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할리우드의 배우들
국내의 이목이 강민후에게 집중되었다. 할리우드 진출. 감독이 리처드 레이. 지아이오라는 만화를 모르는 이들도 리처드 레이 감독은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이였다.
하물며 얼마 전에 지아이오 주연 중 ‘스텝’이라는 영화에 출연했었던 채닝 테이가 캐스팅되었다는 사실에 국내 팬들은 더욱 놀라워했다. 채닝 테이는 할리우드에서 상당한 힘을 자랑하는 배우였다. 스텝이라는 영화는 말 그대로 춤에 관련된 영화로, 전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았던 영화이며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채닝 테이는 국내에서도 많은 수의 팬층을 확보하고 있었으며 더불어 할리우드 배우의 출연료 중 2위에 올랐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1위는 아이언 보이라는 히어로물의 주연 배우가 거머쥐었다. 로버트 주니어라는 이였다. 과거 마약 복용으로 좋지만은 않은 삶을 살았던 그가 아이언 보이를 찍게 됨으로써 세계적인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로 자리매김한 상황이었다.
그가 연간 아이언 보이로 벌어들인 수익이 860억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고, 2위인 채닝 테이는 640억 원을 받는다고 한다. 채닝 테이는 그런 인물이었다. 연간 600억을 벌어들이는 인물.
그러한 인물과 강민후가 함께 영화 촬영을 진행한다는 것에 국내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 체결된 지아이오의 계약에서는 민후의 경우 11억 원 상당의 출연료를 지급하기로 이야기가 끝난 상황이었다. 추가 수입도 있을 것이지만 실제로 채닝 테이와 상당한 차이가 나지만 민후의 경우 할리우드로 치자면 완전한 신인 배우였다.
11억 원도 국내에서는 평소 민후가 받는 금액의 3배 가까이 되는 돈이었다. 일반 사람들은 쉽게 벌 수도 없는 돈이다.
계약이 완벽하게 체결이 되고 민후는 할리우드로 떠나기 전 휴식기를 가졌다. 할리우드로 가면 준비 기간과 영화 촬영 기간을 합치면 1년 반에서 2년 정도 국내로의 발걸음이 뜸해질 수도 있었다.
아쉬운 마음도 컸지만, 더욱 성장한 배우가 되어 오리라는 생각도 곤두선 상황이었다.
“찍습니다! 하나, 둘, 셋!”
찰칵찰칵!
어머니와 새아버지의 결혼식이 결국 진행되었다. 3개월 전 어머니께서 직접 민후에게 결혼을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행복해 보이셨고 민후는 흔쾌히 수긍했다.
어머니의 지인과 새아버지의 지인분들이 한데 모여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은 후에 혜인이가 민후에게로 다가왔다.
“오빠, 진짜 우리 학교 놀러 올 거지이?”
“그럼.”
“약속.”
“약속.”
혜인이와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민후는 혜인이를 정말 친동생처럼 대해주었다. 문제는 가끔은 동생이 아니라 손녀 같은 느낌이 들어서 문제이기는 했다. 이제 곧 있으면 이번 해가 지나가 혜인이는 열세 살이 되고 민후는 스물아홉이 된다.
실상 약속을 지키려면 2년 정도는 지난 후일 것이다. 식장에서 민후에게 쏟아지는 시선은 끊이질 않았다. 당연한 시선이었고, 많은 사람이 그에게 다가와 ‘할리우드 진출 축하드려요.’라는 말을 했다.
이젠 국내에서도 할리우드라는 의미를 알고 있었다. 할리우드는 그 판 자체가 다른 곳이다. 민후는 그런 그들의 인사에 빙긋 웃으며 답했다.
결혼식이 끝이 나고 식사를 한 후 부모님을 배웅하기 위해서 식장 앞에 선 민후다. 화려한 리무진이 차를 대고 부모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여행에는 혜인이도 함께 간다.
4박 5일 여행으로 결혼식 비용은 새아버지가 부담했으나 여행 비용은 전액 민후가 부담했다. 이것도 그나마 고집을 부려서 민후가 해드릴 수 있었다.
두 분은 크루즈를 타고 해외의 곳곳을 순회하는 여행을 하시게 될 것이었고, 그 4박 5일 후에 민후는 국내에 없을 것이었다. 그나마 가끔 여유가 생기면 들어올 수 있으리라.
“아들.”
어머니가 민후를 꽉 껴안았다. 어머니는 행복해 보이셨지만 민후를 오랫동안 못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눈물을 글썽이셨다. 한편으로는 걱정을 많이 하셨다.
아시아의 배우는 민후 단 한 사람이었다. 하물며 할리우드와 국내의 크기가 다름을 문외한인 어머니도 아셨고, 혹시나 무시를 당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크게 하시고 계셨다.
“걱정하지 마, 나 강민후야. 알아서 자기들이 친해지려고 다가올걸?”
“그래, 우리 아들은 잘할 수 있을 거야.”
어머니는 민후가 입은 검정 정장의 옷깃을 추슬러주었다. 민후는 어서 가라며 손을 휘휘 저었다. 곧 세 사람이 리무진에 오르고 차량이 출발했다. 혜인이와 어머니가 함께 손을 흔들고 창틈으로 민후를 보며 작게 웃고 계신 새아버지가 보였다.
자신도 함께 가고 싶었으나 무척 아쉬웠다. 2년이 지나 할리우드에서 굳건히 입지를 굳힌다면 그때 정도 한번 가족 여행을 다녀왔으면 한다.
* * *
출국하는 날 윤하와 함께 공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손을 꼭 마주 잡고 있었다. 그녀는 며칠 전부터 다른 예쁜 외국인과 눈 맞으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녀의 스케줄도 빡빡한 편이었다. 하물며 민후는 할리우드로 넘어가 자주 와봐야 5개월에 한 번꼴로 국내에 들어올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윤하에게는 꽤 미안한 감정이 컸다. 민후로서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확고한 믿음을 주는 것이었다. 얼마 전 그녀에게 반지를 선물했다. 할리우드에서 꼭 성공해서 돌아오겠다는 의미와 항시 빼지 않겠다며 영원의 사랑을 약속한 의미이기도 하였다.
눈물까지 글썽이던 그녀는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한결 그녀가 민후의 마음을 덜어준 것이다.
밴이 공항에 도착했다. 운전자는 두 사람이었다. 정수와 소속사의 직원이었다. 직원은 밴을 이끌고 윤하를 데려다준 후에 다시 소속사로 들어갈 것이다. 정수는 민후와 함께 2년을 할리우드에서 생활할 것이었다. 물론 외국의 매니저를 받을 수도 있는 노릇이었지만 민후에게 정수만큼 편한 사람은 없었다.
“힝, 내리기 싫어.”
그녀가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부리는 앙탈에 민후는 이마에 입을 맞췄다. 앞 좌석에서 ‘으으…… 나 닭살 돋았어.’ 하면서 정수가 장난스레 하는 말이 들린다.
그녀가 내리기 싫은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민후와 헤어지기 싫어서와 바깥의 기자들 때문이었다. 기자들의 수는 엄청났다.
할리우드 진출은 항상 국내에서 큰 이목을 받게 만든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배우를 알릴 기회이기도 하였고, 자랑거리가 될 수도 있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이제까지 한 번도 추락한 적 없이 순탄대로 걸었던 강민후에 대한 관심은 더욱 뜨거웠다.
“나가보실까.”
민후와 윤하가 함께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카메라 플래시를 가려줄 것이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카메라가 팟팟 하고 터졌다. 선글라스가 환하게 터지는 빛들을 가려주었다. 밴 뒤에서 함께 왔던 경호 차량에서 네 사람이 내리면서 밴 앞을 엄호했고 내리는 순간 둥글게 말아서 그들을 헤치고 지나갔다.
공항 한편에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무사히 진행하고 오겠습니다.”
“두렵지는 않으신가요?”
“두렵진 않습니다. 도전을 두려워한다면 그건 진짜 배우가 아니지요.”
민후는 한 기자의 질문에 털털하게 답했다. 도전을 두려워해서는 나아지는 것이 없었다. 어차피 헤치고 지나가야 하는 것이었다. 기자들과 팬들에게 인사를 끝내고 윤하가 흘리는 눈물을 닦아준 민후는 아쉬운 걸음을 향해야 했다.
윤하가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도착하자마자 전화를 해주어야 할 것 같았다.
비행기는 하루 정도를 꼬박 날았다. 그제야 다시 로스앤젤레스의 땅에 강민후가 발을 디딜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공항에는 저번과 마찬가지로 내쉬가 와있었다.
“또 만날 줄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내쉬는 반갑게 민후를 꽉 껴안아 주었다. 민후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해냈다는 기쁨이었다. 자신이 해냈기에 내쉬를 만날 수 있었다.
“다른 분들이 기다리십니다.”
“예.”
민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출국 전 도착하면 다른 배우들과 만남의 자리를 가질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숙소는 제작사 측에서 내주었다. 42평 정도 혼자 살기에는 큰 크기였고 한눈에 로스앤젤레스가 내려다보이는 고층이기도 하였다. 그나마 다행인 게 이 큰 집에 정수와 함께 지낼 수 있었다. 따로 제작사 측에서 정수의 숙소를 마련해주겠다고 하였지만 민후도 정수도 함께 있고 싶어 했고 그들은 마음대로 하라고 밝혔다.
이곳은 할리우드의 거리였기에 층마다 유명한 배우들이 있다는 소식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연습을 하게 될 곳은 이곳과 멀지 않은 곳이라고 하였다. 상당한 크기의 무술팀 연습실이라고 들었는데, 우리나라보다도 더욱 다양한 도구와 최첨단 장비가 배치되어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할리우드의 운동과 식단은 국내보다도 훨씬 철저했다. 국내는 어느 정도 눈감아주지만, 할리우드는 물 한 모금도 자신 마음대로 먹지 못하는 곳이었다.
특히나 액션 영화였다. 강민후의 몸은 훌륭한 편이었지만 더욱 단단하게 만들려는 제작진의 모습이 보였다.
숙소에 짐을 푼 후 곧바로 배우들이 함께 있는 자리로 이동했다. 스위스 로스앤젤레스 호텔로 이동했다. VIP룸에 배우들과 감독이 모여 있다고 들었다.
이 호텔의 VIP룸의 가격이 하루 이용하는 데에만 우리나라 돈으로 800만 원 정도 한다고 들었으며 룸서비스나 술 등을 마실 것을 고려한다면 1,500만 원을 훨씬 호가할 것이다.
안내를 받아 이동하고 VIP룸의 문을 두들겼다. 문을 열어준 이는 다름 아닌 스네이크 아이 역인 레이 파크였다. 그는 74년생으로 민후보다 훨씬 연장자셨다.
그는 반갑게 민후를 맞아주었다.
“잘 왔어.”
그는 민후를 꽉 껴안아 주며 등을 두들겨주었다. 그의 호응에 민후는 무척 기뻤다. 그와 함께 안으로 들어가자 큼지막한 크기의 호텔 룸이 보였다. 100평 정도 되어 보였고 중앙에는 긴 테이블과 한쪽에는 풀장이 있을 정도였다.
풀장에서 갑자기 어떠한 이가 ‘푸하!’ 하면서 고개를 내밀었다. 뒷모습이 인상적이다. 역삼각형인 등은 근육으로 꿈틀거렸다. 그는 얼굴을 한껏 비비더니 귀에 들어간 물을 털어내고는 시선을 틀었다.
채닝 테이였다. 할리우드에서 2위의 수입을 거둬내는 명실공히 최고의 배우였다. 그는 민후를 보고는 큰 신경은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는 물에서 나오지 않은 채 위스키가 따라진 술잔을 기울여 마시고는 ‘크-’ 하고 작게 감탄한다.
또 한쪽에서는 다트를 하고 있는 이가 보였다. 조셉 고든. 채닝 테이와 평소에 안면이 있던 이로 이 역시도 대단한 배우였다.
생각보다 진중한 분위기가 아니라 노는 듯한 분위기에 민후는 다소 어리둥절했다. 테이블 쪽에는 아무도 앉아있지 않고 어떠한 이들은 포켓볼을 치고 있었고 어떠한 이들은 게임기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포켓볼을 치는 이 중에는 리처드 레이 감독도 있었다.
듣기로는 영화에 관련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한국과는 많이 다를 거야. 즐겨야지, 인생은. 이렇게 하면서도 할 이야기는 다 할 수 있거든.”
레이파크는 어리둥절해 하는 민후를 챙겨주었다. 레이파크로서는 자신과 함께 오랫동안 연기할 스톰 쉐도우 역할인 민후였기에 그에게 큰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헤이! 반가워!”
하나둘 민후를 발견한 이들이 와서 껴안아 주었다. 여성 배우들도 전혀 껄끄럽지 않아 하며 자신들이 먼저 다가와 껴안아 주며 반겨주었다.
“민후! 다트 할 줄 알아?”
민후에게 인사를 했었던 조셉 고든은 그와 빨리 친해지고 싶은 기색이었다. 그는 다트를 쥔 손으로 그것을 들어 올려 보였다. 민후는 ‘물론이죠.’라고 답하면서 하나를 받아 들고는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단숨에 던졌다.
정중앙, 가장 높은 점수에 꽂혔다.
“와우! 이것들 봐요! 한국의 강민후가 다트 천재인데!?”
스톰 쉐도우를 연습하기 위해서 다트를 매일같이 던졌던 것을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고든의 말에 주위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민후, 네 실력을 보여줘.’라며 고든이 하나 더 건넸다.
민후는 단숨에 던졌다.
“와우!”
“오!”
“굿!”
크게 호응성이 일었다. 한국에서는 이 정도를 하면 오바 액션을 한다고 하지만 이쪽 친구들은 이것이 노는 방식인 듯싶었다. 그들은 대단하다면서 민후의 옆으로 몰려들었다.
이번에는 시에나 밀너가 큰 흥미를 보이면서 민후에게 다트를 건넸다. 시에나 밀너도 할리우드의 여배우 중 젊은 편에 속했지만 열다섯 작 정도를 보유한 대단한 배우였다.
미모의 배우로 꼽히기도 하는 여인이었다. 그녀의 호응에 민후는 단숨에 응해주었다. 역시나 이번에도 가볍게 다트를 던짐으로써 중앙에 꽂았다.
“와우!”
짝짝짝!
다시 한번 큰 호응이 일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잘해?’라고 묻는 고든의 질문에 민후는 스톰 쉐도우 역할의 준비를 위해서 일부러 표창을 던지듯 한 시늉을 다트로 했다고 밝혔다.
작은 감탄이 일었다. 표창 던지는 연습을 위해 다트를 던지다니. 그들로서는 신기하고 획기적인 방법으로 다가오는 듯싶었다. 민후는 대충 요령을 알려준 후 레이 감독이 건네는 큐대를 받았다.
어느새 그는 끝냈던 게임의 세팅을 다시 완료했다. 레이 감독이 부드럽게 하얀 공을 치면서 공을 깼다.
타타타탁!
경쾌하고 요란한 소리가 다이를 퉁퉁 튀기는 소리를 내었다. 민후도 포켓볼은 꽤 쳐본 적이 있었기에 노련하게 공을 쳐냈다.
“이젠 말을 놔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감독님.”
그의 물음에 민후는 흔쾌히 응했다. 레이는 털털해서 좋다는 듯 씨익 웃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는 마, 피부도 다르고 눈동자 색도 다르지만 모두 결국 같은 영화를 촬영하는 사람들이니까. 또 대부분 성격이 활발해서 친해지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거야, 더 친해지고 싶다면. 자네 방식대로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레이 감독의 말은 의미심장했다. ‘자네 방식대로’라고 말한 그는 윙크를 찡긋하면서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의 미소의 의미에서 이 할리우드의 스타들과 친해지면 얻을 것이 많다는 뜻이 보였다.
“이런, 내가 졌네.”
민후는 꽤 실력을 발휘해 마지막 검은 공을 넣었다. 그러나 리처드 레이 감독은 털털하게 웃었다. 어느덧 레이 파크가 다시 다가왔다. 그는 민후를 테이블 맞은편으로 이끌었다.
“한국의 한복이 그렇게 예쁘다면서?”
“예?”
그는 궁금한 것이 있다는 표정이었는데, 그가 질문한 것에 민후는 되물었다.
“한복 말이야, 한복.”
“예, 예쁘죠.”
민후는 얼떨떨했다. 레이 파크는 생각보다 한국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이이기도 하였다. 그래도 의외인 것은 외국인이 한복을 예쁘다고 하는 것은 상당히 의외였다.
민후도 어느덧 이 자리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레이 감독은 즐기는 듯하면서도 하나하나 일정에 관해서 설명해주었다.
곧 트레이닝에 들어가게 된다. 그와 덧붙여 지아이오의 제작비에 관련해 장난스러운 말로 그는 말했다. 제작사 측에서 지원하기로 한 금액이 1억 8천 달러라고 하였다. 입이 떡 벌어지는 금액이었다.
그러나 세계 각국에서 수익을 벌어들이기에 금방 그 본전을 메꿀 수 있을 것이었다.
스르륵.
누군가 민후의 어깨 위로 팔 한쪽을 둘렀다. 풀장에 들어가서 위스키만을 홀짝이면서 나오지 않고 있었던 채닝 테이였다. 그는 매력적인 웃음을 지으면서 조금 취기가 돈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실실 웃었다.
“친구, 술은 좀 하나?”
“두말하면 잔소리죠.”
“그럼 나하고 한번 파티를 벌여 봐야지!”
채닝 테이는 괴상한 취미가 있었다. 처음 보는 상대와 술을 마심으로써 경쟁을 벌이는 취미였다. 별 희한한 취미였지만 호텔 룸의 이들은 내심 그 대결을 기대하고 있었던 듯 흥미로운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채닝 테이의 주량은 고래 술이었다. 이 안 대부분의 사람이 채닝 테이의 주량에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상대는 아시아인이었다. 다른 이들은 혹여 아시아인인 민후가 술로써 채닝 테이를 꺾을 수 있는 예상외의 반전을 보여주지는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채닝 테이가 테이블 위로 위스키 세 병과 얼음을 놓았다. 위스키의 도수가 45-50도를 웃도는 것을 생각하면 소주의 2.5배였다. 상당히 센 술이다.
하지만 채닝 테이가 고래 술이라면 민후는 대왕고래 술이었다. 그의 주량은 끝이 없었고 잘 취하지 않았다. 채닝 테이를 충분히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곤두섰다.
어차피 이 분위기를 즐기기로 한 마당에 채닝 테이와의 대결이 즐겁기만 하다..
“크아-!”
그는 단숨에 한 잔을 털어 넣었다. 긴말도 짧은 말도 없이 그저 마시는 것으로 대답했다.
민후도 한 잔을 털어 넣었다. 시원한 위스키가 입안에서 맴돌다 목구멍 뒤로 뜨겁게 내려가 가슴을 지끈지끈 달궜다. 독한 술이었지만 그 향과 맛만은 무척이나 좋았다.
한 잔, 두 잔, 석 잔, 넉 잔…… 계속해서 두 사람은 위스키를 들이켰다. 채닝 테이와 주위의 이들은 꽤 놀란 기색이다. 민후에게서 취기를 찾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에 반면 채닝 테이는 벌써 ‘헤헤’거리면서 웃으며 반쯤 눈이 풀려가고 있었다.
“친구, 술 좀 하는데?”
그는 주먹을 말아쥔 손을 내밀었다. 민후도 툭 하고 그의 손을 마주쳐 주었다. 채닝 테이는 오랜만에 적수를 만났다는 표정이다. 그러나 적수는커녕, 상대도 되지 않고 있는 그였다.
그는 몇 잔을 더 마시고 난 후 그대로 테이블 위로 고꾸라졌다.
“요호우우우!”
“와우!”
“새로운 위스키 마시기 챔피언을 따낸 한국에서 온 강민후!”
채닝 테이가 민후에게 술로써 져서 고개를 테이블에 박았다는 것에 사람들은 무척 좋아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채닝 테이의 술은 정말 센 편이었고 이 안에서 이겼던 이는 이제까지 없었기 때문이다.
“채닝 테이! 패배자!”
“패배자! 우우우!”
결국, 유명한 배우들도 노는 것은 똑같이 유치했다. 그러나 재미만 있으면 되지 않겠는가. 그들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민후도 그 무리에 껴서 웃었다.
로스앤젤레스의 숙소에서 거주를 시작한 지 1주일이 되었다. 아직 본격적인 촬영 준비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3일에 한 번꼴로 ‘작품 이야기를 하겠다’는 명목으로 모여서 놀았다.
거의 말이 ‘작품 이야기’이지, 친목을 다지고 노는 자리였다. 그리고 두 번 정도 더 채닝 테이와 주량 대결을 펼쳤던 민후는 모두 이겨냈다.
그런데 좋은 것은 채닝 테이와 계속해서 술잔을 꺾을수록 그와의 친밀도가 꽤 좋아지고 있었다. 채닝 테이의 첫인상은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풀장에서 갑자기 상체를 내민 그는 물을 한 번 털어내고는 민후에게 가벼운 시선만을 주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겪어본 채닝 테이는 장난기가 많았고 누릴 줄도 아는 이였으며 베풀 줄도 아는 이였다.
오늘 같은 경우는 채닝 테이가 민후를 숙소로 초대하였기에 그의 집에서 각종 게임을 하고 먹을 것을 즐기며 놀았다. 그의 숙소는 민후가 머무는 곳보다도 훨씬 더 좋았다. 하긴, 연간 600억 이상을 벌어들이는 100만 불짜리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사내였다. 그러한 그가 10억 원을 받는 민후와 숙소의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하였다.
그나마 가장 필요한 대인관계는 수월하게 풀려가고 있어서 무척이나 좋았다.
“민후, 이리 와 봐. 내 보물들을 보여줄게.”
배가 꺼지자 그는 민후를 지하주차장으로 안내했다. 한 사람이 숙소로 사용하기에는 무척이나 주차장이 넓었다. 물론 집도 100평을 넘는 집이었다.
주차장으로 들어선 민후는 작은 감탄을 흘렸다. 차에 큰 관심은 없었으나 감탄을 흘리기에는 충분했다.
남자들의 로망 페라리 458의 붉은색 차량이 보였다. 3억 5천만 원의 가격을 가진 비싼 차였다. 그 옆으로는 람보르기니 가야르도 모델이 서 있었다. 푸른빛을 띠며 주차되어 있었다. 람보르기니 가야르도의 경우도 4억 원 정도를 하는 어마어마한 가격이었다.
차 두 대 값만 하여도 7억 원을 넘어섰다. 그와 더불어 숙소이기에 차량 두 대만 가지고 온 것이지, 실제 자신의 집에 가면 더욱더 많은 차량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채닝 테이는 소개했다.
“헤이! 민후.”
채닝 테이는 민후에게로 차 키를 던졌다. 그것을 받아 든 민후는 의아한 표정이었다. 채닝 테이는 작게 웃었다.
“넌 너무 고지식해. 너 정도 스타라면 이 정도는 타줘야 멋이 나는 거 아니겠어? 한 번쯤은 정말 젊은 사람처럼 즐겨봐.”
그렇다. 민후도 실상 페라리 정도는 끌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였다. 국내에도 이름 있는 스타 중 페라리나, 람보르기니를 끄는 이들이 몇 사람 있었다.
민후도 연간 10억 원 이상을 벌어들이는 배우가 되어있었다. 충분히 끌 재력이 되었으나 그는 큰 필요성을 느끼진 못했다. 확실히 채닝 테이의 말처럼 민후가 고지식했기 때문에 그 정도의 수익을 올리면서도 국산 차인 그랜져를 애용하는 것이었다.
물론 다른 이들은 그랜져를 타면서 배가 불렀구나! 라고 할 수도 있는 노릇이나 강민후의 재력을 생각한다면 그랜져는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었다.
민후는 씨익 웃었다. ‘젊은 사람처럼 즐겨봐.’라는 말이 왠지 와 닿았다. 그러고 보면 자신은 조금 달랐다. 일반적으로 다른 이들이 쉰다섯 늙은이에서 어린 강민후가 되었다면 인생을 즐겼을 것이다.
그러나 민후는 한결같았다. 노력, 일, 공부, 운동 네 가지 패턴의 반복이었다. 돈으로 놀이를 산 적도 없었고 과시한 적도 없었다.
어쩌면 채닝 테이의 말처럼 한 번쯤은 즐겨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어디 가요?”
“여자들이 몰려있고 잡아가쇼, 하고 있는 곳. 롱비치.”
채닝 테이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면서 차량에 올랐다. 민후도 버튼을 눌렀다. 차 문이 위로 올라가는 것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차에 탑승하자 20년 후의 미래에나 있을 법한 차량에 오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최첨단 시스템. 기어를 넣는 곳부터도 남달랐고 화려했다.
채닝 테이의 차량이 먼저 주차장을 나섰다. 민후가 탄 람보르기니도 천천히 그의 뒤를 쫓았다. 엑셀은 너무나도 가벼웠다. 밟으면 단숨에 100㎞를 질주할 정도였으며 힘 자체가 살짝 밟아도 느껴졌다.
지이잉.
앞쪽에서 도로에 진입한 페라리의 뚜껑이 열렸다. 민후도 피식 웃었다. ‘그래, 한번 즐겨보자.’ 그도 버튼을 찾았다. 두리번거리던 그는 버튼을 눌러 람보르기니의 뚜껑을 열었다.
바람이 조금 찼으나 괜찮았다.
주위로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앞쪽에는 페라리, 뒤쪽에는 람보르기니 흔하게 찾아볼 수는 없는 광경임이 사실이었다. 민후는 선글라스를 찾아내었다.
단숨에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휘이이익!
어디선가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틀자 그곳에는 금발의 여성 두 사람이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정작 시선을 끌기 위해 휘파람을 불어놓고 민후와 채닝 테이의 시선이 향하자 고개를 틀었다.
끌기는 했지만, 막상 부끄러운 듯싶었다. 사람들은 돈을 동경하고 아낀다. 이런 차량을 끄는 이를 보면 그저 부러워할 뿐이고, 여자들의 경우는 타보고 싶은 욕구를 가진다.
민후는 잘 몰랐으나 요즘의 시대는 월세방을 살아도 밴츠를 끄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우스운 일이었으나 실제로 그러한 이들이 꽤 되었다.
남자의 자존심이라도 세우겠다는 심보였다.
“헤이! 나 누군지 알아!?”
시선을 틀었던 두 여성에게 채닝 테이가 물었다. 두 금발의 미녀는 그를 살피더니 눈을 크게 떴다.
“그래! 난 채닝 테이야! 그런 난 오늘 롱비치에 가서 즐길 거라고! 사랑한다!”
“꺄아악!”
두 사람이 알아본 것 같아 보이자 그는 자신을 엄지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오늘만큼은 신나게 즐길 거라는 것을 과시했다. 두 여성이 비명을 질렀다. 채닝 테이는 세계적인 스타였다. 두 여성은 오늘 할리우드의 최고의 배우 중 한 사람을 본 것이고 이목을 끈 것이다.
신호가 바뀌고 페라리와 람보르기니가 출발했다. 목적지는 롱비치. 해안석이 아름다운 곳. 9㎞의 넓은 백사장과 쾌적한 휴양지로도 꼽히는 곳.
또한 채닝 테이의 말처럼 여자들이 아닌 척하면서도 남자를 못내 기다리는 가슴 설레는 곳이었다.
롱비치 인근에 다다랐다. 도로에 양쪽으로 뻗어진 야자수 나무는 무척이나 아름다워 보였다. 민후의 시선에 거대한 유람선이 보였다. 퀸메리호였다.
퀸메리호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으며 한때는 유람선이었고 한때는 전쟁 수송선의 역할을 하였던 뜻이 깊은 존재이다. 선박으로서의 생명을 다한 현재는 호텔이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주차장 쪽에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으며 그중에는 관광객들도 상당했다. 결과적으로 현지인이든 관광객이든 람보르기니와 페라리가 함께 등장하자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더불어 차에 탑승한 두 사람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지만 딱 보기에도 훌륭한 외모였기에 여성들은 절로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차를 주차할까 했지만 채닝 테이도 그건 무리수라고 여긴 듯싶었다.
민후도 딱 둘러보니 우리나라 사람들도 상당수 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단숨에 사람들은 몰려들 것이다. 특히나 채팅 테이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그렇게 되면 번잡해질 테고 민후나 테이 두 사람 모두 난처해진다. 채닝 테이는 주차장 쪽을 한 번 비잉 돌았다. 민후도 그처럼 함께 돌고는 주차장을 나섰다.
아쉽게도 두 사람에게도 제약은 있었다. 만약 채닝 테이가 세계적인 스타가 아니었다면 아리따운 미녀에게 ‘이봐, 타겠어?’라고 물었을 것이다.
두 사람이 지금 즐길 수 있는 것은 부러움의 시선과 동경뿐이었다. 롱비치 해안선을 따라서 쭉 이동했다. 어떠한 이들은 롱비치 한편에 자리를 잡고 요가를 하는 이들도 있었고, 돗자리를 펴놓고 이야기를 하는 이들도 보였다.
롱비치는 무척 아름다웠다. 푸르른 바다는 따뜻해 보였으며 모래사장도 우리나라와는 많이 달랐다.
우리나라의 모래사장의 경우 실상 많이 더러웠다. 그러나 이곳은 확실시하게 법을 따지고 어길 시 제재가 가해진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인드도 쓰레기를 버리지 말자고 인식되어 있었기에 모래사장의 모래들은 햇빛에 반사되어 에메랄드처럼 빛났다.
한 번 둘러본 후 다시금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어느덧 순식간에 채닝 테이의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더 재밌게 해주고 싶었는데, 그러기가 힘드네.”
“충분히 재밌었어요.”
채닝 테이는 아쉬운 표정이었다. 진짜 재미를 느껴주게 하겠다고 말해놓고 정작 보여준 건 롱비치의 전경과 사람들의 시선뿐이었다. 그러나 민후는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배우로서 가지는 동경의 시선이 아니라 돈에 관련한 동경의 시선에서 어떠한 재미를 가지는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한지. 또 4억 원짜리 차를 모는 기분은 어떤지를 느꼈다.
채닝 테이는 미안해했지만 민후는 짧았던 세 시간 남짓이 무척이나 즐거웠었다.
“타, 데려다줄게.”
채닝 테이의 숙소와 민후의 숙소는 코앞이었다. 페라리 차량의 조수석에 오르자 금방 숙소 앞에 도착했다.
“오늘 저녁 잊으시면 안 돼요.”
“참, 오늘 특별한 손님이 있는데 함께 가도 될까?”
“누구 말씀하시는 거예요?”
“말했잖아, 특별한 손님이라고. 말해줄 순 없어. 확실히 특별한 손님이긴 해.”
그는 기대해도 된다는 듯이 검지를 움직였다. 민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밥숟가락 하나 늘어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민후는 오늘 저녁 감독과 배우들에게 자신이 직접 만든 요리를 대접해주기로 하였다.
리처드 레이 감독은 분명 민후에게 자신의 방식대로 친해져 보라는 말도 하였다. 분명 함께 촬영하게 될 이들은 세계적인 스타들이었고 더욱 친해지면 민후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촬영 준비를 시작하는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그 전에 그들에게 자신이 손수 만든 음식을 대접함으로써 더욱 친근하게 다가가 보고 싶기도 했다.
민후가 원하는 음식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한인타운에 정수와 함께 가서 샀다. 두 사람 모두 묵직한 봉투를 들고는 숙소에 올 수 있었다.
오늘은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볼까 한다. 대략 여덟 명 정도의 인원이 식사해야 하니 넉넉해야 했다. 옆에서 정수는 재료를 다듬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만들기 시작한 것은 불고기였다. 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음식으로 잘 알려진 음식이었다. 그다음으로는 잡채를 만들었다. 잡채도 외국인들에게는 꽤 인기가 좋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 후는 그들의 입맛에 맞춰 빵을 구웠다. 숙소 자체가 좋은 곳이기에 오븐도 있어서 좋았다. 빵은 베이글을 만들었다.
주메뉴는 스파게티였다. 따로 소스를 사지 않고 직접 민후가 만들기로 하였다. 일단 그는 소스와 재료만 볶아 놨다. 이유는 면이 불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빵이나 수프 등을 먼저 즐기고 그 후에 만들어 둔 스파게티를 즐겨도 나쁘지 않았다.
하나둘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레이 감독, 아놀드 토인비, 고든, 퀘이트, 밀너, 콜스, 파크.
“이거 불고기 아냐?”
“예, 맞아요.”
식탁에 차려진 불고기와 잡채 등을 보고 가장 먼저 이채를 띤 것은 파크였다. 한국을 사랑하는 그는 불고기도 좋아했다. 그는 단숨에 손으로 집어 입에 넣었다.
“민후가 음식 솜씨가 좋은데?”
“테이를 술로 이길 때부터 전 알아봤죠.”
밀너는 파크의 말에 민후를 칭찬하듯 말했다. 정작 칭찬받은 민후는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식탁에 모두가 앉았다. 수프가 개인의 앞으로 주어지고 빵과 잼, 불고기 잡채가 차려졌다. 와인도 세 병 준비해놓은 상황이었다.
“테이, 이 지각쟁이 같으니라고.”
레이 감독이 말릴 수 없다는 듯이 양손을 들어 올려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자주 늦기는 한다.
“다른 손님을 데려온다고 하던데요?”
“손님? 누구?”
민후는 실상 다른 이들도 알고 있을 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전혀 몰랐던 사실인가 보다. 다른 배우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중 밀너만 ‘아!’ 하면서 웃었다.
“왜, 누구인지 알아?”
“대충 짐작이 가요. 사람은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녀는 궁금증을 유발하기만 할 뿐, 누구인지는 콕 집어 말해주지 않았다.
“이거 수프가 식겠어. 우선 먼저 먹지.”
레이 감독은 기다리다 안 되겠다 싶었다. 강민후라는 친구가 자신들을 위해 손수 준비해준 음식이었다. 그 맛도 무척 궁금했다. 막 모두가 수프를 뜨려던 때였다.
문이 열리고 채닝 테이가 들어왔다. 그는 뒤쪽을 가리켰다.
“손님이 왔어요.”
“헤이! 여러분!”
채닝 테이가 뒤쪽을 가리키자마자 문이 벌컥 열리면서 익숙한 얼굴의 중년 남성이 들어왔다. 턱수염을 기른 그는 양팔을 들어 올리면서 장난스럽게 웃었다.
사람들은 그를 토니라는 이름으로 더욱 잘 알고 있다. 아이언 보이의 로버트 주니어였다. 할리우드의 몸값 1위이자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현시대 최고의 주가를 자랑하는 배우였다.
“역시.”
밀너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모습이다.
“왜, 나 올 거 알고 있었나?”
“어벤져 촬영 끝나고 이쪽 근방에서 쉬고 있다고 들었어요.”
“이쪽은 너무 소식이 빠르다니까. 내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말이야.”
밀너의 미소에 주니어는 능청스럽게 웃었다. 레이 감독이 몸을 일으켜 그를 꽉 껴안아 주었다.
“오랜만이야, 주니어.”
“감독님은 더 젊어진 것 같아요. 근데 얼굴은 여전히 별로네요.”
“하하, 입담하고는!”
레이 감독은 그의 재치 있는 말에 기분 나빠하지 않고 웃었다. 다른 이들도 어느 정도 안면이 있는 것인지 그를 반겨주었다. 민후로서는 로버트 주니어와의 만남이 무척 기대되었다.
“자, 이번 영화 대박을 기원하면서! 푸슈융!”
주니어는 아이언 보이 영화에서처럼 손에서 레이저라도 쏘려는 것인지 한쪽 팔을 쭉 뻗어 사람들을 겨냥했다. 그에 사람들은 입으로 ‘푸슈융’이라고 효과음을 내주었다.
“이런, 실수.”
주니어의 팔이 민후에게 향했다가 그는 손을 거두었다. 아무리 주니어가 유명한 인사이고 민후보다 나이도 훨씬 연장자이지만 이렇듯 초면에 팔을 뻗어서 겨냥하는 건 옳지 못한 것이다.
그가 알아서 손을 걷자 민후는 빙긋 웃었다.
“안녕하세요. 영화 정말 잘 봤어요.”
민후도 그라는 배우를 꽤 좋아했다. 그는 수십 년 경력의 배우였지만 감옥에 수감된 적도 있는 이였다. 그러나 어느덧 그것을 딛고 일어서 세계를 누비는 재력가에 배우가 되어 있었다. 자신의 과거를 딛고 일어선다는 것. 그것이 쉬운 것은 분명 아니었기에 그 나름대로 노력이 보였다.
“자네도 내 팬인가?”
“예.”
“하! 이놈의 인기는. 아시아에서도 못 버린다니까.”
그는 민후의 대답에 힘이 턱 풀린 듯 자리에 앉으면서 콧대에 엄지와 검지를 얹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잘난 척을 하는 듯 보이지만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참, 이제 준비하겠습니다.”
민후는 손님이 모두 왔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나 스파게티를 만들기 시작했다. 등 뒤로 그들의 감탄사가 들려온다.
“맛있는데?”
“음, 이 불고기 정말 맛있어. 저 친구 이름이 뭐지?”
“강민후예요.”
“후! 이 음식 정말 맛있어. 최고야.”
모두 맛있게 먹어주는 것 같았다. 민후로서는 기분이 좋았다. 특히나 주니어는 과장되게 감탄하면서 민후를 짧게 ‘후’라고 줄여 불렀다.
스파게티를 접시에 담아서 연장자순으로 넘겨주었다. 민후도 그제야 자리에 앉았다.
민후는 자신은 천천히 먹는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들보다 훨씬 빨리 자신의 접시가 비워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성질 급한 한국 사람이란…….’ 하고 피식 웃었다.
“자네 오늘 술도 한잔하겠는가?”
“저도 마시고 싶은데, 제가 놀러 왔다는 게 이야기뿐이지 어찌 놀러 왔겠습니까, 감독님.”
레이 감독이 와인병을 집어 들며 물었다. 주니어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소문은 분명 휴식을 하기 위해 왔다고는 하겠지만 실질적으로 로버트 주니어가 쉴 시간 따위는 없었다. 그나마 이 자리도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기에 참석할 수 있었다. 식사를 끝내면 바로 돌아가야 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밥 먹는 보람이 있습니다. 불고기가 아주 맛있어. 후, 다음에도 부탁해.”
“감사합니다.”
주니어는 배가 많이 고팠던지 스파게티를 단숨에 비워내고는 남아있는 베이글에 불고기를 올려서 먹었다.
식사가 끝이 나고 가장 먼저 주니어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선글라스를 끼고는 쿨한 인사를 남기고는 바람과 같이 퇴장했다.
그를 다시 만나게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짧지만 유쾌하고 강렬한 만남이었다.
접시들이 치워지고 좁은 숙소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놀기 시작했다. 민후는 자신만의 끼를 발휘했다. 대한민국에 화투라는 것이 있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와우!”
“후! 놀라워!”
어느새 주니어처럼 다른 이들이 민후를 ‘후’라고 줄여서 부르고 있었다. 나쁘지 않은 호칭이었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서 그나마 더욱 가까워진 거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이제 곧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가게 되니 이런 자리도 흔하게 나지는 않을 것이기에 다른 배우들도 민후의 화려한 손놀림을 보면서 재미있게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