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7 동행하다 =========================================================================
자신이야 익숙해진 전장이지만 척 봐도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풋내기용병이 어떻게 익숙하다는 듯 자신을 따라다닐 수 있을까?
그것도 단순히 따라다니는 것만이 아니라 적재적소에 공격을 가하거나 오크를 구덩이에 빠트려주었다.
‘제법이란 말이지.’
사실 제법이란 말로도 부족했다. 그녀에게 부족한 한방을 눈앞의 미남자는 갖고 있었으며, 정령의 공격에 딜레이가 생기는 것도 아까웠는지 직접 창으로 찔러대며 오크를 죽이고 있었다.
무서우리만치 용감하며 판단력 또한 좋았다. 어디서 이런 인재가 나타났는지 모를 지경.
‘이 정도의 실력을 지녔으면서 저 바보한테는 왜 대꾸도 못했던 거지?’
그녀는 저 멀리서 허둥지둥 오크의 공격을 피하는 텍스를 쳐다보다 이내 시선을 돌렸다.
비교하기가 미안할 정도로 차이 나는 두 사람. 그녀는 볼레트라는 남자에게 호감이 생기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둘이 활약하는 사이, 나머지 용병들은 오크들의 공세를 막아내는데 여념이 없었다.
죽이는 것은 고사하고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 그나마 돌벽이 있어 무식하게 돌진하는 오크의 움직임을 방해해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볼레트라는 이름의 정령사가 아니었으면 벌써 죽은 이들이 수두룩했을지도 몰랐다.
“아악, 씨발! 뒈졋, 뒈졋!!”
2인 1조, 또는 3인 1조로 인원을 구성해 오크들과 맞서고 있었던 그들은 홀로 떨어져 지랄이란 지랄은 모조리 보여주는 텍스를 한심하게 생각했다.
무슨 용기가 생긴 것인지 혼자서는 이놈들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기를 부려 끝끝내 혼자서 저러고 있었다.
셀은 텍스가 싫었지만 그래도 같은 길을 가는 동료이기에 도와주려 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가관이었다.
“저리 꺼져! 나도 잡을 수 있어!”
그러면서 시선을 어딘가로 던졌었는데, 시선의 끝에는 불릿과 여성용병이 있었다.
그제야 셀은 텍스가 왜 저러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약하다고 조롱하던 놈들이 실은 굉장한 실력을 숨기고 있었기에 분했던 것이리라.
“저 병신이 뒤지려고 환장했지.”
“앞으로 저 새끼랑 다시는 같이 안 다닌다.”
“오크 한 마리 제대로 못 잡으면서 큰소리만 뻥뻥 쳐가지고는…, 그냥 콱 뒤져버리라지.”
옆에서 같이 싸우던 동료들의 말이 점점 심해지자 셀이 나서서 중재했다.
“그만, 아직 전투 중이다. 그리고 텍스는 우리의 동료다. 적어도 여정이 끝난 뒤에나 그러지?”
“셀은 너무 물렁하다고. 이크! 뒈졋, 개새끼야!”
푸칵-
“크락!”
말을 하던 용병은 무기를 휘두르는 오크에게서 황급히 몸을 회피한 후 팔을 베어냈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지는 오크의 팔.
툭.
“오케이! 이제 이놈은 끝이다! 조져!”
“씨발놈이 말하는 도중에…, 하여튼 간에, 셀은 물렁하다고. 새끼가, 때와 장소를 구분해야지.”
셀은 내심 그 용병의 말에 공감했다. 자신이 가질 수 없는 능력에 시기할 수도 있다.
때론 미워하며 뒤에서 욕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전투 때는 전투에만 집중해야 했다.
그것이 용병이고, 성격이 개판인 이들이 즐비하면서도 용병길드가 유지되는 이유 중 하나였다.
할 땐 한다, 이걸 지키지 못한다면 그 용병은 도태되는 길밖에 남지 않는 것이다.
“얼마 안 남았어! 저들이 거의 다 잡았으니 우리도 힘내자고!”
“오!”
용병들의 함성에 몇 남지 않은 오크들이 주춤하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미 골수까지 스며든 마기가 그들의 이성을 좀먹어 후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끔 만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와중에 그들의 틈에 끼지 못하는 이가 있었으니, 텍스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
부웅-!
“으악, 으악!”
오크의 공격은 단순했지만 그가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빠르고 강했다.
한방이라도 맞으면 차가운 바닥에 몸을 눕힐 지경이었기에 그의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된 상태.
“개새끼들, 왜 안 도와주는 거야!”
조를 짜서 대응하자던 제안을 거절한 것은 어디까지나 텍스 본인이다.
그것을 까맣게 망각한 채로 도움의 손길만 바라던 텍스는 기어코 일격을 허용하고야 말았다.
스칵-
“캬악!”
“취익! 취익!
공격을 피하던 중에 등허리에 오크의 공격을 맞고서 바닥에 쓰러지는 텍스.
오크는 동료들이 쓰러지는 것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오직 바닥에 쓰러진 텍스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취익! 크크큭….”
소름끼치는 오크의 웃음소리와 혀를 날름거리는 행동에 무기를 놓친 채 베인 등허리를 매만지던 텍스가 기겁했다.
“히이익! 저, 저리가!”
이대로 있으면 텍스는 다른 용병들이 도와주기도 전에 죽임을 당하고 말 것이다.
그리고 텍스를 죽이며 방심에 빠진 오크는 다른 용병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이 수순.
그야말로 텍스는 거의 다 끝난 전투에서 자신의 안일함으로 개죽음을 당하는 것이다.
“취이익!”
“으아아악! 사람 살려어어-!!”
오크가 칼을 휘두르는 장면까지 지켜보던 텍스는 자신의 죽음을 대면할 용기가 나질 않아 눈을 질끈 감으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쉬이잇-!
날이 나간 검이 내려쳐지는 순간, 그가 그토록 바라던 소리가 들려왔다.
채애앵!
“크아앙!”
자신의 공격이 막히자 배를 채울 것에 신이 났던 오크가 성난 울음을 토해낸다.
그와 함께 침이 튀자 그것을 받아낸 인물이 짜증을 쏟아냈다.
“뭐하고 있어! 아직도 눈감고 있는 거야?”
뾰족한 목소리. 목울림이 없는, 남성이 낼 수 없는 목소리에 텍스의 눈이 서서히 떠졌다.
“계, 계집…?”
그의 눈앞에는 오크의 공격을 막아서고 있는 여성이 있었는데, 곳곳에 피가 묻고 머리도 헝클어진 것이 격전을 치른 모양이었다.
“이게 진짜! 기껏 구해주니까 별꼴이야!”
“흙덩이여, 쌍주먹 쾅!”
- 이제 그만… 쌍주먹 쾅…
그 소리와 함께 오크는 파육음을 내며 머리가 날아가고 척추가 박살나며 고깃덩이가 되었다.
철푸덕-
투두둑, 툭.
“꺄악, 진짜! 나한테 다 묻었잖아! 진짜 짜증나!”
뒤에서 급습한 흙덩이의 공격에 오크의 피를 정통으로 뒤집어쓴 그녀가 짜증을 내자 불릿이 사과한다.
“미안하오. 이걸로 좀 닦으시오.”
그러면서 품을 뒤적여 손수건을 하나 건넸다. 그녀는 그것을 낚아채 피를 닦으며 텍스를 노려보았다.
“대체 뭐하는 거야? 그러고도 아랫도리 달린 남자가 맞긴 해? 쫄아가지고는.”
“무, 뭣!”
“네놈 꼴이나 보고서 소리쳐라. 모가지 베어버리고 싶어지니까.”
그녀의 말에 텍스는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두 손은 땅을 짚고서 약간 벌어진 입.
게다가 자세가 약간 뒤로 옮겨져 있어 누가 봐도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금세 얼굴이 붉어진 텍스가 소리치려 할 때, 불릿이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몬스터의 사체는 내가 처리할 테니 좀 쉬고 계시오.”
“응? 어떻게?”
“이렇게 말이오.”
딱.
불릿이 손을 튕기자 그의 옆에 서있던 흙덩이가 기운을 움직여 땅을 파내고 오크를 그 안에 넣었다.
뿌득, 빠드득.
뼈가 갈리는 소리가 나며 흙이 꾸물꾸물 움직이더니 이내 반듯하게 변해 원상태로 복구되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오크의 사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자 불릿이 별것 아니라는양 말했다.
“이렇게 뼛조각 하나까지 흙과 뒤섞어서 말이오, 오크가 세상에 존재했다는 증거조차 남지 않게 되는 것이지.”
짙게 내려온 어둠이 불릿을 한층 스산하게 연출해주었다. 이 섬뜩한 장면을 소름끼치는 대사와 함께 텍스를 바라보며 말하자 텍스는 더 이상 그들에게 불만을 품을 수가 없었다.
‘아, X됐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용병들은 한밤중의 전투로 인해 피로가 채 풀리지 않았으나 목적지를 향해 이동하였다.
언제까지 전투의 현장에 있을 수도 없었고, 그곳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인지한 이상 목적지에 도착해 휴식을 취하는 것이 나았던 것이다.
그리고 여정을 이어가는 동안 불릿에 대한 용병들의 태도가 180도 바뀌게 되었다.
“볼레트, 짐은 내가 들어주도록 하지.”
“됐소. 내 짐은 내가 드오.”
“이야, 자네 덕분에 살았어. 설마 오크가 그리 많이 올 줄은 몰랐지.”
“비실해서 그런지 잠이 잘 오지 않아서 그랬나보오. 덕분에 일찍 발견할 수 있었지.”
다소 가시가 돋친 불릿의 대답. 불릿이 그렇게 대해도 용병들은 필사적으로 그에게 친절을 베풀려 했다.
텍스가 앞장서서 불릿을 얕보았지만 다른 용병들이라고 해서 불릿을 얕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으레 신입 용병이 겪는 행사 중 하나였기에 당연히 했을 뿐인데, 실은 이토록 대단한 정령사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너희는 좀 뒤로 가지 그래? 내가 볼레트하고 대화를 못하겠잖아.”
여성용병, 검을 주로 쓰는 검사인 그녀는 볼레트와 함께 걷던 도중에 용병들이 방해를 하자 손으로 쫓는 동작을 했다.
텍스는 뒤에서 우물쭈물 말도 못 붙인 채 용병들의 틈바구니에 섞여 있다가 그녀가 내쫓자 그대로 물러서고 말았다.
“하여튼 간에, 꼭 실력행사를 해야지만 정신을 차린다니까. 이래서 남자들은…….”
그러다 아차 싶었는지 불릿에게 사과하는 그녀.
“아니아니, 너한테 그런 건 아니고. 에헤헤, 이해하지?”
“올리비아 당신에게는 유감이 없소. 오히려 도움을 줘서 고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뿐.”
“그렇게 생각해준다니 나로선 기쁘네.”
여검사의 이름은 올리비아. 그녀는 전날 밤 불릿과 함께 전투를 겪으며 급속도로 친해지게 되었다.
보통 여성용병은 무력이 강하더라도 무시받기 일쑤였는데, 비록 하루를 겪었으나 불릿에게서는 올리비아를 무시하는 기색을 엿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좀 더 존중하는 것도 아닌, 남들과 ‘똑같이’ 대해주는 모습에서 그녀의 호감을 산 것이다.
그 와중에 전투에서도 크게 활약하니 보통 인물이 아니란 것을 깨달은 올리비아는 불릿에게 잘해줄 이유까지 찾아낸 것이 되었다.
“그런데 어째서 실력을 숨기고 있었던 거야?”
그녀의 궁금증. 어째서 수모를 겪으면서까지 실력을 숨기고 있었냐는 것. 그 정도 실력이면 못해도 C급이며, B급이라 해도 무방한 실력이었던 것이다.
새내기 용병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강했으니 그녀는 불릿이 이름을 감춘 유명한 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을 밝힐 수 없는 불릿은 적당한 이유를 둘러대었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이 용병만이 의뢰를 받고,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이오. 그리고 나는 홀로 다니는 것이 편했을 뿐인지라 이번과 같은 경우가 익숙하지 않소.”
결국 실력에 자신 있어 혼자 다녔다는 뜻.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불릿에게 조금 더 바싹 다가왔다.
“그럼그럼, 그러면 말이야. 너 혹시 어딘가의 귀족자제라도 되니?”
그녀는 아직도 불릿이 어느 가문의 후계자쯤으로 생각되는 모양이다. 확실히 용병치고는 지나치게 곱상한 외모, 어린 나이에 뛰어난 실력.
거기에 갑작스런 습격에도 냉철함을 유지하는 부동심까지. 그리고 텍스처럼 도발하는 용병에게도 쉬이 넘어가지 않았으며 지금처럼 자신 같은 여성이 들이대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움찔.
귀족자제라는 말에 불릿이 반응했으나 이내 태연하게 말을 이어갔다.
“귀족자제? 그랬으면 왜 용병을 하오? 굳이 사서 위험을 자처하고.”
‘정확히 말하면 자제는 아니지. 위험이야…, 어쩔 도리가 없으니….’
귀족자제라는 말은 불릿에게 그리 찔리는 말도 아니었다. 그 자신이 고위귀족이며 한 지역의 패자이니 올리비아의 말에 거짓을 고해도 상관없었다.
‘옛날에는 귀족자제였겠지만….’
지금 가문은 불릿만이 피를 잇고 있었기에 사라진 명칭이었다.
게다가 용병이라는 위험한 직업을 사서 고생하는 이유도 바뀌어버린 신체와 장기간 버려진 영지로 복귀할 때까지 키워낼 하나의 카드였다.
이 새로운 경험이 그에게 힘과 지식, 그리고 ‘볼레트’라는 용병의 명예를 거머쥐게 해줄 것이다.
“흐응…, 그래? 그러면 말고.”
올리비아는 불릿에게서 떨어져 길을 걷고 있었지만 힐끔힐끔 불릿을 쳐다보며 빛나는 눈동자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러한 눈치싸움에 능한 불릿은 그녀가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다.
‘한순간의 움찔거림이 그녀에게 미련을 주었나보군.’
과거에는 귀족자제였다, 가 맞는 말이겠지만 미약한 실수를 범해 그녀의 의심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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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