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기다릴게(1)
-특별기획 드라마 찬란한 재산. 진농설렁탕 대표, 이환의 할머니 단기 기억 상실증으로 흔한 전개. 그러나 숨 막힐 듯 빠른 행보로 시청자들 눈길 사로잡아…… (연예일보)
-강민후, 한윤하 주연 찬란한 재산 방영 8회 만에 시청률 30% 넘어서. 올해의 최고의 시청률 기록할 것으로 전망…… (좋아일보)
-찬란한 재산으로 요즘 가장 핫한 배우 강민후와 한윤하 독점취재! 강민후, 변해가는 이환 역할 촬영할 때마다 그 마음 느끼는 듯하여 뿌듯해…… (하늘일보)
-찬란한 재산 시청률 40% 돌파. 한윤하, 강민후 외모도 업! 연기력도 업! 강민후, ‘건방져져도 되나요?’라고 농담. 그러나 겸손한 몸짓 시청자들 좋은 반응 보여……
-찬란한 재산. 좋은 시청률에 2회 연장 방송 확정! 시청자들 마음은 100회 연장……!
찬란한 재산이 날개를 달아버렸다. 회가 올라갈수록 꾸준히 상승하던 시청률은 8회에 도달하자 30%를 넘어서는 기변을 토해냈다. 정작 권 PD도 배우들도 믿을 수 없는 결과였다.
실제로 권 PD와 관계자들이 점친 최고 시청률은 30%였다. 아무리 좋은 스토리, 배우들의 연기력이 돋보인다고 할지라도 진부한 ‘캔디’와 ‘까칠한 왕자’의 만남은 환영받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8회를 넘어섰을 때 시청률이 40% 가까이 달했다. 40%는 전 국민의 반절 정도가 그 시간대에 찬란한 재산을 보고 있다는 것과 같았다.
실제로 한윤하와 민후, 두 사람 모두 공중파 방송보다는 영화를 통해서 인지도를 크게 쌓고 있었다. 그러다 처음 도전한 드라마에서 완전한 대박을 터뜨려버렸다.
그들을 알게 된 사람들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하물며 어르신들도 간혹 민후를 알아볼 정도였다. 그만큼 두 사람의 인기는 찬란한 재산을 통해서 너무나도 커져 버렸다.
시청률 40% 돌파. 마지막 회에서는 어쩌면 50% 가까이 될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서 민후가 녹음해 삽입된 OST는 시청자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파워풀한 목소리에 담긴 힘은 ‘강민후가 이렇게 노래를 잘했어?’라는 반응을 일으켜 세웠다.
덧붙여서 OST가 드라마에 삽입되어 방영되는 순간, 각종 포털 사이트를 ‘강민후 OST’라는 제목으로 점령하였으며 다운로드 및 스트리밍 횟수가 2주일간 1위를 기록하였을 정도였다.
입대 전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더욱더 얼굴을 확고히 알리자는 생각에 시작하였던 드라마 촬영이 비약적인 대박을 터뜨리게 된 것이다.
물론 그만큼 촬영팀 인원들, 시나리오 작가, 배우들은 더욱더 신중하게 임할 수밖에 없었다. 시나리오 작가는 사실 새드엔딩을 고려하고 있었지만 높은 시청률 수치에 해피엔딩으로 시나리오를 기획했다.
새드엔딩은 주로 사람들의 뇌리에 기억에 남기 위해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중에는 저조한 시청률로써 사람들의 기억 속에라도 남으려고 할 때나 혹은 강한 마지막을 장식하려 할 때였다.
이 정도 대박 시청률을 가지고 새드엔딩을 간다면 SBC 측에 시청자들의 항의가 빗발칠 것이 불이 보듯 뻔한 것을 아는 시나리오 작가인 것이다.
배우들도 무척 바빠졌다. 더욱더 신중하게 연기를 위해서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었으며 많은 배우가 시나리오의 극 중 역할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실상 배우들이 가장 빛을 발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배우가 상당한 연기력을 자랑하는 배우들이었으며 자신들이 맡은 시나리오를 모두 깨우치고 있어서 상황에 적절한 애드리브 역시도 가능해졌다.
실제로 배우들이 드라마나, 혹은 시트콤 등에서 자신만의 애드리브로 유행어나 명대사를 남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적절하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그만큼 이해했다는 의미이기도 하였다.
이번 드라마의 성공의 주 공신들은 바로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들이라고 할 수도 있을 정도로 모두가 최선을 다해주고 있었다.
“어디 보자.”
민후는 가벼운 식사를 끝내고 시간을 확인하였다. 5일간 촬영장에서 살았다. 오늘 하루의 경우 휴식이 주어졌고 내일도 강원도 동해시로 넘어가서 촬영을 진행해야 했다.
박주빈이 맡은 김준세가 크루즈 레스토랑을 기획하고 그를 통해서 승미, 이환, 은성 등이 동행하여서 간다는 스토리가 펼쳐지게 되는데, 중요한 것은 이환이 이번 화에서 은성에게 자신의 진실 된 마음을 보이고 ‘김준세 따라가지 마! 내 곁에 있어!’라고 하는 대목이 있다는 것이며 결정적인 키스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키스신. 실상 민후는 이제까지 촬영한 어떠한 영화에서도 키스신이 없었다. 논스톱 5에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데뷔 이래 첫 키스신이었으며 더군다나 그 상대가 한윤하라는 사실이 있었다. 물론 강민후는 프로였다.
극 중 역할에 몰입하되 실제 상황이 아님을 직시하고 사적인 마음보다는 촬영에 힘을 쏟아야 하는 상황인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안다.
한윤하가 아닌 다른 이와 키스신을 찍는다고 하더라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예외가 존재했다. 한윤하와 민후, 두 사람은 서로 좋아하는 사이였다.
이 부분에서 예외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었다.
일단 내일 촬영하게 될 키스신은 22회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었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키스를 한다. 무척 아름다운 장면이었으며 흔들다리에서 키스신이 진행이 된다.
민후는 눈을 감고 평소처럼 이미지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를 떠올렸고, 자신의 행동을 떠올렸다. 그리고 키스신을 하게 되는 장면까지도 떠올렸다.
그는 수차례를 반복하고 행동으로 옮겼다.
“갖고 싶은데……!”
그 말을 끝으로 민후는 자신의 앞에 그녀가 있다고 생각하고 팔을 잡듯이 제스처를 취하며 입을 맞추는 행위를 허공에 했다. 그는 수차례 그 장면을 반복하였다.
평소보다도 더욱 열심히 했다.. ‘잘해야지’ 하는 욕구가 더욱 샘솟았다. 그녀와의 키스 때문에 그러는 것인가. 아니면 한참 그 주가가 최고치를 달하고 있는 찬란한 재산의 길이 남을 명장면이기 때문인가는 알지 못했다.
몇 시간을 반복하다가 잠드셨던 어머니가 나오셨다.
“아들, 뭐 해?”
“아, 내일 연기 연습.”
민후는 허공에 ‘쪽쪽’ 하듯이 키스신을 연습하다가 밖으로 나온 어머니를 보고는 당황했다. 어머니도 평소 민후가 연기 연습을 하는 모습을 자주 보시고는 하였다.
그렇지만 오늘은 그 동작과 모습이 참 애매했다. 머쓱해 하는 민후를 보면서 어머니가 눈을 반달로 만들면서 능청스럽게 웃어 보였다.
“우리 아들 내일 첫 키스신이여서 많이 떨리겠네- 아이구, 한윤하라는 그 아가 정말 예쁘던데. 우리 아들, 그 아가씨하고 친하지 않아?”
“되게 친하지. 그리고 예쁘긴 해.”
“그래에?”
‘예쁘긴 해’라는 말에 화장실로 가시는가 싶던 어머니가 민후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그의 팔을 잡으며 슬쩍 소파에 앉혔다.
“어디가 예쁜데?”
“그냥 외모도 그렇고, 성격도 되게 좋아. 처음 만났던 장소도 발달장애 복지센터야. 봉사 활동 왔더라고.”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착하고. 딱이네!?”
“뭐가 딱이야?”
“우리 아들 색싯감.”
“흠…….”
민후는 어머니의 말에 잠시 난처한 목소리를 내었다. 어머니는 윤하를 무척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난감해 턱만을 어루만졌다.
“우리 아들 파이팅!”
찰싹!
어머니는 더 이상은 집요하게 하고 싶지는 않으신 듯 빙긋 웃으시면서 등을 따악 때리시고는 화장실로 가셨다. 그제서 시간을 확인한 민후는 벌써 시간이 늦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 시간을 자고 일어나야 할 것 같았다.
세 시간을 꼬박 자고 밴에서 한 시간을 더 잤다. 네 시간의 잠을 깊이 잔 것이다. 그러나 짧은 시간 동안의 숙면이었지만 단잠을 잔 것인지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밴을 타고 도착한 곳은 강원도 동해시의 묵호항이었다. 묵호항에는 볼거리와 먹거리가 많았다. 하물며 키스신을 찍게 될 장소인 출렁다리 역시도 보기 좋았다.
촬영팀은 일부러 출렁다리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펜션을 잡았다. 촬영을 하면서 쉬는 시간이 생기면 배우들이나 스태프들이 편하게 쉴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한편으로는 촬영하기 위해 온 것이기도 하였지만 쉴 수 있는 여건도 충분했다. 펜션에 짐을 풀고 밖으로 나왔다. 촬영 팀 인원들이 분주하게 장비를 세팅하고 있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남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점심을 먹고 촬영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식사는 각자 해결하기로 결정이 났다. 배우들은 배우들끼리 모였다.
오늘 이 촬영에 참석한 배우들 전부가 주연 배우들이었으며 젊은 배우들이다. 그 때문에 더욱더 쉬러 온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그들이 식사하기 위해 들어온 곳은 출렁다리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횟집이었다. 횟집에서 매운탕과 회로 식사를 끝마치고 나오자 어느덧 촬영팀 인원들도 장비 세팅을 마치고 식사를 하러 간 듯 조용하였다.
몇 사람만이 남아서 촬영하게 될 장소를 지키고 있었다.
“우리 놀러 가자, 놀러-!”
아직 촬영하기 위해서는 여유가 남아 있었다. 역시나 주도권은 채은이 잡았다. 채은은 신인배우였지만 이번 찬란한 재산이 시청률 40%를 기록하면서 그녀 역시도 크게 떠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은성과 이환, 두 사람을 두고 삼각관계 구조를 펼치지만, 악역은 아니었다. 단지 이환을 어린 시절부터 누구보다도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 하나하나에 한편으로는 시청자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사기도 하는 역할이었다.
그녀의 청순한 외모와 밝은 웃음. 빠르게 상승하는 인기 덕분에 이 찬란한 재산이 끝난 후에도 수많은 러브콜을 받을 것으로 예상이 되는 그녀였다.
“그래, 어차피 시간도 좀 남고 우리도 노는 분위기 좀 내야지.”
박주빈도 이번에는 그녀의 의견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배우 네 사람이서 함께 바닷가 쪽으로 이동하였다.
물은 조금 찬 편이었다. 물에 들어가기에는 조금 모호한 날씨였다. 때문에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거나 혹은 사진을 찍는 것에 열중하였다.
사진작가는 채은이 맡았다. 채은은 각종 다양한 포즈를 요구했다.
“에이! 주빈이 오빠, 좀 더 섹시하게. 우- 하고 입술을 내밀란 말이야.”
“바, 바다하고 조금 안 맞지 않나?”
채은의 다소 당황스러운 제시에 주빈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그 모습이 상당히 우스웠다. 카메라에서 ‘찰칵!’ 소리가 났다.
몇 장을 더 찍고 나서야 채은은 ‘아- 잘 놀았다.’라고 말했다. 윤하도 동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게 다 논 거야?”
“사진 찍고, 바다 보면 다 논거지. 그치이?”
“그럼-”
주빈이 당혹한 기색을 보이자 채은과 윤하는 당연하다는 모습이었다. 사진 촬영, 바다 보기 끝. 주빈과 민후로서는 두 사람이 조금 이해가 되지 않지만, 여자들의 노는 방식이 대부분이 이렇다.
찍은 사진을 게시하고 사람들이 댓글을 다는 것을 보고 좋아하고. 대부분 여자가 모두 그러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남자인 민후와 주빈은 달랐다. 두 사람은 서로 이야기라도 한 것처럼 능청스럽게 바닷가 쪽으로 걸어갔다. 신발도 일부러 샌들을 신고 왔고 바지도 걷어 올렸기에 어느 정도 물에 들어가는 것은 괜찮았다.
들어온 두 사람은 동시에 채은과 윤하 쪽을 향해 물을 뿌렸다.
“에잇!”
촤악! 촤악!
“하지 마! 하지 마!”
“꺄악!”
주빈과 민후는 두 사람을 향해 계속해서 물줄기를 뿌렸다. 채은과 윤하는 기겁하면서 도망치듯이 멀어졌다. 민후와 주빈이 승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바다를 왔으면 이렇게 놀아야지.”
“그럼요.”
두 사람은 재밌다는 듯이 킥킥대고 웃었다. 자신들과 거리를 벌린 윤하와 채은이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자신들 욕을 하는 것인가 하고 생각을 했더니 두 사람이 갑자기 달려오기 시작했다.
“다 죽었어!!”
“이야아!”
두 사람은 민후와 주빈을 향해 뛰어왔다. 실상 민후와 주빈으로서는 이겨보겠다고 덤벼드는 그 모습이 귀여워 보였다. 그러나 곧 그 귀여워 보인다는 생각은 접어질 수밖에 없었다.
물줄기를 뿌리는 두 사람은 한 사람을 집중적으로 공격하였다. 그것은 바로 주빈이었다.
“어푸! 어푸!”
그는 얼굴로 계속해서 뿌려지는 물줄기에 마주 뿌리고 있지만 밀리고 있었다. 몸을 잡아서 바다에 빠트리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그렇게 하지는 못하고 있었고, 민후도 주빈을 도와준다고 하지만 두 사람이 한 사람을 집중공격하자 결국 주빈이 도망을 가기 위해서 몸을 돌리다가 넘어져서 목까지 물에 잠기고 말았다.
“으으으! 아으, 추워……! 으으으!”
물세례를 맞았던 주빈은 도망치듯이 물 밖을 벗어났다. 아직은 바다에 몸을 완전히 맡기기에는 무리가 있는 날씨였다. 그가 도망치고 목표는 민후로 좁혀졌다.
두 사람이 민후를 향해서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결국, 민후도 도망을 치려다가 제풀에 넘어져서 물을 크게 한 번 먹고는 도망치듯이 벗어났다.
윤하와 채은이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서 벌벌 떠는 두 사람을 보면서 키득키득 웃었다. 어디서 감히 덤벼드냐는 모습이었다.
사실 주빈과 민후가 져준 것이었다. 아무리 물장난일 뿐일지라도 자신들은 남자였다. 힘으로라도 충분히 제압해서 빠트릴 수 있었다.
“헤헤, 저 모습 좀 봐! 어떻게!”
“오! 민후하고 주빈이 오빠 몸 좋다!”
바다에 빠졌기에 촬영 전인지라 가벼운 차림을 입고 있던 두 사람인지라 상체가 훤히 비쳤다. 채은이 손으로 눈을 가리듯이 하면서도 슬쩍 보면서 작은 비명을 질렀다.
윤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민후와 주빈을 보면서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의 미소는 해맑고 아름다웠다.
쿵쾅쿵쾅.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 때문일까. 아니면 바닷물이 너무나도 차가워서일까. 그의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두근거리기 시작하였다.
그 두근거림은 한참이나 지속되었다.
혹시라도 권 PD에게 혼이 나지는 않을까 하고 배우들은 걱정하였었다. 아무래도 촬영 시작 전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던 터라 다시 메이크업을 받고 몸을 녹이려면 시간이 30분 정도 소요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권 PD는 긍정의 마인드를 보이면서 ‘뭐, 이런 데 와서 놀 수도 있지! 40% 시청률의 주역들인데!’ 하면서 웃어넘겼다.
간혹 이런 말이 있다, 시청률은 사람을 바꾼다고 말이다. 권 PD로서는 40%의 시청률을 내주는 배우들을 너무나도 강하게 억압할 마음은 없는 듯싶었다.
메이크업을 다시 새롭게 받으면서 민후는 시나리오를 재검토하였다. 막상 한윤하와 함께 키스신을 찍는다는 것에 긴장이 되었다. ‘내가 이렇게 긴장을 할 때가 있나?’ 하고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평소에 어떠한 배역을 하기 위한 오디션에서도, 어떠한 위험한 장면이 있는 촬영에서도 쉽게 떨지 않는 자신이었다. 그만큼 자신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좋아하는 여성인 한윤하와의 키스신은 그런 민후마저도 떨게 하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건 한윤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어떡해……. 이상하게 하면 어떻게 하지? NG가 나면 어떻게 하지?’
그녀도 괜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 그녀도 강민후와의 키스신이 떨리는 것이다.
사실 그녀의 경우 키스신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두 번 정도 키스신을 촬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한 번도 이렇게 떨지를 않았고, 긴장도 하지 않았다. 단순히 연기일 뿐이라는 확고한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후와의 첫 키스신은 그것이 아니었다. 떨렸고 자신의 진심이 담겨 있기도 한 일이었다. 그 때문에 그와의 키스신은 그 어느 순간보다 긴장이 되었다.
두 사람의 그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촬영이 시작되었다. 막상 시작한다는 소리에 민후는 오히려 더욱 편안하게 어느정도 마음이 진정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등대 쪽에 선 강은성은 이환이 준 목걸이를 들어 올려 바라본다. 그가 준 목걸이. 많은 뜻이 담겨 있었다. 그는 좋은 남자였다. 그러나 그의 가족들은 이제 자신을 미워하고 원망하고 증오한다.
그의 곁에 자신이 남아 있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그 목걸이를 잠시 바라보다 천천히 목에 걸어본다. 감촉은 차가웠으나 느껴지는 그것은 따뜻했다.
자신의 목에 걸린 그것을 그녀는 잠시 어루만져본다. 자신도 그를 좋아하지만 밝힐 수 없는 마음에 가슴이 아린다.
그때, 등대 쪽으로 올라오려는 이환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에게 그가 건네준 목걸이를 찬 자신의 모습을 들켜서는 안 되었다. 서둘러 발걸음을 돌려 도망치듯 한다.
그리고 등대의 한편에서 숨어서 지켜본다. 그러나 환은 그녀의 뒷모습을 발견하고 그녀를 쫓듯이 계단을 밟고 올라간다.
그가 올라오자 그녀는 넓은 등대를 이용해 자신의 몸을 숨기려고 한다. 둥그런 등대를 이용해서 그가 걷는 방향으로 함께 걸어서 자신을 보지 못하게 하려 한다.
그러나 그것을 눈치챈 이환이 반대쪽으로 몸을 돌려서 결국 그녀와 마주치게 된다.
“…….”
그와 마주친 은성은 놀란다. 그가 자신이 목걸이를 찬 것을 발견하게 되면 어쩌지. 좋아하는 마음을 들키면 어찌한다.
환은 참을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마. 김준세하고 레스토랑 하지 말라고.”
그의 목소리는 강압적이었고 진심이 담겨 있었다.
“내 곁에 있어 줘, 어디 가지 말고 내 곁에 있으라고.”
그는 자신의 답답한 심정을 표현하듯이 가슴을 어루만진다. 그녀는 떨리는 숨을 뱉어냈다. 자신도 그의 옆에 있고 싶었다. 그러나 그와 자신 사이에는 수많은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왜 이래요. 우리 둘 사이에는 할머니가 있고, 어머니가 있어요. 그리고 정이가 있고! 준세 오빠가 있어요……. 그리고 우리 아빠도, 은우도 있어. 그러니까 그만 해요.”
“그게 무슨 상관…….”
“제발 그만 해요……!”
그녀는 더 이상 그와 대화할 수가 없었다. 그에게 안기고 싶었다. 힘들다고 말하며 위로해 달라고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당혹했던 이환은 그녀의 목에 걸린 자신이 준 목걸이를 발견한다. 그녀가 도망을 친다.
그녀는 출렁다리 쪽으로 도망을 쳐 벗어나려 한다. 그러나 환이 그녀를 쫓는다.
“그런 게 다 무슨 상관이야!”
그의 외침에 그녀는 뒤돌아본다. 결국, 그녀는 울고 있었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너 믿는데…… 세상 모든 사람 안 믿어도 내가 너 믿는데……! 그리고 갚고 싶은데!”
환의 표정에는 많은 것이 담겼다. 사랑, 슬픔, 믿음, 그리고 행복을 위한 갈망. 결국, 그는 더 이상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의 팔을 잡아 자신 쪽으로 끌어왔다.
그는 그녀의 입에 입을 맞춘다. 벗어나려는 그의 팔을 잡은 손에 힘을 준다. 그녀의 팔의 힘이 자신도 모르게 풀리며 그의 입술을 받았다.>
여섯 번이나 NG가 났다. 서로 웃음이 터져 나와서이기도 하였으며 긴장해서이기도 하였다. 그 때문에 권 PD로서는 두 사람 모두 상당히 노련한 연기력을 가진 친구들이었기에 ‘오늘 따라 왜 그래?’라고 말하기도 하였을 정도였다.
그러나 차츰 몇 번 할수록 그 긴장은 지워져 갔고 익숙해져 가기 시작했다. 마지막 촬영 때쯤에는 서로가 극 중 역할이 되기도, 자신들 본인의 마음을 가지기도 하였다.
본인의 마음을 가졌다는 뜻은 한윤하, 강민후의 좋아하는 감정이 담기기도 했다는 것이다. 실상 마지막 일곱 번째 촬영에서는 두 사람 모두 너무나도 또렷한 감정이입을 보였다.
그 때문에 권 PD가 작은 감탄을 하였을 정도였다. ‘역시’라고 중얼거린 그는 여섯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으나 두 사람은 젊지만 상당한 연기력을 가졌다고 느꼈다.
그리고 막상 키스신 촬영이 끝나고 민후와 윤하는 조금 서먹서먹해졌다.
특히나 윤하는 더욱 그러했다. 민후의 경우 키스신이 무사히 끝나자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진정했다. 그렇지만 윤하는 그것이 잘 되지를 않았다.
그의 입술이 떠오르고 숨결이 아직도 어른거리며 자신도 모르는 그 감정이 폭발할 것 같았다. 이제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아무리 그녀도 민후도 배우라는 굴레 때문에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지는 못한다고 하지만 더 이상 참는 것은 힘들어져 버린 것이다.
이 마음을 언제까지나 붙잡고 있을지는 알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얼레리 꼴레리, NG 나서 일곱 번 뽀뽀했대요.”
“씨잉- 하지 마아.”
“왜에, 좋았어? 응응? 민후의 키스는 어떻던가요.”
자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채은은 와서 장난스럽게 놀려대었다. 그녀가 코를 찡그렸으나 그녀는 다시 물었다. 윤하의 표정이 정말 안 좋아졌다.
“장난이야…….”
평소 항상 웃고 다니는 그녀였기 때문에 채은은 다소 당황하여 미안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제서 윤하는 작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정말 많이 좋아하기는 하나 보다. 에휴, 불쌍한 것들.’
그러면서도 채은은 윤하와 민후를 번갈아서 한 번 보았다. 민후는 이쪽을 보고 있던 것인지 그녀의 시선이 틀어지자 휙 하니 고개를 트는 모습이 보였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로맨스에 채은은 작은 한숨을 쉬었다. 사랑마저도 쉽게 허용되지 않는 배우라는 직업은 너무 고달프지 않나 하고 채은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두 사람의 첫 키스신 장면은 시청자들에게 열렬한 환호를 받을 수 있었다.
시청자들은 밀고 당기는 듯한 행위가 반복되던 두 사람의 키스신에 앞으로 더욱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SBC 시청자 게시판에 수시로 글을 올리고 있었다.
시나리오도 변경이 된 상태였고 그 변경 된 시나리오를 배우들에게 새로 건네고 회의를 하기 위해 SBC 방송국에 방문한 민후였다.
“아이구, 이게 누구야? 언제 한번 우리 프로 출연 좀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안녕하세요.”
이제는 민후가 먼저 인사하려고 하여도 다른 이들이 다가왔다. 어떠한 프로를 맡고 있는 PD, 관계자들이 민후가 방송국에 들어오자마자 그에게 슬며시 다가와서 악수를 청했다.
그중 예능, 다큐, 개그 프로까지도 그 종류가 무척이나 다양한 편이었다. 현재 민후는 가장 핫한 스타였다. 한윤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올해의 가장 핫하기도 하고 베스트 커플을 뽑자면 당연히 찬란한 재산의 강민후, 한윤하 커플이 거론될 것이었다. 그리고 민후가 시계를 차면 그 시계가 곧 남자들의 자존심인 시계가 되고, 옷을 입으면 그것이 곧 패션의 감각이 되고 있었다.
윤하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신은 구두는 각 매장에 걸려 ‘한윤하가 신었던 구두!’라는 이름으로 올라오고 귀걸이나 각종 액세서리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얼마 전 정수에게로부터는 윤하가 5천만 원 상당의 귀걸이를 협찬받았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던 바가 있었다. 아무래도 윤하는 여성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큰 브랜드 값어치를 형성해낼 수 있지 않은가 싶다.
“강민후 군, 언제 한번 우리 촬영장에 놀러 와.”
“네.”
“민후야, 언제 한번 우리 예능 좀 출연해주면 안 되겠냐?”
“아, 스케줄 좀 확인해봐야 할 것 같아요.”
민후에게 다가오는 이들 중에는 연예인들도 상당하였다. 그들도 자신의 프로가 잘 되면 좋았고. 강민후라는 배우는 공중파 방송에서 드라마인 찬란한 재산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배우였기에 그를 데려가면 엄청난 수확을 하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예능 쪽에는 큰 뜻은 없기에 민후는 거절하는 것도 난처할 정도로 큰 인기를 실감 중에 있었다.
“여어! 민후 군! 크- 아깝다, 아까워. 내가 민후 군을 캐스팅했었어야 되는데.”
그중에는 찬란한 재산의 전 작품이었던 드라마를 기획했던 한국준 PD도 있었다. 애석하게도 찬란한 재산의 전 작품이었던 ‘부드러운 남자’는 쪽박을 찼다.
차도 당당히 차게 된 것이다. 초반에는 괜찮은 수준이었다. 시청률 8%로 시작하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초반에 괜찮았다고 한들 계속해서 하락세를 보였고, 결국 마지막 회에서는 5.6%의 시청률로 종영된 것으로 안다.
그리고 우습게도 이 드라마의 출연 배우가 오연훈이었다. 한참 사람들이 멀리하던 때에 그래도 한 PD는 그가 죽지 않았다고 여겼다. 그리고 함께 작품을 했고, 그의 몇 작품 대박이 순전 운발이었던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연기력? 괜찮다. 그러나 딱 중반이었다. 더 이상의 발전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스스로도 발전하려는 기색이 없었다. 덧붙여서 드라마 촬영 중 음주운전으로 인해 면허가 취소되는 일까지 벌였다.
완전히 망해버린 배우 케이스가 된 것이고, 한 PD도 현재는 그 누구보다 오연훈을 캐스팅했던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반면 만약 강민후라는 이가 캐스팅 되었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현재 수많은 시청자는 각 방송국이 진부한 막장 드라마 대결을 펼친다고 거론한다. 어쩌면 ‘부드러운 남자’라는 드라마 역시도 그 길을 걸었다.
그러나 찬란한 재산 역시도 그 ‘막장’에 영향을 받은 감이 없지 않아 존재하였다. 그렇지만 ‘캔디’ 역을 너무나도 잘 소화한 한윤하. 까칠하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왕자님을 표현한 강민후가 한몫 단단히 하였다.
시나리오도 진부한 편일지도 모르나 빠른 템포로 이어졌고 그 때문에 성공한 감도 있었지만, 만약 민후가 작품에 캐스팅되었다면 그래도 10%는 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다음에 좋은 작품 나오면 한번 연락해주세요. 저 전역한 후이겠지만요.”
“아아, 그래? 민후 군이라면 나야 언제든 환영이지. 이 넓은 가슴을 봐. 언제든 민후 군 캐스팅할 준비가 되어 있다니까?”
“하하.”
민후는 능청스러운 웃음과 함께 가슴을 쭉 펴면서 하는 그의 말에 빙긋 웃어주고는 살짝 묵례를 취해보였다.
‘크, 싹싹하다.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배우가 이렇게 예의 발라요. 그에 비해 오연훈 그 자식은 망해가던 놈 기껏 살렸더니……. 내가 다신 그놈하고 작품을 같이 하나……. 얼씨구?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강민후의 평판은 원체 좋은 편이었고 그가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이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자 한 PD는 감탄을 흘렸다. 그러다 머릿속에 싸가지 없게 행동하는 오연훈 생각이 나 그를 곱씹다가 방송국으로 들어오는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다음 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