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OST에 참여하다
이번에 찬란한 재산에서 함께 연기할 사람 중 반가운 얼굴도 있었다. 그건 바로 임의진 선생님이셨다. 임의진 선생님은 이번에 악역으로 나오시게 된다.
극 중 이승미의 어머니를 열연하실 선생님은 승미와 이환이 결혼하여서 집안을 세우려는 의도를 가지고 주인공 강은성을 곤경에 빠트리는 등, 얄팍한 계략을 보이시게 될 것이다.
임의진 선생님과 함께 첫 작품을 할 때만 해도 민후는 신인이었다. 크게 얼굴이 알려지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몇 년 만에 민후는 대한민국에서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는 배우가 되어 있었고 선생님은 당연하다는 듯이 ‘네가 이렇게 클 줄 알았어.’ 하셨다.
선생님의 눈에도 민후는 성공할 여력이 충분하였던 인재로 보인 것이다.
모든 배우와 관계자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된 적은 이미 있었다. 촬영은 앞으로 2주 후에 시작된다. 아마도 배우들이나 스태프들과 부둥켜안고 약 4개월가량을 쉴 새 없이 함께 살아갈 것 같았다.
논스톱 5의 시트콤 때에도 바쁘기는 했지만, 드라마만큼은 아닐 것이다. 드라마는 영화만큼은 아니지만, 시트콤보다는 더욱더 현실성을 두기 위해 노력하고, 매주 두 시간 분량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
영화의 경우 2시간 분량 확보를 위해서 1년이 걸린다. 그런데 2시간 분량을 1주일 동안 촬영한다는 것은 밤샘 촬영은 당연지사였으며 촬영장을 떠나기가 힘들어질 것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였다.
벌써 머리가 까마득해지는 이야기였지만 그래도 작품이 꼭 성공했으면 한다. 이번 작품을 성공시킴으로써 민후는 여운을 남기고 군대에 갈 것이니 말이다.
오늘 젊은 배우들끼리 모여서 한 번 친 몫을 제대로 다져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 때문에 그 장소로 온 민후는 머리를 긁적였다.
“흐음…… 누가 선택한 거야?”
나이트클럽이었다. 그는 누굴까 하다가 픽하는 웃음을 지었다. ‘문채은 이 녀석이겠지, 또.’ 한다.
아마도 거의 확실할 것이다.
문채은일 거다. 채은과 저번에 만났을 때도 느꼈지만 권 PD의 말처럼 사차원적인 성격이 강했다. 활발한 도를 넘어섰고 천방지축 말괄량이였다.
시나리오의 그녀가 연기할 배역은 차분한 성격에 이환만을 사랑하는 역할이지만 시나리오와는 상당히 매치가 되지 않는 성격이다.
그러나 나쁜 아이는 아니었다.
단지 다른 이들보다 크게 활발할 뿐이라는 생각이 드는 아이였고, 해맑게 웃는 모습이 무척 매력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대본 리딩 때, 그녀는 수준 이상의 대본 리딩을 구사한 바가 있었고 성격과 다른 청순한 외모와 아름다운 외모에 아마도 이번 작품 이후 상당히 기대될 신인이지 않은가 싶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나이트클럽은 룸 형식으로 되어있다는 것이었다. ‘어린 왕자’라는 명찰을 차고 있는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약속된 룸으로 들어갔다.
룸 안에는 한윤하와 문채은이 함께 앉아 있었다. 한윤하의 표정이 난감한 표정이다. 그리고 채은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민후를 보았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하면서 방긋방긋 웃는 모습에 민후는 헛웃음을 지었다.
“내 욕하고 있었어?”
“에이, 그런 거 아니야.”
민후의 물음에 그녀는 손사래를 쳤다. 자연스럽게 말을 놨다. 실상 그녀는 남들과 빠르게 친해졌다. 그 때문에 한 번 봤던 사이였지만 이젠 ‘선배님’이라는 말과 존대보다는 편하게 말하는 것이 낫다고 여겨졌다.
민후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윤하를 보았다. 그녀가 민망한 듯 웃었다.
“그런 이야기 한 거 아니야.”
“그러면 무슨 이야기?”
“어허, 여자들끼리의 이야기에 그렇게 간섭이 크시면 아니 됩니다.”
민후의 추궁에 채은이 눈을 부릅뜨는 표정으로 막았다. 분위기가 의아했다. 실상 채은은 눈치도 백 단이었다. 두 사람은 친구 사이라고 소문이 자자했지만, 그들에게서 흐르는 기류와 말투, 동작 하나하나를 보고 서로가 마음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윤하와 둘이 있게 되면서 조심스럽게 물으니 계속 ‘아니야-’라고 하는 것 같다가도 ‘호감이 있긴 해.’라고 표현했다. 눈치 백 단 채은은 직감했다. 서로서로 좋아하고 있음을 말이다. 그러나 이 이상 팔 생각은 없었다.
자신도 재미를 위해서 그런 것이고 두 사람이 난처해지는 것은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빈이 들어왔다. 주빈은 178㎝의 키에 또렷한 이목구비, 부드러운 목소리로 여심을 녹이는 배우였다. 한창 알려진 추세였고 이번 드라마를 통해서 확고히 그 입지를 굳히겠다는 계획이 있었다.
“민후야, 내가 참 이렇게 당찬 애기는 처음 봤어요. 난 분명 가맥집 같은 데서 한잔하자고 했거든? 근데 덜컥 나이트 룸 예약해놨다네?”
“하하하…….”
“당찬 녀석 같으니.”
“오빠도 즐겨 봐요-”
채은은 양주잔과 맥주잔을 이용해서 탑을 쌓아놓더니 그곳에 술을 따랐다. 그러고는 빙긋 웃었다.
“잘 봐. 술은 자고로. 빠세!”
쿵!
와다다닥!
“이렇게 마는 거랍니다.”
채은이 이마로 테이블을 박았다. 쌓여 있던 양주잔이 와르르 맥주잔으로 들어가면서 거품을 만들어냈다. 민후와 주빈, 윤하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채은을 보았다.
이마가 벌게진 그녀는 이마를 어루만지면서 잔을 돌렸다.
“헤헤, 원샷! 원샷!”
너무나도 활발한 그녀 때문에 그래도 술자리가 지루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룸 안에는 노래방 기계도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놀고를 하였다.
주로 채은이 마이크를 잡았고 간혹 윤하도 끌려나가 흥겨운 노래를 불렀다.
“너무너무 예뻐, 눈이눈이 부셔!”
“oh oh oh oh oh!”
신나게 노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민후는 박수만 쳤다. 놀 줄 아는 이들이 잘 논다고, 실상 민후는 이렇게 제대로 놀아 본 적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용호상박의 모임에서도 이런 식보다는 술을 마시면서 즐기곤 한다.
“민후도 노래 한 곡해-”
주빈의 노래가 끝이 났다. 채은이 민후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윤하가 ‘민후도 한 곡해…….’ 하면서 흘끗 보았다. 실상 민후는 윤하의 앞에서 노래를 불러 본 적이 없었다.
아니, 민후가 노래 부르는 것을 본 이들은 이승용이나 박정수, 어머니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그리고 따로 레슨을 받았다는 것을 아는 이들조차도 없었다.
실제로 연기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자기 계발을 한 것이기 때문에 뽐내듯이 부를 필요 없다는 판단하에서 굳이 뽐내려고 하지는 않았으나 승용은 계속 일취월장하는 민후에게 감탄에 감탄했고, 민후의 실력은 현재 상당히 늘어 가수 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노래 실력이 상당히 좋은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었다.
오죽했으면 이승용이 넌지시 ‘앨범 내도 되겠는데?’라고 했을 정도다. 가수급의 실력이 아니라고 해도 민후 정도의 인지도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는 게 이승용의 생각이었던 것이고, 실력도 상당히 받쳐주기 때문이다.
민후가 선곡한 곡은 ‘한 장 한 장’이라는 노래였다. 요즘 한창 핫한 발라드 노래였다. 그의 곡 선택에 채은이 ‘분위기가…….’ 하면서 울상을 지었다.
민후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밝은 곡이 아니라서 그러는 듯싶다. 그러나 윤하는 탬버린을 치면서 ‘와아!’ 하면서 반겨주었다.
“한 장 한 장 넘기고 있어요.
추억을. 그대와 함께한 기억.
한 장 한 장
지우고 있어요.
함께 찍었던 우리의 사진을-
그대는 알고 있나요.
내가 그대를 지울 때마다
가슴이 터질 듯
아파져 오- 는- 데-!”
클라이막스에 진입하고 민후는 고음을 내질렀다. ‘후우우’ 하면서 마지막 부분은 조금 끌었다. ‘분위기가…….’라고 했던 채은과 윤하. 주빈이 다소 놀란 표정이 되었다.
언급했듯 그의 노래 실력을 듣는 사람들은 그들이 처음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었다.
특히나 윤하는 그의 새로운 모습에 상당히 놀라고 있었고, 채은도 황당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한 장 한 장
그대를 지우고 있어요.
이제 떠나간 그대를
보내줘야 합니다.
한 장 한 장
그대와 함께 나눴던 이야기.
이제 그 목소리가 희미해져 갑니다.
오늘도 그대는 다른 남자의 곁에서
웃으면서 안겨 있어요-
오늘도 나는 바보 같은 남자라서
이렇게 울며 그대를 지우려고 합니다.
그대는 기억하나요. 너와 나의
행복했던 그때 한 장 한 장을
보면서 나는 울어요.
그대는 기억하나요. 너와 나의 추억들(가성)이
흩어져 가나요!
그대-! 그대-! 그대-!
한 번 만 나를 기억해주세요오우어워.
한 번 만 나를 돌아봐줘요오.
그대가 나를 사랑했었던 만큼이라도
나를 잠깐만 추억해주길
기억해주길 바래에에에에에에-!”
마지막 부분은 상당한 고음이 필요했다. 민후는 힘껏 내지르면서 마지막 부분은 바이브레이션 처리로 부드럽게 소화했다. 그는 민망한 듯 빙긋 웃었다.
“한 장 한 장 그대를 지우고 있…… 어요-”
노래가 끝나고 그는 머쓱한 듯 서둘러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실상 자신도 남들이 들은 자신의 노래에 대한 평가가 궁금했다. ‘어때?’ 하고 한윤하에게 묻자 그녀는 설레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바빴다.
민후가 이렇게 노래를 잘할 줄은 모르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그를 좋아하는 마음을 가진 그녀의 가슴을 더욱더 크게 흔들고 있었다.
“민후, 너 되게 잘한다. 가수 해도 되겠는데……?”
실질적으로 일반적인 사람들은 노래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 ‘가수 해도 되겠는데?’라는 언급을 자주 하고는 한다. 그러나 아니다. 프로와 아마추어는 일반인들은 잘 모를 수도 있으나 확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대한민국에서 목소리로써 살아남는다는 것은 배우로서 살아남는 것만큼이나 힘이 들고 큰 노력을 필요시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할 수 있었다.
노래는 끝이 나고 다시금 술자리가 이어졌다. 서서히 안의 이들이 취기가 오르기 시작했고, 채은이 자연스럽게 그들을 밖으로 이끌었다.
“자자, 나가자구요!”
“에이, 아무리 그래도…….”
주빈과 채은은 나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주빈도 제법 나이트클럽이나, 일반 클럽에 자주 오고는 하였다. 하물며 어두워서 실질적으로 사람들이 잘 알아보지 못하기 마련이다.
결국 민후와 윤하도 밖으로 나섰다. 스테이지로 오자 빽빽이 꽉 차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다행히도 사람이 너무 많았고, 어두웠던지라 확실히 알아보는 이들은 없었다.
“빠세! 빠세! 빠세빠세빠세! 오오오! 소리 질러!”
어느덧 채은은 신나게 몸을 흔들면서 음악에 몸을 맡기고 있었고 주빈도 그녀의 근처에서 함께 춤을 췄다. 윤하도 의외로 리듬에 몸을 맡긴다.
민후도 리듬만 타주면서 몸을 흔들었다. 생각보다 재밌었다. ‘젊으니까 좋지.’라고 생각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한참 젊은 친구들이 신나게 놀고 있었다.
이러한 스트레스 해소도 나쁘지 않겠구나 싶었다.
‘저 자식이……!’
윤하와 멀지 않은 곳에서 춤을 추던 민후는 춤을 추며 그녀의 뒤쪽으로 이동하려는 기색의 남성을 볼 수 있었다.
흔히 부비부비라고 한다고 들었다. 마음에 드는 여성의 등 뒤로 가서 골반을 잡고 함께 춤을 춘다는 것으로 요즘 젊은 층들 사이에서 클럽에서 상당히 많이 하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한윤하에게 손을 대는 것은 민후로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민후는 꽉 찬 사람들을 제치고 지나가 그녀의 등 뒤에 섰다.
먼저 다가서려던 남성이 당황한 표정을 짓는 듯하다가 크게 물의를 일으킬 생각은 없는 것인지 순순히 물러났다.
‘내가 여기 있어야겠구먼…….’
민후는 계속 윤하의 등 뒤를 지켜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가만히 둔다면 계속해서 다른 남성들이 접근할 것 같았다. 그의 등 뒤에 밀착하고 선 민후는 뒤에서 계속 밀어대는 사람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다리에 힘을 주고 버텼다.
그녀가 재미있게 놀았으면 좋겠다. 다른 이들도 손을 대지 않았으면 한다. 그녀는 그것을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흥겹게 춤을 추다가 문득 민후는 어디 있나 궁금해진 것인지 고개를 휙 돌렸다가 바로 뒤쪽에 서 있는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가장 처음 보인 것은 넓은 가슴이었다. 그보다 키가 작았기에 떡 벌어진 가슴과 어깨부터 보였다. 그리고 천천히 얼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주위를 의식하고 있는 듯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멋있어…….’
그녀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 강민후. 그는 내적으로도 겉으로도 무척이나 멋진 남성임이 사실이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를 보는 것에 취해 있었다.
“응?”
주위에 다가오는 다른 늑대들이 없나 하고 경계하고 있었던 민후는 다시 윤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그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를 보다가 휙 하니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대충 어떤 상황인지 짐작한 민후는 작은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를 무척 의식하고 있었으며 그의 등 뒤에 선 민후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달콤한 샴푸 냄새가 났다. 그녀가 바르는 보디로션 냄새도 역시 풍겼다.
가녀린 어깨가 보였다. 팔 하나로 꽉 들어올 것같이 작았다. 단발머리로 자른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탐스러운 목덜미도 보였다. 그것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지고 싶었다.
그녀의 허리가 보였다. 그 허리에 팔을 두르고 싶었다.
민후는 참을 인 세 개를 그리면서 상상했다. 그녀와 자신은 결국 언젠가는 사랑하게 될 것이다. 서로가 같은 침대에서 아침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모닝 키스를 하기도. 대중들에게 당당하게 ‘길거리 데이트 포착’이라는 말 역시도 전해지게 될 것이다. 벌써 가슴 벅찼다.
그러나 최소 그것은 군대 전역 후였다. 지금 자신이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다.
물론 그 딴에는 그렇게 생각하나 윤하는 그가 군대에 있는 동안에도 기다릴 자신이 있었다. 그녀도 일편단심이다.
사실 민후는 모르겠지만 수많은 남자 연예인들이 대시를 했었다. 그중에는 대한민국 내로라하는 배우들이나 가수들도 있었으며 대기업의 자녀들도 있었다.
그러나 모두 당차게 거절했다. 그 이유는 민후 때문이었다.
좋아하는 그가 있었고 서로 마음을 직접적은 아니나 간접적으로는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 모두가 그녀의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왜 이렇게 미는 거야.’
민후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강한 압박감을 느꼈다. 사람들이 이동할 때마다 저절로 자신의 등 쪽에 있는 이들도 압박을 가해왔고, 자신도 한윤하와 마찰이 생길 듯 말 듯 하였다. 그러나 최대한 버텼다.
그는 윤하를 그녀 모르게 지켰으며 그녀는 그가 모르게 그로 인해서 콩닥콩닥 심장이 뛰었다. 나이트클럽의 밤은 그 어떤 때보다도 활기차고 뜨거웠다.
* * *
찬란한 재산의 제작발표회는 성공리에 마무리되었다. 다정하게 민후와 윤하가 함께 포토존에서 찍었던 사진은 이슈가 되었고, 어깨 위에 올라온 민후의 팔은 그녀를 애매하게 터치하지 않아서 ‘강민후 매너손’이라는 재치 있는 기사도 났다.
사람들은 서로 친분이 있는 두 사람이 함께 출연하게 된 드라마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민후는 캐스팅 중에는 윤하와 극 중 강은성이라는 역할이 참으로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강은성이라는 역할은 무척 착한 여성이다. 그리고 은성의 남동생은 서번트 증후군 환자이다.
자폐 3급이지만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을 갖추고 있는 어린 소년이다. 그런 동생을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는 장면도 많았고, 착하고 활발한 그녀의 모습 때문에 ‘캔디’라는 말을 하면서 잘 표현하라고 윤하에게 권 PD가 계속 당부하기도 하였다.
1, 2회의 촬영이 시작되었다. 배우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하루의 반절을 촬영장에 있다가 집에서 한숨 자고 나오면 또다시 촬영이 이어지거나 밤샘 촬영을 하기도 하였다.
오늘은 조금 긴장감이 감도는 촬영을 하게 된다. 민후도 조금 걱정이 되어서 와봤다.
극 중 강은성의 아버지는 건축업계 회사를 운영하던 능력 있는 사업가였다. 그러나 부도를 맞이하게 되며 강은성의 집은 몰락하게 된다.
아니, 쉽게 표현하면 아버지의 자녀인 강은성과 강은우, 두 사람이 크나큰 몰락을 맞이한다. 임의진이 연기할 새어머니 역할과 채은이 연기할 이승미 역할.
새어머니는 남편 강평중의 생명 보험금을 얻게 된다.
그리고 생명 보험금을 독식한다. 하물며 죽은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강평중은 실제로 죽은 것은 아니었다. 단지 죽었다고 오보가 났을 뿐. 그는 버젓이 살아 있다. 이 점은 어쩌면 흔한 드라마의 스토리를 나타내나 이 부분은 배우들과 시나리오 작가가 살려가야 할 부분일 것이다.
아버지를 잃고 새어머니에게 버림을 받으며 홀로 자폐 3급의 동생만을 데리고 당당히 살아나가는 모습. 전형적인 캔디이나 배우들의 값진 연기력이 커버해줄 거라고 민후는 확신했다.
민후가 걱정이 되어 온 컷은 결국 더 이상 갈 곳도 의지할 곳도 잃어버린 강은성이 동생 강은우와 함께 서울 전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의 난간에 서는 장면이었다.
일단 강은성 역인 윤하가 앞서 난간 위로 올라갈 장면을 촬영하게 될 것이었는데, 안전장비는 딱히 없었다. 단지 그녀가 그나마 공간이 넓은 그 난간 위에 서게 되는 시간은 10초 남짓일 것이다.
올라선 장면은 롱숏으로 촬영될 것이고 ‘난간에 섰다’라는 느낌만 확보되면 곧바로 내려와서 난간 위에서 결국 죽음을 다짐하는 듯한 모습은 평지로 내려와 버스트 숏 기법과 클로즈업 등을 이용해서 찍을 것이다.
민후는 걱정이 되기도 하는 한편, 논스톱 5 때와 지금의 변화된 연기력도 궁금했다. 이번 신은 상당히 복잡한 감정이 많이 표현되는 신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민후가 아는 그녀는 발전할 여성이다. 한층 나아진 모습을 보이리라 예상한다.
“윤하 양, 조심해야 해요, 정말.”
“걱정 마세요, PD님.”
스태프들이나 주위에서 보는 이들은 콩닥콩닥 가슴이 뛰었지만, 그녀는 밝게 웃어 보였다. 곧 이여서 그녀가 난간 위로 올라섰다. 그녀가 올라서고 그 뒤를 따라서 은우 역할의 올해 열네 살, 아역 배우 문기호도 잠시 올라섰다가 바로 내려왔다.
아주 잠깐 올라갔던 것이었지만 촬영팀 내의 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크게 쉬었다. 난간에 올라간 장면은 촬영이 되었기에 이제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면 되었다.
민후는 손가락을 불안하게 움직이는 기호를 빙긋 웃으며 보았다. ‘저 녀석 연기 잘한단 말이야, 저거.’
문기호라는 아이. 중학생 1학년이지만 연기력이 좋았다. 특히나 불안한 시선 처리나 자폐증을 연기하는 말투는 무척 몰입감이 컸다. 소년치고는 뛰어났다. 때문에 ‘저 녀석 저승사자 만났던 친구 아니야?’ 하고 장난스럽게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곧 촬영이 시작되었다.
<은성은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버지가 계셨을 때, 좋은 곳에서 살았던 때는 이 하늘이 그저 맑고 푸르게만 보였다.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는 동생 은우가 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죽었다. 화재로 인해 죽었고, 새어머니는 자신들을 버리듯이 하려고 한다. 그나마 있었던 돈마저도 자신의 부주의로 잃어버렸다.
살아갈 의미가 없어져 가고 있었다. 이제 그녀와 은우에게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었다.
“멋있지.”
그녀는 애써 웃으며 하늘을 보며 말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은우는 그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은성이 양팔을 벌려서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느꼈다. 은우도 양팔을 벌려 같은 행동을 취했다.
“우리 여기서 날자, 은우야.”
그녀는 힘겹게 웃으면서 은우에게 말한다. 바보 같은 은우는 누나인 자신의 말에 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난다고 생각하는 그도 은성도 죽게 된다.
“훨훨 날아서 아빠 엄마 있는 곳으로 가자, 은우야.”
그녀는 죽음을 암시하는 말을 하였다.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길이라고 여긴다.
“엄마 아빠 보러 가자!”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 은우는 그저 누나가 함께 가자고 하니 좋은 듯 웃는다. 은성은 이 순간만큼은 자폐증을 앓는 동생이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기에 다행이라고 여겼다.
떨리는 손으로 그의 손을 잡으면서 한 발자국 앞으로 디딘다.
결국,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온다.
“그럼 가자.”
그녀는 울먹이면서 말한다. 막 함께 뛰어내리려는 순간이었다. 은우는 그저 해맑게 웃는다.
“누나 좋아. 누나도 좋아.”
그녀가 있기에 기분 좋다는 말 같았다. 아버지가 없어도 어머니가 없어도 좋다는 것 같았다. 은우는 하늘을 바라보며 웃는다. ‘행복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은성은 정신을 차린다. 이 아이는, 이 바보 같은 자신을 좋다고 한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이 좋다고 한다. 하늘을 보며 누나의 말처럼 날기 위해 떨어지려는 은우를 은성은 잡아내면서 주저앉는다.
그를 꽉 껴안은 그녀의 팔로 힘이 들어간다. 그녀는 흐느낀다.
“미안해. 흑! 미안해, 은우야. 누나가 잘못했어. 흑!”
계속해서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자신 누나의 말에 은우는 알 수 없다는 표정이다.>
촬영이 끝이 나고 민후는 빙긋 웃었다. 확실히 그녀의 연기 실력도 많이 좋아진 것 같았다. 그녀의 표정에서 정말이지 많은 것을 보았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남은 것이 없는 삶. 동생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심정.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모습.
그리고 동생 은우가 ‘누나도 좋아’라고 말했을 때는 그녀에게서 새로운 삶의 빛이 보였다. 한윤하는 대단한 배우였다. 민후가 보기에는 그러했다.
아직 젊은 스물다섯의 여성이었지만 많은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한 학과의 교수직을 담당하였던 강민후도 그 부분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쩐 일이야?”
“뭐, 나야 곧바로 다음 신이 내 촬영이기도 하고, 시간도 남고 해서 와봤지.”
촬영을 끝내고 뒤를 돌아보았던 그녀는 반가운 얼굴인 민후가 있자 화색을 띠며 다가왔다. 그녀의 물음에 그는 멋쩍은 표정으로 딴청을 피우듯이 했다.
대충 그녀도 눈치가 있기에 위험요소가 존재하는 신을 촬영하는 자신이 걱정되어 왔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와 촬영을 함께 하게 되다니 기뻤다.
더군다나 서로 사랑을 하게 될 역할이라 더욱 그랬고, 함께 일함으로써 그가 자신을 보러 와주는 것이 좋았다. 두 사람은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지만 이미 서로를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는 사이가 돼버린 것이다.
* * *
찬란한 재산의 1, 2회 시청률은 비약적이었다. 1, 2회부터 19%의 성적을 넘어서고 있는 중이었다. 가히 대박 예감이라는 것이었다. 기존의 드라마들은 20%의 시청률만 찍어도 무척이나 높은 시청률을 확보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물론 최종 시청률이 20%라는 것이다.
그런데 찬란한 재산은 시작과 동시에 19%라는 경이로운 시청률을 나타냈다. 물론 추후 떨어질 확률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기사들만 보아도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많은 이들이 기대하고 있었고 1, 2회뿐이지만 ‘재밌다’라는 평을 놓고 있는지라 계속해서 그 시청률은 오를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이제 겨우 1, 2회가 방영된 상황이지만 찬란한 재산의 관계자들과 촬영팀 인원들 배우들은 축제 분위기나 마찬가지였다. 올해에 들어서 첫 회부터 이런 경이로운 시청률을 내었던 드라마는 실상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김칫국을 마시는 것일 수도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이어진다면 어쩌면 찬란한 재산이 올해의 최고의 드라마로 자리매김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작곡가 이현준이라고 합니다.”
민후는 녹음실로 들어갔다. 뚱뚱한 체격에 매력적인 안경을 낀 남성과 마주할 수 있었다. 이현준은 능력 있는 작곡가였다. 저작권료로 연간 받는 수입만 해도 억 소리가 날 정도였으며 대한민국 작곡가 중 인지도로는 손가락 다섯 개 안에 꼽히고는 한다.
민후가 이렇듯 녹음실을 찾은 이유는 담당 PD로부터 OST 앨범을 권유 받았기 때문이다. 사실 권 PD가 조용히 불러서 OST 앨범을 권유하자 상당히 놀랐다.
그는 누군가로부터 그의 노래 솜씨가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민후는 단숨에 추측해냈다. 당연하게도 문채은일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민후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자신이 과연 OST를 내도 될 실력인가 하고 고민해 보고, 이승용과 통화를 하여서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에 관해서 물었다.
이승용은 무척이나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민후는 가수급의 실력은 아니었지만 계속해서 발전해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단기간에 그 정도의 실력을 갖춘다는 것에 이승용은 그가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능통함의 영단을 모르는 그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번 계기가 한번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하물며 드라마에 삽입될 OST는 다양하였지만 민후는 그중 딱 한 곡만 부를 예정이었다.
그는 고민 끝에 하기로 한 상황이었다. 그가 받은 노래는 ‘내 가슴 한 사람’이라는 노래였다. 그는 그 곡을 받고 쉬는 시간, 잠을 자는 시간까지 쪼개서 연습했다.
사실 연습 기간은 무척이나 짧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한 바가 있었다.
“일단 한번 들어볼게요.”
녹음실로 그가 들어가고 이현준 작곡가가 버튼 하나를 누르면서 말했다. 버튼 하나를 다시 떼자 바깥의 소음이 차단되었다.
“에이씨, 요즘 뭐만 하면 배우들이 노래하겠다고 난리인지.”
이현준은 얼굴을 찌푸렸다. 요즘 드라마에 출연하는 상당한 배우들이 드라마에 자신의 노래를 삽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요즘 기계가 상당히 좋았기 때문에 충분히 기계로 다듬어서 좋은 노래를 만들 수는 있었으나 작곡가인 이현준에게는 꽤 힘이 드는 일이었다.
오늘 녹음도 몇 시간이 걸릴지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하루 종일 해도 자신이 만족하지 못하여서 며칠이 걸릴지도 몰랐다. 하물며 그가 흘려들은 이야기로는 촬영 팀 내에서 그가 노래 잘한다는 소문을 듣고 OST 권유를 받았다는데 이현준으로서는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노래 부르는 것이 쉬운 줄 아는가? 대한민국에 가수 하고 싶어도 못하는 이들이 넘치고 흘렀다. 그런데 자신의 인지도를 믿고 답답한 노래 실력으로 녹음에 들어가는 배우들을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후우우.”
민후는 심호흡을 크게 쉬었다. 자신도 권 PD의 권유 때문에 많은 생각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이왕 하기로 한 거 최선을 다하기로 하였다.
그는 이현준의 탐탁지 않은 표정을 읽었다. 그럴 것이 당연했다. 단지 자신이 만족시켜 줄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는 것일 뿐일 것이다.
“나를 웃게 할 사람-!
내 손을 잡아 줄 단 한 사람.
웃게 해줄 내 인생의 한 사람.”
그는 헤드셋으로 들려오는 반주 음에 맞춰서 노래를 시작했다. 노래할 때는 많은 것을 의식하면 안 된다. 최대한 그 노래에 집중해야 한다. 복식호흡은 오랜 연습 때문에 익숙해져서 절로 행해지고 바이브레이션 발성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음을 잡기 위해 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좋았다.
“흐음.”
녹음실 밖에서 삐딱하게 그를 보고 있던 이현준은 그의 노래가 시작되자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를 보면서 눈을 감았다. 그의 노래를 최대한 듣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 친구, 꽤 괜찮은데?”
그는 자신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우려했던 것보다는 훨씬 좋은 실력이었다. 요즘의 실력파 가수들과 비교한다면 한없이 작겠으나 드라마에 노래를 삽입하겠다고 왔던 배우 중 그가 맡았던 이들 중 가장 좋았다.
호흡은 최고조였다. 호흡만큼은 일반 가수들 못지않았다. 바이브레이션은 불안정하지만, 기계로 처리하면 될 것이고, 목소리도 호소력이 짙었다. 그러나 역시 아직 미흡한 부분이 많았다.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는 그 미흡한 부분을 잡아주고 터치해주기 위함이다.
꾹.
“민후 씨, 생각보다 실력이 괜찮네요?”
그의 만족한 표정에 민후도 빙긋 웃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함께 작업하는 사람끼리 표정이 좋지 않다면 낭패이지 않은가.
“그래도 고칠 게 많아요. 감정 표현은 정말 좋아요. 목소리도 좋고, 제가 짚어주는 부분만 잘 고쳐 봐요. ‘흉터에 아파해도 웃게 해줄 내 인생 그 사람 널 사랑해’ 흉터 부분은 조금 거칠어야 해요. 너 때문에 난 아프다. 그러나 너 때문에 웃는다. 행복하다. 마지막 사랑해 부분은 부드럽게. 아시겠나요?”
“예.”
“그럼 그 부분만 한번 연습해보세요.”
이현준은 조금 전 자신이 가르쳤던 부분을 반복해서 재생했다. 민후는 계속해서 그가 지적해준 부분대로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흉터에 아파해도 웃게 해줄 내 인생 그 사람 널 사랑해.”
“자, 좋습니다. 그리고 한 줄 빛으로 와줄 이 부분은 더 밝고 애틋하게. 이해하셨나요?”
이현준의 지적은 계속 이어졌다. 그는 세심하게 꼼꼼히 그의 부족한 부분을 짚어주고 있었다. 실제 다른 배우였다면 기계처리에 더욱 힘을 썼을 것이다.
그러나 기계처리가 아니라 지적해주면 충분히 그 부분이 보완될 수 있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 이현준은 의외로 꽤 놀랐다.
배우로서 데뷔하기 전에 단지 학생들 사이에서 노래 좀 부르는 실력이었나 싶었으나 그 정도가 아니었다. 전문적으로 배운 티가 어느 정도 물씬 났고 재능이 보였다.
계속 발전될 가능성이 말이다.
지적은 계속되었고, 어느 정도 보완이 되면 또다시 한 곡을 다시 불러보고 지적하고가 반복되었다. 순식간에 다섯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이현준은 오랜만에 남을 지적하는 것에 힘이 났다. 민후는 자신이 거론하는 부분 한 부분 한 부분을 빠르게 고쳐 나갔다. 그 때문에 현준은 본인도 모르게 그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에 몰입하고 있는 것이다.
민후 역시도 최대한 집중하고 있었던지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었다.
“민후 씨, 벌써 다섯 시간이나 지났어요. 식사하고 갑시다.”
“벌써요?”
“하하, 저희 둘 다 너무 몰입했나 봐요.”
이현준의 말에 민후도 놀란 기색이었다. 끽해야 한두 시간 정도 지났겠거니 하였더니 다섯 시간이 지났단다. 그러고 보니 조금 출출한 거 같기는 했다. 탔던 목을 축이느라 물만 500밀리 생수를 세 개나 마셔버렸다.
밖으로 나온 그에게 현준이 생수병 하나를 또 건넸다. 목소리를 계속 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계속해서 말라 들어갔고 긴장감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한 번에 많이 마시지는 않았다. 한 모금을 마신 후 다시 뚜껑을 닫았다.
식사를 주문하고 함께 소파에 앉았다.
“어디서 배웠어요?”
그의 질문을 민후는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도 오랜 시간 이 분야에 있었던 베테랑이었던지라 단번에 알아챈 것이다.
“이승용 씨한테요.”
“가수 이승용이요?”
“예.”
“아…… 하하, 이승용 씨라.”
이승용은 상당한 실력파 가수였다. 지금은 한 학원을 운영한다. 불미스러운 일로 연예계에서 은퇴하였지만, 그는 뛰어난 보컬이었다. 지금도 그의 복귀를 간절히 바라는 이들이 많았지만 그는 완전히 연예계와 연을 끊어버렸다.
그 때문에 이현준도 아쉬워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강민후가 이승용한테 배웠다고 한들 그렇기에 이런 실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노래는 개인이 터득하는 것이고, 개인으로 인해 변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최고의 가수가 음치를 트레이닝 한다고 가정한다. 그 음치는 몇 년 사이에 가수가 될 실력이 나올 것이라 생각하는가?
아니다.
가르치는 것은 단순히 가르치는 것일 뿐이다. 노래 실력은 가르치는 것이 중요한 것보다 극히 개인이 가진 그 힘이 중요한 것이다.
그것을 고려했을 때 민후는 타고난 부분이 크게 보였다. 하물며 이현준은 가르치면서 너무나도 빠르게 따라오는 그를 느꼈다. 마치 달리고 있는 자신의 등 뒤로 바짝 달리고 있는 그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았고, 하나를 모르면 열을 물어보았다.
열정도 좋았고, 실력도 좋았다. 배우와 녹음에 들어간다고 해서 언짢았던 기분이 사라졌다. 강민후라는 이가 마음에 들었다. 특히나 계속 연습하며 노력하는 모습이 좋았다.
지금도 그는 검지를 허벅지 위에 올리고 ‘툭툭툭’ 하면서 움직이고 있었다.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그 음을 되뇌고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이다.
“아으- 잘 먹었다.”
식사는 중화요리로 먹었다. 식사가 끝나고 30분 정도 쉬기로 하였다. 현준은 잠시 밖으로 나섰고, 민후는 계속 남아서 그가 지적한 부분을 중얼중얼하면서 연습했다.
쉬는 시간조차도 아쉬웠다. 짧은 기간 연습하였으나 녹음하게 되는 것만큼은 최선을 다해서 임하려고 하는 것이다.
3, 4회 시청률 25%! 대단한 수치였다. 아직 본격적인 스토리가 시작되지 않았다. 본격적인 스토리가 잡히는 것은 5-6회 분량에서였다.
그러나 시청률이 비약적으로 또다시 6%나 상승하였다.
상당한 상승률이라고 볼 수 있었다. OST 중 한 곡을 녹음하게 된 민후는 장차 2일간 걸쳐서 녹음하였다. 실제로 이현준이 그의 목소리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노력하였기 때문에 꽤 걸린 것이다. 녹음실을 나설 때는 이현준과 형 동생 하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와 친해질 수 있었고 먼저 다가온 것은 이현준이었다. 나중에 자신의 곡을 한번 불러봐 주었으면 좋겠다는 의사까지 표하였다.
민후는 자신의 실력이 미흡하지 않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민후가 이번에 부른 OST는 5-6회부터 삽입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펑!
펑!
촬영장은 벌써 축제 분위기였다. 샴페인이 터지고 25% 시청률 기념 케이크까지 놓았다. 실상 4회 만에 이미 시청률 25%를 냈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었다.
“30% 넘기면 내가 피자 쏜다!”
오늘은 비록 작은 케이크에 샴페인밖에 터뜨리지 않았다. 잘해보자는 의미였다. 30%를 넘기면 피자를 돌리겠다며 권 PD는 가슴을 두들겼다.
촬영팀 인원들이 환호했다.
“권 PD님, 이런 축하 자리에 일등공신의 노래가 빠지면 안 되죠.”
좋은 분위기 속에 채은은 슬쩍 말했다. 아마도 민후가 부른 OST를 간접적으로나마 지금 듣고 싶은 것 같았다. 그녀의 말에 다른 스태프들도 듣고 싶다는 분위기였다.
특히나 윤하는 무척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노래해. 노래해!”
“에이, 무슨 또 노래를 여기서 해요.”
“노래! 노래!”
민후는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는 반 강압적이었다. 당황한 웃음을 지었던 민후는 갑자기 확 하니 감정을 잡았다.
“내 눈물 닦아줄 그대-”
“오오오!”
민후는 권 PD를 겨냥하며 말했다. 권 PD는 다소 당혹한 표정으로 ‘내, 내가 눈물을 닦아줘?’ 한다.
“내 손을 잡아 줄 그 사람-
그게 너라는 이유.
단 하난 걸 모르니.”
“모르니! 모르니! 왜 모르니!”
민후가 ‘모르니’라고 부르자 촬영 팀 인원들, 배우들이 한입 모아 ‘모르니! 모르니!’ 하면서 외쳤다. 수십 명이 넘는 인원이 이렇듯 한입 모아 외치니 콘서트장 못지않았다.
민후는 최대한 온 힘을 다해서 노래를 불렀다. 분명 미흡한 점도 있겠지만 OST를 자신이 불렀다는 것에 자부심이 느껴지는 것이다.
-찬란한 재산. 4회 시청률 25.3%로 기록. 초반부터 높은 시청률 기록 5-6회는 더욱 높을 것으로 전망…… (연예일보 김가연 기자)
SBC 특별기획 드라마 찬란한 재산의 시청률이 4회 방영 만에 25.3%를 기록했다. 아직 본격적인 구성 라인이 형성되지 않은 시점에서 놀라운 일이었다. 특히나 극 중 이환 역할을 맡은 배우 강민후는 드라마로써는 첫 데뷔였다. 그런데도 그는 배우 한윤하와 호흡을 맞추며 현재 뚜렷한 연기력을 선보여 큰 호평을 받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그가 찬란한 재산의 OST를 직접 녹음하기도 하였다.
이에 시청자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그는 이번 녹음 작업 당시 이현준 작곡가와 함께 작업한 것으로 인터뷰 결과 드러났다.
강민후가 녹음한 OST는 5회부터 삽입되어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한윤하는 극 중 강은성 역할을 표현하며 ‘캔디’와 흡사한 모습……(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