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7 산골마을 토빗 =========================================================================
지금은 혼자서 여행하기 위험한 시대였다. 흑마법사와의 전쟁으로 황폐화된 대륙은 도적이 들끓었고, 몬스터 또한 날뛰고 있었다.
혼자서 다니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니 상단의 상행위에 끼어서 가거나 용병으로서 호위임무를 맡고 참가하는 것.
그 외에는 딱히 없었는데, 그래서 이곳에 오는 용병이나 사냥꾼들은 눌러앉아서 목돈을 마련하려는 이들이 많았다.
말하자면 육지속의 원양어선(?)에 탑승한 셈. 어차피 유흥거리도 없고 기껏해야 싸구려 맥주를 들이켜는 정도니 돈 쓸 일도 없었다.
“제길, 더럽게 멀군.”
평소의 불릿 답지 않게 욕설이 터져 나왔는데, 생각보다 상황이 너무 안 좋기에 그랬던 것이다.
대체 자신의 영지에는 언제 도착한단 말인가? 자신의 생사를 알려야 하는데 상당한 시일이 흐른 지금, 어떤 배신자가 나왔을지 알 수 없으니 서신으로 해결할 수도 없었다.
오히려 이 기회에 불순분자를 색출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래서, 상단은 언제 오는 것이오?”
“한 달에 한 번 오는데, 어제 왔다갔소. 거 급하게 생각하지 말라니까 그러네. 돈이나 벌면서 기다리시오.”
“……후우. 나는 그만 먹겠소. 씻을 곳이 있소?”
불릿이 식사를 중단하자 주인장은 내심 기분이 좋아보였다. 그것이 불쾌해 왜 그러나 생각해보니 그의 시선이 자신의 음식을 향해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설마 남는 음식을 먹으려 그러나 생각했으나 자신의 술값을 넘어서는 금액을 포함시켰던 것을 생각하면 먹고도 남을 위인이었다.
“여기서는 못하고, 아까 말한 마탑지부 있잖소? 거기를 중심으로 상점들이 빙 둘러싸고 있는데, 돌아다니다보면 잡화점이 있소.”
“잡화점?”
뜬금없이 잡화점을 소개시켜주자 뭔 소린가 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을 들으니 납득하는 불릿.
“거기 주인집에 욕탕이 있는데 마을에서는 가장 크지. 그래서 종종 돈을 받고 대여해준다오. 아, 따끈한 물은 별도요금을 받으니 기억해두시오.”
산속에 위치한 마을이다 보니 별 걸로 다 돈을 버는 모양이었다.
불릿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자신이 남긴 음식에 손을 대려는 주인에게 말을 남겼다.
“곧 돌아올 테니 방을 준비해주시오. 더러운 건 싫으니.”
“꿀꺽. 아, 알겠소.”
부끄러움도 없는지 자신이 남긴 음식을 잘도 삼키며 대꾸하는 모습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여관을 나서는 불릿이었다.
“이곳인가?”
상점들을 빙 둘러보던 불릿은 뭔가 알 수 없는 물건이 잔뜩 그려진 간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른 곳들은 한가지 물건만을 표시해 뒀는데, 이곳만 난잡한 그림이 있으니 그야말로 잡화라고 부를 만 했다.
그곳에 들어서자 문에서 맑은 종소리가 울렸다.
딸랑-.
“앗, 어서 오세요.”
땀 냄새 풀풀 나는 사내들이 마을을 꾸리고 있다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그를 반겨주는 것은 이제 막 성년이 되었다 생각되는 소녀였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구성원이 남자만 있는 것도 이상한 일.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이곳에서 목욕을 할 수 있다 들었소만….”
다소 부끄러울 수 있는 이야기인지라 당당하던 불릿의 목소리도 조금 낮아진 것 같았다.
주인이 같은 남자였으면 모르되, 꽃다운 나이의 소녀였으니 지긋한 나이의 그로서도 조금 껄끄러웠으리라.
그러나 소녀는 그런 것이 없었는지 해맑은 웃음으로 그를 맞이하기만 했다.
“얘기를 듣고 오셨군요. 욕탕의 기본 대여비는 5쿠퍼구요, 따뜻한 물을 사용하시려면 20쿠퍼를 더 내셔야해요.”
갑자기 폭등하는 가격에 살짝 인상을 찌푸리는 불릿. 그의 심기가 불편해보였는지 소녀가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비싼 건 절대 아니에요. 요즘 날씨가 따뜻한 편이지만 산에서는 유난히 추운 거 아시죠? 찬물로 목욕했다가 감기라도 걸리시면 몸으로 뛰시는 분인데 일에 지장이 생기지 않을까요?”
좔좔좔 읊는 것을 보니 이런 상황이 익숙한가보다.
‘하긴, 한 끼 배부르게 먹는 것보다 목욕비가 더 비싸면 인상을 쓸 만도 하지.’
불릿은 귀족. 서민들과 밀접한 식량에 관한 사항은 그의 업무 특성상 빠삭하다 하더라도 사소한 사항까지는 몰랐다.
그저, 이 부분에서는 인상을 찌푸려야 자연스럽지 않을까 싶어 행동했던 것.
그것이 제대로 맞아떨어졌다 판단되자 내심 뿌듯하기도 했다.
“불을 지피고 유지하려면 장작을 사용해야 하는데, 목욕을 샤워처럼 금방 끝내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장작이 많이 사용되는데, 그 시간동안은 제가 가게도 못보고 지키고 있어야 하니까… 아무래도 화재가 날 수도 있으니.”
“그만, 알겠소. 그리고 이곳은 딱히 의류점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 옷도 취급하오?”
“네, 말씀 잘하셨어요! 저희가게는 없는 게 없답니다!”
이전에 여관주인이 보였던 반응을 그대로 답습하는 소녀. 역시 불릿은 대박손님이었나 보다.
“내 체형에 맞는 간편한 옷으로 상하의 2벌이면 얼마요?”
천옷은 전투 중에 잘 찢어진다. 그래서 이곳까지 이동하는 동안 겪은 전투로 불릿의 차림새는 후줄근한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자 소녀는 불릿의 위아래를 훑어보다 그의 얼굴에서 시선이 고정되더니 눈과 눈이 마주치자 얼굴을 붉히기 시작했다.
남은 돈을 계산하던 불릿은 갑자기 소녀의 얼굴이 붉어지자 어디 아픈 곳이 있나 물어보게 되었다.
“괜찮소? 갑자기 붉어진 것을 보니 중독증상인 것 같기도 한데, 식중독인 것인가?”
그러자 정신을 차린 소녀가 한층 더 붉어진 얼굴로 손사레를 쳤다.
“아,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 우으으…, 사, 상하의 한 세트로 50쿠퍼니까, 1실버…네요….”
꼼지락꼼지락.
몸을 배배 꼬는 것이 볼일이 급해 보이기도 했다.
“음….”
이에 따라 불릿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또 돈이 모자라는군.’
살면서 돈 걱정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이런 상황이 연속해서 발생하자 진땀이 나는 불릿이었다.
그의 수중에 48골드나 있건만 신변의 안전상 여기선 사용할 수가 없었다.
결국 마정석을 처분해야 한다는 소리였는데, 잡화점에서까지 마정석을 건네는 것은 그가 판단하기에 아니었다.
“후우. 여기 75쿠퍼요. 옷은 1벌만 주시기 바라오.”
“아, 네. 알겠습니다….”
돈을 받은 소녀가 아직도 멍하니 있자 불릿이 그녀를 깨웠다.
“무언가 더 있소?”
“예, 아, 아니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금방 되니까!”
다다다-
소녀는 돈을 앞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고서 바람처럼 안으로 들어갔다.
“후우우, 정신없는 처자로군.”
겉모습은 젋지만 실은 40이 넘은 아저씨의 대사였다.
* * *
간신히 목욕까지 끝내고 여관으로 돌아오자 잘 시간이 훌쩍 지났다.
이곳에서는 여관도 날이 저물면 영업을 안 하는지 그가 돌아오자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확실히 이전의 화전마을처럼 개방된 것과 비교되는 점이었다.
자신의 방에 들어선 불릿은 문을 잠그고 침대에 앉았다.
털썩.
“흠, 피곤하군.”
몸을 깨끗이 씻어 한층 인물이 살아난 불릿. 여러모로 봐도 일반적인 평민으로 안 보이는 외모였다.
그는 피곤한 기색을 보였지만 흙덩이를 소환하는 것을 빼먹지 않았다.
스으윽…
근 반나절 만에 소환된 흙덩이. 오랜만에 헤어져 있던 탓인지 소환되자마자 불릿의 옆에 같이 앉는다.
삐그덕-
나무판자를 덧댄 곳에 지푸라기를 깔아 만든 침대라서 그런지 빈약하기 그지없었다.
흙덩이를 소환하자 잠을 자도 무리가 없는 상황. 그동안의 피곤함이 몰려와 잠이 쏟아지려 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차피 돌아가야 했다. 문제는 단시간에 이동할 수는 없다는 점.
그 남는 시간동안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냐는 것이 관건이었다.
“이 상태로 영지에 복귀해봤자 좋은 일이 벌어질 것 같진 않군.”
현재 불릿은 알 수 없는 사태로 육체가 젊어진 상태. 그를 알아볼 사람이라곤 늙은 가신들 밖에 없을 텐데, 자신을 적대하는 놈들이 가신들을 부정하면 자신은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자신을 증명하지 못했을 시 남는 것은 오직 무력. 그리고 불릿에게 무력이란 정령의 힘을 뜻했다.
지금 불릿은 과거의 힘을 온전히 되찾지 못한 상황. 중급의 경지로 올라서 흙덩이를 위로 끌어 올리던가 새로운 정령을 소환해야 했다.
“문제는 중급 정령이 흙덩이만큼의 활약을 보여줄 수 있냐는 것인데….”
흙덩이의 능력은 희한했다. 분명 하급 정령임에도 불구하고 중급 정령도 선보일 수 없는 기상천외한 공격들.
게다가 계약자를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 이건 주인과 수하, 또는 노예가 아닌 평행을 달리는 동등한 사이이기에 이루어지기 힘든 관계였다.
이전에 계약했던 물의 정령들 때문에 일종의 편견을 가지고 있는 불릿.
그는 흙덩이만큼 새로 계약을 맺을 정령이 명령을 잘 따를지, 자신을 보호해줄지 의문을 갖고 있는 것이다.
- 나 왜?
“음?”
흙덩이의 물음에 불릿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애달픈 눈빛. 그 속에는 물음표가 떠올라 있었는데, 불릿은 아차 싶었다.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을 통해 고민을 곱씹고 있었는데 흙덩이를 소환한 것을 잊고서 그에 관한 얘기를 내뱉은 것.
정령과의 관계는 수직이 아니기에 언제나 말조심을 해야 했다.
그것이 자신에게 호의적인 존재라 할지라도 예의 있게 대하는 것. 그것이 귀족으로서의 명예를 지키는 행위 중 하나였다.
“으음. 미안하네. 자네의 능력을 의심했던 것이 아니야.”
- 뭐가?
이해를 못했는지 흙덩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그를 올려다본다.
아직 언어에 익숙하지 않기에 그의 혼잣말에도 반응하지 못했지만 불릿은 귀족으로서의 명예에 흠을 냈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자네를 욕되게 했네. 용서해다오.”
- 욕했어?
엄밀히 말하면 흙덩이의 뛰어남을 언급한 것이지만 그를 냅두고 다른 정령을 소환할 생각을 말한 것은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는 말.
그것을 사과하는 것이다.
“중급 정령을 소환할 생각을 했네. 자네에게 한계가 있는 것은 소환자인 본인의 탓인데 그걸 흙덩이, 자네의 탓으로 돌린 것이지.”
그러면서 자세를 약간 돌려 흙덩이를 바라보며 정중하게 사과한다.
“불릿 폰 바포의 이름으로 사과하네. 실언을 해버렸어….”
정좌를 하고서 고개를 숙이는 사과. 백작으로서 살아오며 언제 이런 사과를 해봤을까?
이전 물의 정령들의 앞에서도 자주 실언을 했으나 그는 사과한 적이 결코 없었다.
싸가지 없는 물의 정령들은 언제나 그의 심기를 긁어놓았기에 불릿도 선을 그어놓아 독백조차 그들의 앞에선 한 적이 없던 것.
이러한 행동은 불릿이 흙덩이를 얼마나 믿고 의지하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불릿의 이러한 행동에 흙덩이의 동공이 흔들린다.
- 어째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자기는 괜찮다 여기지만 불릿은 심각하게 받아들여 사과를 한다.
경험이 없는 흙덩이는 어떡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듯했으나 이내 결단을 내렸는지 허벅지에 올라간 그의 손을 잡았다.
덥썩.
“……?”
고사리 같은 손이 자신의 손을 붙잡자 불릿은 숙였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 확인한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에 그의 손을 올리는 흙덩이.
스윽, 스윽-.
- 괜찮아, 괜찮아.
이 이상의 행동을 흙덩이는 몰랐다. 친밀함을 나타내는 최고의 의식이자 감정을 느낄 수 있는 행동.
흙덩이는 자신의 감정을 알려줄 수 있는 몸짓을 보여준 것이다.
불릿은 흙덩이의 손길에 따라 움직이는 자신의 팔을 지켜보았다.
‘내가 이 정령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 것인가?’
세상을 처음 접한 땅의 정령. 순수함의 결정체라고도 할 수 있는 흙덩이에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정령사인 불릿이 무얼 해줄 수 있을 것인가?
정령과의 계약은 그들에게 인간 세상에 소환하여 많은 경험을 얻게 해주고 장시간 소환할수록 그들의 기운도 많이 쌓여 서로에게 좋았다.
하지만 그것은 계약에 의한 이득. 불릿이 개인적으로 해주는 것이 아니었다.
“흙덩이여.”
- 왜?
스윽-, 스윽-
말을 하는 와중에도 그의 손을 놓지 않는다. 동화가 진행된 것일까? 흙덩이는 불릿의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좀체 손을 놓지 않았다.
그런 흙덩이를 바라보며 불릿이 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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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구도팔문입니다. 오늘 조금 일찍 올려봅니다.
3시, 6시, 9시, 12시에 연속해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