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9 흙덩이와 아이들 =========================================================================
아이들이 자신의 말투를 두고 수근 대는 것을 들었지만 이왕 정체를 숨기는 거, 화끈하게 철면피를 까는 것이 좋았다.
- 몰라, 그만해…
거부감을 드러내자 불릿도 고향이랄 수 있는 곳을 묻는 걸 그만두었다.
‘이상하군. 이건 대놓고 싫어하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어디서 왔는지를 물을 때마다 이렇게 반응한다. 불릿을 좋아함을 누가 봐도 확실히 알 수 있었지만 이것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알려주지 않았다.
모르기도 하지만 알려주는 것에도 거부감을 드러내니 난감한 상황.
그러나 억지로 알 만큼 중요하진 않았다. 정령은 정령, 인간은 인간. 계약만 잘 지키면 되는 것이다.
“볼레트 형. 얘는 이름이 뭐야?”
“이름이라…. 정령이니까 딱히 없고, 우리는 흙덩이라고 부르고 있다만….”
“그게 이름이야?”
“이름이라기보다는 지칭하는 단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겠지. ‘그’나 ‘당신’처럼 말이야.”
정령에게도 자신만의 이름이 있는지 그 어떤 정령사도 알지 못했다.
굳이 정령사만이 아니라 호기심이 있는 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궁금해 했으나 추측만 난무할 뿐, 당사자가 말을 하지 않으니 알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정해진 것이 물이나 불의 하급 정령, 중급 정령, 상급 정령 뭐뭐뭐, 누구누구누구. 이런 식으로 불렀던 것이다.
“이상해요, 볼레트 오빠. 이름이 없으면 지어주면 되잖아요?”
소녀의 말에 불릿은 고개를 저으며 부정한다.
“리아,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란다.”
“왜요?”
“정령의 이름은 사람이 함부로 부르면 안 되거니와 음성으로 뱉을 수도 없고, 글로 써낼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야.”
정령. 본디 자연계의 일부였던 무언가가 계기를 얻어 자아를 얻어 하나의 객체가 된 존재.
그들에게 이름, 즉 진명(眞名)이란 자신의 존재여부를 좌지우지하는 것으로 그들에게 있어 목숨이란 진명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계약자라도, 아니. 계약자이기에 알려주지 않았다.
계약자는 계약으로 맺어진 사이일 뿐이니까. 과거 명성을 떨친 이들은 모두 정령의 진명을 알 수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런 기회가 없었지.’
물의 정령들은 그를 싫어했다. 흙덩이는 잘 모르겠으나 아직까지 흙덩이의 진명은 모른다.
남의 손에 자신의 목숨을 올려놓는 거나 마찬가지니 욕할 일도 아닌 것.
“쉽게 말하자면 그들에게 이름은 목숨이란 것이라고 할 수 있어. 서로 동등한 입장의 계약관계이기에 함부로 대해서도 안 되는 것이고.”
“에이, 그게 뭐야.”
“리아는 잭스의 심장을 손에 쥐고 있을 수 있니?”
“에?”
“형, 말이 되는 소릴 해요. 사람이 심장을 떼고 어떻게 살아요?”
이상한 비유. 그러나 정령을 사람과 똑같이 생각하면 평생을 가도 이해할 수 없다.
“리아가 정령의 이름을 알고자하는 일이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뜻이야.”
그 말에 주위에 있던 모든 아이들이 벙찐 얼굴로 흙덩이를 바라보았다.
멍-.
시끌벅적한 무리 속에서 카인은 입을 살짝 벌리고서 흙덩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가 봐도 한눈에 반한 모습. 저번에도 이르길, 경황이 없던 중에도 흙덩이를 묻던 모습이 떠오른 불릿이 카인에게 물었다.
“카인, 흙덩이가 그렇게 좋아?”
“스읍! 네? 아, 아니, 그게….”
쑥스러운 듯 좀체 말을 하지 못하는 카인. 그러나 불릿은 이 모습에서 다른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평소와 다른 것은 맞다. 그러나 흙덩이를 좋아하는 태도는 아니지. 표정, 동공, 어투까지. 좋아한다는 점을 찾아볼 수 없군.’
어린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데 익숙하지 않다. 해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는 만에 하나.
어른들도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얼굴이 붉어지고 시선을 마주치질 못한다.
또한 말에서도 감정을 느낄 수 있는데, 미세한 떨림, 사용하는 단어, 상대방에게 좀 더 잘 보이려는 것까지.
“얼레리 꼴레리!”
“뭐야, 너도 쟤가 좋냐? 체.”
“근데 정령이 뭐야? 어디 사는 부족인가? 피부색이 좀….”
“피부 좀 누러면 어때? 엄청 이쁜데.”
아이들은 카인의 태도를 보고 놀려댔으나 카인은 이에 흔들리지 않고 그저 망설이는 모습만을 보였다.
여기서 확신을 얻은 불릿.
‘카인은 흙덩이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 이유가 무엇이지?’
머리를 팽팽 돌리며 카인을 주시한다. 그의 시선을 느낀 카인은 망설임을 멈추더니 닫혀있던 입을 열었다.
“너희들 그만해. 볼레트 씨, 잘은 모르겠는데 왠지 자꾸 쳐다보게 됐어요. 흙덩아, 불쾌했다면 미안해.”
- …? 불쾌?
“흙덩이여, 그것은 기분이 나쁘다는 뜻이라네.”
- 너, 저리가.
흙덩이가 입을 벙긋 거리며 카인을 밀어내자 그가 보이는 반응이 가관이었다.
콰광!
마치 이런 효과음이 들리는 것처럼 리얼한 액션을 선보이는 카인.
좋아하는 것도 아니라면서 저런 태도는 더욱 의심을 증폭시켰고, 아이들의 놀림은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불릿은 안다. 카인이 거짓을 고할 아이가 아니란 것을.
‘사랑이란 감정이 아니라…. 어쩌면 혹시…?’
무언가 짐작가는 것이 있는지 불릿은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다 천천히 입을 떼었다.
“카인.”
“아, 네, 볼레트 씨.”
“너도 모르게 흙덩이를 자꾸 쳐다보게 되니?”
“네…, 죄송해요.”
“혹시나 해서 말인데, 그에게서 어떤 이끌림 같은 것을 느꼈니?”
“이끌림…. 예! 그 말이었어요! 제가 느낀 감정이!”
적절한 단어를 떠올리지 못했던 것인지 불릿이 이끌림이란 말을 꺼내자 야단법석을 떨었다.
‘이끌림, 과연 그렇군.’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과거 그가 경험했던 것과 흡사한 현상.
그렇다면 카인은 정령술에 재능이 있을지도 몰랐다. 자세한 것은 본격적으로 돌입해야 알겠지만 그렇다는 판단이 들었으니 이제는 행동을 개시해야 할 차례.
불릿은 아이들이 자신과 흙덩이를 둘러싸고 시끄럽게 떠들어도 오직 카인만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카인, 정령이란 존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니?”
“정령…말이에요?”
그러자 흘깃 흙덩이를 곁눈질하며 대꾸한다.
“좋달까…, 아니, 가지고 싶다고 해야 하나? 말로 설명이 잘 안 되네요.”
“그렇군. 좋아좋아.”
정령에 대한 애착. 재능이 있다 판단됐고 정령에게 나쁜 감정이 있는 것 같지도 않으니 이만하면 기초정도는 알려줘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나한테서 정령술에 대해 가르침을 받아보겠니?”
“예엣? 저, 정령술을요?!”
얼마나 놀랐는지 항상 침착하던 카인이 소리를 질렀다. 덩달아 놀라는 아이들.
그러나 이를 파악하기에 카인의 놀람은 너무도 컸다.
“제, 제가, 저렇게 귀, 귀여운 아이를, 소환할 수 있다구요?!”
“…응. 아마도.”
“우와!”
아이들과 어울리면서도 한 번도 불릿의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에 나름 신선했다.
‘이래야 아이답지 않은가?’
비로소 아이다움을 보여주는 카인에게 한차례 고개를 끄덕여주는 불릿.
“어때, 배워보겠어?”
“예! 부탁드립니다!”
꾸벅 고개까지 숙이는 모습이 여간 기쁜 것이 아니었나보다.
주변의 아이들은 부럽다와 잘 이해가 안 간다는 부류로 나뉘었지만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저 아이들에게 재능이란 것이 있는 것 같진 않았으니까.
소문이야 자신에게 배우면 자연히 퍼질 일. 어차피 외부와 단절된 좁은 마을이니 상관도 없었다.
‘흙덩이와 같은 외모로 소환할 수 있길 바라야겠군.’
원한다고 해서 반드시 저런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 * *
쏴아아-
그들은 폭포수의 앞에 다가와 있었다. 모름지기 정령술은 자연과의 접촉이 많아야 좋은 법.
인간이 바글대는 곳은 아무래도 기운이 혼탁하고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불릿이 카인을 데리고 자신만의 수련장으로 데려가자 카인은 처음 와본 곳도 아니면서 신기한 듯 이곳저곳 둘러보고 있었다.
“카인도 이곳이 처음이니?”
“아니요. 자주는 아니지만 몇 번 와봤어요.”
그렇다면 신기할 것도 없다는 뜻. 뭣 때문에 사방을 훑어보며 처음 온 것처럼 행동했을까?
말은 안 했지만 자신도 본인의 행동이 이상함을 깨달았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대꾸하는 카인.
“아니, 뭐랄까. 여기가 예전의 그곳이라는 느낌이 안 들어서요. 좀 더 충만한, 계속 머물고 싶은 느낌? 이상하네요.”
“그래? 그럼 이곳에 집을 지으면 되지 않을까?”
“위험하니까요. 그래서 더 이상해요. 위험한 걸 아는데 집보다 더 포근한 것을 느끼니까.”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불릿.
‘확실히 재능은 있다. 그런 것을 몸으로 체감하고 있으니.’
보통은 정령사라 하더라도 계약을 맺기 전에는 정령이 머문 자리를 알지 못한다.
요리를 예로 들어보자. 장차 요리계의 풍운아가 되어 맛만 보아도 머리 뒤에 이상한 글자가 지나가며 매우 맛있다는 표현을 할 정도로 재능이 있다고 치자.
하지만 칼질도 배우지 않은 사람에게 대뜸 난이도 최상급의 요리를 만들어보라 하면 당연히 못한다.
그런 것처럼 모든 일에는 단계가 있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 카인이라는 아이는 불릿보다도 더 재능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던 불릿은 흙덩이와 카인이 손을 맞잡으라 말했다.
“어, 어째서 그런…??”
- 응.
카인은 당황하여 의문을 표하였고, 흙덩이는 곧바로 카인의 손을 붙잡았다.
약간은 미지근하면서도 포근한 감촉의 손. 정령이란 것이 속성에 따라 주는 촉감이 다르다는 것을 모르는 카인은 슬며시 얼굴을 붉혔다.
“보, 볼레트 씨. 이 아이는 정령, 정령이 맞는 거지요?”
“그래, 맞아. 땅의 하급 정령이지.”
“…생각보다 인간과 별로 차이가 안 나네요.”
- 이거, 끝?
그들의 대화는 자신과 상관없다는 듯 다음 명령을 기다리는 흙덩이.
고조도 없는 음성은 손을 맞대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감정이 없어보였다.
“잠시 그러고 있게. 카인, 뭔가 느껴지는 게 없니?”
그의 행동에 뜻이 있다 생각한 카인은 그가 바라는 것을 알고자 눈까지 감고 애를 썼다.
“으음, 으으음-.”
신음 비슷한 소리를 내면서 노력하기 시작한다. 그런 카인을 애달픈 눈으로 쳐다보다 불릿과 번갈아 보며 고개를 갸웃하는 흙덩이.
그러거나 말거나 불릿은 그런 그들을 내버려두고 자기만의 상념에 빠져들었다.
“방벽을 설치하라 했건만, 언제 완성이 될는지….”
그가 카인에게 가르침을 내리겠다고 하자 카인의 부모는 굉장히 좋아하였다.
아무렴, 마을을 구해준 은인이자 범상치 않은 인물인 불릿이 손수 아들을 키워주겠다는데 그 누가 싫어하겠는가?
그는 카인의 부모에게 알려주면서 촌장에게 경고했다.
“서둘러 마을의 목책을 완성하세요. 다른 것을 모두 제쳐두고서라도 반드시 완성시켜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래서는 먹고 살기가….”
“오크, 또 보고 싶습니까?”
협박성 짙은 말로 간신히 설득하고서야 행동으로 옮기는 촌장.
불릿은 그런 그가 못미더웠다. 그래서 추가한 한마디.
“일이 제대로 진행되어 있지 않는다면 1골드가 잘게 나누어질지도 모르겠군요.”
“그게 무슨?”
“흠, 일을 잘하는 사람이 많이 가져가야하지 않겠습니까? 촌장님이 노시는데 돈을 가져가실 이유가 없지요.”
그 말에 자신이 손수 팔까지 걷어붙이며 일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역시 세상은 돈이다.
비록 목책이지만 방벽이 완성되기까지 그의 예상으로는 한 달.
그동안은 자신이 마을을 지켜주며 카인에게 기초 정령술을 가르쳐줄 예정.
잘만 한다면 한 달 안에 자신에게 맞는 속성의 정령을 소환해 계약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정령의 소환과 계약은 별개의 문제, 그래서 잘하면 계약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소환만 하고 퇴짜 맞는 경우도 다반사.
“으으으음.”
연신 신음성을 내며 안간힘을 쓰는 카인. 그런 카인을 이상하게 쳐다보다가 지루한 듯 한층 더 애달픈 눈빛으로 불릿에게 구원의 사인을 보내는 흙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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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9시, 12시에 이어서 올라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