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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정령사-18화 (18/241)

00018  흙덩이와 아이들  =========================================================================

쉽게 들뜨고 가라앉는 아이들은 잊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그가 괜히 나선 것이 아닌데 카인을 제외하면 의도조차 파악하지 못한 모습.

그러나 카인이 특이한 것이지 대개 아이들의 모습은 이렇다.

“흠. 뼈가 부러진 것 같진 않고, 근육과 인대가 상한 것 같구나. 오크의 몽둥이질을 막다가 다친 것으로 보이는데, 맞니, 카인?”

혹시나 다른 이유로 다쳤다면 좀 더 살펴볼 요량이었기에 카인에게 물음을 건네는 불릿.

그러자 카인은 고개를 저으며 그의 말이 맞다고 했다.

고개를 끄덕이던 불릿은 아이들 모두가 신기해할 광경을 보여주었다.

“흙덩이여, 부름에 답하라.”

스르륵-

마치 땅에서 솟아나듯 누런 피부를 가진 미소녀가 등장하자 아이들이 감탄을 터뜨렸다.

“우왓, 엄청 예쁘다!”

“…너보다 예쁘, 윽. 꼬집지 마.”

“뭐지? 천사님인가?”

“…….”

반응은 저마다 달랐다. 연신 예쁘다는 감탄사를 터뜨리는 아이와 옆의 여아와 비교하다 옆구리를 꼬집히는 아이, 얼굴만 붉히며 쳐다보는 아이까지.

가지각색의 모습을 보이며 저마다 흙덩이를 감상하고 있었으나 아이들의 생각은 다들 같았다.

‘예쁘다!’

흙덩이는 긴 머리를 찰랑이며 특유의 애틋한 눈으로 불릿을 올려다보며 입을 떼었다.

- 안녕.

“흙덩이여, 자네 덕에 본인은 언제나 잘 지내고 있다네.”

- 오늘은 뭐해?

“이 아이를 치료해다오.”

흙덩이의 등장에 엉거주춤 일어섰던 카인은 예의 그 소녀가 나타나자 아픈 것도 잊고 입을 헤 벌린 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흙덩이는 카인의 팔을 붙잡는다.

덥썩.

“아악!”

갑작스런 비명. 건드리기만 해도 아픈데 두 손으로 잡았으니 자지러지는 비명이 나올 만도 했다.

그러자 잠시 감상에 빠졌던 아이들은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고 한발 뒤로 물러섰다.

아이들은 싫어하는 것에 민감한 법. 당연히 아픈 것도 싫어했는데, 평소 의젓하던 카인을 울리는 미소녀에게 겁을 먹은 것이다.

- 아프지 마, 아프지 마…

주변의 모두가 그 장면을 지켜보며 섬뜩함을 느끼고 있었다.

- 아프지 마…

불릿에게 대했던 것처럼 부드러운 손길은 아니었으나 흙덩이가 내뱉는 말에 카인은 우는 것도 멈추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말과 동시에 통증이 서서히 가라앉자 황급히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았는데, 신기하게도 퉁퉁 부었던 팔이 원래모습을 찾아가는 것이다.

희미한 빛을 뿌리며 회복되는 광경에 아이들은 물론이거니와 지나가며 바라보던 어른들도 걸음을 멈추고 이 신기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이윽고 치료가 완료되자 흙덩이가 손을 떼었고, 카인은 아쉬움이 섞인 탄성을 터뜨렸다.

“아…, 너무 빨리 끝난….”

치료를 하는 것이 빠르면 좋은 것이지 뭐가 빨리 끝났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카인의 상처를 확인하던 불릿은 고개를 끄덕였다.

치료가 끝나자 명령이 종료됐다 판단한 흙덩이가 다가와 불릿의 손을 머리에 얹는다.

그리고 이제는 익숙해진 불릿도 흙덩이의 머리를 자연스럽게 쓰다듬자 카인이 그 장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왜 그래? 다른 곳도 치료해야할 부분이 있어? 아픈 곳이 있으면 바로 말해.”

카인의 시선을 느끼고 불릿이 묻자 카인이 당황하며 고개를 젓는다.

“아, 아니에요. 다 나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며 감사인사를 전하는 카인. 문득 주위가 조용한 것에 뒤를 돌아보자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아이들을 치료해준 불릿은 당초의 계획을 수정해 마을에 좀 더 머무르기로 했다.

고블린 뿐만 아니라 오크까지 등장한 시점에서 그가 떠나면 이들은 무방비상태가 된다.

게다가 어제의 그 난리를 보았던 것이 결정타였다.

“오크라…, 오크….”

갑자기 나타난 오크. 분명 며칠 전만하더라도 보이지 않았었는데 고블린 부락을 소탕하고 복귀하자 마을주민을 납치하려 하고 있었다.

주민들에게 물어보니 어제를 제외하면 오크를 본적은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가 없는 사이에 마을을 찾아냈다는 뜻인데, 대체 어디에 있었길래 단번에 마을로 올 수 있었단 말인가?

“가까이, 그것도 사나흘 안에 닿을 정도로.”

가깝다. 인근에 보이지는 않으나 맘먹고 오려하면 못 올 것도 없을 만큼 가까이 있다는 뜻.

아마 오크들은 매우 신중한 놈들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토록 장비를 잘 차려입은 놈들을 겨우 정찰용도로 쓰진 않았을 것이다.

달칵.

“볼레트 씨, 이거라도 드시지요.”

“아, 고맙습니다.”

그는 현재 마을주민 중 하나에게 접대를 받고 있었다.

명목은 아이를 구해준 보답이라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가 정령사라는 것을.

아이들의 증언과 지나가다 그 장면을 목격한 어른들에게서 수집한 정보.

그리고 어제 자신들을 위기에서 구해준 것까지. 불릿의 옆에서 멀뚱멀뚱 앉아 자신의 앞에 놓인 음료를 쳐다보는 이 미소녀가 바로 정령이라는 것을 말이다.

- 이거, 뭐야?

정령이 무언가를 먹는다는 것을 본적도,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었다.

그랬기에 불릿은 자신의 음료를 먹는 것에 집중하며 생각에 잠겨있었는데 흙덩이가 물어오자 문득 떠오른 것을 실험해보기로 했다.

“흙덩이여, 이것을 먹을 수 있겠는가?”

- 먹을 수? 뭐야 그게?

“먹는다, 또는 먹다라는 단어는…. 그냥 한번 보게.”

그러면서 직접 몸으로 보여준다. 사실 이게 가장 빠르고 쉽다.

아이가 부모를 보고 성장하는 것, 그것은 부모의 행동을 보고 자라기에 비슷한 면이 많은 것이다.

“꿀꺽, 꿀꺽.”

목젖이 움직이며 컵 안에 들어있는 음료가 빠르게 줄어간다.

- ……?

그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하는 흙덩이.

인간사에 무지한 이 정령이 보기에 먹는다는 행위는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불릿의 예상이 빗나갔다.

- 불릿, 왜 죽여?

“쿨럭, 뭐라고 했는가?”

예상치 못한 말에 사레가 들린 불릿은 무슨 엉뚱한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 먹는 거, 죽인다는 것. 불릿은 무얼 죽이고 있어?

갑자기 심오한 문답이 오고갈 뻔했으나 불릿은 이 정령이 세상에 무지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간신히 대답할 수 있었다.

“크흠, 흙덩이여. 본인은 딱히 뭔가를 죽이고 있지 않다만?”

- 식물, 죽어. 동물도, 죽어. 고기, 그거 시체. 불릿은 시체 먹어. 손에 그거? 산채로 죽인 거. 난 알아.

“…….”

저렇게 말하면 그로서도 할 말이 없다.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무언가를 죽여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생물이라는 존재 아니겠는가?

정령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 같은 죽음일지도 몰랐다.

- 오크, 고블린, 같아. 인간처럼 죽이고, 먹어. 몬스터, 나빠?

“으음….”

뭐라 말하면 좋을까. 세상에 물들지 않았기에 그 누구보다 뛰어난 통찰력을 보이고 있었다.

정령들조차 인간사에 한발 담금으로써 서서히 물들어 가는데, 확실히 이런 시점으로 보는 것을 보면 흙덩이는 어딘가에 홀로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릿은 설전(舌戰)의 대가. 모름지기 한 지역의 패자는 말이란 것을 잘 다루는 법이다.

“흙덩이여, 자네는 본인과 계약을 맺었지? 그렇지 않은가?”

- 응. 좋아해.

“끙….”

그들의 대화를(흙덩이의 말은 불릿에게만 들림. 고로 불릿의 혼잣말) 엿듣던 마을주민이 흥미진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흙덩이가 본질은 정령이라지만 겉모습은 영락없는 인가의 미소녀.

피부색이 누렇다지만, 뭐 그것은 어느 일족의 특성이라고 치면 큰 상관이 없는 문제.

그렇기에 흙덩이의 대답은 그를 사랑한다는 것으로도 들릴 수 있던 것이다.

정령이란 것을 인식하더라도 인간처럼 행동하니 착각이 들 법도 한 장면.

“그래, 계.약.자.니. 좋아할 수도 있겠지.”

계약자라는 부분을 강조하며 흙덩이의 말을 잠식시키는 불릿.

“자네는 본인을 따르게. 본인은 자네에게 세상을 가르쳐주도록 하겠네.”

- 친밀?

“아, 아니. 그것은…….”

- 친밀, 친밀…

앞에도 자리가 있거늘 굳이 옆자리에 앉은 흙덩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속으로 한숨을 푹 쉰다.

‘후우…, 남들에게 보여줄 광경이 아닌 것을….’

그나마 청년으로 둔갑한(?) 상황인지라 다행이라 여기며 흙덩이의 가치관을 새롭게 형성시키고 있던 불릿이었다.

* * *

“망할 오크들, 여기에 먹을 게 뭐 있다고 쳐들어 오냔 말이다!”

분을 이기지 못했는지 촌장이 화를 내면서도 불안한 기색을 띄고 있었다.

그들은 오크를 감당할 수 없다. 그러니 몇 마리의 정찰자, 그것도 칼도 아닌 나무 몽둥이를 든 놈들에게 대항조차 못하고 벌레처럼 도망 다니던 것이다.

“으으으, 설마 했더니 정령사라니. 어쩌지? 어떡하지?”

촌장은 불안에 떨며 집안을 서성이고 있었다.

불릿이 특별한 존재인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설마 마법사보다도 더 희귀한 정령사라니? 게다가 치유능력까지 겸하고 있단다.

마을에서 치료란 것은 약초나 민간요법에 의지한 것으로, 매우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었다.

그런 와중에 마을을 구해주고 치유능력까지 보유한 불릿이 부각되며 온 마을사람들이 그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다.

“나를 밀어내진 않겠지?”

치료사는 귀하다. 이건 굳이 화전마을이라서가 아니라 대륙 전체로 봤을 때에도 몇 없다는 뜻이다.

신관의 능력은 뛰어나다. 하지만 돈을 지불해주지 않으면 꿈도 꾸지 못한다.

돈 있는 귀족들이나 기부라는 형태로 신의 은총을 받는 상황.

남는 것은 마법사의 힐링이나 큐어 등의 마법. 물의 정령사의 치유능력에 의존하는 것.

약초는 돈 없는 자들의 마지막 수단인 것이다.

“내가 이 자리에 어떻게 올랐는데….”

비록 화전마을이라지만 한 마을을 대표하는 자리에 올랐다. 불릿이 오기 전부터도 대소사를 도맡아 하다가 비로소 촌장이 되었거늘, 갑자기 저렇게 마을사람들의 신뢰를 빼앗아가니 불안한 것이다.

촌장이 되어서 마을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은 당연한 일. 그 당연한 일을 손 놓고 있었으니 비판당해도 할 말 이 없던 것이다.

“젠장, 젠장젠장. 그깟 1골드가 뭐라고…….”

촌장은 불릿이 처음 마을에 왔을 때부터가 함정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돈을 모른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가?

멍청하게도 금화에 눈이 멀어 그것을 외면한 자신을 탓해야 할 것이다.

“…아니지, 그깟 돈이라니. 돈이 전부지. 암, 그렇고말고.”

이 또한 틀린 말은 아니다. 1골드면 가난한 수준을 넘어 거지나 마찬가지인 화전마을의 주민치고는 평생토록 만져볼 수도 없는 금액인 것.

촌장이 불안해하는 이유는 그것을 남들에게 들켜 나누게 되는 것과 더 이상 이런 돈은 벌 수 없다는 것에 있는 것이다.

“설마 말하진 않겠지?”

힘을 드러낸 불릿에게 해코지를 당할까봐, 남들과 자신이 가진 돈을 나누게 될까봐 이래저래 불안한 촌장이었다.

“얘, 너는 어디서 왔니?”

- 멀리…

“얘, 말 좀 해봐.”

- ……? 멀리…

“왜 입만 벙긋벙긋해?”

- 몰라…, 불릿, 도와줘…

원래대로라면 어제 도착한 시점에서 휴식을 취했어야할 불릿이 오크의 습격으로 마지막 남은 정령력까지 쥐어짜냈다.

그로인해 현재 불릿은 탈진상태. 겉모습은 약간 지쳐 보일 뿐이지만 당분간 훈련은 삼가야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어봤자 이 화전마을에선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정령력의 회복은 휴식이 최고다. 그것이 일반적인 상식. 마정석을 이용하는 것은 아깝기도 하거니와 매번 의지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그는 흙덩이를 소환해둔 채로 빈둥대고 있었다.

- 도와줘, 불릿…

중급 정령이 되면 계약자가 아닌 사람들과도 대화를 할 수 있으나 흙덩이는 어디까지나 하급 정령.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해도 그 한계를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흙덩이는 아이들이 귀찮게 굴자 그것을 감당하기 버거웠는지 불릿에게 구원요청을 보냈다.

“흙덩이여, 어디서 온 것인지 설명하기 어려운가?”

- 몰라…

“흠. 방향도 모르겠는가? 손으로 가리키면 되는데.”

“아저씨 말투 이상하다.”

“쟤랑 말할 때는 꼭 저러더라.”

============================ 작품 후기 ============================

6시, 9시, 12시에 이어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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