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0 사냥 =========================================================================
“이제부터는 자네와 나, 언제든 함께 라는 소리지.”
- 아우아우…
“불안해하지 말게. 자네는 본인의 계약자. 자신을 가져도 좋을 것이니.”
- 계약…계약…
그의 달래기가 통했는지 흙덩이는 잠시 그의 손과 눈을 바라보다 슬며시 손을 놓았다.
그 모습을 지켜본 불릿은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어를 외쳤다.
“흙덩이여, 다음에 보도록 하지. 소환해제!”
특유의 애달픈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자 나쁜 짓을 한 것처럼 가슴이 시큰거리는 불릿. 그래도 언제까지고 소환해놓을 수는 없었기에 이내 되돌려 보냈다.
그렇게 흙덩이가 사라지자 겨우 한숨을 토해낸다.
“후우우…. 어렸을 적 말을 조련하던 때가 떠오르는군.”
끌끌 씁쓸하게 웃으나 이내 표정을 고치는 불릿.
“그래도 이 정도로 쓸모 있을 줄은 몰랐군. 영지의 가뭄을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그 외에는 정말 놀라웠지.”
하급 정령임에도 놀라운 파괴력, 다채로운 공격방식, 거기에 미약하나마 존재하는 치유능력까지.
다른 땅의 정령에게서도 발견하지 못한 능력까지 발견했기에 오랜 세월 살아온 그로서도 흥분할 만했다.
“무엇보다 말도 잘 안 듣는 고얀 것들보단 훨씬 낫지. 차라리 나를 잘 따르는 아이가 훨씬 나은 법인 게야.”
물의 정령은 그를 싫어했다. 계약자를 싫어하는 정령은 흔치 않았으나 왠지 모르게 중급 정령사인 그를 싫어했으니 이상할 일이다.
상대가 자신을 싫어하는 티를 팍팍 내니 백작 위를 가진 불릿으로서도 기분이 상할 노릇.
당연히 그들의 관계는 거기서 멈추어 섰었다.
“무엇을 더 할 수 있을지 좀 더 구상을 해봐야겠군.”
그렇게 중얼거리던 불릿은 마을을 향해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팍, 팍.
흙을 걸러내는 사내의 입에서 불평이 터져 나왔다.
“아오, 무슨 놈의 돌이 골라도, 골라도 끊임없이 나오지?”
“헉헉…, 잔말 말고 괭이질이나 똑바로 하게. 이제 곧 저녁 먹을 시간이라고.”
핀잔을 주는 사내의 말대로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시간.
아직 오늘의 할당량을 채우지 못했는지 허겁지겁 밭을 고르는 사내들의 모습은 무척 바빠 보였다.
“나라고 그걸 모르는 줄 아나? 수다라도 안 떨면 지루해 죽을 것 같으니 그렇지.”
화전마을에서의 일상은 대부분이 먹을 것을 구하는데 소모된다.
밭을 고르고, 숲에서 먹을 것을 채집하고. 여유가 되면 가축을 기른다.
가끔 옷을 만들거나 생필품을 구하는 것 외엔 전혀 시간의 배분이 없는 상황.
일터에서의 수다는 하나의 놀이나 다름없었다.
“후우, 나만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응? 저게 뭐지?”
핀잔을 주던 사내도 투덜거리던 그때, 멀리서 다가오는 인영이 보였다.
“왜, 무슨 일인데?”
이 깊은 산골에 숨어든 화전마을에 누군가 찾아올 일은 거의 없었다. 가끔가다 길을 잃은 사냥꾼이 아닌 이상 사람 만날 일이 없다는 뜻.
그렇기에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리라.
“저기, 저기 누군가 오지 않는가?”
“으음. 안에 알려야 하나?”
“그래야 할 것 같…, 응? 저거, 그놈 아닌가?”
“어디어디… 맞네, 맞어. 그새끼구마.”
얼마 전 거지꼴로 자신들의 마을에 찾아온 청년, 그놈이 틀림없었다.
뭐, 따지고 보면 그들의 차림도 거지나 다름없었지만.
그들이 수다를 떠는 사이에 청년과의 거리는 좁혀졌다.
뚜벅뚜벅.
탁.
“안녕들 하십니까.”
“…안녕하쇼.”
“쯧.”
불릿의 인사에 마지못해 하는 인사와 혀 차는 소리. 그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에 아랑곳 않고 마을 안으로 들어서는 불릿.
그들은 아직도 그를 불신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마을 안에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듯, 촌장이 밖에 나와 있었다.
“흠흠, 왔는가?”
“예, 식사는 준비되었습니까?”
“내 그렇지 않아도 말하려했네. 자자, 들어가세.”
촌장의 안내에 따라 들어간 곳엔 4인 가족이 자리 잡고 있었다.
미리 언질을 받은 것인지 다들 고개를 숙이며 그를 반겼으나 표정은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아이들의 눈엔 두려움이 일었고 어른들의 눈엔 적을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미 예상했던 바, 불릿은 자리에 앉으며 촌장에게 소개를 받았다.
“이쪽은 불릿이라는 청년이고, 당분간 우리 마을에 머물 것이네. 자네가 잘 보필하게.”
“……예.”
“그리고 이쪽은 잭이라고 하네. 아내는 필리아, 아이들은 큰애가 잭스, 작은애는 리아.”
아이들의 이름을 어떻게 지었는지 훤히 알 정도로 간단한 이름이었다.
별로 불릿을 환영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으나 불릿은 간단하게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알고 있었다.
“촌장님, 이들에게 대가는 주었습니까?”
“으, 응? 대가? 자네에게 어찌 대가를 받을 수 있겠는가?”
불릿은 속으로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하며 한심한 눈으로 촌장을 쳐다보았다.
그 눈길에 움찔했으나, 돈을 토해내긴 싫었는지 고개를 돌리며 외면한다.
이 또한 예상했던 바이기에 불릿은 자신의 품에서 동전을 꺼내 그들 부부에게 건네주었다.
“이, 이것은….”
“여, 여보. 금화예요, 금화.”
예상치 못한 금액에 놀랐는지 잭이 금화를 깨물어보자 필리아 또한 받아들어 깨물어본다.
“이 무슨 행태란 말인가!”
당사자인 불릿을 앞에 두고 진위여부를 가리고 있으니 큰소리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그제야 상황파악을 한 잭 부부가 고개를 숙이며 사과한다.
“죄송합니다. 이런 큰돈은 생전 처음 보는지라….”
“미안해요.”
그러자 불릿이 손을 저으며 이를 받아들인다.
“괜찮습니다. 얹혀 지낼 입장에서 아무런 대가도 없을 수는 없지요. 자, 음식이 식겠습니다. 식사들 들지요.”
“네, 네. 자, 먹읍시다.”
“잘 먹겠습니다!”
“맜있게 드세요.”
불릿이 수저를 들자 그제야 음식을 먹기 시작하는 촌장과 잭네 가족들.
어느샌가 불릿이 연장자로서의 모범을 보이고 있었으나 그 누구도 이상하다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볼레트 씨, 잘 다녀오세요!”
“형, 이따 놀아줘야해!”
“다녀오겠습니다.”
불릿은 필리아와 잭스에게 마중을 받으며 집을 나서자 자기들끼리 노니던 아이들이 그에게 다가왔다.
“아저씨, 어디가?”
“또 밖에 나가는 거야?”
“하는 일도 없이 빈둥빈둥 놀면 엄마가 밥 먹을 자격 없댔어.”
지난 한 달간 불릿은 마을에서 지내며 주민들과 꽤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그렇다면 촌장님은 굶어야겠구나.”
원래 명칭이 없었는데 불릿이 촌장이라 말하자 따라 부르기 시작한 마을주민들.
폭포와 마을을 자주 오고가니 그들과의 접촉도 많아져 스스럼이 없어졌다.
‘마을은 작은데 아이들은 많군.’
불릿은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촌장에게 궁금함을 물었었는데, 아이가 많은 이유는 여기서 마땅히 즐길 거리가 없기에 그렇단다.
무슨 소린고하니 유일한 여흥이 밤일이라는 것이다. 그 소리를 듣고 불릿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으나 반대로 이들이 어리석다 여겨졌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낳아서 어쩌자는 것인지.’
자기들 먹고살기도 빠듯한데 이 와중에 아이만 대책 없이 많이 낳는 것을 보니 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것이 분명했다.
“핑코, 내가 갈 곳이 폭포밖에 더 있겠니.”
“제리, 안이나 밖이나 별 차이가 없는데 가고 말고가 어딨겠어.”
“신디, 나는 노는 것이 아니란다. 그 말은 촌장님도 욕하는 것이야.”
불릿이 일일이 아이들의 물음에 답해주는 이유는 그의 본래 나이가 중년이기에 귀여워 보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외부인인 자신이 아이들과 친해진 이유도 그가 먼저 귀여워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피, 거짓말. 혼자서 노닥거리는 게 노는 거지.”
“신디, 말이 심해. 볼레트 씨는 그럴 분이 아니셔.”
신디라는 여아의 말에 한 아이가 핀잔을 주며 말을 정정해주는 모습을 보였다.
그 아이는 불릿이 눈독들이고 있는 아이로, 이 마을과는 어울리지 않게 유독 영특했기에 그렇다.
“카인, 난 괜찮다. 아이들의 말이니 내가 이해해야지.”
“부디 아이들에게 나쁜 감정을 가지시지 않길 바랍니다.”
자신도 아이면서 아이답지 않은 말투까지, 과연 백작인 불릿이 눈독들일 만했다.
불릿은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아이들에게 말을 건넸다.
“슬슬 가볼 시간이네. 오늘은 여기까지.”
“에엑? 벌써?”
“아저씨만 몰래 맛있는 거 먹는 건 아닐까?”
“나도! 나도 데려가줘, 볼레트 형!”
헤어지기 아쉬웠는지 아이들이 떼를 쓰자 카인이 아이들을 다독이기 시작했다.
“그만들하고, 너희들 부모님 일은 제대로 도와드렸어? 론, 너 물 긷는다고 하더니 왜 여기 있어? 핑코, 아주머니가 너 찾으시던데?”
“윽, 하러 갈 거야.”
“히익! 나, 나 먼저 가볼게!”
‘말주변도 좋고.’
아이들을 콕콕 집어 한마디씩 건네주더니 금세 자리를 흩트리는 카인의 솜씨.
아이들이 귀엽긴 하나 내심 귀찮았던 불릿으로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카인, 고맙다. 덕분에 폭포로 갈 수 있게 되었구나.”
“아닙니다, 그저 아이들을 미워하지만 말아주세요.”
“후후, 카인도 아이가 아니었었나?”
어른스러워 보이지만 결국 카인도 어린아이. 그것이 귀여워 보였던지 불릿은 카인의 머리 또한 슥슥 쓰다듬어 주었다.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지 뜨지만 이내 그 감촉을 느끼며 눈을 감는 카인.
“자, 진짜로 가봐야겠구나. 그럼 나중에 보자.”
“오늘 하루도 고생하세요.”
그렇게 불릿은 마을에서 멀어지면서도 곳곳에서 마주치는 주민들에게 인사를 받으며 동굴이 있는 폭포로 향하게 되었다.
“후우, 아이들은 정말 말이 많군.”
- 불릿…말 많아…
“아니지, 본인은 결코 가볍지 않다네. 그건 연기지, 연기.”
흙덩이와 수련을 거듭하던 불릿은 흙덩이의 말에 부정하며 고개를 저었다.
어느덧 흙덩이가 세상에 나온 지도 한 달. 이제 인간의 언어에도 익숙해져 의사소통에 문제는 없었다.
간간히 어려운 말이 나오면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가르쳐주면 되었기에 큰 흠은 되지 않았다.
퉁-, 퉁-
흙덩이가 힘조절을 위해 멀리 놓인 나무막대기들을 상대로 기술을 연마하는 사이, 불릿은 고민에 빠졌다.
“더 이상 일반적인 수련으론 강해지기 힘들다. 단시간 내에 더 강해지기 위해선 실전이 필수요소지.”
불릿은 벌써부터 정체기를 겪고 있었다. 물의 정령을 통해 중급 정령사가 되었기에 그 경험을 토대로 빠르게 강해졌다.
그러나 땅의 정령은 물의 정령이 아니었기에 자신이 모르는 것도 많았고, 무엇보다 실전경험이 부족했다.
“기술의 효율성도 점검해야 하고, 실전에서 흙덩이가 얼마만큼 활약할 수 있는지를 수치화해야 한다.”
자신의 영지까지 가는 길도 고단하지만 도착하고 나서도 문제였다. 영주의 실력이 전보다 낮아진다면 당장 주변의 파벌들로부터 어떤 위협을 받을지 상상하긴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이 마을이 마음에 들기도 했고 말이지.”
첫 만남은 주민들의 홀대와 촌장의 사기 때문에 안 좋은 감정을 품기도 했었다. 그러나 한 달간 잭의 집에서 머물며 겪어온 그들은 상상보다 순순했다.
세상의 때가 덜 탔다고 해야 할까, 적절한 표현인지는 몰랐으나 그들이 마음에 든 것은 사실.
그렇기에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고 마을에서도 좋은 사냥을 하려고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움직이는 물체를 잡기란 매우 어렵지. 아마 좋은 수련대상이 될 것 같군.”
그는 긴 세월에 걸쳐 중급 정령사가 되었으며 이후엔 결사대에 합류해 전투경험을 쌓았다.
말하자면 혼자서 수련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는 뜻이다.
게다가 땅의 정령은 물과 비슷한 점도 있으나 역시 다르다. 이를 극복하긴 위해선 실전은 필수요소.
“역시 사냥에 나설 수밖에 없겠군.”
- 아아, 사냐앙…아아…
“음? 벌써 끝냈는가, 흙덩이여?”
- 응……
흙덩이의 대답에 불릿이 쳐다보았다. 흙덩이의 대답이 짧은 이유는 말이 미숙한 흙덩이를 위해 최대한 간결한 대화법을 알려준 것이다.
원래는 ‘그렇다’, ‘완료했다’ 등의 표현도 알려주었으나 외모와 도저히 매치가 되지 않았기에 그냥 짧은 단답형으로 끝냈다.
- 불릿, 고민? 함께…
예의 그 애달픈 눈빛으로 머리칼을 찰랑이며 흙덩이가 말을 걸어오자 불릿은 흙덩이를 마주보며 말하기 시작했다.
“흠, 흙덩이여. 아무래도 우리는 실전경험을 쌓기 위해 사냥을 해야 할 것 같네.”
- 사냥… 죽임? 죽여? 살해…아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흙덩이의 물음에 불릿은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해줘야 함을 느꼈다.
============================ 작품 후기 ============================
오늘 오후 3시, 6시, 9시, 12시에 이어서 올라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