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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정령사-44화 (44/241)

00044  마물 토벌대  =========================================================================

탁탁탁탁-

일정한 보폭으로 달리던 올리비아는 불릿이 돌벽을 일으켜 세울 때까지 마물을 향해 달려갔다.

‘으으, 징그럽군.’

온갖 기운과 생명체를 먹어치우며 덩치를 키운 하급 마물은 골격이 뒤틀려 비위가 상할 정도였다.

게다가 마물이 씻을 리도 없었으니 악취 또한 풍겼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꺼려할 작전을 그녀가 받아들인 이유는 작전의 제안자가 불릿이었기 때문이다.

‘볼레트….’

그녀가 불릿에 대한 상념을 이어갈 새도 없이 눈앞에 돌벽이 솟아났다.

드드득-

불릿이 처음 고안했던 돌벽의 크기는 본래 2미터였다. 그것이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 위해 줄어들어 1미터가 되어 있었다.

사실 1미터만 되어도 뛰어넘기 조금 버거운 높이. 하지만 과연 그녀라고 할까, 잽싸게 그녀가 돌벽을 밟고 올라타자 곧바로 다음 돌벽이 치솟았다.

드드득-

드득, 드드드드득!

그러면서 연속해서 펼쳐지는 돌벽의 징검다리.

마물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다른 곳에도 돌벽을 소환해야 했던 불릿은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비틀-

“크윽, 커헉.”

- 괜찮아? 응?

그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면서도 걱정스러운지 불릿에게 물음을 건네는 흙덩이에게 불릿은 턱짓으로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는 아껴뒀던 마정석까지 모조리 사용하여 정령력을 회복하며 돌벽을 소환했는데,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마물이 알아차렸는지 포효를 내질렀다.

- 콰우우!

쩌렁쩌렁 울리는 마물의 포효에 잠시 전투가 중단되고 모두가 그쪽을 바라보았다.

촤악!

“크아악!”

“커헉….”

인간들이 마물을 바라보는 순간, 광기에 물든 몬스터들은 이때다 싶었는지 물고 뜯고 할퀴며 사정없이 인간들을 몰아붙였다.

피해가 속출하는 사이, 놈의 거대한 동체에 올리비아가 도달했다.

“히야앗!”

- 콰우?

그녀가 비명과 같은 짧막한 기합을 내며 점프하자 놈이 이를 알아채고 손으로 올리비아를 낚아채려 했다.

“흙덩이! 놈의 얼굴에 쌍주먹 쾅!”

- …칫. 쾅.

무언가 반응이 이상했지만 흙덩이의 조막만한 주먹이 마물의 얼굴에 명중했다.

퍽.

- 크르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명중한 흙덩이의 공격에도 마물은 별다른 타격이 없는지 얼굴을 긁적였다.

그러나 이 공격을 통해 올리비아는 간신히 놈의 동체에 올라탔는데, 이를 통해 마물이 그녀의 존재를 확연히 알아채게 되었다.

- 콰아! 콰아악!

마물이 발광을 하며 그녀를 떼어내려 몸을 흔들어대자 올리비아는 째지는 비명을 지르며 악소리를 냈다.

“꺄악! 꺄아악!”

떨어질까 싶어 혐오했던 괴물의 몸에 바싹 달라붙었으나, 이대로 계속 된다면 그녀는 바닥으로 추락해 놈에게 밟혀버릴지도 몰랐다.

“전군! 돌격하라!”

“와아아!!”

불릿이 고개를 팩하니 돌려 확인하니, 함성의 주인공은 카를로스와 그의 기사단원들이었다.

공포에 질린 말들을 내팽겨 치고 마물을 향해 돌진하는 그들의 검에서 어렴풋이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저것이 익스퍼트의 경지에 올라서야 간신히 발현할 수 있다는 기술, 마나소드였던 것이다.

마물도 이것에는 긴장했는지 자신의 몸에 매달린 올리비아도 잊고서 기사들을 상대하기에 바빴다.

쾅! 투쾅!

콰아앙-!

“크악!”

“절대 물러서지 마라!”

여태까지 몸을 사리던 것과는 다르게 죽는 자가 속출함에도 기사들은 물러서지 않았는데, 거기까지 신경 쓸 시간이 없는 불릿이었다.

“올리비아! 지금이오! 어서, 빨리 올라가시오!”

불릿의 외침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올리비아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비틀비틀 놈의 어깨를 향해 기어 올라갔다.

자세가 마치 까만색 벌레를 연상시켰으나 그녀는 구슬땀을 흘리며 최선을 다하는 상황.

그 누구도 그녀를 비웃지 못하는 것이다.

“헉, 헉!”

언제 자신에게 신경이 쏠릴지 모른다는 긴장감과 공포심을 느끼는 높이, 그리고 그보다 더 무서운 마물에게 산채로 먹힐 수도 있다는 원초적 공포.

올리비아는 그 모든 것을 이겨내면서 기어코 마물의 어깨에 올라섰다.

“허억, 허억.”

힐끗 아래를 내려다보니 기사들이 마물을 상대하며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쿵, 쿵-.

그 덕분에 마물의 동체는 사정없이 흔들렸으나 그것은 하체에 한정되었기에 상체에 올라선 올리비아는 한결 멀미가 덜하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힐끗.

- 크르르…

“히익!”

어깨에 올라서자 두터운 가죽으로 인해 무뎠던 감각으로도 무언가 있다는 것을 알아챈 마물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쏠렸다.

이에 기겁한 올리비아가 검을 빼들고 마물의 머리꼭대기, 정수리로 올라서려 도약을 하자 놈이 포효했다.

- 콰아아!

“꺄아아악-!”

“올리비아!!”

바로 코앞에서 터져 나오는 피어에 올리비아의 귀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나왔고, 바닥으로 추락하려는 올리비아를 보며 불릿이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가 닿은 것일까? 고막이 터졌음에도 감기려던 눈이 퍼뜩 뜨이더니 놈의 커다란 귀에 검이 꽂혔다.

푸욱!

- 콰아악! 쿠아악!

마물이 처음 겪는 고통에 발버둥을 치자 밑에 있던 기사들이 마나소드를 휘두르며 시선을 끌려 안간힘을 썼다.

“이쪽이다, 이 괴물아!”

“여기를 보란 말이다!”

“여기야, 여기! 날 보라고 빌어 처먹을 새끼야!!”

그들의 발악이 통한 것인지 마물은 고통에 찔끔하면서도 올리비아 대신에 기사들을 밟아가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끄아악!”

“우릴 봐라, 이 괴물자식아!”

어째서 저렇게까지 희생하며 시선을 끄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으나 불릿과 올리비아에겐 좋은 일이었다.

“히익, 히이익….”

그녀가 아무리 여장부라 할지라도 이런 상황에서까지 냉정을 유지하는 것은 무리였다.

울먹이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 현재 그녀의 최대치였으니 말이다.

지금 올리비아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고 있었다.

‘죽어? 나 여기서 죽는 거야? 이렇게 허무하게?’

쩍 벌어진 괴물의 입, 거기서 터져 나오는 포효는 그녀를 심연의 공포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칼날보다 날카로워 보이는 이빨에 자신이 갈려나간다는 상상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오싹오싹.

‘싫어싫어싫어! 절대 싫어!’

인간이란 남이 죽는 것엔 무감각해도 자신이 죽는 것에 대해선 그 누구보다 민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친지가 죽는 것이 아닌 이상, 그 누가 죽음의 공포를 이겨낼 수 있겠냐, 이 말이다.

“올리비아, 힘내시오!”

자신을 부르는 외침에 올리비아는 대롱대롱 매달린 상태에서 그를 바라보았다.

“히끅, 히끅.”

자신을 안심시켜주는 목소리에 울음이 터져나오려하자 올리비아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빨리하고 끝내면 돼, 빨리, 빨리!’

그러면서 그녀는 마물의 두꺼운 귀에서 검을 빼내며 그 반동으로 날아갔다.

쉬이익-!

“크윽, 올리비아!”

불릿의 시선에 포착된 올리비아는 너무도 위태로워 보였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방심한 놈의 머리까지 단숨에 도약해 이마를 꿰뚫는 것이었다.

강대한 적을 상대할 때에는 언제나 빈틈을 노려야 했고, 그런 빈틈은 여러 번 나는 것이 아니었다.

“뭔가, 뭔가 방법을 찾아내야한다!”

대롱대롱 매달린 올리비아가 놈의 움직임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은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웠다.

저 멍청한 하급 마물의 시선이 기사들의 희생으로 잠시 미뤄졌지만 그게 언제까지고 이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도 기사단원이 죽어갈 때마다 흘깃흘깃 옆으로 향하는 마물의 눈길에 심장이 덜컹하거늘, 자신이라도 무언가 해내야 하는 순간이었다.

그가 방법을 강구해내고 있을 때, 올리비아가 갑자기 이상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어엇!”

올리비아는 마물의 귀에서 검을 뽑더니 그대로 박차 날아가 마물의 안면이 위치한 앞을 향했던 것이다!

그러나 마물은 눈치를 보고 있던 와중에 시야의 옆에 무언가 지나치자 고개를 슬쩍 피했다.

이에 따라 올리비아는 바닥에 추락하거나 놈의 손에 붙잡힐 위기에 처했다.

“흙덩이여, 약한 강도로 주먹 쾅을 날려 올리비아를 마물에게로 던지게!”

더 이상 무언가를 할 만한 정령력은 남아있지 않았다.

대량의 정령력을 소모해 탈진상태에서도 그녀가 걱정되어 정신을 붙잡던 중, 쥐어짜낸 정령력은 제일 기초적인 기술은 주먹 쾅 밖에 펼칠 수 없었던 것이다.

- 발판?

“그래, 어서 빨리!”

얼마나 피곤했는지 발판이란 단어를 떠올리지 못해 주먹 쾅을 약하게 날리라던 불릿에게 흙덩이가 되묻자 그답지 않게 재촉했다.

- 쾅.

투확!

이번에 쏘아진 흙덩이의 손은 기존과는 다르게 주먹형태가 아닌 손바닥 모양으로 쏘아졌다.

공중에 붕 떠있던 상태인 올리비아는 자신이 있는 쪽으로 갈색의 무언가가 쏘아지자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불릿의 몸이 앞으로 기울고 있는 장면이 보였었는데, 그 와중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흔드니 그녀는 그것이 불릿의 마지막 서포트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챠핫!”

올리비아는 몸을 있는 대로 뒤틀어 빙글 돌았는데, 흙덩이가 쏘아올린 손바닥을 박차고 마물의 이마를 향해 날아올랐다.

쒜애액-

“죽어, 이 나쁜 자식아!”

- 크락!

마물이 더 이상 기사들을 상대하지 않고 자신의 눈앞을 날아다니는 올리비아를 잡으려 모기를 잡듯 손뼉을 쳤다.

파아아아앙!

그녀는 아슬아슬하게 놈의 공격을 피했는데, 놈의 입장에서 보면 올리비아가 바로 코앞에 있다 보니 원근감을 착각해 헛손질을 한 것이다.

예상외의 행운에 더불어 놈의 손뼉은 풍압을 일으켜 올리비아가 날아가는 데에 추진력을 보태주었다.

“히야아앗!!”

푸우우욱-!

그녀가 목이 째져라 외치며 검을 쑤셔 박자 질기고 단단한 거죽과는 어울리지 않게 쑤욱 잘도 박혀들었다.

- 콰악, 크아아아아아악!!!!

놈이 미친 듯이 고개를 흔들며 발광하자 올리비아도 사정없이 흔들렸지만 이번에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고 견뎌냈다.

그러다 마물은 갑자기 부르르 떨더니 경련을 일으키며 뒤로 넘어갔다.

“꺄아아아악!!”

쿠우우우웅-.

사방으로 먼지를 일으키며 거대한 진동이 울리자 전장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광기에 빠졌던 몬스터들조차 동작을 멈추니 방금 전까지 혈투가 벌어지던 그곳이 맞는지 의심스런 상황.

몬스터들이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자 이때다 싶었는지 카를로스가 피투성이인 상태로 크게 외쳤다.

“몬스터를 섬멸하라! 기껏해야 하급 몬스터, 광폭화도 풀렸으니 지금이 기회다!”

“와아! 죽여라!”

“이 개새끼가, 알터를 병신으로 만들어?!”

“씨팔, 역전승이다! 내가 다 죽여주마, 새끼들아!!!”

거의 벼랑 끝까지 밀렸던 한이었는지 용병과 병사, 기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몬스터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사실 몬스터들이 위협적이었던 것은 하급 마물의 영향으로 토벌대원들이 위축되어 제 실력을 내지 못했던 것도 있고, 광폭화로 인해 파상적인 공세를 가해서이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죄다 하급 몬스터이기에 그들이 상대하지 못할 이유가 없던 것.

어디까지나 하급 마물 때문이지 몬스터들이 무서운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이 몬스터를 학살하는 사이, 마물의 거체를 쿠션삼아 착지했던 올리비아가 불릿을 향해 뛰어왔다.

“볼레트! 우리가 이겼어!”

얼마나 기뻤는지 마물의 더러운 혈흔이 가득했는데도 혐오스러움 없이 폴짝폴짝 뛰며 다가왔다.

“볼레트! 어딨어?! 볼레트!”

그녀는 불릿이 보이질 않자 불안한 생각이 들었으나 애써 고개를 저으며 그를 찾았다.

그러다 바닥에 쓰러진 청년의 옆에 누런 빛깔의 미소녀가 무릎을 꿇고 앉아있자 그곳으로 달려갔다.

“설마, 설마….”

올리비아는 마지막 기억을 더듬으면서도 불릿이 쓰러졌다 생각하기 싫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간 그곳엔 불릿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는 청년과 그를 지키는 흙덩이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흙덩이는 무릎을 꿇은 상태로 연신 불릿을 쓰다듬었는데, 흙덩이의 손은 미약한 빛을 발하며 입술이 달싹이고 있었다.

- 아프지 마, 아프지 마…

그녀의 시선엔 흙덩이라는 얄밉던 정령이 매우 슬픈 기색으로 조심스레 불릿의 몸을 어루만지는 것으로 보였다.

손에서 미약한 빛이 새어나오지만, 그것이 어떤 효과를 지녔는지 올리비아는 잘 몰랐다.

물의 정령이 치료를 한다는 것은 알지만 땅의 정령에 대해선 알려진 정보가 많이 없어서 그랬다.

“꼬맹이….”

올리비아의 중얼거림에 흙덩이가 천천히 시선을 돌렸는데, 순간 올리비아는 숨이 턱 막혔다.

- ……

그녀는 흙덩이의 말을 들을 수는 없었으나 지금 흙덩이가 어떤 심정인지 알 것 같았다.

그동안 무표정하고 싸가지 없던 것과는 다르게, 지금 이 순간 흙덩이의 표정은 마치 인간과도 같았다.

소중한 사람이 다쳐 너무도 비통한 마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흙덩이에게 대체 뭐라고 하면 좋을까?

흙덩이는 쓰러진 불릿을 중심에 두고 올리비아와 대치하고 있다가 몸이 점차 투명해지더니 이내 사라져버렸다.

============================ 작품 후기 ============================

추천, 선작 감사합니다!

12시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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