 정령력의 소모가 심했다.

생각해보면 쓸 만하다 여기는 돌벽, 지옥구덩이, 지옥송곳, 죽음의 대지 모두가 돌로 이루어진 기술들이었다.

하나같이 정령력의 소모가 심한 것들, 특히 이번에 새로 명명한 지옥송곳 다연발, 즉 죽음의 대지는 미칠 것처럼 대량의 정령력이 소모되었다.

“역시, 아이언가드십니다. 그런 기술로 아군을 보호하셨으니 마땅히 칭송받을 만하지요!”

침울해보이던 센슨이 어느새 그 기색을 지우고 밝은 얼굴로 다가왔다.

센슨 상단이 이번까지이건 말건 간에 상행위를 마칠 때까지 살아남으려면 불릿 일행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한 일환으로 끊임없는 아부를 시도했던 것이다.

“볼레트! 흙덩이 좀 이리로 보내줘! 몬스터 시체 좀 치우게!”

몬스터는 냄새에 민감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피냄새는 맡기만 해도 광분했는데, 마물의 영향을 받고 있다 의심되는 마당이니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그래서 고블린부락을 없앨 때처럼 처리한 후에는 땅에 파묻으며 이동하고 있었다.

“별 것 아니오. 파르탄 영지엔 언제 도착하오?”

불릿의 얼굴에 피곤함이 어려 있자 센슨이 잽싸게 대꾸한다.

“바로 요 앞입니다. 몇 시간 후면 도착하니 수레에 올라 편히 쉬시지요.”

“그렇소…. 흙덩이여, 이곳은 이제 됐으니 저쪽으로 가서 올리비아를 도와주시게.”

- 응.

몬스터의 시체를 구덩이에 넣고 잘게 부수던 흙덩이는 흙과 뒤섞은 후 올리비아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도도도!

============================ 작품 후기 ============================

갑자기 추천과 선작수가 늘어났군요.

내일은 점심 12시와 저녁 6시, 밤12 3연재가 이루어질 예정이오니

내일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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