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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정령사-40화 (40/241)

00040  마물 토벌대  =========================================================================

짐짓 눈을 흘기며 말하는 올리비아. 골치가 아픈지 불릿은 아미를 짚으며 말을 이었다.

“장난은 그쯤하고, 내일부턴 호흡을 맞출 겸 사냥을 나갈 것이니 채비를 해두시오.”

“…그래, 알았어.”

명령처럼 하는 말이었으나 올리비아는 이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사실 올리비아가 장난을 한 이유도 자신의 아버지가 누군지를 밝히지 않으려 한 것이었고, 불릿은 이미 눈치 빠르게 알아채고 있었다.

상대가 말할 생각이 없음을 확인했기에 본론으로 넘어가 대화를 끝내려한 것이다.

어차피 식사도 거의 끝나갔고, 더 이상 질질 끌어봤자 남는 것도 없었다.

* * *

“여어, 오랜만이야?”

“……셀이로구려.”

“거참, 오랜만에 들어도 말투는 여전히 삭았구나.”

“셀, 안녕이다?”

“토 나오는 말투는 집어치우라고.”

“쳇.”

일주일이 안 되어 토벌령이 떨어지자 호흡을 맞추며 영지로 몰려드는 몬스터를 사냥하던 불릿과 올리비아는 하던 것을 멈추고 토벌대에 지원하러 왔다.

그리고 거기서 셀과 그 뒤로 늘어서서 아는 체를 하는 용병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영지까지 오는 길에 동행했던 용병들이군. 셀과 팀을 이룬 것이오?”

“아, 그게 말이야.”

불릿의 물음에 셀은 작게 쓴웃음을 보이며 용병들을 데리고 왔다.

“자자, 어서들 오라고.”

“…오랜만이오.”

“기다리고 있었다우.”

“이번에도 함께 힘내봅시다!”

그 광경에 불릿은 가만히 있었는데, 올리비아가 앞으로 나와 셀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설마 스토커처럼 우릴 기다렸던 거야?”

초짜 용병인 불릿은 몰랐으나 토벌대에 용병을 받는 것 자체는 며칠 전부터 이루어졌었다.

단지 불릿과 단둘이 있고 싶었던 올리비아가 정보를 늦게 전해줬을 뿐이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아는 올리비아는 그들이 여태껏 마물사냥에 안 나서고 영지에 죽치고 있던 것을 깨달은 것이다.

“워워, 진정하라고. 스토커라니, 말이 심하군.”

“그게 아니면? 말 돌리지 말라고? 짜증나니까.”

이에 졌다는 듯 셀이 두 손을 들며 한숨을 내쉰다.

“어휴, 성질머리하고는. 그럼 이 난리바구니에서 너희 같은 실력자를 기다리지 우리끼리 나가냐? 막말로, 우린 그래도 아예 모르는 사이가 아니잖나?”

“그건 그렇지만….”

안면이 있기에 완전히 모른 척하기도 조금 그랬다. 더구나 다른 용병들은 몰라도 셀에게는 딱히 나쁜 감정이 없었다.

그런 셀이 다른 용병들을 이끌고 있었으니 매정하게 내치기도 곤란한 상황.

그때, 이번엔 불릿이 나섰다.

“같은 동지끼리 왜 배척하려는 것이지? 비록 우리에게 앙금이 있었을지언정 이번 기회에 모두 털어버리고 사악한 마물을 몰아내봅시다.”

불릿의 말에 올리비아도 별 수 없는 듯 살짝 뒤로 물러서며 중얼거렸다.

“칫, 맘대로 해. 대신 너는 나랑 파트너란 걸 잊지 마.”

“우리가 호흡을 맞췄던 것은 이 때를 위해서가 아니오?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다 알아서 할 터이니.”

그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셀이 묘한 눈길로 둘을 훑어보다 이내 신경을 끄고 용병들을 불러 모았다.

“이놈들아! 볼레트와 올리비아가 허락했다! 쫄아서 움츠리지 말고 살갑게 대하라고!”

- 오!

동시에 외치는 소리에 주변의 사람들이 슬쩍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어휴, 쪽팔리게. 얘네는 부끄러운 것도 없어.”

올리비아가 한소리를 해도 실력자와 함께하게 된 용병들은 그저 기뻐할 뿐이었다.

“거기, 용병들. 무슨 일이지?”

소란스러움이 지속되자 업무를 보던 기사 한 명이 다가와 일행에게 말을 걸었다.

“좋은 팀을 꾸리게 되어 기쁜 나머지 그랬습니다. 이놈들아, 좀 닥치고 있어봐라, 어르신과 대화를 못 하겠잖냐!”

“네놈이 제일 시끄럽다. 지금 영지가 어떤 분위기인데 축제처럼 들떠있는 것이냐!”

셀이 나서서 기사와 대면했으나 대놓고 무시하는 처사에 주변의 분위기가 싸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래서 천한 잡것들은 안 된단 말이다! 너희 같은 버러지들이 헤집고 다니니 마물이 깨어난 것이 아니더냐!”

근거 없는 유언비어였으나 영주에게 고용된 몸인 용병들이 영주를 대변하는 기사에게 뭐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우렁찬 기사의 말에 불릿은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것을 보았는지 기사가 불릿에게 삿대질을 한다.

“네놈은 불만이라도 있는 것이냐? 이리와 보거라!”

기사의 말에 앞으로 나서려던 불릿은 올리비아가 손으로 옷깃을 잡자 슬쩍 고개를 돌렸다.

올리비아가 고개를 저으며 기사를 노려보자 불릿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고서 옷깃을 놓았다.

조금 붉어진 올리비아의 얼굴을 보며 불릿은 나직이 읊조렸다.

“걱정 마시오. 대화는 대화로 이끌어나가면 되는 법이니.”

불릿은 올리비아가 자신이 화를 참지 못하고 나서는 거라 착각한 거라 생각해 자기 나름대로 안심시킨 후 앞으로 나섰다.

뚜벅, 뚜벅.

척.

“마물은 마계의 생물. 대륙에 출현하는 마물은 대개 하급 마물이며 놈들이 나타나는 이유로는 차원의 틈이 벌어져 그곳에서 출몰하거나 계약, 또는 소환에 의해 발생하오.”

“그, 그래서 어쨌단 말이지?”

“글쎄올시다, 당신이야말로 뭘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소. 영주님이 친히 우리를 고용하셨거늘 당신은 우릴 믿지 않아보이오.”

“당연한 말이 아닌가! 하찮은 용병을 어찌 믿는단 말이더냐!”

“하찮다라….”

자존심 높은 귀족과 기사들이 흔히 하는 착각. 용병들이 하찮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대부분의 전쟁에 용병이 참가하지 않은 경우가 없었고, 반란을 일으킬 때도 지대한 역할을 했으며 몬스터사냥에 있어선 기사들보다 한층 뛰어남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일부 용병들은 그 무력이 경천동지할 만큼 위명이 자자했다.

바로 대륙을 구한 6인의 영웅처럼 말이다.

비록 임시였지만 불릿 또한 용병. 그는 눈앞에 있는 기사의 어리석음을 일깨워주고 싶었다.

“땅의 하급 정령이여,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낼지어다.”

우우웅-

그 말과 동시에 땅이 솟아나는가 싶더니 이내 형체를 맺고, 황토색 피부의 미소녀가 나타났다.

- …빨리 좀 불러줘.

“크흠, 이리 오시게.”

흙덩이의 불평에 불릿은 자신의 곁으로 흙덩이를 불러들여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래주었다.

그 모습을 목격한 모든 이들이 경악하는 것은 당연지사.

“정령사!!”

기사는 깜짝 놀랐는지 뒤로 물러서며 소리쳤고, 주변의 용병들도 덩달아 목소리가 높아졌다.

“우왁, 씨발! 정령사다!”

“뭐? 토벌대에 정령사가 끼어있다고?”

“그럼 이번 몬스터사냥은 존나 안전하겠네?”

“지랄하네 븅신이. 저 정령사 주위만 안전하겠지. 싸우다가 한눈팔지나 마라.”

모두가 감탄하는 가운데 불릿이 약간 거만하게 입을 떼었다.

“하찮은 용병의 솜씨가 어떻소? 이래도 당신 주군의 판단이 영 못미덥소?”

“아, 아니, 그게 그러니까….”

정령사는 어딜 가나 환영받는다. 더구나 현 대륙은 흑마법사와의 전쟁으로 인해 마법사와 정령사가 극도로 부족해진 상황.

이런 마물토벌에선 그야말로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할 존재였던 것이다.

그러니 쌔고 쌘 어중간한 기사보다는 하급의 경지나마 불릿의 위치가 더 높았다.

그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저 멀리서 다른 기사무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장면을 목격한 눈앞의 기사는 허둥대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빅터 와이즈, 어찌 된 일인가?”

“카를로스 경…, 그게… 저…….”

“어찌 된 일이냐고 묻고 있네만.”

카를로스라 불린 기사가 빅터 와이즈라 불린 눈앞의 기사를 다그치자 빅터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쩔쩔매었다.

이 상황을 타개하고자 다른 용병들이 지켜만 보고 있을 때, 불릿이 한발 앞으로 나섰다.

“처음 뵙겠소, 카를로스 경. 제가 설명해도 되겠소?”

“…말해보시오, 땅의 하급 정령사, 볼레트 경.”

불릿이 정령사인 것을 알게 되자 기사 또한 예우를 갖추며 존대해주는 모습이었다.

“빅터 와이즈의 잘못을 여기서 드러내면 용병들의 불만이 생겨날 수 있소. 비록 말실수를 하였으나 아직 정식기사가 아니란 점을 보아 용서해주는 것이 어떻소?”

불릿은 귀족이다. 기사가 어떤 형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모르면 그것은 바보일 것이다.

빅터는 기사라고 부르기엔 무리가 있는, 말하자면 수습생인 기사들의 종자였다.

종자들이 기사가 되려면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포기하거나 끝내 종자로 인생을 마치는 이들이 수두룩했기에 종자는 용병들과 별 차이도 없던 존재였던 것이다.

거들먹거리기에 얼마나 대단했나 싶던 일행은 그를 한심하게 쳐다보았고, 멀리서 지켜보던 용병들은 이들의 대화소리가 들리진 않았으나 사태가 어찌 흘러가나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용서라…, 당신은 괜찮은 것이오?”

카를로스의 시선이 불릿이 아닌 뒤편으로 향하는 것이 보였으나 이상하게 여겨질 뿐, 불릿이 무언가를 알아낼 순 없었다.

“상관없소. 사람이 살다보면 말실수도 할 수 있는 것이니. 다만 그에게 주의를 주는 것이 좋겠소. 여러모로 문제를 일으킬 것 같군.”

“볼레트 경의 말대로 진행하겠소. 비록 종자이나 기사의 명예가 실추될 것을 염려해준 경에게 감사를 표하오.”

그러면서 고개를 살짝 숙이는 카를로스.

이례적인 상황에 불릿은 내심 당황했다. 자신의 신상정보를 미리 파악한 것과 더불어 ‘경’이라 부르며 존대해주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러한 사과까지.

도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친절한 모습에 이상함을 느끼지 않다면 멍청이일 것이다.

‘이상하군, 이상해. 저 기사의 성품이 곧다고 한들 정도가 있는데, 이건 무슨 행태란 말인가?’

기사의 명예는 주군의 명예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자기절제에 철저해야하며 사과할 상황에서도 상대와 자신의 위치를 비교한 후에야 그 여부를 결정한다.

그런데 이것은 주군보다 작위가 높은 이에게도 행하지 않을 행동이었으니 백작의 기준에서 보자면 미쳤다고 보이는 것이다.

“아, 알겠소. 그러니 그만 고개를 드시오. 주변의 시선이 당신의 주군에게도 영향을 미친다오.”

지나친 친절에 불릿은 자신도 모르게 용병이 생각할 수 없는 말을 내뱉고 말았다.

“……충고 고맙소.”

‘눈치 챘군.’

자신의 신상정보를 파악할 정도로 주시하고 있던 자다. 말실수도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는 뜻인데, 혹여 정체가 드러날까 조바심이 이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카를로스는 주변을 정리한 후 자리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빅터 와이즈, 너는 이 시간부로 다른 잡무를 보는 것으로 하지.”

“네…, 알겠습니다…….”

잔뜩 풀이 죽은 빅터는 고개를 푹 숙이고서 카를로스와 다른 기사들의 뒤를 따라 자리에서 사라졌다.

“여러분! 곧 출발할 것이니 모두 준비해주시기 바랍니다!”

집무를 보던 병사의 외침에 소란스럽던 자리가 정리되기 시작했다.

불릿은 카를로스라는 기사의 시선이 미쳤던 뒤를 슬쩍 돌아봤고, 그곳엔 올리비아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 * *

“키아악!”

“방패병, 앞으로!”

“용병들은 틈을 메꾸어라!”

“캬아아악!”

영지에서 벗어나기 무섭게 일행은 몬스터의 습격을 받았다.

습격은 하급 몬스터들로 이루어졌지만, 마물의 영향을 받아 광기에 찌들어 살가죽이 찢겨지건 말건 우격다짐으로 달려드는 몬스터는 가히 위협적이었다.

일반병사로는 한계가 있어 몬스터사냥의 전문가인 용병들이 없으면 힘겨운 싸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흙덩이여, 전방의 적들을 향해 주먹 쾅!”

- 주먹 쾅…

불릿의 명령에 의해 흙덩이의 조막만한 주먹이 몬스터들의 육체를 꿰뚫기 시작했다.

퍽!

퍼버벅!

“끼에엑!”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지는 몬스터, 그리고 흙덩이의 연사력이 못 미친 나머지 놈들은 올리비아의 검이 빛을 뿌렸다.

촤악!

“핫, 히얏!”

여성 특유의 고음을 내며 놈들의 모가지를 따내는 올리비아는 마치 전장의 여신처럼 아름다웠다.

그렇게 삼십여분간 진행된 전투는 둘의 활약에 의해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다.

“헉, 허억.”

“와 씨팔, 뭐가 이렇게 많냐?”

“방금 고블린 날라댕기는 거 봤냐? 씨발 짭새인 줄 알았다, 그냥!”

전투를 끝마친 용병들이 욕설을 나누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 때 불릿은 차분히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데빌로안까지 이동하며 보았던 몬스터의 상태, 영지에 주둔하며 지냈던 시간. 그리고 지금 보았던 몬스터들까지. 그걸 생각하면 몬스터의 수가 적다.’

============================ 작품 후기 ============================

12시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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