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3 고블린부락 =========================================================================
- 불릿?
“음? 이런, 잡생각이 길었나보군. 자, 훈련을 계속하지.”
- …응.
“1분 동안 자네의 능력이 되는 대로 지옥구덩이를 깔아보게.”
- 응…
그리고 대답과 동시에 땅이 꾸물꾸물 움직이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콰드드.
땅이 갈라지고 구멍이 넓어져 하나의 구덩이가 만들어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총 5에서 10초.
땅속에 돌이나 나무뿌리 같은 이물질이 있으면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그리고 땅속은 생각보다 그런 이물질이 많은 미지의 세계.
1분이 지나 완성된 지옥구덩이는 8개. 수는 그럭저럭 괜찮았으나 시간이 오래 걸렸다.
- 다했어…
“그래, 수고했다.”
작업을 마치자 자신에게 다가와 손을 머리에 얹는 흙덩이.
이제는 너무 자연스러워 거부할 수도 없어졌다.
그렇게 흙덩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불릿은 속으로 계산했다.
‘실전에서 써먹기엔 좀 그렇군. 땅이 갈라지는 부분에서 징조가 너무 길다. 주먹 쾅은 소리가 너무 크고 연속해서 사용할 수가 없지.’
중얼중얼, 자신만 알아들을 수 있게 입술을 달싹이며 계산을 이어간다.
‘흙덩이의 기술은 시전이 완료될 때까지 딜레이가 있어 이러한 함정 같은 것이 아니라면 대미지를 주기 힘들다. 역시 주먹 쾅이 쓸 만한데, 소리가 너무 크단 말이지.’
땅의 정령은 그 특성상 묵직함이 있어 한방의 대미지가 컸지만 연속해서 사용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시간까지 오래 걸리니 미리 준비를 해놓는 게 아닌 이상 적에게 타격을 가하기엔 무리.
적이 느리거나 기다려주면 모를까, 그런 적이 몇이나 되겠는가?
“흙덩이여, 송곳만 튀어나오게 해보게.”
- 송곳… 뾰족?
“그래, 그거 말일세.”
문득 떠오른 생각에 흙덩이에게 다시 명령을 내리는 불릿.
흙덩이는 그의 말에 따라 땅에서 송곳모양의 원뿔을 솟구치게 만들었다.
스스슥…팍!
“으음…느려.”
단일체로만 소환하니 확실히 속도는 빨라졌으나 역시 실전에서 사용하기엔 턱없이 느렸다.
애초에 지옥구덩이라는 함정을 만든 이유도 도망갈 수 없게 가둬놓아 찌를 수 있도록 만든 것.
송곳이 생성될 때까지 1에서 2초정도가 걸렸지만 한번에 수십 개를 만들 수 있는 게 아닌 이상 겨우 고블린 몇 마리를 잡고 죽을지도 몰랐다.
“길이도 너무 짧고 말이지.”
지옥구덩이에 빠졌던 나무를 맷돌처럼 갈아버릴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개의 송곳으로 사방을 찔렀기에 가능했던 장면.
하나만 가지고는 기껏해야 다리만 다칠 것이다.
“총체적난국이로구나! 어렵군, 어려워.”
하급 정령을 가지고 너무 많은 일을 하려했으니 어려운 것은 당연지사. 하급 정령은 본디 보조나 입문의 경향이 강했으니 지금 흙덩이의 경우가 대단했던 것뿐이었다.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랐나보군. 하급 정령치고는 대단한 것인데.”
- 불릿…, 나 열심히 한다…
“나도 아네. 괜히 자네에게 부담을 짊어줄 뻔했군.”
- 친밀…, 친밀…
흙덩이는 불안해졌는지 머리에 놓인 불릿의 손을 스스로 움직이며 쓰다듬었다.
자신의 조급함이 계약의 대상인 정령에게까지 옮겨가자 쓴웃음을 짓는 불릿.
‘육체의 영향인지…, 나잇값도 못한 채 수선을 떨었군.’
그런 정령의 불안감을 달래주기 위해 불릿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보상인 머리쓰다듬기를 열심히 해주었다.
스윽스윽.
한참을 쓰다듬어주자 흙덩이는 간신히 진정했고 불릿은 괜히 진이 빠져 지친기색이 역력했다.
불릿은 다시금 생각에 빠졌다.
“다행히 고블린은 멍청한 편이지.(?) 모습을 드러내거나 약간의 도발을 통해 함정이 위치한 곳까지 유인한다면….”
그는 며칠 동안 숲을 탐색하며 알아낸 장소들을 떠올리며 함정을 설치할 만한 장소들을 물색했다.
“구덩이만 파놔도 시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다. 거기에 흙덩이가 송곳을 만들어놓는다면….”
함정을 깊게 파놓을 순 없다. 하나를 만드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자칫 잘못하면 고블린이 밟지 않는 함정이 발생할 수도 있는 법.
“얕은 함정에 움직임만 제하도록 송곳을 작게 만들고, 그때 흙덩이가 공격을 가하면…!”
아무리 얕게 파놓은 함정이더라도 송곳에 찔린 발은 함정 밖으로 빠져나갈 시간을 지체해 줄 것이다.
그 사이에 흙덩이가 공격을 가하면 아무리 느린 공격이라도 맞지 않겠는가?
“여러 개를 설치해야 할 터인데, 본인의 체력이 가능할는지….”
문제는 바로 자기 자신. 하루 종일 뜀박질을 하며 고블린을 유인해야 하고, 함정을 발동시켜야 하는데 그럴 체력이 되냐는 것이다.
게다가 족장과 친위대의 경우 단순한 함정으로는 감당이 안 될 것이다.
“지긋한 나이에 어울리지도 않는 술래잡기를 하게 생겼군.”
술래는 고블린. 다만 그 수가 130에 이를 뿐이지만.
“하루 만에 성급히 잡으려고 해선 안 되겠지. 젊어진 부작용인지는 몰라도 쉬이 흥분하게 되는군.”
늙어가는 육체에서 젊음을 되찾은 것까진 좋았으나 때때로 통제가 되지 않음을 느낄 때가 있었다.
불릿은 이를 자각하고 조심하자는 생각을 연거푸 하고 있었다.
* * *
“어흠. 그래, 마을을 떠나겠다고?”
촌장은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싱글벙글거리며 대꾸를 해왔다.
“예. 며.칠.동.안 마을에서 벗어나 사냥이라도 해올까 합니다.”
원했던 말이 아니자 단번에 얼굴이 구겨지는 촌장. 그러나 불릿에게 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커허험! 볼레트, 자네는 이런 마을에서 썩기엔 아까운 인재일세.”
“그걸 판단하는 것은 제가 하는 것이지 촌장님이 하실 건 아니죠.”
단 한마디도 지지 않는 불릿에게 썩은 표정이 되어버린 촌장. 그러나 불릿은 촌장에게 좋은 감정이 조금도 없었기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
“다.녀.오.겠.습.니.다.”
“커허허험! 아, 알겠네.”
대꾸조차 않는 촌장에게 재차 인사를 건네고서야 집을 나서는 불릿.
그가 집을 나서자 어디서 얘기를 들었는지 벌떼처럼 달려드는 아이들이 보였다.
“아저씨! 진짜 우리마을 떠나요?”
“가지마요, 아저씨….”
“볼레트 형한테 잘못한 거 있는 사람? 누구야!”
“어, 엄마가, 볼레트 오빠, 히끅. 도시락 싸는 게, 히끅! 떠나려는 거라고….”
그가 여행가방에 도시락을 잔뜩 넣고 가는 것을 도시락을 준비해준 아주머니가 알려 주었나보다.
‘소문이 와전되었나보군.’
촌장에게는 어디를 다녀온다고 도시락을 준비시킨 것뿐인데 어느새 그것이 마을에서 떠난다는 것으로 알려진 것이다.
‘촌장이 그렇게 알렸나? 고얀놈 같으니라고.’
평소 마을의 어른들에게 좋은 감정을 느끼지 못했던 불릿이 와전된 소문으로 인해 화가 나버렸다.
그러나 아이들까지 미워한 것은 아니었기에 그 화를 수그러 트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단지 며칠 동안 사냥을 나선다 말했을 뿐인데 소문이 왜 그렇게 났는지 모르겠네?”
“에? 형, 어디 안 가?”
“아저씨 안 떠나는 거예요?”
“글쎄, 나중에 생각나면 그럴지도 모르겠으나 지금은 사냥을 나가는 것뿐인 걸?”
그게 어떤 생물을 잡는 것인지는 알려주지 않은 사냥일 뿐이지만.
“와, 괜히 걱정했네.”
“올 때 사슴고기!”
“나, 나는, 예쁜 옷이 좋아.”
어느새 울던 아이들이 재잘대며 자기들이 원하는 품목들을 부르며 즐거워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불릿의 기분도 조금씩 풀리는 모습.
“이런이런, 사냥을 가는 것뿐인데 바라는 것도 많군. 사슴고기면 몰라도 옷이나 장난감을 바라는 장난꾸러기는 누구지?”
“히히히!”
“신디가 그랬어요!”
불릿은 이런 활기찬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그렇다고 자기가 이렇게 행동하고 싶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 그럼 진짜로 가볼게. 며칠 뒤에 보자.”
“맛있는 거 많이 사와야 해!”
“사온다기보다는 수렵해온다고 해야 맞지 않을까?”
그렇게 아이들의 마중을 받으며 마을을 나선 불릿은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우고 자신의 사냥터로 향하고 있었다.
“여기가 좋겠군.”
불릿은 수풀이 가득한 장소를 선택했다. 함정을 숨기기에도 유용했고, 자신이 숨어들어 적을 혼란시킬 수도 있었기에.
애초에 깊은 숲속이었기에 개간하지 않는 이상 우거지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저 기억하는 곳 중 하나를 고른 것일 뿐.
“흙덩이여, 지옥구덩이를 만들도록.”
- 얼마나?
이제는 스스로 생각도 할 줄 아는 기특한 정령. 하나하나 지시를 내려주려 했거늘 자기가 물어오니 이만큼 기특할 수가 없었다.
가르치는 재미가 있다고 할까?
“수풀을 중심으로 다섯. 나무와 나무사이에 두 곳.”
- 알았어…
드드득…
수분을 머금은 잡초가 많은 탓인지 구덩이가 파이는 소리는 의외로 작았다. 주변을 살펴보긴 했지만 내심 고블린이 몰려오는 것을 예상했던 바.
다행히 작업이 끝날 때까지 고블린의 정찰조는 다가오지 않았다.
“완료됐군. 그럼 이제부터 고블린정찰자를 끌어오겠네.”
- 응. 가자…
이런 순간에도 작업을 끝내고 나면 머리를 쓰다듬어줘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었으니 말이다.
‘이것도 개선해야 될 것…, 음. 못하겠지.’
생각을 하다가도 과거의 거짓 때문에 고칠 수도 없는 상황.
그는 일부러 소리를 내며 전진하기 시작했다.
부스럭, 부스럭.
고블린의 수가 많다 하지만 정작 사냥에 나서는 것은 130의 반절수준. 게다가 숲이 작은 것도 아니었기에 마주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몰랐다.
그렇기에 불릿은 위험을 감수하고 본인이 미끼가 되어 사냥에 나선 것.
‘옷도 튼튼히 고쳐 입었으니 얼굴만 조심하면 되겠지.’
불릿은 오늘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이런 촌골에서 장비를 구할 순 없기에 손수 제작한 나무판을 몸통에 덧대었고, 손등과 정강이는 동물 가죽을 부착했다.
긴팔 옷으로 살이 삐져나오지 않게끔 했으며 유사시 얼굴을 막아낼 간이방패(나무판)도 팔뚝에 매달았다.
방패에는 가죽을 덧댔는데, 손질이 잘 안 됐는지 짐승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볼품은 없었으나 이 정도면 독침에 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
“…끼기긱….”
“쉿, 왔다.”
고블린의 존재를 알아채고 나서부터 한층 격렬해진 움직임.
마치 포식자의 존재에 도망치는 동물처럼 지그재그로 이동하며 놈들이 따라오길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끼긱!”
“기이익, 끄아끄아아!”
마치 ‘저놈 잡아라!’와 비슷한 어조로 명령을 하는 고블린의 지휘하에 다른 고블린들도 일사분란하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불릿은 고블린들의 움직임을 보면서도 열심히 발을 놀리며 함정으로 이끌었다.
‘생각보다 빠르군. 잘못하면 잡힐지도….’
성인남성보다 체구가 약간 작기에 방심했던 걸까, 불릿은 잡힐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간격을 유지하며 유인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실로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끼기익!”
훅-.
퓨퓨퓩.
퓨뷰뷰뷱!
“읏!”
날카로운 바람 가르는 소리에 불릿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투두둑, 툭.
대부분의 독침은 피했으나 등의 나무판에 명중한 것인지 둔탁한 소리와 함께 어떤 감촉이 느껴졌다.
이윽고 함정이 있는 나무에 도달했을 때, 그가 소리쳤다.
“흙덩이!”
- 응…
뭔가 힘이 빠지는 목소리였으나, 흙덩이는 충실하게 그의 명을 수행했다.
쑥!
“끼익?!”
언제 다가왔는지 나무를 스쳐지나가자마자 구멍에 빠지는 고블린의 음성에 불릿이 식은땀을 흘렸다.
빠져나오려 안간힘을 쓰는 고블린은 발을 다친 탓인지 올라오지 못하는 사이, 함정이 발동되었다.
파슈슉!
“끄르륵….”
지옥구덩이의 사방에서 찌르는 송곳에 당한 고블린은 채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피 끓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허물어졌다.
그리고 곧이어 달려온 고블린.
“제길, 흙덩이! 주먹 쾅!”
이어서 달려온 고블린은 점프함과 동시에 독침을 쏘았기에 하는 수 없이 소리가 큰 주먹 쾅을 사용했다.
투퍽!
“끄엑-!”
놈의 어깨를 그대로 뚫고 지나가자 팔 하나가 사라진 고블린.
비명과 함께 수풀에 있는 지옥구덩이에 빠진 놈은 머리부터 떨어졌는지 재수도 없게 발을 다치게 할 용도로 만든 송곳에 즉사했다.
푸욱!
“…….”
“키에엑! 끄아우아아!”
뒤늦게 도착한 세 고블린이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단체로 달려든다.
“덤벼라, 하찮은 마물들아!”
불릿이 슬금슬금 함정 앞에 서서 놈들을 도발하자 동료가 어떻게 당했는지 모르는 고블린들이 단체로 달려든다.
“끼에엑!”
독침을 마구잡이로 쏘아내며 달려들자 그중 하나가 불릿에게 맞았다.
푸북!
============================ 작품 후기 ============================
오늘 밤 12시에도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