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6 결전 =========================================================================
그에게 있어 저 고블린족장은 경쟁구도에서 밀려난 수많은 패배자중 하나일 뿐, 저 모습에 의미조차 두지 않았다.
어디서 난 것인지 조잡한 왕좌에 앉아 몸을 깊숙이 묻은 모습은 악덕상인이나 돼지처럼 살찐 귀족을 연상시켰다.
그리고 그것은 불릿이 가장 싫어하는 모습중 하나.
불릿은 흙덩이를 소환하여 공격준비를 하였다.
- 불렀어?
“흙덩이여, 고블린에게 발각되지 않고 이 앞에 지옥구덩이 다섯을 설치할 수 있겠는가?”
- 세 개만. 시끄러워, 안 돼.
“알았네. 부탁하도록 하지.”
고개를 끄덕인 흙덩이가 함정을 설치하는 동안 불릿은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놈들의 수는 스물. 그러나 남아있는 놈들은 가슴이 불룩한 것으로 보니 암컷이다. 결국 전력이라 할 것은 친위대 4마리와 족장 하나.’
얼마나 열이 받았던지 족장은 부락의 암컷까지 끌고나왔다.
새끼는 끌고나오지 않았으나 암컷의 가세만으로도 그를 찾기엔 충분했을 터.
그러나 역시 몬스터였을까, 그는 암컷과 전사를 적절히 섞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이들을 암컷으로만 구성했다.
‘아니면 자신이 있다는 뜻이거나.’
자신이 있어봤자 패배자라는 생각에 불릿은 그리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조심하는 것과 공포를 느끼는 것은 다른 문제. 그에게 있어 고블린들은 스쳐지나가는 관문 중 하나였을 뿐이다.
- 끝났어…
“돌벽과 쌍주먹 쾅의 준비를 해두도록. 말하자마자 바로 발동해야 할 것이야.”
- 노력할게.
“좋아, 그럼 간다.”
불릿, 그가 전투를 개시하기 시작했다.
“앞, 쌍주먹 쾅!”
- 쌍주먹 쾅…
투확!
“껙!”
불릿의 명령에 쌍주먹 쾅을 발사한 흙덩이! 그 공격에 고블린 하나가 비명횡사하고 나머지 하나를 친위대가 쳐냈다.
“끼얏!”
채애앵-
“끄으윽….”
엄청난 반탄력에 놈은 팔이 저릿저릿한지 부들부들 떨리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공격을 막아낸 놈에게 불릿은 살짝 놀랐다.
“막아? 족장도 아닌 친위대가?”
그러나 놀람도 잠시, 불릿은 고블린무리에게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쌍주먹 쾅! 쌍주먹 쾅!”
- 쌍주먹 쾅 쾅…
투확! 퍽!
“끼엑!”
“꺄악! 꺄아악!”
째지는 음성의 비명이 연속해서 터지자 보다 못한 친위대 두 마리가 뛰쳐나온다.
“끼얏호!”
“뿌리얏!”
놈들이 함정을 앞두고 점프공격을 해오자 불릿이 소리쳤다.
“흙덩이! 돌벽!”
- 돌벽…
드드득!
불릿이 한발 뒤로 물러서며 함정 바로 앞에 돌벽을 설치하라하자 그에 따르는 흙덩이.
갑자기 눈앞에 펼쳐진 돌의 장벽에 고블린 친위대는 반응할 수 없었다.
퍽.
“끼엑!”
“깍!”
벽에 부딪힌 후 일말의 비명을 지르며 바닥의 지옥구덩이에 빠져드는 친위대들.
그 후는 안 봐도 눈에 선했다.
파슈슉! 슈슈슈!
푸확!
순식간에 곤죽이 되며 핏물로 산화한 친위대들.
저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고블린들은 비록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나 파육음만으로도 몸서리를 쳤다.
부들부들.
“허허, 저 미련한 놈을 좀 보게, 이 얼마나 어리석단 말인가?”
순식간에 자신이 자랑하는 정예 중 둘이나 당해버리자 더 이상 참지 못한 족장이 왕좌에서 벌떡 일어섰다.
“인간주제에!”
“인간보다 하찮은 주제에 인간을 따라하는 어리석은 마물들의 우두머리가 감히 본인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인가?”
갑자기 자존심싸움으로 변질되는 듯해 보였으나 이 또한 불릿이 원하던 상황.
고블린이 쉽게 흥분할수록 자신에겐 유리했다. 죽음을 도외시하고 달려드는 것은 조금 부담스러울 수 있으나 적어도 전략이란 것을 집어치웠으니까.
“오너라, 어리석은 놈! 내 너에게 친히 손을 쓸 것이야!”
“이, 이 인간노오옴!”
열이 머리끝까지 차오른 족장이 남아있는 고블린들에게 들었던 손을 내리며 명령한다.
“끼엑! 끼까아아아아!!!”
아마 ‘모두 쳐라!’정도의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은 족장의 말에 암컷, 친위대 가리지 않고 달렸다.
“끼에엑!”
“우끼아악!”
“끼끼끽!”
두려움에 휩싸여 앞만 보고 돌진하는 암컷들과는 다르게 친위대는 역전의 용사라는 것을 과시하듯 날카로운 눈을 빛내며 암컷 사이에 숨어들었다.
“흙덩이여, 좌우로 돌벽을 만들어 길을 만들게.”
- …응?
“나무 양쪽 앞에 돌벽! 빨리!”
놈들이 코앞까지 들이닥쳤는데 명령을 이해 못해 시간이 지체되자 불릿이 저번에 만들었던 창으로 암컷들을 찌르며 소리쳤다.
암컷이 찔리며 비명을 지르는 사이로 친위대가 눈을 빛내며 다가설 때, 돌벽이 완성되었다.
“흙덩이! 주먹 쾅!”
- 주먹 쾅…
퍼억!
친위대는 뻔히 보면서도 흙덩이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가 있었다.
양쪽에 돌벽을 세워 길을 하나로 좁히고 암컷들 사이에 숨어들었기에 몸을 움직이기 여의치 않은 상황.
그런 상황에서 공격이 가해지니 두 눈 멀쩡히 뜨고서 당하는 것이었다.
“끼에엑….”
털푸덕.
친위대 하나가 피를 뿌리며 당하자 남은 고블린들이 길길이 날뛰며 몰려들었다.
왜 그런가 해서 뒤를 보니 뒤에서 족장이 발로 차며 밀어재끼고 있었다.
“쓰레기 같은 놈이로군.”
저 놈은 무리의 장(長)으로서 자격이 없다. 그렇게 판단한 불릿은 침잠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멀리 있는 족장을 바라보았다.
움찔.
시선이 마주친 족장이 움찔했으나 이내 더욱더 광분하며 암컷들을 발로 차재꼈다.
그에 따라 물밀 듯 다가오는 고블린무리.
그러나 상황은 불릿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버렸다.
“흙덩이! 뒤를 막아! 돌벽!”
- 응!
드드드득!
족장까지 돌벽의 사이로 들어서자 불릿은 앞을 막기 보다는 퇴로를 차단했다.
“무슨 짓이냐, 인간!”
“핫! 차앗!”
“끄기긱!”
족장의 성난 물음에도 불릿은 대꾸하지 않고 몰려드는 고블린들을 찔러댔다.
사실 모든 고블린이 들어찰 정도로 돌벽의 길이가 길진 않았으나 나무가 그 연장선이 되어주어 놈들을 가둘 수 있었다.
그리고 거듭된 돌벽으로 떨어진 정령력이 차오르자마자 명령을 내리는 불릿.
“흙덩이여! 앞에도 돌벽을 설치하라!”
- 응… 돌벽.
드드득!
마지막 돌벽까지 세워지자 직사각형이 되어버린 돌벽안에 고블린들이 갇혀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족장과 친위대가 올라서려하자 언제 올라섰는지 불릿이 위에서 창으로 찌르며 이를 막아선다.
푸북! 푹!
“끼에엑! 놈! 인가안!”
지칠 대로 지친 상황에서도 흥분하지 않고 싸늘한 눈으로 고블린족장을 바라보는 불릿은 이에 대꾸하지 않고 흙덩이에게 명령했다.
“흙덩이여, 정령력이 차오르는 대로 주먹 쾅.”
- 응…
“인가아아안!”
“끼엑! 끼엑!
“끄아끄아아악!”
* * *
“헉, 허억.”
- 불릿, 괜찮아?
“허억, 허억.”
흙덩이의 물음에 불릿은 대답하지 못했다. 급격히 떨어진 정령력은 흙덩이의 소환조차 불안정하게 만들 정도로 바닥을 기고 있었는데, 멀쩡할 리가 없었다.
그의 시선은 아래를 향해 있었는데, 그곳엔 끔찍한 지옥도가 그려져 있었다.
초록색 거죽과는 어울리지 않는 새빨간 피가 돌벽과 바닥에 튀어있었는데, 어찌나 많이 흘렀는지 찰방찰방 흐를 정도였다.
“크으…, 웩.”
결국 피까지 토하는 불릿. 이를 흙덩이가 애달픈 눈으로 쳐다보다 시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계약자에게 이토록 부담을 줄 정도로 힘든 일이었을까?
정령으로서는 이해하지 못할 육체의 고통이었으나 교감을 얻는 계약관계였기에 흙덩이는 이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 아프지 마, 아프지 마…
사아아……
이를 두고 볼 수가 없었는지 흙덩이가 그의 얼굴과 손을 어루만지자 조금씩 상태가 호전되었다.
비록 그것은 희미한 빛이었으나 불릿에겐 성녀라 불리는 이의 능력보다 더 성스러워 보이는 것이었다.
이윽고 빛이 가라앉자, 불릿의 상처는 아물어있었고 혈색 또한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러나 불릿의 안색은 여전히 어두웠는데,
“흙덩이여, 자네의 정령력이 소모되었는데 왜 그랬는가?”
흙덩이는 계약자의 정령력이 없음에도 자기 본연의 정령력을 이용해 그를 치유했다.
이는 물의 정령들에게서 한 번도 보지 못한 호의. 그랬기에 불릿이 의문을 표한 것이다.
불릿의 물음에 우물쭈물하던 흙덩이는 그의 손을 자신의 머리에 얹으며 쓰다듬는 시늉을 했다.
- 친밀, 친밀…
결국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으나 흙덩이의 따스한 마음이 느껴지는 듯해 내심 감동했던 불릿은 헛기침을 뱉었다.
“어흠, 어흠어흠! 흙덩이여, 남은 고블린도 소탕해야하네. 저놈들에게 마정석이 있는가?”
- 기다려.
정령력의 회복을 위해 마정석을 떠올린 불릿이 이미 죽어버린 족장들에게서 그것을 찾아보라 명하자 흙덩이가 움직였다.
빠각! 빠각, 빠각!
매우 기분 나쁘고 소름끼치는 장면이 연출되었으나 흙덩이는 아름다운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게 고블린들의 두개골을 깨부수며 일일 확인했다.
‘확실히 인간은 아니로군.’
간혹 흙덩이가 인간다움을 보여줬으나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저런 괴력을 보이는 것을 보면 역시 정령은 정령이었다.
그렇게 모든 머리를 까부순 흙덩이가 엉금엉금 기어올라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짝반짝.
“마정석이 확실하군.”
흙덩이가 마정석을 캐는 모습을 지켜보던 불릿은 암컷들에게선 그 수가 20에 다다름에도 불구하고 꼴랑 1개가 나온 것을 볼 수 있었다.
그에 비해 친위대는 각기 크기의 차이는 있었으나 모두 나왔으며, 무엇보다 족장에게서 나온 마정석의 크기는 예상외로 큼직했다.
“그래도 꼴에 족장이라고, 쓸 만한 것을 주는군.”
불릿은 암컷에게서 나온 마정석을 쥐고 정령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정령력을 절반쯤 회복한 불릿은 종횡무진 숲을 헤집으며 남아있는 고블린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주먹 쾅.”
- 주먹 쾅…
쾅!
“끼엑!”
이제는 소리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기에 마음껏 기술을 펼치며 고블린의 수를 줄여갔는데, 더 이상 전사계급이 보이지 않자 부락으로 향했다.
“끼긱! 끼이익!”
“끼악! 끼아악!”
새끼들만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부락엔 고블린정찰자들이 있었는데, 불릿을 찾다가 부락으로 향했던 놈들인 것 같았다.
“흠, 아직까지 있었다니, 예상외로군.”
정신이 없었기에 불릿도 고블린의 수를 미처 파악하지 못했고, 부락에도 남아있는 전사계급이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새끼는 말 그대로 새끼. 전력에 포함시킬 수도 없을 만큼 나약했다.
“끼익, 끼이익….”
“끼에엑? 꾸악!”
새끼들은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지 못했는지 앞으로 기어 나오며 상황을 확인하려 했고, 전사들은 새끼들을 감싸며 칼과 창을 불릿에게 들이밀었다.
얼핏 보아도 새끼들을 감싸는 모습. 애처로워 보이는 그들의 모습을 감상한 불릿이 내뱉은 말은 이것이었다.
“삭초제근…이라 했던가. 너희가 인간과 흡사하다고 하나 인간은 아니지. 흙덩이여, 쌍주먹 쾅.”
- 어디에?
“놈들을 모두 처리할 때까지.”
- 응. 쌍주먹 쾅…, 쾅, 쾅…
그러면서 자신의 작은 두 주먹을 전방을 향해 쏘아내기 시작하는 흙덩이.
푸확!
피가 튀어 오르며 전사들이 죽어나가자 새끼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끼에엑! 꾸아악! 꾸악!”
“구, 꾸구국….”
“으앙! 으아앙!”
움찔.
순간, 인간과 흡사한 울음소리에 불릿의 움직임이 멈췄으나 이내 창질을 계속했다.
푸북, 푹.
‘어차피 인간이 아니다. 놈들은 흉악한 몬스터, 성체가 되면 또 다시 살육을 되풀이할 뿐이지.’
“끼에엑!”
새끼들의 비명이 이어질수록 그의 눈은 스산하게 가라앉을 뿐이었다.
푸욱!
============================ 작품 후기 ============================
내일도 저녁 6시와 밤 12시에 올라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