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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정령사-21화 (21/241)

00021  흙덩이와 아이들  =========================================================================

“지옥송곳 다연발.”

- 지옥송곳…

슈슈슈슉!

슈슈슈슈슈슉!

땅에서 원뿔형태의 돌이 치솟아 오른다. 길이가 장장 1미터나 되는 돌송곳이 바닥에서 솟아오르니 이에 벌벌 떨지 않을 적이 있을까?

불릿은 카인의 정령력을 키워주면서 자신도 흙덩이와 수련을 이어가고 있었다.

새롭게 개발한 지옥송곳은 이전에 속도가 느려 사용하지 못했던 것을 비약적으로 증가시켜 이제는 1초 안에 발동시킬 수 있었다.

“후욱, 후욱.”

그러나 미간을 찌푸리며 손으로 주무르던 불릿은 흙덩이에게 기술을 중지시켰다.

“정령력의 소모가 극심하군.”

기본적으로 땅은 딱딱하다. 물은 수분이라는 형태로, 바람은 공기라는 형태로 허공에 존재한다. 불은 산소와 그것을 일으킬 기운만 있으면 쉽게 타오른다.

하지만 땅은 있는 그 자체를 가지고 이용해야했다. 흙이나 돌이 없으면 상대적으로 기운이 약해졌고, 외부로 형태를 만들어 발출하는 것은 그 추진력까지 계산해야했기에 정령력의 소모가 많았다.

- 불릿, 괜찮아?

애달픈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다가온 흙덩이. 불릿은 흙덩이를 보며 생각했다.

‘흙덩이는 잘해주고 있다. 하급 정령치고는 강한 축에 들고, 일부를 본다면 중급 정령의 영역까지도 넘보고 있지.’

예를 들어, 조금 시간이 걸리지만 돌벽도 소환할 수 있다. 돌벽은 장장 가로세로 2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물체. 그것을 10초안에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하급 정령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다.

게다가 계약자도 생각지 못한 자신의 몸체를 쏘아내는 공격. 주먹 쾅은 그에게 있어 굉장히 기발한 것이었다.

놀라온 효율을 보이는 주먹 쾅은 이제 그에게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공격수단.

하지만 몸을 구성하는 흙을 채워야 했기에 시간이 조금 걸리는데, 이것은 현재로선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흙덩이여, 주먹 쾅을 더 빠르게 할 수는 없는가?”

자신에게 한계가 있으므로 흙덩이에게로 시선을 돌려본 것.

흙덩이는 하급 정령치고는 특별한 존재였기에 연사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 물어보았다.

- 몸, 안 차. 힘, 더 많이많이…

말하자면 중급 정령이 되지 않는 이상 이 이상은 무리라는 뜻.

흙덩이가 활이라면 불릿은 화살. 흙덩이가 중급 정령이 되거나 불릿이 정령력을 쌓아 다른 중급 정령과 계약을 맺거나 졍령력이라는 화살을 구비하는 것.

그 외에는 다른 방식을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불릿 본인의 문제.

“본인이 자네에게 한계를 주는 것 같아 미안하군.”

언제 불릿이 이런 자괴감을 맛보았을까? 그에게 있어 흙덩이는 보석의 원석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흙덩이라는 좋은 인재가 무능한 군주를 만나 그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는 것 같아 약간의 자괴감을 느끼고 있었다.

흙덩이는 그런 불릿의 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에 올리며 중얼거릴 뿐.

- 친밀, 친밀…

“그래그래, 계약자간엔 친밀해야함이 마땅한 노릇이지.”

이제는 체면을 반쯤 포기한 상태로 흙덩이에게 몸을 맡기는 불릿. ‘그래도 백작 체면에…’라는 것은 흙덩이에겐 통하지 않는 변명이었다.

초기의 거짓으로 인해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친밀을 위한 의식으로 여기고 있으니 더 많이 쓰다듬어줄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이 배경의 한켠에는 아직도 마법진에 올라가 정령력을 쌓고 있는 카인이 보이고 있었다.

우우웅…

다만,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마법진에는 다른 것들이 치워지고 물그릇만 있다는 점이었다.

그게 의미하는 것은 하나로 좁혀지는데, 카인이 어떤 원소에 친화력을 지녔는지를 알려주었다.

한동안 그 상태를 유지하던 카인은 집중력이 떨어졌는지 눈썹을 찌푸리다 이내 눈을 떴다.

“후우우.”

어린아이에게 명상이란 것은 쉽지 않은 것으로, 대개 아이들은 주의력이 떨어져 산만하고 호기심이 왕성하다.

그래서 한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 했는데 몇 시간이나 눈을 감고 졸지도 않은 채 정령력을 쌓는 카인이 대견한 것이다.

카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굳었던 몸을 풀고 있을 때, 마침 휴식을 취하던 불릿이 카인에게 다가왔다.

저벅저벅.

“카인, 수련은 잘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예. 말씀해주신 대로 하니까 그런 것 같아요.”

이전에 불릿이 말하길, 물의 기운은 다른 원소들의 기운과 대조되지 않는 것이라 말했었다.

즉, 무엇인지 모르면 그것이 바로 물의 기운이라 일렀었는데 어느 정도 기운이 쌓여도 그것이 무엇인지 도저히 모르겠던 카인이 불릿에게 물었었다.

이에 외부에서 확인이 가능한 시점까지 쌓인 것을 보고 불릿이 이러저러한 방법을 통해 물의 정령력이란 것을 알아내어 지금까지 수련시켰던 것이다.

“카인, 이제 마을의 방벽도 거의 완성되지 않았어?”

아직 한 달이 다 되지는 않았지만 마을의 방벽은 마무리작업에 들어가 있었다.

그것은 불릿이 약간의 도움을 주었기 때문인데, 흙덩이를 통해 한층 보강해주니 목책만 덩그러니 있는 것보다 더욱 튼튼하고 견고해졌다.

게다가 속도도 빠르니 생계가 급한 그들로서는 더할 나위가 없던 상황.

거기에 더불어 그들이 사용할 자금으로 10골드를 내놓으니, 마을에선 그를 영웅이라 추대하는 분위기였다.

불릿에겐 별것 아니지만 그들에겐 인생을 뒤바꿀 큰 자금. 당연히 고맙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예, 볼레트 씨. 너무도 감사하고,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아이가 할 말은 아니었으나 얼마나 고생했으면 이럴까 싶어 안쓰럽기도 했다.

화전마을의 아이들은 도시, 또는 다른 마을보다 더 일찍, 더 고달프게 일을 해야 했을 것이다.

영특한 카인은 자신의 앞날이 우중충하다는 것을 알고 불릿의 호의가 얼마나 크고 값진 것인지를 잘 알기에 거듭 고마움을 내보이고 있었다.

“슬슬 나도 떠날 시기가 다가온 것 같아서 말을 꺼낸 거야.”

그러나 이제는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언제까지고 이곳에만 머무를 수는 없는 일.

자신에게는 영지가 있고 그곳의 백성들이 오직 자신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예에?! 버, 벌써 가신다구요!”

그게 카인에게까지 통용되는 사실은 아닐 것이다. 카인에게 있어 불릿은 자신이 나아갈 길이자 마을을 구해준 구세주.

게다가 그가 없으면 당장 몬스터는 어찌하란 말인가?

“너도 예상하고 있지 않아? 볼레트가 내 진짜 이름이 아니란 것을.”

카인은 영특하다. 그런 아이가 불릿이 기억상실에 빠졌었단 거짓을 믿을까?

물론 진짜 기억상실에 빠졌을 수도 있지만, 불릿이 지금까지 보인 행동을 보면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다.

화전마을의 주민들은 불릿이 이곳에서 정령을 새로 계약한 것을 모르므로, 정체를 숨기고 잠시 몸을 의탁하러 온 정령사로 착각한 것이다.

그러나 카인은 불릿의 거짓을 모른 체 해주면서 그를 배려해주었다. 어린나이란 것을 감안하면 보이기 힘든 자세.

이러한 점이 기특했기에 자신이 정령술을 가르쳐준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보다, 카인도 정령과 계약을 맺어야하지 않겠어?”

“볼레트 씨가 떠나는 게 더 큰일인 것 같은데요….”

아직 어린아이라서 그런 걸까? 카인은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정령과 계약하는 것보다 그가 떠난다는 사실에 더 충격을 받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정을 변경할 생각은 없는 불릿. 그에게는 돌아가야 할 장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본디 이 마을의 주민이 아닌 사람, 게다가 나는 반드시 돌아가야 할 이유가 있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한들 나로선 들어줄 수가 없겠네.”

“죄송해요. 고집 피우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어차피 헤어질 거라면 이별선물로 정령과의 계약까지 맺어주고 떠날게.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하급 정령만 있더라도 저번처럼 소수로 쳐들어오는 몬스터쯤은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정령사가 대접받는 이유는 단순히 희귀하기 때문이 아닌 강력함과 그 유용성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네. 부탁드릴게요.”

울상이 되었지만 울지 않고 참는다. 이런 면을 보면 그저 기특하기만 한 어린아이로 보였기에 절로 흐뭇해지는 장면이었다.

벌써부터 인내라는 것을 보여주는 아이의 머리를 이제는 익숙해진 쓰다듬기로 달래주는 불릿이었다.

* * *

콰드드득!

둔탁한 소리와 함께 목책의 사이에 비어있던 홈을 메꾼다.

완성된 목책들 사이에 흙을 채우고 모자란 부분을 돌로 막아놓으니 꽤나 훌륭한 방벽이 탄생했다.

“자, 이것으로 방벽은 완료되었군.”

“고생하셨습니다.”

“음, 촌장님이시군요.”

어느새 다가온 촌장이 방벽 앞에 서있는 불릿과 흙덩이에게로 다가온 것이다.

오크들의 습격 이전엔 자신과 같이 있는 것을 거북해하던 인간이 살갑게 대해오자 거북함이 일고 있었다.

하지만 촌장은 그가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도 끝끝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볼레트 씨 덕분에 저희 마을도 한결 안전해졌습니다.”

이전엔 하대를 하던 촌장이 언제부턴가 존대를 해주고 있었다.

왜 이러는지 이유를 알고 있었지만 어차피 곧 떠날 마당에 뭔가를 더 하는 것도 귀찮았던지라 내버려두던 상태.

불릿은 그저 청년연기를 계속할 뿐이었다.

“이곳에도 행상인이 오고갑니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고개를 저으며 부정하는 촌장. 확실히 깊은 산골의 화전마을까지 찾아오기엔 이익도 없고 위험하기까지 했으니 그럴 일은 없었다.

불릿도 혹시나 해서 물었던 말,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내려가는 길에 용병을 보내줘야겠군.’

영지에서 도망친 이들이 제 발로 영지에 들르진 않을 것이다.

몰래 간다면 모를까, 마을에 들여올 많은 물품을 가져오기란 불가능. 아니면 되려 돈을 빼앗길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불릿은 자신이 이곳에서 내려가 가는 길에 용병을 고용해 마을의 발전에 필요한 물품을 보내주고 그들 스스로 지키게끔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무슨 일이신지…?”

촌장은 카인도 알아들을 법한 이야기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남을 속이는 것에 능숙하고 화술이 괜찮은 편이었기에 배움이 짧은 화전마을의 주민들에게서 대표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면 때문에 불릿이 어른들이 아닌 아직 소년에 불과한 카인을 가르치며 마을의 미래를 구상했던 것이다.

‘탐욕이 과하면 화를 부르지.’

촌장은 사악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기억상실에 걸렸던 척 연기를 하던 불릿에게 사기를 치는 것을 보아 믿을만한 이는 못 되었다.

흑마법사로 인해 피폐해진 세상이 도적으로 들끓는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

그러한 와중에 영지에서 도망쳐 화전마을을 꾸린 이가 몸을 해치지 않고 단순히 돈만 챙긴 것을 보면 안다.

힐끔.

무언가 기대를 하는 촌장의 시선. 여전히 불릿의 눈치를 보면서도 눈알을 데룩데룩 굴리는 것이 뭔가 건져먹을 건덕지가 없을까 고민하는 얼굴이다.

한심해 보이면서도 삶이 그렇게 힘들었을까 라는 생각에 불릿은 절로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막아야했다.

‘흐음, 고약한 작자로고.’

그래도 자신에게 사기를 치려했던 행위를 용서할 수 있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애초에 시작이 나쁘니 촌장의 모든 행동이 고와보일 수 없었고, 저번에 자신의 수련을 몰래 훔쳐볼 때는 그냥 앞에서 대놓고 보여주어 촌장만 협박할까 생각도 했었다.

이러나저러나 촌장은 좀체 믿을 수가 없는 인물이었던 것.

“뭔가 궁금하신 점이라도 있으십니까?”

잠시간 말이 없자 불릿에게 고민이 있다고 여겼는지 대답을 요구해오는 촌장.

불릿에게 있어 고민이 있다면 이 멍청하고 탐욕스런 촌장을 어찌 다룰까하는 것이었다.

‘네놈이 어찌하여 마을의 대표자가 되었는지가 궁금하구나, 이놈아!’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불릿의 속마음. 그는 현재 자신의 정체를 숨겨야 했으니 말이다.

============================ 작품 후기 ============================

내일은 오후 6시와 12시에 올라옵니다.

빨간 날에는 더 많이 올라온다고 보시면 될 것 같군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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