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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정령사-28화 (28/241)

00028  산골마을 토빗  =========================================================================

“본인에게 바라는 것이 있는가? 있다면 내 그것을 이루어주기 위해 노력하도록 하지.”

비록 맹세라고 할 정도의 대답은 아니었으나 한 지역의 패자가 이 정도로 말하는 것이라면 대단한 가치를 지닌 것이었다.

그것을 알 리 모르는 흙덩이는 특유의 눈빛으로 불릿을 바라보며 대꾸했다.

- 있어.

“흠…, 그것이 무엇인가, 흙덩이여?”

예상외의 대답. 흙덩이가 벌써 소원이 생길 정도로 인간사에 익숙해졌단 말인가?

- 나… $%#%$%*^%*##가 되고 싶어…

“……뭐?”

갑자기 튀어나온 정령어. 불릿이 정령사이긴 했지만 대륙의 정령사들의 공통점이 정령어를 모른다는 점이었다.

갑자기 산통이 깨지는 듯한 장면. 그러나 흙덩이는 꿋꿋이 자기 할 말만 한다.

- $^&*^&*… 응. ^%&^$야.

“무슨…, 무슨 뜻인가, 흙덩이여?”

- ……

“으음…?”

갑자기 대꾸를 않고 멀뚱히 그와 시선을 교환하더니 이내 손을 내리는 흙덩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어리둥절한 불릿이 재차 묻자 다른 곳을 응시하며 딴청을 피운다.

“무슨 일이…벌어진 것인가…?”

대화가 단절되자 저도 모르게 독백을 하게 되는 불릿. 하지만 여전히 흙덩이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방을 훑어만 보았다.

“…….”

흙덩이가 대화할 생각이 없어보이자 자연히 불릿도 침묵을 하게 되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흙덩이는 불릿의 명에 대체로 잘 따랐다. 그의 명령에 응하지 못하는 경우는 이해를 못했거나 그럴 수 없는 상황에 처해서인데, 이번 경우는 무언가 이상했다.

자신을 위로해주는가 싶더니 정령어로 무어라 중얼거리고서 딴청을 피운다.

이는 자신이 가르쳐준 적이 없는 태도. 다른 이들이 불릿의 앞에서도 보인 적이 없기에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걸 응용할 만한 장면이 있었나 되짚어 보아도 없다.

“흙덩이여, 본인이 잘못한 점이라도 있는가?”

- ……

역시 무응답. 아예 듣지 못한 것처럼 방안 구석구석에 시선을 돌릴 뿐이었다.

자신의 실언이 문제인 것은 아닌 듯했는데 다른 이유를 찾을 수가 없어 답답했다.

‘머리가 아프군. 일단 영지로 돌아가는 루트가….’

해결하지 못할 문제에 매달리지 않는다. 대신 다른 문제로 시선을 돌려 그것부터 처리하는 불릿이었다.

보아하니 흙덩이가 화난 것 같진 않았다. 정령어를 언급한 것을 보니 다른 이유가 있는 듯.

이런 경우엔 기다리는 것이 답이라고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불릿이었다.

“이곳은 우틀락 지방. 그중에서도 세리오라는 남작의 영역이라 했다. 론 타로 왕국의 지형을 생각하면 내가 있는 곳은….”

머릿속의 지도에 줄줄 죽죽 긋는 불릿. 그는 이동해야 할 경로를 계산하고 있었다.

“나라의 중심에서 먼 지역. 그중에서도 몬스터지대와 인접해 있다면 위치는 북동쪽. 대각선 방향이로군.”

고위귀족일수록 중앙 수도와 인접해 있다. 남작령이라면 국경지대와 가까운, 말하자면 위험지역이라는 뜻.

거기에 몬스터가 출몰하는 곳이라면 수익이 다른 곳보다 많지만 그에 따라 위험도도 증가한다.

이러한 지역은 대개 무력이 강해서 공을 인정받았으나 그 역사가 짧은 신흥귀족들이 주로 받는 곳이었다.

“하필 본인이 모르는 곳에 떨어졌군.”

보통 귀족들은 타 국가의 귀족이라 할지라도 서로가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이는 귀족이라는 이들의 수가 국가단위로 쳐도 소수이기에 가능한 일.

하지만 하위귀족까지는 관심을 갖지 않는 이상 모를 수도 있었다.

“어째서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인지는 나중에 알아보도록 하고….”

그는 아직도 자신이 왕국을 몇 개나 뛰어넘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는 이유를 알아내지 못했으나 경로를 정했으니 영지로의 복귀는 가능할 것이다.

“용병으로 활동하며 명성을 쌓고, 그 명성을 영지에 도착하면 모든 공로를 용병 볼레트에게서 불릿 폰 바포 백작에게로 돌린다.”

말하자면 불릿이라는 인물의 출중함을 대륙 전역에 알리겠다는 것이 목표.

물론 진정한 정체는 영지에 도착하고서 밝혀야 자신에게 원한을 가진 이들에게 암살당하지 않을 것이다.

불릿은 용병으로 활동할 것을 결심하며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혼자서 이동하기엔 위험한 세상. 그것을 제외하더라도 마차로 5일이나 걸리는 거리를 걸어서 가기엔 너무도 아득했다.

그래서 상인들이 오는 한 달 후까지 단련하며 보낼  생각인 것이다.

그가 정식으로 용병이 되고자 마음먹자 의외로 필요한 것이 많았다.

용병이라고 아무렇게 활동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그들에게도 급수가 나뉘어 있었다.

“나도 잘은 모르겠는데, 여기에 와서 활동하던 용병 중에서 제일 높은 용병이 C급이올시다. 얼마 안 있다가 바로 돌아갔지만 말이오.”

그러면서 여관주인은 그 C급 용병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얼마나 대단했냐면, 여기가 숲이 울창하지 않소? 그래서 그런지 짐승이 많아. 그 사람은 거의 하루에 한 번씩 곰을 잡아오더란 말이오.”

곰은 거의 몬스터에 육박할 정도로 흉악한 놈이다. 웬만한 몬스터들도 건드리기 꺼려하는 놈으로, 특히 고블린들에겐 천적이나 다름없었다.

곰의 두꺼운 가죽은 고블린의 주특기인 독침이 통하질 않았다.

게다가 충격흡수도 잘하니 상대적으로 빈약한 고블린들이 상대하기 어려워했던 것이다.

“근데 말이오, 이 곰이 아무리 세고 강하더라도 결국 곰이란 말이지. 고기는 누린내가 나고 쓸개는 뭐, 조금 쓸 만 하려나?”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은 다음과 같다.

“몬스터에게서 나오는 마정석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싸다는 소리지. 그 왜, 고기는 스튜에 좀 넣어서 먹을 만하고 가죽도 쓸 만하지만, 최하급 마정석에 비하면 좀…, 그렇잖소?”

이 마을의 주 수입원은 최하급 마정석이었다. 오크나 고블린의 사체도 이용하긴 했으나 그건 의뢰가 들어왔을 때나 채집하는 목록.

크기도 작으면서 값비싼 마정석이야말로 몬스터 슬레이어들이 눈독 들이는 1순위의 물건이었다.

“뭐, 그가 다른 자들에 비해 마정석도 많이 채집했지만 그의 능력에 비해선 영 수지타산이 안 맞았다 이거요.”

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홀로 찾아온 토빗이라는 마을. 그러나 현실은 잔혹했다.

혼자서는 활동할 수 있는 범위가 좁아 무리지어 다니는 놈들을 사냥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간혹 무리에서 떨어진 오크나 고블린을 사냥하거나 함정을 만들어 놈들을 유인해 잡아내었지만 그것이 언제나 성공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제대로 사냥에 성공하는 것은 짐승 중에서도 가장 강하다고 볼 수 있는 곰.

하지만 곰은 개체수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어서 초반엔 잘 잡다가도 나중엔 그 수가 드문드문 떨어졌다는 것이다.

한 달이 지나 상인들의 행렬이 다가오자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들을 따라갔다고 한다.

“C급이라 하더라도 자기 목숨은 소중하다 이 말이오. 역전의 용사라지만, 몬스터가 어디 사람과 같소? 고블린이면 몰라도 오크는 힘들지.”

오크는 고블린을 씹어 먹을 정도로 강하다. 강한 근력과 탄탄한 육체, 거기에 지구력도 상당해서 장시간 싸워도 쉬이 지치지 않았다.

불릿이 그들을 쉽게 잡는 것은 어디까지나 흙덩이의 공격력이 예상 외로 강해서 그런 것.

하지만 흙덩이의 공격은 딜레이가 있어 빠르게 공격할 수가 없다.

게다가 갑작스레 습격하면 그도 감당하기 벅찼다.

“그 C급 용병이 그만두고 돌아갔던 이유도 놈들의 기습공격을 감당하지 못해서니까 형씨도 조심하시오.”

오크나 고블린이나, 몸의 색이 녹색을 띄기에 숲에서 발견하기 어려웠다.

강한 공격력을 지녔다 해서 방어까지 튼튼한 것은 아닌 것이 사람이다.

몬스터처럼 가죽이 질긴 것도 아니고, 오감이 발달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뭉쳐 다니는 것이고, 대부분의 용병이 C급 이하라는 것을 생각하면 강해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어차피 나는 다음 상행위에 따라갈 것이니 위험하게 활동할 생각은 없소. 딱 내가 할 만큼만 할 생각이오.”

단지, 흙덩이를 처음 소환했을 때와 비교하면 10여마리의 오크도 감당할 만큼 바뀌었지만 말이다.

이 숲에서는 적어도 불릿이 포식자였다.

“나도 더 이상 잔소리할 생각은 없소. 그저 아직 젊은데 나쁜 일이라도 생기면 그게 안타까워서 그럴 뿐이지.”

“충고 고맙소. 내 마음에 새기도록 하지.”

“…아직 어린데도 의젓하시구려.”

보통 젊은 혈기에 욱하는 성질이 많은 용병들은 참는 것을 잘 하지 못해서 요절하는 경우가 많은데, 불릿의 침착한 모습이 그에게 와 닿았던 모양.

평소엔 보는 둥 마는 둥 용병, 사냥꾼들과 데면데면하게 지냈던 여관주인이 불릿에게 충고를 해주는 것은 그가 괜찮게 보였기 때문이다.

‘참 잘생겼어.’

못생긴 용병들 사이에서 그의 외모가 빛나는 것도 호감을 주는 이유 중 하나였지만 말이다.

* * *

“취익!”

- 주먹 쾅.

도주하려는 오크의 등에 흙덩이의 주먹이 쏘아져 꽂힌다.

푸확!

구멍이 뻥 뚫린 오크의 어깻죽지를 통해 반대편의 광경이 보였고, 스멀스멀 새어나오던 피가 한순간 터져 나오더니 오크가 쓰러진다.

털푸덕.

쓰러진 오크를 끝으로 주위에 서 있는 몬스터는 없었다. 흙덩이는 자연스레 오크의 머리를 쪼갠다.

빠각, 빠각-.

섬뜩한 소리는 6번이 들리고서야 끝났는데, 흙덩이의 몸에는 핏물 하나 묻어있지 않았다.

- 하나 나왔어.

그러면서 고사리 같은 두 손을 모아 불릿에게 내민다.

“수고했다네, 흙덩이여.”

스윽스윽.

흙덩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불릿. 흙덩이는 조용히 그의 손길을 받으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불릿이 사냥을 하러 나온 후 소환한 흙덩이는 이전과 동일한 태도를 보였다.

마치 전날 밤에 보였던 행동이 거짓이라는 양 아무렇지 않게 움직였는데, 그것을 보니 불릿 자신이 잘못 봤던 건가 생각할 정도였다.

‘후우, 이 문제는 그냥 넘겨야겠군.’

때때로 정령들은 알 수 없는 행동을 했었는데, 어젯밤의 흙덩이가 그 경우였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며 불릿은 마정석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반짝.

미약한 빛을 흩뿌리는 보석과도 같은 물체. 그것이 마정석이었다.

“최하급이지만 이게 평민들의 한 달 생활비라고 했던가…….”

정확히 말하면 4인기준 가정의 한 달 최소 생활비가 5실버였다.

제대로 된 생활을 영위하려면 적어도 8실버는 있어야 했다.

그렇지만 그건 불릿의 기준으로 ‘평범’을 가정한 것. 화전마을을 기준으로 치자면 1실버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그 기준을 이 토빗이라는 마을에서 생활하며 배워가고 있던 것.

여러모로 자신에게 유익한 생활을 가르쳐주는 마을이었다.

“하루에 한 번 오크나 고블린 무리를 사냥하면 못해도 5일이면 생활비가 생기는 것인가.”

오크는 평균 10마리에 1번씩 마정석을 준다. 고블린은 그보다 더 적어 15마리에서 20마리정도는 잡아야 간신히 한 개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정찰자, 그러니까 사냥도 겸하는 전사계급 중에서 조장급이 없으면 그 수는 더욱 불어난다.

아무래도 조장급은 더 뛰어난 놈들이 되다보니 상대적으로 마정석이 잘 나왔다.

“C급 용병이 오크 정찰자를 한 번 상대하고 나면 그날 하루는 못 싸운다고 했었지.”

그것도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것을 기준으로 한 말이다. 기습을 받으면 도망치는 것이 상책.

B급은 일반인이 강해질 수 있는 최대치였지만 넋 놓고 사냥하면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B급은커녕 C급도 없으니 누구와 비교를 할 수가 없군.”

대개 용병은 홀로 활동하지 않는다. 어지간히 강하지 않고서는 생존을 보장받을 수도 없고, 자기보다 더 강한 놈들도 잡을 수 있는 단체에 속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강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신만의 용병단을 꾸리고 싶은 것은 용병을 시작한 모든 이들의 꿈.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것이 아니면 거의 대부분의 용병들은 용병대나 용병단에 속해있었다.

“이정도면 B급은 될 수 있는 것인가…?”

============================ 작품 후기 ============================

오늘 오후 6시, 9시, 12시에 이어서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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