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2 상황파악 =========================================================================
“으으음…….”
깊은 산속, 남성 한명이 누더기를 걸친 채 잠들어 있었다.
“따닥, 따닥…….”
추운지 이를 부닥치며 깊은 잠에 빠져있던 사내. 그러다 갑자기 상체를 일으켜 세운다.
벌떡!
“…….”
말없이 눈을 끔뻑이던 남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살폈다.
한껏 경계심을 높인 상태였는데, 자세까지 낮추고 날카롭게 사위를 노려본다.
찌륵찌륵…
그의 경계가 무색하리만치 고요한 숲속. 오직 벌레만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풀벌레 소리가 만연한 이곳은 어딜 봐도 깊은 숲속 한복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올만한 곳은 아니었다.
“… 여긴……, 어디지?”
자신의 의지로 온 것이 아니라는 독백. 그는 상황파악을 하려 애를 쓰는 듯했다.
이리저리 둘러보던 찰나, 자신의 옷가지에 시선이 미쳤다. 구멍 난 부위와 헐어있는 상태를 점검하던 그때,
툭.
옷과 어울리지 않는 고급스런 비단주머니. 남성은 그것을 익숙한 물건인양 집어 든다.
“옷이 누더기가 되더니 주머니의 끈도 끊어졌군.”
그러면서 사라진 물품이 있는지 확인하는 사내. 구멍이 났는지 이리저리 둘러본다.
물품을 하나하나 찬찬히 확인하던 그는 고풍스런 단검에 쓰인 단어를 읽어나갔다.
“루드밀라 왕국 ‘불릿 폰 바포’ 진(眞) 백작 위…, 흐음. 본인의 소지품이 맞긴 하다만….”
그렇다. 남성의 정체는 흑마법사들과 마지막 결전을 벌였던 결사대. 그 일원인 불릿 폰 바포 백작이었던 것이다.
정녕 이 남성이 그가 맞는지는 의심스러웠으나 아니라고 할 증거도 없었다.
“펜던트, 단검, 헤이스트 스크롤…… 으음.”
큼직한 주머니에서 물건이 쑥쑥 나오더니 돌돌 말린 종이에서 멈춘다.
남성은 스크롤을 움켜쥐더니 당장이라도 바닥에 집어던질 것처럼 부들부들 떨어댔다.
“후우…….”
그러나 이내 감정을 가라앉혔는지 한숨을 내쉬고 손아귀에서 힘을 푼다.
남성, 불릿 폰 바포 백작은 뭐가 그리도 마음에 안 드는지 불편한 기색을 계속해서 드러냈다.
이내 마음을 진정시키고 자리에 앉는 사내.
“쓸 수 있으면 진즉에 썼겠지.”
헤이스트 마법은 몸에 큰 무리를 준다.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전쟁. 한 번의 전투를 위해 탈진할 수는 없었다.
마지막 결전을 위해 준비했으나 마족의 마기는 접근자체를 불허. 그렇게 해서 최후의 순간까지도 사용하지 못한 마법스크롤. 그게 바로 이것이었다.
“머리는 이해해도 가슴이 알아주질 않는군.”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이라도 감정을 통제하긴 힘들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어도 그 분함이 어딜 가는 것은 아니었다.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내며 확인하던 그는 또 다른 사실을 알게 됐다.
“으음…, 손이…….”
물품을 확인하며 애써 외면하고 있던 사실과 대면하게 된 불릿.
“손이 멀쩡해?”
처절했던 전쟁은 중급 정령사인 불릿을 전선에 세우는 결과를 낳았다. 그로인해 흑마법사의 사악한 간계에 손가락을 잃는 큰 부상을 입었었다.
그랬던 손이 지금은 모든 손가락을 달고서 온전히 자신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손가락임에도 신기하다는 듯 요리저리 살펴보았다.
“이게 말로만 듣던 자각몽? 내가 그리도 손가락에 집착했던가?”
불릿은 자신의 볼을 꼬집기도 하고, 손가락을 때려보며 진짜인가 확인했다.
간혹 정신계통 마법에 당해 현실과 혼동하는 경우도 있었기에. 없어진 신체가 다시 생겨난다는 경우를 그는 들어보지 못했다.
따끔.
“고통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꿈은 아닌 것 같은데.”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분명 자신에게 있어선 좋은 일이었지만 그게 자신의 의도가 아니란 것이 못내 걸렸다.
의도치 않은 경우가 어떤 파국을 낳는지 그는 너무도 많이 보아왔기에.
“하아.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로군.”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은 일단 넘긴다. 확실히 뾰족한 수도 없는데 고민만 거듭해봤자 시간만 흐른다.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거라곤 우거진 숲뿐. 그는 이 상황에서 자신의 생존에 적신호가 왔음을 느꼈다.
“혹시 나 말고 살아남은 사람이 있던 것인가?”
간혹 그런 경우가 있다. 동료를 데리고 후퇴하던 병사가 맞설 수 없는 적과 마주쳐 동료를 미끼로 쓰는 경우가.
만일 그런 경우라면 입맛이 씁쓸해질 것이다. 그러나….
“동료들이 그럴 리는 없어. 그렇다면 내게 원한을 품은 연합체놈들이?”
불릿은 외려 눈에서 불똥을 튀기며 분노하고 있었다. 현재까지 그가 보이는 성격을 보자면 이런 반응도 어색하지 않았다.
귀족이 이정도면 정말 성격에 답이 없는 경우였다.
자신이 한쪽 뺨을 맞으면 상대는 사회적으로 폐인이 되게끔 한달까?
“아니지, 놈들이라면 조용히 저승길로 보내줬겠지.”
현 상황을 다른 이의 탓으로 돌리고 싶어 한다.
그라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할까? 모두가 소멸되던 그 장면을. 자신도 소멸되던 그 과정을.
“살아만 남아줬으면 좋겠군. 그렇다면 어떻게든 해줄 수 있을 터인데…….”
주먹을 불끈 쥐며 다짐하였으나 이내 축 늘어져 땅에 털썩 주저앉는다.
그에게 있어 결사대는 소중한 동료들. 위기를 헤치며 함께 생활해온 이들인데 정이 쌓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의 이런 말들은 살아서 다시 만나고픈 바람에서 나오는 행동일 것이다.
“…….”
잠시간 말이 없던 불릿은 물품을 옆으로 밀어내고 등을 대지에 눕혔다.
“후우…. 몸은 또 왜 이런 것인지…….”
풀썩 드러누운 불릿은 자신의 손을 들어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희고 고운 손가락. 얇고 긴 이것은 분명 기억속의 젊을 적 본인의 그것이었다.
“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군. 나는… 죽었던 것이 아닌가?”
마지막 기억. 신체가 분해되는 기이한 감각은 소름 끼친다기 보다는 허무감이 짙었다.
이럴 거면 뭣하러 여기 왔을까. 내 인생은 누굴 위한 것이었나? 대략 이런 감정.
“운 좋게 살아났다 치더라도, 어찌하여 홀로 숲 한복판에 던져져 있는 것인지….”
누군가 자신을 발견했다면 결과는 둘 중 하나였다.
영웅대접을 받으며 극진한 치료를 받고 있거나, 살아있더라도 질긴 목숨을 마저 끊어주었거나.
“이 말도 안 되는 현상은 뭐지? 본인이 회춘이라도 한 것은 아닐 테고.”
그가 제일 이해할 수 없는 상황. 그것은 자신의 신체였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가장 싱싱하던 시기의 육체.
그 옛날, 왕국에서 수많은 구혼신청을 받았던 바로 그때의 모습이었다.
“딱히 몸에는 이상이 없는 것 같은데….”
신체가 무너지거나 감각이 없는 곳도 없다. 오히려 온몸 가득 활력이 가득 차 방방 뛰어다니고 싶었다.
“허허, 나잇값 못하고 헛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주책이로군.”
이제는 명경지수를 유지할 수 있다 자부했었거늘, 그의 육체는 통제를 벗어나 있었다.
참고로 그는 미혼이다.
“6인의 영웅이라…….”
나뭇잎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쬐며 중얼거린다.
피식-.
“빛 좋은 개살구지. 그게 다 희생양인 것도 모르고.”
결사대는 인류 최고의 정예병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다루기 힘든 위험한 ‘병기’기도 했다.
강대한 힘에 비해 다루기 힘든 그들을 귀족들이 대륙을 위해서라며 희생시킨 것이다.
“그깟 명예가 무어라고 목숨을 버린단 말인가. 그런 그들을 이용하는 연합체 놈들도 용서할 수가 없군.”
흑마법사들의 폭거에 항거하기 위해 설립된 연합체. 그곳을 귀족들은 본인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해먹고 있었다.
인류가 멸망하냐, 마냐를 가르는 중요한 시기에 그딴 개수작이나 부리다니….
비록 결사대의 일원 중 하나로 참가했을 뿐이지만 불릿은 한 지역의 ‘군주’였다.
적어도 이유 없이 상대를 핍박하지 않았으며 돈과 권력을 위해 죽음으로 내몰진 않는다는 뜻이다.
“본인이 그때 잠시 미쳤던 게 틀림없어.”
무려 백작인 그가 결사대에 참여한 이유. 그것은 귀족들이 제일 먼저 버린 ‘신의’ 때문이었다.
“후우, 가신들에게 큰 죄를 지을 뻔했군.”
그깟 신의가 뭐라고 영지민의 안위도 뒤로한 채 결사대를 따라갔단 말인가?
불릿은 자신을 자책하면서도 은근히 피어오르는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뭐, 다시 선택하라 해도 똑같은 짓을 반복했을 것 같지만.”
올곧은 미련함. 고작 중급 정령사인 그를 혼돈의 시대에서도 백작령을 다스리는 군주로 유지시켜주는 힘이었다.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시대. 믿으면 얼간이가 되는 상황 속에서 믿음을 관철시키는 의지가 반대로 사람을 이끌었다.
* * *
“와하하!”
“건배!”
“얌마, 정령으로 육포 좀 불려봐라.”
“미친놈이, 내 엘레찡은 그딴 일 안 한다고!”
“… 더러워.”
“푸핫! 누가 정령성애자 아니랄까봐 애칭으로 부르는 거 봐라!”
왁자지껄한 승전파티. 열악한 보급환경으로 허름한 여관에서 말린 육포와 맥주가 전부. 그럼에도 모두 즐거워했다.
연전연패를 거듭하는 연합군에서도 오직 그들만이 승리를 쟁취하고 있었다.
상부에서는 그런 그들에게 포상을 내려왔던 것이다.
“이런 게 승전보상이라니, 썩어도 너무 썩었군.”
그들이 웃고 떠드는 틈바구니에서 혼자 구시렁거리며 술을 홀짝이는 미중년.
마흔이 넘어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었으나 아직도 그 미모는 그대로였다.
그가 육포를 쥐고서 한입 뜯어먹더니 곧바로 뱉으며 불만을 토로했다.
“으음. 질기기가 오우거 심줄 못지않구나.”
“먹기 싫으면 내게 달라. 식량은 소중하다.”
“사령관? 늙어서 스프만 먹고 싶다면 자네가 다 처리하게나.”
무표정한 아틱 커맨더가 다가오자 미중년, 불릿 폰 바로 백작이 테이블을 통해 육포를 슬쩍 밀어주었다.
“기꺼이.”
그 단단함이 돌과 비견되는지 테이블에 놓인 육포는 딱딱한 음색을 내었다. 아틱 커맨더는 별말 하지 않고 그것을 받아들어 씹으며 백작의 옆에 앉는다.
질겅질겅.
“호호 할아버지가 되어도 난 모르네. 그게 뭐가 좋다고.”
“나름 먹을 만하다.”
“쯔쯔. 하는 수 없군.”
아틱 커맨더가 저렇게 말하는 것이면 진짜 더럽게 맛이 없다는 뜻이다.
한숨을 쉬던 백작은 대뜸 의자를 박차고 일어서더니 버럭 소리쳤다.
“오늘의 용사들을 위해! 내 사비를 털겠네! 먹고 마시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마음껏 주문하시게!”
“와아아! 아저씨 멋쟁이!”
“꽃중년! 꽃중년!”
“백작님 최고!”
“그래도 적당히 시키시게. 백작도 나름 주머니가 가벼우니 말일세.”
- 푸하하핫!
삐이익!
휘익-!
휘파람까지 불어가며 대원들이 백작을 찬양한다.
그가 고위귀족임을 모두가 알지만 그럼에도 허물없이 다가서는 모습.
이것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장점이자 보물이라고 아틱 커맨더는 생각했다. 그가 입 밖으로 생각을 꺼내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털썩.
한층 소란스러움이 심해지자 만족한 듯 백작이 의자로 엉덩이를 붙이며 앉았다.
“…… 재정은 괜찮은가?”
아틱 커맨더의 말에 백작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약간 엄살을 피웠으나 본인의 한 달 용돈이 자네의 일년치 봉급보다 많을 걸세.”
“… 세상은 불공평하다.”
“그래, 세상은 불공평하지. 그러는 자네도 사대정령을 모두 다루잖은가?”
“당신도 중급 정령을 다루잖은가?”
아틱 커맨더의 말에 백작은 그답지 않게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본인은 물의 정령만. 자네는 사대 정령 모두를. 그것도 정령에게 사랑받으면서.”
“중급 정령을 다룰 수 있다는 것에 의의를 둬라.”
“… 자네, 그거 웃으라고 하는 얘긴가?”
백작이 살짝 눈썹을 찡그리고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킨다.
탁!
“크으. 이 술은 먹을 때마다 목이 아프단 말이지.”
“귀족도 맥주를 마시나?”
“맥주는 흑맥주가 일품이네. 좀 더 고풍스러운 맛이 난단 말일세.”
“결론은 맛이 없단 소리군.”
“후후후. 누가 사령관 아니랄까봐. 이젠 본인도 나이를 먹었는지 이런 미적지근한 술로도 취하는군.”
그러면서 반쯤 마신 맥주를 옆으로 슬쩍 치운다.
아틱 커맨더는 육포가 생각보다 질긴지 운디네를 소환해 육포를 불린 후 조금씩 뜯어먹고 있었다.
그를 쳐다보며 백작이 하는 말.
“그래서, 언제 성혼할 텐가?”
“…… 무엇을?”
“음? 자네가 관심 갖는 여성이 달리 누가 더 있는고?”
백작의 말에 아틱 커맨더가 시치미를 뗀다. 장난보가 터진 백작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허어, 그런가. 자네는 다른 여성에게도 관심을 가지는군. 이거 바람의 대리자에게도 알려줘야겠어.”
“그만. 관심 있다.”
“쯔쯔. 그리 쉽게 항복하다니, 사령관이라는 호칭이 아깝군.”
“그쯤하고, 그 얘기를 꺼낸 이유는?”
“진도가 안 나가니 답답해서 그러네. 자네는 대체 연애를 뭐라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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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일 8시 30분에 한편 더 올라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