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8 토벌의 결과 =========================================================================
“그럼, 저희는 이만 물러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불릿과 올리비아가 아침문안을 올리자 필로스 영주가 미리 준비했던 상자를 그들에게 건넸다.
“이것을 받도록.”
“이게 무엇인지…?”
상자를 받아든 불릿이 물음을 건네자 영주가 귀찮다는 제스처로 팔을 젓는다.
“자네가 토벌과정에서 정신을 잃을 정도로 부상을 입었었다는 카를로스 경을 통해 전해 들었기에 준비했네. 괘념치 말도록.”
“감사히 받겠습니다.”
아직 내상이 낫지 않은 불릿으로선 포션은 가장 적절한 조치였고, 일종의 보상과도 같은 개념이었기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가 포션이 든 상자를 받아들자 전날 그렇게 꼬치꼬치 캐물으며 불릿을 귀찮게 하던 영주.
필로스는 더 이상 대꾸도 않고 불릿을 성에서 내보냈다.
영주의 태도가 좋진 않았으나 어차피 볼 일도 없었으니 그들은 원래 있던 숙소인 여관으로 향했다.
“와, 영주님 너한테 왜 그러신대?”
“왜 그러오, 올리비아.”
여관에 도착하자마자 올리비아는 식당에서 간식을 먹으며 대뜸 화를 냈다.
그런 그녀가 이해 안 되는 불릿. 영주와 대면한 것은 자신이지 올리비아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올리비아는 마치 자신의 일인 양 같이 분노해주었다.
“아니, 볼레트 네가 영지를 구한 거나 마찬가지잖니? 근데 왜 그렇게 대하시냐고.”
“그럴 수도 있지 과민한 반응인 것 같소. 이것을 보시오, 내 몸을 생각해 포션도 내려주었는데 불만을 가질 이유가 있소?”
“너랑 내가 함께 활약했는데 그런 대우를 받으니까 기분이 안 좋아서 그렇지.”
곧 헤어질 사이어도 이렇게 같이 감정을 공유하면 은근히 기분이 좋다.
그것은 귀족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은 사항.
오히려 귀족들이 감정에 대해선 민감한 면도 있었다.
치정이나 감정싸움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기도 하고, 서로의 가문이 몰락하는 사태가 생기기도 했다.
결국 인간사는 세상은 비슷하다는 소리.
그녀를 보니 옛날 자신을 걱정해주던 또 다른 여인이 떠올랐다.
‘좀 더 잘 대해줄 걸 그랬군…….’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떠올리던 여인에게 어떤 변고가 있던 것 같다.
그러니 불릿이 후회를 하며 올리비아를 지긋이 바라보는 게 아니겠는가?
“뭐야, 뭘 그렇게 쳐다봐?”
평소와 다른 그의 시선에 올리비아가 눈을 가늘게 뜨고선 불릿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그러건 말건, 추억을 회상하다 이제 막 현실로 돌아온 불릿은 뒤늦게 반응했다.
“아무것도 아니오. 걱정해주어 고맙소.”
“고맙기는. 우린 파트너잖아, 응?”
“올리비아, 내 궁금한 게 하나 있소만.”
불릿은 웬만해선 무언가를 물어보는 경우가 없었다. 있다고 한다면 그가 알기 어려운 용병업계에 관한 정보였다.
그녀도 아주 눈치가 없지는 않은 것인지 불릿이 어떤 질문을 던질지 예상하고 그것을 미리 선점했다.
“이번엔 어떤 게 궁금한데? 지금 이 상황에서 궁금한 거라고 하면, 토벌보상? 맞지?”
그녀의 말에 불릿이 고개를 끄덕인다.
“맞소. 보상으로 무엇을, 어느 정도까지 받을 수 있는지가 궁금하오.”
“흐흥, 역시 넌 내가 없으면 안 된다니까?”
‘징그럽게 왜 이러는 것인지….’
그녀는 자신만만한지 허리춤에 손을 얹고 콧대를 세웠으나 불릿이 보기엔 뭐하는 짓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올리비아의 정보는 초짜용병인 불릿에겐 언제나 유용했기에 얼굴에 변화도 일으키지 않고선 조용히 경청했다.
“우리가 이번 토벌에서 큰 활약을 펼친 건 알고 있지?”
“…전황을 뒤집었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소.”
하급 몬스터를 백날 잡아봤자 하급 마물을 잡은 것만큼은 못 되었다.
똑같은 하급이지만 그것은 단어가 같은 것이지 강함이 같은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불릿의 정령술, 더불어 그와 호흡을 맞추어 마물의 이마에 검을 꽂은 올리비아의 활약은 칭송받을 만했다.
“그래, 마물의 비중이 그만큼이나 큰 거야. 다행히 마물이란 놈들이 마계에서 쉽게 못 튀어나오니 이 정도지.”
“그런데 놈에게서 나온 마정석은?”
“에이, 아무리 우리 활약이 크더라도 마물의 마정석까지 바라는 건 욕심쟁이지.”
불릿과 올리비아의 활약이 결정적이긴 했어도 토벌대가 주변의 몬스터를 상대해주고, 마물의 신경을 끌어주지 않았다면 접근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 모두를 끌어 모은 것은 데빌로안 영지에서 돈을 내주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그래도 많은 부분을 할당받을 수 있을 거야.”
“마정석도 가능하오?”
“마정석? 아….”
불릿이 마정석이 가능하냐고 물어본 것은 하급 마물과의 결전에서 정령력의 수급이 얼마나 시급한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번엔 단순한 탈진이 아닌 내상까지 입었다. 게다가 듣기로는 흙덩이가 강제로 역소환 됐다하니 유지할 정령력조차 없었다는 소리.
본인의 정령력을 키우는 것이 아닌, 마치 포션처럼 정령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비상용으로 몇 개 챙겨둬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다.
‘언제까지 흙덩이의 기운에 의지할 순 없지.’
흙덩이는 불릿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계약조건에도 없는, 자신의 기운을 소모해서 그를 구해주고 있었다.
정령이 인간세상에서 모으는 기운은 어디까지나 정령 그 자체가 진화하기 위한 수단.
자신의 기운을 소모할 필요가 없음에도 흙덩이는 불릿에 대한 호감 하나만으로 소중한 기운을 사용했던 것이다.
“하지만 마정석으로 경지를 높이는 것은 한계가 있지 않아? 특히 최하급으로는….”
마정석이 마나를 다루는 이들에게 보물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마정석의 등급에 따라 한계가 있었다.
최하급이 왜 최하급이겠는가? 성능도, 가격도 가장 아래에 있으니 최하급이라 불리는 것이다.
지금 불릿이 경지를 높이려면 적어도 하급의 마정석이 여러 개, 아니면 하급 마물에게서 나온 순도 높은 마정석이 필요했다.
“상관없소. 회복용으로 구비해두려는 것이니까.”
그러나 저러한 사항들은 세상에 흔히 알려진 사실. 불릿에겐 가문비전의 비술이 있었다.
그것도 한계가 있긴 하지만 누구나 아는 방법보단 훨씬 나았다.
이유야 어찌됐든 모든 마정석을 소모했기에 새로이 구해야한 상황.
토벌대의 보상정책이 시기적절하게 들어맞는 것이었다.
“그으래? 뭐, 네가 그렇다면 나야 상관없지만…, 쓸 돈은 남겨두라고?”
용병들은 대책 없이 사는 이들이 없기에 자동적으로 튀어나온 조언.
불릿이 그러한 사람이 아님을 알면서도 걱정이 되니 자기도 모르게 그러한 말이 나왔다.
“걱정해주어 고맙소.”
“그래그래! 그렇게 고마워하란 말이야! 나 아니면 대체 누가 널 걱정해주겠어?”
‘…흙덩이가?’
흙덩이라면 그 누구보다 불릿을 걱정해주리라.
뭐, 사람은 아니니 예외로 쳐줄 수는 있겠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대화를 나누며 불릿이 회복될 때까지 며칠의 시간이 흐르게 되었다.
* * *
우우웅…
객실에서 정령력을 돌리며 신체를 점검하던 불릿은 포션의 효능으로 인해 내상이 거의 다 나아가자 이제 떠날 시기가 됐음을 깨달았다.
언제라도 출발할 수 있도록 불릿은 미리 짐을 꾸리고 있었는데, 누군가 그의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203호 볼레트 씨! 거, 성에서 사람이 나왔는데 좀 만나보쇼!”
“알겠소, 조금만 기다리시오.”
점원에게 대꾸한 불릿은 짐을 마무리하고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끼익-, 끼익-.
“여기오, 볼레트 경.”
“음? 카를로스 경?”
불릿이 아래층으로 내려서자 그곳엔 물로 입을 축이며 기다리던 기사 한 명이 있었다.
성에서 보았던 정복차림이 아닌 사복차림이었는데, 불릿은 짤그락거리는 소리를 통해 그가 속에는 체인메일을 걸쳤음을 알아챘다.
‘쓸 만한 인물이란 말이야.’
사복 안에까지 갑옷을 입기란 꺼려지는 일이다. 론 타로 왕국은 연합체에 속해있기에 다른 나라의 습격을 받을 일도 없었고, 근래 최대 골칫거리였던 하급 마물떼도 처리했기에 저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기사로서, 군인 된 도리로써 저렇게 기본에 충실한자가 있으면 영지민과 이곳을 오가는 용병, 상인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법이다.
‘하락한 신뢰를 저런 자로 채우려는 것인가?’
난이도 측정이 잘못되어 희생자가 발생해 용병길드는 물론 이곳을 방문하는 상인들에게서도 신용이 깎였다.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겠으나 당장은 손해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런 점을 저런 숙련된 모범군인을 대중에 내보여 은근히 ‘우리는 언제나 위험에 대비한다.’는 것을 어필한다.
불릿이 보기에 이것은 철저히 계산된 행동.
“이곳까지 어쩐 일이시오?”
“토벌에 관한 보상 건으로 찾아뵙게 되었소.”
그런 문제라면 굳이 기사단장인 카를로스가 나설 필요는 없었다.
이로써 용병과 상인들에게 기사단장이 직접 발로 뛰어다닌다는 것을 어필하려는 의도임을 분명히 할 수 있었다.
“보상은 금전과 마정석으로 지급이 가능하며 마정석을 선택하실 경우 금전으로 받는 것보다 비율이 적어지오.”
마정석은 수요가 많다. 굳이 마법사나 정령사 등의 사람들이 경지를 키우는 것 외에도 각종 마법진이나 마법물품에도 사용된다.
언제나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적으니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었다.
영지 차원에서도 여유분을 구비해둬야 하는데 불릿에게 그것을 배당하려면 활약도가 높은 불릿에겐 많은 수를 양보해야 했으니 이러한 조건을 내건 것이다.
성으로 직접 불러들이지 않은 점, 그리고 내건 조건이 활약도에 비해 낮게 책정된 점에서 영주가 자신에게 흥미가 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야 본인이야 고맙게 여기겠소.’
용병으로서 이름을 날리는 것과 귀족에게 주시 받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알아서 나가 떨어주니 불릿으로선 고마울 따름. 약간 기분 나쁜 거야 가볍게 날려버릴 수 있었다.
어차피 많은 돈이 필요 없는 불릿은 마정석을 선택했다.
“마정석으로 부탁드리오.”
“마물을 제외한 대부분의 몬스터가 하급이기에 마정석 또한 최하급으로 구성될 것이오. 하급도 약간이나마 있겠으나 그 차이가 크진 않을 것이니 유념하시길.”
영주와 달리 카를로스는 아직도 불릿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기에 그에게 충고를 건넸고, 불릿 또한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카를로스를 돌려보냈다.
* * *
불릿은 마정석 8, 금전2, 8:2비율로 토벌보상을 받아냈다.
나중에 알아보니 올리비아는 금전으로만 받았다고 하는데, 그녀의 경지를 생각하면 최하급마정석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불릿이 객실에 마정석을 펼쳐놓자 그 양이 꽤나 많았다.
몬스터들을 쓸어내며 모은 마정석의 상당수가 불릿에게 배당되었는데, 그의 역할이 워낙 지대했기에 깎아내었어도 그 정도였던 것이다.
하급 마물의 마정석이 워낙 값져서 그것을 포기함으로 인해 양이 많아진 것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후우, 이걸로 힘을 기르면 되겠군.”
이젠 경지가 어느 지점을 지났기에 효율이 낮아졌으나 가문의 비술을 적용한다면 최하급의 마정석일지라도 효과를 볼 수 있으리라.
그가 펼쳐놓은 마정석을 집어 들고 연공에 들어서려하자 옆에서 덜그럭하는 소리가 들렸다.
달카닥.
“음…?”
눈을 감으려던 찰나에 소리가 나자 산통이 깨진 불릿이 아미를 살짝 찌푸리며 쳐다보자 그곳엔 소환해두었던 흙덩이가 있었다.
흙덩이는 바닥에서 마정석 하나를 집어 들고 있었는데, 딱히 명령을 내린 것도 아닌데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흙덩이여, 본인은 마정석을 통해 더욱 강해져야하네. 자네에겐 필요 없는 것이니 도로 내려놓게나.”
그의 말에 흙덩이가 애달픈 눈으로 빤히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 나 하나만 줘.
예상치 못한 발언. 순간 불릿은 이해를 하지 못해 다시금 물었다.
“방금 뭐라고 했나?”
- 나도 줘. 이거.
“마정석을 달라는 말인가?”
- 응. 마정석, 나도 줘.
대체 정령이 마정석으로 무얼 한다고 저러는 걸까? 정령이 마정석을 통해 강해졌다는 소리, 불릿은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다.
만일 그런 일이 가능했다면 대륙 최강은 정령사가 차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러한 일은 불가능했고, 정령사는 오직 선천적인 재능에 좌우됐기에 친화력이 없으면 발전자체가 불가능했다.
친화력이 있어야 정령력을 쌓을 수 있었고, 정령력을 쌓는 일은 친화력과는 별개의 문제.
두 개나 되는 벽을 넘어서야 경지를 높일 수 있었기에 대륙에서 그토록 정령사가 희귀했던 것이다.
“흙덩이여, 그것은 자네에게 소용이 없다네. 본인이 마정석을 통해 강해지는 것을 보고 그러는 것 같은데, 소용없네.”
아직 흙덩이가 어린아이와 같다는 점을 상기한 불릿은 흙덩이가 또 다시 자신을 보고 따라한다 하려 생각하고선 나긋하게 달랬다.
그러나 흙덩이는 고개를 저으며 또박또박 말했다.
- 싫어. 줘. 나도 줘.
“끄응…….”
지식인들에게 있어 제일 골치 아픈 일은 어려운 문제나 힘든 상황이 아니라 이처럼 어리광부리는 아이가 아닐까?
“대체 정령이 왜….”
아, 다시 말하지만 흙덩이는 사람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불릿에 의해 소환된 존재, 정령이었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반갑습니다.
밤 12시에 또 뵙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