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정령사-43화 (43/241)

00043  마물 토벌대  =========================================================================

파캉!

촤악, 팅, 빠각!

절로 소름이 돋는, 하나의 생명이 죽어가는 소리가 난무하는 전장에 전사들의 함성이 울려 퍼진다.

“으아아!”

광기에 물들어 몸을 사리지 않는 몬스터들의 파상공세에 초반의 팽팽함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취익!”

뿌각-!

힘줄이 울긋불긋 돋아난 오크의 두터운 팔에 따라 궤적을 만들며 내려쳐진 돌도끼.

원시적인 무기에 방심한 병사는 오크의 무서움을 잘 몰랐던 것인지, 그것을 막으려고 창대를 들었다가 그대로 찍혀버렸다.

와자작-

창대는 부서지고, 병사의 안면은 함몰되어 팔을 휘저으며 버둥댄다.

그 병사에겐 불행한 점이, 차라리 즉사했으면 고통 없이 가련만 뇌와 척수는 다치지 않았기에 숨을 쉴 수 없는 고통에 부르르 떨어야 했다.

병사의 고통을 알았을까, 오크는 재차 자신의 돌도끼를 들어 회생의 가능성이 없는 병사의 목숨을 끊어주었다.

빠작-, 빠작-, 빠작-.

이미 죽었음에도 거듭 내려쳐진 돌도끼에 병사의 시체는 잘 다져진 고깃덩이가 되어 전장을 나뒹굴게 되었다.

“취익, 취이익! 크아아아아!!”

“우어어엉!”

“끼아아아악!!”

오크의 광기 섞인 포효에 주변의 몬스터들도 뒤따라 기괴한 울음을 토해낸다.

그리고 이 끔찍한 장면과 광기에 짓눌린 인간들은 점차 뒷걸음질을 치며 불릿이 세워둔 바리케이드(돌벽)에서도 물러나기 시작했다.

“안 돼! 뒤로 물러서지 마라! 벽을 사수하라!”

전황을 살피며 용병과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리던 한 기사가 목청이 찢어져라 외쳤으나 아무도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씨발, 얘기가 다르잖아! 마물이랑 상대하지 않는다며!”

“엿 같네. 모, 몸이 말을 안 들어. 제기랄!”

“으악! 살려, 커헉! 부그르르르…”

실제 몬스터들에게 죽는 사람은 적었다.

그러나 매우 끔찍하고 처절하게 죽어나가는 그들에게서 남은 전사들도 죽음의 기운을 스멀스멀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저 멀리서 자신들을 주시하며 혀를 핥는 거대한 동체의 괴물.

“안되겠다, 기사단을 투입하도록.”

“단장님, 후퇴하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지금은 후일을 도모해야 할 때입니다.”

기사들은 차마 대놓고 말을 하진 못했으나 그들 또한 공포가 기어 나오려던 참이었다.

그것을 억누르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몬스터 사냥의 전문가라는 용병들이 저리도 겁을 집어먹으니 덩달아 사기가 저하될 수밖에 없었다.

카를로스가 흘깃 주위를 살펴보니 병사들은 이젠 칼창을 휘두르지도 않았고, 방패에 몸을 의지한 채 용병들을 떠밀고 있었다.

“그게 기사된 자로서 할 소리인가?”

몬스터를 처치하며 나라를 지키고, 부흥시키고 있다는 자부심이 공포 앞에 무너지고 있었다.

카를로스라고 이들보다 훨씬 높은 경지에 도달해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지금 저기를 보십시오. 몬스터를 처리한다 치더라도 도대체 저 마물을 무슨 수로 상대할 것입니까?”

단원 중에 한 명이 검으로 거대한 동체의 마물을 가리켰다.

“고작해야 하급 마물일 뿐이네.”

“그 고작해야 하급일 뿐인 마물에 저희 영지가 위태롭다는 소리십니까?”

“비난하고자 한 소리가 아니란 걸 자네도 알잖은가?”

결국 공포는 상하지위조차도 무너트리려는 기색을 보이게 만들었다.

이대로 놔두면 토벌대가 흔들리다 결국 와해되는 것도 시간문제.

이러한 혼돈의 틈바구니사이에 토벌대의 핵심인물이 끼어들었다.

“아주 나쁜 상황은 아니오.”

“그대는….”

말싸움이 시작되려던 찰나 단원들은 대화에 끼어든 불릿을 쳐다보았고, 그의 옆에 올리비아가 서있자 입을 다물었다.

“볼레트 경, 본 토벌대를 책임지는 자로서 할 말은 아니오나 전황이 좋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소.”

그러나 카를로스의 말에 여전히 고개를 내젓는 불릿.

“다르게 생각해봅시다. 비록 몬스터의 공세에 밀리고 있지만 덕분에 하급 마물에게 다가가기 훨씬 수월해졌지 않았소?”

척.

불릿의 손가락이 향하는 곳을 바라보자 확실히 하급 마물의 주변은 뻥 뚫려있었다.

어째선지 저 괴물의 시선이 이쪽을 향하고 있는 듯했으나 이내 그걸 받아 넘기고 카를로스를 쳐다보는 불릿.

“이러한 전투에선 우두머리를 꺾으면 전황을 뒤집을 수 있소. 애초에 이 모든 결과가 저놈으로 인해 벌어진 것이니 원인을 제거해야한다 생각하오.”

“하지만 저 거대한 동체에 접근하더라도 머리를 공격할 방법이 없소. 발리스타라도 가져오면 모를까, 현재로썬….”

마법사가 있다손 치더라도 상황은 어려웠다.

놈은 꼴에 마물이라고, 하급이지만 마법저항력도 높고 가죽이 질겨 화살공격도 통하질 않았다.

마물은 마계의 생물, 놈들에게 치명타를 가하려면 강력한 물리적 타격, 혹은 정령력이나 신성력(神聖力)을 가미시켜야 했다.

안타깝게도 대륙에서 신성력을 공격에 접목할 수 있는 이는 대주교급 이상만 가능했으니 현실적으론 불가능.

정령사도 흑마법사의 혈전에서 대거 죽어나갔고, 기사는 좀 덜했으나 그래도 많이 죽었다.

카를로스의 시선이 불릿에게 향하니 불릿은 그가 무얼 바라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어떻게든 해볼 터이니 적어도 전선을 뒤로 무르게 만들지 말아보시오. 돌벽을 또 다시 소환하는 것은 무리요.”

가로세로 2미터의 단단한 돌벽, 그것만큼 바리케이드로 적절한 것은 없었다.

마물의 영향을 받은 몬스터들의 공격을 견뎌내려면 나무로 만들어진 나무로는 턱도 없었던 것이다.

이에 어두웠던 기사들의 얼굴이 살짝 밝아졌다. 역시 정령사는 다르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

불릿은 내심 씁쓸함을 느꼈으나 당당하게 내뱉고선 올리비아와 흙덩이를 이끌고 한쪽 구석으로 이동했다.

“뭘 어떻게 하려고?”

둘, 아니 셋만 남게 되자 올리비아는 다짜고짜 불릿에게 궁금증을 토해냈다.

대체 이 상황에서 어떻게 상황을 반전시키려고 그러는 것인지 궁금했던 모양.

“잠시, 작전을 구상해야하오. 미리 말해주자면 당신과 내가 놈을 죽일 것이라는 소리지.”

“뭣?! 그게 무슨 헛소리야!”

올리비아가 여성 특유의 고음으로 소리를 빽 내질렀으나 이미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든 불릿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불릿이 보급상자에 걸터앉자 그녀가 불릿의 어깨를 붙잡으려 했는데, 곁에 있던 흙덩이가 앞으로 막아섰다.

스윽-

“뭐야? 저리 안 비켜?”

- ……

뭐라 입술을 뻥긋거리긴 하는데 금붕어도 아니면서 말하는 사람의 입술모양이 아니었다.

흙덩이는 인간의 문화를 막 배우기 시작했기에 언어를 이해했어도 그들의 신체가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그래도 흙덩이의 반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았기에 올리비아는 입술을 삐죽이며 자신도 어지러이 널려있는 보급상자에 걸터앉았다.

털썩.

“칫, 알았어, 알았어. 방해하지 않으면 될 거 아냐.”

- ……

그제야 흙덩이도 만족했는지 우물거리던 입술을 멈추고 애달픈 눈으로 불릿을 쳐다보며 그가 상념에서 깨어나길 기다리기 시작했다.

‘마물의 약점은 머리, 그 중에서도 이마의 정중앙이다. 이것은 대륙 전체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마물에게서도 마정석이 나온다. 한낱 미물인 고블린에게서도 나오는데 그보다 상위의 존재인 마물이 없겠는가?

다만, 약간 다른 점이 있다면 마물의 근원인 마기가 마정석이라는 것이다.

인간으로 치자면 마나홀이라고 쳐도 무방했다.

‘정확히 타격하지 않으면 마정석에 흠집도 주지 못할 테고, 그렇게 되면 마물 특유의 재생력으로 인해 삽시간에 회복되겠지.’

하급 마물은 그야말로 육체파였다. 저 거대한 동체만 하더라도, 상급 마물 중에서도 일부 개체와 맞먹을 만큼 컸다.

재생력에 관해서는 비교가 될지 모르겠으나, 몬스터 중에서 트롤과도 비견되리라 짐작됐다.

‘제기랄! 물의 정령이라면 단번에 꿰뚫을 수 있었을 텐데!’

물의 정령은 거의 만능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강력하면서도 자유로운 형태의 공격, 치유능력, 탐지까지.

비록 특화된 능력은 치유능력이었지만 못하는 것이 없는 정령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불릿은 대기 중에서 물을 뽑아내 공격할 수 있는 것을 아주 잘 이해하며 애용했던 정령사 중 하나.

중급 정령사라는 한계. 그것을 정교한 컨트롤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었기에 정령과의 교감이 적었음에도 결사대에서 보통 이상은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땅의 정령은 기본적으로 대지와 가까울수록 강하다. 반대로 땅에서 멀어지면 약해지지. 저 하급 마물과는 상성이 나쁘다.’

흙덩이는 땅의 하급 정령이다. 흙덩이가 중급 정령으로 올라서거나 불릿이 중급 정령사가 되지 않는 이상 지금으로썬 이 이상의 발전은 힘들었다.

조금만 더 하면 중급의 경지로 올라설 것도 같았는데, 이게 참 힘들었던 것이다.

문득 불릿의 시선이 올리비아에게로 향했다.

올리비아도 불릿의 시선을 느꼈는지 심각한 상황임에도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올리비아는 제비처럼 날쌘 움직임이 특징이지. 그녀라면 마물의 몸통을 타고 올라설 수 있을 것 같은데….’

구상을 시작하자 곧바로 나오는 연계수단. 불릿은 급박한 전황을 읽어내고선 올리비아를 불러다.

“올리비아, 지금부터 내말 잘 들으시오.”

“어, 뭔데? 들어나 보자.”

- 뭔데?

흙덩이까지 관심을 가지고 불릿을 쳐다보다 한차례 기침을 뱉고서 입을 여는 불릿.

“크흠, 올리비아는 가벼운 스텝과 바람도 가르는 검술이 장점이오. 맞소?”

“흐흥-! 우리 집 검술이 한가락 하지!”

올리비아가 또다시 자신도 모르게 집안얘기를 했지만 불릿은 애써 모른 척해주었다.

“나와 흙덩이가 발판을 마련해주면 그것을 타고 마물의 몸체에 올라타 주어야겠소.”

“히익?!”

저 끔찍한 괴물의 몸에 올라타라는 말에 올리비아가 양손으로 몸을 감싸며 기겁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불릿은 자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이어나갔다.

“당신 말고는 해낼 수 있는 이가 없소. 검사들 중에서 가장 몸놀림이 민첩하고, 나와 호흡이 맞는 이가 또 누가 있겠소?”

적어도 기사급, 익스퍼트는 되어야 마물을 상대해볼 수 있는데 불릿이 보기에 저들은 둔중해서 틀려먹었다.

저런 거대한 동체의 마물을 상대할 때에는 두터운 갑주보다는 날렵하고 재빠른 반사신경이 더 도움이 되었다.

다행히 며칠간 올리비아를 지켜본 불릿의 판단은 이 작전에 그녀만큼 적합한 인물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탈진할 것을 예상하고서도 무리해서 돌벽을 10개나 소환한 것이오.”

주변에 마구 설치된 돌벽. 그것을 통해 마물은 불릿이 새롭게 무언가를 소환하더라도 방심할 것이다.

“오직 마물에게 다가가기 위한 용도로 발판을 소환해줄 터이니 그걸 통해 마물의 동체에 올라타야 하오.”

“으으, 꼭 해야 해? 이건 미친 짓이라고.”

그녀도 여자라고, 용병이지만 혐오스러운 것은 싫은가보다.

불릿은 그런 그녀의 어깨에 두 손을 올리고서 말을 이었다.

덥썩.

“기회는 단 한번 뿐이오. 이 기회를 놓치면 놈에게 우리가 죽을 수도 있고, 영지의 백성들이 고통 받을 것이오.”

“으으음…, 그, 그렇기야하지.”

앳된 얼굴과는 다르게 진지한 불릿의 박력에 올리비아는 점차 설득당하고 있었다.

“놈의 약점은 이마의 정중앙, 만일 마물이 중간에 알아차리더라도 내가 사력을 다해서 막아낼 터이니, 올리비아.”

불릿은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나직이, 그러나 강한 어조로 읊조렸다.

“나는 당신이 꼭 해주었으면 좋겠소. 모두를 위해서.”

불릿의 굳은 의지가 전해졌을까? 올리비아는 머뭇거리면서도 눈알을 굴리더니 이내 답을 주었다.

“으, 응…, 알았어. 어쩔 수 없지….”

허락이 떨어지자 불릿은 그제야 그녀의 어깨에서 손을 떼더니 흙덩이에게도 작전을 설명했다.

“흙덩이여, 놈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돌벽의 형태로 발판을 만들어야하네. 혹 징검다리라고 아는가?”

- 그게 뭐야?

흙덩이는 불릿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있었다. 그러니 처음 듣는 단어가 많은 것도 당연지사.

불릿은 옆에서 고개를 돌리고 있는 올리비아도 들으라는 듯 목소리를 살짝 높여 설명했다.

“징검다리라 함은 띄엄띄엄 놓인 돌덩이 같은 것을 말하는데, 보통 보폭을 크게 벌리거나 뜀박질을 통해 이동하는 수단이지. 자세한 건 나중에. 이해했나?”

- 응. 이렇게 뛰면서 이동, 맞지?

흙덩이가 귀엽게 콩콩 뛰면서 재연해주자 불릿이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칭찬해주었다.

“그래, 아주 잘 이해했네. 올리비아도 잘 들었겠지?”

어느새 고개를 돌렸는지 올리비아가 활활 불타오르는 눈빛을 띠고서 흙덩이를 노려보며 입술을 뗐다.

“아주 잘 이.해.했.어. 그렇지, 요 꼬맹아??”

잠시 올리비아를 쳐다보던 흙덩이는 예의 그 무표정(애달픈)을 유지한 채 손으로 살짝 그녀를 밀쳐내고선 불릿의 뒤에 숨어버렸다.

- 불릿, 쟤 싫어…

“끄응.”

차마 흙덩이의 말을 올리비아에게 전해주지 못한 불릿은 제발 둘이 작전 중에는 싸우지 않길 바랐다.

그리고 둘이 작전을 이해하자 불릿은 지체 않고 올리비아를 출동시켰다.

============================ 작품 후기 ============================

내일도 같은 시각! 저녁 6시와 12시에 올라옵니다.

추천과 선작에 언제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추천도 100이 넘어서 기분이 좋군요.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