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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정령사-29화 (29/241)

00029  산골마을 토빗  =========================================================================

얘기로만 들었던 C급 용병도 감당하지 못하고 이곳을 떠났다.

그런데 불릿은 무리하지만 않으면 사전에 놈들이 접근함을 알아채고 약간의 수고만 들이면 삽시간에 섬멸시킬 수 있다.

그러니 소문의 C급 용병보단 강하다고 어렴풋이 생각했는데, 문제는 그가 용병제도에 대해서 제대로 몰랐다.

여관주인은 말 그대로 여관주인. 용병들에게서 들은 정보를 불릿에게 알려주었을 뿐이다.

그 외에는 쭉정이나 마찬가지인 D급, F급의 용병들.

여관주인의 말로는 F급은 용병이라기보다는 짐꾼에 가까운 녀석들이라고 한다.

차라리 사냥꾼들이 더 강하다는 말을 듣자 기가 찼다.

“설마 본인도 F급으로 시작하는 것은 아니겠지.”

대륙 정점의 결사대에 속했던 자가 용병이라는 직업의 밑바닥에서 시작한다?

용병을 얕잡아 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힘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지금의 기술을 갈고닦아 보여준다면 더 높은 등급을 책정받을지도 몰랐다.

그랬기에 마을에 상행위를 오는 상인들을 하염없이 기다리기 보다는 스스로를 갈고 닦으며 정진하고 있던 것.

- 나 또 돌아가?

“그건 어쩔 수 없는 문제라네, 흙덩이여.”

화전마을의 사람들은 무지했기에 흙덩이를 보고도 정령인지 사람인지 구분을 못했다.

하지만 당장 이곳만 하더라도 곳곳을 돌아다니며 문물을 보아온 용병들이 있다.

그들의 능력이 보잘 것 없다하여 보는 눈까지 낮은 것은 아니다. 분명 흙덩이를 알아보는 이가 있을 것.

이곳에서의 휴식이 마지막이 될 것이며 그 이후로 영지에 도착할 때까지는 여러 제약이 따를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많은 곳에선 시선이 모이는 것을 피하기 위해 흙덩이도 어쩔 수 없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 있을 것이다.

- 거기 싫어. 지겨워.

대체 흙덩이는 어디에 있던 것일까. 저런 말을 할 때마다 궁금증이 일었으나 불릿은 묻지 않았다.

어차피 들을 수 없는 대답, 그것에 집착해봤자 정령과의 사이가 나빠질 뿐이었다.

“부탁하네. 본인의 영지에 도착하면 언제든 자네를 부를 터이니.”

- 빨리 가. 나 그런 거 싫어…

“허허허, 조금만 참게. 서두른다고 되는 것도 아니니.”

마치 어린아이의 투정을 보는 듯해 불릿은 허허로운 웃음을 보이며 흙덩이를 달랬다.

겉모습만 보면 나이차가 조금 나는 남매로 보이지만 어차피 둘만 있으니 상관없었다.

“그래, 밖으로 나간다지?”

불릿은 그동안 여관주인과 꽤나 친해진 상태였다. 비록 통성명은 나누지 않았으나 이는 신분을 알리기 꺼려하는 용병들도 있기에 그리 어색하지 않은 상황.

여관주인도 이런 상황에 익숙한지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전에도 말했었던 걸로 기억하지만, 그렇소. 내일이면 이곳을 떠날 수 있겠구려.”

“내 자네를 좋게 보았지만 그 말투, 말투가 참…, 그것만 고치면 좋을 것 같은데 말이지.”

“상관없소. 얕보이지 않으려면 오히려 이게 더 나을 수도 있겠지.”

“하긴, 그도 그렇군. 자네의 외모에 말투까지 어리면 완전 얕잡아 보이겠어. 껄껄.”

이런 앳돼 보이는 청년이 사실은 40먹은 중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피식.

“오, 자네도 웃을 때가 있는가?”

“못 웃을 이유도 없지.”

“떠날 때가 되니까 드디어 사람답게 구는군.”

불릿은 발터라는 마을청년 때문에 안 좋은 기억을 가지고 토빗마을을 떠날 뻔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 통성명도 나누지 않은 유쾌한 주인장 덕분에 날카롭게 바짝 섰던 신경이 누그러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몸이 젊어진 이후로 종종 화를 억누르지 못하는 데 있어 고민했었으나 여기에서의 경험은 여러모로 그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다.

‘참을 수 없다면 굳이 참지 않으면 될 터.’

지금 그의 육체는 싱싱하기 그지없다. 굳이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욕구를 내리누를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저 짜증나는 상황에서 짜증을 낸 것뿐이고, 그나마도 과하게 대응하지 않았다.

그러면 그냥 육체의 요구에 따라주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건강을 지키는 비결이 아니겠는가?

“아쉽군, 아쉬워! 자네처럼 유능한 용병을 또 언제 본단 말인가!”

“저 위에서 나자빠진 놈들이 있지 않은가?”

불릿이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키자 여관주인은 인상을 팍 썼다.

“그놈들은 안 돼. 이제야 초저녁인데 벌써부터 잠들어 있다고. 일이라도 하면 몰라, 며칠 째 아무것도 안 하고 술 퍼마시고, 자고. 뭐하는 건지….”

“글쎄, 그것도 나름의 방식 아니겠소? 죽음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이니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겠지.”

용병은 항시 죽음과 대면하며 살아간다. 달리 말하길, 용병이 되면 저승에 한발 걸쳤다는 말이 우스갯소리로 나돌 정도로 위험한 직업.

사냥꾼은 조금 다르지만 적어도 몬스터가 공존하는 이 숲에서만큼은 그들 또한 용병과 다를 바 없었다.

불릿의 말에 주인장의 얼굴은 뚱하게 변했다.

“자네는 좀 쉬라고 해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마을 밖으로 나선 주제에 잘도 그리 말하는군. 자네 덕분에 내가 아침에 일어나는 게 얼마만인지 몰라.”

그 말은 아침에 일어날 용무가 없었다는 뜻. 게으른 용병들을 에둘러 욕하는 것이다.

“자기도 늦게 일어나는 주제에 잘도 그렇게 말하는군.”

“뭐? 파하하!”

예상 못한 불릿의 반격에 여관이 떠나가라 웃는 주인장.

불릿은 맥주잔을 들이켜며 작게 미소 짓고 있었다.

* * *

덜컹, 덜컹-.

흔들리는 마차에 따라 불릿의 몸도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합류해주셔서 영광입니다.”

“아니오, 괜찮소. 제의를 받아들여 주었으니 이쪽에서도 고마울 따름이오.”

약간 배가 나왔으나 전체적으로 날렵한 상인의 말에 불릿이 고개를 살짝 저으며 응답했다.

지금 불릿은 상단의 주인과 함께 마차를 타고 있었는데, 주변의 사람들이 마차를 호위하며 걷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한 호사였다.

이렇게 된 경위는 불릿이 여관주인의 마중을 받을 때였다.

“여보게, 라스! 이 친구 좀 데려가주게.”

상단이 도착하자 부산스럽게 짐을 내리는 용병과 짐꾼들과 달리 여유로이 서서 풍경을 감상하는 이가 있었다.

여관주인은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더니 다짜고짜 불릿을 소개하며 데려가라고 한다.

그런데도 별로 불쾌해하는 기색이 없었는데, 그들이 알고 지낸지 오래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귀족이십니까?”

또 다시 발생하는 오해. 불릿의 외모가 너무도 곱고 기품이 흐르기에 감추려 했으나 백작의, 군주로서의 위엄이 마저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이에 상인이 얼굴을 보자마자 조심스레 대했던 것이다.

“나참, 귀족나리였으면 잘도 가만히 있었겠다. 나타나자마자 으름장을 놓으며 허리 굽히게 만들고 돈이나 요구했겠지.”

“영주님을 제외하면 다른 귀족들이 그러한 성향을 지니긴 했지.”

상인 또한 동의하는 듯했다. 이들은 대체로 귀족들을 나쁘게 생각하는 듯하였는데, 이 나라의 귀족들이 얼마나 횡포를 일삼았는지 알만한 대목이었다.

‘그러니 화전마을 같은 것이 버젓이 존재하지.’

불릿의 영지엔 가난한자는 존재해도 도망자는 없었다.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도망쳐 몰래 살아갈 정도로 불릿이 쥐어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흠, 이 친구가 누군데 자네가 그리 말하는가? 용병? 그도 아니면 사냥꾼?”

이번에도 제일 먼저 묻는 직업이 용병이었다. 불릿의 외모만 보자면 용병을 떠올리기 힘들었으나 이들이 용병에게 호의적이란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사냥꾼이랑 같은 취급하지 말게. 어엿한 용병이니까 말이야.”

“게으르다고 용병들에게 핀잔을 주던 자네가 웬일로 용병을 끌고 왔는가?”

다른 용병들은 몰라도, 여관주인이 운영하는 여관의 용병과 사냥꾼들은 확실히 게을렀다.

그래서 그는 게으른 사람을 싫어했는데, 웃기게도 여관주인 본인도 게으른 사람 중 하나였다.

“거 참, 그놈의 의심증하고는! 이보게, 자네…음. 그러고 보니 대체 뭘 잘하는 겐가? 간간히 오크를 잡아오는 것을 보니 실력이 없는 건 아닌데.”

“뭐? 당신도 모르면서 나에게 추천한 것인가? 이거 크게 경을 칠 사람이로구만!”

“자자, 진정하고. 어여 안 보여주고 뭣 하는가?”

그동안 불릿의 능력을 마을 안에서 보여준 적이 없었기에 친해진 여관주인도 불릿의 능력을 몰랐기에 생겨난 헤프닝.

이에 불릿은 고개를 끄덕이며 능력을 발현했다.

“땅의 하급 정령, 흙덩이여.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라.”

스스슥…

그러자 땅에서 솟아나듯 흙덩이가 올라와 형태를 갖추는 것이었다.

이 장면에 상인과 여관주인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뭐얏! 정령사?!”

“오오오… 자네, 정령사면 정령사라고 말을 좀 해주던가, 사람 민망하게시리.”

“힘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여관 안에서 정령을 왜 소환하겠소.”

- …저 사람, 나 왜 봐?

흥분한 상인이 뚫어져라 쳐다보자 흙덩이가 그를 경계하며 불릿에게 바짝 붙어 섰다.

이에 불릿은 흙덩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상인에게 말을 건넸다.

“이 정도면 능력을 선보인 것이 되오? 뭔가 더 해야 하는 것은….”

“아니아니아니,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허어, 내 살다살다 정령을 다 보게 되는구만.”

“나도 처음 보네만…. 근데 되게 귀엽게 생겼군.”

흙덩이의 외관은 미소녀. 애달픈 눈과 앙증맞은 외모는 껴안아 주고 싶은 기분이 들게끔 만들었으나 유난히 누런 피부가 살짝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겨주고 있었다.

- 불릿, 이 사람들 뭐야…, 이상해…

이전의 화전마을에서보다 더 심하게 관심받자 그것이 부담스러웠는지 흙덩이가 자꾸 불릿의 뒤로 숨으려 했다.

덜컹.

덜더컹, 덜컹-.

불릿은 상인의 권유로 마차에 탑승해 그와 함께 이동하고 있었다. 옆에 소환된 흙덩이는 얌전히 그의 곁에 앉아있었고 말이다.

그리고 흙덩이를 향해 뚫어질 듯 쳐다보는 행상인.

“……아무리 그래도 흙덩이를 그렇게 보면 정령이 부담스러워하오. 하나의 인격체라 생각하고 조금은 자제해주시길.”

“어이쿠, 이거 실례했습니다. 정령도 감정이란 것이 있군요.”

그러면서 힐끔 그의 옆에 앉아있는 흙덩이를 바라본다. 여행 중에는 습격을 당할까봐 그에 대비해 미리 소환을 해놓기에 이번에도 그랬는데, 시선이 사뭇 부담스러웠다.

- 싫어. 쟤 때려.

“쉿, 그런 말 하는 게 아니다.”

흙덩이의 말은 불릿에게만 들리나 불릿의 말은 모든 이에게 들리기에 작게 소곤거렸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로 이동하는 것이오?”

“라 쓰랑이라고, 영주령에 속한 요새도시가 있는데 규모는 그렇게 크진 않으나 중간보급로 역할을 하기에 물류의 유통이 활발하지요.”

도시가 발달하기 위한 조건으론 굳이 넓은 땅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너무 좁은 것도 문제겠지만 필요 이상으로 광대한 땅은 오히려 발전을 저해시키는 요소로도 손꼽혔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라 쓰랑은 자신의 지리적 위치를 잘 이용한 예로 볼 수 있었다.

“요새도시라고 했는데, 그럼 군인이나 용병을 상대로 한 장사꾼이 많겠군. 장비와 몬스터의 사체, 그리고 마정석. 맞소?”

“거참, 귀신같이 알아맞히시는구려. 맞습니다. 요새도시니까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지요.”

요새란 것은 외부의 적으로부터 지키는 데에 특화된 방어지역을 뜻한다.

무엇으로부터 지킨다는 것인지는 자세히 들어봐야 알겠으나 단어만 들어도 무언가와 싸우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곳에 요새가 있는 까닭이 무엇이오? 내 이곳에 온지 얼마 안 되어 아직 파악하질 못했소만.”

보통 용병이 자신이 어디로 이동하는지도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실수로라도 길을 잘못 들어서면 돈도 돈이지만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기에 그들은 다른 건 몰라도 행로만은 꼼꼼히 살폈다.

“흐음…, 그렇습니까?”

이상하게 쳐다보는 행상인. 그도 그럴 것이, 좀 모자라 보이는 용병이면 또 모르겠는데 이자는 친분이 있는 여관주인이 추천한 자다.

게다가 희귀한 정령사인 주제에 길도 파악하지 않고 다니는 것이다.

“실례되지만 등급은 어떻게 되십니까? 정령사시니까 높으실 것 같은데….”

굳이 무력이 아니더라도 정령사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았다.

정찰이나 탐지, 보급품의 운송이나 각 정령사의 특징인 물, 불, 땅, 바람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도 많았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역시 치유능력이 있는 물의 정령이 인기 있었지만 파괴력 강한 불의 정령도 빼놓을 수 없었다.

바람의 정령은 정찰과 탐지에 탁월해 공격과 수비에 용이했다.

땅, 땅 하면 떠오르는 것은 안정적인 수비. 단단한 땅의 기운으로 장벽을 만들고 적의 이동을 방해하거나 건물을 만들 수도 있었다.

이렇듯 정령은 그 무엇 하나 버릴 게 하나 없는 귀중한 인재였던 것이다.

“용병자격을 취득하려 하는데 라 쓰랑이라는 곳에서 가능하오?”

“가능이야 하지만, 어째서 그런 것을 묻습니까?”

불릿의 물음에 의문 섞인 행상인의 발언. 태도만 보자면 불릿은 베테랑 용병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었다.

헌데 아직 등록조차 안 했다고 하니 물음표가 떠오를 만 했다.

“몬스터 사냥은 많이 해보았으나 기회가 닿질 않아 취득은 아직 못했소. 꼭 용병들만 그러한 일들을 하는 것은 아니지 않겠소?”

“그건 그렇습니다. 용병이란 게 길드에 속했을 뿐이지 하는 일들이 특별한 것은 아니지요.”

용병이 하는 일들은 다른 직업군이 하는 일들과 많이 겹쳤다. 몬스터 사냥이나 호위, 전쟁, 물건 찾기나 던전 탐험 등…….

위험한 일들이 많았기에 썩 좋은 직업군은 아니었다.

그래서 마법사나 정령사와 같은 고급 인력은 잘 안 하려고 했다.

위험한 것에 비해 보수가 그리 좋은 것도 아니었으니까.

“헌데, 제가 정령을 처음 봐서…, 어떤 정령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 작품 후기 ============================

9시에 뵙겠습니다.

저녁 맛있게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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