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0 흙덩이를 부탁해! =========================================================================
“꼬맹아, 저기도 좀 가볼래?”
올리비아는 신이 난다는 듯 흙덩이의 조그마한 손을 붙잡고 거리 곳곳을 쏘아 다녔다.
- 저거 보여줘.
“그래! 자, 목마다!”
인파가 쏠려 흙덩이의 시선이 닿질 못하자 올리비아는 그런 흙덩이를 자신의 목에 태워주었다.
지난 며칠간 흙덩이와 올리비아는 앙금을 잊고 사이좋게 지냈다.
흙덩이는 모르는 게 많았고, 올리비아는 흙덩이의 새침함이 나타나질 않자 마음껏 예뻐하며 인간들의 문물을 보여준 것이다.
사실 불릿이 처음 부탁했을 때 올리비아는 난감함에 빠졌었다.
흙덩이가 자신을 싫어하는 게 눈에 뻔히 보이거늘, 대체 불릿이 무슨 생각으로 자신에게 흙덩이를 맡기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올리비아를 믿소. 그러니 내 육신과도 같은 흙덩이를 맡길 수 있는 것이오.”
그러나 난감함을 보이던 올리비아의 태도는 이러한 불릿의 한마디에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호감을 품고 있는 상대에게 저런 말을 들으며 부탁받으면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흙덩이를 이끌고 거리에 나선 올리비아는 걱정이 앞섰다.
‘설마 사람들에게 그 무시무시한 기술들을 쓰진 않겠지?’
귀여운 외모와는 달리 흙덩이는 땅의 정령이었다. 누런 피부를 지녔지만 여타 정령들과는 다르게 인간의 모습을 지녔다.
지금도 사람들이 힐긋힐긋 쳐다보는데 혹여나 흙덩이를 자극해 화라도 난다면 그야말로 대형사고가 펼쳐질지도 몰랐다.
- 저거.
“으, 응?”
일단은 보호자이기에 흙덩이의 손을 잡고 있던 그녀는 흙덩이가 어딘가를 가리키자 놀라서 말을 더듬었다.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 흙덩이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자 그곳엔 사람들을 호객하는 상인이 있었다.
“아, 저거? 저 사람은 물건을 팔려고 외치는 거야.”
- 팔아?
올리비아는 흙덩이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흙덩이가 중급 정령에 올라서면 계약자만이 아닌 외부에도 음성을 전달할 수 있겠지만 아직은 하급 정령, 입을 벙긋거려도 형태가 달랐기에 올리비아는 알아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사전에 불릿에게도 흙덩이의 특징에 대해 들었었고, 지금 이 상황에서 궁금한 거야 뻔 한 것이다.
“관심을 끌어야 물건을 팔 수 있거든. 저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이니까 말이야.”
- ?
정령은 이해하지 못할 인간들의 상행위. 팔거나 산다는 행동은 인간을 제외한 다른 종족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문화였다.
그리고 인간의 말조차 몰랐던 흙덩이에게 그들의 문화는 언제나 신선했고, 작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흙덩이가 어벙한 표정으로(무표정) 열렬히 장사하는 그들을 바라보는 사이, 어느샌가 다가온 사내들이 올리비아에게 말을 걸었다.
“휴식을 취하던 모양이오, 올리비아 경.”
“…안녕하세요.”
사복차림의 두 기사는 토벌대에서 살아남은 이들이었다.
거의 삼분지 일이 죽은 대참사, 그들이 언제 이렇듯 큰 사건을 겪고 동고동락한 동료를 잃어보았겠는가?
영주는 그들에게 벌을 내리기보단 휴식기간을 가지도록 명했다.
지금 마음을 다독이지 못하면 점점 갈수록 마음이 꺾여 능률이 떨어질 테니 말이다.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순찰도 할 겸해서 나와보았소. 이 친구야 나와 함께 다니니 덩달아 쫓아온 것이고.”
“그러시군요.”
“정령님께서도 잘 지내셨는가 모르겠군.”
- 저리가.
한창 즐겁게 구경하던 마당에 특별할 것도 없는, 저번에 실컷 구경한(?) 놈들이 막아서니 재촉하는 흙덩이.
그러나 흙덩이의 말은 아직 하급 정령에 불과해서 그런지 그들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불릿이 있었더라면 의견조율을 잘 해내어 기사들을 다른 곳으로 보냈겠지만 올리비아는 흙덩이의 말을 듣지 못했다.
멀뚱히 서있던 흙덩이가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자 그녀가 퍼뜩 정신을 차린다.
“아, 죄송한데 저희는 거리를 좀 더 구경해도 될까요? 흙덩이가 인간세상이 처음이라 신기해하는 것이 많다고 하네요.”
“호오, 이 정령님께선 인간세상이 처음이었나 보구려.”
대부분의 정령들은 세상을 접하지 못하더라도 전해들은 것이 있기에 인간보다 더 인간세상에 해박한 면이 있었다.
그렇지 않더라도 정령이 구경을 한다는 경우를 보질 못했으니 기사들의 입장에서도 신기한 장면이었다.
“즐거운 하루되시길 바라오.”
“그럼, 저희는 이만…. 흙덩아, 이번엔 저기를 가보자.”
- 난 아직 저걸 더 보고 싶은…
“와, 저기 예쁜이가 신기해할 게 많네에-?”
서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장면이었으나 정령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다른 이들이 보기엔 흐뭇한 광경이었다.
“갔나?”
“갔군.”
기사들은 사라져가는 그녀들(?)을 보며 말을 주고받았다.
시야에서 그녀들이 사라지자 두 명은 걸음을 옮겼는데, 그들이 도착한 곳엔 불릿이 머무는 여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기사들이 여관으로 들어서자 점원이 그들을 반긴다.
“어서오십쇼!”
밝게 인사하는 점원에게 사복차림의 기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음을 던졌다.
“여기 볼레트라는 용병이 있는가?”
“203호에 계십니다만, 불러드릴깝쇼?”
“그리해주시게.”
잠시간 기다리자 불릿이 계단을 타고 1층으로 내려섰다.
“무슨 용무로 찾아온 것이오?”
이미 이곳에서 받을 것을 다 받았기에 더 이상 기사들이 그를 찾을 용무가 없었다.
이에 의문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
기사 또한 그것을 알기에 불릿의 의문을 풀어주어야 했다.
“당신에게 충고를 한마디 전하려 왔다.”
“흐음, 그게 무엇이오?”
카를로스가 ‘경’이라는 호칭을 붙이며 꼬박꼬박 대우해주던 것과 다르게 눈앞의 두 기사는 어쩐지 적대적인 감이 없잖아 있었다.
이에 불릿은 턱수염도 없거늘 그곳을 쓰다듬으며 묻는다.
“영주님께선 불순분자인 당신이 자신의 영지에 오래 머무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하신다. 고로 빠른 시일 내에 떠나줬으면 좋겠군.”
“……그게 무슨 소리요?”
영지를 구한 영웅인 불릿에게 할 소리는 아니었다.
“끝까지 모르는 척하는군. 뭐, 상관없다. 마물토벌에서 세운 공적을 생각하여 별다른 불이익을 주진 않을 터이니 떠나주길 바란다.”
불릿은 이들이 왜 이러는지 생각에 잠겼다.
‘복장이 사복인 것을 보니 그들의 독단인 것 같고, 불만은 자기들이 가진 것 같은데 우연찮게 영주가 날 대하는 것에서 생각이 일치했다 여겼나보군.’
눈치백단인 불릿은 이들이 왜 이러는지 알 것 같았다. 아마 용병주제에 자기들보다 큰 활약을 펼쳤고 자기들이 모시는 영주에게 홀대받는 모습에서 쓸모가 없어졌다 판단한 모양이다.
그것 외에도 동료들이 죽어나간 마당에 자신들에게 없는 능력으로 상을 받으니 그에 대한 시기심도 언뜻 보였다.
‘어차피 떠나야할 때였으니 떠나줘야겠지.’
이와 같은 일이 없던 것도 아니었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살갑게 굴었으나 몇몇 기사들은 이처럼 몰래 불릿을 찾아와 으름장을 놓고 사라졌던 것이다.
딱히 이곳에서의 보상에 기대를 한 것도 없었기에 아쉬울 것도 없었다.
불릿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을 노려보는 이들에게 답을 주었다.
“알겠소. 준비가 완료되는 대로 떠나도록 하지. 그만 가보시오.”
불릿이 축객령을 내리자 졸지에 쫓겨나는 입장이 돼버린 기사들이 얼굴을 구기며 거칠게 여관을 나섰다.
“아이고, 볼레트 씨를 찾아오는 양반들은 하나같이 거칠기 짝이 없구만요.”
점원의 말에 불릿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쳐준다.
“그깟 시기심으로 날 어찌할 순 없소. 무릇 발전하고자하는 자라면 자신을 갈고닦아야지 졸렬한 행태를 보여봤자 자신을 깎아먹을 뿐.”
“캬, 정령사라더니 말도 멋지구리하게 하시네.”
불릿은 자신의 말에 감탄하는 점원에게 다가가 몇 가지 필요한 물품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대화에서 들었듯, 떠날 준비를 해야 하오. 육포를 비롯한 식량들을 준비시켜줄 수 있겠소?”
“얼마나 준비해 드릴깝쇼?”
잠시 고민하던 불릿. 이윽고 그의 입이 떨어졌다.
“가방 하나를 채울 정도로 가득 넣어주시오.”
“어이쿠. 그 정도면 거진 한 달은 먹을 양인데, 괜찮습니까?”
어지간해선 그렇게나 오래 여행하지 않는데. 하다못해 중간지점이라도 들러 물자를 보급하거나 교체하기에 식량을 지나치게 많이 들고 다니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불릿에게 있어 다른 물품은 이미 구비한 상태이고, 딱히 더 필요하지도 않았다.
정 힘들다면 흙덩이에게 나눠들게 해도 되는 일이었다.
‘굶주림이 있어선 아니 될 일이지.’
배에서 나는 소리는 아무리 겪어도 수치스러움을 떨치지 못했다.
이제는 자신도 꽤나 용병연기를 잘하고 있다 생각했지만 최소한의 체면만은 지키고 싶었던 불릿.
그렇기에 식량은 넉넉하게 챙기려던 것이다.
“상관없소.”
“그럼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요.”
고개를 끄덕인 불릿은 다시 계단을 타고 올라가 자신의 객실로 들어섰다.
터벅, 터벅.
풀썩-.
“후우, 피곤하군.”
마정석에서 흡수한 기운을 정령력으로 전환하던 도중이었는데, 자신에게 불만을 품은 기사들이 자꾸 불러내자 불릿도 기분이 좋진 않았다.
자신이 데빌로안 영지에서 무얼 하려던 것도 아니고, 그저 채비를 완료한 후에 떠난다는데도 재촉하는 꼴이 영 아니었던 것이다.
“이러니 영지에 마물이 꼬이지.”
기사들의 이러한 행위는 영주가 자신을 홀대하는 데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자기 멋대로 불러들이고는 홀대하다가 수하들인 기사들까지 그를 핍박하니 자연스레 영주에 대한 불만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마물을 소환했을 흑마법사는 어찌된 것인가?”
왕국의 안쪽에 놓인 데빌로안 영지에 마물이 자연적으로 발생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소환하거나 끌어낸 주범이 있다는 소린데, 끝끝내 그런 인물을 발견하지 못했다.
“심각하군.”
자신마저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리자 그의 얼굴이 딱딱히 굳어갔다.
론 타로 왕국의 사람들은 흑마법사와 직접적으로 대면한 일이 적었다.
흑마법사에게 대항할 수 있는 주요 병력인 마법사와 정령사가 적어서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번 마물사태에서 이상함을 감지하지 못했다.
오직 결사대에서 활약한 불릿만이 이를 파악했는데, 그마저도 까맣게 잊고 있던 상황.
“어디로 사라진 것이지?”
분명 멀리 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하급이라지만 마물을 소환하는 일이 단순하진 않으니 말이다.
흑마법사로 추정되는, 또는 이와 관련됐다 여겨지는 인물이 주변영지에 숨어서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머리에서 열이 올랐다.
“간악한 쥐새끼들이 또 다시 세상을 어지럽히려는 것인가!”
아직도 흑마법사만 생각하면 치가 떨렸다. 혈기왕성한 몸은 조그마한 계기가 생기면 곧장 반응했다.
분노에 몸을 부르르 떨던 불릿은 심호흡을 하며 화를 삭였다.
“후욱, 후욱. 체신머리 떨어지게 또 다시 이러는군. 마음에 안 들어, 마음에.”
감정에 솔직해지려 했지만 조절도 안 되는 이 육체는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젊고 싱싱하면 무엇 하는가? 내 뜻대로, 원하는 바를 수행하지 못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던 불릿은 흙덩이에게로까지 생각이 미쳤다.
“흙덩이는 피부색만 제외하면 인간이나 다름없으니 소환한 채로 이동해도 괜찮으려나….”
지금쯤 올리비아와 거리순회를 하고 있을 흙덩이. 장시간 소환하지 않으면 불만이 쌓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소환하는 편이 여러모로 좋았다.
지속적인 소환은 정령력을 쌓는데도 도움이 됐고, 정령과의 교감이나 친밀도의 상승,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는 등 많은 장점이 있었다.
“그래, 소환하고 다니도록 해야겠다. 어차피 본인임을 알 수 있는 요소는 없으니….”
세상에 알려진 불릿 폰 바포 백작은 물의 중급 정령사, 그것도 장년층에 접어드는 중년의 인물이었다.
그러나 지금 불릿은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젊어진 상태, 게다가 다루는 정령은 흙덩이라는 땅의 하급 정령이었다.
백작씩이나 되는 인물이 뭐가 부족해서 정체를 숨기고 다니겠는가?
지금 그를 알아볼 사람도 없는데 너무 숨기고 다니는 것도 이상한 노릇.
“이번 사태만 하더라도 조금 안일했다. 철저한 준비를 통해 적을 상대했어야 했거늘.”
정신이 육체에 따라가서인지, 매사에 철저하던 불릿은 상황을 관망하는 시야가 좁아졌음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그걸 통제할 수 없다면 통제하지 않아도 될 만큼 강해져야 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선 자신이 강해지거나 흙덩이가 진화를 하거나 둘 중 하나가 이루어져야 하는 상황.
지금 그의 선택이야말로 최선이라 말할 수 있으리라.
“올리비아와 흙덩이가 복귀하면 말을 전달해야겠군.”
솔직히 흙덩이는 그저 불릿을 따라다니면 되었기에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었으나 지금 올리비아는 그에게 나름 의미 있는 동료가 되어 있었다.
적어도 떠날 때 알려주는 것 정도는 해줘도 무방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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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잘 부탁드리길 바라오며, 12시에 이어서 올라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