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장 손은 눈보다 빠르다 (34/51)

4장 손은 눈보다 빠르다

-강민후 주연, ‘눈보다 빠르다’ 타짜들의 이야기…… (중계일보 유가희 기자)

타짜는 노름판에서 남을 잘 속이는 재주를 가진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우리나라에는 드러나지 않은 타짜들이 수두룩했다. 20년 전만 하여도 전국적으로 100여 명에 그쳤던 타짜는 어느덧 서울에서만 200여 명 정도의 숫자로 확인되었다. 타짜들은 비밀리에 활동하며 노름판을 움직이면서 다른 이들과 함께 팀을 이뤄서 일명 ‘호구’로 불리는 이들의 돈을 갈취하는 이들을 뜻한다. 이러한 타짜를 얼마 전 전역한 배우 강민후가 연기할 것으로 캐스팅되어 화제다. 강민후는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눈보다 빠르다’라는 영화에 캐스팅되었다. 영화 ‘눈보다 빠르다’는 최동민 감독 각본 제작으로 벌써부터 사람들의 관심이 뜨거운 편이었다. 강민후는 ‘눈보다 빠르다’에서 곤이 역할을 맡음으로써 열연할 계획이다. 한편 최동민 감독은……(생략).

우리나라에는 또렷하게 도박판을 소재로 잡은 영화는 없었다. 하물며 민후가 읽어본 시나리오 눈보다 빠르다는 흥행 가능성 여부가 충분했으며 이미 송준기 만화가의 원작을 통해서 많은 이들에게 인증된 상황이었다.

식객전쟁보다 그 인기가 훨씬 높았던 편이었으며 결정적인 것은 역시나 원작이 낫다는 말을 피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하물며 이번 영화에 너무나도 또렷한 개성과 실력을 겸비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게 된다.

여성으로서는 강혜수가 있을 것이다. 강혜수는 1986년부터 연기를 시작한 여배우였으며 데뷔와 동시에 주연으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드라마로 시작하여 점차 영화에도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그 활동 범위를 넓혀갔으며 1980년대와 90년대를 주름잡았던 여배우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인기를 이끌어가고 있었으며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아름다워지고 도발적인 이미지로 변신한 그녀는 상당히 주목받는 실력파 여배우라고 할 수 있었다.

현재 나이 마흔세 살이었다. 그러나 겉으로 보았을 때는 20대 후반 같은 외모와 풍부한 가슴과 볼륨감 넘치는 엉덩이는 많은 남성이 꿈꾸는 섹스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외모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이번 영화에서 정 마담 역할을 맡음으로써 곤이와 사랑을 나누기도, 때로는 뱀 같은 모습으로 악랄함을 보이기도 할 예정이었다.

또한 류승진. 너무나도 잘 알려진 배우. 한 기사에서 그를 취재했을 때 그는 촬영장에서 쉴 새 없이 책을 읽는다고 말했다. 덧붙여서 그의 연기를 위한 공부는 끝이 없었으며 조연을 자주 맡기는 하나 그의 연기력만큼은 주연 못지않았다.

안티 팬은 아예 없을 만큼 대중적인 이미지로 사랑받으며 항상 뚜렷한 연기력을 선보이는 대단한 배우였다.

박윤식.

KBC 공채 탤런트로 1970년대 데뷔했다. 현재 데뷔 경력만 따져보아도 40년 가까이 되는 이였다. 그러나 주연을 맡기 위해서 10년 이상의 시간을 투자했으며 그에 걸맞게 대단한 연기 실력을 선보이는 이들 중 한 사람이었다.

코믹이면 코믹, 스릴러면 스릴러, 액션이면 액션 등 많은 것을 해내는 배우였고, 오랜 시간 연기경력이 긴 만큼 보증되는 관객도 만만치 않다고 할 수 있었다.

이제까지 수많은 작품을 히트시킨 장본인이며 후배들을 위해서 쓰디쓴 조언도 마다하지 않는 분이었다. 강호이던 시절, 민후는 가끔 어렵거나 머리가 복잡할 때 그를 찾아뵈어 조언을 구했던 적도 많았으며 꽤 친분이 두텁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배우는 아니지만, 최동민 감독. 흥행보증 감독 중 한 사람으로서 유명했으며 조감독이나 조명감독 등으로 이 바닥에 뛰어들어서 관객 수 500만이 넘는 작품을 세 개 이상 배출해낸 대단한 감독이었다.

2004년에 그가 휩쓴 상만 하여도 일곱 가지는 되었다. 각본각색상, 신인 감독상, 청룡영화상 신인 감독상, 대종상 영화제 시나리오상, 신인감독상 한국 영화편론가협회 신인감독상 등 2004년에 작품 하나로 수많은 영화제에서 갖은 상을 받은 이력이 있으며, 그 후로도 단순한 운이 아니었음을 보여줌으로써 대한민국 최고의 감독 중 한 사람으로서 떠오른 감독이다.

그와 작품을 해보지 못해 안달 난 배우들이 수두룩했다. 그리고 이번 영화는 더욱 주연을 둔 캐스팅에 관심이 컸다. 최동민 감독이 평소 함께 영화를 찍은 적이 있었던 배우 중 박윤식, 류승진과 함께 나서기로 했기 때문이다.

세 사람이 뭉친 것만으로도 그 힘은 대단한 편이었다. 많은 관계자가 관심을 둘 수밖에 없었고, 이에 최고의 여배우 강혜수와, 젊지만 그 힘이 대단한 강민후가 똘똘 뭉쳤으니 요즘 최고의 관심사는 ‘눈보다 빠르다’일 수밖에 없었다.

민후는 제작사 측에서 최동민 감독에게 내어준 사무실에 와있었다. 오늘의 자리에는 최동민 감독, 박윤식 선생님, 류승진 등이 와 있었다. 세 사람 모두 영화에서 타짜로 나오는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 앉아 있는 이는 조금 특별한 이였다. 장병연이라는 이로 평범한 중년 남성 같은 이미지였다. 우중충한 패딩 조끼에 그래도 한껏 멋을 내기 위해 입고 온 정장 바지와 낡은 구두를 신은 그는, 현재 한 시골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농사꾼일지 몰라도 그는 대한민국을 주름잡았던 최고의 타짜였다. 수많은 타짜가 그를 기억하고 있었으며 그에게 앙심을 품었던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현재는 평범한 농사꾼이 되었으며 이번 영화 ‘눈보다 빠르다’에 가장 도움이 된 이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타짜 계를 떠났고 더 이상 타짜의 기술을 전수하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번 영화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더 이상 타짜가 되려는 사람들이 없게 하기 위함이다.

아직도 국내의 도박판에는 타짜들이 판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중 대다수가 타짜로서의 길에 들어선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타짜들은 분명 일반인들보다 많은 돈을 번다. 10억 원의 판돈을 건 화투를 벌인다고 가정한다면 타짜는 교묘하게 갖은 기술을 이용하여서 승을 하게 되고 판돈을 10억을 갖는다.

그러나 정작 그 10억 중 갖는 돈은 3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약 3억 원 정도이다. 분명 큰돈이다. 많은 돈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 타짜라는 직업은 너무 위험했다.

시나리오를 보면 타짜 질을 하면 손목을 자른다 등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실제로 손목을 자른 경우는 없었다. 되레 망치로 손을 내리쳐서 손을 못 쓰게 한 경우는 있었다.

그렇지만 타짜는 한 번 빠져들면 돈맛으로 하여금 사람을 망치는 지름길이었으며 한편으로는 언제 잡혀 들어갈지 모르는 위험부담도 가진 이들이 타짜였다.

그 때문에 장병연은 그 부분을 누구보다 빠르게 직시하고 타짜가 되려는 이들을 감소시키자는 이유로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으며 갖은 정보를 제공했다.

현재는 타짜에 관련된 책까지 써서 후배들이 그런 길에 빠지지 않게 하려고 노력 중에 있었다.

“배우분들 눈이 모두 한결같이 좋습니다. 피하지 않아요.”

그는 작은 웃음을 지으면서 배우들을 본 평가를 하였다. 타짜가 되려는 이들은 눈을 피해서는 안 되었다. 겁을 먹어서도 안 되었다. 겁을 먹고 눈까지도 피한다면 그들은 타짜 기술을 익혔다 한들 겁에 질려 타짜 기술을 펼쳐보지도 못하기 일쑤이다.

타짜가 되기 위해서는 남자로서의 포부가 커야 했으며 욕심과 욕망이 가득 차야 했고 정신적으로도 강해야 했다. 고난이도의 심리전을 펼치기도 하기 때문이다.

장병연이 이들을 보았을 때 모두 눈도 좋았고 풍기는 기운 또한 좋았다.

“박윤식 씨는 조금 안타깝습니다. 참여하는 부분이 없어서 다행이에요.”

“무슨 말씀이신가요?”

박윤식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면서 하는 말에 의아한 표정이다. ‘손을 펼쳐보세요.’라고 하자 윤식은 손을 펼쳤다.

“패를 잡기에 좋지 못한 손입니다. 기술을 연마하기 힘들어요. 그래도 박윤식 씨는 타짜 기술을 보이는 부분이 거의 없는 거로 압니다. 시나리오에 딱 한 번 나오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 부분 연습하는 데는 크게 무리가 없을 듯합니다.”

“그렇습니까. 이거 전문가의 말이니 믿어야겠지요.”

장병연의 말에 윤식은 연륜이 있어 당혹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말에 순순히 수긍했다. 하물며 무리는 없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두 배우는 어떤가요?”

이번 영화에 가장 기대가 큰 최동민 감독이 물었다. 절로 두 사람이 손을 펼쳐 보였다. 그는 유심히 손을 살펴보았다.

“두 사람 모두 좋은 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분…… 음…….”

그는 이름을 모르는 듯싶었다. TV를 잘 보지는 않는 듯싶었다. 민후는 공손하게 ‘강민후입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빙긋 웃었다.

“포부가 큰 것 같고 무엇보다 얼굴에서 보이는 것들만 보면 타짜 중 상당한 실력을 가진 이중 한 사람을 보는 것 같습니다. 풍기는 분위기 자체가 강합니다.”

“그렇습니까? 하하! 사실 저도 이 녀석 풍기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여기긴 했습니다.”

장병연의 말에 박윤식이 ‘하하’ 웃었다. 그는 동감한다는 모습이었다. 비록 장병연은 타짜의 고수였으며 박윤식은 오랜 시간 연기를 해온 연기의 대가였지만 두 사람이 민후에게서 느낀 분위기는 한결같았다.

남들과 다른 포부가 보였으며 무언가 짙었다. 어쩌면 그 짙음은 최강호이자 강민후이기에 가지게 된 것일지도 몰랐다. 분명 그는 강민후였지만 최강호였다. 강호이지 않기 위해 노력해도 스스로 본인도 모르게 그러한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싶었다.

“아주 잘 배울 것 같습니다. 이분도 강민후라는 친구만큼은 아니지만, 무척 좋아요. 놀랍습니다. 두 분 모두 타짜를 했다면 도박판을 휩쓸었을 거예요.”

그의 작은 칭찬에 민후와 승진은 빙긋 웃었다. 두 사람 모두 손색이 없는 열정과 포부를 갖춘 사람들이다. 박윤식도 인정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한번 꽃을 펼쳐보도록 하죠.”

그는 화투패를 집어 들었다.

“타짜들의 기술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바꿔치기, 낱장 치기, 밑장빼기, 그리고 이 세 가지 기술을 통해서 200가지 이상을 변형시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민후는 막내답게 몸을 일으켜서 담요를 가져와 테이블 위로 깔았다. 담요 위로 장병연은 다섯 장의 패를 내려놓았다.

“모두 이 패를 눈으로 익히셨나요?”

“예.”

“네.”

모든 배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동민 감독도 본인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장병연이 손을 갖다 대는 순간이었다. 다섯 장의 패가 모두 바뀌었다.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갑자기 패가…….”

“뭐지?”

패 다섯 장이 전부 변했다.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장병연을 바라보았다. 그는 빙긋 웃으면서 다시 패 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크, 다시 원래의 패로.”

촤촤앗!

그의 손이 다시 휙 움직이자 기존의 패로 바뀌었다. 류승진이나 다른 배우들도 자신들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 타짜들이 주로 쓰는 말입니다. 저희의 손은 정말 눈보다 빠르거든요.”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뒤집었다. 손을 뒤집자 조금 전 나타났던 패 다섯 장이 그 안에 들어가 있었다. 실제로 화투를 칠 때 사람들은 엄지와 검지를 이용한다.

타짜들은 그 점을 이용해서 손바닥을 살짝 구부려 교묘하게 화투패 다섯 장을 그곳에 숨기고, 눈보다 빠른 손놀림을 이용해서 화투패 다섯 장을 바꿔 버리는 것이다.

“이 기술이 바꿔치기입니다. 어때요.”

샤샥!

샤샥!

그는 순식간에 두 번 패를 바꿨다. ‘우와…….’ 하고 그 장면을 지켜보던 이들이 감탄했다. 실제로 눈이 좇지를 못하는 실력이었다. 정말 대단한 속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류승진과 민후는 머리가 새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들이 저 기술을 익혀야 했다. 웬만한 연습으로는 가능할 것 같지 않다. 가벼운 연습으로 되었다면 대한민국에 돈을 따는 자는 없고 타짜들끼리의 싸움만 계속 생겨났을 터다.

연이어 장병연은 낱장 치기와 밑장빼기를 보여줬다. 낱장 치기는 패를 섞으면서 자신이 원하는 패를 가질 수 있는 기술이었다. 그는 열 장의 패를 순서대로 깔고 다시 섞었다.

그러나 다시 패를 위에 올릴 때는 아까와 똑같은 패의 순서대로 나열되었다. 신기에 가까운 손놀림이다.

그리고 밑장빼기. 위에 있는 패를 빼는 듯하면서 밑에 있는 패를 빼는 기술이다. 정말 이 기술에서는 모두가 뜬 눈으로 껌뻑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건 서비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화투패를 쥔 손을 민후에게 내밀었다. ‘원하는 만큼 빼보세요.’라는 말에 그는 반절 정도를 빼내었다. 장병연은 빙긋 웃었다.

“제 손에 남은 패는 일곱 장입니다.”

그렇게 말한 그는 담요 위로 패를 던졌다. 사무실 내의 모든 이들이 한패 던져질수록 자신들도 모르게 그 숫자를 세고 있었고, 정확히 일곱 장이었다. 세 차례를 더 보여주었다. 언제든 그는 정답을 맞혔다.

“대단합니다.”

박윤식이 감탄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다른 이들도 동감한다는 분위기였다. 그는 잠시 배우들을 둘러보다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저에게 배우는 타짜 기술을 영화 촬영 외에 절대 사용하시면 안 됩니다. 좋을 게 없어요.”

요즘 연예인들 도박 건이 많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러할 때 희박한 가능성이었지만 혹여 이들 중 배운 누군가가 사용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장병연은 영화를 통해서 타짜들이 있다, 도박판에서 절대 평범한 사람이 돈을 딸 수 있는 사람은 없음을 인식시키고 사람들에게서 도박을 멀리하게 하고 타짜들도 그 수가 절감하게 하려고 돕는 것이다.

실제 타짜 양성을 위한 게 아니란 것이다. 그의 뜻을 알기에 안의 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이 기술들을 도박판에서 사용하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5-6년 정도 됩니다. 쉬운 일이 아니에요.”

확실히 그의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물론 흉내 내는 것은 가능할 터이다. 그러나 실제로 돈이 오가는 신중한 자리에서 그들의 눈을 피해 기술을 펼친다는 것은 정말 오랜 시간의 노력이 필요할 듯했다.

“3개월 가지고는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본격적인 촬영은 3개월 후에 들어간다. 최동민은 난감하다는 듯이 턱을 어루만졌다. 실제로 시나리오에서 극 중 역할이 구사할 기술만 익히면 되었다.

그러나 요즘의 영화는 리얼리티를 추구한다. 그 때문에 실제로 배우들에게서 노련한 손놀림이 보여야 맞았다. 3개월은 부족하다고 장병연은 생각했다.

“어려운 장면은 제가 대역으로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단, 배우분들이 허리와 손에 쥐가 나도록 화투패를 만져야 해요.”

그의 말은 즉 크나큰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 말에 류승진은 ‘그건 제가 제일 잘하는 겁니다. 하하!’ 하고 웃어 보였다. 대표적인 노력파 배우 아니던가. 덧붙여서 민후도 자신 있었다.

이야기는 지속되었다. 장병연은 시골에서 영화 촬영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올라온 것이었다. 하물며 제작사 측에서 요청한 것이고 가르쳐 주는 데에 대한 보수도 필요했다.

덧붙여서 배우들이 왕래하면서 배우러 다니기에는 빠듯했다. 그 때문에 그가 생활할 공간이 필요했다. 최동민은 제작사 측에 연락하여서 숙소를 마련하려 했으나 류승진은 자신의 집에서 지내면서 가르쳐달라고 요청했다.

아직 승진은 미혼 상태였다. 집도 넓다면서 그는 자신의 가슴을 두들겼다. ‘생활하시는 데에 불편함 없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같이 맥주도 한 잔씩 하고요!’ 하면서 말했다.

장병연은 실상 남과 함께 지낸다는 것이 껄끄러운 듯 보였으나 류승진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어색함이 없게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하물며 그의 매력적인 웃음은 장병연의 경계를 허물게 하기에 충분했다.

민후도 되도록 류승진의 집에서 함께 잠을 자거나 하면서 배우기로 했으며 윤식의 경우 왕례를 하면서 배우기로 했다. 어차피 윤식의 경우 한 가지 장면을 익히는 것이었고, 3개월 정도면 왕래하면서 배워도 충분하다는 의견의 병연이었다.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류승진은 직접 장병연을 모셨다. 어느덧 두 사람은 ‘형님’ ‘아우’ 하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승진이 자연스럽게 ‘오늘 저녁에 치맥 어떻습니까, 형님!’ 하면 장병연은 웃으면서 ‘치맥이 무슨 말이래, 응?’ 하면서 민후를 보았다.

“치킨 맥주를 뜻하는 줄임말입니다.”

“그래? 요즘 사람들은 그것 말하기 귀찮다고 줄여서도 말하나? 치킨 맥주보다는 맥주에는 땅콩이나 오징어가 적적하지.”

“하하! 그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형님!”

함께 생활하면서 심심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일단 승진의 입담이 좋았고, 병연도 그런 승진과 민후가 꽤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일단 장병연을 모시고 승진이 데리고 가기로 했으며, 민후는 하루는 집에서 잔 후 다음 날부터 짐을 챙기고 승진의 집으로 가기로 이야기를 나눴다.

각자 밴에 올랐다. 장병연은 밴에 오르면서 ‘차 안에 살림 차려도 되겄어? 하하.’하면서 웃는다.

민후의 밴이 집 앞 아파트에 도착했다. 정수는 내일 아침에 오겠다는 말과 함께 돌아갔다. 아파트로 들어가려던 민후는 앞에 서 있는 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 실루엣은 무척이나 익숙한 실루엣이었다. 단지 자신이 알던 그 실루엣보다 머리카락이 20㎝는 더 길어져 어깨를 넘어있었다. 민후를 아파트 앞에서 기다리는 실루엣은 다름 아닌 김채은이었다.

채은은 민후를 보자 활기를 띠었다. 그녀도 이곳까지 오는 데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2년이라는 시간을 그 하나만을 생각하면서 기다렸다. 그리고 2년이 지났을 때 민후가 전역하고 그녀를 처음 맞아준 것은 다름 아닌 한윤하와 강민후의 공식 열애 인정 기사였다.

그녀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대중들 앞에서 사랑한다고 말을 한 후 두 사람은 연인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강민후가 보고 싶었다. 덧붙여서는 2년이라는 기다림 동안 그녀에게는 자존심이라는 것이 수그러져 있었다.

오히려 그것보다는 보고 싶다는 미친 듯한 갈망이 더욱 크게 자리 잡았다.

“안녕하세요. 제가 먼저 찾아봬야 했는데…….”

민후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실상 찾아봬야지, 하는 생각은 몇 번 했었다. 그러나 그녀의 ‘기다릴게.’라고 했던 그 말이 조금 걸렸었다.

실상 머릿속은 그렇게 생각해도 그녀와의 만남이 민후에게는 작은 두려움으로 다가왔던 것일 수도 있었다. 그녀는 민후를 보자마자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기뻤다.

2년이라는 시간은 기다림으로 치면 길었다. 하물며 사랑을 약속받은 대상도 아닌 짝사랑이었다.

“보고 싶어서 왔어.”

그녀는 당당해져 있었다. 이젠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내보이고 있었다. 한윤하와 강민후가 사랑을 하는 이때 채은은 스스럼없이 그 말을 했다.

“조금 부담됩니다.”

민후는 망설이다가 말했다. 지금 그녀는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항상 피하기만 하고 망설이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자신의 감정을 스스럼없이 내보이고 있었다.

하물며 그녀가 내뱉은 말은 위험한 발언이었다. 아무리 자신을 좋아한다고 한들 연인이 있는 것을 아는 그녀가 자신에게 이런 발언을 한다고 좋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나, 난 그냥 2년 동안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렇지만 저에게는 윤하가 있습니다. 신중히 말씀해주세요, 선생님.”

오늘따라 선생님이라는 말이 채은에게는 더욱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2년 만의 만남이었다. 그래서 그도 자신을 어느 정도 보고 싶어 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기대보다는 부담스럽다는 말이 먼저 민후에게서 나왔다. 적잖이 그녀는 충격을 받았다.

“들어가지 마.”

민후는 떨쳐내야 한다고 여겼다. 자신이 강해져야 했다. 그래야만 그녀도 자신도, 윤하도 상처를 받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 아파트로 들어가려는 그에게 들려온 목소리는 차가웠다.

“널…… 너하고 윤하 씨에게 피해를 줄 생각은 없어. 단지, 얻기 위해 노력할 거야…… 계속.”

그녀는 변했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고 민후를 얻고 싶다는 욕망이 더욱 커졌다. 그러나 그녀의 심성상 두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러나 민후는 아니었다.

“지금 이 행동 자체가 피해일 수 있습니다, 선생님.”

민후는 마지막 대목에서 목이 메었다. 안타까웠다. 어째서 자신에게 이러는 것인가 싶다. 채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렇다. 자신 스스로는 두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하려고 한다지만 이러는 것 자체가 피해가 되는 행위일 수도 있었다.

강민후는 자신으로 하여금 부담감을 크게 느끼고 있었으며 한윤하와의 연인 사이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내가…… 내가 너무 변해버렸어.’ 하고 그녀는 생각한다.

민후는 휙 하니 들어가 버렸다. 자리에 선 그녀는 초라해질 대로 초라해지고 민후를 곤경에 빠트리기만 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계속 좋아할 거야.’ 한다. 그를 만나지 못해도 그에게 다가설 수는 없어도 그를 좋아할 것이다. 그것이 그녀의 욕망이자 욕구였다. 악녀같이 변해버린 그녀였으나 최소한의 이성은 남아 있었다.

자신이 아끼는 사람이 상처를 받는 것은 본인 스스로도 원치 않았다. 그녀는 힘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한 여성과 접촉했습니다. 지금 울면서 돌아가는군요.”

근래에 민후의 집 주위와 그의 스케줄 장소로 끊임없이 나타나는 인원 중 그의 집 앞에 매복해 있는 사내는 김채은과 민후의 접촉에 드디어 한 건 잡았다는 모습이었다.

남녀가 만나게 되고 여성이 울었다는 뜻은 참 쉽게 풀이할 수 있었다. 상대편 통화자는 무척 기분 좋다는 웃음이다.

-그래? 과거 연인이었거나, 뭐였거나 하겠지. 그 여자를 잘 조사해봐. 뭘 하는 여자인지, 또 강민후와는 어떤 사이인지. 당신들이 그 방면에서는 베테랑이니까.

“예, 알겠습니다.”

통화를 끊은 남성은 터벅터벅 사라지는 채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래? 과거 연인이었거나, 뭐였거나 하겠지. 그 여자를 잘 조사해봐. 뭘 하는 여자인지, 또 강민후와는 어떤 사이인지. 당신들이 그 방면에서는 베테랑이니까.”

상당히 고급스러운 오피스텔이었다. 사내는 기분 좋다는 듯이 ‘하하하’ 하고 웃어 보였다. 그의 오피스텔 곳곳에는 갖은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그 포스터에는 한 남성 배우가 다양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으며 그가 촬영했던 드라마나 영화도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오연훈이었다.

오연훈은 쫄딱 망해버렸다. 실상 ‘부드러운 남자’ 직후 참여한 작품이 없었다. 이 바닥은 안 좋은 소문이 퍼지면 그대로 끝장난다. 아무리 한때 35%를 넘어섰던 드라마에 출연했고, 상당한 팬층을 확보하고 있었던 배우라고 할지라도 소문이 너무나 안 좋게 퍼진 오연훈은 거의 매장 당하듯이 되었다.

감독들이나 담당 PD들은 더는 그와의 활동을 기피했다. 일단 그와 함께 작품을 하게 되면 그의 건방짐을 받아주기가 싫었고 불화가 생기는 것조차도 싫어했다.

그들로서는 괜한 도박을 걸 필요가 없었다. 한때 잘나갔던 배우라고는 하나 뉴스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던 배우가 바로 오연훈이었다.

그를 더 이상 데려갈 감독, PD는 없었다. 그 때문에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작품 하나 하지 못했다. 아니, 그에게 떨어졌던 작품 하나가 있긴 했다. 그러나 조연이었다.

우습지 않은가, 천하의 오연훈에게 조연을 맡으라니. 그는 당차게 안 하겠다고 했다. 그는 이 상황에서도 찬밥 더운밥을 가리는 자존심 강한 인간인 것이다.

더 이상 작품 활동을 하지 않는 만큼 CF와 각종 홍보대사 등등에서도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결국 푸른 소속사와 마찰이 생겨서 제 발로 걸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가 이제까지 행했던 불화들을 빌미로 소속사 대표인 현우가 계약위반을 걸고넘어지며 거액의 돈에 대한 언급까지 했다. 그 언급은 즉 ‘좋은 말로 할 때 꺼져’라는 의미와 같았다.

그는 결국 소속사에서도 나온 상황이었다. 지금은 어디 방송국에 가기에도 껄끄러울 때였다. 차라리 시간이 약이라고, 수년을 기다린 후에 사람들이 그리워할 때쯤에 나타나는 것이 나았다.

시청자들은 이상했다. 어떠한 연예인이 안 좋은 일을 만들게 되고 방송에서 잠적하게 된 후 수년이 흐르면 인터넷에 각종 글이 게시된다.

‘인제 그만 복귀해도 되지 않나?’

‘그가 출연하는 드라마와 영화가 그립다.’

‘죗값은 충분히 받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팬심은 확 꺾였다가도 다시 올라오는 것이 팬심이었다. 여자의 마음처럼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 시청자들의 마음이었다. 그 때문에 그는 몇 년을 쉰 후 다시 재개할 계획이었다.

그 전에 거사를 하나 치르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그건 강민후를 밑으로 끌어내리는 것이다.

촤르륵!

그는 얼음이 담긴 투명한 잔에 위스키를 따랐다. 얼음 사이로 위스키가 스며드는 경쾌한 소리가 났다.

그는 한 모금 입을 축였다. 입안에선 시원했고 목을 넘겼을 때는 뜨거웠다.

“크-!”

그는 작은 감탄을 하면서 잔을 보면서 실소를 흘렸다. 자신과 그의 마찰이 시작된 후부터였다. 그때부터 오연훈은 밑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실상 그것이 어째서 강민후 때문이겠느냐마는, 그는 강민후의 건방진 태도가 싫었고 자신을 얕보는 것이 싫었다. 그는 자신이 처리해야 할 적이라고 여겼다.

하물며 자신 혼자서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것이 억울했고 그 오만방자한 콧대를 꺾어버리고 싶었다. 그는 바닥에 떨어지고 자신은 다시 올라가는 것이다.

“여자라…… 병신 새끼, 결국 네 새끼도 깨끗하진 못해.”

그는 마지막 남은 위스키를 입으로 털어냈다. 각종 기사에서는 그를 ‘천사표 배우’, ‘멋진 배우’, ‘신사적인 배우’ 등 다양하게 좋은 쪽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자신은 분명 그도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 부분의 공략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아무 성과가 없자 의아했다.

정말 사람이 살면서 죄 한 번 짓지 않은 것인가 한 것이다.

그러나 결국 오늘 하나 걸려들었다.

이 건이 그에게 피해를 줄 수 있을지 아닐지는 현재 확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여성이 그와 이야기를 한 후 울었다는 것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했다.

그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너도 곧 내 꼴 나게 될 거다.’라고 중얼거리면서 휘파람을 분다.

* * *

류승진의 집은 넓었다. 상당히 비싼 가격의 아파트였다. 그는 다른 데에 돈을 쓰기보다는 자신의 집을 꾸미는 데에 주로 버는 돈을 많이 쓴다고 했다.

그 때문인지 집 안에는 값비싸 보이는 가구들이나 도자기들도 찾아볼 수 있었다.

“이 방은 뭐 하는 곳이에요?”

“내 보물창고.”

민후는 짐을 챙겨서 그의 집으로 왔다. 승진이 자랑하듯이 집 안 곳곳을 안내해주었다. 유독 문이 닫혀 있는 곳 하나가 크게 눈에 들어왔다. 장병연에게도 자랑했던 것인지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여러모로 대단한 양반이야, 저 양반도.”

“자, 짜잔!”

그는 손수 문을 열어 보이면서 내부를 보여줬다. 내부를 본 민후는 입이 떡 하니 벌어졌다. 방은 무척 넓었다. 거실만 한 크기의 방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안이 전부 책으로 가득 찼다는 것이다. 책장에 가득 꽂힌 책들은 수천 권은 되어 보였다.

종류도 무척이나 다양하게 꽂혀 있었다. 권당 1만 원이라고 가정한다고 하더라도 1억 원은 족히 될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책장에 꽂힌 책은 많았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류승진이 앉아서 책을 보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찻잔이나 간식을 올릴 수 있는 테이블과 푹신해 보이는 소파가 인상 깊었다.

지이잉!

지이잉!

“어때, 멋있지.”

리모컨 버튼 하나를 누르자 블라인드가 올라가며 햇빛이 알맞게 들어왔다. 민후는 자신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배우 계에서 책벌레로 유명한 류승진의 집은 가히 그 말이 나오기에 아깝지 않다고 할 수 있었다.

“민후야, 너 요리 잘하지.”

“예.”

“우리 맛있는 거 좀 해줘라, 응?”

류승진은 정말 친한 형 같았다. 그는 자연스럽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배를 문질렀다.

그의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된 자신이었다. 하물며 방도 많았기 때문에 스케줄 소화 후 퇴근하여도 개인적인 생활에서 불편함을 느끼지는 못할 것 같았다.

민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겠다고 했다.

냉장고를 열자 갖은 채소와 과일, 재료들이 깔끔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가끔 어떤 한심한 네티즌들이 류승진에 관련하여 이런 글을 적는다. ‘생긴 것만 보면 어디 동네 노숙자같이 생겨서.’라는 터무니없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 상대방이 류승진의 이 집과 냉장고를 보면 그런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의 집은 먼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깨끗했다.

하물며 냉장고만 보아도 음식 같은 것도 꼬박꼬박 제대로 챙겨 먹는 것 같았다.

그는 애호박과 양파, 느타리버섯, 두부를 꺼내었다. 된장찌개를 만들려고 이미 예정하고 있었나 보다.

그것들을 썰어서 냄비에 넣고 보글보글 끓이면서 꽁치를 굽고 다른 밑반찬을 만들어냈다. 한 상 가득하게 차려지고 류승진과 장병연은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먹었다.

“형님, 앞으로 요리는 민후가 하면 되겠지요?”

“젊은 친구가 음식 솜씨가 아주 좋아.”

장병연의 칭찬에 민후는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식사한 후 거실 바닥으로 담요가 깔렸다. 장병연은 화투패를 집어 들었다. 민후와 승진에게도 한 묶음씩의 패를 줬다.

그는 밑장빼기부터 가르쳐주겠다고 말하면서 사무실에서 보여주었던 것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그러나 민후와 승진은 아무리 다시 보아도 위에서 빼는 것처럼 보였다.

밑에서 뺀다고 인지하고 볼지라도 마술을 보이는 것처럼 위에서 빼는 것 같은 모습이다. 두 사람이 다시 한번 작게 감탄했다.

“자, 천천히 보여줄 테니 두 사람 모두 똑바로 보라고.”

병연은 천천히 빼는 모습을 보여줬다. 위에서 빼는 것처럼 하면서도 그는 중지를 교묘하게 움직이며 밑쪽의 패를 빼냈다. 그나마 그가 천천히 보여주자 맨눈으로 어느 정도 확인이 가능했다.

두 사람이 그 모습을 흉내 내듯이 따라해 보았다. 그러나 밑 장을 자신 딴에는 빠르게 뺀다고 하여도 그것은 사람의 맨눈으로 충분히 확인이 가능한 것이었다.

정말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의 연습을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앉은 자세에서 계속해서 패를 섞으면서 타짜꾼처럼 보이기 위한 노련함을 연습하고 밑장빼기 연습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쉽사리 진전은 되지 않았다.

“흐미! 죽겠다.”

승진은 검지에 침을 발라 콧잔등에 바르기를 반복하면서 인상을 썼다. 허리에 강한 통증이 밀려왔으며 다리 역시도 쥐가 난 것처럼 저렸다.

민후도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 계속 앉아서 화투를 만진다는 것은 무척이나 괴로운 일이었다. 이 행동을 앞으로 3개월 동안 반복해야 한다는 것에 승진과 민후 둘 다 까마득해졌다.

그러나 두 사람은 노력의 대가였다. 실상 두 사람은 같은 성향을 지닌 서로를 만났다고 할 수 있었다. 류승진이나 강민후, 두 사람 모두 노력의 대가였고, 민후가 ‘독종’이라는 말을 듣는 것과 마찬가지로 승진 역시도 비슷한 말을 사람들에게서 많이 들었다.

그 때문인지 서로 눈치를 보면서 더욱 자리에 앉아 있기 위해 노력했다. 스스로에게 연습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대단한 사람들이네. 벌써 그 자세로 네 시간이 넘었어.”

샤워하고 나온 병연은, 괴로워 보이는 표정임에도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꿋꿋이 화투패를 만지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면서 질린다는 표정이었다.

자신도 연습할 때 쉬지 않고 네 시간을 앉아 있던 적은 없었다. 민후와 승진, 두 사람은 서로 선의의 적수를 만난 것이다.

* * *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민후와 류승진은 스케줄이 없을 때는 집에서 계속해서 화투패를 만지는 연습을 했다. 특히나 두 사람의 배우고자 하는 욕구는 무척이나 컸기 때문에 장병연이 감탄할 정도였다.

두 사람은 정말 쉴 틈이 없다. 만약 스케줄이 없는 날이라면 밥을 먹고 씻는 시간 등의 최소한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종일 화투패만 만졌다.

그리고 민후의 경우 시나리오를 외우고 그 극 중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까지 하고 있었기에 하루의 숙면 시간이 무척 적었다.

류승진도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 그는 타짜에 관련한 동영상들을 찾아보기도 했으며 책을 사서 읽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간혹 민후가 승진이 읽은 책을 빌려서 읽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 중 일취월장했다면 류승진보다는 민후가 더욱 앞섰다. 민후의 손놀림이 승진보다도 더욱 빨랐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승진의 경우 나이 어린놈이 자신보다 낫다는 것에 민망해하지 않고 오히려 빨리 따라잡아야겠다는 집념하에 연습을 가한다는 것이다.

민후도 따라 잡히고 싶지는 않은 마음이었기에 그가 뒤로 바짝 쫓아오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피나는 노력을 가했다. 그 때문에 한 달이라는 시간이지만 장병연이 놀랄 정도로 두 사람은 빠른 손놀림을 보였다. 물론 그들에게 빠른 손놀림이다. 장병연에게는 턱없는 손놀림이었다.

탁탁탁탁!

민후는 패를 섞다가 밑장빼기를 하면서 담요 위로 패 한 장 한 장을 던졌다. 장병연과 류승진은 유심히 바라보았다. 밑장빼기는 자신이 원하는 패를 뽑는 것도 중요했다.

단순히 안 보이게 위 장이 아닌 밑장을 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패를 뽑아내어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이 밑장빼기라는 기술이었다.

민후의 손놀림은 빨랐다. 한 달 배운 것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실제로 장병연의 전성기 시절 많은 이들이 배우고 싶다고 찾아왔다. 그들 중 대부분이 생사의 갈림길에 선 이들이다.

그러니 도박을 배우는 것이지 않겠는가. 그들 중 꽤 뛰어나게 될 재목의 타짜들도 있었다. 그러나 강민후만큼의 빠른 흡수력은 얻어내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배우는 속도가 아주 빨라. 노름판에 들어왔으면 휩쓸었겠는데?”

장병연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만큼 그는 정말 대단한 손을 가졌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류승진이 민후가 했던 것을 그대로 해 보였다. 아쉽게도 여전히 민후보다는 약했다.

그러나 그 역시도 실제로 노름판을 위해 기술을 연마하는 이였다면 웬만한 타짜꾼들에게 밀리지 않았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장병연은 만족스러운 미소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도 그에게 인정을 받은 것 같아 상당히 기분이 좋았다. 그는 이대로라면 생각했던 것보다도 빠르게 시나리오의 기술들을 익힐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몇 마디를 더 나눈 후 민후는 몸을 일으키며 외출 준비를 했다.

“오늘은 저 녀석 없으니 저희 둘끼리 중화요리나 드시겠습니까?”

“그거 좋지. 요즘 컬컬한 게 당겼는데, 얼큰한 짬뽕으로 하지.”

“형님 입맛이 저하고 꼭 맞습니다, 정말. 하하!”

민후의 외출은 곧 두 사람이 저녁을 차려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두 사람은 배달을 시키려는 듯싶었다. 차려입고 나온 민후는 주차장에 있는 자신의 개인적인 차량 그랜저에 올랐다.

원래 입대 전만 하더라도 소나타를 몰았지만 얼마 전에 구입한 것이다. 실상 아우디 정도는 타줘야 그의 이름값이 살겠으나 차에 큰 관심은 없었다.

지금 그랜저를 타면서도 꽤 아까웠다. 대형차여서 그런지 기름값과 세금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 그가 만나러 가는 이는 어머니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머니가 만나고 계시는 남자분을 만나러 가는 것이었다. 어머니보다 나이는 두 살 많으신 분이었다.

민후가 입대 전에 어머니에게 인제 그만 재혼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을 했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연애하시기 시작한 것이다. 두 분이 만난 지는 4개월 정도 되었다고 들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무척 좋으신 분이라고 한다. 경기도 지점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가게의 체인점을 운영하시는 분이라고 들었는데, 12살짜리 어린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들었다.

아내와는 뜻하지 않게 사별하셨다고 들었다.

민후에게 두 사람의 만남은 좋은 소식이었다. 어머니가 외롭지 않기를 항시 바라던 민후였다. 실제로 아직 그분을 만나보지는 못했기에 어머니의 말처럼 정말 좋은 분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으나 좋은 분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때문에 오늘 민후는 반듯한 정장을 차려입은 상황이었다. 어머니가 계신 레스토랑으로 차를 몰고 갔다. 실상 장소는 민후가 정했다. 어머니는 현재 많은 돈을 벌고 계시는 사업가셨다. 그러나 좀처럼 일이 바쁘셔서 이런 좋은 곳에서 밥도 몇 번 드셔본 적이 없으셨다. 간혹 민후가 데리고 와서 함께 먹기는 했다.

개인적으로 민후가 예약한 곳은 상당히 부담되는 가격이었지만 맛은 무척 좋은 편이었으며 서비스 또한 좋았다. 또한, 부담되는 가격인 만큼 VVIP룸도 배치되어 있었고 VVIP룸의 손님에 관련하여 확실한 비밀을 보장해주었다.

그 때문에 유명한 연예인들이나 고위급 이들도 자주 이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것으로 안다.

레스토랑으로 온 민후는 안내를 받아서 VVIP룸으로 이동했다. 커튼이 쳐졌다. 올 때마다 분위기가 좋다고 여긴다. 창밖으로는 한강 전체가 눈에 들어오는 곳이었다.

민후는 30분 정도 일찍 온 것이었다. 괜스레 자신이 크게 긴장을 한 것 같기도 하다. 그는 휴대폰으로 머리를 어루만졌다. 오늘 어머니가 만나시는 분께서 딸아이와도 함께 오시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만나시는 분의 가족 두 사람이 오는 것이었지만 어쩌면 가족이 될지도 모르는 인원들이 만나서 하게 되는 첫 식사였다. 민후는 예의범절을 잘 알고 있는 이었지만, 혹여나 실수는 하지는 않을까 하는 작은 걱정을 하기도 했다.

20분 정도가 지났을 때 구두 굽 소리가 들렸고 커튼을 조심스레 밀어내는 웨이터의 얼굴이 보였다.

그 뒤로 어머니와 남성분의 얼굴이 보였다. 어머니가 만나시는 남성분께서는 천사같이 귀엽게 생긴 꼬마 숙녀의 손을 잡은 채 들어오셨다.

“강민후다!”

“어허! 혜인이, 이 녀석이.”

어린 꼬마 숙녀는 민후를 보자마자 경계하는 눈빛 없이 쪼르르 다가와 그를 올려다보았다. 무척 예쁘게 생긴 아이였다. TV에서 보았던 자신을 실제로 보자 무척 반가운 듯싶었다.

아직 어려 잘 모를 수도 있지만 민후는 추후 어쩌면 이 아이의 오빠가 될지도 모른다. ‘안녕.’ 하면서 민후는 머리를 한 번 어루만져 준 뒤 남성에게 고개를 정중하게 숙여 보였다.

수수한 차림으로 오셨다. 정장 바지에 낡은 구두, 와이셔츠와 코트. 그리고 착용한 안경. 상당히 인상이 좋으셨다. 남성은 빙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앉지, 앉아.”

어머니는 자연스럽게 민후의 옆에 앉으셨고 남성분은 어머니와 마주 앉고 꼬마 숙녀는 민후를 보면서 생글벙글 웃고 있었다.

“실물로 보니까 정말 잘생겼는데?”

“누구 아들인데.”

“하긴, 우리 김 여사 아들이니까.”

어머니는 뿌듯한 표정을 지으시면서 어깨를 으쓱하셨다. 남성분은 민후를 보면서 ‘장학수라고 해.’ 한다. 민후는 ‘장학 자, 수 자.’라고 중얼거렸다.

어머니와 만나시는 분이셨다. 최대한 예의를 지킬 필요가 있었다.

곧 식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값비싼 음식들이었다. 실제로 민후는 어머니의 통장을 직접 본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어머니의 통장 잔액에는 약 30억 원 금액 이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어머니는 그만큼 성공하신 사업가가 되셨다. 그러나 그런 어머니의 칼질은 무척 미숙한 편이었다.

학수가 스테이크를 썰어서 딸아이의 것과 자신의 접시를 바꿨다. ‘괜찮은데?’라고 민후는 생각한다. 분명 어머니에게 잘 보여야 할 자리였고 자신에게도 잘 보여야 했다. 그러나 자신의 혈육이고 딸을 먼저 챙겨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만큼 자신의 가족에게 헌신할 줄 안다는 사실이기도 했다. 이내 다시 가져온 접시 위의 스테이크를 모두 썬 후 이번에는 어머니의 것과 바꿨다.

어머니가 스테이크에 갖은 칼질을 해대어서 난잡하기 그지없었다. 어머니는 민망한 듯 웃었다.

“우리 김 여사하고 나는 실상 이런 음식보다는 칼칼한 김치찌개 같은 게 좋은데 말이야, 삼겹살도 괜찮고.”

학수는 어머니가 민망하시지 않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민후에게 ‘어머니 음식 솜씨가 끝내주잖아? 내가 그 모습에 반했어.’ 하면서 하하 웃는다.

그는 그제야 자신의 접시 위의 스테이크를 썰어서 식사를 시작했다.

실상 민후가 걱정하는 가장 큰 부분은 장학수라는 사람이 어머니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느냐였다. 두 사람의 나이는 어쩌면 사랑이라는 단어가 무색해진 나이일지도 몰랐다.

어머니는 현재 체인점들을 이끄는 CEO이셨고 장학수는 그 체인점을 맡고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이다. 실제로 학수의 월수입은 많다고 하여도 월 600-1,000만 원 사이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에 비해 어머니의 수익은 억대를 넘나들 수도 있었다. 충분히 학수가 어머니의 재력을 보고 접근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비록 어머니는 겉으로는 꾸미지 않는 여인이었으나 수많은 체인점을 관리하는 만큼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것은 웬만한 이들은 알 것이었다.

이 때문에 돈을 보고 접근했다고도 추정할 수 있었다. 그 부분이 제일 걱정되었던 부분이다. 돈을 보고 접근했다면 진실 되게 어머니를 아껴주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학수는 민후가 보았을 때 돈보다는 어머니, 그 자체를 아끼시고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는 어머니에게서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혹여 음식을 흘리면 재빠르게 냅킨으로 그녀에게 다가서 ‘에이, 칠칠찮기는.’ 하면서 닦아주기도 했다.

오랜 시간 연기를 한 민후에게 그 모습이 ‘연기가 아니다’라고 결정이 났다. 장학수는 진심으로 어머니를 아껴주는 사람이었다. 민후는 만족한 표정이었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머니가 만나는 사람이 그녀를 아껴주는 사람이라는 것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혜인이 오줌 마려워, 아빠.”

“아줌마하고 같이 갈까?”

“응응!”

어머니가 묻자 혜인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어머니의 손을 잡는다. 열두 살. 아직 어리다고 할 수 있으나 요즘 애들은 빠르다고 한다. 실제로 화장실 혼자 가기에는 충분한 나이이다.

어머니는 일부러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자리를 비켜주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자네를 무척 걱정하고 있어. 일도 좋지만 쉬엄쉬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그는 입가를 닦으면서 말했다. 어머니는 항상 걱정하셨다. 민후가 너무나도 무리하게 생활하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리고 자네 이야기를 무척 많이 해. 무척 자랑스러워하고 있어. 나였어도 자네 같은 아들을 두었다면 무척 자랑스러워했을 거야.”

민후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학수에게도 민후 자랑을 많이 하는 것 같았다. 학수는 장난스레 웃으면서 ‘가끔은 질투가 나기도 하고.’ 하며 웃는다.

“자네가 걱정하는 일 없을 거야. 난…… 난 말이야, 자네 어머니가 가진 것 없는 사람이었어도 사랑했을 거야. 그 이유는 자네가 더 잘 알 거라 생각해. 자네 어머니의 심성은 무척 고아.”

그도 민후가 충분히 그 생각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학수에게는 딸린 어린 딸아이도 있었으며 덧붙여서 어머니와 결혼한다면 어쩌면 많은 것을 얻게 되는 것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잘 보듬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저희 어머니, 아버지 그렇게 되시고. 한 번도 남자에게 눈길 한 번 주신 적이 없으세요, 저 키우시느라요. 지금 이렇게 두 분 함께 계시는 모습 보니 정말 기뻐요.”

“에이, 뭘 그런 걸 걱정하나. 지금도 충분히 선녀 모시듯이 하고 있지. 난 단지 옷을 입고 훨훨 도망가면 어쩌나 걱정이야.”

민후의 말에 그는 손사래를 치면서 너무나도 괜한 걱정을 한다는 모습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와 혜인이가 돌아왔다.

식사를 마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에 대해서 더욱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일어날 때쯤에는 혜인이가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여서 같이 사진을 찍었다. ‘자랑해야지.’ 하면서 아버지의 손을 꼬옥 잡는 모습이 예쁘기만 하다..

계산하기 위해 계산대로 갔다. 계산서는 학수가 들고 있었다. 상당히 난감한 금액이었다. 성인 기준 1인분이 20만 원이었으며 13세 미만 아이들의 기준도 13만 원이나 되었다.

“혜인이 아빠, 오늘은 내가…….”

“아니지, 그게 아니야. 자고로 이런 건 남자가 내는 거지.”

“요즘 애들 말 들어보면 더치페이니 뭐니 그런 말도 되게 많던데.”

주로 어머니보다 아저씨가 더 계산을 많이 하는 것 같았다. 어머니의 미안한 목소리에도 아저씨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면서 계산을 하셨다. 어머니는 툭 하니 민후의 옆구리를 쳤다. ‘항상 저러신다. 내가 돈 내는 꼴을 못 봐.’ 하면서 웃으신다.

민후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분이셨다. 두 사람이 잘 만났으면 하고 바라는 민후다.

* * *

오늘은 연기 배우기 학원에 방문했다. 그는 원장실에서 희해와 함께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었다. 요즘 생각 외로 시간이 적적하게 나는 것 같았다.

미친 듯한 연습을 해야 하기는 했으나 장병연이 진도가 너무 빨라서 쉬엄쉬엄해도 될 것 같다는 말을 하기도 했기 때문에 이렇게 시간을 내서 방문한 것이다.

“민정이는 어때요?”

“아주 좋아. 그 나이에 연기를 시작했다는 것치고는 무척 좋은 것 같아. 떨지도 않고 두려워하는 것도 없어. 무엇보다 많이 배우려고 하는 의지가 강해.”

희해는 현재 이 학원에 다니고 있는 민정에 대한 물음에 극찬을 해주었다. 떨지 않는다는 것은 좋은 것이었다. 배우가 대중 앞에서 떤다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 6개월 정도 배우면 한 번 아는 감독 통해서 단역으로라도 넣어보려고.”

“그 정도예요?”

실제로 학원을 다니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원장이나 혹은 강의를 하는 배우들의 눈에 띄어서 출연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는 것이었다. 이제 스물넷. 배우로서 시작하기에는 늦은 나이에 시작했음에도 희해가 그녀를 다른 감독들에게 추천한다는 것은 상당히 좋은 실력을 갖췄다고도 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두 사람이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민정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미 그녀에게는 연락하고 온 것인지라 놀라지는 않았다. 그녀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민후를 보았다.

“앉아.”

“네.”

그녀는 민후의 맞은편에 앉았다.

“어때, 배울 만은 해?”

“원장이 있는 앞에서 그런 걸 묻냐. 으이구!”

희해가 코를 찡그리면서 장난스레 웃었다. 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사님들도 되게 좋으시고, 원장 선생님도 되게 잘해주세요.”

“우리 민정이가 원래 사회생활을 되게 잘해. 호호!”

민정은 특히나 희해가 정말 잘해준다는 것인지 양손으로 공손히 그녀를 가리키면서 한 말이다. 희해는 기분 좋다는 웃음이다. 희해로서는 금은보화를 얻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민정의 어려운 형편을 듣고 자신이 지원한다는 식으로 학원비를 일절 받지 않기로 했었지만 실상 그녀가 말 안 듣는 학생이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지원하는 만큼의 실력과 노력을 보였으며 연기 실력도 계속해서 좋아지는 추세였다.

“한번 보자. 이거 내가 후원자인데 한 번은 봐야 그래도 후원할 맛이 나지 않겠어?”

민후는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자신이 챙겨온 시나리오들을 들춰 보았다. 대본 리딩식으로 서로가 주고받으면서 진행하자고 그녀에게 일렀다. 그녀는 조금 긴장이 되는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심호흡을 했다.

민후는 이번에 자신이 하게 될 ‘눈보다 빠르다’의 대본을 챙겨온 것이었다. 그는 조금 독특하게 제시했다. 시나리오의 한 신을 보이면서 그는 여성의 역할이 아닌 곤이 역할, 즉 원래 민후가 맡아야 하는 역할을 그녀에게 리딩을 요구한 것이다.

그녀는 상당히 당혹한 표정이었다. 희해가 ‘조금 어려운데?’ 하면서 웃는다. 그가 생각하는 바를 알겠다는 것이다.

배우는 모든 것을 연기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남자든 여자이든 상관이 없었다. 여자와 남자의 목소리가 다르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전혀 배우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다.

민후는 고광렬과 곤이가 처음 만나게 되는 장면을 제시하면서 지금 어떠어떠한 상황인지를 말해주었다.

곤이가 경찰들의 불법 도박장 습격에서 배관을 타고 옥상으로 올라가 광렬과 함께 도망을 치고 광렬이 곤이에게 동업을 하자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어어어어! 동상! 잠깐만. 내 말 좀 들어봐, 응? 동상의 그 깡다구와 내가 뭉치면 무서울 게 없어! 응!? 도박판이라는 도박판은 모두 휩쓸 수 있다니까!?”

“아아, 그쪽 많이 하슈.”

민후가 먼저 대본 리딩을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이 곤이라는 도박꾼이라는 것처럼 목소리를 작게 내리깔면서 말한다.

“아따, 동상 성질도 급하네. 내가 이런 것까지 말해주지는 않으려고 했는디. 나 사실…….”

민후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시늉을 한다. 그러면서 작게 속삭인다.

“타짜여.”

“뭐? 타짜!?”

그녀가 놀란 듯하면서도 어이가 없다는 것처럼 헛웃음 지었다. 민후가 손을 휘휘 저으면서 패를 바꾸는 듯한 시늉을 한다. 그러자 민정이 능청맞게 웃으면서 같은 시늉을 해 보인다.

“이런 거?”

자신도 타짜임을 인식시키는 장면이다. 민후는 당혹한 표정을 짓는다. 민정은 자신의 갈 길을 다시 가려다 그에게 묻는다.

“그럼 아귀도 만날 수 있어?”

“이잉! 만날 수 있지, 재수 없으면.”

리딩이 끝나고 민후는 시나리오를 덮었다. 꽤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아직 상당히 미흡했다. 버벅거리는 부분이 심했으며 그 극 중 역할에 대한 몰입도가 적었다.

그러나 한 달 정도 배운 것을 생각하면 빠른 성장을 보임을 알 수 있었다.

민후는 차근차근 그녀의 문제점을 짚어주었다. 희해는 묵묵히 그가 지적하는 부분을 함께 들었다. 그녀는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고 귀담아들었다.

이야기가 끝났을 때는 민후와 민정이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심히들 들어가고 민정이는 내일 보자.”

“네, 원장 선생님. 들어가 볼게요.”

그녀는 정중히 고개를 숙여 보이고 민후와 함께 나섰다. 그녀는 민후의 차량에 함께 올랐다. 오늘 함께 갈 곳이 있었다.

그녀의 동생 이태가 결국 크게 해냈다. 그 때문에 일부러 오늘 그녀를 만나러 온 것이고 함께 그가 있을 장소로 가는 것이었다.

스타왕에 출연했던 이태는 시청자들의 큰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그의 나이 스물두 살. 그러나 그가 가진 정신연령은 6-7살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자폐증을 앓는 아이, 김이태. 그러나 그가 스타왕에 출연하여 내보인 기타연주는 대단했다. 일반적인 이들도 치지 못할 어려운 곡들을 소화해냈다.

2년 전 민후의 ‘진실 된 이야기’ 팬 미팅에서 보았을 때보다도 더욱 손놀림은 화려해지고 좋아진 상황이었다. 스타왕 출연진 중 우리나라 최고의 작곡가라고 손꼽히는 게스트도 있었다.

하물며 가수들도 있었으며 그들 모두가 한입 모아서 김이태를 극찬했다. 시청자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장애인이지만 대단한 기타 실력을 보인 이태. 기타리스트가 꿈이라는 그의 꿈이 시청자들에게 다가간 것이다.

수많은 프로그램에서 그를 캐스팅하기 위해 제의를 했다. 얼마 전에는 사람극장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취재하기도 하여서 월-금요일 동안 ‘날아라, 이태야.’라는 제목으로 5일 동안 방영이 되기도 했었다.

민후와 민정은 집에 들러서 이태를 태우고는 CF 광고를 찍기 위해 이동했다. 이태는 무척 바빠지고 있었다. 주로 어머님이나 아니면 민정이 시간이 날 때 이태와 함께 움직이면서 스케줄 소화를 돕고 있다고 한다.

오늘 같은 경우는 민후도 이태가 처음 찍는 CF라기에 관심을 가지고 직접 CF 촬영장에 방문해볼 예정이었다. 민후는 이태가 오늘 찍게 되는 CF의 시나리오를 확인했다.

<내레이션: 이 이야기는 스물두 살 청년 김이태 군의 꿈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이태는 기타를 좋아하고 아끼는 자폐증을 앓는 청년입니다.

이태는 방 안에 있다. 그의 가족으로 추정되는 한 젊은 여성이 그에게 삿대질하면서 소리를 치고 있다.

“너는 모자란 녀석이야! 너는 바보 같은 녀석이야!”

“아니다, 아니야.”

“너는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그의 가족으로 추정되는 이들은 전부 그에게 손가락질을 한다. 서서히 흐릿해지면서 그의 가족들의 모습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이태는 홀로 불이 꺼진 방의 의자에 앉아서 푹 고개를 숙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화면이 변한다. 조금 전 그에게 삿대질을 했던 여성이 다시 흐릿하게 형상이 만들어지면서 그 모습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여성은 통기타를 들고 있었다. 그것을 이태에게 건네면서 빙긋 웃어 보인다.

“넌 잘할 수 있어.”

“넌 최고야.”

“네가 하지 못하는 건 없어.”

그에게 삿대질하고 나쁜 말을 했던 가족들은 이번에는 그에게 칭찬과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으며 그의 곁을 지킨다.

이태는 그들의 목소리에 밝게 웃는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어두웠던 방 안이 환하게 바뀐다. 그리고 곧 그는 통기타를 향해 서서히 손을 뻗는다.

띤, 띤띤띤.

띤띤띤, 띤띤.

그의 손이 화려하게 움직이면서 통기타를 쳐낸다. 빠르고 경쾌했으며 아름다웠다. 웃고 있는 청년 김이태의 얼굴에는 해맑은 미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의 기타 연주가 끝이 나고 방 안의 사람들이 그를 안아준다.

내레이션: 모자란 것이 아니라 조금 불편한 것입니다.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는 환경인 것입니다. 해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보다 조금 느릴 뿐입니다. 여러분의 사랑이 그들에게 꿈이 되고 희망이 됩니다. 함께 사는 세상 더불어 사는 밝은 대한민국. 한국 장애인 고용 촉진공단과 노동부가 함께합니다.>

광고를 기획하는 곳은 한국 장애인 고용 촉진 공단과 노동부가 함께 진행하는 것이었다.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장애인들을 채용하자는 의미이기도 했으며 시나리오만 보아도 많은 뜻이 담겨져 있었다.

가족들의 삿대질과 ‘넌 안 돼.’라는 말. 계속해서 반복되는 그들의 비하와 안 된다는 목소리. 그것이 결국 장애인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그들의 희망과 나아갈 수 있는 꿈마저 뺏어간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보면 이태가 혼자 앉아 있는 방 안이 어두워지는 것도 확인이 된다. 모두가 그를 믿지 않고 그러하다면 결국 그에게는 그런 어둠밖에 없다는 뜻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다음으로는 ‘넌 할 수 있어.’, ‘넌 최고야.’ 등의 말들을 가족들은 해주고 이태는 활짝 웃는다. 그리고 화려한 기타연주를 내보인다. 가족들이 믿고 사람들이 믿는다면 결국 그들도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상당히 뜻깊은 광고라고 할 수 있었다.

“이태야, 떨지 말고 잘해야 해.”

민정은 CF 광고 제의가 들어오고 수십 수백 번을 연습시켰다고 한다. 실상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주위의 이들의 행동에 따라 그 상황에 따른 표정과 목소리를 내면 되었다.

그러나 이태에게는 그것도 조금 어려운 일일 수도 있었다. 부디 잘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CF 촬영장에 도착했다. CF 감독과 촬영팀 인원들은 뜻밖 인물의 등장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민후가 인태와 민정의 옆에 서서 함께 들어오니 의아할 수밖에.

“제가 이 친구들 돕고 있어요.”

“아, 그래요?”

CF 감독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실상 CF 감독도 장애인에 관련한 광고를 찍는 사람이었지만 그도 무의식적으로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태라는 이를 돕고 있다는 것에 상당히 놀랐다. 강민후는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현재 차기작을 두고 상당한 관심을 받는 배우이지 않은가.

얼마 지나지 않아 촬영이 시작되었다. 이태는 생각 외로 무척 잘해주었다. 그리고 촬영장에서 그는 놀라운 기타 실력을 선보였다.

그를 촬영하면서도 CF 감독은 자신의 눈을 비벼 보일 수밖에 없었으며 다른 촬영팀 인원들도 다른 바는 없었다. 자신들이 저 정도를 치기 위해서 몇 년이 걸릴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그리고 이태는 일반인들보다 더욱 빠르게 통기타를 습득했다. 그것도 더욱 놀라운 것은 처음에는 동영상을 보고 터득했다는 것이다. 서번트 증후군답게 이태는 기타에선 누구보다 천재성이 짙은 아이인 것이다.

“히야…….”

“아까 시나리오 읽어보니까 이런 글이 있더라고요.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는 환경입니다.’ 참 와 닿는 말입니다.”

“그러네요.”

CF 감독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광고에 삽입된 말처럼 만약 이태를 여전히 민정이 믿어주지 않고 구박하고 했다면 과연 여기까지 오는 게 가능했을까 싶다.

평범한 사람들도 환경에 따라서 변한다. 장애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주위의 이들이 믿고 할 수 있다고 해준다면 그들은 해낸다. 설사 이태처럼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이가 아닐지라도 말이다.

CF 감독도 민후의 말에 어느 정도 선입견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다른 촬영팀 인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너무 놀라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민후는 자신이 으쓱해지는 기분이었다.

* * *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류승진의 집에서 연습에 한창이었다. 이제는 정말 타짜꾼이라도 된 것처럼 패 섞는 모습까지도 아주 능숙해진 민후였다.

슬슬 허리가 저릴 때쯤 정수에게 걸려온 전화에 민후는 작지 않은 충격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빨리 인터넷 포털 사이트 들어가 봐!

그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민후는 승진의 집에 있는 컴퓨터를 이용해서 포털 사이트에 들어갔다. 실시간 검색어 1위에 강민후라는 이름이 떠오른 상황이었다.

더불어서 2위에는 김채은이라는 이름이 떠올라 있었다. 그 밑쪽으로 스크린을 쭉 내리자 블로거들이 추측 글을 쓰고 있었으며 뉴스 기사 쪽으로 내리면 몇 분 간격으로 기자들이 발 빠르게 글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이렇듯 실시간 검색어에 떠오른 이유는 단 하나였다. 채은이 민후의 집 근처에서 민후와 이야기를 나누고 곧 민후가 들어간 후 눈물을 흘리며 돌아가는 그녀의 사진이 두 장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사진이 올라온 지는 1시간이 채 되지도 않은 상황 같았다. 그런데도 네티즌은 사진 속 여인인 채은을 너무나도 빠르게 찾아내버렸다.

하물며 그녀도 요리계에서는 상당히 이름이 알려진 여성인지라 그녀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민후는 배우 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와 윤하가 공식적인 열애를 밝힌 지 두 달 조금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윤하가 아닌 다른 여성이 민후와 이야기를 하고 있고 눈물 흘리는 사진은 충분히 사람들의 의혹을 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하물며 각종 질문란에도 ‘두 사람 어떤 사이인가요?’라는 이야기의 질문이 떠오르고 있었으며 답변자들은 자신들만의 추측으로 두 사람이 식객전쟁을 촬영할 당시 만나서 스승 제자 사이가 된 것 같고 만났었던 것 같다고 이야기를 적어나가고 있었다.

실제와는 다른 이야기였지만 사진만으로도 그 정도의 추측이 나올 수 있기는 충분한 상황이었다. 인터넷으로도 현재 상황을 확인하고 있던 민후는 태웅으로부터의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그는 무척 성난 목소리로 소속사로 뛰어오라고 말했다. 그는 일단은 소속사로 가서 함 대표와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는 판단을 했다.

정수도 때마침 그를 데리러 오던 중이었던지 밖으로 나와 그와 만날 수 있었고 차를 타고 소속사로 향했다.

대표실로 들어온 민후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불호령 같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사진이 뭐냐, 응!? 이게 대체 뭐냐고!”

태웅은 평소의 침착함과는 다르게 민후에게 윽박질렀다. 실상 민후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실정이었다. 채은이 그에게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것은 정수도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다.

실상 그녀의 마음이 오래가지는 못하겠지, 라는 생각으로 말하지 않고 있었으며 언급할 필요성도 크게 느끼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일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민후는 흥분한 대표에게 차근차근 상황에 관해서 설명해주었다. 함 대표와 정수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채은이라는 여자가 민후를 짝사랑하고 있는 것이었다.

추측되는 글들은 전부 허위사실이었다. 함태웅은 일단 가슴을 진정시켰다. 민후로서는 난처해질 일이 생긴 것이다. 곧 얼마 지나지 않아서 두 사람 열애설, 과거 연인 설 등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후폭풍이 걸렸다. 채은은 자신의 입으로 짝사랑이었다는 것을 전 국민에게 말해야 하는 것이었으며 윤하는 채은의 마음을 모르고 있었던 상황이기에 적잖이 충격을 받을 것이다.

민후는 자신의 아둔함을 탓했다. 적어도 한윤하에게는 미리 말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이 빌어먹을 파파라치 새끼들…….’ 하고 태웅은 중얼거린다.

파파라치뿐만이 아니라 기자들도 지금 문제였다. 뭔가 꼬투리가 잡히니 기자들도 계속 ‘강민후, 배우 한윤하 만나기 전 김채은과 만난 것으로 추정’ 등의 추측 기사를 써나가고 있었다.

물론 곧 이어질 소속사의 강경대응에 차츰 누그러들겠지만, 이번 건은 공식 열애 이후 얼마 안 돼서 터진 건수인지라 소속사에서도 난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대표실로는 짙은 한숨 소리가 퍼져나갔다.

사진을 게시하게 한 장본인은 당연하게도 오연훈이었다. 그는 실시간으로 퍼지는 기사들을 보면서 조소를 흘리고 있었다. 실제 게시자는 그가 아닌 다른 인원이 했다.

우리나라에는 먹고살기 막막한 이들이 많았다. 분명 황제 소속사 측은 최초 업로드를 찾아서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그 의사를 밝히고 경찰은 수사에 나설 것이다.

그러나 게시자는 오연훈이 고용한 인원이었다. 게시자는 연훈에게 3천만 원의 돈을 받은 후 자신이 지나가다 찍었다는 것으로 가정할 것이다.

이미 사진은 퍼질 대로 퍼진 상황이었으며 사람들은 갖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연훈은 채은으로 인해 생길 일이 궁금해졌다. 그녀와 민후가 함께 있는 장면을 처음 발견하게 되고 그녀에 대한 조사는 하루 만에 끝이 나서 연훈에게로 넘어왔다.

그녀도 꽤 인지도 있는 여성이었기 때문에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물며 부모님은 상당한 재력가로 알려져 있었으며 그녀가 운영하는 학원 또한 수십억 원의 가치를 가졌다고 들었다.

그런 그녀는 연훈이 보았을 때는 짝사랑을 하는 것이었다. 연훈이 뒷조사를 한 바에 의하면 민후는 여자관계도 무척 깨끗했으며 다른 사소한 것들조차도 깨끗한 편이었다.

실제로 무언가 일이 하나 있었다면 그래도 잡아내기는 했을 텐데 그러지 못한다는 것. 하물며 여자관계가 깨끗하다는 것을 보았을 때 짝사랑일 확률이 높았다.

연훈이 본 여자라는 동물은 어려운 동물이었다. 더불어 시기, 질투가 강했다. 특히나 사랑이라는 것 앞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남성보다도 더욱 사랑이란 것에 목매다는 것이 여자라는 족속이었다.

연훈도 수많은 여자를 만나서 즐겨봤기에 알았다. 자신에게 목을 매었던 이들은 갖은 짓을 했다. 오죽하면 자신을 만나주지 않으면 사생활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했던 여인도 있었다.

혹여 채은도 그런 식으로 민후에게 나가지는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그는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성 요리사와 유명한 배우 강민후의 옛 온정이라…… 좋다.”

그는 인터넷 기사 하나를 클릭해서 읽고는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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