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8 데빌로안 영지 =========================================================================
그러나 크게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자신이 밝히지 않으면 영원히 알려지지 않을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궁금증은 올리비아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는 올리비아야 말로 그 검술은 어떻게 된 것이오?”
“응? 뭘?”
머리에 깍지를 끼고서 걷고 있던 올리비아는 능청스럽게 대하며 잘 못 들었다는 제스쳐를 취했다.
“내 눈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당신의 검술실력은 익스퍼트 바로 아래. 게다가 정통검술을 오랜 시간 연마한 것이 보이더군.”
“……어….”
매우 날카로운 지적에 올리비아는 한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둘은 용병들과 조금 떨어져서 걷고 있었기에 그들의 대화는 용병들에게 들리지 않았으나, 살짝살짝 엿보는 그들의 눈동자에 비춰지는 동작들까지는 숨길 수 없었다.
“제길, 대체 뭐라는 거야?”
“적당히 하라고. 귀찮은 것을 싫어하는 모양이니까.”
“너 같으면 가만히 있을 수 있겠냐?!”
텍스의 중얼거림에 동료가 다독이자 대뜸 화를 낸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텍스는 지금 똥줄이 타는 상황.
가장 큰 잘못을 저질렀었기에 실력자들에게 밉보인다는 것은 앞으로의 여정에서, 그리고 용병계에서도 사장될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보아하니 저들은 자기가 뱉는 말에 자부심이 있는 듯하다. 약속했으니 그대로 진행되겠지.”
셀의 말에 다른 용병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텍스는 손톱을 깨물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셀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에 출발하며 불릿이 내뱉던 말. ‘이전의 무례는 잊을 테니 귀찮게만 굴지마라.’
그 말 덕분에 그들도 정도를 조절하며 아부를 떨었던 것이다.
지나친 아부는 상대방을 귀찮게 한다는 것이 용병들이 머리를 맞대어 도달한 답.
상대가 원한다면 그에 맞춰줘야 하지 않겠느냐, 이 말이다. 그것도 불릿과 올리비아처럼 뛰어난 실력자라면 말이다.
그들이 말이라도 한마디 나쁘게 내뱉으면 그것은 순식간에 소문으로 퍼져 자신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으으, 젠장, 젠장.”
이를 알면서도 텍스는 연신 젠장이라는 욕설을 뱉으며 불안해했고 그나마 한발 물러서 있던 다른 용병들은 그를 보며 혀를 차면서도 불안함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뭐, 뭐라고?”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려고 했으나 경직된 얼굴과 떨리는 목소리가 정확히 짚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됐소. 그렇게까지 티를 내면 내 물을 수가 없잖소. 나중에 알려주고 싶으면 알려주시오.”
궁금하긴 했다. 용병들 중에도 실력을 쌓아 뛰어난 인물이 되었다는 이들을 여럿 듣거나 보아왔다.
그리고 그중의 대표되는 격이 결사대의 리더였던 폭염의 잉켈스.
하지만 불릿에겐 남을 괴롭히는 취미가 없었다. 저렇게 반응하는데 어찌 더 이상 파고들 수 있을까?
상처가 될 수도 있는 것을 굳이 후벼 파면서까지 알고 싶진 않았다.
“으, 응?”
“됐다고 했소. 거의 다 왔으니 조금 더 주의하는 것이 좋겠소.”
“응…. 알았어.”
뭔가 찝찝했는지 개운치 않은 걸로 대답하는 올리비아였지만 불릿은 신경쓰지 않았다.
자신이라도 상대가 내 비밀을 알면서도 그걸 감싸주면 고마우면서도 무슨 수작인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
‘굳이 해결하지 않아도 되고 말이지.’
언제까지 함께할지도 모르는 사이에 그냥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는 것, 그게 바로 처세라는 것이 아닐까?
* * *
그렇게 걷고 걸어 도착한 라 쓰랑과 인접한 영지, 데빌로안에 도착하게 되었다.
“으아, 드디어 도착했다!”
“힘들어 죽겠다….”
다들 앓는 소리와 함께 해냈다는 기쁨을 드러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이 걷는 것에 익숙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피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피곤하군.’
불릿도 이들과 마찬가지로 걷는 것에는 피로함을 감출 생각이 없었는지 뭉친 근육을 풀고 있는 사이, 어느새 용병들의 대변인이 되어버린 셀이 다가왔다.
“볼레트, 그리고 올리비아. 잠시 이야기를 해도 좋을까?”
“또 뭔데?”
귀찮음이 가득 묻어나는 올리비아의 목소리. 그녀 또한 며칠간의 행군이 고됐는지 피부가 푸석해진 것이 보였다.
짜증을 내지 않는 것이 다행일정도.
“흠, 그러고 보니 몬스터의 가죽과 마정석을 배분할 차례로군.”
그녀와는 반대로 이미 예상했다는 듯 계산을 끝마친 불릿. 셀은 진정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뜨며 그를 쳐다보았다.
“뭘 그리 놀라오? 이동하면서 몬스터를 잡았다, 그러면 돈의 분배만이 남는 것이지. 아니 그렇소?”
“맞긴 하다만, 네 나이에 나올 소리는 아니지.”
노련한 용병들은 곧잘 그런 계산을 하며 자신에게 손해될 일을 만들지 않았지만 불릿처럼 새내기 용병이 할 말은 아니었던 것이다.
“얘가 애늙은이야, 애늙은이.”
그리고 옆에 있던 올리비아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젓는다.
“나는 성년이 지났고 아이라 들을 나이도 아니오. 내 나이면 애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은 알기나 하는 것이오?”
“애, 애라구?”
그 말에 얼굴을 붉히는 올리비아.
‘왜 얼굴을 붉히는 거지?’
그녀의 이상행동에 고개를 갸웃하던 불릿은 단순히 피곤해서 그런가보다 여기며 셀에게로 시선을 넘겼다.
“…상인들에게 넘기기 전에 분할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우리의 수는 총 10명이지만 너희는 특히 활약했으니까 수익에서 2할씩 배분하려고 한다.”
“2할? 무리하는 거 아냐?”
올리비아가 깜짝 놀랐다는 듯 중얼거리자 불릿 또한 대답했다.
“다른 동료들이 배신감을 느끼진 않겠소?”
불릿의 말에 또 다시 놀라는 셀. 그러나 이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너는 우리를 동료라고 생각해주는구나. 걱정마라, 저놈들하고는 이미 얘기가 끝났으니까. 오히려 너희가 안 받아주면 우리가 곤란하다고.”
“어째서 그렇지?”
불릿은 아직도 용병의 생태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불릿의 말을 올리비아가 재빨리 낚아챈다.
“줘! 준다니 받아야지. 우리 몫으로 2할씩, 알지? 그럼 어서 처리하고 와! 우리는 여기서 기다릴게.”
그러면서 주변의 거치대에 걸터앉아 다리를 주무른다.
“아, 피곤하다! 뭐해? 빨리 안 다녀오고.”
“흠흠, 알겠다. 볼레트, 너도 여기서 쉬고 있어. 형님이 바람처럼 다녀오도록 하지.”
“나는 금화를 조금만 주고 마정석으로 대신해주시오.”
“그래, 알겠다. 그 편이 우리도 편하지. 근데 네놈 말투는 도저히 적응이 안 되겠다. 그럼 진짜 다녀온다.”
그 말을 끝으로 셀은 나머지 인원을 데리고 짐을 잔뜩 이고서 영지입구에 진을 치고 있는 상인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오크, 고블린, 코볼트 같은 하급 몬스터가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돈이 꽤 나오겠군.’
생각외의 지출로 자금이 말라가던 불릿은 이번 기회에 그것을 채워 넣을 수 있었다.
비록 마정석으로 대신할 생각이었으나 금화도 조금은 받을 테니 당분간 돈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그나저나, 상인들이 벌써부터 냄새를 맡고 몰려들었구나.’
지금 데빌로안 영지는 꽤나 위험한 상태였다. 당장 오는 길만 하더라도 마기에 물들었던 몬스터들에게 몇 번이나 습격당하지 않았던가?
그것을 헤치고 이곳까지 다가와 장사를 하는 상인들의 집념에는 불릿도 질렸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입구에서 장사하는 것을 보니 세금을 아끼려는 모양이군.’
영지에서 장사를 하려면 영주에게 세금을 내야 했다. 대신 영지군에게 보호를 받을 수 있었는데, 이렇게 밖에서 장사를 하면 세금을 아낄 수는 있어도 자기 몸은 자기가 보호해야 했기에 자체적으로 용병을 고용해야 했다.
나가는 돈과 들어오는 돈의 비율을 맞춰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 또한 상인의 능력. 자기 입맛대로 하는 것이다.
‘이곳까지 오면서 부족함을 통감했다. 마정석을 모두 소모하더라도 별 수 없겠군.’
이 정도의 강함으로는 마물과 대치하며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기에 마정석을 통해 한층 더 강해지려고 다짐하는 불릿이었다.
다짐을 마친 불릿은 옆에서 재잘거리는 올리비아에게 말을 건넸다.
“올리비아, 분배를 마치고나면 헤어져야겠소.”
불릿의 말에 깜짝 놀라는 올리비아. 이곳까지 오며 그녀의 당황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던 불릿으로선 조금 신선한 장면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헤, 헤어지겠다니?!”
“으음, 반응이 과한 것 같소.”
원래 알던 사이도 아니고, 데빌로안 영지를 목표로 동행하던 것이 그들의 관계였는데 올리비아의 반응은 마치 연인이 이별을 고한 것과 같은 것이었다.
이상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니 침착한 불릿이지만 주위의 시선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온 목적이 마물토벌 때문이 아니었어?”
현재 데빌로안은 준 전시상태, 전쟁은 아니지만 전쟁에 버금가는 토벌령이 내려져 있었다.
이 위험한 곳에 용병이 오는 목적이라면 단 하나, 토벌령 밖에 없었던 것이다.
“맞긴 하오만….”
“그럼 어차피 토벌대에 속해서 싸우게 될 텐데 뭘 굳이 혼자서 지내려고 그래? 그러지 말고 나랑 같이 하자, 응?”
‘일리 있는 말이군.’
아직 용병으로서의 자세가 잡히지 않은 불릿. 그는 홀로 숲속에 떨어진 이후로 혼자라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들을 보고 동료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인사치레와 같은 것인지라 마음속으론 아직도 고독함을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흑마법사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마물이 나타났으니 한껏 긴장된 상태라 쉬이 남을 믿지 못했나보다.
‘대비하는 하되, 자신을 신뢰하는 이에게까지 의심하는 행위는 품위 없는 짓이지.’
줄곧 자신에게 살갑게 대해주는 올리비아에게는 약간이나마 등을 맡길 수 있으리라 여겨졌다.
이곳까지 오며 치렀던 전투에서도 등을 맡겼는데, 새삼 경계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좋소. 나 또한 올리비아의 검술실력이라면 믿고 등을 맡길 수 있겠소.”
그러면서 당당히 오른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는 불릿.
“나 또한 청하오. 올리비아, 이번 토벌령에서 나와 함께하겠소?”
상대가 믿음과 호의를 보여주었으니 자신 또한 이에 보답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꺼냈던 말.
그런데 올리비아의 상태가 이상했다.
“으, 응…, 자, 잘 부탁해… 요…….”
꼼지락, 꼼지락.
손가락을 어찌할 줄 모르고 만지작대던 올리비아가 달아오른 얼굴을 한쪽 손으로 쓸어 만지며 불릿의 악수를 받았다.
확실히 지금까지 보였던 여장부다운 모습은 아니었기에 불릿도 이상함을 뚜렷이 알 수 있었다.
‘많이 피곤한가보군. 수련을 했다 해도 결국 가녀린 레이디, 보살펴주어야 함이 마땅하도다.’
이상한 부분에서 귀족의 명예,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현하려는 불릿.
그는 어째서 올리바아가 청혼을 받은 소녀처럼 행동하는지 깨닫지 못했다. 그저 저 멀리서 다가오는 셀만을 바라보며 그에게 다가가고 있었을 뿐이었다.
뚜벅!
* * *
“여, 여기가 우리 영지 제일의 여관이야.”
다른 일행들과 떨어져 나온 불릿은 올리비아의 안내에 따라 어느 여관 앞에 도착해 있었다.
‘우리 영지? 이곳을 거점으로 삼은 것인가?’
“…올리비아, 내 경험이 많진 않소만, 원래 용병이 이렇듯 고급스런 숙소에서 머물기도 하오?”
이상한 발언에 의문을 품었으나 그것은 잠시 뒤로 제쳐두고, 확실히 거친 생활을 영위하는 용병이 지내기엔 지금 눈앞에 있는 여관은 지나치게 화려했다.
한눈에 보아도 용병보다는 부귀한 자들이 머무르기 적당해보였기에 불릿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의심할 만한 상황.
올리비아는 내심 당황했는지 허둥대며 변명처럼 말을 잇기 시작했다.
“아, 그게 말이야, 우린 이제 곧 목숨을 건 의뢰를 떠나잖아? 응? 토벌이라고, 얼마나 위험해? 그러니까 언제 죽을지 모르니 잠자는 것만은 투자해야하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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