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할리우드의 오디션
사람은 언제나 부족했고 많은 것을 갈망한다. 강민후에게는 배움의 길이 그러했으며 연기를 위해서라면 더욱더 큰 희생을 하고는 하였다. 민후는 남은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총력을 기울여서 박차를 가하였다.
그나마 자신이 내세울 수 있는 쌍검술을 더욱 탄탄히 연마하고 회화 부분도 더욱 신경을 썼다. 일본어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정작 일본의 닌자를 표현하는데 일본어를 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웬 말이란 말인가.
그렇게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탄탄히 배워놓은 민후는 소속사 측에서 준비해준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제작사 측은 비행기나 타 여행경비는 도움을 주지는 않았지만 1차 서류전형 합격자들의 경우 대부분 해당 나라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비고 있는 연기자들이기 때문에 가이드를 붙여주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하루를 꼬박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고서야 민후는 루이 암스트롱 뉴올리언스 국제공항, 즉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공항에 도착하자 정수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이번 여행에 민후는 정수와 경호원 두 명을 대동하였다. 혹시나, 라는 일은 분명히 존재할 수도 있었기에 경호원을 일부러 대동한 것이다. 휴대폰을 꺼내든 민후는 제작사 측 가이드와 통화를 나눴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플래카드에 어눌한 글씨로 ‘배우 강민후 씨, 로스앤젤레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고 적혀 있는 문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강민후 씨를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존 내쉬라고 합니다.”
민후와 일행을 반겨준 가이드는 푸른색 눈동자에 아직 젊은 청년이었다. 올해 나이 스물셋 정도 되는 이였다. 정수도 영어는 웬만한 이들보다 능통한 편이었기에 알아들었다. 단지 경호원 두 사람은 듣는 둥 마는 둥 고개를 갸웃했다.
“반갑습니다. 강민후라고 합니다.”
“보내주신 영상 자료들을 보고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 현재 꽤 관심을 받고 계세요.”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민후는 싱긋 웃었다. 실상 1차 서류전형에서 민후는 자신이 출연했던 작품들에 관련한 자료 또한 함께 보내주었다. 참고하라는 의미로 보낸 것이었다.
아무래도 민후가 아시아에서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할지라도 아시아 국가일 뿐이었다. 세계적으로는 뻗어 나가지 못했고, 그를 모르는 이들은 많았다.
특히나 미국은 더욱 그럴 것이었으며 우리나라의 작품을 접하지도 못했을 것이기에 보낸 자료였다.
“특히나 유원이 역할 참 좋더군요. 하하! 유원이 다뤼는 백만 불짜리 다뤼, 끝내줘요!”
감회가 새롭다. 미국인이 자신이 연기한 그 역할을 따라 한다는 것이 말이다. 다행이었다. 자신이 보낸 영상들을 보고 제작사 측에서 꽤 관심을 두고 지켜본 것 같았다.
“멀지 않은 곳에 묵을 숙소가 있습니다. 가시죠.”
내쉬는 능청스럽게 그들을 안내했다. 공항 밖으로 나오자 그가 끌고 온 밴 차량이 보였다. 밴에 오른 정수는 작은 감탄을 흘렸다.
“이 편안함…… 차량마저도 할리우드와 우리나라는 급이 다르구나.”
민후는 웃음을 흘렸다. 정수는 일하러 가는 것이었지만 해외로 나간다는 것에 무척이나 기뻐했다. 일정은 총 3박 4일이었다. 하루는 제작사 측과 대화를 나누고 어떤 식으로 자신은 임하고 싶은지를 토론을 나눌 것이며 또 하루는 연기 오디션을 보게 될 것이었다.
이동한 숙소는 노르망디 로스앤젤레스 호텔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 한인타운이 있었다. 계산을 끝내고 룸으로 올라가 짐을 모두 풀고 나왔다.
내쉬도 민후의 바로 아래층 룸을 예약하였다고 한다.
3박 4일간 그는 철저히 민후 일행을 안내하고 도와줄 것이었다. 예정대로 모든 인원이 짐을 풀고 민후의 스위트 룸 앞으로 왔다. 일단 가장 먼저 식사를 해야 했다.
가볍게 브런치로 식사를 끝낸 후 내쉬의 안내를 받아서 한인타운을 돌아보기도 하였다. 한인타운은 로스앤젤레스를 국가라고 치자면 미국과 연관 없는 전혀 동떨어진 마을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간판으로 ‘종합병원’, ‘월톤약국’, ‘비빔밥’, ‘불고기’ 등 한글로 써진 간판들이 많이 보였다.
한인타운을 둘러본 후에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로 나섰다. 명예의 거리는 그라우맨스차이니즈 극장 앞을 중심으로 영화, TV, 음악 등의 세계를 누비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이름이 새겨진 별 모양의 동판이 도로에 박혀 있기에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라고 불린다.
3㎞에 가까운 거리이며 독특한 분장의 사람과 거리에서 춤이나 노래를 부르는 행위예술 등도 볼 수 있었다. 관광객들이 로스앤젤레스에 오면 가장 많이 찾는 명소이기도 하였다.
관광객들은 붐볐고 그중에는 우리나라의 인원들도 있었다. 간혹 민후를 보고는 반가운 기색을 보이는 이들도 찾아볼 수 있었다. 민후도 오늘따라 왠지 국내의 팬들이 반갑게 느껴졌다. 그리고 강민후를 로스앤젤레스에서 만나게 된 이들 역시도 무척이나 반가워하였다.
관광을 끝낸 후 호텔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과연 자신이 다시 이곳으로 이른 시일 내에 오게 될지, 아니면 시간이 조금 멀게 든 후 오게 될지는 내일과 모레 오디션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끝내는지에 따라서 달린 것이었다.
“이병운 씨도 도착했겠네요.”
“아, 이 시간에 오시나요?”
“제가 확인했던 바로는 그렇습니다.”
민후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쉬는 추가로 ‘웬만한 오디션을 보는 아시아 스타들은 같은 호텔에서 머물 겁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내쉬가 주는 좋은 정보였다.
아시아 스타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은 경쟁자들을 서로 눈여겨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였으며 다르게는 친해질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였다.
호텔에 도착하고 씻은 후 호텔 내부의 식당에서 식사하기로 이야기를 나눴다. 막 들어선 때 민후는 프런트 앞에 서 있는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이병운이었다. 그는 체크인을 하고 있는 듯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헤이.”
내쉬는 자신의 동료를 발견하고는 손을 들어 인사했다. 그 때문에 병운도 고개를 돌렸다가 민후를 발견하고는 미소를 보였다. 그의 웃음은 무척 살인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오죽하면 일본에서 그를 ‘살인미소 병운’이라고 부를까. 병운은 국내에서도 대단한 인기를 얻고 있었지만, 일본에서도 국내 못지않은 인기를 끌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이민지라는 배우와의 열애설을 인정하기도 하였는데, 실제로 열애설이 밝혀진 것치고 큰 타격은 받지 않기도 하였다. 그의 여자 친구인 이민지는 또렷한 이목구비와 청순한 매력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여배우 중 한 사람이기도 하였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너도 오디션 보러 온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그는 민후의 인사를 받아주며 말했다. 민후가 조사를 하고 하였던 것과 같이 병운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민후는 비공식으로 오디션을 보는 것이기는 하였지만 병운이 그 소식을 듣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병운은 일단 짐을 풀어야 할 것 같았기에 이 자리에서는 서로가 긴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다. 매니저들이 서로 연락처를 공유받은 후에 저녁 식사를 함께 하기로 약속을 하였다.
민후는 먼저 올라서 스위트 룸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한편에 세워진 장 관장이 건네준 가검 두 자루를 잠시 바라보았다. 저 두 개의 검 자루가 자신을 빛낼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설령 캐스팅되지 못한다고 하여도 민후에게 후회는 없었다. 적어도 자신은 최선을 다했으며 이번 기회가 아니라면 다음 기회는 그에게 충분히 있을 테니 말이다.
정수를 통해서 병운의 연락처를 받은 민후는 씻은 후에 호텔 식당으로 내려갔다. 이름 좀 있는 호텔답게 상당히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식사하기 위해 내려왔던 민후는 병운과 더불어 그와 마주 앉아있는 두 사람을 볼 수 있었다.
기무라 타쿠. 아베 히로시였다. 일본을 이끌어가는 톱배우들이었다. 하물며 기무라 타구의 경우는 원래 가수 출신이었다. 그러나 그는 노래보다는 연기력으로 더욱 성공했다. 일본 일도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는 배우였다.
그리고 아베 히로시. 우리나라에 송석우나 손남원 같은 베테랑 배우들이 있다면 일본에는 아베 히로시가 있었다. 뛰어난 연기력과 소름 끼치는 감정이입을 보여주는, 민후도 인정하는 사람이었다.
민후는 두 사람을 보고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그들에게 다가서 일본어로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아, 반가워요.”
“반가워.”
두 사람은 민후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병운은 민후의 일본어 발음에 상당히 놀란 기색이다. 자신보다 더 좋은 것 같았다. 실질적으로 병운은 일본에서 인기가 많은 만큼 그곳에서의 작품도 몇 차례 했었다.
물론 국내 드라마가 일본으로 넘어가면서 이병운 신드롬을 일으킨 것도 있기는 하였지만, 그는 일본에서의 영화도 몇 작 하였었다. 그러던 중 ‘영웅’이라는 영화에 이병운이 우정 출연을 한 적이 있었고 그 영화에 기무라 타쿠와 아베 히로시가 출연하였었다.
그것을 계기로 어느 정도의 친분을 두고 있던 병운이다.
“42.195㎞는 정말 잘 봤어. 한국에 이런 젊은 친구가 그렇게 실력이 있는 이가 있을 줄은 몰랐거든.”
“저희 나라에서 원작으로 만들었던 작품도 대박이 났죠. 근데 살짝 저는 그 친구가 아쉽더군요. 이 강민후라는 친구가 맡아주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과찬입니다.”
아베 히로시는 연륜이 상당한 배우였다. 내일모레 쉰이라는 나이를 실감할 수 있을 나이다. 그리고 기무라 타쿠 역시도 적지 않은 나이를 먹었다.
민후가 아베 히로시를 인정하는 이유 중 하나는 스톰 쉐도우라는 역할을 맡기에는 연륜이 꽤 된다는 것이다. 물론 할리우드는 나이로 연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덧 나이를 훌떡 먹어버린 수많은 배우가 있으나 그들은 여전히 두꺼운 팬층을 확보한 상태에서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실상 스톰 쉐도우는 그에게는 힘든 도전일지도 모르는 것은 사실이다. 아베 히로시는 자연스럽게 말을 놓았고 기무라 타쿠는 눈치를 조금 보는 성싶더니 자연스럽게 말을 놓겠다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양한 식사들이 나왔다.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키무라 타구와 아베 히로시에게서 은근슬쩍 민후와 병운을 견제하는 눈초리가 보였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민후와 병운이 그들을 견제하고 있음이 느껴질 것이다. 키무라 타쿠와 아베 히로시는 분명 스톰 쉐도우가 일본의 검을 구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생각될 수 있으나 일단 이병운이라는 배우는 오래전부터 할리우드를 준비해왔던 배우이다.
그와 꽤 친분이 있던 두 사람은 그가 촬영장에서 매일같이 영어 공부를 하던 것을 보았고 이유를 물었을 때 ‘할리우드 진출을 위해서’라고 답하였다.
오랜 시간 준비했던 그것을 지금 병운은 도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강민후. 강민후가 출연하였었던 찬란한 재산과 42.195㎞는 일본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특히나 42.195㎞ 당시 강민후의 나이는 스무 살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소름 돋는 연기력은 절로 아베 히로시가 감탄을 했을 정도이다.
실상 그 당시 일본에서 아베 히로시는 강민후만큼의 나이에 그 정도 연기를 펼쳤던 이를 보지 못했다. 그는 강민후를 천재성이 짙은 친구라고 생각했고 어느덧 8년이 흘러 이 자리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만남은 우연이기도 하지만 필연이기도 하였다. 오디션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진행이 된다. 그러나 네 사람은 같은 날에 면담을 하게 되고 오디션을 보게 되는 것이다.
“젊은 친구들이 한번 분발해보길 바라.”
식사하며 이야기를 마치고 먼저 아베 히로시와 키무라 타쿠가 함께 일어났다. 두 사람은 서로 친분이 무척 두터운 편이었다. 일본 열도에서는 두 사람이 친하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 있었다. 그 때문에 서로에 대한 거부감도 없어 같은 방에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뭘 준비해왔어.”
“예?”
두 사람이 일어서고 병연과 민후는 이야기를 좀 더 나누다 가기로 하였다. 두 사람의 앞으로 커피가 나왔다.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묻는 그의 말에 민후는 고개를 갸웃했다.
“다른 특별한 걸 준비한 거 같은데.”
병운은 무척 예리했다. 그도 강민후라는 배우에 대해서 숱하게 들은 바가 있었다. 그 때문에 그가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무모하게 이곳에 오지는 않았을 거라고 여기고 있었다.
민후는 머쓱하게 웃었다.
“알았다.”
병운은 그가 말하기 꺼림을 알았다. 민후로서는 그것이 비장의 카드이기도 하였다. 실상 기무라 타쿠, 아베 히로시, 이병운에 비한다면 강민후는 가능성이 더 적은 배우일지도 몰랐다.
그들은 꽤 이름값이 큰 거물들이었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서로가 헤어졌다. 헤어지기 전 이병운은 ‘건투를 빈다.’라고 말했다. 이제부터는 정말 경쟁이었다.
살아남는 자는 다시 이곳 로스앤젤레스에 오게 될 것이고, 아닌 자는 다음을 기약하여야 했다.
리처드 제이 감독은 세계적인 감독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대표적으로 ‘미라’ 시리즈를 탄생시킨 감독이다. 미라는 세계적으로 상당한 이슈를 끌었던 영화로 시리즈3까지 개봉되었고, 개봉할 때마다 상당한 기록을 자랑하였었다.
그와 더불어 그는 ‘스콜피온’이라는 영화 또한 흥행시켰다. 그의 영화는 대부분이 액션, 스릴러, 판타지 장르였다. 그리고 주로 사막의 피라미드를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리처드 제이가 이번에 지아이오의 감독을 맡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크게 관심을 두고 있었다. 면담을 하는 자리에서 민후는 리처드 제이 감독과 아놀드 토인비, 얼굴을 알 수 없는 한 배우를 볼 수 있었다.
제작사 측은 오디션에만 참여하게 되고 면담은 리처드 제이 감독과 아놀드 토인비, 얼굴 없는 배우 레이먼드 파크. 이 세 사람과 진행이 된다고 하였다.
그들을 마주하는 순간 민후는 짜릿한 희열을 느꼈다. 그도 인지도 큰 배우였으나 세계적인 배우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앞에는 세계적인 배우와 감독이 있었다.
아놀드 토인비는 미라라는 영화에서 ‘미라’ 역할로 출연하였다. 정의심 강한 주인공만큼이나 미라에서는 또렷한 인상을 남긴 사내였다. 강렬한 눈매와 시원하게 밀린 머리는 많은 이들의 이목을 샀다.
그리고 민후도 처음 보는 얼굴의 배우, 레이먼드 파크. 레이먼드 파크는 애초에 얼굴 없는 배우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는 세계적인 명작 시리즈 엑스맨에 출연했다. 가면을 쓴 상태로 말이다.
그와 더불어 스타워즈에도 출연했다. 역시나 가면을 쓴 상태로 출연하였다. 그리고 그가 가면을 벗었을 때의 그 작품은 망하였다. 레이먼드 파크는 얼굴을 알리고 말고가 뚜렷하게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이러한 일들이 자신의 징크스 중 하나라고 여겼고 이젠 스스로 그러한 배역을 찾았다. 스네이크라는 역할 역시도 가면을 쓰고 있는 배역이었다.
리처드 레이 감독은 비록 레이먼드 파크는 얼굴을 보이진 않지만 스네이크와는 적합한 역할이라고 판단하고 캐스팅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아놀드 토인비의 경우 함께 다작한 이였기에 그를 믿었고, 그를 자신이 직접 초청하여서 함께 임하게 된 것이다.
민후와 마주 앉은 이들의 경우 강민후라는 배우를 전혀 알지 못했다. 실상 민후를 스크린으로도 접해보지 못한 것이다. 어쩌면 앞의 이들에게 민후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보일지도 몰랐다.
“소개를 좀 해주지, 우리 초면이잖나. 언제까지 소개팅 나온 여자처럼 가만히 있을 거야.”
리처드 레이 감독의 요구였다. 민후는 자신의 소개를 이어나갔다. 그는 자신에 대한 장점과 출연한 영화, 어떤 식으로 촬영에 임할지에 대해서 말했다.
세 사람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특히나 리처드 레이 감독은 더욱 그러했다. 아직 어린 친구이지만 눈빛이 살아있는 친구였다. 대한민국에 이러한 눈빛을 가진 배우가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안 것이다.
그리고 그가 보내주었던 영상 속의 모습은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다. 어린 친구였지만 발달장애 연기를 소름 끼치도록 잘 해냈다. 리처드 레이 감독은 이 앞의 친구가 이 할리우드 시장에서는 조무래기에 그치지만 그 실력만큼은 좋다고 여기고 있었다.
“영어 실력이 좋네.”
"예. 일어, 중국어, 불어까지 합니다.“
“요즘은 뭐 다들 그 정도는 하지.”
아놀드 토인비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민후는 그 말에 싱긋 웃었다. 민후는 무척 당당하였고 그들의 옭아매려는 질문과 당혹시키기 위해 유도하는 질문에서도 침착하게 답변하였다.
누구든 갑갑하고 말끝을 흐리며 대답하지 못하는 이는 좋아하지 않기 마련이었다. 특히나 면담하면서 스네이트 역할을 맡게 된 레이먼트 파크도 그의 그런 당당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실질적으로 스네이크라는 역할과 스톰 쉐도우라는 역할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그랬기에 레이먼드의 경우에도 자신이 마음에 드는 이가 오디션에 캐스팅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이야기는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민후와 면담을 해 준 이들은 아쉬운 감이 있었다. 강민후만큼의 열정을 가진 이들은 많았으며 그 힘 또한 쥔 자들 역시 수두룩했다.
오늘 면담을 한 이들 중 그보다 한 수 위의 이들도 상당히 존재했다. 물론 최종적인 캐스팅은 내일 오디션에서 치러지게 될 것이었다.
면담이 약 20%를 먹고 들어간다면 오디션은 80%를 먹고 들어가는 셈이었다. 면담을 끝내고 나온 민후는 ‘후!’ 바람을 내뱉었다. 자신은 강했고, 보여줄 게 많았다.
내일 세 사람은 강민후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될 것이었다.
아침 식사를 끝낸 후에 자신의 룸에서 옷을 갈아입은 민후이다. 강민후는 하얀색의 몸에 달라붙는 타이즈와 복면을 착용했다. 그리고 등 뒤로 두 개의 검 자루를 집어넣었다.
누군가는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 모습으로 오디션을 보러 가는 거야? 라고 말이다. 또 어떠한 아시아의 스타들은 그럴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래도 이름 있는 배우로서 창피하지 않아?’라고 말이다.
그러나 민후는 전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창피하지 않았다. 누구든 최선을 다해서 준비해 온 이를 환영하기 마련이었으며 자신이 이름 때문에 이런 무모한 도전 또한 못한다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오디션장 앞으로 다가오자 대기하고 있는 인원들이 보였다. 아시아권을 주름잡는 스타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그들은 민후의 차림새를 보고는 웃음을 흘리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이게 무슨 꼴이야?”
“스톰 쉐도우가 되어보려고요.”
이병운은 당혹한 듯 묻다가 민후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무 벌써 힘을 빼는 것 아니냐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민후는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주위에서 몇몇 키득거리는 이들이 느껴졌지만, 그는 상관하지 않았다. 어차피 모든 것은 오디션 결과에 따라서 판가름 날 것이 확실한 상황이니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민후의 차례가 되었다. 오디션장 안으로 들어가자 어제 면담을 해주었던 세 사람과 제작사 인원 세 사람이 함께 앉아있었다.
그들은 복면과 더불어 옷과 등 뒤로는 가검까지 달고 온 민후를 보고는 놀란 표정이 되었다.
실상 강민후라는 배우도 대한민국에서는 나무랄 데 없는 인기를 누비는 최고의 배우였다. 그런 그가 오디션장에 이러한 복장을 착용하고 온다는 것은 다른 이들은 황당해할 수도 있었다. 아니 어쩌면 다른 이들은 그럴 엄두조차 내지 못해, 오히려 황당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강민후의 노력에 그들은 황당함이 아닌 당황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온 사람은 또 처음입니다.”
제작사 측의 인원 중 체격이 뚱뚱한 이가 한 말이다. 그는 재밌다는 듯이 웃어 보이면서 민후에 관련해 적혀 있는 표를 훑어보았다.
“발달장애 연기를 보였던 친구가 저 친구이군요.”
“재밌는 친구인 것 같습니다.”
바깥의 이들과 다르게 심사위원들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바깥의 이들은 경쟁자의 예상외의 모습에 실상은 당혹한 것이고 심사위원들은 자신들의 영화를 위해서 이 정도의 준비를 해줬다는 것에 무척이나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리처드 레이 감독은 어떠한 것을 제시할까 하다 고개를 끄덕거렸다. 해외에도 잘 알려진 대한민국의 작품이 있었다. 손남원이라는 배우가 연기하였던 하드보이였다.
하드보이는 일본의 만화 중 하나를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각본 각색을 하여 더욱더 훌륭한 영화가 탄생하였다.
해외에서도 하드보이에 관련하여서 판권을 사겠다는 말이 많이 나왔고, 추후 제작될 예정이었다. 민후에게는 조금 까다로운 것이었다.
그는 복면을 벗었다. 잘생기고 또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얼굴이 드러났다. 그러나 그는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심사위원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현재 스톰 쉐도우처럼 행동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었다.
리처드 레이 감독은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하드보이라는 작품에서의 주인공을 연기해보도록 하죠.”
다른 심사위원들도 감독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강민후의 나잇대와 맞지 않았다. 얼마만큼 그가 연기력으로 그들을 흡수하느냐에 따라서 몰입감이 클 수도, 되레 작을 수도 있었다.
하드보이는 민후도 무척 좋아했던 작품이었다. 그 때문에 수차례를 보았던 영화이기도 하였으며 오대수라는 역할이 가진 심정도 알았다. 그는 머릿속으로 명장면이 될 장면들을 끄집어내었다.
어떠어떠한 연기를 해야 그들이 만족할 수 있을지 판단을 하고 그것의 생각이 끝난 후에는 그는 무릎을 꿇었다.
오대수가 지금 처한 상황은 자신의 내연녀가 알고 보니 딸이었으며 그 사실을 폭로하려는 이를 막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는 오대수가 되기 위해서 머릿속으로 그 장면을 그려보았다.
그는 딸과의 성관계를 했고 사랑을 하였다. 그녀가 만약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걔가…… 걔가 무슨 죄가 있겠냐. 다 내 잘못인데.”
무릎을 꿇었던 민후는 오대수가 되어있었다. 그는 사정하듯이 말한다. 그녀에게 알리지 말아주기를 바란다. 그는 계속해서 빌었다. 그러나 그것은 곧 분노로 표출되었다.
“미오가 이 사실을 알면은…… 너, 이 개새끼야! 너 머리 털끝부터 발끝까지 내가 잘근잘근 씹어 먹어 버리겠어!”
그러나 그는 자신의 화가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순간 분노를 참지 못해 화를 내었으나 그의 선택에 따라 자신의 딸 미오가 그 사실을 아느냐 모르냐가 달린 일이었다.
그는 기어갔다. 마치 그의 개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제발! 응!? 제발 그러지 마라. 내, 내가, 내가 네 개가 될게! 월! 월월!”
민후는 그의 다리를 붙잡고 있는 시늉을 하면서 개처럼 짖듯이 행동하였다. 비굴하고 처참하였으나 딸을 위한 행동이고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였다.
한참이나 짖던 그는 이내 그의 구두를 핥기 시작했다. 민후는 오대수가 된 것처럼 개와 같이 그의 구둣발을 핥아 대었다.
“나 집도 잘 지켜. 나, 난 네 똥개 새끼야! 꼬리도 잘 흔들어! 응!?”
그는 엎드린 자세로 엉덩이를 흔드는 자세를 취해보았다. 그러나 아직 부족했다. 무언가 다른 것이 필요했다. 민후는 기어서 어딘가로 갔다. 그는 앞에 가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것을 집어 드는 시늉을 하였다.
“내, 내가 이거 자를게. 흐흐! 내가 이거 잘라버릴게. 이 혀!”
모든 일의 원흉이 된 것은 혀였고 그의 말이었다. 그는 자신의 혀를 한 손으로 잡고 한 손으로 가위를 쥔 상태였다.
그는 부르르 몸을 떨면서 괴성을 흘리며 혀를 잘라내었다.
“어억! 꺼어억!”
민후는 바닥을 굴렀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솟구쳐 온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 고통 속에서도 그는 딸을 지켜야 한다는 강한 집념을 연기로 보이고 있었다.
‘확실히 연기력 하나만큼은 좋은 친구야.’
리처드 레이 감독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의 연기력은 확실히 좋았다. 극 중의 오대수는 쉰 살의 나이를 바라보는 이였다. 그러나 이제 겨우 스물여덟 살의 강민후는 상당한 몰입감을 보여주었다.
다른 인원들도 충분히 만족한다는 모습이었다. 몸을 다시 일으킨 민후는 심사위원들의 표정을 살폈다. 이만하면 연기력은 어느 정도 입증이 된 상황 같았다.
“제가 준비한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준비한 거라…… 환영입니다.”
민후의 당당한 어조에 리처드 레이 감독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복장에 이어서 그가 준비한 것이 더 있다고 한다. 심사위원들이 흥미로운 눈으로 민후를 바라보았다.
그는 심호흡을 크게 내쉬었다. 장 관장의 도장에 다니면서 처음 그가 제시한 열두 동작을 익인 후에 장 관장과 대련을 하였었다. 대련하면서 실제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힘을 키웠으며 지아이오의 무술팀이 제시하는 것을 누구보다 빠르게 습득할 수 있는 상황판단 능력을 더욱 강화했다.
그 후에는 다시 한번 민후와 장 관장이 함께 둘러앉아 화려한 동작들을 구성하였고, 총 스물두 동작을 만들어냈다.
지금 민후는 그 동작을 구사하려고 하고 있었다.
스릉!
가검이 검집에서 빠져나왔다. 두 개의 가검을 뽑아낸 그는 무릎을 굽혀서 자세를 취했다. 심사위원들이 ‘오’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취한 자세에서 보인 모습은 정말 스톰 쉐도우라고 하여도 될 정도로 이미지가 또렷한 것이었다.
하물며 그의 복장 역시도 그와 같이하고 왔기에 더욱 스톰 쉐도우와 흡사하다고 할 수 있었다.
두 개의 가검을 쥔 그는 곧 동작 하나를 취해 보였다. 오른손의 검을 앞쪽으로 휘둘렀다. 그러면서 다음 동작으로 넘어가 왼손으로 하단을 공격하고 밑쪽을 공격했다.
그는 다른 이의 검이 상체를 노리고 들어온다고 가정하고 상체를 뒤로 최대한 꺾어 피해내고는 발로 한 번 찬 뒤 높게 도약하였다.
탁!
바닥에 내려선 그는 4m 남짓의 거리에 적이 있다고 가정하고 빠르게 접근하여 위로 검을 치켜세웠다. 그러곤 옆으로 몸을 굴린 후에 몸을 벌떡 일으켜 다른 이의 복부에 검을 쑤셔넣듯이 했다.
“후욱후욱! 흐읍!”
그는 마치 정말 다른 이들과 결투를 보이는 것 같았다. 표정 연기도 마치 스톰 쉐도우 역할로써 촬영에 임하듯이 보였다.
심사위원들은 그 모습을 넋이 나간 듯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그의 움직임은 무척이나 빨랐다. 실제로 영화와 같은 움직임을 사람들은 즉흥적으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
영화처럼 주먹이 보여서 피하고 막은 후 공격하는 것은 실제로는 불가능했다. 물론 복싱의 경우 피하고 카운터를 날리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나 영화처럼 그렇게 짐작했다는 듯이 피하는 몸놀림은 불가하다는 것이다.
반면에 강민후의 움직임은 치밀하였고 모든 것을 꿰뚫어 보듯이 새처럼 날고 벌처럼 강하게 쏘고 있었다. 그가 얼마만큼 노력했는지 보이는 순간이었다.
또한, 그의 검은 오랜 시간 수련을 하였던 사람처럼 강해 보였고 자연스러웠다.
후웅!
마지막 동작을 마친 민후는 한쪽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오른손에 든 검을 휘두른 동작에서 멈췄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면서 등 쪽의 검집에 다시 검을 집어넣었다.
짝짝짝짝!
일순간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의 쌍검술은 무척 매혹적이고 훌륭한 것이었다. 특히나 스톰 쉐도우를 캐스팅하는 자리에서의 그의 그 한 방은 무척 큰 것이었다.
실상 그가 연기를 보였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실제로 그만큼 연기를 하는 이들은 오늘 지원자 중에도 몇 있었기 때문에 그를 1순위로 두진 않았다.
그러나 확 하니 리처드 레이 감독의 머릿속에서 그가 실제로 스톰 쉐도우를 연기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는 잠시 스네이크 아이와 싸움을 겨루는 스톰 쉐도우를 민후와 겹쳐서 생각해보았다. 민후는 면담에서 보았을 때 영어 실력도 무척 우수했다. 마치 3년 정도 미국에서 유학하였던 이와 같았다.
일본어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많은 것을 할 줄 알았다. 가능성이 많은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의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자 가능성을 성공으로 바꾸는 배우라는 생각이 스쳤다.
‘같이 해보고 싶다.’
그와 마찬가지로 스톰 쉐도우의 상대역인 레이먼드 파크는 리처드 레이 감독과 마찬가지로, 아니 어쩌면 더욱더 그를 자신의 상대 배역으로 끌어오고 싶었다.
레이먼드 파크도 요즘 검을 배우고 있었다. 캐스팅된 후였다.
그 때문에 그가 구사한 빠른 움직임이 얼마나 힘이 든 것인지 안다. 하물며 쌍검술이었다. 실제로 쌍검술은 쉬운 것이 아니다. 다칠 우려도 더욱 큰 편이었다.
“너무 놀라서 말이 잘 안 나오네요. 오랜 시간 연습하셨을 것 같습니다.”
민후는 말없이 웃었다. 굳이 노력의 기간을 언급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심사위원들은 충분히 그것을 알고 있었다. 쌍검술의 동작들을 보여주고 나자 심사위원들의 표정이 한층 더 좋아졌다.
민후는 만족스러웠다.
“기회가 된다면 또 뵐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심사위원들과의 이별이었다. 어쩌면 오랜 시간의 이별일지도 몰랐으며 아니라면 이른 시일 내에 다시 만나게 될 이들이었다. 오디션장에서 밖으로 나온 민후는 숨을 크게 내뱉었다.
자신 나름대로는 더욱 잘 보여줄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할리우드의 지아이오 캐스팅에 관련한 오디션을 끝낸 후 민후는 호텔로 돌아갔다.
민후는 내일 점심쯤에 다시 국내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오디션을 생각보다 빨리 보았기에 시간이 남아 정수와 경호원 두 사람을 함께 대동한 채 여행 온 것 같은 분위기를 즐겼다.
경호원들에게도 최대한 편하게 대해주려고 노력한 민후였다. 그들의 일이 자신을 지키는 것이기는 하였지만 가끔은 너무 빽빽한 일상도 좋지만은 않았다.
경호원들은 못 이기는 척 민후와 함께 즐겼다.
하루가 완전히 지나가고 다음 날 내쉬와의 작별이 남아있었다. 내쉬는 훌륭하게 민후와 그 일행을 가이드해 준 이였다. 제작사의 직원이기도 하였지만 말이다. 그는 귀띔을 해주듯이 말한다.
“듣기로는 강민후 씨가 캐스팅 후보에 올랐다네요.”
실제로 내쉬는 강민후가 마음에 들었기에 해주는 말이었다. 그는 한 나라에서 인기를 끄는 여느 톱배우와는 다르게 거만하지 않았고 예의 바른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런가요?”
민후는 화색을 보였다. 그 당시 심사위원들의 반응이 좋기는 했지만 어쩌면 다른 이들도 비장의 한 수를 준비해서 왔을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렇지만 후보에 올랐다는 것 자체가 몇 사람을 두고 이제는 그 사람 중에서 캐스팅을 고려한다는 의미와도 같았다.
“다음에도 또 만나 뵐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강민후 씨가 캐스팅된다면 다시 만날 수 있겠지요.”
내쉬는 그에게 희망을 주듯이 말했다. 꼭 다시 만날 거라는 어조였다. 민후는 그와 작별인사를 하고 아쉬움을 달래며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꽤 가는 여정이 길 것 같았다. 출발했을 때보다도 돌아갈 때의 피곤함은 더욱 컸다.
국내로 돌아온 민후는 평상시와 다를 바 없이 행동했다. CF를 찍고, 인터뷰했으며 차기작품에 대해 물어보는 이들에 대해서는 능청스럽게 ‘아직 정해진 건 없습니다.’라는 말로 얼버무렸다.
실상 한 달 정도는 되어야 캐스팅 결과가 나온다.
그는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어떠한 이에게도 할리우드의 지아이오의 오디션을 보고 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막상 한 달이 지났을 때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오디션 결과 통보가 도착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초조해하던 민후는 함태웅 대표의 부름에 한달음에 달려갔다. 결과 통지가 왔다는 것이다.
소속사로 부리나케 달려온 민후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할리우드는 강민후라는 배우에게 새로운 신세계로의 도전이었다. 최강호이던 시절에도 아쉽게도 할리우드에서는 발을 디디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에 들어온 순간 태웅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는 한숨만 쉬면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왔냐. 앉아라.”
“……예.”
그의 표정이 좋지 않자 민후는 대충 짐작했다. 자신이 떨어진 것인가? 한다. 그는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곧 한숨으로 털어버리자고 생각했다.
다음에도 기회는 있을 것이다.
“너무 낙심하지는 마라. 내가 기대하진 말라고 했잖아.”
함태웅은 그를 위로하듯이 말하면서 그에게로 제작사 측에게서 온 편지를 건네었다. 민후는 그의 말에 씁쓸하게 웃으면서 편지 내용을 확인했다.
그러나 곧 편지 내용을 확인한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떡하니 한 곳에는 이러한 문장이 적혀져 있었다.
-배우 강민후의 스톰 쉐도우 캐스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라고 말이다. 그것을 본 순간 민후는 태웅을 보았다. 그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실상 태웅의 장난스러운 웃음은 쉽게 볼 수 없었다. 그리고 평소에 더욱 장난을 치지 않는 태웅이 장난을 쳤기에 민후가 꿈뻑 넘어가 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민후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편지 내용을 모두 읽어보았다. 곧이어 제작사 측에서 황제 소속사 측에 사람을 보내어 계약을 체결한다는 내용과 더불어 계약 체결 시 강민후는 지아이오 팀과 장시간의 트레이닝을 하게 될 것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모두 읽고 나서야 실감이 났다. 강민후는 할리우드에 캐스팅되었다. 자이이오. 현재 미국 일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원작 만화 영화에 말이다.
“축하한다.”
함태웅은 빙긋 웃었다. 그로서도 크게 놀랐다. 이병운, 기무라 타쿠, 아베 히로시, 대만의 주걸룬 등의 수많은 아시아 스타들이 참여한 오디션이었다. 그 오디션 자리에서 강민후가 당당히 캐스팅된 것이다.
함태웅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자리로 가 버튼 하나를 눌렀다. 그의 목소리는 간만에 활기를 담았다.
“중계일보 전화해서 배우 강민후가 할리우드의 스톰 쉐도우 역할 캐스팅 확정되었다고 전해. 그리고 기자한테 우리 소속사에 할리우드 배우 나왔다는 말도 잊지 말고.”
태웅은 민후가 자랑스러운 어조였다. 강민후의 나이 이제 겨우 스물여덟 살. 그가 할리우드를 향해 뻗어 나가게 되었다.
-배우 강민후! 할리우드로 가다! 지아이오 캐스팅 확정! (중계일보 유가희 기자)
배우 강민후는 저번 달 비공개적으로 세계적인 감독 리처드 레이가 각본 감독을 맡게 된 영화 지아이오의 스톰 쉐도우 역할의 오디션을 위해 로스앤젤레스의 할리우드로 넘어갔다.
지아이오는 현재 미국 일대에서 돌풍적인 인기를 끄는 만화였으며 벌써 세계 각지에서는 지아이오가 영화화된다는 사실에 관심이 뜨거웠다.
한편, 스톰 쉐도우 역할을 비공개 오디션으로 치렀던 강민후는 오늘 최종적인 캐스팅 합격 통지서를 받을 수 있었다. 스톰 쉐도우는 악랄한 닌자 역할로 실상 기무라 타쿠나, 아베 히로시의 경우가 캐스팅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전망이 나왔다. 그런데도 당당하게 스톰 쉐도우 역할로 캐스팅된 강민후는 다음 달부터 로스앤젤레스에서 본격적인 촬영 준비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한편, 리처드 레이 감독은……(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