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7 복귀, 그리고… =========================================================================
- 불릿, 다 했어.
“그렇군. 이만 돌아가도록 하지.”
흐트러지려던 마음을 다잡은 불릿은 새끼들의 머리까지 쪼아내 단 하나의 마정석도 놓치지 않고 챙겼다.
남아있는 고블린이 없는지 확실히 뒤지고 나서야 그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마을로 향할 수 있었다.
질질-.
너무도 힘들었던 싸움이었기에 귀족의 체면을 생각하는 불릿이 다리를 끌면서 이동할 정도로 힘겨운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내 마을에 들어서면 쉴 수 있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숲을 거닐고 있었다.
- 불릿, 저기 봐.
“음? 뭔가 보이는가?”
지치고 졸렸던 불릿은 시선이 아래로 향하고 있었는데 그가 발견하지 못한 것을 흙덩이가 대신 알려주었다.
불릿은 흙덩이가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렸는데, 얼굴이 딱딱히 굳고 말았다.
“저 방향은 마을이 있는 곳인데, 무슨 연기가 저리도 심하단 말인가?”
화전마을은 숲을 태워 그곳을 개간해 밭농사를 한다. 그렇기에 밭을 늘리려면 숲을 태워야 했고, 그에 따라 연기가 발생한다.
하지만 지금은 개간한 밭을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정도로 적은 인원.
이렇게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연기가 올라올 일이 없다는 뜻이다.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고블린은 본인이 모두 처리하였기에 습격당할 일은 없을 터인데.”
불릿은 고블린을 처리하면서 내심 안심하고 있었다. 족장까지 죽인 마당에 어떤 고블린이 마을을 습격할 생각을 하겠는가?
그래서 그는 어떤 경사가 있어 마을에 축제라도 벌어졌는지 내심 기대하고 있던 찰나였다.
지치고 피로한 몸이지만 축제라면 그로서도 환영이다.
그러나 그가 몸을 이끌고 도착한 마을은 그가 바라던 광경이 아니었다.
“꺄아악!”
“저리 가, 저리 가란 말이야!”
“크르륵….”
마을주민들의 비명소리와 남자들의 두려움에 찬 목소리. 거기에 인간이 낼 수 없는 괴걸한 음성까지.
마을은 몬스터에게 습격받고 있던 것이었다.
“네 이놈드을!”
화딱지에 이성이 마비된 불릿이 황급히 달려가기 시작했다.
근육통으로 몸이 욱신거렸으나 지금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가 한발이라도 먼저 도착해야 희생당하는 이가 적을 것이리라.
마을에 도착하자 바닥에 떨어진 횃불을 따라 작은 가건물이 불타고 있었고, 오크 몇 마리가 부산스럽게 뛰어다니며 사람들을 쫓고 있었다.
“취이익!”
“아악!”
“흙덩이! 주먹 쾅!”
- 쾅…
팡!
어찌나 제대로 맞았는지 머리가 통째로 날아가 형체를 찾아볼 수가 없었는데, 그 피를 고스란히 습격 받으려던 주민이 뒤집어썼다.
“으으…, 피, 피가….”
“괜찮으십니까?”
피범벅이 된 주민에게 불릿이 다가와 묻자 손을 들며 덜덜 떨던 주민은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며 신음했다.
아직 모든 오크를 처리한 것이 아니기에 불릿은 그가 제정신이 아님을 알고서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이들은?”
“오크, 오크들이 사람을 잡아가려고….”
“어디 있냐는 말입니다!”
“으으…, 개, 개울가….”
그 말을 들음과 동시에 불릿은 개울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불타던 건물에 흙을 끼얹어 화재를 진압한 것은 그가 냉철함을 되찾았단 증거였다.
“헉, 허억.”
입에 침이 마르도록 달린 불릿이 개울가에 도착하자 쓰러진 아이의 위로 오크가 주먹을 휘두르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흙덩이!”
- 주먹 쾅…
퍼억-.
“크엑?!”
이번엔 이름만 불러도 반응한 흙덩이가 주먹 쾅을 사용하자 바로 나가떨어진 오크.
오크가 바닥에서 몸부림치자 불릿은 분노로 활활 불타는 눈을 한 채 오크를 노려보았다.
“네놈은 편히 죽을 자격도 없도다.”
그러면서 창으로 급소들을 마구 찌른다.
푹, 푸욱.
푸부북!
“크악! 크아악!”
“게엑, 크아아악….”
“…….”
살벌할 정도로 오크를 찌르던 불릿은 오크가 걸레짝이 되어서야 찌르는 행위를 멈추었다.
“후욱, 후욱.”
거친 숨을 토해내던 불릿은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아이의 상태를 확인했다.
“카인, 괜찮으냐?”
“보, 볼레트 씨…?”
아이의 정체는 카인이었는데, 방금 전에 목격한 광경이 충격적이었는지 떠듬떠듬 말을 잇고 있었다.
“그게 바, 방금 볼레트 씨가 죽이신 겁니까?”
“왜? 죽이면 안 되는 놈이었나?”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말을 잇는 불릿을 보고 카인은 할 말을 잃었다.
“이렇게나 강하시다니….”
카인은 흙덩이의 존재도 미처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없었는데, 뒤늦게 흙덩이를 발견하고서야 화들짝 놀랐다.
“어, 어라? 저… 예쁜 아이는 누구죠?”
“음? 아아, 그렇구만.”
예쁜 아이라는 말에 순간 불릿도 뒤돌아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흙덩이는 피부색이 누런 황토색이라는 것만 빼면 빠질 곳 없는 미소녀였다.
그러니 목숨이 오가던 상황을 겪은 카인이 눈길을 빼앗긴 것도 이해가 갔다.
“저 아이의 소개는 나중에 하고, 다른 곳은 어떻게 됐지?”
“아, 예. 아마 다른 곳도 오크들의 습격을 받았을 겁니다. 지금 빨리 가야해요!”
“그래, 네 말대로 빨리 가서 죽여야지.”
자신들을 습격한 오크를 죽인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나 불릿이 죽인다는 말을 하니 괜히 오싹함을 느끼는 카인이었다.
“그, 그렇죠. 가시죠, 안내할게요.”
그렇게 불릿은 카인의 안내를 받으며 흙덩이와 함께 마을주민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흙덩이여, 주먹 쾅.”
- 주먹 쾅…
푸확!
“취익!”
오크가 콧소리를 내며 황급히 피하자 땅이 패이며 강렬하게 흙이 튀어 올랐다.
불릿은 오크를 잡으면서도 이상함을 느꼈다.
‘어째서 갑작스레 오크가 튀어나왔을까….’
이해할 수 없는 오크의 출현. 분명 그가 떠나기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오크의 그림자도 발견하지 못했었다.
그가 숲속에 낙오된 첫날을 제외하면 오크의 존재는 없다시피 했는데, 이렇듯 갑작스레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습격이라는 형태로.
‘놈들의 행동도 이상하다. 이것은 마치 사람을 납치하려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가?’
이상할 정도로 오크들은 날붙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것이 꼭 이상한 것은 아니었으나, 문제는 죽이려는 의도가 없는지 움직이지 못하게 부상을 입으면 들쳐 업으려던 것이다.
“먹으려고 했으면 죽였겠지.”
움찔.
“취, 취익?”
불릿을 말을 듣기라도 한 것인지 기겁했던 오크가 잔뜩 굳은 채로 귀를 쫑긋하고 있었다.
저 오크만 하더라도 그럴 듯한 무장을 갖췄으나 무기만은 평범한 나무몽둥이.
확실히 밸런스가 맞지 않은 조합이었기에 이상하게 볼만했다.
‘아까 그 남자의 말도, 잡아가려고 했다 했었지.’
잡아간다, 오크가 대체 인간을 가지고 무얼 하려는 것인지 감이 잡히질 않았으나 분명 잡아가려 했다는 말을 들었던 불릿.
“흙덩이여, 쌍주먹 쾅.”
- 응…
그의 명을 착실히 수행하는 흙덩이. 이번에 마을을 습격한 오크들은 각개격파를 당하던 중이었기에 정령력의 소비가 심한 지옥구덩이는 사용하지 않았다.
콰광!
투퍼억-!
“크게엑!”
머리와 몸통을 향해 동시에 날리자 팔로 머리를 가린 오크는 배가 관통되고 팔이 날아가 버렸다.
질퍽…
“취, 취이익….”
피와 함께 내장이 흘러나오자 힘이 빠진 오크는 자리에 몸을 눕히며 마지막 숨을 내쉬고 있었다.
털푸덕.
무슨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몬스터가 인간을 납치해가 좋은 점이 하나도 있을 턱이 없었다.
불릿은 그가 아끼던 카인이 습격당하던 장면이 떠올라 한순간 울컥해버렸다.
“죽어.”
“취….”
퍼걱!
눈알을 관통하고 뇌를 들쑤신 창이 박히자 오크는 단말마의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 불릿, 괜찮아?
불릿의 감정을 느꼈는지 흙덩이가 괜찮냐는 의사를 표해왔다.
그 물음에 정신 차린 불릿이 고개를 가로젓다 이내 끄덕이며 한숨을 토해낸다.
“후우, 너무도 피곤하군.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이 이상은 무리인 것 같은데…. 흙덩이여, 오크는 더 남았는가?”
- 오, 오크는 이제 없어.
싸움의 와중에 가르쳐준 오크라는 용어로 인해 이제 확실히 오크와 고블린을 구별해낼 수 있게 된 흙덩이.
머리가 달아오른 탓인지, 피곤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불릿의 머리는 둔중해졌기에 흙덩이에게 의존했다.
다행히도 이 주변은 많은 생명체가 없었기에 흙덩이가 오크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었다.
드디어 전투의 종료를 알리는 소리에 불릿은 지친 몸을 이끌고 마을로 향하고 있었다.
‘흙덩이에 대해선 뭐라고 설명해야 좋은 것이지?’
카인도 반한 이 미소녀, 흙덩이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말이다.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제는 감사하겠습니다요.”
“별 것 아닙니다.”
돌아다니던 주민들은 불릿과 마주치면 그동안 잘 하지도 않던 인사를 하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전날은 경황이 없어 모두 어수선한 채로 잠에 들었으니 그에 대해 물을 새도 없던 것.
어른들은 차마 묻지 못하던 것을 아이들은 잘도 묻는다.
“아저씨! 아저씨가 진짜 우리 마을을 구해주신 거예요?”
“볼레트 아저씨가 실은 힘을 숨긴 용사라메요!“
“형, 그러지 말고 좀 보여줘요. 그 여자애는 어딨어요? 응? 응??”
각자의 궁금증을 마구 쏟아내며 불릿을 귀찮게 하는 아이들이었으나 그는 그저 귀엽게만 보였다.
자신의 손으로 지켜낸 소중한 목숨, 어여삐 여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모두 무사하다니 다행이네. 어제는 날이 저물어 미처 확인하지 못했는데, 혹시 다친 사람 있니?”
본인도 아직 원래 컨디션을 되찾은 상태가 아님에도 아이들을 챙기는 것이 어지간히도 귀여워하는 것 같았다.
“오크 몇 마리 가지고 구하고 말고도 없어. 숨긴 적도 없고 용사도 아니야. 소녀? 그 아이는 나중에 보고, 그러니까 다친 사람부터 앞으로 나와서 좀 보자.”
소나기처럼 말을 퍼부은 불릿은 투덜거리며 앞으로 나오는 아이들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찰과상이군. 도망치다 넘어지기라도 한 모양이지…, 음? 뼈가 부러진 아이가….’
얕은 상처를 가진 아이들 틈에서 홀로 중상을 입은 아이가 있었다.
용케도 그런 중상을 입고 신음소리 하나 안 내는 기특한 녀석이 누구인가 해서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가 평소 눈여겨보던 카인이었던 것이다.
“카인, 팔이 불편해 보이는데, 말을 해줘야 치료를 해주지 않겠니?”
“응? 팔? 너 팔 아프냐?”
“와, 독한 놈. 아픈 티도 안 내는 거 봐라.”
“카인오빠 아파?”
논란의 중심에 카인이 서자 아이들은 의심도 하지 않고 카인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에 불릿은 역시 지키길 잘했다고 속으로 되내이고 있었다.
점차 시끄러워지자 카인이 앞으로 나서서 소란을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다들 조용히 해. 시끄럽게 굴면 오크들이 잡아간다?”
“합.”
“으으, 꼭 말을 해도….”
전날의 공포가 떠오르자 아이들은 금세 조용해졌고, 살짝 울먹이는 아이도 보였다.
아이답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불릿은 치료를 위해 아이들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었기에 카인의 행동을 탓하지 않았다.
‘약간의 공포가 도움이 되는 법이지.’
그러면서 카인을 확인하자 과연, 팔이 퉁퉁 부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팔을 살짝 눌러볼 거야. 아프면 바로 말해.”
쿡.
“악!”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카인이 약간의 충격만으로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제야 아이들은 카인이 심한 부상을 입었다는 것을 깨닫고 안절부절 못했다.
“어떡해? 어떡해?”
“치료사를 부르자!”
“돈이 어딨어….”
“히잉, 아프지 마…….”
“모두 쉿. 내가 치료한다고 말했었지?”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오늘은 3.1절이라 예정을 변경해 4번 올리려고 합니다.
3시, 6시, 9시, 12시 단위로 올라오니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