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2 고블린부락 =========================================================================
불릿은 은밀히 고블린들을 추적했다.
놈들은 대체 무얼 하는 것인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는데, 그러다 사슴 한 마리와 마주치게 되었다.
“끼긱! 끼기긱!”
“끼이이-!”
퍼억!
다섯 마리의 고블린이 재빠른 동작으로 독침을 쏘며사슴을 추격하자 이내 마비가 되어버린 사슴이 바들바들 떨며 쓰러진다.
털푸덕-.
“이힝, 이히힝….”
사슴이 애처롭게 울지만 지휘를 하던 고블린은 아랑곳 않고 칼들 빼들더니 사슴의 모가지를 쳐냈다.
사칵!
덜렁.
칼의 연마상태도 안 좋고, 힘이 모자랐는지 머리가죽이 대롱대롱 매달려 죽었으나 놈들은 좋다고 소리를 질렀다.
“끼기익!”
“끼긱, 끼기긱.”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불릿.
“흙덩이여, 놈들이 움직이는구려.”
- 응…
“따라가 보세.”
놈들이 사슴의 사체를 짊어지고 어딘가로 향하자 흙덩이와 속닥이던 불릿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마나 이동했을까.
놈들을 따라 수풀을 헤치고 나아가니 점점 마주치는 고블린의 수가 많아졌다.
‘너무 많다. 게다가 자기들끼리 마주쳐도 싸우질 않는군.’
같은 종족이라 할지라도 몬스터는 자신의 부족이 아니면 적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놈들은 공격은커녕 오히려 친밀해보이지 않은가?
이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밖에 없었다.
“무리를 이루고 있다는 뜻이겠지.”
- 무리…무엇?
“흠, 흙덩이여. 아무래도 인근에 고블린들이 자리를 잡은 듯하네.”
- 아아…?
“본인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도 살펴봐주게. 지금부턴 위험할 터이니.”
- 본다 … 응 …
그는 이동하면서 총 5번 고블린무리와 마주쳤는데, 한 무리마다 각 수가 5에서 7마리였다.
하지만 그 고블린들이 모두 다른 놈들은 아니었고, 이미 마주쳤던 놈들 또한 섞여있었다.
이것을 알려준 것은 흙덩이의 덕이 컸다.
- 불릿…, 고블린, 아까…
“아까? 봤던 놈들이란 말이렷다?”
- 응…
이처럼 뛰어난 기억력을 보여주었다. 고만고만한 몬스터의 생김새를 구분하는 것이 불릿은 마냥 신기했지만.
그렇게 반나절가량이 지나자 불릿은 그렇게 찾아다니던 장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으음…….”
그는 얕은 침음성을 흘렸는데,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거대한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 끼기긱! 끼긱!
- 끼긱! 끼, 끼, 끽!
- 끼아아악!
째지는 듯한 음성이 사방에 울려 퍼지는 이곳은 고블린들의 은신처, 고블린 부락이었다.
규모만 언뜻 보아도 100마리는 훌쩍 넘어 보이며 그 안에 존재하는 이들까지 합하면 대체 얼마나 있을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더 이상의 접근이 불가능했기에 불릿은 숨은 상태로 입구를 살펴봤다.
‘하나, 둘…넷.’
다섯에서 일곱씩 짝을 지은 고블린무리 넷이 입구를 왕복하며 동물의 사체를 옮기는 것을 확인했다.
옆에서 흙덩이가 확인해주었으니 아마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곳은 임시로 지어진 곳이 아닌 정착을 위해서라는 것인데….
“마을에서 너무 가깝지 않은가?”
채 하루도 안 걸리는 거리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못내 걸리는 불릿.
무시하고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겨도 되었으나 언뜻언뜻 떠오르는 생각이 발목을 잡는다.
- 불릿, 무엇?
하루 종일 불릿과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 못했던 흙덩이가 불만을 토하자 그는 정신을 차리고 흙덩이에게 고했다.
“흙덩이여, 오늘은 이만 물러가고 내일 아침 일찍 오도록 하지.”
- 이유, 무엇?
“이유라…….”
사실 실전연습을 위해서라면 당장 몇 마리만 잡고 돌아가도 무방하다.
화가 난 고블린이 숲을 헤집어서 발생하는 일 같은 건, 솔직히 말해서 불릿과는 별로 상관없다.
그럼에도 그가 망설이는 것은 언뜻 떠오르는 작은 존재들 때문일 것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패배할 수가 없다했지. 내일부터 단기조사에 들어간다.”
* * *
불릿의 조사는 치밀하기 그지없었다.
먼저 제일 성가신 정찰자의 이동경로와 숫자부터 파악했는데, 고블린정찰자의 수는 평균 다섯에서 7마리. 그 중에서 지휘관으로 보이는 특히 강해보였다.
다른 고블린들과 비교를 하며 파악한 결과, 고블린정찰자들은 전사계급이라 추정되고 주로 하는 일은 부락주위의 정찰과 사냥이었다.
전사계급이 정찰과 사냥을 겸한다는 것은 부락의 크기가 중급을 넘어서지 않는다는 뜻.
이는 아무리 수가 많아봤자 200을 넘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고블린정찰자들은 하루 셋에서 네 개로 조를 이루어 교대로 임무를 수행했는데, 그들 때문에 숲의 들짐승들이 씨가 마른 것을 알 수 있었다.
- 불릿, 작은 것 30… 가슴 36…, 밖, 이동, 동일, 35…
안으로 침투하기엔 무리가 있기에 불릿이 발상해낸 고안, 그것은 흙덩이를 보내는 것이었다.
흙덩이는 어디까지나 정령, 굳이 인간의 형태로 지상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흙덩이를 땅을 통해 이동하게끔 해서 살피게 했다.
멀리 떨어지면 기감이 약해져 강제소환해제가 이루어지기에 불릿 본인도 부락 가까이에 위치해야 했지만.
“흠…, 새끼 30마리에 암컷 36마리, 전사계급이 35마리가 더 있군. 그 밖에 더 없는가?”
그가 흙덩이에게 더 묻는 이유는 아직 부락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족장이 파악되지 않아서 그렇다.
인간도 마을이 생기면 일의 대소사를 처리할 촌장이 생기는데 하물며 몬스터라고 없을까?
다만 인간과는 다르게 몬스터는 지식이 아닌 힘의 논리가 적용되었다.
“흙덩이여, 조금 더 찾아보게. 아직 친위대와 족장의 여부가 파악되지 않았네.”
- …기다려
부락을 정찰하는 동안 한층 말이 늘은 흙덩이가 새로운 단어를 사용하며 자리에서 사라졌다.
잠시 후.
다시 나타난 흙덩이는 자신이 아는 단어를 조합해 설명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 조금 큰 고블린 4, 엄청 큰 고블린 1…
“으음, 그나마 샤먼은 없어서 다행이군.”
이로써 고블린부락의 총 숫자는 130마리. 중급규모이지만 전쟁에서 한번 패배했는지 중급치고는 수가 적었고, 무엇보다 샤먼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위험하지 않은 것도 아니지.”
그래도 중급은 중급, 개인이 상대할 만큼 만만찮은 수가 아니었다.
게다가 족장이 있으니 생각보다 힘들지도 몰랐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가 사냥을 강행하려는 이유가 있었으니….
“놈들이 마정석을 좀 두둑하게 지니고 있으면 좋겠군.”
마정석. 이전에도 최하급이었지만 마정석이 정령력의 회복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고블린 또한 마정석을 지니고 있는 몬스터. 10마리당 1마리 꼴로 나오니 잡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오크보다 약한 놈이니 더 적을지도 모르지만…, 수가 많으니 기대할 만하겠지.”
마정석의 등급은 몬스터의 강함에 비례한다. 강한 놈은 더 높은 확률로 마정석이 존재했다.
하지만 불릿이 고블린을 잡는 이유가 마정석과 실전경험만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 그것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
“괘씸한 것들, 감히 본인이 섭취할 고기까지 모조리 잡는단 말인가?”
요 며칠사이 통 보이질 않는 동물들 때문에 불릿은 본의 아니게 채식주의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불릿과 같은 귀족이 먹고 싶은 것을 못 먹는 것 또한 수치스러운 일중 하나였다.
“가축을 기를 능력도 없는 것들이 자연의 균형까지 무너뜨리는군.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면 나중엔 남는 것이 없거늘, 쯧.”
이런 산에서는 물고기를 먹기가 힘들다. 대부분의 단백질을 산짐승들에게서 얻는데 이렇게 무분별한 사냥은 균형을 무너뜨리고, 산을 황폐화시킬 것이다.
‘흠, 쓸데없는 말을 해버렸군.’
다른 이유를 부과하기 위해 자신을 납득시키는 과정에서 헛소리가 튀어나왔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마음을 진정시키자 비로소 냉철한 그로 돌아왔다.
“놈들이 너무 많군. 정면대결은 아무래도 어렵겠어.”
고블린이 오크보다 약하다고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체의 차이, 무리를 이룬 고블린까지 약하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고블린은 몬스터치곤 꽤나 영리해 도구도 곧잘 쓰는데, 지금도 독침을 가지고 다니며 사냥에도 사용했다.
그들이 사용하는 독침은 일시적인 마비를 일으키기에 별로 위협적이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걸 여럿이서 사용하면 어떨까?
“여러 고블린이 계속해서 독침을 쏘면 발걸음도 떼지 못하고 죽겠지.”
아무리 약한 독성을 지녔다한들 한꺼번에 대량으로 주입당하면 생명이 위험하고, 지속적으로 맞아도 움직임에 지장이 간다.
결국 단신인 그로선 치고 빠지는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흙덩이가 내 명령에 따라줄지가 의문이지.”
흙덩이는 이제 막 세상에 나온지 2달차가 되어간다.
모르는 말도 많았고, 그 특성에 대해 파악하지 못한 점도 있었다.
이번엔 수가 많았기에 섣부른 선택은 죽음을 부른다. 그래서 그는 잠시 전투를 뒤로 미루는 것을 택했다.
“당장 마을로 진격하진 못할 것이다. 본거지가 있으니 먼 곳으로 떠나려면 준비가 필요한 법.”
지금도 고블린전사들이 짐승을 잡아 식량을 모으고 있었다. 숲의 생태계를 생각하지 않는 무자비한 사냥, 얼마 안 있어 일이 터짐을 예고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고블린도 생각이란 것을 할 줄 아는 존재. 족장이 살아있는 한 어리석은 선택은 적어질 것이다.
* * *
폭포 앞쪽을 수련장으로 정한 불릿은 흙덩이를 데리고 실험을 했다.
“흙덩이여, 1분 동안 지옥구덩이를 여러 개 시전해 보시게.”
- 1분… 뭐야?
“이런, 시간에 대해서 안 가르쳤군. 자칫 큰일 날 뻔했어.”
흙덩이가 인간의 시간개념을 알 리 없었기에 그는 손가락을 하나씩 짚으며 60초가 1분이란 것을 알려주었다.
“이해했는가?”
- 응…, 불릿 손가락 60개가 1분…
“……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는지 확인해봐야겠군.”
어째 대답이 불안불안하자 불릿은 흙덩이에게 손가락으로 세지 않고 1분을 재보라 했다.
- … 1분…
쏙.
쏘옥.
그러자 흙덩이가 내민 두 손에서 손가락이 치솟아 총 60개가 되는 것이다.
이럴 줄 알았다고 한탄하는 불릿. 그는 흙덩이가 보다 이해하기 쉽도록 손가락으로 세주기도 하고, 직접 수를 읊기도 했다.
또는 1분이란 것을 각인시키기 위해 1분 단위로 말로써 알려주었다.
1시간가량을 교육시키자 흙덩이는 비로소 시간이란 것의 개념을 알게 되었다.
“……지치는군.”
아직 본격적인 훈련은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진이 빠졌는지 그의 등허리가 축축이 젖어있었다.
- 미안…
흙덩이는 자신의 잘못으로 불릿이 힘들어하는 줄 알고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였다.
흙덩이는 알까? 무표정한 모습보다 이렇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불릿이 좋아한다는 것을.
너무 인형처럼 자신의 명령에만 따르는 것보다 불릿은 보다 활동적인 생동감을 원했다.
그렇기에 흙덩이의 이런 모습은 불릿에게 활력을 불어넣었다.
“크흠, 언제나 말하지만 자네의 잘못이 아니라네. 모르는 것을 야단칠 만큼 본인의 속이 좁은 것도 아니지.”
- 불릿, 괜찮아?
“딱히 무얼 한 것도 아닌데 괜찮고 말고가 있겠는가? 자네에게 또 다른 하나를 가르쳤다는 것에 보람도 느낀다네.”
이는 빈말이 아니었다. 이렇게 하나둘 가르쳐 나가다보면 언젠간 끝이 보이지 않겠는가?
게다가 흙덩이의 이해력도 괜찮았으니 불릿이 실망할 여지는 없었다.
애초에 흙덩이를 애라고 생각하는 불릿이 어린아이에게 실망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이를 모르는 흙덩이는 예의 무표정으로 돌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 힘하자.
“힘하자? 음…, 그럴 때는 힘낼게, 또는 열심히 할게, 이게 더 자연스럽겠군.”
- 힘낼게, 열심히.
“허허허. 그래그래, 그래야지.”
흙덩이가 특유의 애달픈 눈으로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불릿이 흐뭇하게 웃으며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면 양자라도 하나 들이는 것이 좋으려나….’
흙덩이의 외관이 미소녀이긴 하나 처음엔 정령으로서 대했다.
정령은 자신보다 기나긴 세월을 존재해온 이들이 대부분. 외관에 속기엔 불릿이 살아온 삶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흙덩이의 태도가 영락없이 어린아이라 그런지 자신도 모르게 그에 어울리는 단어를 가르쳐주고 있었다.
“아니지, 어렸던 녀석이 크면 징그럽지 않은가?”
어릴 때 똘망똘망했던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던 아이가 어느샌가 털이 수북한 남성으로 변해 영지군에 자원했던 것을 떠올린 불릿은 고개를 저었다.
“음. 징그러운 녀석. 그런 얼굴로 20대라니, 범죄나 마찬가지 않은가.”
============================ 작품 후기 ============================
9시, 12시에도 올라오니 기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