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6 화전마을 =========================================================================
그것은 금화 1골드였다. 놀란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와 금화를 번갈아봤다.
“이, 이렇게 큰돈을 어디서….”
“이게 돈입니까? 저기 숲속에 오두막이 있길래 예뻐서 가져왔는데.”
“오두막? 어디요? 어딨습니까?”
역시 돈이 관련되자 민감하게 반응한다. 돈만 있다면 이런 지긋지긋한 곳에서 굿바이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거기까지 계산한 불릿. 능청스럽게 나가기로 작정했다.
“여기서 일주일쯤 걸리나? 거의 무너지려고 하던데요? 먹을 게 없나 뒤지다가 하나 겨우 건졌네요.”
“그렇습니까…….”
“근데 그게 돈이라고 했죠? 그럼 먹을 걸 살 수 있습니까?”
“예, 살 수 있지요.”
“그럼 저한테 먹을 걸 더 주시겠습니까? 보아하니 그게 꽤 큰돈인 것 같은데.”
그가 상대남성에게 이렇게 말하는 데엔 이유가 있었다. 기억을 잃었으나 멍청하진 않다.
돈의 가치를 몰라도 대화를 통해 유추해낼 수 있는 머리를 가졌다는 것을 어필한 것이다.
과연 눈앞의 남성의 눈알이 핑핑 도는 것이 보였다.
“예, 이정도면 3일치의 식량을 드릴 수 있겠네요.”
“우와, 그렇게 많이요? 근데 씻은 후에 자고 싶은데 그것도 되나요?”
“못할 것도 없지.”
만만하게 보이려고 연기했으나 어느새 반말을 하는 상대를 보니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게다가 지금 자신에게 사기를 치고 있지 않은가?
돈의 단위는 100쿠퍼가 1실버, 100실버가 1골드.
3쿠퍼면 보리빵 하나를 살 수 있는데 어디서 개수작이란 말인가?
“그럼 부탁드립니다.”
“흠흠, 혹시 이 동전이 더 없는가?”
“음? 있으면 더 주고 먹을 거 더 받았겠죠. 빨리 집으로 안내해주세요. 피곤하군요.”
“이리 따라오게.”
그를 따라 밖으로 나서자 초조한 기색으로 자신을 보는 남자들과 여성들이 있었다.
아니, 여자들은 그냥 그의 얼굴을 보려는 거다.
지금만 해도 멍하게 입을 벌리고 보는 것 좀 봐라.
‘소싯적의 본인을 떠올리게 만드는구나.’
내심 의기양양해진 그였으나 예의 웃음을 잃지 않고 연기를 하며 남성의 뒤를 따라갔다.
그가 순진한척 연기를 하고 있으나 긴장을 늦추진 않고 있었다.
지금만 해도 앞장서는 남성은 이름도 밝히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 또한 이용해주면 그만이지.’
어차피 속고 속이는 세상. 그렇다면 자신도 속이면 그만이었다.
잘해주는 것은 자신의 영지민과 동료들만으로도 충분했다.
‘선을 넘지 말아야 할 것이야.’
그는 품속에 숨겨놓은 단검을 떠올리며 눈앞의 남성을 따라갔다.
매 끼니마다 음식을 제공받기로 한 불릿은 휴식을 취하며 몸을 다듬기로 했다.
최상의 상태에서 시도해야 가장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기에.
“동굴? 동굴은 왜 찾는가?”
“그냥 불현 듯 떠올라서 물어봤지요. 기억을 찾으려면 뭐라도 해봐야하지 않겠습니까?”
다음날이 되자 불릿은 아직도 이름조차 모르는 촌장(임시로 그렇다 치자)에게 물어보았다.
기억도 온전치 않다던 놈이 동굴이 어딨냐고 물어보자 촌장은 의심의 눈초리로 그를 흘겨보았다.
그의 시선은 마치 ‘너 뭐 찾으러 왔지!’ 같았는데, 불릿은 같이 가자는 것으로 그 의심을 해소했다.
“동굴이라…, 근처에 폭포가 있는데 거기 뒤편에 하나있다네. 안에까지 들어가 보진 않아서 자세힌 모르겠지만.”
“그럼 이 기회에 제가 들어가 보고 뭐 있나 말해드리겠습니다.”
“자네 진짜 기억나는 게 없는가?”
“있으면 제가 왜 여기에 있겠어요? 제 마을도 아닌데.”
사실 촌장이 불릿에 대한 의심을 많이 푼 것은 돈의 가치를 모르는 것에 있었다.
화폐의 유통이 거의 없는 촌골에서 살던 게 아닌 이상 삶에서 돈이 오고가지 않는 경우가 없다.
그런데 돈 자체를 모른다는 점에서 기억상실 때문만은 아니라고 짐작했으리라.
“그럼…, 나랑 같이 가지.”
“그래주겠습니까? 거기가 살기 좋으면 짐도 옮겨서 살고 싶고요.”
“어째서?”
“3일 뒤에 나가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여기까지 오는 것도 죽을 뻔했는데 그래도 마을 근처가 낫겠지요.”
매정하게도 딱 3일 뒤에 음식의 공급이 끊음과 동시에 나가라고 했다. 불릿은 촌장을 쓰레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기에 다행이라 여겼다.
제 욕심에 다른 이들에게 금화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으니까.
지금만 해도 콩고물이 떨어질까 싶어 자신과 함께 가자고 하지 않는가?
“시간 끌 거 뭐 있겠습니까? 이왕 가는 거 도시락 챙겨서 가봅시다!”
“크흠. 도시락은 식사에서 1끼 제하겠네.”
‘글러먹은 인간이로군.’
그렇다고 촌장에게 정이 가진 않았다.
* * *
“그럼, 내일 하루 남았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뵙지요!”
불릿을 남기고 촌장이 떠나자 손을 흔들어주던 불릿은 차가운 인상으로 변해버렸다.
“정말 못해먹겠군.”
미간을 쥐고 인상을 찌푸리는 모습은 얼마나 하기 싫었던 것인지를 잘 보여주었다.
“뭐? 하루? 1골드나 받아놓고 대체 얼마나 비양심적이란 말인가?”
촌장의 행태는 아무리 이해하고 넘어가려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1골드면 그래도 도심에 자리를 잡을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인데 저건 뭐란 말인가?
그가 굳이 동굴을 언급하며 이곳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저 진드기 같은 촌장 때문이었다.
“그거면 충분하지 무엇을 더 얻어먹으려고…….”
불릿이 미리 주머니를 숨겨두지 않았다면 몸을 뒤지는 촌장에게 빼앗길 뻔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네의 과거를 알 수 있을까 싶어 그랬지.”
이에 대한 불릿의 반응은 무엇일까?
“아무리 산골청년연기를 했다지만 나를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로 대하는군.”
그의 외모가 너무도 많이 변하였기에 그에 걸맞은 연기를 했으나 마음속에서부터 올라오는 거부감. 이것만은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그는 구시렁거리며 동글 제일 안으로 이동했다.
동굴은 전체적으로 미끄러워 바닥에 앉을 수가 없었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도 강했고, 박쥐도 오고갔는지 알 수 없는 배설물도 있던 것이다.
“이래서 쥐가 문제야. 언제나 역사는 쥐 때문에 문제가 되었지.”
흑마법사들 때문에 쥐를 극도로 싫어하게 된 불릿. 할 수 없이 선 채로 물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찰방.
마정석을 손에 쥐고 물주머니에 함께 담근다. 그러면서 정령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우웅…
우웅……
그러자 마정석이 반응하며 텅 비었던 체내에 정령력이 쌓이기 시작한다.
처음엔 좁쌀처럼 작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지는 정령력.
그는 물의 정령력을 쌓으려 하고 있었는데 그에게 모이고 있는 것은 전혀 다른 속성이었다.
‘단단하고 포근한 기운, 이건 물의 정령력이 아니지 않은가?!’
마정석의 효율이 떨어질까 봐 차마 입을 열진 못했으나 암만 생각해도 이건 물의 정령력이 아니었다.
물은 정령력은 흐름의 기운, 이렇듯 묵직한 느낌을 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당황했더라도 이제 와서 멈출 순 없었다. 이미 기호지세, 호랑이 등에 올라탔으면 끝까지 가야했던 것이다.
‘전보다 더 잘 쌓이는 것 같긴 한데…….’
그의 느낌에 정령력이 쌓이는 속도가 적어도 예전의 2배는 되었다. 더 나쁜 환경에서 불안정한 자세로 시도하고 있음에도 이렇다는 것은 효율이 좋아졌다는 뜻.
그렇다면 친화력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예전보다 진일보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비술이 적용된다는 것은 내게 친화력이 있다는 뜻, 하지만 물의 정령력은 아니다. 의심 가는 것은….’
물의 정령력은 아니었으나 다른 기운이 그 자리를 대신해 착실히 쌓이고 있었다.
허나 이걸 좋다고만 봐야 할까? 그동안 축적된 모든 경험와 노하우가 사라진 것일 텐데.
우우웅…
후우우웅…
‘… 그래도 나쁘지 않은 것 같군.’
비록 자신이 원하던 물의 정령력은 아니었으나 쌓이는 속도도 빠르고, 느껴지는 감정 또한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정령에게 사랑받는다는 기분이 무럭무럭 자랐다. 이는 물의 정령을 다루며 단 한번도 느끼지 못했던 경험.
‘어쩌면 예전보다 더 높은 경지로 올라설 지도 모르지.’
상급 정령사. 꿈에도 그리던 그 경지에 도달할 수도 있음을 어렴풋하게나마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땅의 정령력을 쌓게 된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자신도 결사대의 다른 이들처럼 상급 정령사가 된다! 가슴 벅차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우웅, 우우웅…
어느샌가 물속에 담겨있던 마정석의 빛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불릿은 조금이라도 효율을 높이기 위해 눈까지 감고서 정신집중을 했다.
이윽고, 마정석을 그 빛을 완전히 상실하며 그 기능을 잃어버렸다.
“아.”
더 이상 쌓이지 않는 정령력에 불릿이 작게 탄식하며 천천히 눈을 떴다.
“으음. 이 충만감, 다시 느끼고 싶었지.”
그는 음미하듯 정령력으로 몸 곳곳을 돌려보며 땅의 정령력 특유의 포근함을 느꼈다.
금방이라도 잠에 빠져들 것 같은 안락함, 그러면서도 든든함이 느껴지는 알 수 없는 무언가. 물의 정령력과는 또 다른 충만감이었다.
“후우, 이제 1단계가 끝난 것인가.”
현재 그의 계획은 총 3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1단계, 정령력의 회복. 2단계, 계약 맺기. 3단계, 정령과의 교감이었다.
정령력을 쌓았으니 이제는 정령을 소환할 차례. 계약을 맺어야 정령력도 소용이 있는 것이지 않겠는가?
불릿은 손에 든 물을 쏟아내고 평범한 돌이 돼버린 마정석을 바라보았다.
“이걸로 그리면 되겠군.”
그는 무릎을 굽히다 말고 얼굴을 찡그렸다.
“이걸 다시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무얼 하려고 그러는지 손가락을 오므리는 시늉을 하더니 이내 바닥을 돌멩이로 박박 긁는다.
카각, 가가각-.
땀을 뻘뻘 흘리며 무언가를 한참동안 그리던 불릿. 그림이 완성되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물의 정령도 소환해봐야겠지.”
땅의 정령력이 생겨났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거였다. 누가 아는가? 레인보우 아틱 커맨더처럼 여러 종류의 정령을 다룰지?
그런 그가 바닥에 땀을 흘리며 그린 것은 마법진. 정령과의 친밀도를 증가시키는 정령사들의 필수, 머스트헤브 마법진!
“아무리 그래도 얼굴도 안 비추다니, 정말 너무한 정령들이군.”
이것이 있다면 정령이 계약을 거부할 확률이 줄어든다.
“우리가 같이한 세월이 몇인데 얼굴도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기운을 약간 소모해서 확인은 해줄 수 있지 않은가.”
물의 정령에 대한 불만을 토해낸 불릿. 그는 마법진 중앙에 새로 채운 물이 가득 든 주머니를 놓았다.
마법진을 활성화하니, 주위의 대기가 공명하기 시작했다.
“만물의 근원 물이여, 부름에 응답하소서. 생명의 근원 물이여, 나의 바람에 답하소서.”
“물은 나요, 나는 물이니, 그대는 나의 부름에 답할지어다!”
우우웅-!
마법진의 공명음이 극에 달했을 때, 불릿이 소리쳤다.
“물의 중급 정령, 엘레노아! 부름에 답할지니!”
마법진 중앙에 놓인 물주머니가 거세게 흔들린다.
덜덜덜덜덜-.
그렇게 몇 분을 진동하던 물주머니는 이내 잠잠해졌고, 불릿을 그것을 충혈 된 눈으로 쳐다본다.
“부름에 답할지니!”
- ……
“물의 중급 정령, 엘레노아! 부름에 답할지니!”
- ……
역시 무반응. 그러나 불릿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시도했다.
“엘레노아! 부름에 답할지니!”
- ……
“나와라, 엘레노아!”
“어서 나오지 못할까!”
“못된 년, 썩 나오지 못하겠느냐!”
“이런 고블린보다 못한 것이!”
그 이후는 안 봐도 뻔한 욕설의 향연.
“헉, 헉….”
엘레노아가 나오지 않자 불릿은 초조한 기색을 드러냈다.
“아, 아직. 아직 운디네는 안 해봤어. 그래, 운디네를 불러보자!”
그리고 시작된 아까와 같은 방식의 소환.
“물의 하급 정령, 운디네! 부름에 답할지니!”
- ……
“물의, 어흠. 물의 하급 정령, 운디네! 나오거라!”
- ……
“이리 오너라!”
- ……
“운디네! 내 결단코 가만두지 않을 것이야!”
- ……
“부름에 답할지니! 어허, 이런 정령이라 불리지도 못할 것들을 보았나!”
- ……
“크아아악!”
아무리 불러재껴도 변화가 없자 물주머니를 걷어찬다.
세상의 모든 지랄을 보여준 불릿은 눈에 띄게 지친 기색을 보이며 쪼그려 앉았다.
“세상에 믿을 이 하나 없다더니…….”
============================ 작품 후기 ============================
6시, 9시, 12시에 이어서 올라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