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정령사-30화 (30/241)

00030  요새도시 라 쓰랑  =========================================================================

분명 흙덩이를 소환할 때 땅의 하급 정령이라고 외쳤었다.

그런데도 묻는 것엔 정령이란 존재의 능력을 몰라서 그런 것이리라.

그가 말하기로도 정령을 처음 봤다고 하였으니 궁금할 만도 할 터.

“땅의 하급 정령이지만 보여주는 것은 다음에. 아무래도 공간이 협소해서 어려울 듯하니까.”

흔들리는 마차 안. 뭔가 그럴듯한 능력을 보여주기엔 힘들 수밖에 없었다.

불릿의 말에 행상인도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였고, 거듭된 대화에 지친 불릿이 의자에 몸을 파묻자 행상인도 눈을 감고 흔들리는 마차에 몸을 맡겼다.

덜컹, 덜커덩-.

* * *

마차로 이동하는 것이 사람들의 생각처럼 그렇게 빠르진 않다.

일단 주위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용병들이 호위를 하는데, 경계라는 것이 달리면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말은 하루에 2시간정도를 달리면 쉽게 지쳐버린다. 그래서 약간 빠르게 걷는 정도로 이동하니 자연스럽게 느려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지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말이 걷는 속도가 사람보단 빠르지 않겠는가? 그 속도에 맞추려니 속보(빠르게 걸음)로 이동하는 사람들은 죽을 맛이었다.

“정지, 정지! 야영지에 도착했다!”

“젠장, 드디어 도착한 건가?”

“다리가 부르트겠어….”

“내가 이번에 복귀하면 꼭 말 한 마리 산다.”

“지랄. 여자한테 꼬라박지나 마라.”

“낄낄낄!”

이동할 때만 하더라도 조용했던 용병과 짐꾼들이 갖가지 불평과 음담패설을 내뱉으며 서둘러 야영을 준비하고 있었다.

달칵.

그 사이, 불릿과 행상인도 마차의 문을 열고 내려섰는데 두 사람 다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 피곤해보였다.

“으음…, 이제야 좀 살 것 같군요.”

행상인의 말에 불릿은 대꾸를 하진 않았으나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타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 그것은 마차를 타는 것이 걷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확실히 걷는 것보단 나을지도 몰랐다. 일단 탈것이란 것에 탑승했으니까.

하지만 마차란 것이 잘 포장된 도로를 달리는 것이 아닌 이상은 끊임없는 흔들림에 엉덩이도 아프고 예민한 자는 멀미도 했다.

그리고 짐마차처럼 외벽이 없는 형태가 아니면 폐쇄된 공간에 장시간 있다는 것에 급속도로 피로해지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사람의 손안에 갇힌 나비가 천천히 죽어가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겠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저녁식사가 준비될 테니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상관없소. 내가 할 일이 있소?”

“이곳은 예전부터 야영지로 활용하던 곳이라 일단 자리만 잡으면 안전하니 괜찮습니다.”

정중히 사양하는 말에 또 다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불릿.

그렇게 그들은 이러쿵저러쿵 잡담을 나누다 일꾼들이 완성시킨 음식으로 저녁을 들기 시작했다.

후루룩…

“꿀꺽. 그래서, 무얼 물어보고 싶다하셨습니까?”

“용병의 등급에 대해서 알고 싶소. 대강은 알지만, 그래도 자세히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상인은 자신의 이익에 민감하다. 따라서 자기가 고용하는 용병들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조사하는 사람들이니 당사자인 용병들보다 더 잘 알 수도 있었다.

아무래도 용병은 무식하다는 편견 아닌 편견이 있었으니 말이다.

행상인은 음식물을 꿀꺽 삼키고서 손가락으로 수염을 쓰다듬었다.

“론 타로 왕국에 용병이 많은 이유는 우대정책도 있으나 몬스터가 다른 지역보다 많이 출현해서입니다. 아시고 계셨습니까?”

“알진 못했으나 몸소 겪어 어렴풋이 그럴 거라 짐작은 했소.”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설명부터 시작하는 행상인. 불릿은 맞장구를 쳐주며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흐음…. 아무래도 용병에 대해서 대략적으로만 아시는 듯하니,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가 이렇게까지 불릿에게 신경써주는 이유는 희귀한 정령사와의 인연을 놓치기 싫어서였다.

얼마 후 헤어진다 하더라도 나중에 다시 만나면 그때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 않겠냐는 말이다.

“현 용병길드의 등급체제는 최하등급인 F를 시작으로 A등급까지 존재합니다. F급은 이제 막 용병세계에 입문한 자들로, 솔직히 말해서 짐꾼입니다. 무기를 다루지 못해도 가능한 등급이지요.”

용병이라고 해서 전부가 전투인원은 아니다. 그들도 잡다한 일을 처리해줄 인원이 필요했는데, 외부에서 짐꾼을 고용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통 그런 일들은 F급의 용병들이 대신하고 있었다.

“D등급부터 본격적인 용병일을 시작하는데, 그들이 주로 하는 일은 오크, 고블린, 랫맨, 늑대 등의 사냥입니다. 약초나 최하급 마정석의 수급도 담당하고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자들이지요.”

위에 나열된 몬스터들은 최하급 마정석이 나오는 놈들로, 몬스터의 등급은 주로 어떤 마정석을 내놓느냐에 달려있었다.

물론 마정석이 안 나오는 놈들도 있으며, 몬스터가 아닌 짐승 또한 위험하기는 마찬가지기에 퇴치업무도 간간히 맡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최하급 마정석을 얻는 것이 주요 업무이며 수입원이었다.

“C등급부터 급속도로 인원이 줄어듭니다. 흔히 말하길, 베테랑 용병은 C급부터라는 말이 있죠. 보통 팀의 리더나 용병대의 대장을 C급, 또는 B급이 맡습니다.”

C급 정도 되면 자기 목숨은 자기가 챙길 수 있었다. 그래서 전투 중에도 여유가 있기에 옆의 동료도 챙길 수 있었고, 그래서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굳이 말하자면, 정령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C급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그건…좋은 소식인 것 같소.”

그래도 어중이떠중이 취급은 받지 않을 수 있었기에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는 불릿.

“B급은 C급 중에서도 많은 의뢰를 성공적으로 수행해야지만 달성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강하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죠.”

용병은 무장집단이다. 소속이라고 해봤자 용병길드, 그도 아니면 자신이 속한 용병대나 용병단(대보다 단이 더 크다) 밖에 없었는데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범죄자가 되기 쉬웠다.

그래서 용병길드에선 그들의 승급조건을 의뢰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의도적 계약파기가 없는 경우를 조건으로 삼았다.

큰 범죄를 저지른 용병은 법의 심판을 받고 형기를 마친 후 2년간 승급심사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막장인생이 아닌 이상 웬만해선 의뢰인과 불화를 일으키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저기, 성함이?”

“음. 볼레트라고 하오. 잘 부탁하외다.”

“예, 볼레트 씨. 그래서 B급은 지금 당장 되실 수 없을 겁니다. 다들 그런 건 아니지만 자신의 강함만 믿고 설치는 사람들이 있어서 말이죠.”

그러면서 은근한 눈길을 불릿에게 보내는 행상인. 그의 눈길은 ‘당신도 그런 부류인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다음 내용도 설명해주시겠소?”

행상인을 빤히 쳐다보는 불릿. 마차에서 나오며 흙덩이를 돌려보냈기에 딱히 위협적이진 않았으나 그에게서 이질적임을 느낀 행상인은 헛기침을 한번 내뱉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크흠, 에, A급, A급은 말 그대로 용병계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 무기를 다루는 것에 제한을 두지 않지만 익스퍼트 중급의 수준에는 올라줘야 시험이라도 볼 수 있는 자격이 되지요.”

익스퍼트. 마법사나 정령사와는 달리 마나의 힘으로 육체의 능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자들을 뜻한다.

진짜 극한까지 갈고 닦으면 마나를 체외로 방출할 수 있다고 전해지지만, 그것을 손쉽게 해내는 마법사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애초에 인간이 불을 뿜고, 뼈를 얼리며, 전기로 지지고, 보이지 않는 바람의 칼날로 공격해오는 마법사를 무슨 방법으로 상대한단 말인가?

기습공격이면 모를까, 정면대결을 해서는 어지간히 마법사의 경지가 낮지 않고선 상대가 되질 않았다.

“S급은 마스터의 경지라고도 하는데, 몇 명의 S급이 있어도 확인할 수가 없으니 저로서도 뭐라 말씀드릴 수가 없군요.”

일반적인 용병의 등급은 A급까지였고, 원래 S급은 없는 명칭이었다.

그저 A급으로 취급하기엔 그들의 경지가 너무도 높아 S급으로 칭한 것이지 그들 또한 A급이었던 것이다.

“S급이란 게 실존하긴 하오? 내가 봐왔던 용병들은 별로 대단할 것도 없었는데 말이오.”

비록 마법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B급만 되어도 좋은 대접을 받는다. A급은 그 수도 적고, 대부분이 큰 용병단의 단장역을 맡고 있었다.

흑마법사들을 상대로는 무력한 모습을 보이던 그들, 그것이 익스퍼트 경지의 기사나 용병들에 대한 기억이었다.

“글쎄요. A급 용병들이 그들을 천외천이라 칭송하며 S급이라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니니 대단하긴 하지 않을까요?”

인간의 육체는 한정적이다. 아무리 한계를 벗어났다는 익스퍼트의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몸으로 부딪혀야 했기에 멀리서 공격하는 정령사와 마법사들에게는 고양이 앞의 쥐나 마찬가지였다.

“그럼 유저는 어느 정도 취급을 받으오?”

“흠…, 굳이 비교를 하자면 하급 정령사급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군요.”

상성에 의해 전사들은 마법사나 정령사에게 약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허접한 것은 결코 아닌 것.

전사들은 마법사나 정령사들에게 없는 강인한 체력이 있어 거친 환경에서의 생존이나 임무에 적격했다.

익스퍼트와 유저의 차이는 하급 정령사와 중급 정령사의 차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었고 말이다.

말하자면 용도의 차이. 단순 무력만 놓고 비교하기엔 용병이란 직업은 쉽게 볼 것이 아니었다.

“중급 정령사라면?”

“의뢰만 착실히 진행하면 A급은 금방 될 것 같군요.”

말하자면 불릿의 강함은 C에서 B를 넘나들고 있다 말할 수 있겠다.

이는 중급 정령사가 아니기에 발생한 슬픈 일.

“하급 정령사와 마나 유저는 C급 정도…, 인 것인가. 왠지 불공평한 것 같군.”

아무리 비슷하다고 하지만 단순한 마나 유저와 자신의 취급이 같다는 것은 불쾌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불릿만이 아닌 정령사들의 공통적인 자존심.

“용병들이 하는 일이란 것이 거칠고 힘들다 보니 단시간에 끝낼 것이 아니라면 체력 좋은 그들이 나설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가 말하고자 하는 건 당신은 고급 인력이니 막노동은 머슴 같은 육체파에게 맡기라는 것이었다.

불릿의 심기가 나빠 보이자 어르고 달래려던 것.

“됐소, 기분이 나쁜 게 아니오. 나는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오.”

불릿의 현재 위치, 그는 예전 대륙최정상의 결사대의 일원이 아닌 A급도 못 되는 하급 정령사 볼레트였던 것이다.

차가운 현실이었으나 자신을 제대로 파악해야 발전도 가능한 것이리라.

“아차, 제 이름도 말하지 않았군요. 저는 자카르라고 합니다. 우틀락 지방을 순회하는 행상인이라고 할 수 있지요.”

우틀락 지방이란 곳이 얼마나 넓은지는 모르겠으나 단순히 도시와 도시가 아닌 한 지방을 순회한다는 것을 보면 꽤나 능력 있는 자인 듯했다.

“자카르,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언제든 말하시오. 당신이 내게 호의를 베풀었으니 그만큼 돌려주겠소.”

받은 것이 있다면 가는 것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빚이라는 형태로 발목 잡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고맙습니다. 나중에 생각나면 말씀드리지요.”

그러나 행상인, 자카르는 이 작은 친분을 쉽게 날려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가 파악하기로 눈앞의 청년은 사소한 은원관계도 놓치지 않으려는 것이 보였다.

친분을 잘만 유지하면 나중에 큰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지는 잘 심어 넣은 것 같군.’

그리고 이렇게 자신에게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품게 만들어 해코지를 못하게 만들려던 것이 불릿의 계획이었다.

다행히 계획은 잘 먹힌 것 같아 앞으로 영주가 거주하는 요새도시, 라 쓰랑까지 나름 편하게 갈 수 있을 듯했다.

자카르가 불릿에게 부탁을 하려면 함부로 대하진 않을 것이니 말이다.

“용병자격을 취득할 것이라면 라 쓰랑이 제격입니다. 그곳의 영주님만큼 용병을 잘 대해주는 인물도 없지요. 다른 귀족들은 용병의 중요성은 알면서 함부로 대하지 말입니다.”

투덜거리는 자카르의 말을 듣자니 라 쓰랑의 주인인 세리오 남작에게 호감이 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 마저 식사하도록 하지요.”

“알겠소.”

달그락.

달칵, 찌직-.

그들은 대화를 마치고 서둘러 남은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다.

주변의 사람들은 벌써 식사를 마쳤는지 식기도구를 정리하기 시작했고, 짐꾼들이 풀과 천으로 그릇을 닦는 모습이 보였다.

식어가는 스프와 육포를 뜯어먹던 그들은 식사를 끝내자 곧바로 마차를 중심으로 잠자리를 꾸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이쯤에서 자려고 하는데, 저와 함께 마차에서 주무시겠습니까?”

마차가 비좁다곤 하나 몸을 살짝 웅크리면 나름 몸을 눕힐 수 있었다.

그럴 용도로 개조도 해놓았는지 의자 밑에서 간이손잡이 올라와 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해주었다.

자카르가 그것을 보여주며 묻자 불릿은 고개를 저었다.

“안에서 자려니 답답하오. 나는 밖에서 자겠소.”

“그렇습니까…, 그럼, 내일 뵙지요.”

“잘 자시오.”

“안녕히 주무시길.”

덜커덩, 탁-.

그리고선 문을 닫고 안에 자취를 감춘 자카르.

불릿은 자기들끼리 불침번을 정하고 자리에 눕는 용병들을 보다가 한쪽 구석에 자리를 마련했다.

============================ 작품 후기 ============================

12시에 이어집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