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정령사-11화 (11/241)

00011  사냥  =========================================================================

“사냥이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목표를 죽이거나 생포하는 것을 뜻하네.”

- 죽임, 생포…

“그래, 목적은 그 두 가지라고 생각하면 되겠군. 나머지는 그것들을 통해 떨어지는 부산물에 지나지 않으니까 말이야.”

세상일을 잘 모르는 흙덩이는 단어만 이해하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계약자가 어떤 목적이 있기에 그러했으리라 생각하고.

자신은 그저 훈련이 하나 끝날 때마다 계약자의 손을 머리에 얹으면 되는 것이다. 바로 지금처럼.

스윽스윽.

“후우, 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은 도통 적응이 안 되는군. 연기를 할 때에는 별다른 부담이 없었는데 말이야.”

- 친밀, 친밀…

“그래그래, 이 또한 친밀해지기 위한 의식 중 하나… 후우.”

최초의 거짓이 이제는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렸다. 자신이 처음 가르쳐준 것이 거짓이란 것을 알게 되면 이 정령은 자신을 불신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는 세상사에 무지한 흙덩이였기에 벌어진 일.

다른 정령들이었다면 굳이 묻지 않아도 이미 무슨 의미의 행동인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좋다, 오늘은 이만하지. 오늘은 쉬고 내일 사냥을 개시하도록 하겠다.”

- 끝… 헤어져?… 아우아우…

“흠, 내일이면 볼 수 있을 것이네. 본인도 몸을 가다듬어야 하기에.”

그것이 못내 아쉬웠는지 자신의 머리에 올려진 손을 매만지다 이내 사라진 흙덩이.

자신의 의지로 소환 해제한 것은 처음이었기에 살짝 놀랐으나 이내 마음을 가라앉힌 불릿.

“이제는 자신의 의지도 조금씩 반영하는군. 다른 정령들처럼 반항기가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야겠구나.”

자연스레 건방졌던 이전의 물의 정령들이 떠올랐다.

“흥, 너희가 아니어도 소환할 정령은 많지. 건방진 놈들.”

투덜거리던 불릿은 자리를 정리해 마을로 떠나기 시작했다.

간단히 물품을 갖춘 불릿은 다음날 마을에도 알리지 않고 사냥을 나섰다.

굳이 그가 주민들에게 보고할 의무도 없고, 쓸데없는 기대감을 만들기 싫었기에 그렇다.

그저 촌장에게만 ‘오늘은 귀찮게 하지 말라’고 말했을 뿐.

그는 옆에 흙덩이를 소환해두고서 수풀을 헤치고 있었다.

“흙덩이, 오늘은 조용히 움직여야 한다네. 다른 생명체에게 우리가 있음을 들켜선 아니 될 것이네.”

- 모, 몰라…

새롭게 배운 단어인 ‘몰라’를 말하는 흙덩이를 두고 잠시 고민하던 불릿은 다른 방안을 내놓았다.

“본인에게서 떨어지지 말게.”

스슥, 스스슥-

흙덩이에게 주의를 주고 은밀히 이동하던 불릿은 몸이 살짝 무거워진 것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는 흙덩이가 애달픈 눈빛으로 자신의 등만 바라보며 바짝 따라붙고 있었는데, 그의 옷깃을 잡고 있었기에 무거움을 느꼈던 것이리라.

떨어지지 말라는 것을 이런 의미로 받아들인 것에 살짝 머리가 아팠으나 확실히 조용하긴 했기에 별 말 않고 이동을 계속했다.

“흐음…. 동물이 한 마리도 안 보이는군.”

이동을 시작한지 꽤나 지났음에도 들짐승이 보이질 않았다.

지금 불릿의 상태는 중급 정령사의 능력을 온전히 낼 수 없다.

그래서 실전연습을 동물을 상대로 하려는 것인데 보이질 않으니 난감한 상황.

“그렇다고 몬스터를 상대로 하기엔 조금….”

물론 흙덩이가 있기에 오크쯤은 잡을 수 있겠으나 어디까지나 흙덩이는 하급 정령. 다수로 몰려다니는 오크떼를 상대로 어떨지는 예상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각종 마법물품도 손실된 상황, 물의 중급 정령을 다루었던 때와 같은 전력으로 비교해선 안 될 것이다.

부스럭, 스스슥-

그렇게 은밀히 이동하던 중 불릿은 어떤 흔적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족보행을 하는 생물… 아무래도 몬스터인 것 같군.”

동물이 이족보행을 하는 경우는 영장류를 제외하곤 거의 없다. 게다가 이 흔적은 어딜 봐도 사람과 닮은 발자국.

“이런 경우 나타날 수 있다는 몬스터는 한정될 수 있지만 확인하기 전까지 단언하기란….”

추적을 해본 적은 없으나 여태까지 쌓아온 경험을 토대로 어떤 몬스터의 흔적인지를 유추해내고 있을 때, 흙덩이가 말을 걸었다.

- 불릿…

“으음. 왜 그러는가, 흙덩이여?”

- 나… 알지도…

“호오? 이 흔적의 주인을 알아낼 수 있단 말이렷다?”

흙덩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의외라는 생각을 떠올린 불릿.

그러면서 어디 한번 해보라고하자 흙덩이가 망설이기 시작한다.

알 것 같다면서 말하지는 않고 우물쭈물 대는 흙덩이가 이상하자 말을 거는 불릿.

“무언가 잘못됐는가, 흙덩이여?”

- 나, 몰라… 이름…

“아.”

그제야 흙덩이가 망설이는 이유를 알아챘다. 흙덩이는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생김새를 알아도 말로 표현할 방법이 없던 것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불릿은 이내 한가지 떠오른 생각을 내뱉었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떤가? 자네가 직접 몸으로 몬스터의 동작을 흉내내보게. 그럼 본인이 알아 맞춰드리지.”

- 흉내…무엇…

“흉내란 무언가를 보고 따라하는 것이네. 이렇게, 아아아….”

닮지는 않았으나 자신을 따라하는 불릿을 보고 이내 고개를 끄덕이는 흙덩이.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하는 듯하던 흙덩이는 천천히 그 동작을 펼쳐보였다.

- …끼, 끼기긱.

덩실, 덩실.

뭐라 표현하면 좋을까. 이건 마치 광대가 원숭이 흉내를 내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우스꽝스러운 광경이었다.

아름다운 외모로 원숭이와 흡사한 흉내를 내는 흙덩이를 보고 불릿이 반응했다.

“풋….”

차마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 밖으로 새어나오자 흙덩이가 동작을 멈추고 불만을 보였다.

- …안 해…

하필 동작을 골라도 왜 저 동작을 골랐을까. 불릿은 그 동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으나 웃긴 건 웃긴 거였다.

“크큭…, 흠흠. 잘 알겠다. 대상은 고블린이로군.”

잠시 분위기가 흐트러졌으나 이내 그는 상념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고블린 또한 단독행위를 보이지 않는 몬스터로 유명하지. 그렇다면 이곳까지 나온 이유는 무엇인가?’

그가 이러저러 생각으로 복잡해진 얼굴을 보일 때 또 다시 흙덩이가 옷깃을 붙잡는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인가 싶어 쳐다보니, 웬일로 불퉁한 표정을 지었다.

대부분 무표정함을 보여주는 흙덩이기에 이 희귀한 경우는 무엇인가 싶어 바라보고 있을 때, 천천히 입을 연다.

- 이거, 이름 무엇?

자신이 흉내 낸 것을 보고 계약자가 웃자 기분이 상하였으나 흙덩이는 호기심이 왕성한 상태.

세상 그 무엇의 이름이라도 다 외울 기세로 물어오자 불릿은 조용히 대답해주었다.

“자네가 흉내 낸 몬스터의 이름은 고블린. 오크가 육중하다면 이놈은 날렵하다고 해야겠지.”

- 고블린… 오크? 무엇?

“흐음…. 가르치려 들다간 끝이 없겠군. 지금 당장은 보여줄 수 없다네. 나중을 기약하도록.”

- 오크… 고블린…

흙덩이가 그것을 중얼거리자 사태가 진정됐다 생각한 불릿은 흔적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오크는 무리지만 고블린 정도라면 떼로 나타나더라도 어떻게든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에 보이는 대담함.

현재 그가 약해지긴 했어도 과거 당당한 결사대의 일원중 하나. 겁을 먹을 리 없었다.

그 노하우로 방법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에 이러한 행동을 보이는 것.

‘다른 놈들만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군.’

자신은 실전을 경험하려는 것이지 위험에 빠지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준비도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서 위험에 뛰어드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한참 이동하고 있자, 흙덩이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 …기분, 쾅… 기분, 쾅…

그것을 듣고 불릿은 속으로 생각했다. ‘기분 나쁘다고 말하는 것인가?’라고.

아직 많은 단어를 모르는 흙덩이가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조합이 저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기분 나빴나 보다.

거기까지 생각한 불릿은 만일 있을지도 모르는 주변의 적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흙덩이에게 속삭였다.

“그럴 때는 ‘기분이 나쁘다’라고 하는 것일세.”

- …… 불릿, 기분 나빠.

“그래, 그렇게 응용하는 것이지. 그렇다고 본인에게 기분 나쁘다고 하는 것은 썩 유쾌하진 않군.”

불릿은 흙덩이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주위에 경계를 풀지 않았는데, 이는 흑마법사들의 결전에서 생겨난 버릇과도 같았다.

그렇게 얼마간을 더 나아갔을까. 불릿은 드디어 흔적의 근원지를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쉿, 조용히.”

- …응…

혹여 흙덩이가 발견될까봐 자신의 옆에 바짝 붙이고서 숨은 채 눈앞의 광경을 지켜보았다.

“흠…, 같은 녹색이라 그런지 이동을 하고 있음에도 눈에 잘 띄지 않는군.”

- 고블린.

“맞네, 고블린이지. 좀 많은 것만 빼면 말이지.”

그의 말은 고블린이라기보단 고블린‘들’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는 뜻이었다.

그만큼 많은 고블린이 숲속을 활보했는데, 무기를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 위협적으로 보였다.

“놈들이 무얼 하는 것이지….”

고블린들은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었는데 멀리 떨어진 상태에선 자세히 관찰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가까이 접근하자니 들킬 가능성이 높았고, 흙덩이는 아직 하급에 지나지 않았기에 많은 일을 할 수 없었다.

“몇 마리씩 다니는 것을 보니 움직임에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

- 무엇…?

“흙덩이여, 저 앞에 보이는 놈들이 총 몇 마리인지 알 수 있는가?”

정령은 각 속성에 따라 공간을 장악할 수 있는 거리가 있었다.

바람의 정령이 가장 범위가 넓고, 그 다음으로는 물, 땅, 불의 순으로 알려져 있다.

불은 자연적으로 발생하기 어렵기에 사대속성 중에서 가장 파괴력이 강하면서도 그 입지가 좁았다.

- 몰라…

“음? 이유가 무엇인가?”

- 이동… 안 돼, 한다… 이동…

“아직 하급이라 그런지 능력에 제한이 많군. 이동하는 물체에 대해선 감지할 수 없다는 것인가.”

- 응…

“흙덩이여, 자네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네. 능력이야 키우면 그만인 일. 오히려 자네의 빠른 성장은 칭찬받아 마땅하지.”

왠지 모르게 흙덩이가 시무룩해하자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고 대답하여주는 불릿.

그러면서 그는 멀리서 움직이는 고블린들의 움직임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조잡하지만 철제로 이루어진 무기, 허술하나마 존재하는 방어구, 지휘하는 것으로 보이는 놈도 보이는군.’

불릿의 눈이 가늘게 좁혀지며 속으로 중얼거린다.

‘뭐하는 놈들이더냐.’

흔히 사람들이 보는 고블린은 벌거벗은 놈들이 많았다. 그 이유는 고블린의 지능이 낮은 이유도 있지만 성체가 되기까지 너무 짧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도 한몫 했다.

빨리 자라는 것이 뭐가 나쁘냐는 자들이 간혹 있다. 그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생각.

지능이 낮은 자들이 급속도로 성장하면 그것은 덩치만 큰 아기나 마찬가지다.

머리는 아기, 몸은 어른. 그런 자들만 있으면 어찌 되겠는가?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것이다.

‘저 멍청한 것들이 어떻게 장비를 갖추고 있는 것인가?’

원시적인 형태의 가죽옷이라면 몰라도 철제무기는 단순히 불을 때는 것만으로는 만들 수 없었다.

광물에서 철을 추출하고 그것을 두드려 괴를 만든다. 그 다음에서야 검을 만들건 낫을 만들건 하는데, 이 모든 과정을 배우고 익히는 데에만 몇 년이 걸릴지 몰랐다.

그러니 성체가 되기까지 10년도 채 안 걸리는 고블린들이 모자란 머리로 배웠다는 것에 이상함을 느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뭔가 있다. 그것도 단순한 고블린무리가 아니다.’

불릿의 눈앞에는 결과가 있다. 그렇다면 원인이 되는 무언가가 있을 것.

그것을 찾아내 진상규명을 해내지 않으면 어떤 위험이 들이닥칠지 몰랐다.

“끽, 끼기긱.”

“끽끽.”

약간 큰 놈의 명령에 나머지 놈들도 따르는 모습. 뭐가 그리도 바쁜지 시종일관 두리번거리며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모습은 누군가를 추적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마치 물건을 찾는 모습이었는데, 각자 손에 쥔 무기를 꽉 움켜쥐고서 언제라도 날릴 수 있도록 대기하고 있는 것을 보면 또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여러모로 아리송한 자세였는데, 이는 불릿이 인간이기에 고블린의 생태를 이해할 수 없어 더욱 분간하기 힘들었다.

- 불릿, 뭐야?

옆에서 구경하던 흙덩이. 정령의 말은 계약자에게만 들리지만 온 정신이 고블린들에게 팔려있던 불릿은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가 조용히 하라고 했다.

“쉿.”

- 웅…, 쉿?

그리고 그 동작을 따라하며 새로운 단어를 배우는 흙덩이였다.

============================ 작품 후기 ============================

6시, 9시, 12시에 이어서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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