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정령사-33화 (33/241)

00033  용병이 되다  =========================================================================

“자격증을 취득하러 왔소.”

“자격…증이요? 사무자격증을 잘못 말씀하신 건….”

“용병이 되는 것에 제한은 없다 들었는데, 내가 틀린 것이오?”

“그게 아니라….”

“걱정해주는 것은 좋으나 용병이라면 자기 몸은 자신이 챙겨야 한다고 알고 있소.”

“…아.”

정석을 답하자 직원여성은 약간 주저하는 듯하더니 다른 장소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똑똑똑.

“지부장님, 심사를 보러 사람이 오셨어요.”

“들어와.”

달칵.

문을 열고 들어간 그곳은 이번에도 불릿의 기대를 배신했다.

‘용병들이 더럽다고 한 놈이 누구였던가? 화가 나는군.’

깔끔하고 정돈된 책장. 책상에는 안경을 착용하고서 업무를 보고 있는 남성이 있었는데, 기름으로 머리를 넘긴 올백머리는 날카로우면서도 차분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

“제니, 잘생긴 사람만 보면 잘 대해주고 싶은 마음, 나도 이해한다. 나도 예쁜 여자를 보면 잘해주고 싶으니까.”

지부장은 제니라 불린 사무여성에게 시선을 주고서 말을 걸었는데, 제니의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공과 사는 구분해야하지 않겠나? 매번 잘생겼다고 초짜들을 내게 데려오면 인원배치는 왜 했겠나? 가브리엘이 할 일을 내게 부과하지 말란 소리네.”

“죄송해요오…….”

그러면서 고개를 푹 숙이는 제니. 그녀의 곁에서 대화를 듣던 불릿은 제니라는 여성이 잘못한 것을 알 수 있었다.

‘흠, 지부장이 모든 일을 다 하는 것이 아닌가보군.’

생각해보면 지부장이 모든 일을 도맡아서 할 리가 없었다.

이곳이 한적한 시골도 아니고, 수많은 용병들이 들락거리는 곳인데 겨우 두 명이서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을 턱이 없었던 것이다.

드르륵.

지부장은 안경을 벗으며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제니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다음부턴 가브리엘에게도 일거리를 주게나. 심심하다고 칭얼거리는 것도 지긋지긋하니 말일세.”

“죄송합니다.”

“그래, 알았으면 가서 일보시게.”

달칵.

제니가 꾸벅 고개 숙이며 문을 닫고 나가자 드디어 지부장과 대화를 나누게 되는 불릿.

“잘생기긴 했군. 자네는 특기가 무엇인가? 이 자리에서 내가 시험해주도록하지.”

자신보다도 어려보이는 지부장이 하대를 하자 기분이 묘했으나 지금 자신이 되고자 하는 직업과 모습이 어떤지를 깨닫고 고개를 저었다.

“나는 정령사요. 정령력이 느껴지지도 않는 당신이 나를 시험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되진 않는군.”

멈칫.

불릿의 말에 몸을 풀던 것을 그만둔 지부장. 그는 약간 경악한 눈으로 불릿을 쳐다보며 입을 뗐다.

“자네 지금, 정령사라고 했는가? 허, 참나. 내 살다살다 이렇게 젊은 정령사는 처음 보는군.”

지부장은 정령사를 몇 번 봤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어떤 사정이 있어서 찾아온 이들이었는데, 나이가 많은 이들이 대부분이었고 음울한 기운을 풍기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청년은 많이 쳐줘도 20살인데 어두운 기색도 없었다.

“일단, 그 증거를 대보게. 정령사는 정령을 소환하기만 해도 C랭크인 것은 알고 있겠지?”

“흙덩이여,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낼지어다.”

대꾸도 않고 정령을 소환하는 불릿. 그의 앞에 바닥에서 솟아나듯 흙덩이가 나타났다.

우우웅…

- ……

소환되고서도 아무 말도 없는 흙덩이. 그러나 지부장은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오호, 땅의 하급 정령이로군!”

“흙덩이여, 그만 돌아가게.”

오자마자 바로 돌아가라는 불릿의 명에 흙덩이는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애달픈 눈으로 그를 쳐다보다 곧바로 사라져버렸다.

“이만하면 됐소?”

“마나의 유동도 확인했고, 아티팩트의 효과도 아닌 듯하니 맞는 것 같군. 그런데 왜 소환을 해제했나?”

“시선 끌리는 것을 안 좋아하니까. 마나에 민감한 자들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장시간 노출되면 알아차리잖소.”

“흠, 희한한 양반이로군.”

불릿은 볼레트라는 가상의 인물이 명성을 떨치길 바랐지만 그렇다고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원치 않았다.

귀찮기도 하고, 영지에 도착할 때까지는 항시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용병의 몸값은 얼마나 유명한지로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용병이 된다는 자가 그것을 억제한다.

‘신변에 위험이 갈 정도로 유명해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 적당히, 신뢰 있는 용병으로 알려지면 되겠지.’

어차피 용병이 주 목적은 아니다. 그저 영지로 돌아갈 동안 남는 시간을 허비하기 싫었고, 단련도 할 수 있는 용병일이 제격이라 생각했을 뿐이다.

명성도 좋지만 위험한 상황에 놓이는 것은 원치 않는다.

“유명해지길 원치 않는다면서 어째서 정령사로서 지원했는가?”

“바닥부터 시작하기 싫으니까 그랬소.”

F가 아니라 D랭크부터 시작해도 고단하긴 마찬가지다. 그들과 같은 취급을 받는 것은 불릿 자신이 용납지 않은 것이다.

적어도 베테랑이라 불리는 C급은 되어야 자존심이 섰다.

“하하하! 그렇지, 바닥은 좀 심하지! 용병이라면 자존심도 있고 그래야지! 암! 파하하!”

왜 저렇게 웃는지 불릿은 잘 몰랐으나 비웃는 것도 아니고, 용병패를 발급받을 수 있을 듯하자 가벼이 넘겼다.

“후우. 간만에 크게 웃었군. 용병패는 어떤 형식으로 발급받는지 아는가?”

“나무나 동, 철, 은, 금…, 뭐 그런 식 아니오?”

예전 동료들에게 듣기론 등급에 따라 용병패의 재질도 달라진다 들었다.

몇 년 지나지 않았으니 틀리더라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어디 다른 곳에 있다 왔나보군. 최근 용병패는 귀금속을 노리는 좀도둑들이 많아져서 마탑지부에 의뢰해 얇은 금속판에 음각해서 지급한다네.”

이건 또 처음 듣는 말이었다. 이유를 묻자 지부장이 분노가 스며든 목소리로 대꾸한다.

“이게 다 흑마법사들 탓이지. 무슨 전쟁을 대륙 전체와 벌인다고 지랄을 떤 건지, 그 탓에 모든 물자가 부족해져 가난한 자들이 훔쳐서 내다 판 것이지.”

그의 말로는 훔치는 과정에서 해당 용병을 죽이는 사태도 심심찮게 벌어져 이와 같이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용병들을 지키고자 생겨난 제도.

“금액이야 뭐, 당연히 본인이 내는 것 아니겠나? 용병길드가 무슨 자선단체도 아니고 돈을 왜 대주겠나? 애초에 하도 등쳐 먹히고 사니까 불쌍해서 길드가 설립된 것인데.”

용병길드의 설립은 용병을 보호하고자 생겨났다. 까막눈도 많고, 못 배운 이들이 태반이기에 싸움만 잘했지 계약을 잘못 맺어 손해만 보고 가끔 죽기도 했던 것이다.

예전에 용병왕이라 불리던 자가 그들을 불쌍히 여겨 세운 것이 바로 이 용병길드. 계약자와 용병의 중간에서 중계자역할을 하며 분란을 조정해왔다.

계약과정에서 일정한 비용을 수금하지만 그 금액이 방대하진 않다.

일일이 돈을 대주기엔 여러모로 부족한 상황.

“그래도 이 신형 용병패는 꽤 좋은 선택이란 말이지. 마탑지부에 맡기는 게 오히려 더 싸게 먹히니 웃기지도 않아서….”

마법이 부여된 용병패는 본인이 아니고선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사칭이 불가능해지자 타인의 것으로 범죄를 저지르던 이들도 줄었고, 팔아봤자 용병패 자체는 얼마 안 해서 돈도 안 됐다. 게다가 금방 추적당하니 훔치는 것도 불가능.

분실률이 줄어들자 용병패를 만드느라 소비되던 금액이 쌓이기 시작했고, 작금에 들어선 부정적인 반응이 사라졌던 것이다.

“뭐, 내일쯤해서 찾아오게. 행정처리란 것도 있으니 말이야.”

“그럼 가도 되는 것이오?”

“내일 잊지 말고 지부에 들르게. 한번 밀리면 끝도 없이 차례가 밀릴 테니까.”

그러면서 팔을 휘저으며 가보라는 제스쳐를 취하고 자신은 자시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보기 시작한다.

사각사각.

펜이 종이를 노니는 소리에 불릿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 방을 나섰다.

털썩.

“지치는군.”

용병길드를 나섰던 불릿은 이곳저곳을 다니며 많은 일을 했다.

일단 이곳은 물류의 흐름이 활발한 곳이기에 골드를 사용해도 큰 시선이 쏠리지 않았다.

그래서 골드를 사용해 여행용품을 구비하고, 겉모습을 의심받지 않기 위해 장비도 새로 마련했다.

침대에 걸터앉은 그의 곁에는 창 한 자루가 벽에 기대어 있었는데, 질 좋은 나무에 가죽을 덮은 것이라 손이 아플 일이 없었다.

“용병들이 일을 잘 해줄지 모르겠는데….”

길드를 나서기 전 불릿은 개인적으로 의뢰를 하나 넣었다.

카인이 있는 화전마을에 물자를 보내주는 것이었는데, 그가 일일이 고르고 다닐 수 없었기에 카운터를 보던 여성직원에게 목록을 뽑아달라 했다.

의외로 골드가 많이 지출되자 그의 자금은 단숨에 반으로 줄었다.

“30골드라…, 생각보다 많이 필요하군.”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것도 많은 비용은 아니었다. 화전마을이라 그렇지, 일반 평민기준 4인이 한 달 동안 쓰는 비용이 5에서 8실버다.

단순히 유지비가 그렇고, 무슨 물품이라도 구입할라치면 그 비용은 더욱 늘어난다.

그는 적어도 1년 동안은 사용할 물품들에 마을의 발전에 필요한 것들까지 목록에 포함시켰는데, 그러니 당초 예상했던 20골드가 훌쩍 넘어갔던 것이다.

그리고 용병들의 고용비도 있었으니 30골드면 적정수준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비용이 아까운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야 또 벌면 되고, 영지에 도착하면 그마저도 필요 없을지 몰랐다.

“창 한 자루에 5골드. 내가 병사들의 무기보다 좋은 것을 구매한 것인가?”

불릿은 그저 쓸 만하다고 여겨지는 창을 골랐을 뿐인데 5골드라는 금액이 나와 살짝 놀랐었다.

이는 그가 창이라는 무기에 대해서 잘 몰랐기에 벌어진 헤프닝.

일반적으로 창은 나무막대의 끝에 칼날을 달아 놓은 것을 뜻한다.

좋은 창일수록 탄성이 뛰어나야 했는데, 그렇지 않으면 창대가 쉬이 부러져 사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좋은 검은 장인의 솜씨만으로도 탄생하지만 좋은 창은 오로지 재료에 의해서만 골라지는 법이었다.

‘어쩌다가 창이 주무기가 되었군.’

고블린과 싸우며 단검으로 급조했던 엉성한 창. 그것을 휘두르며 부족한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다보니 어느새 창은 그의 새로운 공격수단이 되어 있던 것이다.

그때 사용했던 단검은 예의 그 고급스런 주머니에 담겨 보관하고 있었다.

“혼자라는 것이 이토록 좋을 줄은 몰랐군.”

그는 다음날 옆 영지로 출발할 수 있도록 여관에 부탁했지만 성격 급한 용병들의 대다수는 뭐가 그리도 바쁜지 온갖 수단을 동원해 오늘 출발했다.

그 덕분에 2인실이었던 방을 홀로 독차지 할 수 있었던 불릿.

“아차, 흙덩이!”

혼자라는 것에 좋아하다 뒤늦게 흙덩이를 떠올리고 소환해낸다.

우우웅…

“흙덩이여, 잘 지내셨는가?”

- ……

아무 대꾸도 않는 흙덩이. 그는 흙덩이가 왜 이러나 떠올리다 낮에 있던 사건을 떠올렸다.

4일간 소환도 않다가 증명을 한답시고 소환만 하고선 곧바로 되돌리던 일. 거기까지 떠올리자 자신의 실수가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흙덩이여, 낮에는 본인이 실수를 했네. 어쩔 수 없던 상황이었으니 본인의 사과를 받아주게.”

- …그동안 안 불렀잖아.

낮의 일 외에도 이곳에 도착할 4일 동안 그는 흙덩이를 소환하지 않았었다.

같이 동행했던 자카르의 시선이 거슬리기도 했고, 라 쓰랑에 가까워질수록 만나는 이들이 많아졌기에 조심하자는 차원에서 그랬던 것이다.

하지만 흙덩이로서는 그동안 코빼기도 보지 못하다가 소환하자마자 다시 되돌리는 그의 행태에 화가 날 수도 있는 상황.

불릿은 흙덩이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안간힘을 썼다.

스윽스윽-.

“미안하네, 본인이 잘못했어. 화를 풀어주시게.”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떻게든 화를 풀어주려 노력한다.

얼마 후면 흙덩이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는데 이런 상태라면 자칫 명령을 거부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정령사에게 있어 정령을 빼면 대체 뭐가 남겠는가?

삐져서인지 말도 않는 흙덩이였으나 그의 손길을 거부하진 않았다.

이에 불릿은 더 쓰다듬어 달라는 것으로 알아듣고 손의 지문이 닳도록 흙덩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는데, 오늘 하루 중 가장 피곤한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 작품 후기 ============================

선작이 내일에나 100을 달성할 줄 알았는데 기어코 오늘 달성에 성공했습니다.

귀환정령사를 읽어주시는 독자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며 본래 3연참을 하려던 토요일은 5연참으로 변경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쩐지 자꾸 연재통보를 바꾸는 것 같지만, 더 많은 연재를 등록하기 위함이니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나저나 조금 전에는 조아라 홈페이지가 아팠나 봅니다.

연재를 하려고 눌렀는데 5분간 먹통이어서 살짝 놀랐네요.

그럼, 내일 낮 12시, 3시, 6시, 9시, 12시에 이어서 뵙겠습니다!

오늘도 밤을 새며 비축분을 쌓는 저에게 힘을...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