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있어서는 안 되는 일
개봉된 최종무기 활은 관객 수 800만을 맞이하였다. 800만. 대단한 관객 수였다. 더불어서 눈을 뗄 수 없는 한이의 활시위와 숲속에서 쥬신타의 인원들과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사람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해외의 작품 중 하나에 대하여 표절 논란이 일었다는 것이다. 해외의 제작사 측에서 표절 의혹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 아니라, 국내의 관객들에 대한 표절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표절 논란은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영화의 숨 막히는 장면 하나하나, 그리고 명품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 그것이 표절 논란을 커버할 정도로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었다.
치이익!
숯불에 고기가 군침이 돌게 익어갔다. 불판 위에는 고기뿐만이 아니라 수제 소시지와 마늘 등이 함께 익어가고 있었다. 민후는 윤하와 부모님을 모시고 경기도 전원주택에 쉬기 위해 왔다.
부모님도 근처에 전원주택 하나를 소유하고 계시지만 어머니는 놀 때 같이 놀자고 말씀하셨는데, 그 이유를 민후는 알고 있었다.
“오르르르! 까꿍!”
“꺄르르르!”
“오르르르! 까꿍! 우리 민주 누굴 닮아서 이렇게 예쁠까.”
손녀인 민주와 함께 놀아주기 위함이시다. 어머니도 이렇게 보면 많이 연세를 드셨다. 예전과는 다르게 흰머리가 느셨고, 피부도 늘어지고 계셨다.
가끔은 속이 안 좋으시다며 한참이나 배를 문지르는 모습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런 어머니의 요즘 낙은 손녀인 민주를 보는 것이었다. 윤하도 그것을 알기에 자주자주 친정에 가고는 했다.
어머니는 시어머니의 텃세를 부리시지는 않는 분이었다. 어머니는 윤하를 크게 믿으셨다. 그녀가 알아서 잘하겠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고, 윤하도 그런 어머니를 배려하여 일부러 자주 친정에 민주와 함께 놀러 가고 있는 것이다.
“자, 다 익었다.”
일회용 접시에 고루 익은 고기와 소시지를 썰어서 나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민후는 서서 집게로 고기를 집어 먹었다.
“애는 왜 이렇게 늦어?”
“요즘 한창 핫 하잖니, 우리 혜인이.”
“흠.”
민후는 어머니의 말에 낮은 신음을 흘렸다. 핫 하긴 했다. 혜인이는 결국 푸른 엔터테인먼트라는 소속사에 들어갔다. 푸른 엔터테인먼트. 국내의 초대형 기획사 세 곳 중 하나라고 불리는 곳이다.
수많은 이들이 들어가기를 꿈꾸는 곳이며 더불어 국내를 장악한 아이돌 그룹부터 실력파 가수들까지도 소속되어 있는 소속사였다. 민후로서 조금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면 아무래도 혜인의 나이가 어렸기에 선배들의 텃세에 기가 죽지는 않을까 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그녀는 활기찼다. 민후는 잘 몰랐지만, 혜인이에게 텃세를 부리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중 가장 큰 이유가 그녀의 배경도 큰 한 몫 단단했다.
일단 가장 크게는 그녀의 등 뒤로는 민후가 지키고 있었다. 대한민국 배우 중 어마어마한 주가를 자랑하는 배우 강민후와 안 좋은 인연을 만들고 싶은 이는 분명 없을 것이다.
물론 혜인이가 잘잘못을 하여 혼을 낸다는 것은 당연하나, 이유 없이 괴롭힌다는 것은 옳지 못하고 강민후가 알면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는 어머니였다. 어머니의 체인점의 숫자는 어마어마하다. 현 자산 100억이 넘어서시는 100억 부자가 되신 것이 바로 어머니였으며 서울에만 빌딩이 서너 채는 되는 상황이었다.
어머니의 일을 돕는 비서도 있는 상황이었고 얼마 전 국내 카페 인기 설문조사에서 어머니의 카페가 압도적인 성적으로 1위를 차지했다.
어머니의 카페는 현재 국내뿐만이 아니라 해외에서 점포 몇 군데를 오픈하는 중이었다. 즉, 어머니의 카페는 이제 세계로 나설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차의 엔진 소리에 고개를 틀었던 민후는 차에서 내려서 울타리를 젖히는 혜인의 매니저를 볼 수 있었다. 혜인이 탄 하얀색 밴이 주차장에 세워졌다.
“YO!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
“얼씨구? 민후야, 쟤 약 안 먹었나 보다.”
“혜인이 요즘 약 먹어?”
아버지가 어머니의 장난스러운 말에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되묻는다. 어머니가 눈을 게슴츠레 뜨며 ‘애늙은이 같으니…….’라고 말하자 새아버지는 크게 당혹하신 듯 헛기침을 하신다.
혜인이는 스냅백 모자를 반대로 쓰고 하얀색 운동화에 스키니진 청바지 하얀색 심슨가족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저저, 옷 꼬락서니 봐라. 저게 발라드 가수니.”
“에이, 엄마 발라드 가수라고 항상 차분하게 입으라는 법은 없잖아-”
혜인은 장난스레 웃었다. 민후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직 혜인의 나이 열아홉이다. 차분한 옷차림보다는 오히려 이러한 옷차림이 더 어울리는 듯하였다.
소속사에 들어간 후 6개월간 전문 트레이닝을 받은 그녀는 얼마 전에 앨범이 나왔고 대박을 터뜨리면서 현재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신인 가수 중 한 사람이었다.
더불어 19살에 대단한 실력을 보유했다고 극찬을 받고 있는 그녀는 요즘 수많은 삼촌을 설레게 하는 국민 여동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민후와 친분이 있는 이들도 민후를 보면 ‘네 동생, 귀엽더라.’ 하고 말을 꺼낼 정도다.
“밥 안 먹었지.”
“오늘 점심은 꼬기! 꼬기! 꼬기!”
민후의 물음에 눈을 감고 고기의 향을 음미하던 그녀는 신이 나서 말한다. 뒤쪽의 매니저가 꾸벅 고개를 숙여 보였다.
“와서 같이 식사하시죠.”
“오빠, 빨리 일루 와요. 뭘 쭈뼛쭈뼛 서 있어. 또 어디서 라면 먹으려고!?”
“아, 아하하! 그, 그래도 될까요?”
“그럼요, 그럼요. 앉으세요.”
혜인의 매니저는 덩치가 산만 하게 크고 살이 뚱뚱하게 쪘다. 얼굴은 험악하지 않고 오히려 곰돌이 푸를 연상시키는 푸근한 인상이었다.
들어보니 혜인이를 챙기기 위해 노력한다고 한다, 더불어 스케줄 섭외를 상당히 능력 있게 해내는 매니저라고 한다.
어머니도 새아버지도 그를 앉으라며 끌어 앉혔다. 가족은 닮는다고. 혜인도 부모님들도 매니저를 일하는 사람이 아닌 ‘함께 지내는 사람’으로 보고 있는 듯싶었다.
“아하하! 이, 이거 강민후 씨가 구워주는 고기를 먹게 될 줄이야.”
“많이 드세요.”
민후는 접시에 다시 잘 익은 고기를 담아 건네었다. 매니저는 어색하게 웃었다. 아마도 이런 가족은 흔하게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일하러 왔는데, 사람들은 일을 시키지 않고 오히려 베푼다.
빙긋 웃은 민후는 계속 고기를 굽다가 휴대폰이 울리자 꺼내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
다름 아닌 민정이었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원장님, 이야기 드릴 게 있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민후는 턱과 어깨 사이에 끼고 받던 전화를 손으로 제대로 잡아 받았다.
“무슨 일인데?”
-오시면 설명해 드릴게요. 언제쯤 오시나요? 아니면 제가 갈까요?
“됐어, 내가 갈게. 어. 밥 먹고 있으니까 두세 시간 후쯤에 학원으로 가도록 할게.”
-네.
‘무슨 일이지?’
통화를 끝낸 민후는 의아한 모습이었다. 어떠한 일 때문에 그러는지 알 수 없었지만 민정의 목소리는 분명 좋지 않았다. 확실한 건, 좋은 일인 것 같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일단은 식사를 끝내고 서울로 올라가 봐야 할 것 같았다.
부모님과 윤하에게 잠시 올라가 보겠다는 말을 하고는 서울로 온 민후는 그녀가 원장으로 있는 학원으로 이동했다. 학원으로 들어선 민후는 원장실 문을 작게 두들기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이것 좀 보세요.”
그녀는 자신이 보고 있던 노트북을 돌렸다. 돌아간 노트북에는 인터넷 기사가 떠 있었다.
-탤런트 오혜미가 브로커. 그 외의 여배우들 성 접대 의혹.
오혜미라는 탤런트는 올해 쉰한 살의 나이를 먹은 여성이었다. 개그우먼인 그녀는 요새는 국내보다는 일본 쪽에서의 활동이 무척이나 큰 편이었다.
일단은 의혹이었다. 어떠한 이로부터 제보가 들어왔다는 소식이 기사로 적혀 있었다.
그리고 민정은 곧 기사를 내리고 실시간 검색어를 보여주었다. 1위에는 익숙한 이름이 떠 있었다.
“뭐야, 이거!”
민후는 너무 놀라 순간 노트북을 움켜잡았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으로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민정이 그 이름을 클릭했다.
블로그, 지식인, 기사. 다양한 방면에서 그녀의 이름을 논하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이 거론되는 이유는 성 접대 의혹에서 가장 의심되는 인원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다름 아닌 학원에서 배출해낸 인재인, 유지혜였다.
다양한 기사들과 네티즌들의 말이 있었다. 네티즌들은 유지혜가 성 접대에서 A급으로 분류되며 한 번 잠자리를 가질 때마다 1억 원을 받는다고 주장하고 있었으며 브로커인 오혜미는 그에 관련하여서 10%의 수수료를 먹고 있다. 라는 이야기였다. 더불어 브로커인 오혜미를 제외하고서도 신인 배우들이 뜨기 위해서 소속사나, 혹은 고위급 인사와의 성 접대 자리를 가져서 작품 출연을 하고 있다고도 주장하고 있었다.
민후는 한숨이 나왔다. 물론 어찌 보면 더 이상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일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유지혜는 단순히 학원에서 배출해낸 인재일 뿐이었다. 더불어 실제로 만약 정말 그녀가 성 접대를 통해서 돈을 받아낸다고 하여도 학원에서 브로커 노릇을 한 게 아니기 때문에 연관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위의 이야기가 모두 사실이라고 가정한다면 민후로서는 ‘내 일 아니잖아?’ 하고 할 수는 없었다. 실상, A급 인원들이 성 접대를 가진다는 것은 돈이 목적이었다. 사람들이 언급하는 A급이 대체 뭔지 민후는 잘 모르겠으나 말이다. 그리고 말하는 B급은 중견의 배우들일 것이고, C급은 이제 데뷔하려는 신인 배우들을 지목하는 것 같았다.
C급은 당연하게도 작품 출연이 목적일 것이다. 실상 신인들이 그 유혹에 제일 빠지기 쉽지 않은가 싶다. 신인들의 경우 ‘이 작품 한번 출연해서 뜨면, 난 자리 잡을 수 있어.’라는 생각이 강했다.
그 때문에 주선된 한 번의 접대를 통해서 성관계를 맺고, 작품 출연 후 뜨려고 하는 이들이 분명 많을 것이라는 거다.
이미 이 사실은 대부분의 연예인은 아는 사실이고, 실제로 이러한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조차도 알고 있는 사실들이다. 그러나 민후도, 다른 배우들도, 그리고 연예인들도, 소속사의 대표들도 덤벼들지는 못했다.
일단, 자신들과 무관한 일이었으며 자신의 소속사 인원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불어서 신인 배우들의 경우는 대형소속사가 아닌, 신생 소속사가 많은 편이었다.
더불어 괜히 공격했다가는 되레 소속사 측도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일이었기에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연예계의 비밀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임은 사실이었다. 신생 소속사 혹은 매니저, 연예인이 돈에 눈이 멀어 성 접대를 하고,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 하나에 몸을 파는 연예인 지망생.
모두가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으며 민후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민후는 마우스를 이용해서 기사 하나를 클릭했다.
검찰은 오혜미를 현재 일본에서 국내로 입국하라는 등기를 보냈고, 거론된 배우들과 그에 관련한 이들을 전부 수사할 것이라는 의사를 밝힌 상황이었다.
아마도 2주일 정도 후면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민후가 예상한 결과는 결국 ‘무죄’다.
연예인과의 성 접대의 인원들은 하룻밤에 1억을 쓰기도 한다는 설이 있었고, 민후도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만큼의 돈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국내를 쥐고 있는 대기업 인사들이나, 회장, 고위급 관직자들이다.
검찰은 일단은 기사가 퍼져나갔기 때문에 국민들의 시선이 있어 수사하기는 할 테지만, 실질적인 증거를 얻기도 힘들 것이었으며 더불어서 정말 누구 하나라도 오혜미가 브로커다, 라는 사실을 밝히고 그에 관련한 연예인들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 않는 이상 잡아낼 수 없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스스로가 다른 연예인들을 팔아먹는 행위는 없을 것이고, 더불어서 스스로가 자백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아마도 ‘루머다!’라고 그들은 외칠 것이다. 그래도 일단은 지켜봐야 했고, 민후의 경우도 신인 배우들을 항시 배출하고 있는 학원을 운영 중이었기에 그에 대한 대책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이 되는 상황이었다.
수사는 무난하게 마무리되었다. 3주 후의 검찰은 모든 이야기가 루머임을 밝혔으며 인터넷에 처음 그러한 글을 게재하였던 이를 잡아냈다. 다름 아닌 스물한 살 여대생이었다.
이유를 묻자, 여자 연예인들의 삶이 부러워서라고 답했으며 한편으로는 관심을 받고 싶어서, 라고도 말했다. 흔히 요즘 이런 사람들을 ‘관심종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3주간 뉴스를 뜨겁게 달궜던 ‘성 접대’라는 이름의 기사들과 네티즌들의 주장들이 결국 꼬리에 꼬리를 문 루머일 뿐이었다. 그러나 실상 연예계 종사 관계자들은 단순 루머만은 아님을 알았다.
분명 여대생은 자신이 마음대로 여배우들 타깃을 잡아서 글을 게시하였다고 했다. 확실히 그들 중에는 성 접대에 전혀 연관이 없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민후도 얼마 전 지혜와 통화했다. 숨김없이 전혀 그런 일은 없었다고 그녀는 밝혔다. 물론 거짓일 수도 있었으나 민후가 보았을 때도 그 안에는 성 접대를 함으로써 수익을 창출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연예인들도 많았다.
그 때문에 결국 이 사실은 모두 루머이나 한편으로는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서 숨겨진 일들이 물 위로 떠 오르기 시작한 것이지 않은가 싶다.
여대생이 썼던 것은 루머가 맞으나 결국 어두운 연예계의 음지에는 분명 성 접대를 통해서 출연의 빌미를 잡는 이들이 수두룩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관련하여서 황제 소속사도 매니저들에게 ‘성 접대가 발생할 시 엄하게 처벌하겠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즉, 황제 소속사는 성 접대와 전혀 무관하다는 것을 기자들에게 알리는 것이기도 하였으며 더불어서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거라는 의사이기도 했다.
수많은 소속사가 이와 같은 의사를 밝혔다. 성 접대가 이뤄지는 것은, 주로 신생 소속사의 대표에 의해서거나 혹은 대형소속사의 경우는 매니저들에 의해서였다.
매니저가 주선하고 일종의 수익금을 자신도 챙기며 연예인 역시 챙기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을 이번 일을 계기로 모두가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민후의 학원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민후의 학원은 뛰어난 실력 있는 신인들을 가장 많이 배출해낸다. 그는 설문 조사지를 만들었다.
출연작품 감독, 혹은 PD나 고위급 관직자, 재력가 등에게 성 접대 혹은 성 접대에 관련한 제의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또는 누군가가 원하지 않는 신체 접촉을 시도하려 한 적이 있습니까? 등에 대한 설문조사였다.
민후는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1년에만 민후의 세 곳의 학원에서 400여 명이 넘는 인원이 수료하고, 1년에 30여 명이 배우로서의 길을 걷고 있었다.
이중 없는 것이 더 이상했다.
민후는 사실대로 그들이 밝혀주었으면 한다. 적어도 강민후라는 배우가 접근한다면 민후에게 이득은 없는 것은 확실시하다.
되레 불이익이 생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신생 소속사든, 혹은 고위 관직자이든. 민후에게는 명분이 생기는 일이었다. 즉, 자신의 학원 수강생에게 ‘작품 출연, 혹은 금전 목적’으로 접근했다는 식으로 민후가 대신 도와줄 수 있는 게 생기는 것이다.
더불어 3주 동안 인터넷에 연예인 지망생들의 글들이 올라오기도 하였다. 그중에는 자신이 배우 지망생이었으나 성 접대 제의에 때려치워 버렸다 등등의 이야기도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
민후는 암담한 현실에 한숨을 푹 쉰다. 불과 3년 전이었다. 3년 전에 한 무명의 여배우가 성 접대에 의한 제의를 받고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그녀는 유서로 자신에게 성 접대를 제의한 이들을 모두 지목하여 그들이 검거되는 이례가 있었다.
그 때문에 한동안 주춤하는가 싶더니, 다시 탐욕스럽고 더러운 욕망을 채우려는 이들이 기승을 부리려고 하고 있었다. 집의 모든 불이 꺼져 있었지만 민후의 서재만큼은 아니었다.
그는 눈을 300여 장의 설문지를 계속해서 확인하고 있었다. 실상 대부분이 백지였다. 차라리 모두 백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선다.
그러나 곧 한 장, 두 장 나오기 시작했다. 총 세 장이 나왔다.
총 접대 제의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이었다.
나이는 다양했다. 스무 살, 스물둘, 스물일곱. 은미희, 이주은, 한현화. 세 사람은 간략하게 적어놓았다. 길게 서술할 필요는 딱히 없었다. 어차피 민후와 세 사람은 면담하게 될 것이었다.
이들이 이러한 글을 적은 것 자체가 분명 그녀들도 각오했다는 것이며 어쩌면 민후를 믿지 못하고 서술하지 못한 이들도 민후가 이번 일을 빠르게 정리해버린다면 계속해서 숨겨둔 것을 꺼내는 이들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아…….”
세 사람을 추려낸 민후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진짜 배우, 실력 있는 이들, 배우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해서 학원을 꾸렸다. 그러나 자신의 학원에도 이처럼 음지에서 손을 뻗어오는 자들이 존재했다.
그렇다고 자신이 모두 관리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쩌면 당연하였다. 돈 있는 자들은 탐욕스럽게도 여성을 착취하고 싶어 하니 말이다.
“너무 이르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곰곰이 생각하다 ‘아!’ 하며 한번 해볼까 했지만 아직 자신이 너무 어리지 않나 싶다.
그러나 자신은 어려도 큰 힘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외적으로는 어리지만, 실제 그는 8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온 사람이다.
그의 고민은 소속사를 차리는 것이었다.
실상 예전부터 계획되어 있던 것이다. 그러나 마흔다섯쯤을 기반으로 잡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이번 일을 계기로 새로운 생각이 선다. 민후는 꽤 오랜 시간을 고민한다.
그러나 쉽사리 답은 나오지 않았다.
은미희와 한현화는 1호점의 학원의 수강생들이었다. 민후는 직접 1호점 학원을 찾았다. 현 원장은 박창석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대리 원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민후는 잠시 창석에게 자리를 비켜줄 것을 권하였고 이유를 아는 창석도 흔쾌히 수긍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안으로 들어온 여성은 무척이나 앳되었다, 아기 같은 피부에 눈이 사슴처럼 크고 똘망했다. 몸매는 좋지 못하나 아담한 키와 조그마한 손과 발이 남성들이 보호본능을 일으키기에는 충분했다.
배우로서 데뷔하여도 상당히 이목을 받을 수 있는 외모의 아이였다. 스무 살 은미희였다. 민후는 안타까웠다. 이제 겨우 스무 살, 고작 고등학생에서 이제 대학생이 되었을 뿐이다.
청운의 꿈을 안고 배우로서의 길을 시작하자고 다짐하고 학원 수강을 하여 순위권에 들었던 그녀. 그녀에게 그러한 일이 생겼다.
은미희, 이주은, 한현화. 이 세 사람은 학원에서 수준급의 수강생이었다. 그만큼 노력하고 연기력도 뛰어났으며 외모도 출중한 이들이었다. 그래서 단역 배우라든가 혹은 끼워넣기 식으로 작품 출연 등을 할 수 있게 되었었는데, 그 도중에 발생한 일로 추정된다.
“앉아요.”
민후는 빙긋 웃었다. 은미희는 ‘네’ 하고 상기된 표정으로 민후의 맞은편에 앉았다. 조그마한 손으로 오렌지 주스가 담긴 잔을 양손으로 잡고는 한 모금 홀짝이는 모습이 귀여웠다.
“설문지를 봤어요. 그 전에 앞서 미희 씨가 저를 믿으신다면 당했던 일은 모두 해결해 드리고 제가 보상받을 수 있게 도와드릴 수 있어요. 이러한 일을 감히 제가 하는 이유는 앞으로의 피해를 더 이상 없게 하기 위함입니다. 모두가 회피하고 있어요. 실상, 같은 업계에 종사하면서 같은 업계 종사자를 공격한다는 건 피해를 볼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전 아닙니다. 아닌 건 아니에요. 본보기로 삼아야 합니다. 한 두 사람, 확실한 처벌이 있어야 더 이상 건드리지 못할 거예요.”
“……네.”
민후의 단호한 목소리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녀도 강민후라는 배우를 안다. 현재 월드 스타라는 이름을 가졌고, 또한 문화외교 상까지 수상한 이력이 있는 배우.
건드리는 작품마다 흥행하며 더불어서 아내는 국내의 최고의 여배우 중 한 사람인 한윤하였다. 더불어, 그가 속한 소속사. 들어가기는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는 황제였다.
그에게는 그럴 힘이 충분히 있었고 마음만 먹는다면 작은 피해를 감수할 수 있었다.
“그러니 숨김없이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네, 그러니까요…….”
은미희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실상 이미 이야기를 하자고 마음을 굳힌 상황이었기에 술술 이야기가 나왔다. 그녀가 그 일에 관련하여서 성 접대를 접근한 곳은 크리에이터 소속사였다. 크리에이터 소속사라는 말에 민후는 눈살을 처음 찌푸렸다.
들어보지 못했던 소속사였다. 소속 배우가 누가 있기는 한 건가 싶을 정도였는데, 미희의 입에서 배우들의 이름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나같이 비중이 크지 않은 배우들 위주였다.
즉, 국내에서 흥하지 못한 배우들뿐이라는 것이며 주로 여성 배우들이 많았다. 그는 낮은 신음을 흘렸다.
촬영장 내의 크리에이터 매니저라고 자신을 밝힌 남성이 접근해 ‘연기가 훌륭하다. 함께 일하고 싶다. 나는 크리에이터다.’라고 밝혔다고 한다.
신인에게 소속사. 그것이 어떤 소속사든 그들에게는 소속사를 들 수 있다는 것 자체에 흥분감을 감추지 못하기 마련이었고, 섣부른 판단도 이뤄지기 일쑤였다.
일단 그녀는 소속사에서 계약을 권유하자 당연히 기분 좋게 소속사에 방문했다고 한다.
처음 일은 잘 진행이 되는 듯하다가 계약서는 보류하였다고 한다. 그러다 대표로부터 ‘성공하기 위해서는 희생할 줄도 알아야지.’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녀는 어렸지만, 그의 위아래로 훑는 시선에서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즉 몸을 포기해라, 라는 뜻이 한눈에 보였다는 것이다.
이어진 말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녀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자 대표는 ‘이 업계에서 그렇게 깨끗해서 성공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 것 같아?’라는 말로 그녀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고 한다.
어찌 보면 맞는 말인지라 민후는 한숨이 나왔다. 첫 발판을 그런 식으로라도 삼아 올라 결국 이름 높은 배우가 된 이들도 꽤 있을 것이니 말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끝이었다. 그녀는 참을 수 없는 치욕감을 느낀 듯했다. 허벅지 위에 올린 양손은 힘이 들어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어떠한 이들에게는 ‘몸 한 번 팔아서 얻는 기회’일 수도 있으나 어떠한 이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 은미희에게는 어린 나이의 크나큰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워, 원장님이 혼내주세요.”
그녀는 울음을 터뜨리며 손으로 훔쳐내면서 말한다. 민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이번 일은 민후가 황제 소속사와 연계되어서 하기에도 모호한 일이었다.
그러나 함태웅 대표는 이러한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설 것이며 크리에이터라는 소속사 따위가 황제 소속사의 발끝도 오지 못한다. 즉, 황제 소속사 대표 함태웅의 말 한마디면 크리에이터 소속사는 더 이상 활동을 하지 못한다.
종사자들은 크리에이터 소속사 쪽 배우들을 거부할 것이고 그렇다면 결국 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은 엄연히 민후의 학원 수강생들에게 벌어진 일이었다. 어차피 이번 일이 처리되면 저절로 용기를 낸 여성들의 제보가 잇따를 것이고 그에 관련해서 어느 정도 정리가 이뤄질 것이다.
“날 믿어요.”
민후는 울음을 흘리는 그녀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눈물 콧물 범벅인 그녀는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녀도 배우 강민후의 평판을 들었다. 진짜 배우. 그것이 이제 막 이곳에 발을 들인 이들에게도 들리는 이야기였다.
그였기에 은미희도 이 사실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울음이 어느 정도 진정되고서야 민후는 내보냈다. 20분 후에는 한현화가 안으로 들어왔고, 그녀와의 이야기도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