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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정령사-8화 (8/241)

00008  흙덩이  =========================================================================

다짜고짜 정령어로 대화를 걸어오자 불릿은 머리가 아팠으나 시선을 돌리지 않고 흙덩이를 마주봤다.

- %%#$&^&%$…, $#%#^^……

무언가 말을 하고자 하는 것 같은데, 그걸 모르겠으니 답답했다. 그러면서 흙덩이도 마찬가지의 심정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는 도중, 흙덩이의 말이 끊겼다.

“무얼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 흙덩이여?”

- 나아…, 흐, 흐윽더엉이…

“음? 그래그래! 자네는 흙덩이야! 이제 좀 이해하는가?”

- 흐, 흙더엉이… 흙덩이…

이해했다는 제스처로 고개까지 끄덕이며 반복해서 말하는 흙덩이를 보고 불릿은 감탄했다.

“오호, 고개의 끄덕임까지 이해한 것인가? 학습능력이 꽤 빠르군. 하긴, 지적능력이 없었으면 소환자체에 응하지도 못했을 테지.”

불릿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리자 흙덩이도 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흙덩이, 흙덩이…’를 반복해서 읊는다.

아무리 봐도 부모가 아이를 가르치는 장면.

그러나 미혼인 불릿이 그걸 알 리는 없었다.

“크흠, 이제야 한숨 좀 놓겠군. 그나저나 명령은 대체 어찌 이해시킨단 말인가?”

이제야 첫걸음을 떼었으나 흙덩이를 아기로 보자면 걸음마를 막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상태.

수련하는 것보다 가르치는 것에 더 큰 곤욕을 느끼고 있는 불릿이었다.

* * *

“흙덩이여, 이것을 여기로 옮기도록.”

- 여기로 옮기…

툭.

아침부터 속행한 특훈이 성과가 있었는지 흙덩이가 조그마한 손으로 돌을 옮겼다.

“참으로 훌륭하도다, 흙덩이여! 그럼 이제, 저 나무를 가격하도록!”

- 아아…아아?

역시 아직까진 몸소 보여주지 않으면 이해를 하지 못하는 흙덩이의 모습.

흙덩이의 이러한 모습에 익숙해진 불릿은 직접 돌멩이를 집어 들어 자신이 가리켰던 나무로 던졌다.

툭, 데굴데굴…

힘이 모자랐던 데다가 전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본인처럼, 저 나무, 때린다.”

- 돌…, 나무…

흙덩이는 불릿이 그러했듯 돌멩이를 집어 들고서 나무를 향해 던졌다.

투둑.

바로 앞에 떨어지는 돌멩이.

“후우, 그게 아니라, 이걸로 저 나무를 맞춰야하는 것일세. 쾅! 하고.”

- 아아…, 쿠와앙…?

“쾅! 파괴! 쾅쾅!”

좀체 이해를 못하자 의성어를 남발하며 손짓발짓을 하는 불릿.

그것을 바라보던 흙덩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쌔애앵!

쾅!

그의 바람대로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돌멩이가 나무에 적중했으나 불릿의 얼굴은 개운치 않았다.

“어째서 인간의 육체에 집착하는 것이지? 정령이라면 응당 형체에 연연하지 않아야 할 터인데….”

이번에 소환한 흙덩이는 여타 정령들과는 달랐다.

정령들은 평소 소환자가 원하는 형태를 구성하지만 능력을 구사해야 할 때에는 그것에 구애받지 않았다.

특히 그의 예전 정령인 물의 정령들은 본질이 물이었기에 그래서인지 기괴한 모습으로 적을 유린하기도 했다.

하지만 흙덩이는 오로지 육체에 한해서 할 수 있는 동작들만을 반복한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

‘가만, 혹시 본인을 따라 해서?’

현재 흙덩이의 학습법은 불릿의 동작을 따라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불릿의 짐작이 틀렸다고 볼 수는 없었다.

“후우, 결국 원활한 대화소통이 이루어져야지만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인가.”

불릿이 팔짱을 끼고 이마를 짚고 있을 때 흙덩이가 스스로 나무를 향해 연습을 하고 있었다.

쾅! 쾅!

분명 위력적이긴 했으나 육체적 한계가 있어서인지 그 이상의 위력을 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반복적으로 같은 행위를 하고 있는 흙덩이.

“그만하시게, 흙덩이여.”

- 아아…?

“행동, 멈춤, 그만.”

그는 흙덩이의 이해를 돕기 위해 손을 움직이다 말과 동시에 멈추며 의미를 각인시키고 있었다.

“이해했는가, 흙덩이여?”

- 아아…, 나, 멈춤, 그만? 아아아…?

흙덩이가 어설프게나마 배운 단어를 조합해 자신의 행동이 맞느냐고 물어오자 불릿이 크게 끄덕였다.

“그래, 그것일세! 하핫! 학습능력이 빠르니 본인으로서도 조금은 유쾌해지는군!”

아무것도 모르던 흙덩이가 자신의 가르침에 하나둘 알아가는 모습을 보니 자신의 암울한 처지에도 웃음이 나왔다.

이쯤 되니 불릿은 물의 정령력이 사라진 것에 대한 미련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 차라리 잘된 일이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다.’

정령에 대한 친화력이 사라진 것도 아니고, 그저 노선이 변경됐을 뿐이다.

아직 하급 정령일 뿐이지만 흙덩이를 조금 더 키우면 중급 정령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게다가 이토록 귀엽고 자신의 말을 잘 듣는 정령에게 나쁜 감정이 생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과거의 악몽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으니…….

- 아, 아우아아…

“무엇이 궁금하느냐? …, 아니지. 무엇이 궁금한가?”

잠시 상념에 잠겨있던 불릿에게 하급 정령이 무언가를 물어오자 자기도 모르게 하대를 하다 급히 말을 바꾸는 불릿.

정령은 동반자지 계약자의 수족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상호의 관계는 동일. 그것이 계약의 조건이었으니까.

- 아우아우…, 아아아…

“흐음. 무언가 말이 바뀐 것 같은데….”

좀체 감정표현을 하지 않던 흙덩이가 ‘아아아’ 말고도 다른 말을 섞어서 표현하기 시작했다.

비록 그 말이라는 것이 ‘아우아우’였으나 흙덩이는 생각할 줄 아는 존재, 무언가 의미가 있으리라.

흙덩이는 나무가 있는 방향을 가리키더니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무엇인고, 그 동작은? 그건 본인이 가르쳐주지 않은 동작일터.”

지금까지 불릿이 가르쳐준 동작만을 따라하던 흙덩이가 무언가를 스스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에 흥미가 동한 불릿이 흙덩이가 가리킨 나무를 바라보자 흙덩이가 행동을 개시했다.

-아우아…, 콰앙…

투확!

흙덩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앞으로 내민 두 손, 주먹이 화살처럼 쏘아지더니 나무를 가격했다.

콰앙-!

“오오오…….”

흙덩이가 새롭게 보여준 공격의 위력은 놀라웠다.

그냥 돌멩이를 던졌을 때는 그저 나무가 약간 패이는 정도였으나 이번엔 아예 구멍을 내버린 것이다.

그렇게 구멍이 숭숭 나버린 나무는 약간 기우뚱하더니 그대로 넘어가고 말았다.

구구구-, 쿠웅!

흙덩이가 보여준 공격에 불릿은 크게 만족했는지 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핫! 매우 훌륭하도다! 이 정도면 꽤나 대단한 공격이지 않은가?”

이제 막 소환된 하급 정령치고는 생각의 발상도 괜찮았고 무엇보다 거리에 비해 그 위력이 뛰어났다.

이 정도 공격을 선보이려면 적어도 중급 정령은 되어야했기에 불릿이 좋아했던 것이다.

“본인에게 이것을 보여주려 했던 것이었는가? 본인은 대단히 만족했도다!”

불릿이 크게 웃으며 흙덩이를 칭찬하자 흙덩이의 무표정한 얼굴에 미묘한 변화가 일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 아우아…, 아아아…

“음? 왜 그러한가? 무언가 잘못된 점이 있는가?”

흙덩이는 어느새 재생성 된 손으로 불릿의 손을 붙잡고 자신의 머리에 올려놓았다.

- 계약자…, 친밀…, 의식…

“흐음?”

이게 무슨 짓인가 싶던 찰나, 불릿은 불현 듯 떠오른 기억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설마 그것을 해달라는 것인가?”

혹시나 싶어 흙덩이의 머리를 쓰다듬자 미묘했던 흙덩이의 표정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러면서 그 손길에 거부하지 않으니 흙덩이가 바랐던 것이 이것이란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이 무슨….’

불릿은 흙덩이의 찰랑이는 머릿결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변명이 잘못된 교육결과를 낳았다는 사실에 자책감이 들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거짓말쟁이의 최후에 관한 것이었다.

“한번 시작된 거짓은 끝이 안 보인다… 고 했던가.”

자신의 잘못된 교육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흙덩이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으나 이제 와서 정정할 수도 없었다.

체면 때문에 거짓을 했노라, 이렇게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불릿은 자신의 인생에 오점을 남긴 것 같아 끙끙거리며 흙덩이를 만족시킬 뿐이었다.

- 친밀…, 의식…

“후우우….”

- 계약자? 훌륭? 아니? 나, 흙덩이. 그만?

안색이 어두워진 불릿이 한숨을 내쉬자 단어를 반복하고 있던 흙덩이는 짧막한 단어를 불릿에게 던졌다.

무슨 뜻인가 생각하던 불릿은 그게 어떤 뜻으로 말한 것인지를 알아채고 입을 열었다.

“자네의 잘못은 없네. 그저 본인이 부덕한 탓일세.”

차마 정령에게도 말을 못하자 흙덩이는 불릿이 그러했듯 고개를 갸웃하며 알 수 없다는 말을 꺼냈다.

- 아아아, 아아아아……

“흙덩이여! 주먹 쾅!”

- 쾅…

투확!

빠르게 쏘아진 흙덩이의 주먹이 목표를 향해 쏘아진다.

쾅!

나무둥치에 올려져있던 돌덩이가 쪼개져 사방으로 흩날린다.

불릿은 만족스러웠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엔 다른 곳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흙덩이여! 쌍주먹 쾅!”

- ㅆ…쌍주먹 콰앙…

따라 말하려던 흙덩이는 발음이 어려웠는지 잠시 멈칫하다 이내 따라 부르며 주먹 두 개를 날려 보낸다.

푸확!

이번엔 폭포수로 형성된 강물이 튀어 오르며 그 파괴력을 짐작케 해주었다.

쏴아아…

높게 치솟은 강물은 바닥으로 떨어지며 비를 이루었고, 불릿은 옅게 형성된 무지개를 보며 또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흐음. 언어교육하고 발동속도만 발전시키면 괜찮을 것 같군.”

그럭저럭 만족했는지 훈련을 중지시키자 떨어져 있던 흙덩이가 다가와 그의 손을 붙잡는다.

그는 흙덩이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았으나 이내 포기하고 흙덩이가 원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이윽고 그의 손이 찰랑이는 머리위에 놓이자 차마 한숨도 못 쉬고 쓰다듬는 불릿.

“남들이 이 광경을 안 보았으면 좋겠군.”

- 친밀… 친밀… 의식, 다…

“끙. 그래, 친밀도를 위한 의식일세.”

아무것도 모르는 흙덩이는 맹목적으로 그의 가르침을 흡수했고, 그것이 현재의 상황을 만든 것이다.

‘다음부턴 한 번 더 생각하고 행동해야겠군.’

남몰래 다짐하는 불릿.

꼬르륵…

그가 신중한 얼굴로 흙덩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자 배에서 혈당치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후우. 품위 떨어지는 행동을 남발하고 있구나…, 허허허.”

그는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뱉으며 배를 매만졌다.

귀족은 신체에서 나는 소리를 입으로 한정시킨다. 만약 엉덩이나 배에서 소리가 난다면 그것만큼 망신살도 없는 것이다.

배고픔은 평민들에게나 있는 것이다. 귀족과 평민은 다른 것이기에 평민들이 겪는 배고픔은 곧 수치다.

평민과 귀족은 달라야 하니까.

전쟁을 겪는 동안이라면 모를까. 지금 이건 꽤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배고픈 것을 수치로 여기는 족속들이었기에 백작인 불릿에게 있어 이것은 불명예스런 일이었다.

“점심이 훌쩍 지나버렸군. 내일이면 식사도 끝인가?”

“흙덩이여, 저리로!”

- 저리로……

“흙덩이여, 이리로!”

- 이리로……

“흙덩이여, 주먹 쾅!”

- 주먹 쾅…

쾅!

“이어서 쌍주먹 쾅!”

- 쌍주먹 쾅…

투확! 쿠궁!

“흐음. 역시 괜찮군, 괜찮아.”

거듭된 훈련으로 기본적인 명령들을 알아듣게 되자 불릿은 약간 피어올랐던 불안도 잦아듦을 알 수 있었다.

“지금껏 보아왔던 정령사들은 땅의 정령으로 수비적인 성향을 보여왔지.”

대륙 최정상이라 볼 수 있는 결사대에서 그는 땅의 정령들이 수비의 용도로만 쓰여 온 것을 보았다.

땅의 정령은 여타 정령들과는 달리 정형화된 물질을 많이 사용하기에 그 단단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정령사들이 취약할 수도 있는 물리적 공격에 쉽게 대응할 수도 있었고, 특성상 다른 정령들과의 궁합도 잘 맞았다.

“벽을 소환해 아군을 보호하고 적의 진군을 막는다, 생각만 해도 좋군.”

그 유명한 레인보우 아틱 커맨더조차 땅의 정령을 수비용도로 썼다.

그것을 물의 정령에 익숙해진 불릿이 사용하니 의외의 성과가 나온 것.

물론 그로서도 흙덩이가 자신의 신체일부를 날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것은 예상치 못한 소득이라고 할 수 있겠다.

- 불릿…, 다음…다음…

“오오, 다음이라는 말도 익혔군! 좋다, 그럼 다른 것도 해보는 것이다!”

표정의 변화는 적었으나 귀찮아하던 물의 정령과는 달리 적극성을 보이는 흙덩이. 그래서 그런지 그렇게 예뻐 보일 수 없었다.

물의 정령은 흐름을 중시하기에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하면 역행이니 뭐니 하면서 굉장히 싫어했다.

“예의라곤 한점 찾아볼 수 없는 슬라임놈들과는 차원이 다르지 않은가? 험험.”

불릿이 슬라임이라 표현한 것은 물의 정령. 흐물흐물하고 촉감도 물컹하기에 그리 붙인 것이다.

그의 입장에선 상당한 욕을 한 셈. 그라고 해서 물의 정령과의 계약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흠흠, 그럼 이것도 한번 해보시게!”

============================ 작품 후기 ============================

오늘밤 12시에 이어서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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