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장 기다릴게(2)(5권) (31/51)

국민배우 강민후

5

박민규 장편소설

1장 기다릴게(2)

‘지가 아직도 손만 흔들면 환호하는 톱배우인 줄 아나…….’

오연훈은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매니저와 코디네이터를 양쪽으로 끼고 위풍당당하게 방송국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한 PD는 혀를 끌끌 찼다. 아직도 자신 스스로가 가장 잘났다고 생각할 녀석이 바로 오연훈 그였다.

아무리 그가 몇 작품 크게 띄웠다고 한들 지금 현재 드러난 일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하물며, ‘부드러운 남자’라는 명목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완화하려던 오연훈은 음주운전으로 오히려 더욱 이미지를 깎아 먹는 행위를 해버린 것이다. 이젠 그가 손을 팬들에게 흔들면 환호성보다는 눈살이 찌푸려질 수도 있었다.

물론 다음에는 이 일이 잊힐지도 모르나 지금 하는 행동 꼬락서니로 보아서는 그러한 일이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 할 예능이 뭐라고?”

“네 바퀴요.”

연훈이 매니저에게 재차 물었다. 꽤 인기 있는 예능이라 그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쪽팔렸다. 방송국 안에서는 그 누가 먼저 와서 인사를 해주지 않는다.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던 때는 이렇지 않았다. 모두가 먼저 다가왔고 먼저 인사했다. 그러나 자신은 이제 마치 신인배우 같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관계자들은 더 이상 오연훈과의 작품 활동을 피했다. 하물며 ‘혹시 그래도 오연훈인데.’ 하는 생각으로 했던 한 PD도 쪽박을 차버린 상황이기에 아무도 그를 찾지 않았다.

그 때문에 이미지 개선이 필요했다. 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자존심을 조금 굽히고 예능에 출연하는 것이었다. 이 스케줄도 매니저가 사정사정하여서 예능 출연이 가능해진 것이다.

천하의 오연훈이 스케줄을 잡기 위해 사정사정한다는 것은 그로서는 부글부글 끓는 일이었다.

민후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려다가 오연훈을 발견했다. 자신과 상반되는 모습의 그였고, 정수는 혀를 찼다.

“당연한 결과지. 저런 녀석은 언젠간 저렇게 될 줄 알았어.”

딱 보기에도 연훈은 힘든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아마 머릿속으로 잡념이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어떻게든 이미지 개선을 하기 위해 노력하나 망가진 이미지 살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정수로서는 사실 아직도 그가 방송국에 드나드는 것이 조금 신기할 따름이었다.

“민후 군, 곧 군대 간다며?”

엘리베이터를 여러 사람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들은 요즘 한창 핫하다는 예능인 ‘패밀리가 달린다’라는 버라이어티 예능을 기획하는 이들이었다.

담당 PD가 싱긋 웃으면서 물었다.

“예.”

“그 전에 우리 프로 출연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한번 생각해봐.”

실상 담당 PD도 민후를 예능에 출연시키는 것이 녹록한 일이 아님을 알았다. 원래 배우들 대부분이 예능을 꺼리는 이들이 많았다. 이미지로 먹고사는 이들이었고 민후의 경우도 예능에 출연하는 일은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였다.

물론 출연은 못 하지만 민후는 빙긋 웃었다.

“사실 저도 ‘패달’ 꼬박꼬박 본방사수 하고 있습니다. 진짜 재밌어요.”

“이야, 그래? 이거 기분 좋은데? 응? 하하!”

민후의 말에 담당 PD는 털털하게 웃어 보이면서 뒤쪽에 선 일행을 보았다. 일행도 의외라는 표정으로 ‘오-’ 했다.

막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려던 때였다. 오연훈도 엘리베이터를 탈 예정이었는지 이쪽으로 다가오다가 민후를 보고는 멈칫한다.

‘저 개새끼…….’

그는 눈살을 한껏 찌푸렸다. 자신이 몰락하기 시작한 시점이 강민후와 마찰이 있었던 이후 같았다. 물론 그것이 어찌 강민후 때문이겠느냐마는, 아직도 녀석이 주차장에서 눈을 치켜세우고 밀리지 않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한 번 기다렸다 갈까요?”

“뭘 또 기다려.”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기에는 사람들이 많아 비좁아 보였다. 매니저의 물음에 연훈은 콧방귀를 뀌었다. 지금 타지 않으면 강민후가 자신이 그를 피한다고 생각할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곳에 함께 섰다. 민후도 그것을 의식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는 이들과 웃으면서 대화를 나눴다.

곧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우르르 모두가 함께 탔다. 넓은 안이 꽉 찼다.

“아, 그런가요? 하하.”

“그래, 그랬다니까. 내가 웃겨서 죽을 뻔했지. 하하.”

엘리베이터 내 한쪽에서는 웃음이 가득했다. 반면 연훈과 그 매니저 코디네이터들은 묵묵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완전히 상반되는 분위기였다.

“민후는 싹싹해서 좋아.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배우가 이렇게 싹싹해. 사람은 이래야지, 암. 괜스레 건방 떨다가는 한 번에 훅 간다고.”

담당 PD가 연훈이 탄 것을 보고는 한 말이었다. 그도 연훈과 마찰이 있었던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한 번 자신이 지금의 ‘패달’을 촬영하기 전 예능에 출연 제의를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가 오기로 해놓고 대놓고 펑크를 놓았기에 크게 당황한 일이 있었다.

그 이후로 소속사에 연락해서 물어보니 죄송하다는 말만 거듭했고, 정작 오연훈은 사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괜스레 건방 떨다가는 한 번에 훅 간다고.’라는 발언은 실상 오연훈을 겨냥한 말이었다.

그도 그것을 알기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치아를 악물었다.

‘개자식이…… 한 번만 출연해 달라, 한 번만 출연해 달라 할 때는 언제고.’

그는 과거와는 달라진 한 PD의 모습에 화를 속으로 달랬다. 더는 자신도 정말 섣부른 언급을 삼가야 하는 상황인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람 인생은 정말 모르는 거다, 민후야. 응?”

“하하…….”

민후는 뜬금없이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와 그의 시선이 연훈에게 고정된 것을 보고 무엇을 뜻하는 건지 눈치챌 수 있었다.

그저 민후는 민망한 듯 웃었다.

앞서 ‘패달’ 팀 인원들이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잠시 서로 간에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고, 잠시 후 민후가 내렸다.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조금 전까지의 분위기는 긴장감이 감돌았었다.

그러나 오연훈이 자신에게 뭐라고 하지는 못할 것을 그는 알고 있었던 실정이었다.

민후는 찬란한 재산의 회의실로 이동했다.

회의실에서는 마지막 촬영을 앞둔 만큼 박차를 가하자는 이야기와 덧붙여서 배우들에게 마지막이 다가오는 만큼 긴장을 풀지 말고 더욱 성심성의껏 임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권 PD의 당부가 있었다.

실상 키스신 당시에는 45%의 시청률을 확보한 상황인지라 배우들도 거만해질 수 있는 노릇이었고, 정작 높아지는 연기에 거만해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찬란한 재산에서는 그런 배우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혹시 모르기에 권 PD는 매일같이 ‘아직 드라마는 끝나지 않았고, 연기도 끝나지 않았다.’라고 언급하고는 했다.

회의를 마치고 2시간 뒤에 촬영할 인원들은 촬영장으로 가기로 했다. 민후의 촬영분도 있었기에 식사를 하고 가야 할 것 같았다.

민후는 방송국 밖으로 나서려다가 배가 묵직해진 것을 느꼈다.

“형,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그래, 그럼 난 잠시 최 PD님한테 얼굴 좀 비치고 밴에 가 있을게.”

정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인사할 사람이 있다는 듯 말했다. 민후는 서둘러 화장실로 부리나케 뛰어갔다.

그는 장 속의 숙변들을 비워냈다. 쾌감이 밀려왔고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모든 볼일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그는 나오자마자 순간 흠칫했다. 오연훈이 화장실 칸막이에 기대어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어, 요즘 잘나가네?”

화장실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쫓아온 거로 보인다.

“그렇죠. 선배님은 요즘 얼굴 뵙기 힘드네요.”

그러나 민후는 담담했다. 그의 웃음에 오연훈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의 웃음은 마치 자신을 조롱하는 듯했다. 정작 민후는 ‘웃음’이라는 것이 상대방도 기분 좋게 하는 힘을 가졌기 때문에 짓는 것이었지만 오연훈은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좋아 죽겠냐, 응?”

“용호상박 모임에서도 이제 못 보고, 조금 아쉽네요.”

촤아악!

민후는 손을 씻으면서 그의 비꼬는 말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결국, 용호상박 모임에서 제명당한 그였고, 하물며 원래 용호상박 내에서도 좋아하던 이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인지 제명되어서도 딱히 그와 연락을 주고받는 이는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완전한 외톨이가 되어가는 것이었다.

“그럼 전 이…….”

“끝났다고 생각하냐? 내가 이대로 무너질 거 같아? 이 빌어먹을 오만방자한 새끼야?”

민후가 웃으며 고개를 살짝 숙이며 나서려 하자 그는 또다시 그것이 자신을 조롱한다고 여겼다. 그는 얼굴을 굳히며 민후를 노려보았다.

“실상 다시 일어서기는 힘들지 않을까 해요. 선배님이 하셨던 일들이 많잖아요.”

“아니, 난 끝나지 않아.”

“저에게 그렇게 말씀하신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어요.”

그는 마치 자기 세뇌 식으로 ‘난 끝나지 않아.’라고 거론했다. 그가 불쌍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동정심은 10초도 가지 않았다.

“두고 봐라. 네 녀석, 갈기갈기 찢어 줄 테니까.”

“당신은 날 찢을 수도, 이길 수도 없어, 이 한심한 작자야. 난 한창 잘나가지? 근데 당신은 쪽박 찼어. 이젠 어딜 가도 받아주지도 않고 어딜 가도 대접받지 못하는 사람이 당신이야.”

“이 새끼가……!?”

계속 혼자 열불을 내고 욕설을 하는 그에게 민후도 결국 인상을 굳혔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조소를 머금고는 나서려 했다. 그의 어깨로 그의 손이 걸쳐졌다.

민후는 그 팔을 거둬내고는 밖으로 나섰다. 복도에는 사람이 많으니 쫓아오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맞았다. 그는 쫓아오지 않았다. 민후는 속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디서 어린놈의 새끼가 어른 몸에 손을 대고 있어.’

오연훈이 화장실에서 열을 올리는 모습을 생각하자 웃음이 났다.

찬란한 재산의 마지막 회가 방영되었다. 마지막 회에서의 끝은, 이환이 이제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 은성에게 직접 요리를 해주고, 은성은 그런 이환에게 먼저 키스를 함으로써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찬란한 재산의 마지막 회의 시청률은 49%였다. 이제까지의 시청률 중 가장 높은 시청률 수치였으며 더불어서 종영이 되자 수많은 사람에게 아쉬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국내에서 49%의 시청률을 낸 만큼 81개국에서 찬란한 재산을 무상방영할 예정이었다. 81개국인 만큼 세계인들이 강민후와 한윤하를 보게 된다는 이야기와도 같았다.

오늘은 종방연이 있는 날이었다.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종방연을 가지게 된다.

일단 사람들에게 ‘이렇게 종방연을 한다’ 내보이는 식으로 장소를 잡은 곳은, 찬란한 재산에 자주 출연했던 이환이 파트타임으로 일했던 설렁탕 가게에서였다.

사실 듣기로는 이 설렁탕 가게도 찬란한 재산에 방영이 되고 난 후 엄청나게 매출이 증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러모로 찬란한 재산은 방영되고 있는 동안 수많은 것을 일구어내지 않았는가 싶다.

“야야! 민후야, 기자들하고 사람들 장난 아니다.”

“예?”

주차장에서 내리려던 민후는 헐레벌떡 뛰어오는 스태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스태프들은 땀에 흠뻑 젖어서 헉헉거리고 있었다.

그들의 말에 민후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정수도 아직 상황을 확인하진 못했지만, 스태프들과 함께 민후를 빙 둘러쌌다. 그리고 가게 쪽으로 이동하니 오십여 명의 기자들이 카메라를 설치하고, 수백 명은 되어 보이는 팬들이 가게 앞을 꽉 막고 있었다.

“헉.”

“컥.”

민후와 정수가 둘 다 놀란 음성을 토해냈다. 실상 종방연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찾아올지는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자들에게도, 팬에게도 찬란한 재산은 시청률 50% 가까이 찍은 이번 연도 최고의 히트작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마지막을 찍기 위해 기자들이 몰려온 것이고, 팬들은 너무나도 재밌게 보았던 드라마이기에 종방연을 한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온 것이다.

“꺄아아악!”

“와아!”

“잘생겼어요!”

“드라마 재밌었어요!”

“잘 봤습니다!”

“강민후 씨! 이번 드라마 어땠나요! 한마디만 해주세요.”

“입대 전 마지막 작품인 걸로 아는데, 지금 심정이 어떤가요!”

민후가 등장하자마자 좁은 공간에서 시끄럽고 북적거리는 소리가 퍼졌다. 팬들은 환호하면서 손을 흔들고, 기자들은 기사 하나라도 잘 쓰기 위해서 질문 세례를 뿌렸다.

“너무너무 행복했고 이렇게 많은 분이 사랑해주셔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사랑합니다.”

민후는 한 기자에게 다가섰다. 그러자 다른 기자들도 우르르 그쪽으로 몰려들었다. 민후는 마지막에 머리 위로 하트를 만들어 보였다. 팬들은 그 모습에 껌뻑 죽었다.

“이제 가자, 민후야.”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일단 빨리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판단에 정수가 그를 이끌었다. 곧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가게 안은 이미 스태프들이 세팅을 끝낸 상황이었으며 정중앙에는 주연 배우들의 얼굴이 그려진 2단 케이크가 자리를 잡고 있었고, 샴페인과 각종 먹을거리가 가득했다.

“사람들 봤어?”

“아우! 아주 깜짝 놀랐습니다, PD님.”

배우 중에서는 민후가 가장 먼저 도착했다. 권 PD는 음료수를 따라서 건네주었다.

“이게 요즘 자네와 우리의 인기라고. 종방연에 저 정도 사람들이라니. 크-!”

그도 자신의 잔에 음료수를 따라 마셨다. 그는 작게 감탄했다. 민후도 실감할 수 없는 인기에 목이 탔는지 음료수를 마셨다.

곧이어 다른 배우들이 속속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슨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

“헐…….”

“사람들이 많구나.”

들어오면서 대부분 이들이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히 종방연이었다. 배우들과 촬영팀 인원들이 수고했다며 서로를 독려하는 자리였다. 인터뷰나 팬 미팅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수많은 인원들이 그들을 반겨주고 있었다.

차츰 배우들이 도착하기 시작하고 시간이 되었다. 아마도 여기에서 가벼운 종방연과 식사를 하고 저녁에는 술을 한 잔씩 걸치게 될 것 같았다.

“자, 베스트 커플 강민후와 한윤하의 케이크 커팅식이 있겠습니다.”

종방연이 진행되고 담당 PD는 자연스럽게 윤하와 민후를 앞으로 세웠다. 이번 찬란한 재산의 1등 공신들이라 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이 민망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섰다.

두 사람이 함께 칼을 쥐고 케이크를 커팅했다.

펑펑!

“우오오오!”

“와아아아!”

짝짝짝짝!

수많은 박수갈채와 환호 소리. 샴페인이 터졌다. 민후와 윤하, 다른 배우들에게로 샴페인이 뿌려졌다.

찬란한 재산 팀은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놀기에 바빴다. 실상 찬란한 재산의 촬영은 너무나도 고되었다. 촬영팀 인원들도 ‘힘들다’라고 느꼈을 정도였다.

시청률이 높아지는 것은 무척이나 기분이 좋은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강한 심리적 압박을 주게 되고, 그와 더불어서 더욱더 세심하고 좋은 장면을 포착하려고 노력을 해서 힘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고기를 먹으면서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찬란한 재산 팀원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먹고 마시고 즐겼다. 민후와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하루만큼은 모든 것을 훌훌 털어내리라.

“민후야, 군대 잘 다녀와라.”

“예.”

민후는 술잔을 꺾다가 등 뒤에서 누군가가 껴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권 PD였다. 그는 취기가 잔뜩 오른 얼굴로 빙그레 웃고 있었다.

“많이 챙겨주지도 못했다. 그래도 나 미워하진 않지?”

“당연하죠.”

권 PD가 기울인 노력도 상당했다. 그를 미워할 수 없었다. 아니, 찬란한 재산 팀 인원 모두를 사랑했다. 그들이 있었기에 자신이 이 자리까지 서게 되지 않았나 싶다.

민후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가갔다. 실상 자신은 곧 군대에 갈 몸이었다. 하물며 오늘이 종방연이었기에 그들과 만나는 것은 앞으로는 전역 후가 될지도 몰랐다. 수많은 이들이 그를 껴안으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 벌써 들어가시게요?”

화장실을 가려다가 카운터 앞쪽의 소파에 앉아 있는 김효정 선생님을 발견할 수 있었다. 김효정 선생님은 42년생이셨다. 상당한 연륜을 가지고 계신 분으로 연기경력도 길었다.

이번 드라마에서 그녀의 연기력도 상당히 돋보인 바가 있었다.

“나이가 드니까 몸이 쑤시네.”

빙긋 웃으시며 탁탁 자신의 옆자리를 두들기시는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손을 뻗어 민후의 왼손을 양손으로 감쌌다.

“민후 너는 하는 일 모두 잘될 거다. 군대 잘 다녀오고, 몸 아프지 말아야 한다.”

“예, 선생님.”

민후는 친할머니 같은 따뜻한 온기에 빙긋 웃었다. 그녀는 정이 많고 후배들을 아끼는 노역 배우였다. 그리고 노역 배우이지만 배우에 관한 열정이 무척 크신 분이었다.

그녀는 그 따뜻한 손으로 민후의 손을 어루만져주었다.

“어? 선생님, 벌써 들어가시게요?”

윤하가 화장실을 가려다 다정하게 소파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선생님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들어가 봐야지. 밤이 늦었어.”

“선생님, 조심히 들어가세요. 저하고 한 약속 잊지 않으셨죠?”

“그럼.”

“헤헤, 들어가세요.”

윤하는 약속을 언급하면서 묻고는 빙긋 웃으며 배꼽 인사를 했다. 그녀의 얼굴도 많이 붉어졌다. 꽤 술을 많이 마신 모양이다. 곧 그녀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윤하가 다음에 시간 나면 같이 영화 보자고 하더라고. 참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순수한 아이인 거 같아.”

“아.”

민후는 머릿속으로 윤하가 밝게 웃으면서 김효정 선생님의 옆에 꼭 붙어서 영화를 보자고 떼를 쓰는 듯한 모습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그때 김효정은 마치 친손녀를 보는 것처럼 그 아이가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졌었다.

“좋은 아이다. 민후야, 그리고 너 역시도 좋은 남자야. 너무 굴레에 연연하지 말거라. 너희는 한창 좋을 때잖니.”

“……알고 계셨어요?”

민후는 그녀에게서 돌아온 부드러운 목소리에 다소 놀랐다. 그의 물음에 그녀는 웃어 보였다.

“내 나이가 되면 가만히 앉아 있어도 사람들의 표정이 보이더라. 민후하고 윤하 너희 둘은 서로 많이 아끼고 좋아하고 있어. 나는 조금은 안타깝더구나.”

김효정은 씁쓸하게 웃으면서 민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눈에 항상 보이고는 했다. 윤하와 민후가 이야기를 나눌 때는 두 사람 사이에서 행복하다는 기류가 흐르는 듯했다.

그리고 서로를 무척 아끼는 것이 그녀에게 보였다. 물론 눈썰미 있는 다른 이들도 눈치챈 이들이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공통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아직 어린 두 사람이 ‘연예인’이라는 굴레에 억압되어서 서로 사랑하지 못하여서 안타깝다는 생각을 말이다.

“그래도 한 번은 입대하기 전에 좋아한다는 말이라도 해주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여자라는 동물은 표현해야지. 그때야 사랑받는다고 느끼거든. 그리고 그렇게 해야 윤하가 널 기다리지 않겠니?”

선생님은 마지막 ‘기다리지 않겠니?’라는 말에서 그의 어깨를 툭 치면서 장난스럽게 웃으셨다. 민후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유, 들어가 봐야겠다. 재밌게 놀았나?”

“예예, 늦어서 죄송합니다.”

어느덧 선생님의 매니저가 나왔다. 매니저는 선생님의 옆에 착 붙어서 그녀의 옆에서 그녀를 챙겨주었다. 선생님은 문밖을 나서기 전 민후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찡긋, 윙크했다. 그녀는 털털하게 한 번 웃고는 밖으로 나섰다.

그녀가 나서고 민후는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았다. 커피 한 잔을 뽑아 소파에 앉아 마시면서 그는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이기적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녀를 기다리게 하는 것이 옳은 행위일까? 물론 서로 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은 작은 의심을 하고 있기도 하다.

화장실을 갔던 윤하는 민후에게 ‘커피 맛있어?’라고 묻더니 고개를 끄덕이자 장난스레 웃으며 다시 들어갔고, 커피를 전부 마셨을 때쯤에는 채은이 나왔다.

“여기 있었구먼. 에휴!”

그녀는 힘이 부치는 것인지 그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러고는 흘끗 민후를 보면서 입맛을 다셨다.

“커피 맛있어?”

“응? 응. 너도 한 잔 뽑아먹어라.”

“에이, 한 잔은 너무 많아. 딱 한 모금이면 돼.”

그녀는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자연스레 민후가 들고 있는 종이컵을 뺏었다. 딱 한 모금 정도가 남아 있었다. 그녀는 단숨에 들이켜고는 ‘크, 인스턴트커피가 최고지.’하면서 작게 감탄한다.

“군대 간다고 나를 잊으면 안 돼용. 알았죵?”

“하하.”

그녀는 불현듯 민후와 이젠 만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친 것인지 울상을 지으면서 볼을 부풀리며 말했다. 민후는 어이가 없어서 웃는다.

“내가 왜 너랑 앉아 있을까아-”

그녀는 자신이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지 맞혀보라는 식이었다. 민후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곧 그녀의 표정에서 씁쓸한 웃음이 맺혔다.

“앞으로 윤하하고 만나기 쉽지 않잖아, 그치?”

그녀는 주위에 누가 있는지 살피고는 물었다. 그녀도 김효정 선생님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좋아한다’라는 그 말을 윤하에게 해주고 가라는 말이었다.

진즉에 눈치채고 있던 그녀도 항상 보면서 두 사람 사이가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또 2년이라는 시간을 한없이 기다려야 하는 윤하를 생각하면 안타깝기도 했다.

“짜식이! 남자가 되었으면 이런 귀띔 안 해줘도 알아서 해야지.”

“그러려고 했거든.”

“오, 그래?”

민후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채은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이채를 띠었다. 김효정 선생님의 말씀 후 ‘말해야겠다’라는 생각이 섰다. 실상 서로 감정은 안다고 할지라도 계속 증명되지 않는다면 그녀가 불안감을 가지기에도 충분하다고 할 수 있었다.

“화이팅.”

채은은 빙긋 웃으면서 파이팅 제스처를 취하고는 ‘룰루랄라’라고 콧노래를 부르면서 자리로 돌아갔다. 곧이어 민후도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술잔을 꺾었다.

어느덧 시간이 늦어지기 시작했고, 술에 취해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마지막이라는 아쉬움이 있었으나 시간이 너무 늦었기에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민후, 다음에 또 보자.”

“예.”

“군대 잘 다녀와라.”

“민후, 잘 다녀와.”

수많은 이들이 가게를 나서기 전 격려의 말을 해주었다. 모두가 강민후라는 배우가 어떠한 배우인지 알게 되었고 좋은 친구라는 것을 알았다.

하나둘 밖으로 나서기 시작하고 민후도 밖으로 나서려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윤하가 어느새 밖으로 나선 듯싶었다.

“민후야, 우리도…….”

옆으로 다가오던 정수는 갑자기 빠른 걸음으로 밖으로 나서며 계단을 내려가는 그를 의아한 표정으로 뒤따랐다. 윤하는 주차장에서 코디네이터의 부축을 받으면서 밴에 오르기 전이었다.

“윤하야.”

“응?”

그녀는 상당히 취한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민후가 부르자 빙긋 웃으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이야기 좀 할 게 있어.’라고 말한다.

“야 이씨! 너 빨리 내려.”

“예? 왜 그러세요, 선배…….”

“내리라면 내리지, 뭔 말이 많아.”

정수는 눈치 빠르게 서둘러서 윤하의 밴에 탑승하여서 시동을 건 매니저에게 손짓했다. 매니저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정수는 다급하게 말했다.

곧 매니저가 내리고 정수는 매니저와 코디네이터의 손목을 한쪽씩을 잡고는 밴과 멀어지게 끌고 갔다. 실상 두 사람 사이를 가장 안타까워한 사람은 정수이지 않은가 싶다.

항상 민후의 옆에 서 있는 흑기사 같은 그는 민후가 그 굴레 때문에 사랑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에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오늘 그 낌새를 보아하니 민후가 윤하에게 자신의 마음을 밝힐 것 같았다.

그는 조용한 것을 원할 테고 자신이 지금 해줄 수 있는 일은 방해될 이들을 빼주는 것이었다. 정수는 윤하 측 코디네이터와 매니저를 자신의 밴으로 밀어 넣고는 자신도 문을 닫고 들어갔다.

“선배님, 왜 그러세요?”

“아, 이 눈치 없는 새끼. 그냥 조용히 있어.”

정수는 윤하의 매니저이면서도 여전히 그 사태 파악을 못 하는 두 사람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민후야, 꼭 성공해라.’라고 정수는 속으로 조아린다.

민후와 윤하는 함께 밴에 올랐다. 윤하는 정말 술을 많이 마신 듯싶었다. 계속해서 빙긋빙긋 웃기만 하면서 의자에 목을 기대고 있었다.

“여자가 칠칠하지 못하게.”

“오- 강민후, 멋있는데.”

민후는 치마를 입고 있는 그녀의 하체를 외투를 벗어서 덮어줌으로써 가려주었다. 윤하는 ‘헤헤’ 웃으면서 무척 좋아했다. 민후는 잠시 어색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할지 고민되었다. 다짜고짜 처음부터 ‘좋아해’라고 말해야 할지, 아니면 이야기를 빙 둘러대다가 말을 해야 할지 말이다. 이렇게 보니 자신도 참 바보 같다, 는 생각을 하는 민후이다.

정신연령은 이제 예순이 넘는다. 강민후로서 살았던 삶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말 한마디 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어쩌면 강민후라는 존재가 본래 여자를 멀리했던 존재이기 때문에 그러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에게 ‘좋아한다’, ‘사랑한다’라는 말은 가벼운 의미가 아니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쉽게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것이 가볍지 못하다.

“에휴, 군대 가면 많이 힘들다는데- 어쩐대.”

그녀는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요즘 군대는 군대도 아니라는 말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나, 기다려줄 거지?”

민후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그 의미는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었다. 윤하는 다소 놀란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이내 그녀는 픽 웃었다.

“너, 너무한다.”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다짜고짜 ‘기다려 달라’라는 말에 그녀는 의아했다. 단지 그 말을 하는 것뿐인가.

물론 자신은 그를 기다릴 것이다. 어차피 강민후라는 이가 아니면 다른 남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좋아해, 아주 많이. 전역하면 너하고 만날 거야.”

“……그래?”

그는 그녀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말했다. ‘좋아해’라는 말 한마디에 그녀는 밝게 웃을 뻔했다. 그러나 그녀는 팔짱을 끼었다.

“얼마만큼 좋아하는데?”

그녀는 장난스레 물었다. 민후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60년을 기다릴 수 있을 만큼.”

민후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자신의 살아온 총 연수는 60년을 훌쩍 넘는다. 그리고 그제야 그녀 같은 인연을 만났다고 여긴다. 그 시간 동안 그녀를 찾아 헤맸다. 그 때문에 하는 말이다.

그러나 윤하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과장되게 하는 말이라고 여겼으나, 그의 마음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선물은 없어?”

취기가 오른 그녀는 장난스레 물었다. 그러자 민후가 다소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 입을 맞추려고 했다.

“나 술 냄새난단 말야, 바보야. 씨이-!”

그녀는 좋은 듯하면서도 자신이 술을 많이 마신 것을 기억해내고는 그의 가슴을 양손으로 밀어냈다. 민후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그녀는 황당하다는 듯이 웃었다.

“튕겼다고 안 해?”

“응?”

“에이-!”

민후는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녀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가 민후에게 다가와 입을 쪽 맞추고는 바로 그의 코앞에서 그를 보고는 빙긋 웃었다.

민후의 한쪽 팔이 그녀의 뒷머리를 받쳤다. 그리고 한 손으로는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그가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그는 천천히 혀를 집어넣었다.

윤하의 혀도 그에게로 향했다. 서로의 혀가 엉켰다. 그녀의 입술은 부드럽고 달콤했으며 그 속 안의 혀는 매혹적이었다.

“기다릴게.”

서로의 입술이 떼어졌을 때 서로를 보며 잠시 웃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민후의 품속으로 들어와 그를 꽉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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