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위험천만 촬영 시작
최종무기 활은 산에서 촬영되는 분량이 무척이나 많았다. 극 중의 주인공 한이는 활을 잘 다룰 뿐 아니라, 지형지물을 잘 이용할 줄 아는 명석한 두뇌를 가진 이이기도 하였다.
첫 촬영을 하기 위해 현재 전북 완주군에 위치해 있는 공기마을 부근으로 왔다. 마을 뒷산의 옥녀봉과 한 오봉에서 내려다보면 밥그릇처럼 생겼다고 해서 공기마을이라고 붙어진, 매년 수많은 관광객과 여행객들이 오는 곳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일정 부분을 촬영팀에서 통제하게 될 예정이었다. 촬영할 곳은 편백 숲이었다. 아무래도 산길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차를 타고 이동할 수 있었지만 지미집이나 카메라, 음향기기 소품 등 다양한 것들을 스태프들이 직접 옮겨 날라야 했다.
스태프들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히고 신음에 찬 ‘흐앗차!’ 하는 소리도 들을 수가 있었다.
“이야, 공기는 좋네요.”
“글지. 여기에 있는 편백 숲에 10만 그루의 편백나무가 있디야. 공기 좋고, 경치 좋고, 이런 데서 소주 한 잔! 캬!”
“밤중 촬영 신 중에 통구이에 술 걸치는 거 있던데요.”
“그럼 뭐뎌, 맹물인디.”
조연 배우 중에는 김한휘라는 분도 참여했다. 김한휘는 조연 배우로서의 비중이 컸지만 30년 가까이 되는 연기 경력에 더불어서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50여 편이 넘는 작품을 찍어낸 배우였다.
주로 철없는 중년 남성 역할을 줄곧 맡는 분이었다.
30분 정도 걸었을까, 스태프들이 지쳐가기 시작했다. 민후도 카메라가 들어 있는 가방을 들고 있었는데, 등이 흥건하게 젖었다.
“도착했습니다.”
박한민 감독의 얼굴로 작은 웃음꽃이 맺혔다. 편백 숲에 도착한 것이다. 그의 시선을 따라 눈을 두니 그곳에는 빼곡하게 하늘 높이 치켜 솟아 있는 편백나무가 보였다.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그리고 그 뒤로는 꽤 넓게 펼쳐진 공간도 보였다. 위로 뛰어갈 수 있는 거리가 70m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아마도 민후는 오늘 저곳을 종일 뛰어다녀야 할 것으로 추정이 된다.
첫 촬영을 하게 되는 장면이 노루를 쫓아서 달리는 장면이었다.
스태프들은 벌써 진이 다 빠진 것인지 빼곡한 편백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박한민 감독도 어지간히 힘이 든 듯 그들에게 뭐라 하지 않고 나무에 기대어 잠시 휴식을 취했다.
20분 정도 휴식을 취하고 촬영 장비 세팅에 들어갔다. 민후에게로 의상팀 인원들이 다가왔다. 의상팀 인원들은 민후의 얼굴에 까무잡잡하게 분을 칠해주고 코에 콧수염을 붙여주었다.
더불어 활과 깎아 만든 화살을 건네주었다. 실제로 화살촉은 깎아 만들었으나 날카로워서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의상팀이 건네준 의상을 수풀 한편에 숨어서 갈아입고 나왔다.
갈아입고 나온 민후에게 이번에는 긴 머리를 땋은 가발을 씌워주고는 그곳에 두건을 씌워주려 했다. 민후는 잠시 제지했다.
두건이 낡고 허름하기는 했지만, 과연 사냥꾼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이거 더러워져도 상관없죠?”
“네. 2천 원짜리 소품이니까 2천 원만 주세요.”
의상팀 여성의 장난스러운 웃음에 민후는 헛웃음 짓고는 땅에 두건을 비볐다. 어느 정도 비비고 나서야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로 다시 의상팀 인원에게 건넸다. 여성이 그의 이마를 두건으로 완전히 가려주었다.
“어때요?”
“오…… 산적 같아요.”
여성이 휴대폰으로 사진 촬영을 한 뒤 민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딱 처음 보자마자 드는 생각은 산적이었다. 헝클어진 머리와 너저분하게 자란 턱수염. 더러우면서도 바닥에 넘어지거나 혹은 구를 때를 대비한 가죽으로 만든 옷. 누가 봐도 영락없는 산적 꼴이다. 그러나 그러한 한이는 숨어 지내는 신궁이었다. 역적의 자식이지만 조선 최고의 신궁인 한이, 유일한 피붙이인 주인의 행복만을 바라고, 그녀를 위해서 목숨을 부지하는 진짜 남성이었다.
여동생이 끌려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누구보다 강하고 누구보다 굳센 오빠가 되는 이였다. 결코, 그는 산적 같은 이미지라고 해서 산적이 아니었다.
산적보다 훨씬 강하고 대단한 남성을 민후는 표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민후는 국궁을 손에 쥐어보았다. 40일 동안 틈만 나면 쥐었던 것이 국궁이었기 때문에 착 감기는 느낌이 익숙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재료일 것이다. 민후가 연습했던 국궁은 본래의 재료가 아닌 현대에 보편화된 재료로써 카본과 접착제, 고무판 등을 이용한 개량궁이었다.
그러나 그에 반면 영화 촬영의 시대가 시대인지라, 이 활은 3대째 국궁만 만들어왔던 장인이 만들어낸 물건이라고 들었다. 무소의 뿔과 산뽕나무, 부레풀을 이용해 만든 활이었다.
그리고 만곡형의 모양을 가지고 있었다. 단순굴곡형과 재굴곡형, 이중굴곡형 등이 나누어져 있었는데, 한이의 무기는 이것, 무소뿔로 만들어낸 만곡형 활이었다.
양 끝에는 붉은색의 천이 감싸져 있었고 중앙에도 붉은 천이 감싸져 있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한편으로 내려갔다. 사람이 없는지 눈을 굴렸다. 박한민 감독이 그런 민후를 발견하고는 유심히 바라보았다.
‘자세 하나는 최곤데?’
민후는 활시위를 당겼다. 그리고 놓는 순간, 바람처럼 날아간 화살은 나무에 꽂혔다.
20m도 안 되는 거리이기는 하였지만 정확하게 맞혀내자 민후는 빙긋 웃었다. 박한민 감독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촬영 장비 세팅을 하는 데에 걸린 시간이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촬영 세팅이 끝이 나고 촬영을 시작했다.
실제로 노루를 쫓는 장면은 특수효과로 처리할 예정이었으며 카메라 팀 인원들이 뛰어야 할 동선에 대해서 가르쳐주었다.
타타타탓!
일단은 김한휘와 다른 조연 배우들이 노루를 쫓듯이 편백나무 숲 사이를 달리기 시작했다. 빠르게 달렸으나 노루의 발걸음이 빨라 잡지 못하는 듯 그들의 얼굴에 아쉬운 기색과 지친 기색만이 크게 남는다.
그리고 놓쳤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민후가 수풀 사이에서 뛰쳐나온다.
타타타탓!
그는 전속력을 향해 달리면서 노루를 뒤쫓는다. 그러나 노루의 발걸음은 빨랐다.
“여기 경치 좋다!”
“NG! 다시 한번 가야겠네요.”
본의 아니게 촬영장 통제가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광객이 많이 오는지라 큰 목소리를 낸 여성의 목소리가 도중에 들렸다. 첫 번째 NG였으나 배우들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사냥감을 쫓는 데 느긋하고 천천하게 뛰는 맹수를 본 적이 있는가? 없을 것이다. 필사적으로 쫓기 마련이었으며 배우들도, 민후도 마찬가지였다.
민후도 숨을 거칠게 쉬다가 호흡을 진정시키고는 땀을 닦아냈다. 그나마 그의 경우 체력이 좋아 빠르게 안정을 취했다지만 다른 이들은 여전히 헉헉거리면서 죽을 것 같은 곡소리를 내고 있었다.
타타타탓!
“아이쿠!”
“NG.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했네요.”
NG는 계속되었다. 네 번 이상이나 지속된 상황이다. 배우들은 지쳐가고 있었으나 그나마 민후는 멀쩡했다.
타타타탓!
다시금 달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느낌이 좋은 편이었다. OK 신호가 나올 것 같았다. 역시나 달리는 부분에서는 잘리지 않았다. 민후는 저 멀리 사라진 노루가 있다고 가정하고 활시위를 당긴 후 놓는다.
후우웅!
탁!
실제로 화살은 노루가 아닌 땅에 받쳐져 서 있는 과녁에 맞았다. 그러나 특수효과는 노루에게 날아간 듯 보이게 해줄 것이다.
“맞았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민후는 시나리오에 적힌 것처럼 ‘역시나…….’ 하듯 실소를 흘리며 터벅터벅 걸어간다.
그나마 한 신이 끝났다. 장차 여섯 시간이 걸렸다. 곧 있으면 해가 질 것이었다. 그러나 쉴 틈은 없었다. 곧바로 다음 촬영지로 넘어가야 했다.
더 어두워지면 촬영지로 가는 것도 힘들어진다. 편백 숲의 위로 조금 더 올라가면 낡고 허름한 6평 남짓도 안 되는 오두막이 있었다. 그 앞에서 노루를 구워먹는 연출을 할 것이었다.
“아이고, 죽겠다. 허리야, 다리야, 삭신아.”
“괜찮으세요?”
“젊은 게 좋다니까, 이래서.”
민후가 이제 서른 중반, 무척이나 젊은 편은 아니었지만, 내일모레 쉰을 바라보는 김한휘에 비해서는 훨씬 젊기는 한 편일 것이다. 그의 말에 민후는 쓴웃음을 짓는다.
뛰는 연기는 42.195㎞에서 이미 진이 빠지게 해봤다. 어떤 식으로 뛰어야 호흡이 덜 거칠어지는 지도 남들보다는 더욱 빠삭하게 익히고 있는 사람이 강민후였고, 더불어 활을 배우는 훈련뿐만 아니라 계속 뛰어다닐 것을 감안해 많은 것을 익혀놓기도 했다. 그 덕분에 그는 한결 살 만했다.
문제는 너무 전속력으로 뛰는 것이기 때문에 땀이 많이 나서 상당히 찜찜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녁 촬영이 완료되어야 그나마 하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되었다.
오두막 앞으로 촬영 장비가 세팅되는 중이었다. 키가 훤칠하게 큰 사내가 도착했다. 이무열이라는 친구였다. 이무열이라는 친구는 얼마 전에 데뷔한 신인 배우였다.
주연 배우로서 제대로 된 작품을 해본 적은 없지만 몇 번 조연으로서 출연했던 적은 있는 배우다. 무척 잘생겼다고는 할 수 없으나 다부진 체격과 큰 키가 인상적인 남성이었는데, 민후보다도 훌쩍 클 정도였다.
본래는 알기로 뮤지컬 배우 출신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뮤지컬과 영화의 차이는 한 끗 차이이기 때문에 신인이었지만 연기는 어느 정도 입증이 된 것으로 안다.
이미 저번에 얼굴을 한 번 보았었고, 그와는 같이 훈련을 하지 못했다. 민후가 화살을 주로 쓰는 배역이라면 무열의 경우는 활보다는 검을 쓰는 무인 역할로서 한이의 동생 주인을 사랑하고 그녀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어 하는, 이번 작품 최종무기 활에서는 꽤 비중이 큰 역할이었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그래, 다음부터는 조금 일찍 오는 게 좋을 것 같아. 스태프들이랑 장비 옮기느라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니었어. 한창 배울 때잖아.”
민후는 따끔한 충고 한마디도 아끼지 않는 이였다. 그의 어깨를 툭 치면서 하는 말에 무열은 아차 하는 표정이 되어 미안한 기색이 되었다.
그러나 곧 의상팀 인원이 와서 그를 데리고 가 의상을 갈아입혔다.
민후가 산적 같은 차림새에 반면 무열은 도련님 같은 의상으로 갈아입었다.
“형님, 저하고 함께 내려가 약주나 하시지요.”
“지금 술 먹고 있는 게 안 보이느냐?”
촬영이 시작되었다. 무열의 연기는 꽤 괜찮았고, 밤중이 된 지라 촬영장 분위기도 괜찮았다.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리고 또한 가슴을 침착하게 내려앉아 연기에 더욱 몰입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정작 이 장면을 촬영하는 데에 걸린 시간이 세 시간 남짓이었다. 내일 아침에 또다시 곧바로 다른 장면 촬영이 있었다. 현재 시간이 시간인지라 서둘러 촬영 장비를 걷고 하산하기 시작했다. 날이 아주 어두웠고 그나마 조명팀에서 잔머리를 굴려 앞쪽을 조명으로 환하게 비추면서 내려갈 수 있었다.
취침 장소는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펜션이었다. 아무래도 관광객들이 많이 오기에 펜션의 숫자도 많았고 펜션 두세 곳 정도를 빌리면 100여 명이 넘는 촬영팀 인원들도 잠을 잘 수 있었다.
오늘 같은 경우는 민후와 무열, 한휘 세 사람이 함께 자기로 하였다. 씻고 나온 민후는 곧장 휴대폰을 집어 들고는 잠시 나왔다. 밤인지라 공기가 더욱 시원하고 상쾌했다.
그가 나오자마자 전화를 건 이는 윤하였다. 한 달 정도는 이곳에 머물며 촬영해야 할 거라는 박한민 감독의 말이 있었다. 아무래도 완주군 자체가 서울과는 꽤 거리가 되었기에 왔다 갔다만 해도 여섯 시간은 족히 걸린다.
편백 숲에서의 촬영을 끝내면 서울에 잠시 올라가 삼 일 정도 쉬고 다시 다른 지역으로 내려가 촬영을 해야 할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었다.
“응, 여보 이제 촬영 끝났어. 민주는? 자?”
그는 한참이나 전화기를 붙잡고 윤하와 통화했다. 오늘 아침에 촬영을 위해 나섰지만 한 달은 못 본 것처럼 전화기를 잡고는 실실거린다.
20분 정도를 통화하고서야 그는 다시 펜션 안으로 들어가 잠을 깊이 자기 시작한다.
최종무기 활의 시나리오를 훑어보면 80% 가까이가 전투 신이었다. 강민후의 상대 배역인 유승용. 즉 그가 이끄는 쥬신타의 이들과의 접전 신이나 혹은 한이가 동생 주인의 흔적을 찾던 중 압록강을 넘어서는 강변에서 청나라의 적군들과 대치하는 장면.
혹은 청나라의 왕자에게서 주인을 구하는 장면까지도 전투 신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전투 신이 많은 만큼 영화가 개봉하고 사람들에게 찾아간다면 사람들은 숨을 돌릴 새도 없이 몰입하게 될 것이었고 그에 반면 배우들에게는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현재 편백 숲에서의 촬영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벌써 한 달이 지났고 일주일에 한 번씩 정도만 서울로 올라갈 수 있었다.
얼마 전에 내려온 양경모 감독은 촬영하면서 미흡한 부분을 잡아주고 다른 방식의 연습도 하나 제안하고 갔다. 박한민 감독도 무척 좋은 연습 법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던 방법이다.
아무래도 달리면서 활을 쏘는 장면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에 주어진 연습법으로, 현재 민후나 다른 인원들은 40일 동안 주로 활시위를 당기고 쏘는 연습만 하고는 하였다.
즉 자세만 잡았다는 것이다. 촬영 중간중간 장비가 세팅되는 시간에는 그다음 신을 촬영하기 위해서 합을 맞춰보고 연습하고 있었다.
민후나 쥬신타 역인 유승용,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였다.
과녁이 땅에 지탱하여 세워져 있었고 민후는 촬영장 비들이 세팅되는 틈을 타서 연습을 하고 있었다. 유승용도 함께였고 다른 배우들도 지켜보았다.
민후가 앞서 달려나갔다. 달려나가면서 그는 활시위를 쭈욱 당겼다. 과녁과 그의 거리는 7m 남짓밖에는 되지 않았다. 과녁 뒤로는 절대 사람이 다니지 못하게 철저히 통제하고 있었다.
뛰면서 활을 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타타탓!
쭈우욱!
활시위를 당긴 민후는 과녁을 향해 화살을 쐈다.
과녁에 맞아 들어갔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자 유승용이 이번에는 뛰쳐나갔다. 그도 활을 든 자세에서 활시위를 당겨 달리며 화살을 날렸다.
탁!
이 동작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벌써 40분째 반복되고 있었다. 거의 쉴 틈이 없었다. 연습이 끝이 나면 곧바로 촬영에 들어가고 촬영이 끝나면 다시 장비 철수와 세팅이 이어지고 그 시간 동안 연습하는 중이었다.
유일하게 쉬는 시간이라고 한다면 자는 시간과 식사를 하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부대끼는 맛이 있었기에 할 만했다.
“선배님, 여기 물 있습니다.”
두 사람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다행히도 계속해서 과녁에 잘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그만큼 카메라에도 좋은 동작이 잡힐 것으로 추정되었다.
현재 촬영되는 신은 쥬신타의 인원들이 편백나무 숲에서 한이를 포위진을 형성하여서 쫓는 것이었고 한이는 활 한 자루로 포위진을 뚫고 나가며 그들을 압박하는 장면이었다.
쥬신타와 그 부하들과의 전투 신은 시나리오상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컸으며 그만큼 뛰어다녀야 했다. 오죽 했으면 배우들은 ‘마라톤 완주를 한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문제는 마라톤 완주를 하면서도 그 속도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전속력으로 서로가 달리고 있어서 민후도, 유승용도 다른 배우들도 살이 쏙 빠져 버렸다는 것이다.
식사 시간만 되면 배우들은 밥 두 공기를 뚝딱 비워낼 정도로 식욕이 왕성해지기까지 한 상황이었다.
물을 마신 유승용은 다시 민후에게 건넸다. 민후도 건네받은 생수로 입을 축였다. 분명 처음 편백나무 숲에 왔을 때는 9월이었는데 이젠 10월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지 않은가 싶었다.
날씨가 많이 선선해졌다. 문제라면 밤중이 되면 배우들은 뛰어다니기에 바쁘지만, 스태프들은 그 자리에 서서 카메라와 음향기기 등을 들고 대기하기 때문에 산 중이라 추위를 많이 타게 된다는 것이다.
“일어나자.”
“네, 선배님.”
유승용이 자신의 활을 잡으며 민후의 어깨를 두들기더니 먼저 몸을 일으켰다. 유승용과도 꽤 가까워진 것 같다. 그러나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과묵하고 털털했다.
촬영 장비 세팅에 한창인 스태프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이번 촬영하게 될 신의 경우는 절벽에서 절벽 사이로 뛰어넘어 가는 장면이었다.
실제로 이미 절벽에서 뛰는 장면은 촬영을 완료한 상황이었으며 그다음으로 촬영을 하기 위해서 계속 장소를 찾아다니고 있었고, 적당한 절벽을 찾아냈다.
평지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절벽이었으며 그 앞으로는 낡은 폐건물 하나가 있는 곳이었다. 평지이기 때문에 촬영용 차량 또한 진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크레인 역시도 들어왔다. 건물에서 몸을 날려서 맞은편 절벽으로 찰싹 붙어서 돌을 딛고 올라간다는 식의 시놉시스였다.
상당히 위험한 장면이었다. 크레인과 지미집 등을 통한 촬영이 이뤄지며 건물 위나 절벽 위에도 스태프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더불어서 배우들은 와이어에 의지하여서 몸을 날려서 실제로 자신들의 힘으로 벽을 타고 올라가야 하는 장면이었다.
더욱 큰 문제는 장소 협조를 얻어내면서 낙석이 이뤄질 수 있다는 말까지도 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배우들도, 박한민 감독도 괜찮다고 했다. 절벽을 오르는 데 떨어지는 낙석. 그것이 무섭다면 촬영을 하지도 못할 것이다.
더불어서 중요한 장면 중 하나였다. 위험하다고 몸을 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지만 배우들 모두가 긴장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어느덧 촬영 장비 세팅은 거의 완료된 상황이었다. 의상팀 인원들이 다가와 배우들이 입은 의상 속 안으로 와이어를 달아주기 시작하였으며 모든 와이어를 단 후에는 테스트를 해보았다.
다행히도 와이어는 튼튼했다. 다만 역시나 걸리는 것은 낙석이었다.
낙석 출몰이 잦지 않은 곳이라고 할지라도 65-80㎏을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의 무게가 닿기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싶었다. 무술 감독과 그 인원들도, 그리고 전문 스턴트맨 배우들도 긴장하기에 충분했다.
가장 먼저 건물 위로 올라간 것은 민후였다. 민후가 가장 먼저 뛰어야 했다. 무술 감독이 옆에 함께 서 있었다.
“그대로 뛰셔서 암벽 등반하듯이 올라가시면 됩니다. 절벽 앞에 몸이 도착하면 손으로 한 번 속도를 줄이시면 와이어가 알아서 천천히 들어 올릴 테니, 그때 돌을 잡으시면 됩니다.”
“예. 걱정 마세요.”
무술 감독도 상당히 긴장되는 듯 바짝 타들어 간 입술을 혀로 축이는 모습이 보였다. 민후도 긴장이 꽤 되었다. 심호흡을 쉰다. 그리고 감독의 ‘5, 4, 3, 2…….’가 들렸다.
“1!”
소리가 들리자마자 민후는 건물에서 그대로 내달렸다. 스태프들도 다른 배우들도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번쩍 뛰어오른 그는 양팔을 쭉 벌리면서 허공에 휘휘 저었다.
그리고 벽과 부딪칠 때 무술 감독의 말처럼 손으로 한 번 짚자 속도가 줄어들고 와이어가 몸을 지탱해주었다.
“크으으읍!”
턱!
시나리오상으로는 절벽을 타고 올라가는 한이의 바로 머리 옆으로 도끼가 날아와 박힌다. 민후는 올라가다가 낮은 신음을 흘리며 흠칫하듯이 한다.
다행히도 와이어는 튼튼했고, 민후의 운동으로 다져진 몸은 너무나도 가볍게 절벽을 타고 올라갔다. 그러나 문제는 민후가 땅에 디디려는 순간, 발 쪽을 지탱하고 있는 돌부리가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려졌다는 것이다.
투두두둑.
“어어어!?”
“민후 씨! 손으로 암벽 미세요! 빨리요!”
다리 한쪽을 지탱하던 것이 바닥으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굴러떨어지자 민후의 균형을 잡고 있던 몸도 한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밑쪽으로 내려선다면 와이어가 몸은 지탱해주겠지만 되레 몸이 절벽에 부딪히게 될 것이었다.
민후는 침착했다. 무술 감독의 외침에 따라서 양손을 이용해서 온 힘을 다해서 몸을 밀어냈다.
후웅!
정중앙으로 온 민후를 와이어는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주기 시작했다.
“휴.”
“아찔하다…….”
지켜보는 이도, 조금 전 위험했던 민후도 안도의 한숨이 나오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허공에서 절벽에 부딪친다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었다. 자칫 잘못 부딪치면 정신을 잃을 수도 있었다.
무술 감독의 외침 덕분에 그나마 침착한 대응이 가능했다.
“민후 씨, 괜찮아?”
“예, 괜찮아요. 낙석이 생각보다도 심한 것 같아요. 더 주의해야 할 것 같아요. 또 밑에 스태프들 절대 못 오게 통제하고요.”
가장 먼저 달려온 이는 박한민 감독이었다. 그는 민후의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와이어가 굳건하고 또한 무술 감독의 말처럼 혹여 낙석으로 몸의 균형을 잃는다면 벽을 밀어내야 할 것 같았다.
위험하다고 해서 촬영을 중단하기는 힘들었다. 촬영 장비 가격과 더불어서 이만한 장소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다른 절벽이라고 할지라도 낙석이 없다는 보장은 없었다.
더불어서 이렇듯 절벽을 타고 올라가는 장면은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장면일 것이었다. 그만큼 배우들과 촬영팀 인원들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다시 심신을 진정시키고 민후는 건물 위로 올라왔다. 박한민 감독도 불안했던 듯 제대로 올라서기만 한다면 컷을 외치겠다고 했다. 너무나도 위험한 장면이기에 그도 반복 촬영을 할 수는 없었던 듯싶었다.
부우웅.
민후는 다시 한번 뛰어올랐다. 조금 전보다도 안정적인 착지를 해냈다. 그는 돌부리들을 잡고는 몸을 걸치며 올라갔다. 땅에 발을 디딘 후 OK 신호가 떨어졌다.
“예, 알겠습니다. 민후 씨, 그 상태로 쥬신타 겨누는 장면 촬영한답니다.”
“네.”
무전기를 통해 감독의 지시를 전해 받은 스태프의 말이었다. 스태프가 다시 민후와 거리를 벌렸다.
아마도 속전속결 촬영을 하려는 것 같았다. 민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이가 다른 절벽으로 넘어오고 나서 쥬신타의 부하들도 뒤따라 절벽으로 뛰어드는 장면이 있었고, 그 틈을 타서 절벽 아래로 활을 쏘는 장면과 겨누는 장면이 있었다.
“악션!”
밑쪽에서 확성기를 든 박 감독의 외침이었다. 이미 이에 관련한 합도 전에 맞춰놓은 상황이었다. 그의 바로 옆쪽의 수풀로 특수 장비가 터질 것이다.
쥬신타의 인원들은 육량시를 쏜다. 육량시의 화살은 일반 화살보다 두 배가량은 더욱 무거웠으며 더불어서 다루기가 쉽지 않은 무기다. 더불어 단거리이나, 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영화의 특성상 재미를 더하기 위해서 돌마저도 깨부순다는 설정이 잡혀 있었다. 특수 장비는 돌을 깨부수듯이 터져, 돌 모양의 스티로폼이 터질 것이다.
쾅!
특수 장비가 터져나갔다.
“윽!”
낮은 신음을 흘린 그는 고개를 옆으로 피했다가 그대로 밑쪽을 향해서 아무것도 없는 절벽에 적이 있다고 생각하고 활시위를 당겨 적군 한 명을 떨어뜨린다.
다시 화살 하나를 장전한 그는 활시위를 당겨 다른 이의 가슴을 맞힌다.
‘으아악!’
그의 눈앞으로는 절벽뿐이지만 머릿속으로는 활에 맞아 밑으로 떨어지려는 이가 있었고 쥬신타가 그의 팔을 붙잡으며 살리기 위해 애쓴다.
다시 화살 한 발을 장전한다.
그는 활시위를 당기려다가 멈춘다. 쥬신타가 부하의 죽음을 막기 위해 한 손으로 부하의 팔을 잡고 있었다. 결국, 그는 몸을 돌린다.
“OK. 민후 씨 방금 모습 무척 좋았답니다.”
스태프가 대신 ok 신호를 주었다. 민후는 흡족한 표정이다.
민후는 돌아서 다시 밑으로 내려갔다. 감독과 함께 모니터했다. 만족스러운 장면이었고 박한민 감독도 ‘이 정도면 됐어.’라고 말했다. 즉 민후의 이번 신 분량은 끝난 것이다.
남은 것은 다른 배우들이 절벽으로 뛰어오르는 장면이었다. 박한민 감독과 무술 감독은 포지션을 새로 짰다. 유승용과 더불어서 한이의 화살에 맞아 절벽 밑으로 떨어지려는 역할만 가까이 붙이고 다른 이들은 넓게 퍼지자는 식으로 포지션을 잡았다.
혹여 위아래로 올라가다가 위쪽에서 낙석이 떨어져 밑에 있던 사람이 그 낙석에 의해 부상을 당한다면 최소한 중상은 입을지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더불어 낙석이라는 것이 돌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이다. 자칫, 사람의 몸보다도 더 큰 낙석이 생길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포지션을 재정비하고 식사에 들어갔다. 실상 편백 숲에서의 촬영 때는 항시 도시락을 먹고 하산하여서 펜션에 도착하면 그나마 제대로 된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배우들도 스태프들도 투정 부리지 않았다. 특히나 배우들은 꿀맛 같은 맛에 좋아했다.
오늘 도시락은 초밥 도시락이었는데, 일부러 감독이 요즘에는 항시 넉넉하게 주문을 한다. 배우들은 입이라도 맞춘 것처럼 도시락 두 개씩을 집고는 함께 둘러앉았다.
“아유, 아까 민후 씨 발 헛디뎠을 때는 저도 심장이 덜컹했다니까요.”
“저도요. 이다음엔 저희가 뛰어야 하는데 걱정이네요.”
“조심하세요. 생각보다 돌부리가 약해요.”
배우들도 상당히 불안한 눈초리였다. 단지, 유승용만은 별걱정 없는 표정으로 식사를 한다. 민후도 허겁지겁 식사를 하면서 함께 받은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시래깃국을 마셨다.
배부르게 식사를 마치고 나서 이번에는 유승용과 다른 배우들이 건물 위로 올라섰다. 그들은 촬영 의상 중 무거운 갑옷들은 벗은 상황이었다.
앞서 촬영된 분량에서 절벽으로 뛰기 위해서 갑옷을 벗는 장면을 촬영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몸으로는 당연히 와이어가 보이지 않게 채워져 있었다.
활시위를 앞쪽으로 이동시켜 단단히 메고 유승용이 가장 먼저 절벽 위로 몸을 던졌다.
“이야아아!”
턱!
타아악!
순간 그가 절벽을 밀쳐내지 못해 부딪쳤다. 유승용은 큰 고통이 밀려왔다. 그러나 촬영을 중단할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카메라는 더욱 현실감을 잡아낼 것이었다.
그는 절벽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고, 뒤이어 다른 배우들도 몸을 날렸다.
“으아아!”
“흐아아압!”
탁!
탁!
한 사람 한 사람 절벽을 짚고 몸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중 한 배우가 화살에 맞은 것처럼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그가 떨어지는 곳은 맨바닥이었고, 와이어의 힘으로 착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는 밑에 강물에 떨어지는 걸로 보이게 될 것이다. 교묘한 편집으로 인한 효과다.
우르르르.
이내 배우들이 절벽을 타고 올라가는데 낙석이 일어났다. 곳곳에서 낙석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배우들이 노련하게 돌부리를 잡고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힘을 유지했다.
민후처럼 발을 지탱하는 돌부리가 무너지는 이들은 다행히도 없었고, 오히려 낙석 효과가 도와 더욱 실감 나는 장면이 나올 것 같았다. 모든 인원이 무사히 절벽을 타고 올라갔다.
감독의 OK 신호가 떨어졌다. 그제야 촬영장 내의 모든 인원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정말 보는 사람도 아찔한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위쪽에서 스태프들이 유승용에게 서둘러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그들도 유승용이 절벽에 부딪히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그는 괜찮다고 말을 했고, 그가 밑으로 내려오자 민후도, 감독도 그에게 성큼 다가갔다.
“괜찮으세요, 선배님?”
“그래.”
그는 역시 짧고 굵었다. 곧 무술 감독이 다가가 그의 가슴팍을 조심스레 눌러보았다. 그는 큰 기색을 보이지는 않았다. 무술 감독도 그가 큰 다친 게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민후도, 박한민 감독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유승용은 태연하게도 모니터로 다가가 방금 찍은 장면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촬영팀 인원도 배우들도 너무 고생했기 때문에 박한민 감독이 제작사에 문의해 저녁에는 고기파티를 열기로 하였다. 아무래도 주위가 펜션이었기 때문에 고기나 재료들만 사 오면 불판이나 숯불은 모두 빌릴 수가 있었기 때문에 촬영팀 인원들이 고기와 술을 상자째로 사 왔다.
소주는 세 짝이었으며 맥주는 두 짝, 고기만 해도 삼겹살로 50만 원어치에 채소와 더불어서 쌈장 등등도 사 왔다.
실상 최종무기 활에서 고생을 가장 크게 하는 것은 촬영팀 인원들보다도 배우들이지 않을까 싶었다. 일단 그들은 밤낮 가리지 않고 계속 뛰고 미미하지만 부상도 입고 있었다.
민후도 몸에 멍이 안 든 구석이 없었으며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였다. 세팅은 촬영팀 인원들이 전부 해주기로 하였다.
민후는 현재는 승용과 단둘이 방을 섰다. 원래 무열도 있었지만, 그는 편백 숲에서의 촬영 분량은 그렇게 크지 않았기에 먼저 서울로 올라간 상황이었다.
먼저 승용이 씻고 나오고 민후가 씻고 나왔다. 씻은 후 가볍게 반팔과 반바지를 입은 민후에게 유승용이 손을 휘휘 젓고 있었다.
승용이 민후의 등에 붙어 있던 파스를 떼어 내고 새로운 파스를 붙여주었고, 곧 약을 발라주었다.
그다음에는 자연스럽게 민후가 승용의 몸에 파스와 약을 발라주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이라 이젠 너무 자연스러워졌다.
약을 모두 바른 후에는 밖으로 나왔다. 이미 고기를 굽기 시작했고, 민후와 승용, 배우들 감독이 함께 자리에 앉았다.
펜션이 왁자지껄해졌다. 펜션 두 개를 통째로 빌렸기에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었기에 그들은 신났다.
참 일한다고 하면 힘든 곳이지만 이렇게 앉아서 고기를 구워 먹으면 경치가 참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민후도 고기를 먹는 것에 취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탁자 바로 앞에는 휴대폰이 놓여 있었다.
그는 스마트폰을 통해서 생방송을 보고 있었다. 그가 보고 있는 생방송은 다름 아닌 슈퍼스타 A였다. 아직도 혜인이는 떨어지지 않고 최후의 4인에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오빠로서 그녀가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옆에서 다른 배우들도 함께 민후의 휴대폰을 통해 보았다.
고기를 다 먹어갈 때쯤에 심사위원들이 탈락자를 정하는 장면이 비치고 있었다.
민후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탈락자는 김혜인 씨입니다.
이윤철은 탈락자로 혜인을 지목했다. 민후는 아쉬운 소리를 냈다. 그러나 곧 쓰게 웃었다. 혜인이가 울고 있었다. 그러나 그 울음이 최후의 1인이 되지 못했다는 것에 우는 것이 아님은 알고 있었다.
그녀로서는 방송에 나오는 압박감이 생각보다 컸을 것이고, 떨어졌다는 것에 실망감도 큰 한편, 이제까지 몰려 있었던 긴장이 스르르 풀렸을 것이다.
어쩌면 이제 겨우 열여덟 혜인이가 지금 떨어진 것이 다행일 수도 있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우승을 차지하는 것도 많은 이들의 시기 질투를 살 수 있는 일이었고, 그녀도 우승을 차지하면 자신에게 생길 압박감을 내심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 아깝네요.”
다른 이들이 탄식했다. 그러나 민후는 빙긋 웃으며 다른 이들과 건배를 했다. 이 회식 자리가 끝이 나면 혜인이에게 전화 한 통 해줘야 할 것 같았다.
완주군의 편백 숲에서의 촬영을 4개월 만에 끝을 낸 후에 다음 이동한 촬영지는 다름 아닌 군산의 비응도였다.
비응도에서 촬영하게 될 분량은 약 2주간 촬영이 될 예정이었다. 비응도에서 촬영하게 될 분량은 시나리오상으로는 압록강을 넘어서기 전이었다.
즉, 비응도를 통해서 촬영팀은 압록강을 표현할 예정이었다. 실제로 압록강에 가서 촬영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세트장 로케이션 중 비응도가 가장 적합할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왔다.
비응도에 촬영 세트를 형성하고 한다면 꽤 괜찮을 것 같았다.
비응도에서는 이무열과 더불어서 민후가 주축을 이룬다. 유승용과 쥬신타 부하역인 배우들은 서울로 올라갔다. 비응도에서의 그들의 촬영 신은 없었기 때문이다. 비응도로 촬영 팀이 오기 전에 촬영팀은 일주일간 휴식기를 가졌다.
너무나도 강행군을 달렸기에 감독이 준 배려였다.
비응도로 오자 바다 내음이 코끝을 자극했다. 세트장은 거의 완성이 끝난 상황이었으며 더불어서 엑스트라들을 섭외해야 했으며 청나라 병사 역할들은 무술팀 인원들이 맡기로 확정되었고, 포로인 조선 사람들은 엑스트라들을 섭외하기로 하였다.
엑스트라가 섭외되는 만큼 확실시한 합이 필요했다. 엑스트라들이 들어가는 장면이 계속해서 연기되면 그만큼 촬영 금액이 빠져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이무열의 대련 신이었다. 이곳 비응도에서 찍게 될 전투 신도 무척 중요한 장면 중 하나였다. 이무열이 앞장서서 두려워하는 조선인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고자 앞서 싸우는 장면이다.
“자, 이렇게요.”
탁! 탁탁탁!
목검 세 개가 부딪쳤다. 이무열과 촬영팀 인원들은 그 합을 숙소 앞에서 맞추고 있었는데, 민후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두 사람이 대련하는데 목검이 세 개가 부딪치는 이유는 청나라 병사 중 한 사람이 쌍검술을 구사하며 이무열을 몰아붙이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민후도 쌍검술로는 큰 일가견을 가지고 있는 이 중 한 사람이었기에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 쌍검술을 구사하는 무술팀 인원보다는 민후가 더욱더 훌륭했다.
민후의 경우 수개월을 쌍검술 연습을 했고, 지아이오 영화 시즌을 하는 데에만 5년이 훌쩍 걸렸다. 그 기간 동안 쌍검술을 계속해서 했다는 것이다.
무술팀 인원이 모자랄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더욱 못한 민후가 직접 무술팀 인원을 지도해주었으며 그 동작을 잡아주면서 무술 감독이 헛웃음 지었다. 배우가 무술팀 인원의 동작을 봐주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그러나 그건 비웃음이 아니었다. 무술 감독이 보아도 민후의 동작은 깔끔하고 멋졌다. 상당한 실력자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고 나무랄 데가 없어서 웃는 것이다.
“이렇게 휘두르시는 게 좋아요.”
“아, 감사합니다.”
무술팀 인원도 민후의 수준급의 쌍검술 실력에 토를 달지 못했다. 자세를 고정해준 민후는 묵묵히 두 사람의 대련을 바라보았다.
합의 마지막을 완성하기 위해서 비응도의 세트장에 와 있었다. 바로 앞쪽으로는 바다가 펼쳐져 보였으며 더불어서 청나라 군사들이 쓸 장비들이 놓여 있었다.
더불어 민후는 말도 끌고 온 상황이었다. 신 중 하나에 민후가 말을 타고 나타나 이무열을 구해주는 장면이 있었고, 민후는 그 신을 연습하기 위해 온 것이다.
“자, 활 당기시고! 악션!”
촬영 장비 하나 세팅되지 않았지만 합을 맞추는 것이기 때문에 박한민 감독이 외친다. 배우들이나, 무술팀 인원들도 사복을 입은 상황이었다.
청나라군의 지휘자로 캐릭터가 잡힌 단역 배우는 말 위에 올라탄 채 화살 없이 활만을 당겨 이무열에게 날린다.
“그다음에는 네 심장을 뚫어주마! 어디 너희 왕처럼 개처럼 기어와 짖어 보아라!”
“하아, 하아.”
이무열은 지친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본다. 그러나 굴복하지 않겠다는 눈빛이 확실시했다.
목검을 쥔 그는 상대방을 향해 기합을 지르며 달려나간다.
“이야아아압!”
쭈우욱!
단역 배우가 활시위를 당긴다. 그리고 놓으려는 순간이다. 민후가 예정되었던 대로 말 위에 올라서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미 몇 번 합을 맞춰 보고 확실시하게 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그는 말을 노련하게 이끄는 듯하다.
말 위에 올라탄 민후는 활시위만을 당겨 쏘는 행위를 한다. 단역 배우는 그에 놀라 활에서 떨어져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떨어질 수는 없었기에 조심스레 말에서 내려와 바닥에 눕는다.
이무열이 검을 찌르는 시늉을 하고 박 감독이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한 번만 더 맞춰 봅시다.”
확실시할 필요가 있는 장면이었다. 감독의 말에 따라 민후는 말의 고삐를 잡아 다시 뒤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런데 갑자기 말이 앞발을 들어 올렸다.
“어어어?”
민후는 당혹한 소리를 냈다. 그는 승마에 꽤 자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말은 갑작스럽게 앞발을 든 것이다. 아무래도 살아 있는 생명이었기 때문에 그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존재라 가장 위험한 것이 말이기도 하였다.
턱!
민후가 말 위에서 떨어졌다.
“히히히힝!”
말은 갑작스레 거친 포효를 하면서 다시 앞발을 들어 올렸다.
바닥에 떨어졌던 민후는 다행히도 큰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의 눈앞으로 말의 배가 보였고 앞다리가 보였다. 민후는 몸을 옆으로 굴렸다.
탁!
십년감수 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말의 앞발에 눌릴 뻔했다. 어느새 뛰어온 무술 감독이 말의 고삐를 잡았다.
“이놈!”
무술 감독은 서둘러서 말을 진정시키기에 바빴다. 민후의 경우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몸을 일으켜 말과의 거리를 벌렸다. 실상, 말들은 촬영 장비가 아니었다. 그 때문에 이러한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는 하였다.
얼마 전에는 한 촬영장에서 스턴트맨이 말에서 떨어져 하반신 마비가 온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만큼 말을 다루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었다. 지켜보던 모든 이들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만약 정말 민후가 앞발을 피하지 못했다면 꽤나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괜찮나?”
“예, 괜찮습니다.”
박 감독이 걱정 어린 시선으로 물었다. 민후는 요즘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는 수많은 영화를 촬영해 봤었지만, 그중에서 최종무기 활이라는 작품이 가장 위험했던 것에 속하는 듯싶었다.
산중을 뛰어다니고 절벽을 타며, 말과 함께 달리면서 활을 쏘고. 위험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 배우들은 승마의 달인들은 아니었다. 속성으로 빠르게 배워내는 이들이 많았고, 말이 갑작스러운 행동을 보이면 배우들도 무척이나 당혹할 수밖에 없다.
“30분 쉬고 갑시다!”
박 감독도 지금 다시 합을 맞추는 것은 무모한 것이라고 인지한 듯싶었다. 쉬고 가는 시간을 만들기로 하였다. 민후는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직도 놀란 가슴이 쿵쾅쿵쾅 뛰고 있었다.
비응도의 촬영 세트장으로 대형버스에서 엑스트라들이 내리고 있었다. 이번에 섭외된 엑스트라의 숫자는 총 육십여 명이었다. 나이, 성별 불문이었다.
조 감독이 다가가 그들에게 지시사항을 알려주고 있었다. 배우들도 확실시한 마지막 합을 맞춰 보았다.
촬영 장비는 현재 세팅을 모두 완료한 상황이었으며 엑스트라들만 잘 해준다면 촬영이 꽤나 빨리 끝날 수도 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합을 한 번 맞추고 나자 어느새 엑스트라들은 의상 팀이 건네준 의상으로 갈아입은 상황이었다. 이번 엑스트라들이 할 일은 크게 많지 않았다.
한휘가 ‘우리도 나갑시다!’라고 외치면 모두 환호를 하면서 일어나 도망을 치듯이 수풀 쪽으로 뛰어가거나 혹은 청나라 병사들을 공격하면 되는 장면이었다.
엑스트라들에 대한 교육이 끝이 났다. 엑스트라들은 실제로 보는 연예인에 무척이나 신기하다는 표정이었으며 다가와서 사인을 요구하는 이들도 있었다.
민후는 그런 그들의 사인에 흔쾌히 응해주며 사인을 해주거나 사진을 찍고는 했다.
“선배님, 곧 촬영 들어간답니다.”
“그래.”
무열이 다가와 한 말이다. 무열은 무척이나 지저분한 메이크업을 받은 상황이었다. 무열은 청나라 병사들에 의해서 며칠간 무모한 행군을 함으로써 지칠 대로 지친 기색을 표현해야 했다.
둘러보면 엑스트라들도 대부분 지저분해 보이는 메이크업을 하고 있었다. 그나마 민후는 조금 낫다고 할 수 있었다.
곧이어 촬영이 시작되었다.
<“통역! 이봐! 통역!”
“예예!”
압록강. 넘어서게 되면 청으로 갈 수 있었다. 단, 조선의 사람들은 이곳을 넘으면 다시 조선 땅을 밟지 못하게 될 것이었다. 머리가 벗겨진 애꾸눈의 청나라 수장은 청나라어로 ‘통역’을 외쳐대었다.
노인이 부들부들 몸을 떨면서 그에게 다가간다. 수장은 자신의 말을 전하라는 듯이 턱짓을 해 보이고 늙은 노인은 두려운 듯 그저 고개를 끄덕인다.
“너희들은 이곳을 넘으면 다시는 고향 땅을 밟을 수 없을 것이다.”
“이곳을 넘으면 다신 이곳으로 못 돌아온대요.”
노인은 부르르 몸을 떨면서 압록강 쪽을 가리켰다. 사람들은 동요했다. 다시 고향 땅을 밟을 수 없는 것. 그것만큼 슬픈 일이 또 있을까.
“그러나 난 너희에게 기회를 주려 한다. 지금 도망갈 자들은 가도록 해라!”
“히익……!”
노인은 치를 떨었다. 도망갈 기회를 주겠노라고 하지만 이들의 악랄함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더불어서 살아오면서 노인은 산전수전 안 겪은 일이 없었고, 이들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차마 도망가라는 말을 사람들에게 꺼내지 못해 입을 꾹 닫고 몸을 떨었다.
청나라 병사 한 사람이 정강이를 발로 걷어차며 채찍질을 하기 시작했다.
“윽! 도, 도망갈 사람은 지금 도망가랍니다! 그, 그렇다고 도망가면 안 돼요! 그럼 어떻게 되는지 알죠!?”
노인은 두려움에 찬 음성으로 말하면서도 사람들에게 도망가지 말 것을 말한다. 이들은 도망가는 이들을 죽일 것이다. 두려움에 떨면서 도망치는 이들의 그 흉한 몰골을 보고 싶을 것이고, 그런 그들을 죽임으로써 즐기며 더불어 더 이상 다른 이들이 도망갈 생각을 품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다섯을 센다!”
“다섯을 센대요! 절대 도망가면 안 됩니다!”
“하나! 둘! 셋! 넷!”
“에이 씨!”
사람들은 수군대면서 혼란에 빠졌다. 도망가서 만약 산다면 고향 땅에 남을 수 있었다. 결국, 사람들은 혹하여서 도망을 택한다.
“에이 씨!”
어떠한 이가 먼저 몸을 일으켜 수풀 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하자 하나둘 사람들이 몸을 일으키며 도망치기 시작한다.
“하하하하! 하하하!”
수장은 괴기한 표정으로 웃어 보인다. 도망치는 조선인들을 보니, 한없이 나약하고 겁쟁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곧 그런 그의 표정이 굳어진다.
손을 들어 올려 신호를 보낸다.
말을 타고 있던 기마들이 칼과 창, 활을 무장한 채 그런 그들을 뒤쫓기 시작한다.
“꺄아아악!”
“아악!”
비명이 퍼지기 시작한다. 기마들은 단숨에 도망치던 이들을 따라잡아 죽인다. 활을 쏘아 죽이고, 목을 쳐서 죽이며, 창으로 복부를 관통시켜 죽였다.
그들의 살육은 끝이 없었다.
“내가 가야겠어.”
“아, 안 됩니다.”
주인과 혼례를 맺은 무인 이군은 몸을 일으킨다. 비록 포로 꼴이 되었으나 그는 무인이었다. 아버지도 청나라 이들과 용맹하게 싸우시다 목숨을 잃으셨다.
이대로 계속 두려워할 수는 없었다. 계속해서 죽임을 당한다면 조선인들은 두려움에 떨며 고향으로 돌아갈 실낱같은 희망마저도 잃을 것이다.
자신이 저들 모두를 죽일 수는 없을지언정, 그러나 무인으로서 병사 몇몇은 죽일 수 있을 것이다.
“말리지 마시게나.”
그는 제지하는 이들을 뒤로하고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도망을 치듯이 터벅터벅 움직인다. 그러나 그 걸음이 무척 느렸다. 마치 목을 내놓고 죽여 보시오. 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수장은 그에 실소를 흘리며 기마병에게 턱짓한다. 기마병이 말을 이끌고는 달린다.
“이랴! 이랴!”
검을 든 기마병은 칼을 뻗는다. 단숨에 목을 치려는 것이다. 그 순간 이군의 상체가 빙글 돌더니 말 위에 있는 기마병의 가슴을 거세게 가격한다.
“히히힝!”
병사는 자연스레 바닥으로 떨어졌다. 검을 뺏어 든 이군은 단숨에 심장을 꿰뚫는다.
“이곳을 지나기 전에는 나를 먼저 베어야 할 것이니라!”
그는 비장한 표정으로 청나라 이들을 바라본다. 그들에게 굴복하지 않는다. 그것이 조선의 정신이었고, 많은 이들의 희망이었다.
“우리 장수 중에는 저자를 죽일 용맹한 자가 없는가!?”
수장의 외침에 옆에 서 있었던 장수 한 사람이 번쩍 점프하여서 내려선다. 그는 검 두 개를 뽑아 들고는 기합을 지르며 이군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와라.’
청나라 장수가 번쩍 뛰어오른다. 그의 거칠고 빠른 검이 위에서 아래로 이군의 검을 내려친다.
챙!
탱! 챙챙!
이군은 그의 검을 위로 쳐냈다. 쌍검술. 실제로 이군은 쌍검술을 구사하는 자와 대련을 해본 적이 없었다. 장수의 검은 빨랐고 예측하기 힘이 든 것이 사실이었다.
푸슉!
결국 팔을 베였다. 비틀한 이군은 그의 발길질에 바닥으로 넘어진다. 사내가 검을 찔러 들어온다. 그러나 이군은 긴 다리를 이용해 그의 배를 막는다.
사내의 검은 짧았다. 검 자체가 짧았으며, 더불어서 다리도 짧아서 아무리 애를 써도 이군의 몸에 닿지를 않았다. 그 틈을 타 이군은 검을 양손으로 굳게 찌른다.
푹!
“억……!”
검을 뽑아내며 서둘러 몸을 일으킨 이군은 단숨에 장수의 목을 쳐낸다.
그의 숨이 거칠어진다.
<한 신이 끝이 났다. 그다음 신의 경우는 민후가 등장하는 신이었다. 엑스트라들은 작은 감탄을 한다. 무열과 스턴트맨이 벌인 검투극이 실제와 같이 생생하고 빨랐기 때문이다.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하지? 싶나 하는 모습들이다. 당연했다. 이 반복된 행동만 두 사람은 수십 번을 맞췄고, 그 때문에 서로의 동선을 모두 예측하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실제였다면 그 누구라고 할지라도 절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카메라들은 동선을 새롭게 잡고는 민후에게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엑스트라들에도 새롭게 지시를 하고 있었다.
민후는 수풀 쪽으로 이동했으며 수풀 안에는 대기하고 있었던 말 한 필과 스턴트맨이 있었다. 민후가 말 위에 올라섰다.
곧 신호가 들릴 것이다.
확성기를 켜는 소리가 났다.
“액션!”
소리와 함께 민후는 동선을 타고 내달렸다. 본래의 장면은 수장이 겨눈 이군에게 활을 겨눈다는 것이었고, 한이가 쏜 화살에 시위가 잘리면서 말에서 떨어져 이군의 검에 죽게 되는 것이다.
활시위가 잘리는 장면의 경우 특수효과를 이용해 진행할 것이다.
“이랴! 이랴!”
민후는 말을 타고 나서면서 활시위를 계속해서 당겼다. 단, 그의 앞으로는 과녁이 존재했다. 그는 과녁을 향해서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카메라는 과녁을 피해서 촬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활시위를 당겨서 활을 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누군가 혹여 다칠 수도 있는 노릇이기 때문이었으며 더군다나 민후는 현재 말에 오른 상황이었다.
말 위에서 활을 쏜다. 무척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민후가 말을 타고 나서면서 활시위를 당기고 쏘는 장면만 한 시간이 넘게 반복 촬영되었다. 무척 중요한 장면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엑스트라들은 그 시간에 앉아서 지켜보며 쉬고 있었는데, 말을 타고 있음에도 과녁을 향해서 화살을 쏘며 맞히는 민후를 놀라며 바라보고 있었다.
민후가 말을 타고 달려나가는 신이 끝난 후에는 전투 신이 촬영되었다.
무열과 민후가 청나라 병사들과 치열하게 대치하는 장면이었다. 아무래도 전투 신이 많아서 평소보다도 신을 짤막하게 잡고 촬영할 수밖에 없었다.
엑스트라들은 배우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1-3초면 볼 수 있는 장면을 두세 시간 반복 촬영하는 것을 보면서 ‘쉬운 일이 아니구나’라고 새삼 느끼고 있었다.
이내, 배우들 분량이 끝이 나고서야 엑스트라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우리도 나갑시다!”
한휘의 외침에 엑스트라들은 미리 이야기를 맞춰놓은 대로 ‘와아아!’ 하면서 소리를 지르며 청나라 병사들을 제압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카메라들은 주로 능숙하게 합을 맞춰 본 무술팀 인원들을 집중적으로 촬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엑스트라들의 촬영 신을 끝내기 전에 해가 져버렸다. 해가 지면 상황이 맞지 않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촬영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엑스트라들과의 촬영을 3일 정도로 넉넉하게 잡고 있었기에 크게 상관은 없었고, 이곳에 온 엑스트라들에게도 3일을 촬영하고 대신 숙식 제공을 말해놓았던 바가 있었다.
촬영 장비는 걷어 임시로 쳐진 천막 밑에다가 깔아놓기로 했다. 내일 날씨가 창창하다니 괜찮을 것이다.
어느덧 봄이 되었다. 민후의 나이 서른여섯, 민주는 두 살이 되었다. 그와 더불어서 최종무기 활 영화 촬영도 거의 막바지에 이르는 중이었다.
최종무기 활 영화 촬영을 하면서 전국 곳곳을 누빈 것 같았다. 전북의 편백나무 숲에서부터 군산의 비응도, 아차산, 경기도의 비둘기낭 폭포, 그리고 마지막 목적지는 충남 태안의 신두리 해안사구였다.
신두리 해안사구는 바람이 빚어놓은 모래언덕을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넓게 펼쳐진 모래언덕과 그 뒤로 뻗어진 산이 높게 솟아 있었고, 통보리사초, 모래지 치, 갯완두, 갲매꽃 등 희귀식물들이 분포한 곳이었다.
신두리 해안 사구는 빙하기 이후 약 1만 5천 년 전부터 서서히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강한 바람에 모래가 해안가로 운반되면서 오랜 세월을 거쳐 만들어진 모래언덕이었다.
모래언덕을 넘어서 나가면 넓게 펼쳐진 해안가를 찾아볼 수도 있는 곳이었다.
애석하게도 해안 사구의 며칠은 촬영 팀의 것이었기에 일정 구역은 통제가 이루어졌다.
가장 마지막 엔딩 신, 쥬신타와 한이의 마지막 대결이었다. 그리고 승자는 없었다. 쥬신타도, 한이도 죽는다.
사는 이는 주인과 이군뿐이었다. 그러나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장면이 나오기도 할 것으로 추정된다.
다양한 촬영 장비가 세팅된다. 배우들의 경우 천막이 쳐지고 플라스틱 의자와 나무 탁자가 놓인 곳에서 조촐한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민후는 숨죽여서 있었다.
문채은과 유승용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또다시 티격태격했다. 말이 티격태격이지, 채은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지만, 표정만은 아니었다. 잔뜩 토라진 듯하다.
채은이 민후에게 계속 이야기를 꺼내며 깔깔거리며 웃자, 시나리오를 훑어보던 유승용이 ‘조용히 좀 해라, 채은아. 왜 이렇게 입을 쉬지 못해서 안달이냐?’라고 말한 것이다.
영화 촬영을 하면서 두 사람이 만날 때마다 채은은 승용에게 꾸중을 듣는 듯하다. 다행인 점이라면 승용과 채은의 신은 겹치는 것이 거의 없었다는 점.
그러나 채은이 자주 촬영장에 놀러 와 시끄러운 입을 놀렸기에 그때마다 한 소리씩 듣고는 했었으며 항상 입이 삐쭉 나오고는 했다.
“채은 씨, 여기요.”
양 감독이 채은을 불렀다. 그나마 어색한 기운을 벗을 수 있는 때였다. 양 감독은 직접 채은을 봐주기 위해서 이곳 태안까지 동행해서 왔다.
그녀를 봐준다는 의미는 그녀가 이번 신에서 활을 당기는 장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속성으로 약 1주일간 자세만 배웠다. 그 오빠에 그 여동생이라고.
그녀 역시도 활에 뛰어난 일가견을 가진 여성이었고, 한이의 위험을 그녀가 활을 쏨으로써 구해주는 장면이 있었다.
“시나리오를 보니까. 이렇게 쥬신타 쪽을 겨냥하다가 오른발을 반 바퀴 돌리시면서 그대로 한이 쪽으로 겨냥하는 것으로 위치를 바꿔야 해요. 발과 상체만 움직이시고 팔은 움직이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렇게요.”
양 감독은 채은이 아무래도 여성이었기 때문인지 더욱더 세심하게 설명을 해주면서 오른발을 반 바퀴 돌려 몸을 트는 것까지 보여주었다.
채은이 고개를 끄덕이며 활을 잡았다. 시위를 당긴 그녀는 그의 말처럼 몸을 반 바퀴 돌려서 곧 다른 쪽을 겨냥했다. 양 감독이 ‘잘하네요.’라고 하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입이 삐죽 나와 있었던 그녀의 얼굴에 다시 웃음꽃이 핀다.
“봤지!? 봤지!? 내가 이런 사람이야. 가르쳐주면 한 번에 배운다고.”
민후는 한숨을 푹 하고 쉴 뻔했다. 꾸중 들은 지 5분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다시금 입이 빨라졌다. 등 뒤에서 시나리오에 집중하던 승용이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신이 나서 떠든다.
“민후 씨는 가슴에서 화살을 뽑는 장면을 찍어야 해요. 어쩌겠어요. 무척 고통스럽지만 동생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어야죠.”
“네.”
박 감독은 마지막 촬영인 만큼 신중함에 신중함을 더하려는 것 같았다. 민후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승용에게는 ‘가소롭다는 듯이 조롱하듯 하는 게 중요합니다.’라고 박한민 감독은 강조했다.
모든 배우에게 강조사항들을 말해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촬영이 시작되었다.
이군은 주인이 올라있는 말의 고삐를 잡고 말을 이끈다. 한이와 만나기로 하였던 장소. 그곳으로 무사히 올 수 있었다. 한이는 무사히 돌아오는가. 그것이 두 사람의 주된 관심사였다.
그때였다. 멀리에서 갈대숲을 가로지르면서 말을 타고 달려오는 한 남성이 보였다. 주인은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오빠, 자신의 유일한 혈육인 한이였다.
“오, 오라버니!”
주인은 기뻐하는 기색으로 말에서 내린다. 한이도 그제야 주인과 이군을 발견하고는 화색을 보인다. 그러나 높은 언덕. 부하들을 모두 잃고 홀로 살아남은 쥬신타는 한이를 발견한다.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한이의 화살에 자신의 부하가 열댓이 넘게 죽었으며 자신이 아끼는 왕자를 잃었다. 단 한 사람, 정체를 알 수 없는 활의 신궁 한이 때문에 말이다.
그는 활시위를 당긴다.
“이, 이보시오!”
이군은 언덕에서 활시위를 잡아당기는 쥬신타를 발견한다. 그러나 주인과 한이는 재회의 기쁨에 그것을 가늠하지 못한 듯싶었다. 등에 둘러메진 활을 앞으로 내밀며 이군은 활을 잡는다.
주인도 그제야 쥬신타를 발견한다.
“오라버니! 안 돼요! 피해요!”
그녀는 다급하게 외친다. 그러나 그에게 잘 들리지 않는 듯싶었다. 또한, 서로의 거리가 너무 멀어 그녀가 다급하게 팔을 휘휘 흔드는 것이 반기는 거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군은 활시위를 당기지만 부상으로 인해 힘을 잘 쓰지 못한다. 그의 활을 주인이 빼앗아 든다. 그녀는 서둘러 활시위를 당긴다.
쥬신타를 겨냥한다. 쏘는 게 옳은가? 아니, 알 수 없는 적의 자세는 훌륭했고 신중했다. 이제 곧 활시위를 당길 터. 자신이 적을 잡을 수는 있을지언정, 오빠를 살릴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순간 몸을 반 바퀴 틀어 한이를 향해 활을 겨눈다. 그제야 한이는 의아한 장면을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뜬다. 분명 무언가 잘못되고 있었다.
그 순간, 쥬신타의 활시위가 놓이며 화살이 빠르게 머리를 노리고 날아간다. 주인의 활 역시 시위가 놓이면서 화살이 날아간다.
주인의 화살이 먼저 한이에게 당도했다. 그녀의 목표는 말의 목, 목에 화살이 박힌 말은 ‘히히히힝!’ 거친 울음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그리고 쥬신타의 화살은 머리를 아슬아슬하게 비켜 나간다.
바닥으로 쓰러진 한이는 머리가 새하얘지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적이 한이에게 달려가는 것이 보인다. 칼을 뽑아 든, 주인 역시 하나뿐인 혈육 한이를 지키기 위해 내달린다.
그러나 그것이 화근이었다. 한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주인이 바로 중앙에 있었고 쥬신타와 자신이 주인을 가운데에 두고 활시위를 서로에게 겨누고 있었다.
쥬신타의 화살은 강하다. 단숨에 주인의 가슴을 뚫고 자신의 가슴까지 뚫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화살은 아니었다. 지금 자세로 보아서는 자신의 화살이 직면으로 뻗어 나가 쥬신타를 맞출 방법은 없었다.
바람이 분다. 애석하게도 한이 쪽에게로 거센 바람이 분다. 즉 자신의 활은 바람의 힘으로 쏜다고 한들 그 위치가 바뀔 것이고, 반면 쥬신타의 화살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결국, 이 계집 하나 살리자고 그렇게 필사적이었나? 내 부하들 모두가 죽었어. 너도 이 계집이 죽는 모습을 두 눈 똑똑히 뜨고 지켜보거라.”
쭈우욱!
서로가 활시위를 당긴다. 한이는 일단은 그를 경계하여야 했다. 꼭 바람이 자신 편이 아닐지라도, 그녀가 가운데에 있으므로 장애물이 될지라도 그녀를 살려야 했다.
파앗!
파앗!
두 사람이 동시에 시위를 놓는다. 하지만, 쥬신타의 화살은 주인의 어깨를 스치며 그대로 한이의 가슴에 박힌다.
반면 한이의 화살은 쥬신타의 머리를 아슬아슬하게 비켜 나간다.
바닥으로 무릎을 꿇는 한이. 비명을 지르는 주인. 그리고 승자라고 생각하는 쥬신타.
“네가 졌다. 그리고 네 계집도 죽을 것이다. 아끼는 자가 죽는 슬픔을 너도 한번 느껴 보거라.”
쥬신타는 조소를 머금는다. 한이의 정신은 흐릿해져 갔다. 그러나 주인을 죽이겠다는 이야기에 그는 정신을 차린다. 그럴 순 없었다.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아끼는 자신의 여동생이었다.
죽게 둘 순 없었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화살 한 발이 남지 않았다. 남은 것은, 가슴에 박힌 화살뿐.
“끄아아악!”
그는 가슴에 박힌 화살을 뽑아 든다. 그 순간, 위험을 직시한 쥬신타는 동생 주인을 인질로 잡아 목에 칼을 가져간다.
“동생도 함께 죽일 셈이냐?”
“하아하아.”
한이는 힘겹게 활시위를 당긴다. 온 힘을 담는다. 이를 최대한 악물었다. 팽팽하게 당긴 활시위. 바람이 다시금 자신 쪽으로 분다. 그러나 두렵지 않았다.
그는 화살을 잡은 손을 세게 돌린다. 그리고 놓는 순간이었다.
날아간 화살은 한 번 퉁겨지듯이 물결치며 날아가 궤도를 바꾸어 단숨에 쥬신타의 목을 꿰뚫는다.
“무, 무슨…….”
쥬신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이를 본다. 흐릿해져 가는 시야에 한이의 마지막 말이 들린다. 비틀거리는 한이는 결국 바닥으로 쓰러져 내린다.>
바닥으로 쓰러진 민후에게로 채은이 다가와 울음을 흘린다. 그녀는 한이가 주었다고 생각되는 꽃신을 들어 올린다. 민후는 픽 웃는다.
“다 큰 줄 알았더니, 아직 덜 컸구나.”
“으흐흑, 오라버니……!”
그녀는 오열한다. 그는 몇 마디를 더 뱉지 못하고 결국 스르르 눈을 감는다. 채은은 오열한다. 정말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사람을 잃은 것 같은 눈물이다.
그녀는 한참이나 눈물을 흘린다.
“OK!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으흐흐흑! 크흐흑! 오라버니이이!”
곧이어 감독의 OK 신호와 함께 스태프들의 수고했다는 이야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촬영, 민후도 다른 배우들도 정말 무척이나 힘이 들었던 촬영이지 않았던가 싶었다.
민후는 몸을 일으켜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멱살을 잡은 채은이 놔주지를 않았다.
“으흐흐흑! 오라버니 죽지 마아!”
“야야! 채은아, 나 안 죽었어…….”
“으흐흑! 죽지 말라고 바보야!”
스태프들과 감독이 의아한 표정으로 다가온다. 채은은 여전히 울음을 흘린다. 그러나 곧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민후는 볼 수 있었다.
“정신 차려! 응!?”
채은이 갑자기 민후의 가슴팍을 양손으로 온 힘을 담아 퍽퍽 치기 시작했다. 그 의도를 이제야 알아챌 수 있는 민후였다.
“쿨럭!”
민후가 기침을 해대도 그녀는 놔주지를 않았다. 그러더니 멱살을 잡고는 흔들어댄다.
“네가 꿔간 내 돈 5천 원 주고 가! 으흐흑!”
“푸하하하!”
“하하하! 민후 씨, 채은 씨한테 5천 원 빌렸어?”
“아니, 내가 언제 돈을 빌렸다고……!”
마지막 이어진 채은의 말에 스태프들과 박 감독이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민후로서는 어처구니가 없고 황당했으나, 곧 그도 황당해서 웃음을 흘렸다.
1년 가까이 되는 최종무기 활의 촬영이 드디어 마무리되었다. 본래에는 쥬신타의 목에 화살이 꽂히고, 한이의 중요한 명대사가 존재했으나 이미 그 부분은 녹음 처리로 끝낸 상황이었다.
채은이 어느덧 몸을 벌떡 일으켜 ‘아, 배고파!’ 하면서 후다닥 도망갔다. 바닥에 누운 민후도 드디어 끝났다. 라는 생각에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면서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