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마지막 영약
민후는 신혼여행을 무사히 치를 수가 있었다. 하와이에서의 신혼여행은 만족스러웠다. 하물며 더웠던 탓인지 피부가 검게 그을렸다. 그런데 오히려 더 좋았다.
최정배라는 역할은 하얀 피부보다는 까무잡잡한 피부가 더 어울릴 테니 말이다. 신혼여행을 하고 오고 곧바로 입주를 했다. 가구도 모두 새 것이었으며 가구에 들어가는 값만 하여도 어마어마하게 들어간 거로 알고 있었다.
집을 마련하는데 민후가 순수하게 들어간 금액이 30억을 넘었을 정도였다. 그만큼 평수가 넓었다. 80평 가까이 되었으며 시설 역시 최고였다. 모든 것은 버튼 하나면 해결할 수 있었다.
욕실은 마치 작은 목욕탕을 가져다 놓은 것처럼 컸고, 거실에서는 투명하고 단단한 유리를 통해서 서울의 야경을 볼 수 있었다.
한강과도 가까웠기에 밤중에 두 사람이 모자를 쓰고 함께 걷기에도 적적할 것이었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에 새로운 식구가 생기게 되기도 할 것이다. 바로 윤하와 강민후의 아이 말이다. 두 사람 모두 건강하고 특히나 민후의 성욕은 항시 넘쳐흐르니 머지않은 일일 것이다.
실제로 본래의 최강호는 아이를 갖지 못했다. 아내가 임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었으나 결국 그녀는 다낭성난소증후군 판정을 받았었다. 때문에 자녀가 없었고 입양까지 고려하였었지만 결국 최강호의 무심함 때문에 이혼으로 이어지는 길이 되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꼭 아이를 낳고 싶었다. 자신과 윤하를 닮은 새로운 생명이라. 벌써 기분 좋은 웃음이 지어진다.
“아직도 공부해?”
“응. 아무래도 손남원 선배님이 계시니까 더 잘해야지.”
민후는 홀로 거실에서 중얼중얼 대본을 보면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대사 연습을 해보는 둥했다. 밤이 늦었다. 자다가 깼던 윤하가 물을 마시러 나왔다가 묻는 말에 그는 태연하게 말했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촬영이었다. 실상 현재 이미 손남원이나 촬영팀은 촬영에 한창이었다. 그러나 앞선 부분을 찍고 있는 것이었으며 민후의 경우는 내일부터 투입하면 되었다.
첫 신은 딱히 어려운 것은 없었다. 단지 차를 타고 손남원과 함께 이동한 후, 그와의 마약 거래를 제안하는 모습이다.
“그래도 빨리 자야지. 시간이 몇 시인데.”
“벌써 2시네? 한 3시까지만…….”
“빨리 자야지.”
시계를 확인했던 민후는 한 시간만 더 하고 자겠다고 말하려다가 그녀가 가운을 슬쩍 걷어내자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러고는 그대로 그녀의 몸을 안으면서 침대로 향했다.
촬영은 대부분이 부산에서 진행되는 식이었다. 서울에서 왔다 갔다 하는 데에도 6시간은 기본적으로 잡아먹기 때문에 촬영을 하는 동안 주로 부산에서 함께 투숙할 예정이었다.
즉 밤샘 촬영을 마다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촬영을 쉴 때는 잠을 깊이 자고, 촬영을 할 때는 촬영장에서 일을 한다. 단순한 반복패턴이었다.
불편한 것이 있다면 윤하와 신혼이라는 점인데 2주일에나 한번 집에 갈까 말까 한다는 것이다. 물론 윤하도 윤하 나름대로 바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신혼을 즐길 수 있는 여유는 두 사람에게 거의 없는 셈이라고 보아도 무방했다.
4시간을 훌쩍 차를 타고 내려온 민후는 촬영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촬영팀은 보통 부산 중앙동 위주로 촬영을 할 예정이었으며 민후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부산항으로 왔다. 부산항에는 벌써부터 촬영팀 인원들이 장비를 세팅하며 주위의 인원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손남원의 경우는 촬영장 한 편에 낚시용 의자를 펼쳐놓고 앉아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민후는 한 사람 한 사람 인사를 하며 촬영장에 들어갔다. 손남원이 민후의 인사를 받았다.
“연습은 많이 했나.”
“예.”
그의 물음에 민후는 빙긋 웃었다. 어느덧 의상팀 인원이 민후에게 옷을 가져왔다. 넓은 통의 정장 바지에 하얀색 와이셔츠, 가죽 재킷과 갈색빛이 도는 선글라스였다.
의상을 갖춰 입은 민후는 의상팀 여성이 붙여준 콧수염에 코를 씰룩였다. 인중이 조금 가려웠다.
“영락없이 조직폭력배인데?”
손남원의 장난스러운 웃음에 민후는 쓰게 웃었다. 자신도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고 나왔다. 정말 그의 말처럼 영락없는 조직폭력배의 모습이었다.
이 정도면 시청자들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하리라는 생각이 섰다. 촬영장에는 80년대에나 타고 다녔을 차량도 있었다. 아마 이 차량이 지금으로 치면 아우디 차량 정도의 값어치는 하지 않았을까 싶다.
민후와 남원은 시간이 잠시 남아 대본을 맞춰 보았다. 남원의 연기는 가히 소름이 돋을 정도로 좋았다. 그런데 민후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남원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연기 실력이 정말 좋은 녀석이야. 저 나이에 저런 연기라니…… 내 나이 정도 되면 난 명함도 못 내밀겠어.’
그는 쓰게 생각했다. 그만큼 민후의 연기력은 좋았다. 이제 겨우 서른한 살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물론 20살 때부터 연기를 시작했던 그의 작품을 볼 때마다 젊지만 괜찮은 녀석이라는 생각이 항시 스치기는 했었다.
그러나 이리 마주해보니 실제로 이제까지 함께 연기했던 친구 중에서 거의 톱에 꼽을 정도의 실력자인 것 같았다.
한편으로 민후는 최강호로서, 또 다르게는 강민후로서 남원에게 밀리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최강호일 때는 두 사람이 거의 쌍벽을 이루던 사이였다. 현재는 강호로서가 아닌 민후로서 그와 함께 작품을 하게 되었지만, 그에게 밀리지 않으리라.
“안녕하세요, 선배님! 안녕하세요!”
“어어, 그래.”
“강민후 씨도 또 뵙게 되어서 무척 영광입니다.”
“네, 어서 오세요.”
인사를 한 이는 윤성윤이라는 이였다. 극 중 이창우라는 역할을 맡아서 연기하게 될 것인데, 이창우는 실질적인 최정배가 이끄는 조직의 2인자였다. 실상 감독이나 다른 배우들은 작게는 믿음이 안 가기도 하는 배우였다. 그는 이번 작품이 첫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꽤 비중 있는 이창우라는 역할에 캐스팅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윤 감독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이창우라는 역할과 흡사했고 더불어서 오디션 때 상당히 호평을 받는 연기를 보였다는 것이었다.
“사실 제가 강민후 씨 팬입니다.”
그는 민후의 옆으로 와서 실실 웃었다. 분명 이창우라는 역할은 꽤 무섭고 거친 이였다. 그러나 실제 윤성윤은 전혀 다른 인물인가 보다.
아무래도 첫 작인지라 불신이 조금 존재하기는 했으나 대본 리딩 때 꽤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이였기에 그 때문에 촬영이 지체되거나 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촬영이 시작되었다.
부산항에서의 촬영이 완료된 후 곧바로 이동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낡고 허름한 집이었다. 평소에도 부산항에서 일하시는 노부부가 살고 있는 곳이었는데, 촬영팀이 협조를 구하여 촬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문제는 워낙 좁고 험한 곳이라 트럭만 한 크기의 촬영 장비가 들어오지 못해 촬영팀 인원들이 들어올 수 있는 곳까지만 들어오고 일일이 장비를 옮겼다.
민후나 다른 배우들도 한몫씩 거들어 전부 땀이 뻘뻘 날 지경이었다.
이내 허름한 집안 내부에서 촬영 세팅에 들어갔다. 촬영 소품으로 주류와 안주 등을 가져왔다. 민후는 마약을 숟가락에 얹어 녹이는 행위를 하며 코로 맡는 모습을 연출하였다.
“니 인마! 할배를 봤으면 니 어찌해야 되노. 니 할배를 봤으면 아이고! 하면서 절부터 해야 되는기 아이가.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고.”
확실히 손남원의 연기는 좋았다. 술에 취한 듯한 연기를 하는 것이었는데 신이라도 들린 것처럼 몰입감이 좋았다. 덩달아 민후도 몰입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곧바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기 위해서 몸을 움직였다. 카메라가 입구 쪽을 집중적으로 촬영한다. 충렬공파 등을 운운하면서 술에 취해 정배에게 행패를 부린 익환을 이창우가 폭행을 해야 하는 장면이었다.
윤성윤은 난감한 표정이었다. 이제 막 이곳에 발을 디딘 그였지만 손남원이 어떤 배우이고 얼마만큼 높은 곳에 있는 선배인지 안다. 그러한 그를 폭행해야 했다.
요즘의 영화는 대부분이 실제로 때린다. 몰입도를 위해서였다. 물론 간혹 아닌 경우도 있었지만, 그럴 경우 대부분 화려한 액션이 들어간 영화들이고 수차례의 합을 맞춰서 배우가 옆으로 고개를 틀면서 피하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이 영화 자체가 화려한 영화도 아니고, 손남원 자체도 터프하게 실제로 때리면서 가자고 운운하였다. 이제 겨우 첫 촬영인 윤성윤으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곧 촬영 준비에 들어갔다.
“편하게 생각해라, 내가 돈 떼어먹은 놈이라 생각해.”
촬영 시작 전 입구 뒤에서 대기했다. 성윤이 남원의 머리를 슬그머니 움켜쥐었을 때 남원이 한 조언이었다.
“나와라.”
짝! 짝짝
“억! 억! 악! 와이카노”
“아니, 사람을 왜 그리 때리노! 그만 좀 하소!”
짝!
“억!”
“서, 선배님, 괜찮으십니까?”
“NG. 성윤 씨, 몇 번째입니까. 조직폭력배가 사람 때리면서 망설이는 거 보셨습니까?”
윤 감독은 답답하다는 듯이 대본을 던졌다. 성윤이 남원을 손바닥으로 짝짝 때리다가 마지막에 너무 세게 때렸다는 듯이 냉큼 다가가 그의 안색을 살핀 것이다.
남원의 볼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처음 실전에 투입된 이가 찍어야 할 장면이 사람을 때리는 장면이다. 하물며 그 대상이 한참 선배인 손남원이었다. 망설여질 수밖에 없었다.
“잠시 쉬었다 갑시다.”
윤 감독이 답답했던 듯 한 말이다. 남원의 한쪽 뺨이 붉어졌다. 그러나 그는 전혀 내색하지 않고 의자에 앉았다.
“괜찮으세요?”
“뭐, 그렇지. 성윤아, 이리 좀 와봐라.”
“예.”
성윤은 죽을 맛인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 때문에 몇 차례 NG가 난 상황이었고 특히나 손남원이 무서웠다. 손남원은 인자한 선배로도 소문났지만, 화가 나면 불같은 성격으로도 유명했다.
“내 뺨 보이나!? 응? NG만 네 번째다. 배우로서 연기하는 것에 두려워하면 안 된다. 니는 지금 윤성윤이 아니라. 이창우다. 최정배의 바로 밑의 동생. 그렇게 두려워서는 너 절대 연기자로 성공 못 한다.”
“……네.”
손남원의 충고는 뜨거웠다. 그는 부랴부랴 소리를 치면서 그에게 호통을 쳤다. 다시 한번 NG가 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목소리였다.
첫 촬영에 호되게 혼나는 성윤은 죽을 맛이기도 하였지만, 마지막 남원의 성공 못 한다는 말에 더욱 가슴이 저렸다.
“가봐라.”
남원은 꼴도 보기 싫다는 목소리였다. 성윤이 풀이 푹 죽어 다른 곳으로 갔다. 민후는 심했던 건 아닐까 하는 모습이었지만 남원은 빙긋 웃는다.
“저래야 얘가 뭘 느끼는 게 있지. 안 그럼 나 오늘 맞아 죽는다.”
뺨 한쪽이 붉어질 대로 붉어진 남원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는다. 일부러 심하게 말했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단순히 뺨을 맞는 것에서 두려워서가 아니라, 후배에게 진정한 일침을 가한 것이었다.
얼마 후 다시 촬영 준비에 들어갔다.
남원의 머리채를 조심스레 잡은 성윤의 머릿속에는 성공하지 못한다는 말이 맴돌고 있었다. 그의 나이 이제 서른넷. 너무 늦은 나이의 연기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실패한다면 자신은 더 이상 막막하다. ‘에이 씨, 까짓거……!’ 어차피 딱 한 번이면 된다는 생각이 섰다.
“큐!”
시작 신호가 들리자 그는 남원의 머리를 굳게 움켜쥐고는 질질 이끌었다.
“나와라, 개시끼야.”
남원의 머리채를 잡은 손에 조금의 힘을 주는 성윤이었다. 손남원은 직감이라는 게 있었다. 이번에는 녀석이 마음을 굳게 먹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컷에서 끝나리라고 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문을 박차고 나오면서 성윤은 남원의 뺨을 수차례 때리기 시작했다.
“악! 윽! 무, 뭐요!”
짝짝!
“고, 고만 좀 하이소! 사람을 우찌 그리 때립니꺼!?”
성윤은 멈추지 않고 남원의 뺨을 때렸다. 그는 머릿속으로 암시를 건다. 지금 나는 성윤이 아니라 이창우다. 확실히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하니 연기 하는 것이 한결 수월해졌다.
“마, 그만해라.”
한편에 서 있던 민후의 차례가 드디어 다가왔다. 흐름이 무척 좋았다. 자신이 이번 컷에서 흐름을 놓치면 안 되었다.
“히익! 허억! 허억.”
뺨을 수차례 맞은 손남원은 비틀거리면서 반쯤 풀린 눈으로 두려워하며 민후를 바라본다. 정말 감탄밖에는 나오지 않는 실력자가 바로 손남원이었다.
“뭐하러 이런 데서 일 얘기 말고 딴 얘기를 합니꺼.”
“OK!”
감독의 OK 신호가 드디어 떨어졌다. 윤도현 감독은 모니터를 확인하면서 무척 좋게 나온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윤성윤에게 가장 먼저 다가간다.
“이렇게 잘할 수 있는 걸 왜 그렇게 망설였습니까. 아까 화낸 건 미안합니다.”
윤 감독은 미안한 기색을 드러내며 성윤의 어깨를 두들겼다. 성윤은 여전히 씩씩거리고 있었다. 남원은 담뱃불에 불을 붙여서 한 모금 깊게 빨면서 그에게 다가갔다.
“죄, 죄송합니다, 선배님.”
“연기란 건 네가 그 사람이 돼 보는 거다. 네가 날 때리고 싶어서 때렸나.”
“때리고 싶어서라뇨. 제가 어떻게 선배님을…….”
“그럼 된 거다. 미안해하지도 말고, 자책해서도 안 된다. 그게 진짜 연기자다. 너 악역이랑 주인공이랑 영화에서 싸운다고, 실제에서도 싸우는 거 봤나? 똑같은 거다.”
남원은 작은 웃음을 지으면서 그를 위로했다. 남원은 민후에게 손짓했다. 그의 앞으로 성큼 다가간 민후는 공손하게 섰다.
“민후야, 잘 봐둬라. 성윤이 이 녀석도 조만간 뜨는 배우가 될 거야. 눈이 좋거든.”
“네, 선배님.”
남원의 말에 민후는 빙긋 웃었다. 그 역시도 윤성윤이라는 배우를 보면서 상당히 좋은 눈빛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실상 성윤은 잘생긴 얼굴이 절대 아니었다.
어떻게 본다면 조직폭력배 이창우와 같은 얼굴 형상을 가졌다. 체형은 무척 말랐으나 험상궂게 생겼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민후나 남원이 본 성윤은 성공할 것 같다는 느낌이 팍 들게 하는 배우였다.
민후와 남원이 쉬기 위해 이동하고 홀로 남은 윤성윤은 남원의 성공할 거 같다는 말에 히죽히죽 웃음이 나오려 하고 있었다.
손남원이라는 배우한테 성공할 거 같다는 말 자체를 들었다는 것이 그에게는 날아갈 것 같은 기쁨으로 다가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는 다시 한번 ‘열심히 해보자’라고 자신을 다독이는 계기가 되고 있었다.
* * *
오연훈이 출소했다. 벌써 1년이 훌쩍 넘은 일이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너무나도 많은 변화가 찾아와있었다. 그가 본래 거주했던 화려했던 오피스텔이 아니었다. 황제 소속사에서 건 민사소송에서 확실시하게 오연훈은 패하고 수십억을 잃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징역을 선고받고 들어가 옥살이를 면치 못하게 되었다.
이제 방송에서 자신을 찾는 일은 오로지 ‘출소한 오연훈, 요즘 어떻게 생활하나’ 등의 기사들이나, 혹은 자신을 취재하러 오겠다는 VJ들뿐이었다.
당연하게도 모두 거절했다. 소송에 패하여 수십억을 잃었던 그는 그래도 웬만큼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돈은 남아있었다.
실상, 새 출발이라 하면 연예인의 길은 못했다. 자신은 완전하게도 매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카페나, 혹은 음식점, PC 방 등을 운영할 수 있는 돈이 그에게 분명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를 않았다.
참으로 한심한 사람이 바로 오연훈이었다. 몇억 남은 것을 탕진하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는 마약을 시작했다. 한 통, 20여 알이 들어있는 마약이 600-700만 원 정도의 값어치를 한다. 그러한 마약을 시작한 오연훈은 빠르게 나태해져 가고 빠르게 죽어가고 있었다.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았고, 그는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파고 있었다. 현재는 돈도 거의 떨어져 가는 실정이었던지라 마약도 들이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는 자신의 허름한 원룸 안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자신이 테이블 위에 펼쳐놓은 강민후에 관한 기사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으으으으…… 으으으…….”
춥다. 몸의 힘이 완전히 떨어진 것 같았다.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았다. 최고의 주가를 자랑했던 자신이 어느새 마약 중독자까지로 추락해버린 상황이었다.
-배우 강민후, 할리우드의 최고의 제작비 투입 예정인 지아이오 팀 합류.
-월드스타 강민후, 채닝 테이와 다정하게 사진 한 장.
-프로모션차 아시아 국가 순회하던 배우 강민후, 아시아 국가에서만큼은 그가 최고의 톱스타.
-배우 강민후, 영화 편당 4억에서 5억 원. 국내 최고의 몸 값 중 한 사람.
-강민후, 국내로 돌아와 받은 출연 제의만 열 개가 넘어…….
-강민후, 한윤하 행복한 결혼 생활의 시작. 우리 사랑하고 있어요.
-강민후, 한윤하 신혼여행지인 하와이에서 함께 수영복 입고 찍은 다정한 사진 화재. 황금비율.
오연훈은 스스로 망했으나 강민후는 그와 반대로 현재는 월드스타라는 이름까지도 달고 있었다. 그는 히죽히죽하면서 웃어댔다.
“나만, 으으으…… 나만 이대로 끝날 것 같아? 흐흐.”
그는 미쳐가고 있었다. 아니, 지금 그는 온전히 미쳐버렸다. 마약과 강민후에 대한 분노에 미쳐가고 있었다.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담배를 입에 물었다. 라이터를 붙이는 그의 손은 무척이나 떨리고 있었다.
안색은 무척이나 창백했고, 숨은 너무나도 거칠었다. 그는 해서는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흐흐’ 하면서 웃는 그의 시선은 주방 싱크대 위 신문지에 돌돌 말려 있는 무언가에 꽂혀 있었다.
민후는 촬영으로 인해서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최대한 학원에 갈 수 있게 노력을 했다. 자신은 엄연히 원장이었으며 그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강의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김없이 ‘범죄, 그놈과의 전쟁’ 팀을 끝내자마자 부랴부랴 학원에 와서 강의할 수 있었다. 강민후의 강의는 수강생들의 환호성을 일컬어 내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싶었다.
한때는 인덕대학교의 교수직에 재직하기도 하였으며 더불어서 연기 경력이 최강호이던 때와 강민후 이던 때를 합하면 30년을 훌쩍 넘어버린다. 그만큼 그에게 쌓인 노하우는 꽤나 탄탄했기 때문에 수강생들을 매료시키기에는 충분하지 않은가 싶었다.
민후가 학원에 없는 동안 학원을 맡게 된 이는 이백호라는 이였다.
올해 서른여덟. 본래는 한 연기학원을 운영하였었고 상당히 인지도가 좋았던 학원이다. 더불어 밑바닥부터 시작해 올라선 이백호는 그 실력과 수강생들을 이끄는 능력이 좋았다.
다른 배우들의 경우는 그들도 너무 바쁜 인사인지라 실력 있는 강사진들 중에서 자신을 대신해 맡을 만한 인원이 필요했는데 바로 이백호였다.
이백호는 무척이나 성실하게 학원의 부원장 자리를 도맡아 해주고 있었고 항상 그에게 고마워하는 민후였다.
오늘 같은 경우는 배우가 아무도 오지 않았다. 자신만 온 것이다. 그는 시간이 조금 남는 것을 확인했다. 자신도 시간이 남았고, 일요일에 껴있는 시간대에는 저녁반과 새벽반을 운영하지 않기 때문에 이참에 강사진들과 더욱 친목도 다지자는 생각에 값비싼 한우 집으로 그들을 인도했다.
술과 고기를 먹으면서 한껏 그들과 취하여 어울렸다. 강사진 이들은 강민후를 무척이나 잘 따랐다. 일단 강민후는 분명 어렸지만, 그들에 대한 대우를 확실시하게 해주고 있었으며 더불어서 원장이라는 타이틀의 권력을 남용하는 행위 또한 없었다. 그 때문에 강사진은 그를 믿고 따를 수밖에는 없었다.
후식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네가 날 안 불렀다면 난 지금쯤 라면을 먹고 있겠지. 그러나 난 지금! 비냉을 먹는다.”
이 자리에는 정수도 참여했다. 고깃집이 정수의 집 근처였기 때문에 겸사겸사해서 그를 부른 것이다. 그도 이제 슬슬 결혼할 나이가 되지 않았나 싶다.
가끔 ‘형도 좋은 여자 만나야죠.’ 하면 ‘여자가 있어야 만나지.’ 하면서 장난스레 웃는다. 말은 그렇게 하여도 정수가 너무나 바빠 여자 만날 틈이 없다는 것을 민후도 잘 안다.
자신을 위해서 스케줄이 없어도, 쉬는 날에도 발을 벗고 뛰어다니는 정수였다. 항상 고마운 그였다. 해줄 수 있는 게 많이 없어서 미안할 뿐이다.
후식으로 나온 음식들을 먹으면서 회식 자리를 끝내가고 있었다. 민후는 잔치국수를 시켜서 신 김치와 함께 먹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정수의 휴대폰이 울렸다.
딱 보기에도 방송관계자인 것을 민후는 알 수 있었다. 정수가 일어나려 했다.
“형, 식사는 마저 끝내고 통화하시지.”
“아아, 우리 엄마. 엄마하고 통화하는데 미룰 순 없잖냐.”
민후는 분명 마지막 글자인 ‘독’이라는 글자를 보았다. 어떠한 영화를 준비 중인 감독일 것이다. 그러나 민후가 미안해할 것을 알고 부모님이라고 둘러대는 그로 인해서 민후는 헛웃음만 나왔다.
담배도 함께 겸사겸사 피우기 위해 가게 밖으로 나온 정수는 담뱃불에 불을 붙였다.
“예, 감독님.”
김문중이라는 감독이었다. 평은 준수했고 나쁘지 않은 감독이었다. 자신이 준비 중인 시나리오가 있다면서 강민후의 지아이오의 시즌이 완전히 끝이 나면 함께 진행할 생각이 없냐고 제의하고 있었다.
이렇듯 현재 쉬는 기간 동안 강민후가 범죄, 그놈과의 전쟁을 촬영 중이기 때문에 그 후인 미래를 기약하는 이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하하, 우리 김 감독님…… 언제 식사 한번 같이해야 하는데 말이죠.”
정수는 털털하게 웃었다. 김 감독도 괜찮은 감독이다. 어지간히 민후를 얻고 싶은 것인지 ‘한 번만 같이하자, 박정수 씨.’ 하면서 한 수 굽혀 들어왔다.
어느덧 자신이 맡고 있는 배우가 이렇듯 크게 컸나 싶다.
담배를 모두 피우고 재떨이에 버린 정수는 슬슬 통화를 마무리하고 들어갈까 했다. 그런 그의 눈앞으로 가게로 걸어오는 한 사람이 보였다. 보라색 후드 집업에 청바지를 입은 남성은 후드를 머리끝까지 올리고 그곳에 또 모자까지 쓴 상황이었다.
모자를 푹 눌러쓴 상황인지라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정수는 눈살을 찌푸렸다. 뭔가 심상치가 않은 기운이 풍겨졌다. 그리고 더욱 그를 긴장하게 만드는 것은 오른손이 후드 집업 속 안에 들어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제가 다음에 전화드리겠습니다.”
정수는 서둘러 통화를 종료했다. 일단 앞의 이는 무척이나 수상했다. 그러나 지금 건드리면 큰일 날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 자신과 무관한 사람일 거라고 여겼다. 그가 들어가면 곧장 112에 전화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정수의 옆을 지나치는 순간이었다. 정수는 그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창백한 안색에 많이 여윈 얼굴이었지만 분명했다. 오연훈이었다.
오연훈이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정수는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이, 이봐요, 오연훈 씨!”
그는 막아야 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위험하다고도 본능은 외쳤다. 그러나 그의 손은 오연훈 등의 옷깃을 거세게 움켜쥔 상황이었다.
“당신 민후한테 접근금지 처분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그는 등 뒤로 식은땀이 흥건하게 맺히고 있었다. 그러나 이 오연훈이 민후에게까지 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섰다. 분명 녀석은 사과 따위를 하기 위해 민후를 만나러 온 것 같지는 않았다.
“다, 당신 약했어?”
고개를 천천히 든 오연훈의 얼굴은 자세히 보니 눈이 반쯤 풀려 있었다. 더불어서 창백한 안색과 부르르 떨리는 몸. 마약을 접한 적이 없는 정수도 그가 마약을 했다는 사실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너, 너 이 새끼…….”
오연훈은 정수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자신의 타킷은 정수가 아니다. 그를 뿌리치고 가려고 했다. 정수는 필사적으로 들어서지 못하게 막았다. 자신은 강민후의 매니저였다. 그를 지켜야만 했다.
“당신 지금 제정신으로 온 거 아니지? 응? 거기 감춘 거 뭐야, 정말 인생 종치고 싶어?”
“종? 흐흐, 이미 칠 대로 쳤지, 너하고 강민후 새끼 때문에.”
정수는 황당했다. 어째서 그것이 자신들 때문이란 말인가. 그의 행실이 분명히 잘못되었고 그로 인해 비롯된 일들이다. 그가 강민후와 자신 때문이라고 언급한 순간에서 정수는 확신했다. 그는 강민후를 해코지하게 위해서 온 것이다.
“알았으니까 일단은 진정…….”
정수는 그를 진정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말을 채 끝내기 전이었다. 그는 눈을 크게 떴다. 그의 눈앞으로 오연훈이 히죽히죽 웃으면서 부르르르 몸을 떨고 있었다.
천천히 정수의 시선이 배 쪽으로 떨구어졌다. 그곳에는 오연훈이 숨기고 있었던 정체불명의 것이 배의 좌측 부분을 파고들었다. 칼이었다. 날이 시퍼렇게 오른 칼.
깊게 들어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건장한 남자라고 할지라도 배에 칼이 들어오는 순간, 모든 힘을 잃고 무력해진다. 털썩하고 그는 바닥으로 쓰러졌다.
“으, 으으으……!”
그가 가게의 문을 열기 위해 팔을 뻗었다. 정수의 손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안 돼, 민후는 안 돼…….”
정수는 의식이 흐릿해져만 가고 있었다. 민후에게 가게 둘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다리에 힘을 주어 그의 손을 풀어버리고는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간다.
정수는 심호흡을 크게 쉬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재빠르게 휴대폰을 꺼내든다. 휴대폰을 꺼내든 그는 2번 버튼을 꾹 눌렀다. 민후에게로 전화가 걸렸다.
민후가 휴대폰을 받기까지 기다렸다. 그러나 그의 정신이 온전히 버텨주지를 못했다. 그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후식까지도 먹은 후 앞으로 강사들이 해주었으면 하는 일들과 학원의 진행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슬슬 자리가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다. 한창 이야기에 빠져있을 때 테이블에 올려놓았던 휴대폰이 진동했다. 그는 다름 아닌 정수였다.
민후는 고개를 갸웃했다.
바로 앞에 통화하러 나간 사람이 왜 전화를 했는가 싶었다. 일단은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그를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정수 형 좀 찾아올게요.”
민후는 무슨 일이 있나 싶었다. 아직 벌어진 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기에 다급하거나 한 것은 없었다. 일단은 밖에 나가보자고 생각하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런데 그의 앞으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조금 어두워진 것을 확인한 민후는 고개를 돌렸다가 자신 앞으로 보라색 후드 집업을 입은 이가 오른손을 품속에 넣은 채 숨기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그의 몸은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있었다. 밑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얼굴이었다. 눈에 익었다. 곧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오연훈이었다.
부르르 몸을 떨고 있는 오연훈, 품속에 뭔가를 숨기고 있다. 그와 더불어 얼굴을 잘 확인할 수 없게 가렸다. 민후는 순간적으로 직감했다. 뭔가 일이 일어났다. 오연훈에 의해서 말이다.
그 사실을 알아챈 순간이었다. 품속에서 감추고 있던 그것을 오연훈이 꺼내 보이면서 민후의 얼굴을 노리고 무차별적으로 찔러 들어왔다.
“읍!”
“헉!”
“뭐, 뭐야!”
민후는 재빠르게 양손으로 그의 손목을 굳세게 잡았다. 눈앞에서 시퍼런 칼날이 아른거렸다. 함께 술을 마시던 강사진들도 크게 놀란 듯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이이익……! 죽어어!”
오연훈의 목소리는 소름 끼쳤고, 깊은 원한이 실려 있었다. 그는 아마도 노린 것 같았다. 술자리를 노렸을 것이다. 자신이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할 것이라는 것. 방심한 틈을 타 죽이려고 했을 것이다.
하나 그는 알지 못했다. 강민후라는 이 자체가 애초에 신체적 영단과 더불어서 항시 촬영을 위한 운동으로 몸을 갈고닦아서 혼자서 웬만한 장정 대여섯 사람을 때려눕힐 수 있다는 사실.
더불어서 현재 범죄, 그놈과의 전쟁으로 인한 촬영으로 체중을 늘렸기 때문에 스피드는 떨어질지 몰라도 힘으로는 절대 제압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는 양손으로 민후를 찌르기 위해 온 힘을 다했지만, 그 시퍼런 칼날은 민후에게 닿을 턱이 없었다. 민후는 굳건히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손목을 위쪽으로 꺾어 버렸다.
우드득!
탱그랑!
“끄아악!”
바닥으로 칼이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의 팔을 오른손으로 잡은 상태에서 왼팔을 가랑이 사이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바닥으로 힘껏 내던졌다.
“하아하아.”
“으으으……! 주, 죽인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이야……!”
바닥에 등을 들이받았던 오연훈은 고통에 몸부림치더니 재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민후도 그가 마약을 한다는 사실을 단숨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칼을 놓쳤다. 더불어서 그의 등 뒤쪽에 있던 강사진 한 사람이 그를 덮쳤다.
강사진들과 민후가 힘을 합세하여 그를 움직일 수 없게 완전히 제압했다. 이택호는 목에 매고 있던 넥타이를 풀어서 그의 양손을 묵었다.
“빨리 경찰 불러요!”
민후는 놀라서 다가오는 종업원에게 말했다. 일하는 이들도, 다른 손님들도 적잖이 당황한 것 같았다. 불과 이 모든 일이 2분 내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던 민후는 정수가 생각이 났다. 자신에게 걸려왔던 전화. 그러나 대답이 없었던 그. 아마 입구 앞에서 만났다면 정수는 그를 알아보고 필사적으로 막았을 것임을 잘 알았다.
“저, 정수 형 좀 찾아보고 올게요!”
그는 다급하게 바깥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나섰을 때 가게의 바닥에 쓰러져있는 그를 볼 수 있었고 정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가, 강민후다…….”
“강민후 지인인가 봐.”
“어떡해.”
“구급차는, 구급차는요.”
“불렀어요. 곧 도착한대요.”
민후는 그의 앞으로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는 상처를 확인했다. 다행히도 깊게 들어간 것 같지 않았고, 급소는 피한 것 같았다. 많은 출혈이 일어난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가족 같은 정수가 오연훈에 의해서 이러한 피해를 봤다는 것에 그는 참을 수 없었다.
어느덧 구급차가 도착했다. 다행히도 길이 막히지는 않았던 듯싶다. 구조대원들이 그를 실어서 구급차에 조심스럽게 실었다.
구급대원은 정수의 옆에 달싹 붙어 있는 민후에게 말했다가 그의 얼굴을 알아보곤 잠시 당혹했다.
“보호자…… 보호자분 함께 가십니까?”
“예.”
그는 뒤를 돌아봤다. 오연훈은 가게 내에서 강사진들에 의해 옴짝달싹 못 할 것이다. 그리고 정수는 자신을 위해 막다가 이러한 변을 당했다. 경찰 조사에 참여하는 것도 응급실에 함께 다녀오고서도 충분했다.
함께 구급차에 올랐다. 차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차가 가게 앞에 당도하는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 더 이상 가게가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그는 정수의 손을 잡아주려다가 그가 굳세게 쥐고 있는 휴대폰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서 자신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했을 모습이 보인다. 괜스레 자신 스스로가 미워지는 순간이었다.
응급실에 도착하고 정수는 곧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수술한 후 다행히도 생명에는 일체 지장이 없고, 수술 직후 오랫동안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을 하였다.
한숨 돌리고서 민후는 정수의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말했고 곧장 지방인 전주에서 이곳까지 올라오시겠다는 말씀을 하였다. SNS를 확인하자 이미 이야기가 확산된 상황이었다.
실시간 검색어로 ‘오연훈’이라는 이름이 떠 있었고 그 밑으로는 민후의 이름이 떠 있었다. 사람들은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강민후에게 누명을 씌우고 그로 인해서 감옥에 갔다가 출소했던 오연훈이 여전히 그 죄를 뉘우치지 못하고 강민후를 살해하려 했다.
이건 쉽사리 넘어갈 수 있는 일도 아니었으며 전례에도 찾아보기 힘든 일이었다. 묻지마 폭행이라고, 한 개그맨을 일반인이 폭행했던 사례는 존재했으나 같은 연예인이 원한과 앙심을 품고 살해하려 했다는 사실은 없었다.
민후도 당연하게도 경찰 조사를 받았고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인원들 전부가 조사를 받았다. 경찰 조사 결과, 예상대로 오연훈의 마약 혐의가 밝혀졌으며 출처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었고, 분명 강민후를 살해하려 하였고 하물며 그의 범행에 의해서 정수가 칼에 찔리는 중상을 입은 상황이었다.
검찰은 그 자리에서 구속 수사를 진행하기 시작하였다. 오연훈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경찰서에서도 계속 강민후를 죽여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말만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민후의 심신도 지칠 거라는 판단하에서 촬영 진행 중인 범죄, 그놈과의 전쟁 측과 소속사가 이야기를 나눴고 민후는 일단 2주 정도는 촬영하지 않고, 손남원 위주의 촬영을 진행하기로 했다.
손남원 선배님이나 감독님, 알고 지내는 많은 이들에게서 연락이 와서 괜찮으냐는 안부를 물었다. 아무리 강민후라고 할지라도 괜찮지 않았다.
누군가 자신을 살해하려 했다. 덧붙여서 그 과정에서 자신이 아끼는 사람이 중상을 입은 상황이었다. 평소 침착함을 유지하는 민후로서도 많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조사를 끝내자마자 민후는 다시 병원을 찾은 상황이었다. 병원에 오자 정수의 부모님 두 분이 앉아계셨다. 두 분을 만나자 마치 자신이 죄인이 된 것 같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죄송하다는 말씀밖에는 드릴 수 없었다. 정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두 분 모두 정정하신 분들이셨는데, 민후의 죄송하다는 말에 정수 아버지가 혼을 내셨다.
“자네가 죄송할 게 뭐가 있나. 그 오연훈인가 뭔가가 미친놈이지, 미친놈! 남의 귀한 자식을…… 내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아!”
그는 단단히 화가 났다. 한편으로는 강민후에게는 자신의 탓으로 자책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고 계셨다. 그의 아내가 말이 거칠어지자 ‘당신도 참.’ 하면서 민후에게 다가왔다.
“우리 정수가 자기가 맡고 있는 연예인 자랑을 밥 먹듯이 했는데, 잘생겼네.”
민후는 그녀의 칭찬에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우리 애가 그랬어, 자기가 살면서 가장 좋은 보석을 만났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민후의 손을 어루만져 주신다.
“살면서 그런 마음을 가진 배우도 본 적이 없고, 그렇게 열심히 하는 이도 본 적이 없다고.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고. 형사들이 CCTV를 보고 그런 말을 하더라. 민후 너를 지키려고 마지막까지도 발을 잡고 늘어졌다고. 기특해. 내 새끼지만 누군가를 지키겠다고 그렇게까지 했는데, 또 우리 정수는 자신 탓이라고 민후 네가 자책하는 걸 원치 않을 거야. 깨어나면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마.”
“귀한 건 지킬 줄 아는 놈이지.”
정수의 부모님은 매일 고향에 내려올 때마다 항상 웃음을 짓고 있는 아들을 볼 수 있었다. 타지 생활이었지만 그는 항시 얼굴이 밝았다. 분명 그것은 강민후와 함께 일하기 시작하면서 볼 수 있었던 미소였다.
되레 부모님은 민후와 정수가 함께함을 하늘에 감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순전히 정말 오연훈의 탓이지 민후의 탓이 아니었다.
고개를 떨구었던 민후는 눈물을 훔쳐냈다. 정수의 어머니는 말없이 그런 그의 등을 두들겨주었다.
한때는 톱배우였던 오연훈이 징역살이 후에 다시금 강민후를 살해하려 하였던 일은 국내뿐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보도가 될 정도로 크나큰 파장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배우가 같은 배우를 죽이기 위해 칼을 들었다는 것 자체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더불어 지아이오를 통해서 아시아 국가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언론에 보도가 된 상황이었다.
오연훈이 행했던 일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임이 분명했으며 법정은 그에 합당한 처분을 내렸다. 마약 혐의와 더불어 법정이 내린 접근금지 처분을 무시한 점, 스스로의 죄를 뉘우치지 아니하고 오히려 남을 탓하며 해하려 했던 점. 그 과정에서 누군가를 칼로 찌른 점 등은 결코 가벼울 리가 없었다.
법정은 오연훈에게 징역 21년을 선고했다. 실상, 중국으로만 넘어간다고 가정하여도 마약혐의 자체는 사형감이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으며 더불어서 피해자인 정수 측 부모님이나 강민후는 합의를 하지 않겠다고 확실히 의견을 밝혔다.
살인미수의 경우, 당사자들끼리의 합의가 치러지면 선처로 감형이 이뤄지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감형이 일절 없을 수밖에 없었다.
매니저는 잠시 임시 매니저로 변경된 상황이었고, 정수는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을 때 나오게 될 것이었다. 깨어난 그에게 민후는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단지, 괜찮냐며 그의 옆을 지킬 뿐이었고 정수도 민후 탓을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깨어난 후에 ‘괜찮아서 다행이다.’라는 말을 그는 했다. 다시 한번 정수와 자신 사이가 단순히 매니저와 배우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직시하게 되는 계기가 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일이 있은 지 한 달이 지났다. 오연훈은 법정 처분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들에 의한 야유의 목소리도 크게 샀다. 과거에도 한 번 빚었던 일을 그는 더욱 악하게 되풀이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사람을 찔렸으니 아무리 그를 좋아했던 팬들도 더 이상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죽하면 수많은 사람이 너무 적은 형량을 부여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 또한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있고 난 뒤 조금 의외의 일이 발생하게 됐다.
“크! 좋다, 좋아. 스타라는 것이 된다는 기분은 이런 거구나.”
CCTV로 확보된 자료는 뉴스를 통해서 나가게 되었다. 물론 모자이크 처리를 한 상태에서였다. 그리고 뉴스에서는 정수가 필사적으로 오연훈을 막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초반부에 강민후를 걱정하던 사람들은 차츰 시간이 흐를수록 영상 속 필사적으로 막아서려는 정수에 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요즘의 시대는 연예인과 매니저 사이의 불화가 꽤 많이 일어나고 있는 때였다. 그런데 화면 속 매니저인 정수가 오연훈을 필사적으로 막는 모습이 담겨 있었고 사람들은 그 때문에 정수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한편으로 기자들은 ‘담당 배우 구하기 위해 몸 날린 매니저 박모 씨’ 등의 기사를 쓸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수많은 민후의 팬 중에서도 정수의 병실에 선물이나 편지 등을 보내는 인원도 많아졌고, 더불어서 정수의 직업의식에 감탄하여서 쪽지를 보내는 여자들도 꽤 있었다.
물론 반짝일 뿐일 테지만 정수는 무척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오오! 이 여자 예쁘다. 강동구 산다는데?”
정수는 특히나 여자들의 편지를 좋아했다. 듣기로는 페이스북에서의 친구 추가의 숫자도 급격하게 늘어난 상황이라고 들었고,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서 대놓고 호감을 밝히는 여성들도 있다고 했다.
“괜찮네. 형 이번 기회에 한 번 잘해 봐요.”
“그럴까? 흐흐.”
정수는 항시 병실에서 민후의 앞에서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행히 호전도 빠른 편이었으며 사람들이 보내주는 선물공세에 그는 무척 기뻐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그를 보면서 민후는 사실 조금 씁쓸했다. 아무리 그가 괜찮은 척해도 칼에 찔린다는 그 고통을 생각하면 끔찍할 것이다. 정수는 모르겠지만, 민후는 정수의 부모님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게 있었다.
정수에게서 선단 공포증 초기 증세가 보인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었다고 한다. 선단 공포증은 뾰족한 것이나 혹은 모서리 등을 보면 식은땀을 흘리거나 무서워하고 공포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이번에 칼에 찔린 것으로 인하여서 초기 증세를 보이는 것 같지만 그나마 초기인지라 퇴원할 때쯤이면 괜찮아질 것 같다고 한다.
“여기 페이스북 아이디도 적혀있다. 메시지 보내봐야지.”
정수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침대 옆에 놓인 노트북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어서 펼친다. 그러다가 그는 민후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한다.
“안 피곤하냐? 시간이 좀 됐는데.”
“으으…… 이제 가봐야겠어요.”
민후가 가지 않고 계속 자리를 지키자 그는 나름 미안했던 듯싶었다. 그 기색을 읽은 민후는 기지개를 쭉 켜면서 몸을 일으켰다. 마음 같아서는 여기에 계속 있고 싶었지만 오히려 정수가 불편해할 것을 안다.
민후는 깊은 생각에 빠져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옆으로는 윤하가 새근새근 잠에 빠져있었다. 들려오는 그녀의 숨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릴 만도 하지만 민후의 머릿속은 잡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연훈은 21년을 징역 받았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옳은 일 일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물론 그는 억지를 부리는 것이었다. 경찰서에서도 ‘그 새끼 때문이야!’라고 미친 이처럼 소리를 질렀다고 들었다.
그는 모든 원한을 민후에게로 돌리고 있었다. 21년 분명 무척 긴 시간이다. 그 시간이 지나면 민후는 쉰두 살이 될 것이고, 연훈은 쉰다섯을 훌쩍 넘을 것이다.
그러나 강하게 맺힌 원한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는다. 민후는 마음이 불편했다. 자신으로 인한 일이 아니라, 자신의 아둔함과 자만함으로 벌어진 일이겠지만 누군가의 원망을 산다는 것도 싫었고, 또한 오연훈의 앙심과 원한이 남아있다는 게 거슬렸다.
만약 그 원한이 남아있다면 그는 21년 후에 출소해서도 민후에게 원한을 가지고 다시 이런 짓을 하지 않겠는가.
그는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몸을 일으킨 그는 서재로 들어갔다. 자신의 서재로 들어온 그는 책 한 권을 꺼냈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책이었다.
그 책을 펼치자 오려진 페이지 뭉치 속 안에 천에 감싸진 영단이 들어 있었다. 녹색 빛을 띠는 영단.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영단이었다.
단, 이치에 벗어나는 일은 행할 수 없는 영단이기도 하였다. 원하는 것을 들어준 다라. 어쩌면 지금보다도 더욱 높은 자리에 설 수 있게 해줄 영단이기도 했고 세계 최고의 부자로 만들어줄지도 모르는 영단이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한가? 강민후에겐 아니었다.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든, 세계 최고의 스타가 되든 강민후라는 자신은 스스로의 힘으로 성공하길 바라는 사람이었다.
이 영단은 생명을 구하지는 못한다. 만약, 생명조차도 구할 수 있는 영단이었다면 이 영단을 지금 이렇게 꺼내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추후에 정말 중요할 때 사용하려고 하겠지.
강민후가 실제로 자신의 힘이 아닌 것으로 얻어낸 것은 시간을 되돌리는 영단을 통한 로또복권 당첨이었다. 그 외에는 실질적으로 신체적인 영단과 비상한 머리를 사용할 수 있는 영단의 힘도 분명 있었지만, 그가 스스로 발전하려고 노력하면서 성공한 것도 있었다.
어차피 계속 자신은 더욱 발전하고 자라나게 될 것이다. 자신에게 이 영단은 필요 없었다. 차라리 이곳에 쓰자고 다짐했다.
그는 영단을 입으로 꿀떡 넘겼다. 오랜만에 더럽게 맛없는 그 기분을 느낀다. 목 뒤로 넘긴 그는 단 한 가지의 바람을 빌었다.
‘오연훈이 가진 나에 대한 원한이 모두 사라지길…….’
그것이었다. 분명 어떤 이는 바보 같은 소원이다, 라고 할 것이다. 어떠한 이는 어째서 오연훈을 위해 이러한 대단한 힘을 가진 영약을 쓰냐고 질문할 것이다.
어째서냐고? 미움을 받기 싫어서였고, 누군가 자신을 원망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이 영단은 지금의 자신에게는 전혀 필요치 않은 물건이다.
그는 영원한 원한을 사라지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곧 그의 몸이 푸른빛에 휩싸였다. 그는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오연훈의 원한은 누그러들었을 것이다.
“원한이 사라졌다면, 이젠 자신을 돌이켜보며 뉘우쳐야겠지. 21년…… 긴 시간이야.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잘못했는지 한번 느껴봐.”
민후는 씁쓸한 표정이다. 이것이 또 하나의 그에 대한 벌이 되기도 할 거라고 여겼다. 곧 다시 그는 서재를 나서 윤하의 옆에 누웠다.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다.
징역 21년을 선고받은 오연훈은 현재는 교도소가 아닌 교도소와 연계된 정신병원에 입원을 한 상황이었다. 의사는 일단, 그가 마약 중독 상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했으며 더불어서 자신의 잘못을 강민후를 통해서 풀려는 정신질환 역시도 보인다고 판단했다.
더불어 현재 교도소에 간다면 분명 다른 수감자들에게 피해를 끼칠 것이 확실한 상황이었다. 그는 ‘죽여버릴 거야!’라는 소리도 계속해서 내질렀으며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치료 기간은 현재 1년 정도로 책정된 상황이었고, 지금도 하루에 한 번씩 그가 욕을 하면서 문을 두들기고 하는 등의 행위 때문에 안정제를 투입하고 있었으며 심할 경우 묶어놓기도 했다.
현재 치료가 진행 중이었지만 그의 몸은 여전히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마약을 하지 못하기에 일어나는 현상으로 치료를 받으면서 나아질 것이다.
그의 몸은 현재 단단히 속박되어 있었다.
“가만두지 않겠어, 꼭 죽일 거야. 날, 날 이렇게 만들었어, 강민후.”
그는 치아를 빠드득 갈았다. 그의 강민후에 대한 원한은 정신과 의사도 언제 사그라질지 모르겠다고 소견을 내린 상황이었다. 그는 강민후에 대한 욕을 곱씹었다.
기필코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하며 이빨을 따닥따닥 부딪쳤다. 그는 손을 꿈틀거리기도 했다. 눈앞으로 강민후의 목을 자신이 비트는 환상도 보이는 것이다.
“히히히히!”
그 상상만 해도 즐거운 듯 그는 미친 듯이 웃었다.
그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어두운 병실 안으로 잠시 푸른빛이 팟! 하고는 터졌다. 그리고 그 빛은 오연훈에게 스며들어 갔다.
오연훈에게 스며들어 간 그 빛은 따뜻했고, 그의 머리를 헤집더니 완전하게 스며들었다.
그 빛이 스며든 순간이었다. 이빨을 갈면서 강민후에 대한 원한에 사로잡혀 있던 그의 눈으로 눈물이 흘렀다.
“크흐흑! 젠장…….”
스스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갑자기 자신의 머릿속에서 강민후에 대한 원한이 사라지고, 반대로 자신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배우로서의 첫 데뷔, 예의 발랐던 모습, 그러나 점차 인기를 얻고 건방져지던 모습. 여자를 좋아하고 배우의 이름으로 취하고 버리던 것들, 콧대 좀 높아졌다고 감독들에게 대드는 자신. 매니저를 때리던 모습, 도박장에 밥 먹듯이 드나들던 것들.
자신의 자만심에 찼던 행동들, 해서는 안 되는 행동들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강민후에 대한 원한으로 자신의 잘못을 해소하던 그에게, 그에 대한 원한이 사라지자 남은 것은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한 후회뿐이었다.
어째서 그랬던 것일까. 조금 더 겸손해지려고 노력하고, 조금만 더 사람을 아끼고, 조금만 더 열심히 했더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타깃은 돌아갔다. 강민후가 아닌, 오연훈 본인 스스로가 되었다.
“내, 내가 왜 그랬을까? 응? 크흐흑!”
가장 달게 받는 죄가 무엇일까? 사형? 아니다. 죽으면 그것은 곧 편안해지기도 하니까 말이다. 징역살이? 아니다. 그 안에서 웃으면서 미래를 꿈꾸는 수감자들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자신 스스로를 원망하고 괴로워하며 죄책감을 느끼고, 지난날을 후회하는 것. 그것이 가장 큰 죗값이 아닐까?
그는 앞으로 평생을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한 행동과 일들이 후회를 하게 될 테니 말이다.
병실 안에서는 오연훈의 울음소리가 끝나지 않고 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