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선물
사진이 공개된 지 한 시간 만에 빠르게 퍼졌던 이야기들은 하룻밤 사이에 수많은 사람이 알 정도로 확산이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소속사에도 수많은 전화가 걸려오고 있었으며 소속사 앞으로 기자들이 몰려들기도 했다.
현재까지는 확실한 표명을 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기자들은 그들의 입장 표명이라도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대표실로 걸려온 전화에 태웅은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민후와 CF를 계약했던 업체들 쪽에서 이대로 그의 값어치가 떨어지는 게 아니냐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었다. 만약 소문이 사실이라면 정말 그럴 수도 있었다.
강민후가 소문처럼 김채은과 만남을 가졌고 그녀를 매몰차게 버린 후, 한윤하와 만났다. 이건 아무리 민후가 이제까지 이미지를 좋게 쌓았다고 한들 큰 타격이 될 수 있었다.
“왜 안 받는 거야.”
가장 걱정되는 것은 채은이었다. 채은에게도 기자들이 갔을 것이었으며 그녀가 만약 ‘그렇다. 연인이었다.’라는 식으로 밝혀버리면 난감해지는 상황이었다.
그녀를 못 믿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2년 만의 만남에서 보았던 그녀의 눈빛은 심상치 않았던 것이었으며 그녀는 이제 단순히 사랑이 아닌 집착을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일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민후다. 자신과 그녀는 분명 좋은 스승과 제자 사이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녀가 자신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고, 민후는 윤하를 좋아하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것은 무척 달콤한 것이나 때로는 너무나도 쓴 것이기도 한 것 같다.
채은도 사진이 공개되고 빠르게 네티즌들 사이로 확산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사이트 측에서 모자이크 처리를 하기는 했지만 각종 포털 사이트, 메신저 등에서도 그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었으며 기자들은 계속해서 추측 글을 써내려가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녀는 블라인드 틈으로 손가락을 넣었다. 밑쪽으로 기자들이 깔린 상황이었다. 그녀는 불안함에 오독오독 손톱을 깨물었다.
지이잉!
지이잉!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발신자를 확인했다. 받지 않았다. 민후였다. 벌써 일곱 차례 걸려오는 전화였다. 그녀도 현재 무척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자신의 안일함으로 인해서 민후가 시청자와 기자들의 도마 위에 올랐다. 자신이 입을 피해도 클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에 걸리는 것은 민후의 여인인 한윤하도 이 기사를 보았으리라는 것이다.
실제로 윤하와 채은은 구면이었다. 학원의 양로원 봉사 활동에서 서로 얼굴을 본 적이 있던 사이였다. 그런데 그런 자신이 민후를 좋아하고 있었고 울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 윤하이니 그녀의 심정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악독해지려고 했지만, 막상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으로 인해 큰 곤욕에 빠졌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도 들었다.
소문이 사실이라고 인정하면 네티즌들은 크나큰 비난을 민후에게 하게 될 것이다. 물론 소속사 측은 ‘아니다’라고 해명할 것이다. 그러나 시청자들의 의심은 계속될 것이고 어쩌면 강민후가 한윤하와도 헤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채은은 했다.
어쩌면 전혀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망각 같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현재 이 논란을 잠재우는 방법은 자신이 모든 것을 안고 가는 것이었다.
짝사랑이었고 자신의 집착이었다. 그는 한윤하만을 사랑한다. 자신의 사랑이 질투, 시기가 되어서 이런 물의를 만들게 된 것이다고 사실 그대로 말해야 했다. 그래야만 민후의 이미지의 타격이 최소화될 것이다.
그러나 채은의 이미지는 아니었다. 그녀도 여성 요리사로서의 줏대가 있었고 그 힘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 스스로도 집착적인 사랑을 보였다는 것은 이미지를 크게 훼손시키는 일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좋을까, 민후야.”
그녀는 불안한 표정이 되었다. 평소 침착하고 차가운 성격이었으나 지금 현재는 그녀도 무척 혼란스러웠다. 자신의 말 한마디에 따라서 많은 것이 변하게 될 수도 있었다.
민후는 이 일을 모두 꾸민 이가 오연훈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 당시의 상황에서 주위에 파파라치가 있었다면 충분히 가능했던 일이었다.
어쩌면 그녀를 단칼에 자르지 못한 자신의 안일함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채은은 현재 하루가 지났음에도 계속 전화를 받지 않는 상황이었다.
일단 소속사 측에서도 채은이 인터뷰를 전혀 하지 않고 있었고 자신들만 입장 표명을 한다고 해서 밝혀지는 것은 없었기 때문에 입을 닫고 있었다.
윤하에게도 이 일에 대한 해명이 필요했다. 민후로서도 무척 당혹스러운 일이 터진 것이지만 그녀로선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는 일이었으며 상당히 기분이 상할 수도 있는 일이다.
하물며 네티즌들이 ‘한윤하만 놀아난 거지.’ ‘한윤하만 불쌍하다.’라는 식으로 글을 써 내려가기도 하고 있는 중인지라 그녀의 소속사와 민후 소속사가 통화를 하기도 했었다.
함태웅은 실상 윤하 측 소속사에 빠르게 일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말만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윤하의 밴에 오른 민후는 좋지 못한 표정의 그녀를 볼 수 있었다. 그녀의 매니저도 상당히 답답하다는 표정이었다. 공식 열애를 인정한 지 실제로 얼마 안 되지 않았는가.
“토씨 하나 빼놓지 말고 정확하게 말해. 무슨 관계야?”
이미 전화 통화로 그녀에게 그런 사이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자로서 충분히 의심이 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4개월간 민후와 그녀가 함께 생활했다는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은 하지만 윤하는 그를 믿고 있었다. 그가 그럴 남자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단지 정확하게 어떠한 일로 이런 일이 생긴 건지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그녀의 말에 민후는 이제까지의 일을 설명해주었다. 요리를 배우던 과정 중에서 그녀가 자신에게 본인의 마음을 밝혔으며 그는 거절했고 또 입대 전에도 그녀가 자신에게 마음을 밝혔었다.
그리고 전역 후에 그녀가 집 앞에 찾아왔었으며 그녀에게 냉정하게 대했고 울던 그녀를 파파라치가 찍어서 올린 것 같다고 말이다.
그녀는 그의 말이 끝나자 ‘왜 그걸 이제 말해?’ 하면서 그를 나무랐다. 실상 민후는 채은의 개입이 제삼자로서 윤하와 자신 사이의 장애물이라고 인식을 했었다.
그러나 결국 연인이 되어버린 두 사람으로 인해 그 마음이 접어질 것이라고 여겼다. 그녀라면 주위에 멋지고 좋은 남자들은 많을 테니. 어쩌면 그들과 사랑을 나누게 될지도 모른다고 여겼었다.
그러나 안일함으로 인해 뜻하지 않게 일이 돌아가 버린 것이다.
“하아…….”
윤하는 얼굴을 양손으로 감쌌다. 그녀도 상당한 심적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지만 채은의 이야기를 듣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채은 씨는 힘들어서 어떻게 해. 여자 마음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니란 말이야, 바보야.”
윤하는 채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 반대의 관점으로 채은이 그와 연인이 되었고 자신이 제3자의 입장이 되었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또 얼마나 그가 보고 싶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하물며 이러한 일이 자신으로 인해 터졌다는 생각에 그녀는 분명 자책하고 있을 거라고 윤하는 여겼다.
민후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힘들어하고 있음은 계속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을 접게 하는 것이 두 사람으로서는 최선의 방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민후는 답답한 심정에 다시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윤하는 계속 채은이 무척 힘들 거라고 언급했다. 자신들보다 채은이 훨씬 힘이 들 것이라고 말이다.
그는 결국 휴대전화를 내려다보다 다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원장실에서 나서지 않았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기자들은 계속 그녀의 심적 부담감을 더해주고 있었다. 걸려오는 전화도 전부 받지 않고 있었다.
부모님에게도 전화가 왔었다. 두 사람으로서는 그녀가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도 많은 전화가 왔었다. 모두 무시했다.
그녀는 선택해야 했고 그 갈등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오랜 시간을 그녀는 고민했다. 그리고 그녀가 내린 결정은 결국 민후를 위한 것이었다.
그를 피폐하게 만들어서라도 얻고 싶은 것이 한편의 욕구이자 욕망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너무나도 따뜻하게 대해주었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상처 입힐 수는 없었다.
똑똑.
“원장님, 들어가겠습니다.”
누군가 노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왔다. 지민이었다. 민후와 채은 사이에서 일이 터지고 가장 먼저 학원으로 달려온 이는 바로 그녀였다.
지민에게 채은은 값진 은인이었다. 그녀를 통해서 요리도 배웠고 현재는 워커라는 호텔에서, 여성이지만 그녀에게 배운 것을 토대로 상당한 실력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실상 그녀는 채은의 이야기를 유일하게 들어주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녀가 민후를 좋아하는 것은 본래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녀는 먹을 것을 가져왔다. 채은은 이틀 사이에 많이 야위었고 퀭해졌다. 다행히도 6층에는 그녀가 자주 학원에 남는 경우가 많아 그녀가 잘 수 있는 공간과 씻을 수 있는 여건이 있었지만 많이 지쳐 보였다.
“인제 그만 진실을 알려야 할 것 같아.”
“……네.”
그녀는 지친 표정으로 지민을 올려다보며 작게 웃었다. 지민은 안타까웠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이로써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었다.
천재 여성 요리사 김채은, 톱배우 강민후를 짝사랑하고 집착하다.
기자들은 더러운 손으로 그 기사를 적어 내려갈 것이다.
“원장님, 그리고 이거.”
지민은 무언가 생각난 듯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밑쪽에서 기자라면서 이 쪽지만 그녀에게 전해달라고 어떠한 이가 준 것이었다. 쪽지 모양으로 접힌 종이였다. 그녀는 천천히 그것을 펼쳐 읽었다.
-강민후가 추락해야 당신이 그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곳에는 강민후를 추락시키라는 듯한 글이 적혀 있었다. 채은의 눈이 변했다. 오연훈이 사람을 통해서 보낸 쪽지였다. 만약 채은이 자신의 짝사랑이라고 밝히면 도루묵이 되는지라 그는 그녀가 갈등하고 있을 거라고 짐작했고 터뜨려주기를 바랐기에 무리하게 보내온 쪽지다.
그러나 그녀는 오히려 강민후를 지키자고 결심을 한 상황이었다. 그녀는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파파라치가 아니야. 누군가 계획한 거야.”
“예?”
“누군가 민후를 실추시키려고 하고 있어.”
그녀는 지민에게 그 쪽지를 건넸다. 쪽지를 건네받은 지민은 눈살을 찌푸렸다. 확실히 그를 공격하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그렇지만 채은은 이미 마음을 굳힌 상황이었다.
“걱정하지 마. 네가 생각하는 그런 무모한 짓은 하지 않아.”
그녀는 빙긋 웃으면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밑에는 여전히 기자들이 수두룩했다. 그들에게 공식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할 생각이었다. 이로써 민후 측의 소속사도 공식 입장을 밝히게 될 것이었다.
막 원장실을 나서려던 때 책상 위에 올려놓은 휴대폰이 울렸다. 지민이 그것을 가져와 그녀에게 내밀었다.
“민후 오빠예요.”
그녀가 조심스럽게 건넸다. 채은은 사실 두려웠다. 민후가 전화로 자신을 원망하는 목소리를 내면 어떻게 하나. 화를 내면 어떻게 하나 무서웠다.
사랑하는 사람이 그 사람을 욕하고 원망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녀는 용기를 내어 전화를 받았다.
“응…….”
-원장님.
전화를 받자 민후는 잠시 뜸을 들이다 그녀를 불렀다.
“말해.”
그녀는 괜스레 눈물이 나왔다. 너무 미안해서였다. 자신의 사랑이 사랑하는 사람을 상처 입혀버리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가 자신을 싫어하고 원망해도 자신은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원장님, 괜찮아요? 기자들 많이 갔죠?
그러나 그녀의 생각과는 다르게 민후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하고 있었다.
민후는 실상 윤하의 말을 듣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도 그녀에게 전화하면 화를 내며 해명하라고 할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윤하는 그녀가 제일 힘들 것이라고 계속 언급했고. 확실히 그녀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괜찮지. 나 이제 기자들한테 전부 말하려고. 내가, 내가 널 힘들게 하고 구차하게 굴었다는 거 다 말하려고.”
-죄송해요.
“미안해…….”
민후는 그녀가 결국 자신이 벌인 일의 대가를 모두 짊어지려고 함을 알고 한 말이었다. 그는 그녀에게 ‘말하지 말라’라는 말도, 안아줄 수도 없었다.
그러나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 목소리로 자신을 걱정해주는 민후가 오히려 채은은 고마웠다. 전화가 끊어진 후 그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흐흐흑, 흐흑! 힘들어. 나 너무 힘들어, 지민아! 흑! 민후가 나보고 괜찮녜. 날 미워하지 않아. 흑!”
지민은 한참이나 하염없이 우는 그녀의 곁에서 그녀를 도닥여줄 수 있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한참이나 울던 그녀는 눈물을 훔쳐내고 마음을 정리한 후 기자들에게 인터뷰하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채은은 기자들에게 정확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순전히 자신이 강민후를 짝사랑했던 것이었으며 그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자 자신도 모르게 질투, 시기로 변화했다고.
그 때문에 윤하와 강민후의 열애가 표명되었음에도 구차하게 민후를 찾아갔고 강민후는 윤하에 대한 확실한 마음을 보이면서 자신을 매몰차게 거부하여 눈물을 흘렸다고 말이다.
채은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자마자 황제 소속사에서도 곧바로 공식 입장을 밝혔다. 실상 채은이 어떠한 말을 꺼낼지 알 수 없어서 기다리고 있던 소속사였지만 그녀가 진실을 말했기 때문에 황제 소속사도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이다.
채은은 민후를 좋아했고 배우 강민후는 채은은 단지 자신을 가르쳐주었던 스승이라는 둘레로 보고 있었다. 그리고 윤하를 좋아했기에 그녀를 거부하고 결국 그로 인해서 이러한 일이 발생하게 된 것 같다고 밝혔다.
채은의 공식 입장 표명으로 인하여서 강민후가 이 여자 저 여자 만나고 다녔으며, 지금은 그 희생양이 한윤하가 되었다는 식으로 비난하던 목소리는 차츰 사그라질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많은 이들이 강민후를 사냥감으로 잡고 비난을 형성하기는 힘들었다. 강민후는 한윤하를 좋아하고 있었고 채은은 그를 좋아했다. 그리고 결국 채은은 짝사랑으로, 윤하는 연인으로 남았다.
물론 채은의 경우 안타까운 일이기는 했으나 한 사람만을 선택하는 것이 옳았고, 민후가 안타깝다고 하여서 두 사람을 함께 만날 수는 없는 일이지 않은가.
다행히 민후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는 작아졌다. 여전히 도마 위에 올려서 비난하려는 이들도 존재했으나 소속사와 민후는 아예 무시하고 있었다.
그들이 비난하든 말든 큰 타격은 없었기 때문이다. 되레 확실히 채은에게는 견디기 힘든 일이 생겼음이 사실이었다. 인터넷에 각종 악성 댓글이 달리고 있었다.
-아, 김채은 집착. 요리나 하지. 쯔쯧. 어딜 넘봐.
-김채은이 운영하는 학원 좋다고 해서 가려고 했더니, 다른 데 가야겠다.
-김채은 실물 존예임. 그럼 뭐함, 다른 남자 꽁무니나 졸졸 쫓아다니는데. 쯔쯔…… 강민후가 한번 주라고 하면 줄 기세임.
실제로 연예인이라면 사람들의 이러한 악성 댓글은 항시 존재했다. 그러나 그녀는 연예인이 아니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달리는 이런 악성 댓글들은 그녀의 가슴에 못을 박아놓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민후로서는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어 미안할 수밖에 없었다.
우려의 목소리를 내었던 CF 회사 측도 민후의 이미지가 회복되자 무난한 진행이 치러졌으며 영화 촬영에 대한 준비도 다시 본격적으로 박차를 가했다.
민후는 3개월을 채워갈 무렵, 최동민 감독님과 송준기 만화가 선생님. 류승진, 장병연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패를 섞는 모습을 보여줬다.
“아수라 발발발.”
그는 장난스럽게 중얼거렸다. 시나리오에서 곤이가 패를 섞으면서 자주 하는 말이었다. 실제로 도박판에서 기술을 이용하여서 사람의 돈을 따기도 하지만, 계속 중얼중얼 말을 하면서 상대방의 집중력을 흩뜨려 놓아 상대편을 공격하기도 하는 편이다.
착착착!
민후는 빠르게 밑장빼기를 해 보였다. 최동민 감독과 송준기 만화가 선생님이 ‘오-’ 하는 감탄을 흘렸다. 장병연만큼의 손놀림은 아니었지만, 타짜꾼 못지않은 모습이었다. 민후는 여유롭게 패 다섯 장을 담요 위로 던지고는 손을 뻗어 바꿔치기를 시도했다.
두 차례를 반복했는데, 마지막에 실수로 손에 교묘히 숨겨놨던 패 한 장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는 무안한 미소로 웃어 보였지만 최동민 감독이 보았을 때는 지금 충분히 촬영에 들어가도 될 것 같다고 판단되었다. 류승진 역시도 상당히 좋은 실력을 보였다. 장병연이 ‘두 사람 모두 훌륭한 타짜가 되어버렸습니다.’ 하고 빙긋 웃었다.
“이것 보게나, 내가 잘할 거라고 했지.”
“선생님 말씀이 사실이었습니다.”
송준기는 최동민의 옆구리를 툭 치면서 능글맞게 웃었다. 강민후와 류승진이 누구보다 잘 해낼 거다고 그는 언급했다.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두 사람은 일반적인 이들보다도 훨씬 빠르게 패 잡는 것을 익혀버렸다.
이 중 두 사람이 선의의 경쟁을 벌여서 더욱 발전한 것도 있었다.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앞으로의 진행 방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촬영은 일러주었던 일정대로 진행이 되고 기간은 8개월 정도 걸릴 것 같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촬영 전 시나리오 전체의 대본 리딩을 며칠에 걸려서라도 해보고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동민은 언급했다.
일단 배우들이 너무나 출중한 배우들이었던지라 그러는 듯싶었다. 서로가 그 개성과 실력이 너무 강한 이들이라 자칫 화면 속에서 어울리지 못할 수도 있었기에 먼저 대본 리딩을 해보자는 이야기였다.
이야기가 끝이 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송준기 선생님이 그의 옆에 꼭 붙어서 어떤 식으로 연기해주었으면 좋겠고, 곤이는 어떠한 캐릭터다고 일러주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 올랐을 때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얼마 전 그 일은 괜찮나?”
그의 물음에 민후는 잠시 뜸을 들였다. 자신은 괜찮았다. 문제는 채은이 입은 피해가 꽤 되리라는 것이었다.
“예.”
“자네도 참 피곤하겠어. 꽃은 아름답지만, 때론 치명적인 가시를 품고 있기도 한데…… 채은이라는 친구가 그런 격이지 않았나 싶어. 그래도 그 아름다움만큼은 값지니까.”
“좋은 분입니다.”
송준기는 민후의 말에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의 눈에도 훤히 보였다. 이런 일 때문에 채은과 그 사이의 관계가 사라지는 것을 민후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을 좋아하는 짝사랑의 시절이 아닌, 너무나 좋았던 스승과 제자 사이의 관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까 두려운 것이다.
“잘 될 거야, 그 친구도 자네도.”
송준기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를 독려했다. 민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 주차장으로 온 그는 승진, 병연과 함께 다시 승진의 집으로 향했다.
확실히 채은은 이미지에 꽤 큰 타격을 받았다. 학원에서 그녀에 대해 웅성거리는 이들이 늘어났다. 배우겠다고 수강 신청을 하는 이들의 숫자도 줄어든 상황이었다.
결정적으로 그녀는 요리업계에서 드세고 냉정한 이미지였다. 다른 건장한 남자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만들어낸 그녀 스스로의 이미지였다.
그러나 그랬던 이미지는 남성 요리사들에게 그녀의 모습은 집착하고 눈물 흘리는 불쌍한 여성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에는 어떠한 이가 그녀를 조롱하듯이 ‘결국 너도 여자구나.’라는 말을 하기도 하여 채은과 마찰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이름값은 작지 않았다. 아무리 수강생이 줄어드는 추세라고 한들, 여전히 그녀의 이름의 학원들은 요리 학원 업계에서 수강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였다. 그리고 그녀를 조롱하고 속닥거리는 이들이 있기도 하지만, ‘괜찮아?’ 하고 걱정해주는 이들도 많았다.
인터넷에 한창 채은에 관련한 비난 글과 어디서 강민후를 넘보냐는 등의 욕설이 게재될 당시였다. 익명으로 누군가 글을 남겼다. 그는 채은의 학원에서 무료로 수강을 받았었던 적이 있는 이라고 자신을 밝혔다.
그는 현재 요리업계에 진입하여 열심히 배우고 있는 이라고 했다. 그는 형편이 어려워 엄두도 못 내었던 요리에 관련한 많은 것을 채은이 전폭적으로 지원했다고 밝혔다.
책과 식재료, 배움까지도 모두 그녀는 지불했으며 차갑고 냉정하다는 소문은 실상 사실이 아니다. 그녀는 따뜻했고 여렸으며 남을 배려할 줄 안다, 등과 그녀의 학원이 매달 지원자를 뽑아 봉사 활동을 가는 사실까지도 게재되었다.
이제 네티즌들은 양 갈래로 갈린 셈이다. 하나의 무리는 ‘여우의 탈을 쓴 여자’라는 식이었으며 한 무리는 ‘가슴 아픈 짝사랑의 희생자’라고 하며 위로했다.
그리고 채은은 현재 그들의 글에 상처를 받고 상심에 빠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냉정하게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인터뷰를 한 후 바로 다음 날부터 강민후를 모함하려는 이를 찾기 위해 나섰다. 그녀는 힘 있는 여성이다. 그녀의 부모님 역시도 힘이 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고, 예상대로 덜미가 잡혔다. 채은은 자신을 남모르게 뒤쫓는 이가 있으리라 추정하고 연훈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고용하여서 그를 뒤쫓았고 결국 연훈 측 사람을 잡아냈다.
채은은 침착하게 그를 추궁했으며 어렵게 그 대상이 오연훈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채은으로서는 배우 오연훈과 강민후의 마찰을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상당히 놀랐었다.
오연훈은 지금 스크린에서 자취를 감춘 배우이다. 그런 오연훈이 강민후를 실추시키려는 이유를 알지는 못했으나 확실한 건 그가 전혀 납득할 수 없는 방식으로 강민후를 괴롭히고 모함하려 했다는 것이다.
“빌어먹을 년.”
오연훈은 자신의 차량 아우디 TT 쿠페 차량을 타고 채은의 학원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김채은이 자신의 존재를 알아냈다.
자신의 행동이 경솔했다. 그녀가 마음만 먹는다면 자신을 찾는 것은 일도 아니었으며 더욱 그를 강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현재의 두 사람을 놓고 따지자면 채은은 훨씬 그의 위에 서 있었다.
오연훈은 그 힘을 잃은 스크린 뒤로 사라져버린 배우였다. 그렇지만 채은은 비록 피해를 보기는 했으나 오연훈 정도는 가볍게 뛰어넘는 재력과 배경을 가진 여성이었다.
원장실 앞에 선 연훈은 눈살을 찌푸렸다. 어쩌다가 자신이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가.
채은은 만약 자신을 찾아오지 않을 시 이 사실을 공론화함으로써 세상에 오연훈의 죄를 알리겠다고 밝혀왔다. 더불어서 부모님과 연관된 변호사들을 통해서 오연훈에게 개인적인 법적 책임도 묻게 하겠노라고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연훈으로서는 그녀를 찾아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채은은 컴퓨터가 놓인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빙긋 웃으며 원두커피를 내렸다.
“배우 오연훈 씨를 실제로 보게 되다니 반갑네요.”
그녀는 웃고 있었으나 그 목소리에는 칼날 같은 날카로움이 숨어 있었다. 연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능청스럽게 ‘아아, 사인은 나중에. 우리들의 이야기가 끝나고.’라며 말했다. 그러나 그렇게 말은 해도 연훈은 속으로 불안했다. 김채은이라는 여자의 속내를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 나름대로 여자의 속마음을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수많은 여자를 취해 보았고 만나보았기 때문이다.
그녀도 다른 여인들처럼 질투와 시기, 욕구에 눈이 멀어 강민후를 추락시키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었다. 그러나 정반대로 그녀는 자신의 잘못을 모두 인정하고 모든 피해를 자신 스스로가 감당하고 있었다.
“마셔요.”
‘무슨 요리사가…….’
그녀는 빙긋 웃으며 그의 앞으로 원두커피를 내려놓고 맞은편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마주 보게 된 그녀의 미모를 보게 된 연훈은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여배우 중에서도 그녀만큼의 미모는 손에 꼽을 것이다.
“강민후가 싫은가요? 왜 그런 짓을 했나요.”
“사람이 살다 보면 싸울 때도 있고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아아, 그래서 저한테 미행도 붙이시고 사진도 올리시고. 덕분에 학원 매출도 떨어지고 제 주가도 내려갔네요. 이거 어떻게 감사의 뜻을 전해야 할지.”
그녀는 싱긋 웃으며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그러고는 양손을 깍지 껴 꼬아진 다리의 무릎 위로 올렸다.
“제가 이 일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요?”
“아니, 뭐…… 좋게좋게…….”
연훈은 그녀의 물음에 횡설수설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태연하게 행동하지만, 속내는 타들어 가고 있었다. 정말 이 여자의 말 한마디에 자신은 완전히 배우 인생이 끝낼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이건 한 배우를 잡아서 자신이 미행을 붙이고 공격을 한 일이었기에 강민후의 팬들도 그랬고, 민후 쪽 소속사에서 고소 취하면서 손해배상까지 해버리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강민후의 이름값은 클 것이다. 덧붙여서 사람들이 이런 행동을 한 연훈을 봐줄 리는 없었고, 법적으로도 크게 문제가 될 것이다.
“강민후, 제 남자로 만들고 싶어요.”
상당히 난처한 처지가 되어 그녀의 드센 기에 눌리던 연훈은 그녀가 반대쪽 다리를 꼬면서 하는 말에 적잖이 놀랐다. 그녀는 들었던 찻잔을 다시 내려놓았다.
“그게 과연 확실한 방법이었나요? 사진 한 장 찍은 것 가지고 요즘 잘나가는 배우를 내린다는 게. 아직 당신 같은 사람도 좋아해 주는 팬이 있는데 말이죠.”
그녀는 흘끗 연훈을 보면서 말했다. 연훈 같은 이도 스크린에서는 사라졌다고는 하나 수년 후라면 재개 가능성이 보였다. 그녀는 빙긋 웃으면서 ‘한번 계획을 이야기해 봐요. 지금 내가 강민후가 사주하여서 그런 입장을 표했다고 기사화한다고 가정하고.’
오연훈의 눈이 이채를 머금었다. 이 여성, 노린 건가 했다. 확실히 아무리 그것이 치명타일지라도 그의 주가가 내려가는 것일 뿐 완전히 사라지지는 못한다.
“당신 말처럼 그렇게 기사화된다면 강민후는 끝이야. 그럼 한윤하하고도 헤어지지 않겠어? 그때 당신이 도와주는 거야.”
“그렇지만 진실이 밝혀진다면요. 사주하지도 않았고 제가 짝사랑했었던 것이 밝혀지면.”
“안 밝혀지게 해야지.”
연훈은 메마른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신이 나서 떠들었다. 일단 모든 패는 그녀가 쥐고 있었다. 그녀가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서 오연훈의 미래도 달라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 떡인가 싶었다. 정말 채은이 그렇게 해준다면 강민후는 완전한 추락이다.
“당신은 강민후만 가지면 돼. 그게 목적 아닌가?”
오연훈은 그녀와 자신의 마음이 맞는다고 여겼다. 그는 긴장했던 몸이 다소 풀리는 성싶었다. 그도 다리 한쪽을 꼬면서 소파 뒤쪽으로 양팔을 둘렀다.
채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는 듯싶었다.
그리고 이내 몸을 일으킨 그녀는 컴퓨터 쪽으로 몸을 돌렸다.
“받아야 할 메일이 있었는데…… 어디 보자.”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마우스를 딸칵딸칵 클릭했다. 그러고는 빙긋 웃었다. ‘전송 완료.’라고 그녀는 말했다. 오연훈은 이해할 수 없는 소리에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했다가 소파 쪽을 향해 있는 모니터 위쪽의 카메라를 발견할 수 있었다.
“뭐, 뭐야! 지금 뭘 한 거야.”
그는 너무 놀라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녀 앞으로 다가섰다. 한 메일 사이트에서 ‘전송이 완료되었습니다.’라고 창이 떠 있었다.
채은은 강민후를 지켜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가 더 이상 자신 때문에 상처 받는 것은 원치 않았다. 그리고 오연훈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이 그에게 주었던 피해를 갚아주어야 한다고 여겼다.
비록 실질적인 피해는 채은 본인이 더욱 크게 입었다. 그러나 그를 위협하려는 이가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그가 들어오기 전 이미 카메라는 돌려놓았고, 동영상도 계속 촬영되고 있었다.
그의 이메일 주소는 이미 쳐놓고 대기하고 있었던 터라, 동영상 저장 버튼과 보내기 버튼을 누르자 끝나버렸다.
오연훈은 더 이상 강민후를 위협할 수도, 건드릴 수도 없었다. 이젠 검찰에 구속될 확률이 높은 상황이었다.
“이, 이런 미친년이……!”
와장창!
오연훈은 그녀의 컴퓨터 앞으로 다가가 모니터를 들어서 바닥에 내리쳤다. 모니터 화면에 금이 갔다. 그는 그것을 발로 지근지근 밟았다. 그러나 채은은 소파에 다시 앉아서 원두커피의 향기를 맡았다.
“오늘따라 더욱 짙은 것 같네요. 부숴도 소용없어요. 전송되었다니까요.”
그녀는 빙긋 웃었다. 등 뒤로 씩씩거리는 숨소리가 느껴졌다. 자신의 바로 등 뒤까지 그가 와서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침착했고 냉정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그는 자신을 이곳에서 어쩌지를 못한다. 이곳은 자신의 학원이었으며 그가 강민후를 끌어내리기 위해 미행하고 사진을 올렸던 행위가 드러난 상황이다. 그리고 채은과 그가 함께 있었다는 증거 자료가 있었다. 때리지도 죽이지도 못할 것이다.
“앉아요. 아직 이야기 안 끝났어요. 참! 저 때리면 폭행죄까지 추가돼서 징역살이를 면치 못하실 것 같네요.”
그녀는 여유롭게 맞은편을 가리켰다. 오연훈은 습관적으로 손이 머리 뒤쪽까지 넘어갔으나 결국 그 손을 부들부들 떨기만 할 뿐 그녀를 어쩌지 못했다.
그는 갖은 욕설을 담으면서 그녀의 앞에 앉았다.
“아이구, 착해라. 앉으라니까 앉으시네요?”
그녀는 남은 원두커피를 모두 마시고는 조롱하듯이 웃었다. 오연훈은 채은을 당장 때리고 지끈지끈 밟고 싶었다. 그러나 채은은 건드릴 수 없는 존재다. 그녀가 가진 힘과 그녀의 부모님이 가진 힘을 생각해본다면 채은을 건드리는 순간, 자신은 되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걷게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말 잘 듣는 분이 왜 이렇게 심보가 고약한지.”
그녀는 중얼중얼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그녀는 빙긋 그를 보며 다시 웃었다. 연훈은 본인도 모르게 ‘시발…….’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화가 많이 나셨네요. 그런데 어쩌죠, 저도 화가 많이 났네요.”
그녀의 표정이 순식간에 싸악 변했다. 얼굴에서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녀는 진심으로 화가 났다.
이번 강민후와 자신 사이에 있었던 일은 자신이 원인제공을 했다. 그러나 그 모습을 자신의 사적인 복수심을 채우고자 이용한 오연훈. 무엇보다 강민후를 위협하려 한다는 것이 제일 화나게 했다.
“제 생각에는 오연훈 씨는 초범이 아닌 걸로 아는데. 징역을 살 수도 있겠네요. 참! 저한테 하셨던 것처럼 사람을 풀어서 뒷조사 좀 했습니다. 요즘 불법 도박에 흥미를 느끼고 계시다고 봤는데. 이미 그 자료도 민후에게 보냈어요. 그리고 혹여 징역 살고 나왔는데 또다시 강민후에게 보복을 하려 한다거나 하면…….”
채은은 차갑게 식은 표정으로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연훈을 보았다. 그는 당장이라도 욕설이 나올 것 같았으나 너무 놀라 그것을 토해내지도 못하고 있었다.
“내가 당신을 죽일 수도 있어. 그러니까 인제 그만 꺼져.”
채은은 차갑고 냉정하게 말했다.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밖으로 나서기 전 그를 돌아보았다.
“참, 기물파손죄도 추가.”
그녀는 철저하게 그를 농락했다. 문이 닫히는 순간 오연훈의 욕설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가볍게 무시한 채 주차장으로 향했고 곧 자신의 차량에 올랐다.
차량에 올라 차 키를 꽂으면서 그녀는 떨리는 자신의 오른손을 왼손으로 잡았다. 실상 아무리 상식적으로 자신을 그가 건드리지는 못하겠지, 라고 생각을 해도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오연훈은 이미 상식을 벗어난 일을 했다. 멍청하게도 자신에게 쪽지를 보내왔던 점. 혹여 일이 틀어졌을 시를 생각한다면 해서는 안 되는 아둔한 짓이었다.
하물며 연훈은 자신의 배경을 알고 있을 것에도 불구하고 그런 무모한 짓을 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자신과 만남. 물론 자신이 만나지 않으면 모든 사실을 공론화하겠다고 밝혔기에 어쩔 수 없이 만난 것이기는 하다.
사실 확실한 증거는 없는 실정이었고 그를 통해서 증거 확보를 해냈다. 이것이 전부 상식적인 것을 벗어나 복수심에 눈이 먼 그의 경솔한 행동이었으며 만약 그가 사람을 신체적으로 해하는 데도 상식선을 벗어났다면 어쩌면 채은은 그 자리에서 그에게 폭행을 당했을 수도 있다.
더불어 그가 자신을 죽이려 했을지도 모른다. 오연훈은 말 그대로 이제 끝난 것이다. 더 이상 배우의 길을 걸을 수 없고, 그의 작품이 TV에서 방영될 때마다 사람들은 채널을 돌릴 것이다.
그리고 민후와 채은 사이에 있었던 일은 그 덕분에 묻힐 것이다. 오연훈이 너무나 큰 사건을 만들어 준 상황이었다. 사람들은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관심을 둔다. 그에 반면 민후와 채은의 일은 채은이 부담하고 있었고. 이는 연훈의 일보다는 작은 일에 속하지 않는가.
이제 사람들의 마녀사냥은 오연훈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키를 꽂으려다 결국 손을 내려놓은 그녀는 긴장이 풀려서인지 눈물이 흐르는 것을 알고 손으로 조심스레 닦아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거밖에 없어……. 미안해, 민후야.”
그녀는 서러움이 복받쳐 올랐다. 실제 그녀의 속마음은 오연훈의 말처럼이라도 해서 그를 끌어내리고 피폐해진 그를 돕고 자신에게 와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성이 전혀 없음을 인지했다. 그를 나락으로 떨어트린 자신의 도움을 민후가 원할 리도 없었으며, 민후는 자신이 돕지 않아도 설령 시청자들이 모두 외면할 일이 생겨도 이겨낼 이인 것을 누구보다 그녀가 더 잘 알았다.
그는 약하지 않은 남성이었다. 그는 충분히 강했다. 단지, 만약 차라리 그렇게라도 되었으면 민후를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칠 뿐이다. 정말 그 일이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있었다면 자신은 그랬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이라도 하는 자체가 그녀는 스스로가 미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양손으로 핸들을 쥔 상태로 머리를 묻은 채 한참이나 차량에서 울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승진의 집에서 막바지에 이른 연습에 한창이던 민후는 자신과 채은에 관련한 사람들의 글이 차츰 사그라지는지 확인하기 위해 인터넷에 접속했다가 자신의 메일로 채은의 메일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압축된 파일을 풀어본 후 적지 않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오연훈과 채은이 대화를 나누는 것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동영상을 보고 이 일이 이슈가 되기 시작한 것이 오연훈 때문이었으며, 그가 자신에게 미행을 붙였고 자신을 끌어내리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민후는 처음 그 동영상을 접하고 당황했다. 오연훈과 자신이 원수지간인 것은 맞다. 그러나 오연훈이 스스로 자신을 원수라고 인식한 것이고, 자신은 실상 크게 개의치 않아 했었다.
매니저를 폭행할 당시 소속사에 알린 것도 그의 잘못이었으며, 그의 타락은 모두 민후가 행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스스로가 타락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타락이 민후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었던 듯싶다. 그리고 자신 혼자서는 떨어질 수 없다는 생각에 민후 역시 내리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듯하다.
민후는 이 동영상과 함께 오연훈이 도박장에서 도박하는 장면이 포착된 사진까지도 채은에게 받을 수가 있었다.
실상 얼마 전 처음 사진을 업로드했던 이가 적발되었고 그에 합당한 법적 조치 절차 중에 있는 실정이었으나 오연훈이 일부러 다른 이를 고용하여서 그가 올린 것처럼 행동했음도 추측이 가능해졌다.
민후는 곧바로 소속사 대표인 함태웅을 찾았고 함태웅도 그 동영상을 보자마자 크게 분노했다. 일단 민후의 이번 일에서 소속사가 받은 피해가 있었다.
하물며 자신의 소속 배우를 어떠한 이가 모함하고 추락시키려 했다는 사실에 태웅은 큰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곧바로 소속사 쪽 변호사와 이야기를 나눴으며 연훈은 불법 도박죄는 당연하고 사생활침해 건과, 소속사와 민후 측 피해를 줄 목적으로 고의적으로 일을 행했고, 또한 다른 이를 고용하여 자신은 교묘히 수사망을 피해간 것에 대한 괘씸함 등도 모두 죗값을 물을 수 있다고 밝혔다.
곧바로 자료는 경찰에 넘어갔으며 고소가 치러졌다. 그는 이제까지의 전과에 붙여서 불법 도박죄가 가장 크게 힘을 받아서 징역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변호사의 확신 어린 대답을 받을 수 있었으며. 소속사와 민후가 받은 정신적, 물리적 피해 등도 모두 소송을 통해서 받아낼 수 있다고 했고, 그 소송 금액이 10억 원 이상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증거 자료가 경찰에 넘어가고 당연하게도 오연훈은 인터넷과 뉴스, 신문기사 등을 뜨겁게 달궜다.
-배우 오모 씨, 인기 현저히 꺾이는 자신과 다르게 흥행하는 배우 강모 씨에게 원한 생겨…… (연예일보 최태곤 기자)
배우 오모 씨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배우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속속들이 그에게서 터져 나왔던 폭행 건, 음주운전 건 등의 문제를 일으키면서 수많은 이들의 질타를 받은 바가 있다. 하물며 그는 매니저를 폭행했다는 기사로 하여금 시청자들의 질타를 받은 바도 있었다. 그는 현재는 스크린에서 찾아볼 수 없는 배우가 되었다.
그에 반면 배우 강모 씨는 평소 성실한 성격과 좋은 연기력에 항시 호평을 받고 인기를 누리던 젊은 배우이다. 현재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배우이며 기부 천사로도 유명하다.
그런 강모 씨에게 오모 씨는 과거 매니저 폭행 당시, 강모 씨가 개입하여 제지하고 소속사 측에 압박을 가한 것에 원한을 품었던 것으로 조사결과 드러났으며, 원한을 품었던 오모 씨는 사람을 통해 강모 씨와 주변 인물들을 미행하고 그를 찍은 사진 등을 배포했으며 그와 더불어 불법 도박죄에 관련한 증거를 추가적으로 검찰에서 확보한 상황이다.
현재 검찰은 오모 씨의 불구속 수사 견해를 밝히고 그를 소환하여 수사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오모 씨는 용의주도하게도 다른 이에게 돈을 제시하고 사진을 올리라고 지시하기도 하는 등의 행동을 보여 시청자들의 더욱 따가운 눈총을 사고 있다. 시청자들은 오모 씨의 그런 악의적인 행동에 ‘원한이 있다지만 스스로가 잘못했던 거다.’, ‘참, 어이가 없게도 사람을 몰아가는구나.’, ‘강모 배우 누군지 알겠다. 괜히 피해만 보았다.’, ‘연예인이라고 봐주는 것 없이 콩밥 두둑이 먹이기를.’ 등의 다양한 의견 등을 보이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