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영원한 약속(1)
국내에서는 이젠 강민후라는 배우를 ‘월드스타’라고 호칭하고 있었다. 세계적으로 개봉했던 지아이오는 국내에서도 300만 관객을 이뤄냈고 개봉과 함께 전국적으로 수많은 사람에게 뻗어나갔다. 300만 관객이 다소 적을 수 있다고 생각될 수 있으나 해외에서 촬영 된 영화였다.
국내의 영화관의 경우 대부분의 예매율이 외국 영화보다는 한국 영화가 더욱 높은 편에 속하고는 했다. 그런 것을 생각한다면 지아이오가 월간 총동원 관객 수에서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강민후 덕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압도적인 행보를 보인 것은 국내뿐만이 아니라 일본과 중국, 아시아 등에서 대부분 비슷하게 일어난 일이었고 그중 대부분 이들이 강민후라는 이를 찬사하였다.
특히나 국내의 팬들은 강민후에게 월드 스타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지아이오라는 영화에서 다른 세계적인 배우들에 비해 맡고 있는 역할이 떨어지는 편도 아니었고, 비중이 작은 것도 아니었다.
민첩하면서도 단칼에 적을 베어 넘기는 쉐도우는 강민후라는 배우를 다시 한번 실력 있는 배우로서 입증시키기에 충분했다.
현재 민후가 다시 귀국하고 1년 6개월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는 것을 국내의 관계자들은 빠르게 접해 들을 수 있었다. 수많은 제의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으며 민후는 신중하게 작품들 중에서 고려를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대부분의 제작사에서 민후에게 권유한 출연료 금액은 4억 원을 넘어섰다. 기존에 받던 출연료보다도 1억이 더 높게 오른 상황이다.
그만큼 민후가 남긴 여파가 크다고 할 수 있었고, 이젠 거의 흥행 보증 배우가 되어있는 상황이었다.
민후는 채은이 운영하는 ‘토브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와 있었다. 그의 바로 옆에는 민정이 앉아있었으며 그 옆으로는 길태현이라는 서른 중반의 남성이 앉아 있었다.
맞은편에는 총 세 사람이 앉아있었다. 그중 한 사람은 의형제다라는 영화에서 함께 작품을 진행한 적이 있는 박창석이었으며 그 옆으로 류승우라는 배우와 연기 학원가에서 실력 있다고 평이 자자한 장명훈이라는 스물아홉의 남성도 앉아있었다.
이렇듯 배우들과 자리에 한데 모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얼마 뒤면 ‘가슴으로 연기하기’라는 민후의 이름을 내건 학원이 개원한다.
민후와 함께 앉아있는 이들이 주축을 이루는 강사진들이었다. 그들은 톱배우라는 이름은 무색하였으나 국민들에게 상당히 얼굴이 알려진 배우들이었다.
특히나 민정의 경우도 이젠 남부럽지 않은 스타의 반열에 오른 상황이었는데, 민후가 그녀에게 제의하자 그녀는 흔쾌히 승낙했다. 그녀는 민후가 학원에서 강사로서 일을 해줄 수 없냐는 제의에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일단 강민후라는 이는 자신의 은인이었다. 그와 더불어 제대로 된 연기학원을 설립해보자는 강민후의 말은 무척이나 매혹적이었다.
실상 민후의 이러한 학원 창립은 할리우드로 떠나기 전부터 계획되어 있던 것이고 어머니에게도 그 의사를 밝혔었다. 민후가 촬영하는 동안 어머니는 목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5층짜리 건물을 매입하셨고 인테리어 작업에 들어갔다.
인테리어 작업은 3개월 전에 이미 끝난 상황이었으며 민후의 귀국만 기다리고 있던 실정이었다.
민정은 자신 본인도 돈 없는 서러움 때문에 다니지 못했던 학원, 그리고 요즘 들리는 이야기를 알았다. 연기학원은 돈만 빨아먹는 거머리 같은 곳이다, 라는 식의 이야기가 배우 지망생들에게서 숱하게 돌고는 했다. 그만큼 그들이 막상 연기학원에서 배워낸 연기 지식이 실전에서는 큰 효과를 발휘하지는 못하고 있었으며 수강을 끝내면 학원에서 대부분 수강했던 이들을 나 몰라라 하는 실정이었다.
민후는 일부러 이름 있는 배우들을 강사로 초빙한 것이고 이중 길태현이라는 이처럼 유명한 강사진을 몇 사람 더 둘 예정이었다.
학원 창립의 목적은 ‘많은 돈을 벌자’라는 생각보다는 많은 후배를 육성하자는 마인드였다. 그렇다고 강사진들에게 적은 돈을 주기로 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노력하는 만큼 그에 합당한 두둑한 보수를 주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히야, 맛있는데?”
“감사합니다.”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채은도 민후와 함께 온 손님들에게 직접 음식을 내주었다. 창석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하자 채은은 빙긋 웃어보였다. 이렇듯 가끔은 채은의 가게에 오고 있었다.
음식들이 차려지고 식사를 시작했다. 민후는 와인잔 속 붉은빛을 흩뿌리는 레드와인으로 입을 축였다.
“아시겠지만 이 정도 인원의 강사진들이 학원에 배치된 건 처음입니다. 대부분 이름 좀 있다 싶은 학원들도 실제로 배우들을 강사로 쓰지는 않으니까요. 이유는 비싸서겠죠. 그렇지만 저는 실력 있는 이 자리의 분들과 함께하게 된 것이 무척이나 기쁩니다.”
민후는 싱긋 웃어 보였다. 결의를 다지는 말이었다. 국내 어디에서도 이 같은 강사진은 존재하지 않았다. 희해의 학원도 그녀가 원장으로 있을 뿐이고, 가끔 이름 좀 있다 싶은 배우들이 특별강연을 할 뿐이지 주축은 유능한 강사진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배우가 되고 싶은 이들에게 실제 경험이 풍부한 저희들이 그들을 이끌고 또한 우수한 성적을 내는 학생들에게는 그 기회도 만들어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 안에 함께 자리한 배우들은 충분히 그럴 힘이 있었다. 어쩌면 대사 몇 마디 없는 단역일지 몰라도 연기 지망생들에게는 그런 단역도 소중한 편이었다.
또한, 현재 학원의 장비는 최첨단으로 갖춘 상황이었다. 실제 촬영을 진행하는 듯한 모습으로 연기를 지도하는 것이 민후 학원의 스타일이었다.
분명 큰 비용이 들어가나 그만큼 수많은 수강생을 영입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그리고 강사진을 통해 그들에게 끼워 넣기 식으로 연기를 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한다면 더욱더 인기는 커지리라.
“잘해보자는 의미에서 위하여 한번 합시다.”
창석이 제안했다. 민후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는 잔을 들어 올렸다.
“후배들 육성과 학원의 부흥을 위하여!”
“위하여!”
허공으로 잔들이 부딪치면서 학원이 잘 되기를 한마음으로 기원했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왔었고 그녀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민후이다. 이제 자신의 나이 서른한 살이다.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었고 결혼하여도 될 나이였다.
그녀와의 프러포즈를 준비했다. 그녀 모르게 귀국하자마자 준비하였고 완벽해졌다고 판단되었다. 프러포즈는 너무 거추장스럽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윤하의 성격은 민후가 잘 알았다. 사람들이 많은 공개적인 곳에서의 프러포즈보다는 조용한 곳의 프러포즈를 그녀도 원하고 있을 것을 알았다. 실상 이렇게 비밀리에 준비했다고는 하나 그녀도 대충 이제 곧 프러포즈를 민후가 할 것이라는 걸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두 사람의 사랑은 굳었고 의심이라고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민정 씨 연기 되게 잘하던데. 주위 사람들도 진짜 재밌대.”
얼마 전 민정이 출연하였던 영화 써니텐이 700만 관객을 돌파하는 역변을 토해내었다. 그녀는 ‘하춘자’라는 역할을 맡아서 연기하였었는데 영화 속에서의 써니텐이라는 멤버들을 이끄는 중심적인 리더 역할로 출연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민정과 안면이 있는 윤하는 시사회에 애석하게도 참석하지 못하였었는데 민후가 함께 심야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니 단번에 OK 하였다.
극장의 불들은 대부분 소등되어 있었고 관람을 하기 위해 들어가는 입구 쪽만 불이 켜져 있었다. 입장하기 위해 앞에 대기하고 있던 여성에게 표를 내밀었다.
스물두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앳돼 보이는 대학생이었다. 실상 관 하나를 통째로 빌렸다. 어차피 야간이었기에 보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큰 비용은 들지 않았다.
영화관 안으로 들어가자 좌석이 보였다. 이 시간대면 사람 한 명 없는 것이 충분히 가능했기에 크게 의심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녀와 가장 잘 보이는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광고가 지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가 시작되었다. 영화를 관람하면서 그녀는 키득키득 웃었다.
영화는 재밌을 것이다. 그러나 민후에게는 전혀 영화가 눈으로 귀로, 들어오지 않았다. 실상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긴장이 되고 ‘만에 하나 거절하면 어쩌지?’ 하는 헛된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민후는 시간을 확인했다.
“나 화장실 좀.”
“헐, 재밌는 부분인데. 다녀와.”
그녀는 안타까워하는 표정이다. 가장 재밌는 부분을 놓쳤다는 투였다. 화장실을 다녀온다면서 민후는 정작 가장 뒤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뒤쪽의 구석진 곳에 조금 넓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민후가 애초에 배치해놓은 피아노가 준비되어 있었다.
앞쪽에 설치할까 했지만 그렇게 한다면 들어오자마자 들켰을 것이다.
그녀는 영화에 빠져있었다. 지금 그녀가 관람하는 부분은 시위대와 시위대를 제압하기 위한 전투경찰들 틈에서 써니텐의 멤버들과 다른 학교의 이들이 싸움을 벌이는 장면이었다.
그러던 도중, 예정된 시간에 맞춰서 화면이 탁! 하니 종료되었다.
애초에 영화관이 영화가 시작되면 스크린을 제외하고 모든 불을 불을 끄기 때문에 그녀는 무척 당혹한 듯 보였다.
“뭐, 뭐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더욱 당황했다.
“미, 민후야? 민후야?”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민후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녀를 위해서 한 달간 바싹 피아노를 배웠다. 손가락의 마디마디가 아플 정도로 말이다.
띤, 띠띤띤, 띤.
띠띤, 띠띠띤.
민후가 선택한 곡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사랑이라는 곡이었다.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곡은 아니었으나 무척이나 부드러운 멜로디가 프러포즈에 적합하다고 민후는 판단했다.
어두운 영화관 내에서 갑자기 피아노 소리가 들려오자 그녀는 의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뒤쪽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려는 순간이었다. 꺼졌던 스크린이 다시금 켜졌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카메라로 자신을 촬영하는 민후는 카메라에 가까이 다가와 머리를 한 번 어루만지더니 멋쩍게 웃었다.
“윤하야, 한윤하,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 기억해?”
의자에 앉은 그는 빙긋 웃으며 그녀에게 묻는다. 그녀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발달장애 센터에서 두 사람은 처음 만났다.
“처음 봤던 순간 난 윤하 네가 무척 멋있는 여성이라고 느꼈어. 얼굴도 예뻤지만, 그 마음씨, 그 마음씨가 너무나 아름답고 멋지더라고.”
그는 그렇게 말하며 머쓱했던 듯 머리를 긁적인다.
“그리고 논스톱 촬영하면서 만났을 때도 너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난 무척 좋았어, 함께 촬영한다는 것에.”
띠딘, 띠띤, 띠띠띠, 띤.
스크린에서는 민후의 영상 메시지가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뒤쪽에서는 민후의 피아노 반주가 잔잔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녀는 민후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어질수록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었다. 남자친구인 민후가 스크린에 나와서 무척 기뻐서 웃음을 짓고 있는데 왠지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었다.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난다는 말. 그녀는 오늘 바로 그 말을 실감하고 있었다.
“널 만난 건 내 생애 최고의 행운이라고 생각해. 말로는 형용할 수 없을 것 같아.”
민후는 빙긋 웃었다. 스크린 속의 민후도 말을 하다 보니 어느덧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그녀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은 같았다. 그녀를 만난 행복에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났다.
“나와 결혼해줄래?”
스크린 속 안의 민후는 잠시 뜸을 들이고 말했다. 그의 말에 그녀는 입을 막았다. 너무나도 기뻤고 너무나도 듣고 싶기도 하였던 말이었다. 강민후라는 남자와 평생을 함께한다. 그녀에게도 역시나 세상에서 가장 큰 행운이었다.
피아노에서 걸음을 떼고 천천히 내려간 민후는 그녀의 옆에 섰다. 공간이 협소했기 때문에 무릎을 꿇는 행위는 할 수 없었다. 민후는 품속에서 반지 케이스를 꺼냈다.
반짝거리는 다이아가 박혀 있는 반지였다. 착! 하고 열어 보이자 그녀는 애써 웃음을 참았다. 민후는 애간장이 타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녀가 뜸을 들이며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다시 한번 물었다.
“나랑 결혼해줄래?”
“고작 이게 끝이야?”
민후의 되물음에 그녀는 심술이 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켜 양 골반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로써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평소 너무 화려한 것을 좋아하진 않는 그녀를 위해서 단둘만의 이벤트를 준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식의 반응이 나오자 아차 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평생에 한 번 받는 프러포즈는 더욱 멋진 것들로 준비했어야 하나 싶다.
“이게 빠졌잖아.”
그렇지만 그녀는 입을 툭툭 치면서 빙긋 웃었다. 그제야 안도하며 민후는 쪽 하고 입을 맞췄다.
그녀가 천천히 민후 손에 들려 있는 반지 케이스에서 작은 사이즈의 반지를 꺼내어 자신의 약지에 껴 보이고는 웃었다.
“예쁘다…….”
민후는 그런 그녀를 꽉 껴안았다. 결혼해주겠다는 말이나, 혹은 다른 이야기는 없었지만, 그녀는 민후의 프러포즈를 승낙했다. 두 사람은 연인에서 이젠 부부로서의 연약을 맺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녀를 꽉 껴안은 민후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소속사 대표인 태웅을 통해서 윤하와의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밝혔다. 태웅도 적지 않게 당혹한 듯싶었다. 그러나 제재를 가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일단 두 배우가 확고히 자리를 잡은 배우였으며 더불어 두 사람의 나이도 이젠 적다고는 할 수 없는 나이였기 때문이다. 소속사에 서로가 결혼에 관련한 사실을 알리고 곧 그 이야기는 기자들에게도 흘러 들어갈 수 있었다.
곧이어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국민은 연인에서 어느덧 결혼을 하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힌 두 사람에게 놀라워했다. 한편으로는 두 사람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복해주는 이들도 찾아볼 수가 있었다.
이제 두 사람은 정말 결혼한다고 팬이 떨어질 때는 아니었다. 그만큼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배우 강민후, 한윤하 연인에서 부부로…… (중계일보 유가희 기자)
배우 강민후와 한윤하가 소속사를 통해서 결혼에 관련한 공식 입장을 밝혔다. 두 사람의 양측 소속사 측은 두 배우가 오랜 시간 동안 연애 끝에 결국 결혼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공식 입장을 표명하고 축복해 달라고 말했다. 한편 배우 강민후는 얼마 전 할리우드의 영화 지아이오를 촬영한 후 귀국하면서 월드스타라는 호칭을 달게 되었으며 한윤하의 경우 국내뿐 아니라 일본, 중국 등 아시아적으로 큰 인기를 누비고 있었다. 두 사람의 이러한 결혼 일정은 잡히지 않았으나 2-3개월 후가 될 것 같다고 밝혔다. 이에 관련해 네티즌들은……(생략).
다행히도 윤하의 부모님도 결혼에 대하여서 긍정적인 입장을 밝히셨다. 첫 상견례 자리가 이어졌고 윤하의 부모님이 아쉽게 하신 말씀이 한 가지 계신다면 민후가 1년 6개월 후에 다시 할리우드로 넘어간다는 것이었다.
신혼부부임에도 불구하고 남자가 꽤 오랜 시간 집을 비우면 힘들어지는 것이 여자라는 말씀을 반복하셨다. 민후의 부모님들도 이해하셨고, 다행히도 서로 미운 점을 보듬어주고 민후는 할리우드에 가서도 가족에 대해 신경 쓰기 위해 노력한다는 식으로 이야기는 일단락되었다.
장모님과 어머니는 무척이나 빠르게 친해지셨다. 다만, 새아버지와 장인어른 사이에서는 아직 어색한 기운이 감도는 듯하다. 장인어른의 경우 한 대학교의 교수직에 재직하시고 계신 분이셨는데 평소의 성격이 꽤 딱딱하신 것 같았다.
대신에 새아버지가 그런 장인어른에게 먼저 다가가려고도 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결혼 일정은 3개월 후로 잡았다. 그 기간 집을 알아보고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며 청첩장을 돌릴 예정이다. 아무래도 두 톱 배우의 결혼식이었기 때문에 평범하지는 않은 결혼식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어느덧 민후가 원장이 되어 맡은 학원 ‘가슴으로 연기하기’가 첫 오픈을 맞이했다. 각 유명 인사들로부터 다양한 화환이 보내졌으며 수강생들의 신청이 벌써 인원수를 다 채워버렸다.
더 받고 싶어도 수강을 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서 받지를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 때문에 새벽반을 운영할 계획도 추진 중에 있었다. 현재 유능한 강사 세 사람을 더욱 초빙한 상황이었다.
그와 더불어서 학원의 시설들을 촬영하여서 오픈 2주일 전쯤에 민후의 이름을 내건 학원이 개원했음을 팬카페나 다양한 곳을 통해서 배포하였다.
연기를 꿈꾸는 이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특히나 ‘실제 배우들이 지도하는’이라는 부분에서 수많은 연기 지망생들이 눈에 불을 켤 수밖에 없었다.
다양한 지역에서 수강을 받으려고 일부러 학원이 있는 강동구 쪽으로 올라와서 거주하기도 할 정도라고 할 수 있었다.
민후는 앞에 80석이 나열되어 있고, 그 의자에 주르르 앉아있는 인원들과 자리가 부족하여 서 있는 인원, 바닥에 대충 널브러진 인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뒤에 서서 창석의 강의 모습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배우들은 2일에 한 번씩 두 시간짜리 강의를 펼치게 된다. 섭외된 배우는 총 세 사람이었으며 강의할 때는 오전반, 오후반, 야간반을 전혀 따지지 않고 수강생 전원이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되었다.
오늘만 해도 자리를 메운 수강생들의 숫자가 100명을 넘어설 정도로 북적였다. 다행히 어느 정도 예상했기에 강의실을 상당히 크게 지어 놨다.
“여러분 제 얼굴 보세요. 어때요, 못생겼죠.”
“네-!”
창석이 히죽히죽 특유의 미소를 지으면서 묻는다. 수강생들의 얼굴로 장난스러운 웃음이 맺혔다. 이구동성으로 외치자 창석이 장난스레 화난 표정을 지었다.
“어른이 물었으면 잘생겼다고 해야지!”
“하하하!”
수강생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민후가 피식 웃었다. 창석은 주위의 수강생들을 보았다.
“대개 보면 배우 지망생분들이 잘생기고 예쁜 분들이 되게 많아요. 실제로 이 안을 둘러봐도 전부 미남 미녀입니다. 그런데 또 다르게 저같이 못생긴 배우들이 열 사람 중 한 사람씩 존재하죠. 전 타고났어요!”
“하하!”
창석은 자신의 못생긴 얼굴이 희귀하다고 희귀성을 강조했다. 재밌는 강의 방식이었다. 학생들에게 웃음을 연발하면서 더욱 집중도를 높이고 있었다.
“그리고요, 이 안에도 저와 같은 얼굴을 소유한 학생들이 간혹 있다는 것이죠. 어어! 돌아보지 마요. 자기 못생긴 걸 오늘에서야 알고 충격받으니까.”
학생들은 슬쩍 못생긴 이들을 찾아 곁눈질했다. 확실히 수많은 인원들 중에서도 떨어지는 외모를 갖춘 이들도 있었다. 곧 창석은 빙긋 웃었다.
“그런데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말이죠…… 얼굴은 절대 연기에서 중요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류승진 씨 보세요. 그 사람 잘생겼나요? 내가 봐도 그 사람은 이게 이게 아니야.”
창석은 얼굴 앞으로 손바닥을 휘휘 털듯이 말했다.
“손남원 선생님은 어떤가요? 선생님도 잘생기시진 않았죠. 잘 둘러보면 꼭 잘생기고 예쁜 배우들만 있는 게 아니에요. 요즘 개그맨 중에 예쁜 여자분들 되게 많죠? 그거와 같습니다. 반대로 못생겨야 살아남는 개그계에서 예쁜 개그맨들도 뜨고 있는 추세예요. 연기는 얼굴로 하는 게 아닙니다. 자신이 못생기면 어때요, 자신만의 개성을 연기와 붙이면 그건 더할 나위 없는 것이에요.”
창석은 자신만의 식의 강의를 펼쳤다. 확실히 귀담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였으며 그들에게는 하나의 일침이 될 것이다. 대부분 연기 지망생들을 꿈꾸는 이들은 자신들이 다녔던 학교에서 ‘잘생겼다’, ‘예쁘다’, ‘학교 얼짱’ 등으로 유명한 이들이다. 그만큼 외모의 자신감을 가지고 연기를 지망하는 것이다.
하나, 창석은 꼭 아름답고 멋있는 존재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었으며 한편으로는 겸손해지라고 말하고 있었다.
초빙된 강사는 세 사람 모두가 다른 방식의 연기 인생을 가졌다. 민정의 경우는 예쁜 얼굴과 더불어 좋은 연기력으로 젊지만, 확 하니 떠오른 배우였다.
그녀는 그 나름대로 그 성공비법에 대해서 전수할 것이다.
창석의 경우는 말 그대로 못난이였다. 그러나 그 개성을 살리고 또한 인맥을 넓혀 나가며 확고히 자리를 잡은 것을 가르친다.
그리고 류승우라는 배우는 아역으로 데뷔한 경력이 있는 배우였다. 이제까지 했던 주연작은 딱 한 작품밖에는 없었으나 분명 인지도가 있고 연기를 괜찮게 하는 친구로서 주목받고 있다. 단지, 아직 자신을 빛내줄 작품을 만나지 못한 것이었다. 그는 10년 동안 크게 흥하지 못했어도 버틸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르칠 것이었다.
그리고 민후. 민후의 경우 일주일에 한 번 강의하게 된다. 그리고 그마저도 시간이 나지 않으면 힘들 수도 있었다. 그의 경우 월드 스타가 되기 위한 과정을 가르칠 예정이다.
네 사람 모두 다양한 배우들이었기에 장담한다. 이 학원은 얼마 지나지 않아 국내 최고의 연기학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될 것을 말이다.
5장 영원한 약속(2)
예상외의 작품이 민후에게로 제의가 들어왔다. ‘범죄, 그놈과의 전쟁’이라는 작품이었는데, 예상외라고 판단한 이유는 이 영화의 주연 중 한 사람이 바로 손남원 선배님이라는 점에 있었다.
하드 보이의 손남원. 그 외에도 총 출연한 작품 40여 개. 현재 할리우드에서도 작품을 준비 중인 손남원 선배님의 경우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배우였다.
엄청난 연기력과 실제로 그 극 중 역할이 되기 위해 배역이 들어오면 그 배역처럼 행동하기도 하는 괴팍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그는 출연하는 작품에서 항상 놀라우리만치의 연기력으로 감탄사를 자아내는 배우였다.
실상 강민후가 최강호였던 시절에 손남원과는 거의 쌍벽을 이루고는 했었으나 실질적으로 손남원이 강호보다 더욱 인지도가 높았고 흥행작도 더 많다고 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국민에게 ‘최고의 연기파 배우는 누구인가?’라고 묻는다면 최강호와 손남원의 이름은 빠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와 함께 작품을 한다. 실질적으로 강호이던 시절에도 함께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들끓고는 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강민후일 때 그와의 작품 출연 제의가 들어올 줄은 예상도 못 했고, 민후로서는 무척 구미가 당기는 것이었다.
제작사 측의 사무실로 온 민후는 윤도현 감독과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 손남원 선배님을 볼 수 있었다.
민후는 최대한 두 사람에게 깍듯이 인사해 보였다. 윤 감독은 민후가 이렇게 와줬다는 것에 무척 감사하다는 분위기였다. 민후는 현재 월드스타라는 타이틀을 가진 만큼 최고의 힘을 발휘하기도 하는 배우였으며 젊은 축의 손남원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 손남원과, 젊은 배우들 측에서는 그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민후의 만남. 민후와 손남원이 마주 앉았다. 윤도현은 벌써 그려지는 작품에 감탄이 나올 지경이었다.
강민후라는 배우의 연기력은 대단했다. 젊은 친구이지만 그 연기력만큼은 손가락을 치켜세울 정도다. 윤 감독도 그의 영화 시사회에 참석하거나 할 때마다 확인되는 그의 연기력에 감탄을 했고, 또 그 평도 무척 대단한 친구였기에 관심이 컸다.
“오는 길 차는 안 막혔고?”
“네. 괜찮았습니다, 선배님.”
손남원은 무뚝뚝한 성격이었다. 그의 물음에 민후는 대답했고, 그는 별말 하지 않고 다시 커피로 입가를 축였다.
“시나리오는 읽어보셨죠?”
“네. 재밌었습니다.”
민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받자마자 밴 안에서 다 읽어버렸다. 재밌었다. 민후가 맡게 될 역할도 그 개성이 또렷했고, 특히나 손남원 선생님이 맡게 될 역할의 경우 인간의 내면적인 더러움과 살기 위한 몸부림을 너무나도 잘 표현했다고 할 수 있었다.
“여기 왔으면 끝난 거지, 뭘. 윤 감독도 그렇게 불안해하고 그러나.”
“하하, 그만큼 강민후 씨 이름값이 있으니까요.”
윤 감독도 안다. 민후에게 쏟아진 작품 제의가 열 건을 훌쩍 넘음을 말이다. 드라마가 여섯 편, 영화가 다섯 편 정도 되었다. 그러나 손남원은 그가 이미 이 자리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그에게서 의사가 확실시하게 보인다고 판단했다.
“민후, 너도 관심이 있어서 온 거잖아. 시나리오 보니까. 이거 내가 봤을 때는 좋다. 19세이긴 해도 작품성이 좋잖아. 빨리 계약서에 지장 찍어라.”
손남원은 털털하게 한 말이다. 민후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윤 감독은 남원의 털털한 대답에 민후를 흘끗 보았다. 그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무척 관심이 가는 표정이었다. 확실히 관심이 없었다면 애초에 이곳까지의 발걸음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윤 감독은 민후와 남원에게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될지에 대해서 설명했다. 윤 감독은 안경을 끼고 마른 체형의 서른 초반의 젊은 감독이었는데, 이제까지 뚜렷하게 흥한 작품은 없었다.
그로서도 이번 작품에 자신이 손남원이라는 배우를 캐스팅할 수 있었다는 것에 큰 천운을 맞이했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에 더불어 강민후까지 캐스팅된다면 이 작품의 대박은 거의 점쳐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최대한 민후에게 작품성에 대해서 부각했다. 민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긍정적으로 들었다. 그러나 일단은 소속사와 이야기를 나눠 본 후 결정하겠다는 답을 내놓았다.
“민후, 밥 먹었냐?”
“아직입니다.”
“같이 밥이나 먹자. 윤 감독도 먹어야지.”
“예, 선생님.”
분명 주축은 감독이 돼야 하는데 모든 흐름이 손남원이 거머쥔 듯하였다. 당연한 모습이었다. 백반 세 개를 주문하고 식탁 앞에 놓고는 함께 식사를 하였다.
함께 식사하면서 느낀 거지만 손남원은 가만히 지켜보면 옆집에 사시는 성깔깨나 있는 아저씨 같은 체형이었다. 특히나 그에게 꾸밈이라는 모습은 없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초췌한 모습, 불룩 튀어나온 배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하나 그가 가지고 있는 연기를 하기 위한 마음가짐과 그 배역이 되기 위한 노력은 대한민국의 모든 배우가 존경하고 따를 정도로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와 자신이 함께 연기한다는 생각만 해도 민후는 흥분되는 듯싶었다.
-영화 ‘범죄, 그놈과의 전쟁’ 말도 안 되는 초호화 캐스팅 관심…… (하늘일보 조태욱 기자)
1980년대와 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윤도현 감독의 각본 감독 작품인 영화 범죄, 그놈과의 전쟁의 캐스팅이 마무리되었다. 첫 캐스팅에서 윤 감독은 손남원을 캐스팅하는 놀라운 이변을 만들어낸다. 그와 더불어 월드스타라고 불리는 최고의 주가를 자랑하는 배우인 강민후와의 캐스팅도 확정된 상황이다. 윤 감독이 아직 신인인 감독인 것을 감안하면 그의 이러한 캐스팅은 획기적인 한 방이라고 할 수 있었다. 범죄, 그놈과의 전쟁에서 손남원은 악랄하면서도 성공을 꿈꾸는 최익환을, 강민후는 최형배라는 부산 일대를 주먹 하나로 주름잡고 있는 역할을 맡게 될 예정이다. 한편 조연 배우들의 캐스팅도 시선을 모으고 있다. 마동진과 조진환 곽도규……(생략).
손남원과 함께 하는 작품이라는 것에 함 대표도 역시나 무척이나 환대하는 분위기였다. 함 대표의 경우도 항시 손남원이라는 배우를 소속사로 데려오고 싶은 분위기가 컸다.
그러나 쉽지 않았던 일이고 한창 주가를 올리는 강민후와 손남원이라는 우리나라 최고의 배우가 함께 만드는 작품이라면 상당히 흥행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범죄와의 전쟁은 픽션이었다. 1990년대에 범죄와의 전쟁이 실제로 선포되었던 이례가 있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만들어내는 픽션이다.
익환과 형배는 서로가 호부 호형하면서 그 세력을 키워나가나 결국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됨과 동시에 두 사람은 서로가 살아남기 위해 배신을 일삼으려 하고 치밀한 신경전 역시 보일 것으로 전망되는 중이었다.
모든 배우가 만나는 자리는 가벼운 대본 리딩 자리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실상 말이 대본 리딩의 장소였지, 배우들이 만나서 얼굴이나 서로 알자는 의미였다.
U 자 모양으로 되어 길게 뻗어진 책상에는 배우들이 마주 앉아 있었고, 그 중앙에는 윤 감독이 앉아있었다. 오늘은 조금 특별하게도 기자들과 더불어 제작사 측 인원들이 한편에 서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제작사 측 인원들이 대본 리딩을 지켜보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었다. 그들의 경우 후원을 하고 감독이 찍게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본 리딩을 공개적으로 기자들에게 보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나 이렇듯 공개하는 이유는 배우들의 힘을 받아보자는 윤 감독의 생각이었다. 그들은 가벼운 대본 리딩만으로도 이슈가 될 수 있는 최고의 배우들이었다.
비록 아직 준비 기간도 갖지 않은 상황이고, 대본을 손에 쥔 채 읽듯이 하는 것이었지만 이 안의 배우들은 결코 가벼운 이름을 가진 배우들이 아니었다.
손남원, 명실공히 최고의 배우.
강민후, 할리우드로 넘어선 연기와 외모, 모든 것을 갖춘 신세대 최고의 배우.
마동진, 한창 뜨고 있는, 우락부락한 체격과 거친 말투와는 다르게 귀여운 모습까지도 스크린을 통해서 보이는 요즘 한창 상승세인 배우.
조진환, 마동진과 마찬가지로 함께 떠오르는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는 배우.
곽도규, 데뷔 경력 3년 차의 중년 배우. 그러나 출연한 작품이 벌써 30개가 되는 기초가 탄탄한 배우.
모두가 무시할 수 없는 사람들임이 확실했다. 이들의 대본 리딩만으로도 이슈화가 존재할 것이다. 모든 배우가 윤 감독의 그러한 생각에 흔쾌히 수긍했다.
“우리 봉구 씨 코 푸는 거 좋아하는 거 안다 아입니꺼. 언제 한 번 신명나게 뜩 한번 치게 해 드릴까예?”
이종구라는 노역 배우와 남원이 먼저 리딩을 보였다. 이번 리딩에서는 주로 장면이 이목을 끌고 배우들의 감정이 드러나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하게 되었다.
“이런 씨팔놈이!”
두 사람은 마주 보면서 대본 리딩을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때리고 맞고 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남원은 실제로 뺨을 맞고 화가 난 것처럼 턱! 하니 테이블을 치면서 성을 냈다.
“때리지 마라, 이 씨부랄놈아! 이 씨뻘넘!”
“뭐고, 시불놈아.”
리딩에는 윤성윤이라는 친구 역시도 참여하였다. 시나리오 속에서는 최형배의 바로 밑의 동생으로 나오는 역할이었다. 익환이 맞자 그를 도와 그를 때린 이를 머리로 한 번 받아버리는 대사를 쳤다.
“에라이, 이 띠발놈아! 이이! 이 시바, 뭘 쳐다봐, 이 새끼들아!”
남원은 눕혀져 있는 이를 때리듯이 성난 목소리로 말하면서 헉헉거렸다. 그의 연기는 실감 났다. 행동하지 아니하고 단순히 리딩을 하고 있었지만 그 목소리만 들어도 그 현장과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지는 듯하였다.
순차적으로 배우들의 리딩이 진행되었다. 지켜보는 제작사 인원들과 기자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들이 가장 크게 감탄한 것은 손남원에게서였다.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크게 실감 났다.
더불어 윤 감독은 앞서 기자들에게 준비 기간을 거치지 않았고 단순히 대본만을 숙지한 상황에서 펼치는 리딩이다, 라고 밝혔다.
민후의 차례였다. 그가 맡은 역할 부산 일대를 주먹 하나로 주름잡는 최형배. 익환과 짜고 명분을 만들어 유흥업소의 조직폭력배들을 치고 우두머리인 조진환이 맡은 이판호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과감하고 두둑한 배짱의 형배의 모습을 낱낱이 보일 수 있는 리딩이었다.
“새끼야, 그게 말이가, 지금.”
“새끼? 하……! 마, 불 한 번 붙이 봐라.”
민후는 자신이 조직폭력배인 형배가 되었다고 가정해본다. 현재 판호의 동생들을 모두 무참히 짓밟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판호는 자존심을 지키려 하고 있었다.
이러한 그의 말은 그의 자존심에 불을 지피는 행위였다. 진환이 헛웃음 지으며 라이터를 던지듯 말한다.
“아나 여기 있다.”
“마, 붙이 봐라.”
그러나 민후는 다시금 그에게 말한다.
“아따, 최 사장 오늘 뭘 잘못 잡쉈나? 정신 차리라. 내 어릴 적 니 담뱃불 붙여주던 그 판호 아이다.”
그는 민후를 쏘아보았다. 자존심을 굽히지 않겠다는 모습이었다. 민후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안되겠다. 니 좀 맞아야겠다.”
“하 참, 어이가 없으…….”
시나리오상이라면 형배가 판호의 머리를 둔탁한 것으로 내리쳐야 맞았다. 그러나 리딩만으로 이어가야 했다.
“크윽! 으아이씨! 으으으…….”
“하아하아…… 마, 담배 좀 가온나.”
확실히 진환 역시도 수준급의 실력파 배우였다. 그는 폭행을 당하듯이 비명을 질렀다. 기자들은 만족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두 사람의 리딩이 끝이 나자 한 기자가 잠시 끼어들었다.
“질문 좀 해도 될까요?”
“그러시죠.”
윤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자는 메모장을 들고는 민후를 바라보았다.
“실상 민후 씨의 경우는 제가 보았을 때는 조직폭력배 보스 역할과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거든요. 물론 최고의 배우임은 인정하지만, 오히려 잘생긴 얼굴이나 호리호리한 몸이 조진환 씨와 비교해본다면 이만한 덩치의 강민후 씨가 이만한 덩치의 조진환 씨를 제압한다는 게 조금 실감이 나지는 않네요.”
기자의 정확한 지적에 윤 감독과 다른 배우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민후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확실히 그의 지적은 무척이나 날카롭고 예리한 것이었다.
그의 말인즉, 잘생긴 얼굴의 민후가 이제까지 맡았던 역할과 이번 최형배라는 역할은 조금 상극이어서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다는 말 같았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촬영할 때 변화된 제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민후는 그런 그의 걱정을 자신감 어린 목소리로 말하면서 덜어주었다. 기자는 더 이상 묻지 않고 한 수 접어들고 들어갔다.
“수고하셨습니다. 리딩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작품이 기대가 크네요. 앞으로 1년은 넘게 기다려야 극장에서 볼 수 있다니. 이거 기다리는 시간이 벌써부터 지루합니다.”
대본 리딩이 완전히 종료되고 앞서 기자들이 먼저 나섰다. 그 후 제작사 인원들은 작은 감탄을 흘리며 칭찬 일색을 금치 않았다. 그들이 모두 나선 후 배우들과 윤 감독이 이야기를 진행하였다.
그러던 중 민후에 관련한 이야기가 나왔다.
“확실히 민후 씨 이미지가 형배 역할에 확실시하게 부합하는가도 조금 걱정이 되기는 합니다.”
윤 감독은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지금 딱 보는 그의 체형은 전형적인 TV 속에서 화려하게 등장하는 미남 배우였다. 그러나 형배라는 역할은 미남이기보다는 흉악하고 강한 주먹을 가진 욕심 많은 이였다.
“민후야, 영화 출연하기 전에 한 번 최형배라는 역할 정말 진국처럼 네 것으로 만들어봐라.”
“예, 선배님.”
윤 감독의 걱정에 말을 거든 것은 손남원이었다. 손남원은 대본 리딩을 하면서 강민후라는 배우가 자신들은 가볍게 대본 리딩을 할 때 그만큼은 최선을 다해서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더불어 그가 모든 대본을 이미 확실시하게 숙지했음도 간파했다. 그는 둔해 보이는 몸을 가졌으나 날카로운 눈만큼은 매와 같은 배우였다. 그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가 본 젊은 강민후라는 배우는 최정배와 안 어울린다는 말보다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계속해서 이야기는 한 시간가량을 더욱 진행하였고 이야기가 끝이 난 후 배우들이 자리를 나서기 시작했다. 민후가 나서기 전 손남원이 민후에게 손짓했다.
“아…… 씨파! 뭣 같네, 하고 욕도 한 번씩 해보고, 뒤틀리는 일이 있으면 성깔도 부려보고 해보는 게 좋다. 내가 본 최정배라는 역할은 그러거든. 한 번씩은 그 역할이 직접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42.195㎞에서 유원이처럼 말이다.”
그는 진심 된 조언을 민후에게 던져주었다. 실상 그와 쌍벽을 겨루었던 강호로서 듣는다면 기분이 나쁠 만도 하였지만 민후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가슴속에 새겨 넣었다.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은 최정배가 되기 위해선 자신처럼 그 사람이 되기 위해 실전에 적용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말이었다.
“명심하겠습니다, 선배님. 실망하게 해드리지 않겠습니다.”
주차장에서 민후는 밴에 오르는 그에게 꾸벅 인사했다. 손남원은 작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준비 기간이 끝이 나면 손남원이든, 다른 배우들이든, 그리고 자신에게 걱정의 목소리를 내었던 기자도 아마 다른 생각을 가지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분명 작품을 하기 전에 앞서 자신이 맡은 극 중 역할의 내면적인 것을 꿰뚫는 것도 중요하며 이해하고 스스로가 그가 되어보는 건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그러나 외적인 것도 필히 중요한 것이었다. 세계적인 스타인 조니 텝. 그라는 배우는 어떠한가. 수많은 작품에 출연하면서 항시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하여 시청자들을 찾아오는 배우였다.
그는 언제는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에 괴상하게 생긴 가위 손이 되기도 하였으며 언제는 괴짜 같은 성격의 스패로우 선장이 되기도 하였다. 더불어 어린이들의 동심을 자극한 ‘조니의 초콜릿 공장’에서 그가 보인 역할 역시도 훌륭했다.
그는 수많은 얼굴을 가진 배우였다. 내적, 외적 두 가지 모두를 갖춘 것이다. 민후도 못할 것은 없었다. 그렇기에 오늘 부산에서 한때는 잘나가던 조직폭력배 출신인 이장우라는 이를 만나기로 하였다.
올해 서른여덟 살로 현재는 완전히 접은 후 고깃집 사장님으로 변모된 상황이었다. 민후가 팬카페에 조직폭력배와 만나고 싶다는 식의 비슷한 글을 올렸었다.
잠깐 이 글 때문에 이슈가 크게 되었었다. 조폭을 만나고 싶다니? 그가 이상한 곳에 손을 뻗는가? 하는 생각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그에 이뤄진 인터뷰에서 범죄, 그놈과의 전쟁을 위한 준비 중이다, 라고 밝히자 사람들은 순순히 수긍하였으며 팬클럽 회원 중 민후의 열혈 팬 중 한 사람이 자신의 남편이 전직 조폭이었다고 밝혔다.
현재는 자신을 만남으로써 완전히 손을 씻었지만, 과거에만 하더라도 부산 일대에서 아주 무서웠던 사람이라고 한다. 민후는 직접 연락을 가함으로써 만나보고 싶다고 하였고, 그녀는 흔쾌히 승낙했다.
직접 부산으로 내려오기까지 한 민후이다. 부산의 ‘형님 옵쇼!’라는 고깃집을 운영한다는 그를 찾아서 그의 가게로 들어갔다.
아직 2시였기에 손님은 많이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테이블에 앉아서 신문을 보고 있는 정말 덩치가 산만 하다고 생각되는 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팔에 울긋불긋하게 나 있는 용 꼬리만 보아도 그가 단번에 이장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참말로 왔다! 오빠야! 봐라, 강민후 씨가 진짜 왔다니까?”
카운터에 있던 여성이 민후를 발견하고는 후다닥 다가와서 박수를 짝짝 쳐대었다. 그녀의 호들갑에 이장우의 시선도 민후에게 틀어졌다.
장우는 시원하게 민 머리카락과 무서운 눈매가 인상적이다. 전직 조폭이었지만 지금도 그 못지않은 기세를 가지고 있었다.
“가스나 호들갑은…… 가서 커피나 가온나.”
“기댈리래이. 앉으이소. 아, 참말로 잘생깄네.”
“감사합니다.”
민후의 열혈 팬인 여성은 민후를 보자 그저 좋은지 실실거렸다. 장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퍼뜩 안 가온나!”
“성질머리하고는.”
“저놈의 여편네가. 이거 못 볼 꼴 보인 건 아닌지 몰르겠네.”
장우는 머쓱한 듯 웃어 보였다. 민후는 ‘괜찮습니다.’라고 답했다. 장우는 실실거리며 웃었는데, 생각보다도 위압감이 크지 않았다. 오히려 동네에 한두 명씩 있는 듬직한 형을 만난 기분이었다.
“그 일에서 벌써 손 뗀 지가 10년이 훌쩍 지났는디. 저놈의 여편네 때문이죠.”
“날 만난 걸 참말로 다행으로 알아라. 안 그럼 어디서 벌써 찔려 디지삤다.”
“거참.”
뭐랄까,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는 것 같았지만 그 목소리에는 애정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흔한 부산 부부의 대화법이라고 할까나. 두 사람의 그런 대화가 친근하게 느껴졌고 두 사람의 말투 하나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자신은 부산을 주름잡는 조직폭력배 정배를 연기해야 했다. 그 말투를 소홀히 하지 않고 귀담는 것이 맞았다.
커피로 한 모금 입을 축였다. 장우는 민후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냐가 본게, 강민후 씨가 뭘 걱정하는지 알겠고만. 일단 체형이 아니여요, 체형이.”
그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체형이 아니라. 그가 보기에도 민후는 조직폭력배를 연기할 체형은 아닌 것 같았다.
“물론 요즘 조폭 영화 보니께, 대부분 날쎄고 주먹 한 방으로 기절시키고 하는디. 내는 그거 보면 코웃음밖에 안 쳐집디더.”
민후는 그의 말을 유심히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실제와 영화는 확실히 틀려요. 그라고 삐짝 마른 놈이 산만 한 덩치의 조폭들을 때려잡는다는 거는 듣도 보도 못한 일이요. 주먹의 대가 김두한이도 원래는 산만 했다잖아요. 뭐든 덩치가 어느 정도 있어야 힘도 나오고 상대도 제압하는 게 조폭 세곕니다. 저 보시오. 딱 봐도 위화감 있게 생겼잖아요.”
확실히 그의 말이 맞았다. 조폭이 덩치가 큰 이유는 분명 있었다. 사람들에게 위화감과 공포감을 주기 위해서였다. 영화에서나 나오는 그러한 조폭들은 실제로는 현실성이 없었다.
윤 감독은 작품의 현실성을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화려한 무술보다는 현실적인 싸움을 원하고 있기도 했다.
민후는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가슴에 새겨들었다. 그는 민후에게 몸집을 키우면 좋을 것 같다고 언급하곤 욕하는 법까지 가르쳐줬다.
웃음이 나올 모습이겠지만 들으면서는 살벌했다. 이게 진짜 조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장우의 아내이자 민후의 팬클럽 열혈 팬은 민후를 대접한다고 육회를 가져왔다.
“잘 먹겠습니다.”
“먼 길 오셨으니께요.”
“와따! 참말로 장사도 안 돼 죽겄는디!”
“뭔 걱정이려! 강민후 씨가 조만간 여기서 촬영 안 한다요! 그럼 여기로 회식하러 오지 않갔소!”
“그럴 거요?”
“네. 이곳으로 오는 걸로 한번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생각보다 촬영팀의 회식은 잦았다. 그들이 풀 수 있는 것은 술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장우는 그제야 빙긋 웃었다. 한때는 조직폭력배였지만 지금은 영락없이 가게의 매상을 걱정하는 남성이 되어 있었다.
육회를 먹으면서도 그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었다. 어느덧 이야기가 마무리되었을 때는 한 시간 반이 훌쩍 지나 있었다.
“다음에 찾아오시면 식사 한번 크게 하겠습니다.”
“그래야지요. 참, 우리 싸나이들끼리의 약속 잊음 안 대요. 그럼 나 섭해부러.”
“예, 알겠습니다.”
장우는 연신 회식 때 꼭 이곳으로 오라고 언급하고 있었다. 차에 오른 민후는 밴 앞까지 배웅하는 그녀를 볼 수 있었고, 뒤쪽에서는 구수하게 장우가 ‘야, 이 여편네야, 일 안 할래에!?’ 하고 소리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재밌는 사람들이었고, 얻은 것도 꽤 되었다. 정보를 얻었으니 실천할 때가 된 것 같았다.
일단 민후에게 확실히 필요한 것은 체격이었다. 영화 촬영까지 준비된 기간은 2개월밖에 되지 않는다. 거칠고 화려한 액션이 있는 영화도 아니었기에 사투리를 익히고 대본을 훑어볼 시간만 준 것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민후는 사람들이 상상하는 이상적인 조직폭력배의 모습을 일구고 싶었다.
그는 식단을 바꿨다. 단백질 위주가 아닌, 탄수화물 위주였다. 탄수화물 게이너를 구입 했고 평소의 식사량을 다섯 배로 늘렸다. 현재 민후의 몸은 나무랄 데 없이 탄탄하고 근육량이 많기 때문에 탄탄히 압축된 상황이었다.
지아이오를 촬영하면서 얻게 된 몸이었으나 지금은 오히려 이 몸을 버리고 지방이 비집고 나온 몸매를 일구어야 했다. 하루에 여섯 끼 식사를 했다. 조금씩 나눠서 먹었고, 보충제도 꼬박꼬박 먹고 바나나와 고구마의 섭취양도 늘린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서 민후는 헬스클럽에서 일부러 유산소 운동은 가볍게만 하고 있었다. 10분 정도였다. 가볍게 러닝머신만 뛰고 몸이 풀렸다 싶으면 바로 웨이트로 들어갔다.
2주 정도 반복하자 체증이 크게 늘어났다. 182㎝에 몸무게 66㎏을 유지하던 그의 몸무게가 71킬로그램으로 변화했다. 그와 더불어 선명했던 근육이 여물고 지방이 불긋불긋 올라왔다.
조직폭력배라 하면 일단은 체격도 크면서 힘도 센 이들이다. 또렷하고 각인되는 근육보다는 체중이 실린 근육이 훨씬 강해 보였다.
아마도 이번 영화 촬영이 끝이 나고 다시금 지아이오 2 촬영을 하기 전에 다시 체중 감소를 하고 선명하게 만들려면 힘이 좀 들어갈 것 같았다.
“마! 니 이리 와 봐라, 어디서 눈깔을 치켜뜨노!?”
민후는 거울을 보면서 말하고 있었다. 목소리는 최대한 낮게 깔았고 한 조직을 이끄는 이의 카리스마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던 중 벌컥 문이 열리면서 혜인이가 들어왔다.
“오빠, 뭐 해?”
혜인이도 이젠 중학생이 되었다. 어느덧 숙녀티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한 살만 더 먹어도 사춘기에 접어들 것 같다. 그녀는 민후가 거울을 보면서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자 고개를 갸웃했다.
“작품 연습하고 있었어.”
“으음, 이번 작품 주인공이 깡패구나. 엄마가 밥 먹으래-”
그녀는 크게 상관하지 않는 표정을 지으며 나섰다. 민후도 곧이어 따라나섰다. 이제 조금 있으면 자신은 이 집을 나설 예정이었다. 결혼식을 올리면 윤하와 함께 거주할 예정이었다.
현재는 집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었다. 두 사람 모두 상당한 재력가였기 때문에 상당한 크기의 주택을 매입할 예정이었다. 되도록 주위에 소음이 적고 다른 사람들의 방해가 크지 않은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었기에 두 사람 모두 신중히 고려하는 중이었다.
“으음, 살아 있네-”
노릇하게 구워진 고등어를 집어먹은 민후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말했다. 어머니와 새아버지는 태연하게 식사를 하셨다. 특히나 어머니의 경우 민후가 스무 살이 되어 논스톱에 출연할 때부터 이렇듯 극 중 역할 연습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기에 이젠 완전히 관심을 끄셨다.
유원이처럼 행동할 때도 지켜보셨던 어머니인 만큼 이젠 당연한 일상이 된 것이다.
식사를 끝내고 민후는 밖으로 나서 곧장 차를 타고 학원으로 향했다.
학원이 문 연 지 한 달 남짓 되어 가고 있었다. 지금 현재 학원은 포화 상태였고 결국 새벽반을 여는 것으로도 이야기는 확정되었다.
민후는 학원에 자주는 못 오지만 시간이 남으면 꼭 오고는 했다. 원장실 안에서도 그는 대본 연습에 한창이었다.
거친 부산말을 연습하기 위해서 그는 일부러 영화 부산을 배경으로 찍은 영화들을 찾아보기도 했는데, 대부분 조폭 이야기이나 혹은 거친 싸움이 들어가는 영화의 경우 부산을 배경으로 잡았다.
부산 자체가 사람들의 인식이 유흥적이고 깡패들과 싸움이 판을 치는 곳이라는 인식이 컸고, 또한 부산 남자들의 거친 사투리는 남자들의 로망이 되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똑똑.
“예.”
노크하는 소리에 민후가 답했다. 들어온 이는 민정이었다. 그녀는 못 본 사이에 부쩍 다시 체격이 커진 민후를 보고는 다소 놀란 표정이다. 하루가 다르게 이렇게 체격이 변하고 있었다.
“왔나.”
“네.”
그녀는 민후의 사투리에 적응이 되지 않는 듯 어색하게 웃었다. 어차피 민정도 그가 한창 극 중 역할 연습 중인 걸 알았고, 대부분의 이들이 아는 사실이라 크게 의아해하거나 하진 않았다.
“무슨 일이고.”
“다름이 아니라요, 저희 수강생 중에 김주민이라는 친구가 있거든요.”
“금마가 왜?”
“근데 그 친구가 수강을 받긴 하는데, 돈을 안 내고 강의받는 학생이에요.”
“도둑 수강이라, 이 말이가. 확 담가 버려야지.”
“예?”
“아아, 미안 미안. 너무 몰입하다 보니.”
민후의 거친 목소리에 민정은 다소 놀랐다. 평소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할 때 부드러운 모습을 보이던 그였기 때문이다. 민후는 너무 몰입하느라 실수를 했다고 여기고는 빙긋 웃었다.
“도둑 수강이라…… 학원인데도 그런 일이 생기는구나.”
대개 도둑 강의는 대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대학교에 워낙 사람이 많다 보니 교수들이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어 생기는 일이다. 대개 학원의 경우 서로가 얼굴을 알기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지만, 민후의 학원은 워낙 사람이 많다 보니 그런 기회가 생기나 보다.
“근데 그 친구가 알아보니까 사정이 안 좋더라고요. 근데 배우가 너무 하고 싶다고. 꼭 수강을 듣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녀가 이 말을 하는 취지를 단숨에 알았다. 그녀도 가난했던 삶을 살았던 여성이다. 그 친구를 도와주고 싶다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민후는, 아니 최강호는 본래의 강민후가 생각났다.
첫 만남이 그의 도둑 강의로 인해 이뤄졌었다. 그 친구도 그만큼 열정을 가졌었고 그것을 보며 무척 안타까웠다. 실상 민후가 학원을 설립한 이유는 진짜 배우들이 갖춰야 할 것을 가르치고 키우자는 의미였으며 그중에는 돈 없는 이들도 해당 된다.
민후같이 어려웠던 이들을 도울 생각도 그는 충분히 하고 있었다.
“그 친구 지금 어딨어?”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주민아.”
민후가 그녀보다 먼저 그의 이름을 불렀다. 곧이어 훤칠하게 키가 크고 수려한 외모를 가진 남자아이가 들어왔다. 올해 열아홉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친구였다.
그는 민후에게 꾸벅 90도로 인사를 해 보였다.
“네, 앉아요.”
그는 쭈뼛거리면서 민정의 옆에 앉았다. 그는 민후의 시선을 마주치는 것을 피했다. 부끄러울 것이다. 도둑 수강을 받다가 들켰다는 것은 저 나이에 무척이나 창피해하고 남의 시선을 의식할 때였다.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배우고 싶다는 것 때문에 숨어들어 왔겠죠. 누구보다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는 의미니까요. 제가 더 나이가 많은 것 같으니 말 놓아도 되겠죠?”
주민이라는 남자아이는 민후의 말에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꽤 놀란 표정이 되었다. 그는 이제까지 학원 몇 군데에서 도둑 수강을 시도했으나 모두 매몰차게 쫓겨나며 욕을 먹었다.
이곳에서도 그럴 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 반대였다. 배우고자 하는 의지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 오히려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하고 있었다. 실상 도둑 수강을 들킨 후에 원장이 강민후라 무척 깐깐하고 성격 참 더럽겠지, 생각했다.
아무리 배우들이나 연예인들의 이미지가 좋아도 대부분 꾸며진 거라고 그 역시도 생각하고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민후라는 배우는 아니었다.
그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는 있어?”
“아뇨.”
민후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투박한 손. 팔에 나 있는 긁혀있는 상처. 보기에도 노가다 판을 전전하는 아이 같았다. 민후는 작게 웃었다. 그 힘든 노가다 판에서 일하면서도 배우로서의 꿈을 위해 도둑수강을 하려 한다.
갑자기 본래의 민후에 대한 회상이 잠기는 순간이었다.
“어떤 시간이 가장 좋니?”
“예?”
“오전, 오후, 저녁, 새벽. 어떤 반으로 가면 가장 좋을 것 같아?”
주민은 민후의 물음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분명 자신은 이 학원에 다닐 형편이 안 되었다. 그는 그러면서도 ‘저녁이…….’라고 말한다.
“그래, 그럼 저녁으로 다니는 걸로 하고. 민정아, 이 아이 6개월짜리로 끊어줘. 내 이름으로 달아놓고.”
“네!”
민정은 예상하고 있었던 듯싶었다. 그녀로서는 민후가 이렇듯 배우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있는 아이를 나 몰라라 하는 이가 아님을 알았다. 때문에 직접 아이를 민후에게 소개시켜 준 것이다.
주민은 상당히 믿기 힘든 표정이 되었다. 6개월. 400만 원을 넘는 금액이었다. 민후의 학원은 다른 학원들보다 꽤 비쌌다. 최첨단 장비, 최고의 강사진, 최고의 배우들. 비쌀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강민후라는 배우는 너무나도 편했다.
“단, 조건이 있어. 아무한테도 절대 말하지 말기.”
“예, 예, 네! 그, 그럼요.”
민후가 건 조건에 주민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한 달에 80만 원짜리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주민은 이제 당당하게 학원에 나올 수가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민후가 이렇듯 조건을 건 이유는 혹여 주민이 다른 누군가에게 이 사실을 말한다면 같은 행위를 함으로써 환심을 사려는 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자신은 그런 이들은 원치 않았다. 정말 힘이 들어, 너무나도 먹고살기 힘든데 배우고 싶은 그런 이들에게만 이런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
민정이 주민을 데리고 함께 나서면서 민후를 돌아보았다. 그가 윙크를 찡긋하자 그녀가 빙긋 웃었다. 그녀가 본 민후는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주민과 민정이 함께 나서고 그는 소파에 머리를 기대었다. 오늘따라 더욱 본래의 민후와 있었던 일에 대한 회상이 떠오른다. ‘녀석…….’ 하고 그는 실소를 흘렸다.
* * *
체중이 76㎏까지 늘어났다. 기존에 입었던 옷들이 작아질 정도였다. 한 인터넷 기사에서는 그런 민후를 두고서 기사를 쓰기도 했다. 갑자기 살이 팍 찌니 의아할 수밖에 없는 일이 당연했다.
그러나 일부러 찌운 것이었기 때문에 누가 뭐라 하든 민후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의 배에 있던 복근의 형상이 흐릿해졌다. 그와 반대로 팔과 다리 상체는 더욱더 커졌다.
근육과 지방이 공존하게 되니 그 부피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실제 조직폭력배들처럼 어마어마하게 크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이젠 좀 듬직한 체형을 가지게 된 민후였다.
더 이상은 살이 찌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이라는 판단이 서서, 이젠 다시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고 있었다.
내일은 민후에게 무척이나 특별한 날이었다. 윤하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일이 바로 민후와 윤하의 결혼식이었다.
본래는 한 달 뒤에나 하기로 상견례 때 이야기가 되었었지만 변경되었다. 예정대로 한다면 영화 촬영 일정과 겹치게 되기 때문이다. 그에 3주 정도 앞당기기로 이야기를 하였고 신혼여행을 하고 오고 2주 후에 촬영에 들어가게 될 것 같았다.
현재는 둘러보던 집 계약도 완료한 상황이었고, 가구들 같은 경우는 윤하 쪽에서 준비해준 상황이었다. 결혼식은 선상 결혼식이었다. 한강 변에 있는 크루즈에서 진행이 될 것이다.
상당히 비싼 가격이었지만 요즘은 많은 배우가 선상 결혼식을 선호한다고 한다. 물론 철저한 비공식 결혼식으로 진행이 될 예정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끝내고 둘러앉아 TV를 보면서 과일을 먹고 있었다. 어느 정도 손을 대었다가 민후는 더 살이 찔까 싶어 조심스레 포크를 놓았다.
“에휴, 저놈이 어느새 저렇게 커서 결혼을 다 하고. 그것도 착하고 예쁜 아기랑……. 내가 복을 받았지, 복을 받았어.”
“왜 또 울고 그러나. 아직 결혼식 한 것도 아니잖아. 얘 마음 불편하게 말이야.”
어머니가 TV를 보시다가 눈물을 훔치셨다. 민후를 키우면서 가졌던 서러움. 그리고 이겨내기 시작한 그것들. 그래서 성공하였고 결국 민후는 우리나라에서 그 어떤 남자들이라도 부러워할 만한 색싯감을 얻게 되지 않았는가.
어머니의 머릿속에서는 주마등처럼 민후의 어릴 적부터 쭈르르 흩어 지나가고 있었다.
“나 잘 살게. 걱정하지 마.”
민후로서는 그녀에게 지금 다른 말을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단지, 있다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어머니에게 보여주는 것밖에 없었다. 그는 조심스레 눈물을 훔치시는 어머니를 안아드렸다.
어머니는 그 작고 가녀린 손으로 투덕투덕 민후의 등을 천천히 두들기신다.
민후의 결혼식 하객은 대단했다. 강민후라는 배우 자체가 워낙 배우들과의 친밀도나 방송관계자들과도 친분이 두터웠고 친하게 지냈기 때문에 반가운 이들이나 혹은 수많은 ‘톱’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이들도 참석했다.
참석 인원은 너무나도 많았다. 각 방송관계자 중 높은 자리에 있는 이나 혹은 국내를 흔드는 스타들도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윤하 쪽 지인과 민후의 지인을 합친다면 연예계 인원들 총집합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반면 애석하게도 스태프들은 참석이 힘들었다. 워낙 비밀리에 진행되는 결혼식이었기 때문이다.
이중 류승진과 강혜수의 경우는 함께 참석했다. 두 사람도 얼마 전에 결혼식을 올렸었고 민후도 그들의 결혼식에 참석하였던 바가 있었다.
결혼식의 뷔페는 이야기했던 것처럼 채은과 그녀가 함께 일하는 인원들이 맡았다. 본래는 결혼식 비용에 뷔페도 포함되어 있으나 일부러 채은과 이야기를 하여서 그 부분을 뺄 수 있게 노력했다.
하물며 채은과 함께 일하는 인원들의 실력이 좋았기에 이곳 결혼식 뷔페보다도 훨씬 좋은 맛을 내고 있었다. 때문에 뷔페가 맛있다는 말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다.
민후도 윤하나 가족들과 함께 앉아 식사하였다. 신혼여행은 하와이로 3박 4일을 다녀오기로 하였다. 결혼식이 완전히 마무리된 후 하룻밤 국내에서 머문 후에 내일 이른 아침에 출국할 예정이었다.
현재 시각은 여섯 시였고, 열 시까지 진행될 예정이었으며 폭죽놀이나 혹은 술을 마시고, 워낙 끼가 많은 이들이 많아서 그 끼를 볼 수도 있을 것이었다.
“식사는 입에 맞으신가요?”
채은은 각 테이블을 돌면서 손수 물었다. 이들 대부분이 상당한 재력가이기도 하였으며 톱배우들이었던지라 좋은 인상을 심어두면 그녀와 가게에 도움이 될 것이었다.
그녀가 물은 테이블은 승진과 혜수가 함께 앉아있는 테이블이었다. 혜수는 요리사가 무척 아름답자 다소 놀랐다. 그러나 크게 내색하지 않고 빙긋 웃었다.
“네, 아주 맛있네요.”
“얼굴이 익은 것 같네요?”
승진이 한 물음이었다. 승진은 그녀의 얼굴이 상당히 낯익음을 알았다. 이 질문을 그녀는 수차례 받았다. 일단 그녀도 요리사로서는 유명세가 있었고, 특히나 연예인들이 채은이 익숙한 이유는 민후와의 말도 안 되는 스캔들이 났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채은은 당황할 만도 했지만 당당하게 말했다.
“예전에 민후하고 좋지 않은 스캔들이 났었죠.”
“아아, 이거이거 이놈의 주둥아리가 문제지, 문제.”
승진은 자신이 실수했음을 알고는 입을 두들겼다. 민후와 안면이 있는 대부분의 이들이 채은을 익숙 해하거나 알아보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어떤 이는 ‘저 여자는 속도 편해. 자신이 좋아했다던 남자의 결혼식에서 뷔페를 해주고.’라는 생각도 할 것이다.
그러나 남이 뭐라 하든 말든 이것이 채은의 방식이었다.
그들의 생각대로라면 자신이 결혼식에 뛰어들어서 ‘이 결혼은 반대야!’라고 외치며 그들의 결혼식을 망쳐야 한다는 것인가?
어차피 채은 스스로가 가질 수 없는 꿈이 강민후였다. 차라리 좋은 여자인 윤하를 만나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마음먹으면서도 그녀는 다른 테이블로 걸음을 옮기다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이게 왜 또…… 바보같이.”
그녀는 서둘러 남이 볼까 닦아냈다. 이제 정말 한윤하와 강민후는 연인이 아닌 서로의 배우자가 되었다. 채은의 시선에 윤하와 민후가 가족들과 함께 둘러앉아 웃으면서 식사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윤하 씨…… 되게 예쁘다…….”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무척 아름다웠다. 그녀는 애써 웃으며 다시 몸을 돌렸다.
결혼식이 마무리되고 윤하와 민후는 곧장 공항과 가까운 호텔로 직행했다. 첫날밤을 신혼여행지가 아닌 국내에서 지내게 된 것이다. 밤 비행기를 타고 넘어갈까도 했지만 그렇게 되면 서로가 너무 피곤해지므로 차라리 아침에 가자고 판단한 것이다.
호텔에서는 강서구 일대가 모두 훤히 내려다보였다. 최고급 객실에, 최고급 서비스가 준비되어 있었다.
씻고 나온 민후는 하얀색 가운을 두르고 붉은색 와인이 출렁이는 와인잔을 든 채 창밖을 내다보는 그녀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가가 그녀에게 백 허그를 한다.
“여보.”
아직은 어색한 말이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면 익숙해질 것이고, 수년이 지나면 당연해질 것이며, 수십 년이 지나면 항시 듣고 싶은 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이나 함께 창밖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행복한 결혼식을 맞이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아이를 낳고, 한 가정의 아버지, 어머니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