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찬란한 재산
의형제다가 개봉되고 관객 수 680만을 맞이했다. 거의 700만에 가까운 관객 수라고 할 수 있었으며 이제 민후는 세 번째 영화 작품마저도 흥행을 거둠으로써 ‘톱’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배우가 되었다.
수많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그의 사진이 올라오고 있었고, 수많은 여성 팬들과 더불어서 남성팬들조차도 사로잡고 있었다.
여성 팬들은 조각 같지만 작은 얼굴, 그의 평소의 훈훈한 성격과 더불어서 선행에 홀리고 있었으며 남성 팬들은 그의 남자다운 몸과 목소리에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의형제다가 700만 가까이 되는 관객 수를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의 결정적인 이유는 아마도 송석우와 강민후가 함께 출연하였다는 점과 두 사람의 액션이 무척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덧붙여서 의형제다라는 영화는 우리나라의 국정원 요원과 북한의 엘리트 간첩의 우정을 돈독히 다룸으로써 관객들의 시선을 더욱 끌 수 있었다.
뭐, 얼마 전 열린 백상예술대상에서 강민후는 애석하게도 ‘우리는 국가대표’라는 주연이었던 한정우에게 밀려서 상을 시상 받지 못하였으나, 의형제다는 ‘시나리오상’ ‘감독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올렸으며 이훈 감독은 두 번째 작품임에도 두 작품이 모두 흥했기 때문에 그 인지도를 한몫 단단히 올렸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의형제다를 촬영하면서 민후가 가장 뜻깊게 여기고 있는 것은 송석우라는 배우와 친분을 쌓았다는 것이다. 요즘도 가끔 문자를 주고받고 있었다.
저번에는 한 번 송석우가 술자리에 자신을 불러서 간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는 놀랍게도 ‘하드보이’의 손남원 배우가 있었는데, 송석우를 통해서 민후는 그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직 그와 가까워졌다고는 할 수 없으나 손남원은 송석우의 칭찬에 민후에게 관심을 가지고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함께 작품을 해보자는, 빈말일지라도 듣기에 좋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버렸다. 민후는 이젠 스물다섯의 어엿한 청년이 되어 있었으며 어느덧 배우로서, 익어야 맛이 좋은 감처럼 그라는 배우 자체가 맛좋게 무르익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의형제다라는 작품 이후 CF와 인터뷰 등에 응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 그는 1년에 벌어들이는 수익이 수억 원을 훨씬 넘는 상황이었다.
얼마 전 탤런트에 관한 수입 통계표가 나왔다. 3,600만 원 정도라는 기준이 섰다. 어쩌면 일반적인 회사원보다는 더 버는 편이었지만 단역 배우들이나 요즘에는 뜸한 탤런트들 등을 합친 것이었는데, 요즘 한창 대세인 배우들을 생각한다면 수억 원에서부터 수십억 원까지의 수익을 벌기도 한다.
또한 어머니가 벌어들이시는 수익도 만만치 않으셨다. 가게가 확장 이전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머니는 가게 이름을 바꾸셨다. ‘강민후의 카페로 들어와’라는 이름이었는데, 어머니는 계속해서 새로운 신메뉴를 개발하시기 위해 앞장서시고 결국 ‘인절미 와플’을 창시해 내셨다.
인절미 와플은 바삭한 겉의 속 안에 부드럽고 달콤, 쫀득한 인절미가 들어있고, 또한 그곳에 생크림과 각종 시럽을 더한 음식이었다.
더불어서 일반적으로 카페들은 자릿세 값이 무척이나 비쌌다. 커피 한 잔의 원가는 크게 1천 원을 넘기 힘들다. 그러나 시중에서 판매되는 브랜드 커피들의 가격의 경우 4-5천 원을 웃도는 경향이 컸으며 디저트 종류는 1만 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차 한 잔 값이 밥값만큼이나 나온다는 말이 사실인 세상이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가게 가격은 무척 쌌다. 기본적인 아메리카노는 1,500원. 카페라떼 2,500원. 그 외 대부분의 종류들이 3,000원에서 크게는 3,500원을 넘지 않았으며 디저트 종류도 5-6천 원 사이였다.
아이스크림 와플이라는 이름으로 브랜드 카페에 출시되는 와플들은 대부분이 8천 원에서 1만 원 정도 사이의 가격이다. 그러나 어머니가 만든 인절미 와플은 그 가격이 6천 원밖에 되지 않았고, 커피의 맛과 향이 원체 어머니의 숨겨진 비결 때문에 좋았기에 가게를 체인점으로 하고 싶다고 오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현재 어머니의 가게는 부산점, 강남점, 광주점, 대구점 등 다양하게 8개의 가게가 원활한 매출을 꾸준히 올리면서 이름을 높이고 있었으며,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가게의 메인 모델은 당연하게도 강민후가 되어주었다.
실상 요즘은 배우들이 스스로 가게를 창업하여서 자신의 사진을 내걸고 홍보를 하는 경우가 컸고, 민후도 자신이 이끌어나가는 가게는 아니었지만 어디 어디 점포가 개장된다고 하면 그곳에 참석하여서 팬 사인회를 열어서 손님들을 끌어모으기도 했다.
오늘의 경우는 전주점에서 인테리어를 끝마친 가게가 오픈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와 함께 내려왔다. 번화가 쪽인 전북대학교 쪽에 가게가 지어진 상황이었다.
전북대 구정문과 멀지 않은 곳에 차를 대고 민후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대학생들이 그를 알아보고는 밀려들었다.
“꺄아악!”
“와아아!”
“아이구, 우리 아들 인기가 진짜 좋네. 근데 아들, 여자 친구는 왜 없어? 예쁘장한 여자애들이 이렇게 좋아하는데.”
“엄마는 또 무슨 그런 얘기를 하려고 그래.”
민후는 헛웃음 지었다. 민망함에 콧잔등을 긁었다. 대학생들이 몰려들자 함께 이동했던 경호원 세 사람과 정수가 빙 둘러싸고 그들을 엄호한 상황에서 길을 트기 시작했다.
벌써 수백 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이만큼 강민후라는 배우가 이젠 유명해졌다는 뜻이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뿌듯했고, 그렇다고 거만해지지 않기 위해 항시 머릿속에 되뇌었다.
민후와 마찰이 있었던 오연훈. 그가 어쩌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었다. 한창 잘나갔던 오연훈은 요새 TV에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결국, 불같은 성질의 그가 코디네이터에게 욕설을 하고 화장품을 집어 던지는 동영상이 유포된 것이다.
학대받은 코디네이터가 결국 참다 참다 그의 만행을 세상에 알리자며 나선 것이다. 물론 그녀도 비밀스럽게 촬영하고 유포했으니 죄가 있었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중요시하는 것은 오연훈의 평소 성격이었다.
동영상 내에는 갖은 욕설을 퍼붓는 장면이 가득했다. 오연훈과 소속사 측은 해명에 나섰고 기자회견을 했지만, 하나둘 그를 실제로 목격하고 행실을 접한 적이 있던 네티즌들이 증언식으로 글을 올렸다.
‘사인 해달라고 하니 오연훈이 욕을 했다.’
‘오연훈이 매니저를 구두 신은 발로 차는 것을 목격했다.’
이런 이야기가 계속 네티즌 사이에서 퍼져나갔다. 그러나 그는 아직 묻히지 않았다. 단지 그 인기가 꺾였을 뿐이지. 그를 좋아하는 팬 중 아직 많은 이들이 ‘누명이다’라고 생각하는 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확실히 그의 인기가 사그라진 것은 맞았고, 민후를 같이 두고 평해 보자면 민후는 계속 상승세지만, 그는 추락세였다. 이젠 오연훈보다 강민후가 배우계에서 더욱 큰 권력을 쥐고 있는 셈과도 같았다.
‘쯔쯔, 불쌍한 자식.’
민후는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실소를 흘렸다. 결국 스스로가 자신을 악역으로 몰고 갔고, 스스로의 거만함에 밑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앞으로 얼마나 추락하게 될지 기대되는 바가 크다.
“아얏!”
“어어! 잠깐만요, 잠깐만.”
주위로 몰려든 이들을 헤치면서 가게로 이동하고 있는데, 한 여성의 비명에 민후는 화들짝 놀라며 잠시 멈췄다. 수많은 인파로 인해서 경호원 쪽으로 손이라도 잡겠다고 다가오던 앳된 중학생이 넘어진 것 같았다.
그것을 가장 먼저 발견한 민후가 다가서 손을 뻗었다.
“가, 감사합니다.”
그녀를 일으켜 세운 민후는 빙긋 웃어 보이면서 팔을 벌렸다. 그녀가 해맑게 웃으며 작게 안겼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하고 민후가 말했다.
이건 민후가 고안해낸 민후의 팬심이었고, 그의 예의였다. 팬들을 위해서 항상 ‘고맙습니다.’,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만 말을 하였던 민후였다. 그러다 문득 너무 부족하지 않나 싶었고, 그것을 ‘사랑합니다.’로 결정하였다.
사랑한다는 의미는, 단순히 여성과 남성의 그것이 아니다. 수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었고, 그러면서도 듣는 이로 하여금 기분 좋은 웃음을 짓게 만들 수 있었다.
그 때문에 그의 ‘사랑합니다.’라는 발언은 상당히 이슈가 된 바가 있었고 빈말로 던진 말일지라도 다정한 목소리의 그 말을 들은 여성 팬들은 그대로 녹아들어 갔다.
“매, 매너 존나 쩐다…….”
“우와! 나 강민후 팬 할까 봐.”
‘공부 열심히 해.’ 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움직이는 민후를 보면서 뒤쪽에서 감탄 어린 소리가 들렸다.
“크! 강민후 멋있다. 이 화려한 팬심.”
“하하.”
“우리 아들이 여자들 다루는 방법이 늘었네? 근데 왜 여자 친구가 없는 거야, 도대체.”
어머니의 또다시 이어진 ‘왜 여자 친구 없냐’는 추궁에 민후는 웃음으로 무마하였다.
여자 친구는 아니지만 좋아하는 여성은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지 못하다는 게 문제였지.
오늘 이 사인회가 끝나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면 한윤하와 만나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함께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었는데, 민후와 한윤하의 만남은 꽤 잦은 편이었고, 기사도 많이 나지만 이젠 대부분이 친분이 두터운 거로 인식하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그 친분이 좋아하는 감정이 존재한다는 것을 팬들은 모르나 이제 어느 정도 두 사람이 더욱 자리를 잡으며 열애를 한다고 해도 크게 논란이 이어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만큼 두 배우는 이미 자리가 확고하게 굳어진 상태였고, 연애한다고 할지라도 욕을 하거나 비난할 이들은 크게 없을 것이었다.
물론 비밀 연애는 되도록 안 하는 것이 나았다. 괜히 비밀 연애를 하기보다는 차라리 공식적으로 연애할 것을 대중에 발표하는 것이 옳다.
괜히 비밀 연애를 했다가 소속사에 걸리고, 대중에게 걸리면 두 사람 모두 난처해지니 말이다.
오늘 오픈 한 가게로 들어섰다. 이미 한편에는 ‘배우 강민후의 사인회’라고 걸려 있었고, 가게 안에 들어오기 전에 바깥에서도 그 문구를 보았다.
민후가 안으로 들어오자 사람들이 물밀 듯이 가게로 들어오려고 하였다.
“죄송하지만 다치실 수도 있으니까, 차례를 지켜주세요.”
가게가 왁자지껄해지고 사람들이 계속해서 들어왔다. 가게 크기는 큰 편이었지만 그런데도 계속 들어서는 사람들로 인해서 안전사고가 발생할 위험조차도 보였다.
그 때문에 민후는 직접 양해를 구했고 그제야 어느 정도 사람들이 줄을 맞춰서 한 사람 한 사람 사인을 받기 시작했다.
“으흐흑! 오빠, 너무 잘생겼어요. 팬이에요.”
“왜 울고 그래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아아, 어떻게! 너무 좋아.”
이제 스무 살 정도 된, 통통해 보이는 안경을 낀 여성이 사인받을 차례가 되자 울면서 민후와 시선 마주치는 것도 부끄러운 것인지 한 말이다.
민후의 말에 그녀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 행복하단 모습이다. 그녀의 이름을 적어서 사인해준 민후는 빙긋 웃어주었다.
계속해서 쏟아지는 사람들을 보면서 민후의 손도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인회는 딱 두 시간 동안만 진행이 된다.
사인을 받았던 이들은 커피를 주문했다. 카페 내가 꽉 찼다고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배우들이나 연예인들이 직접 먼 지역까지 내려와 사인회를 여는 이유는 그래야 사람들이 맛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인회를 열었을 때는 하루 매출이 엄청나게 높다.
그러나 차츰 감소하게 되고 그 손님들을 이끌어가는 것은 점포의 맛과 서비스를 통해서 막고 고정 손님을 잡아야 하는 것이다.
사인회가 끝나고 민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님도 전 주점 가게를 개점하게 되신 남성과 이야기를 끝내고는 함께 밴에 올랐다.
서울에 도착하니 어느덧 9시가 된 상황이었다. 어머니를 집에 바래다 드리고 윤하와 약속이 있는 레스토랑으로 향하였다. 레스토랑은 강남에 위치해 있었다.
그 가격이 상당히 센 편이었지만 이제 이 정도 가격은 부담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춘 상황이었다.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가자 가게 직원이 빙긋 웃으며 그를 자연스럽게 안내했다.
2층으로 올라서자 룸 형식으로 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남성은 커튼을 걷으면서 들어갈 것을 청했다. 커튼이 쳐지자 반가운 한윤하가 보였다.
“왔어?”
“응, 미안. 전주에서 오느라 좀 늦었어.”
“괜찮아. 아주 조오그으음밖에 안 기다렸거든.”
말은 그렇게 해도 그 말에 가시가 돋친 듯하자 민후는 종업원을 보았다. 종업원이 입 모양으로 ‘20분이요.’라고 보였다. 민후는 헛웃음 지었다. 종업원의 센스가 좋았다.
“미안해.”
“뭐가 미안해. 한창 대세인 강민후인데.”
“얼씨구?”
“헤헤.”
그녀는 민후가 황당하단 표정을 짓자 혀를 내밀며 웃었다. 강민후도 바쁜 인사였지만 한윤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요즘은 대한민국 5대 미녀 중 한 사람으로 꼽히기도 하고 있었고, 얼마 전 설문조사에서 ‘손잡고 함께 걷고 싶은 연예인’에서 1위의 성적을 거둠으로써 한창 상승세인 것을 확인시켜준 바가 있었다.
스테이크와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와인잔에 붉은빛이 감도는 레드와인이 따라졌다.
“맛있게 드세요.”
종업원이 사라지고 두 사람은 음식을 취하며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덧 식사가 끝난 것 같자 민후는 냅킨으로 입을 닦았다.
“그보다 어쩐 일로 만나자고 했을까? 보고 싶어서?”
“보고 싶긴- 개뿔!”
한윤하가 그에 정색했다. ‘보고 싶긴 하지…….’ 사실 보고 싶어서 부른 것도 있었지만 한 가지 제시할 것이 있어서이기도 하였다.
“너 군대 언제 간다고 했지?”
“음, 내년 4월?”
현재 민후는 입영을 생각하고 있었다. 스물다섯. 배우로서는 적절한 나이었으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었다. 민후는 자신이 현재 촬영하고 싶은 작품들이 있어도 그 나이가 맞지 않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그로서도 여물어야 된다는 것이었고, 어차피 가야 하는 군대 빨리 다녀오고 제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전역을 하면 스물여덟. 1월일 것이다. 만약 강민후가 서른 정도의 나이에 군대에 간다고 가정하면 그때는 자신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할 때일 것이다. 그러나 갑자기 입영을 해버리면 그 힘이 어느 정도 반감된다고 할 수 있었고, 지금 간다는 민후의 선택이 옳은 것이었다.
하물며 전역 후에는 해외 진출도 염두에 두고 있는 바가 있었다.
“그럼 충분히 되겠네. 입대 전에 마지막 작품은 나하고 하자!”
“으응-?”
마지막 작품을 함께 하자는 말에 민후는 다소 놀란 표정이 되었다. 활기를 띤 표정의 그녀는 다소 흥분이 된다는 표정이었다.
“SBC에서 드라마를 하나 기획하고 있어. 근데 시나리오가 좋아, 시나리오가.”
“드라마라…….”
그녀의 흥분에 찬 목소리에도 민후는 침착하게 한번 생각해 보았다. 자신은 시트콤 논스톱 이후에는 공중파 방송에서 드라마를 촬영하거나 한 적은 실질적으로 없었다.
드라마. 영화보다는 가장 대중적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만큼 위험요소도 큰 편에 속하였다.
“제목이 뭔데?”
“찬란한 재산.”
“제목은 되게 좋네.”
민후는 픽 웃었다. 한번 소속사와 상의해보고 해야 할 것 같았다. 아직 스토리는 전혀 모르지만 일단 윤하와 자신이 함께 출연하는 공중파 드라마라면 어느 정도 시청률은 따놓은 거라고 할 수 있었다.
부쩍 상승세인 두 사람이었고 팬층도 두꺼워졌기에 함께 출연한다면 좋기는 할 것이다. 또 사적으로도 더욱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출연 부분은 대표인 함태웅과 이야기를 나눠 본 후에 결정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생각 좀 해볼게.”
“이 기회 쉽지 않아, 나 같은 미녀 배우랑 함께 하는 건.”
그녀의 능청스러운 목소리에 민후는 황당하단 웃음이다. 민후가 스타로서 여유를 가지게 된 만큼 그녀도 여유를 가지기 시작한 것 같았다.
식사와 이야기가 끝난 것 같아지자 서로가 내일 스케줄을 감안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하는데 종업원이 윤하에게 종이와 펜을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제가 팬이라서요.”
“아, 네.”
그녀는 빙긋 웃으면서 역시나 귀 뒤로 머리카락을 넘겼다. 종업원은 껌뻑 죽는다는 표정이다. 실제로 윤하의 이 습관 때문에 이슈가 된 적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일부러 남자들을 홀리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이러한 모습이 아름다운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혹시 두 분 정말 사귀는 사이 아니죠? 그렇죠?”
“친구예요.”
“예.”
종업원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그녀가 먼저 대답했고, 민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는 친구였다. 그러나 언제 발전할지 모르는 위험한 사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계산을 마치고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왔다. 그녀와 헤어지고 밴으로 올랐다.
“윤하와 함께 드라마라…….”
확실히 민후도 흥미가 크게 동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녀와 함께 드라마를 촬영한다라…… 꽤 좋을 것 같았다. 상상만 해도 작은 웃음이 지어지는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뭐!? 한윤하 씨가 같이 드라마 하재!?”
운전석에서 단잠에 빠져 있던 정수는 어떻게 그것을 들은 것인지 벌떡 일어나면서 그를 돌아보았다. 민후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야지, 인마. 요즘 가장 핫한 여신 배우인데.”
“한번 대표님한테 물어보려고요.”
“아…….”
윤하가 얼마나 핫한지는 매니저인 박정수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더군다나 두 사람이 함께 작품에 출연한다면 상당히 좋은 그림이 나올 것이라는 게 정수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함태웅 대표의 이야기가 나오자 고개를 끄덕였다.
곧 밴이 민후의 집으로 출발했다.
우리나라의 공중파 방송국들은 항상 치열한 접전을 펼친다. 주말 같은 경우에도 그러했다. 비슷한 시간대에 비슷한 형식의 예능을 방영함으로써 접전을 펼치기도 하고, 프로그램에 좋은 MC, 게스트를 출연시켜서 인기를 끌려고 노력한다.
실제로 이러한 이유 중 하나는 그 시간대가 가장 많은 시청자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또 하나 MBS, SBC, MBS 세 개의 방송국이 같은 시간에 항상 드라마를 방영한다.
10시에서 11시까지였다. 그리고 그 작품들은 가장 먼저 배우들이 대결에 붙기 시작한다. 어떤 어떤 배우의 캐스팅, 어떤 배우의 열연, 어떤 신인배우, 그리고 작품성과 스토리. 재미로 붙기 시작하고 끝내는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가 승리하게 되는 셈으로써 어쩌면 약육강식의 세계를 제대로 보여주는 격이라고 할 수 있었다.
SBC는 요즘 한창 ‘스페셜’이라는 이름을 두고 수많은 드라마를 흥행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방송국마다 추구하는 드라마와 내용이 존재하였다. 그 때문에 드라마 애청자들의 경우 딱 드라마만 보아도 아, 이건 어디 방송국에서 방영하는 것이다! 라고 알아챌 수 있을 정도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부분에서 현재 SBC는 대세몰이를 하는 중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함태웅 대표는 민후의 드라마 제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입대 전 공중파로의 데뷔는 상당히 좋은 의견일 수도 있었다.
실제로 중년층의 경우 영화관에서 영화를 자주 보지는 않는다. 대개 젊은 층이 많이 보게 된다. 그러나 드라마는 달랐다.
요즘 TV 없는 가구는 없었다. 그만큼 TV는 보편화하여 있는 실정이었다. 입대 전 크게 한번 터뜨릴 것이 민후에게는 필요했고, 그것이 드라마라면 좋았다. 20% 정도만 넘겨주어도 대박에 들게 되는 것이고 수많은 이들에게 그 얼굴을 더욱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하물며 요즘은 영화보다는 드라마가 아시아권 전체로 뻗어 나가는 경향이 컸다. 얼마 전에는 ‘미남이네요?’라는 SBC 방송국이 내보인 드라마가 국내에서는 저조한 시청률을 보였지만 일본에 가서는 엄청난 대박을 터뜨려서 드라마의 판권이 팔리고, 한운석이라는 우리나라의 배우가 일본으로 넘어가 한류열풍을 몰기도 하였다.
그만큼 드라마는 아시아로 뻗어 나가는 데에도 단단히 한몫하고 있었기에 영화에만 집중적으로 몰두하였던 민후의 공중파 데뷔는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 것이 확실하였다.
결국 ‘해라!’라는 대답이 함태웅 대표에게서 떨어졌다.
계약서를 작성한 민후는 권현민 PD에게 넘겨주었다. 그것을 확인한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따로 오디션은 보지 않았다. 이젠 그러지 않아도 방송 관계자들이 알아줄 정도의 인지도를 쌓았다.
더불어서 권 PD는 강민후를 데려온 것이 핵심의 한방이었다고 생각했다. 한윤하가 캐스팅된 것도 정말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방송 관계자들 사이에서 ‘강민후라는 배우는 떴는데도 아직도 그 열정이 대단하다. 한번 같이해 봐야. 그 말뜻을 알게 된다.’라는 맡이 숱한 그와 계약을 맺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윤하가 추천할 친구가 있다고 하여서 누군가 했더니 그것이 강민후인지는 권 PD도 몰랐었다.
“스토리는 마음에 들어?”
“예. 괜찮네요. 특히나 이환이라는 역할이요.”
찬란한 재산은 식품 재벌 집안에서 벌어지는 비하인드 스토리에, 극 중 캔디 식으로 풀어나가는 강은성이라는 역할이 더해지는 스토리였다.
본래 강은성이라는 역할도 부유한 형편이었으나 집안 형편이 몰락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캔디 같은 모습으로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고 긍정적으로 생활하려 노력한다.
그러다가 만난 것이 까칠한 왕자님 같은 이환이었다. 이환은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아는 철모르는 남성 역할이었다. 까칠한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고 그 죄책감과 아픔을 지니고 사는 남성 역할이다. 드라마는 뜻하지 않게 이환의 할머니와 은성이 만나게 되고, 단기적인 기억 상실을 사고로 인해 가지게 된 이환의 할머니를 은성이 고운 심성으로 돌봐줌으로써 명확한 스토리 라인이 잡히는 것이었다.
아마도 시나리오는 차차 계속 나올 것이었고 상당히 기대된다.
“이환이라는 캐릭터 솔직히 자네하고는 잘 안 맞지 않나?”
“배우한테 안 맞는 배역이 어디 있나요.”
실제로 이환이라는 역할은 민후가 이제까지 연기한 것들과는 조금 달랐다. 영화에서만 보아도 42.195㎞의 유원, 순수하고 착하다. 식객전쟁, 올바른 청년. 꿈을 위해 나아가는 이를 그렸다.
의형제다. 간첩이지만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는 지원을 표현했다.
그에 반면 이환이라는 역할.
이제까지 연기한 배역들과 정반대되는 성향을 가진 캐릭터였다. 까칠하고 흔히 말하는 싸가지를 밥 말아 먹은 녀석이다.
그러나 은성을 만남으로써 하나둘 변하기 시작하는 그의 변모를 표현할 것을 생각하니 벌써 민후는 흥분에 차오르듯이 한다.
“그렇지, 그러니까 배우이지.”
민후의 자신 있다는 말에 권 PD가 고개를 끄덕였다. 배우가 무조건 같은 성향의 캐릭터만 연기하라는 법은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다음에 배우들 다 모아놓고 내가 술 한잔 살게.”
권 PD는 술을 좋아하게 생긴 인상이었다. 선한 눈매에 살짝 매부리코를 가지고 있고 허름한 옷이 매치가 잘 되었는데, 술잔을 꺾는 제스처가 왠지 모르게 너무나도 능숙해 보였다.
“참! 이승미 역할 맡은 분이 문채은…… 이라는 분이라고 했죠?”
“그렇지. 아직 신인인데 연기력이 되게 좋더라고. 얼굴도 예쁘장하니 생겼고. 그런데 성격이 좀 말괄량이 같은 게 있어. 그래도 좋은 친구니까 좀 친해져 봐. 알기로 나이는 동갑이고 하니까 선배로서 조언도 좀 해주고.”
“예, 알겠습니다.”
민후는 싱긋 웃어 보이면서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며 밖으로 나섰다. 이번에 찬란한 재산에 함께 참여하는 이들 중 주연급으로는 문채은, 한윤하, 박주빈. 그리고 자신이 있었다.
주빈은 차츰 알려진 배우라 알고 있었으나 채은은 실상 스크린으로 접해보지도, 그녀의 작품을 보지도 못했기에 잘 모르는 배우였다.
말괄량이 같은 성격이라는 것에 호기심이 조금 동했으나 좋은 사람이라고 하니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민후다.
“읏차!”
민후가 밴에 오르고 정수가 기분이 좋은 것인지 히죽히죽 웃으면서 그를 돌아보았다.
“예정된 곳으로 모시면 될까요, 회장님?”
“그러지, 박 비서.”
“예. 알겠습니다, 회장님.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정수가 이렇듯 아부 어린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얼마 전 그의 생일이었던지라 민후가 큰마음 먹고 값비싼 지갑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50만 원 상당의 물건이었다.
물론 가격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항시 그의 낡은 지갑이 마음에 걸렸었고, 오랫동안 자신을 챙겨왔던 형이었기 때문에 언젠간 한번 보답하리라 한 것이다.
그 선물을 한 이후 정수가 민후에게 이렇게 줄곧 장난을 치곤 했다.
“에이, 형! 근데 이제 회장님 놀이 그만하면 안 돼요?”
“왜 그러시죠? 전 이게 좋습니다.”
“선물 다시 내놔요.”
“알았다, 알았어. 자식이 말이야, 형이 기분이 좋아서 그러지, 기분이!”
“됐거든요.”
“하여튼, 우리 배우님은 마음이 넓어요. 기부도 많이 하고, 매니저도 잘 챙기고.”
그의 말에 민후가 픽 웃었다. 요즘 민후의 기부는 물이 올랐다. 얼마 전부터는 자신이 졸업한 한양대학교에 후원하기 시작했다.
올해는 2억 원을 했다. 2억 원은 학교 복지와 가난한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후원될 것이다. 이렇듯 대학교에까지 후원하게 된 진짜 이유는 강민후의 고충을 들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학생들이 돈이 없어 공부를 못 한다는 것. 그것만큼 안타까운 일은 없을 것이고, 2억이라면 민후에게는 입이 떡 벌어지는 금액은 아니었다.
자신의 작은 것이 그들은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보람찬 일이다.
그리고 오늘의 경우도 조금 특별한 방문이 예정된 상황이었다.
서울 일대에서 최고라 꼽히는 한 연기학원에 방문하는 것이었다. 과거 김하나를 민후가 소개해주었던 곳이기도 하였다. 민후가 학원에 방문하는 이유는 수강생들에게 조언과 강의를 하기 위함이었다.
학원의 원장은 김희해라는 여성이었다. 중년의 여성이었지만 아름답고 기품이 흘렀고, 또한 그녀의 학원은 일취월장하였다.
그녀의 학원이 성공한 데에는 그녀의 마인드가 크게 한몫했다. 단순히 돈을 위해서가 아닌 후배 배우들을 진실 되게 육성하겠다는 마인드로 하여금 차츰 그녀의 학원에서 몇몇 배우들이 배출이 되고 더욱 상승세를 타서 연기학원하면 그녀가 운영하는 ‘연기 배우기’라는 곳이 최고다. 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김하나는 분명 ‘연기 배우기’ 학원이 낳은 인재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강민후라는 배우가 아주 어렸을 적 소개해줬었다는 말을 원장인 희해에게 하였었고, 그녀는 강민후라는 젊었던 배우가 어린 시절 자신의 학원에 방문하지 않았음에도 알고 있었다는 것에 의아했다.
그리고 서로 연줄이 닿아서 민후와 희해의 자리가 한 번 마련된 적이 있었는데, 희해 역시도 민후를 무척 좋게 보고 있었다. 그의 연기력에는 진실성이 담겨 있었다.
희해도 실력으로는 저리 가라 하는 명품 여배우였다. 그런 그녀의 눈에도 민후는 좋은 연기력을 가진 젊은 친구였다.
그 때문에 한 번, 학원에 와서 수강해줄 수 없겠느냐는 제시를 하였었다. 실제로 민후의 나이 스물다섯. 그 정도 나이에 민후만큼의 연기력을 가진 이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하물며 학원에는 민후와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이 많아서 꽤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선다.
“역시 세상은 참 빨라…….”
민후는 가는 동안 노트북을 만지다가 혀를 내둘렀다. 어느새 포털 검색 사이트에서 ‘찬란한 재산’이라는 제목과 ‘강민후’, ‘한윤하’ 등등 주연 배우들의 이름이 실시간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계약을 체결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기자들은 이 사실을 어떻게 안 것인지 벌써 찬란한 재산에 대한 자료가 나가고 있었다. 오히려 민후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클릭해서 들어가 보면 사람들은 강민후가 드라마를 촬영한다는 것에 큰 관심을 두고 있었으며 그와 덧붙여서 한윤하와 함께한다는 말에 더욱더 관심을 두고 있었다.
물론 이중 다시 ‘서로 사귄다, 어쩐다’ 하면서 운운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젠 소속사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일이 되었다. 이미 한 번 ‘아니다’라고 확정이 되었던 상황에서 스캔들이다 뭐다 해봤자 다른 이들도 단순 루머라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어느덧 연기 배우기 학원에 도착했다. 수강생들은 아직 전혀 모르고 있는 것으로 안다. 깜짝! 하고 서프라이즈 식으로 민후는 등장할 예정이었다.
모자에 마스크를 푹 눌러쓴 민후는 원장실로 들어갔다.
“아유! 놀래라!”
김희해는 마치 도둑처럼 모자와 마스크를 푹 눌러쓴 민후가 들어오자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마스크와 모자를 벗은 민후가 다소 민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녀는 원두커피 한 잔을 그의 앞으로 내려놓았다.
“연습은 많이 했니?”
“예.”
연습이라 하면 그가 이번에 수강생들에게 가르쳐줄 것을 말하는 것일 거다. 물론 민후도 철저히 했다. 두 시간 동안 자신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를 그들에게 전해주어야 했다.
촉박한 시간이었고 때문에 굵을 필요가 있었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시간을 흘끗 보았다. 1시가 되어 가고 있었다. 커피 한 잔이 어느덧 비워지고 두 사람이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희해는 민후의 어깨를 잡으면서 이론 수업 실로 들어가기 전 그를 창가 쪽으로 세웠다.
“누가 오려거든 여기 이렇게 숨어 있어. 알았지? 들키면 안돼? 그리고 내가 박수를 짝짝! 두 번 치면 들어와.”
“예, 선배님.”
그녀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학생들에게 특별 지도교사를 내보일 것이 상당히 기대된다는 모습이었다. 그녀가 앞서 이론 수업실로 들어가고 민후는 머쓱하게 서 있다가 두 남학생이 화장실을 다녀온 것인지 그쪽으로 다가오자 황급히 고개를 돌려 얼굴을 숙였다.
“누구야?”
“몰라.”
두 사람은 다행히도 알아채지 못한 듯싶었다. 고개를 틀어서 이론 수업 실 내를 들여다보자 초롱초롱한 눈빛의 수강생들이 보였다. ‘미래의 꿈나무들 같으니.’라고 말하면서 민후는 픽 웃는다.
곧 희해는 특별 지도교사가 있다는 말을 그들에게 해주었다. 그들이 순식간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복도까지도 느껴졌다. 곧 박수가 ‘짝짝’ 두 번 쳐졌다.
민후가 문을 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오오오……!”
“가, 강민후다.”
“우와, 진짜.”
“와! 잘생겼다.”
민후가 들어서자마자 수강생들은 난리가 났다. 수강생들은 대부분이 젊은 층이다. 실제로 연기를 배우는 이들은 젊은 층들이 많았고, 서른 정도의 이들이라면 대부분이 이미 단역으로 활동하고 있거나 혹은 그 꿈을 진즉에 접은 이들이 많았다.
수강생들은 두 시간 동안 자신들에게 강의해줄 이가 강민후라는 사실에 무척 놀란 듯싶었다.
“안녕하세요, 배우 강민후입니다. 김희해 선배님이 되게 멋진 수강생들이 많다고 하루 와서 강의해줄 수 없느냐고 하셔서 이렇게 오게 되었습니다. 카메라는 넣어주셨으면 좋겠네요.”
어딜 가도 꼭 분위기 파악 잘 못 하는 이들이 있기는 한가보다. 한 여성이 민후가 들어오자 휴대폰을 꺼내 들고 동영상 촬영을 하려고 하였다.
지금은 팬들이나 혹은 다른 시간이 아닌, 민후가 강의를 해주는 시간이었다. 예의에 어긋난 행위이다. 희해도 휴대폰을 들고 있는 이를 인지하고 ‘쓰읍’ 해 보이자 젊은 여성이 아쉬운 기색으로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모두 오늘 일일 초청 강사 강민후의 말을 잘 듣도록 바랍니다.”
희해는 밖으로 나서기 전 말했다. 목소리에서 엄격함이 묻어났다. 물의를 빚지 말고 예의를 차리라는 이야기였다. 민후보다 나이가 많은 이들도 몇몇 있지만 지금 현재는 강민후라는 배우가 그들을 가르치기 위해 온 것이니 말이다.
“참, 민후 아직 여자 친구 없다.”
“와아아!”
“꺄아악!”
희해는 분위기를 잡아주는가 싶더니 장난스럽게 여학생들을 겨냥하여 한 말이다. 여학생들로부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민후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교탁 위에 얇고 긴 자가 놓여 있었다.
탁탁!
“모두 조용히들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가 교탁을 두들기자 학생들이 조용해졌다. 민후는 칠판에 ‘열정’이라는 두 글자를 적었다. 그러고는 그것을 두 번 딱딱 두들겼다.
“여러분은 얼마나 열정을 보이시나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열정.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열정. 스스로 무척 자신은 열정적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죠?”
민후의 물음에 수강생 중 몇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인 사람 중 한 사람에게 민후는 묻는다.
“수강생분께서 생각하시는 자신은 무척 열정적으로 살고 있나요?”
“그래도 다른 사람들보다는 나름…….”
“다른 사람들보다는 나름이 얼마만큼인가요? 남들이 연기 연습을 한 시간 정도 한다고 가정합니다. 그렇지만 자신은 한 시간 십 분을 연습한다. 이런 식이겠죠?”
“예.”
“그럼 실제로 하루에 몇 시간 정도를 연습하시나요?”
민후가 되물은 수강생은 이제 스물셋 정도 되어 보이는 남성이었다. 그의 물음에 그는 천천히 생각해 본다. 학원에서 4시간 집에 돌아가서 1시간 정도를 더욱 연습한다. 물론 현재 대학생인지라 주말반밖에 오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었으나 주말에는 이틀 동안 열 시간가량을 연습한다.
“6시간씩이요.”
그러나 그는 그마저도 조금 더 부각시켜서 말했다. 민후는 빙긋 웃었다.
“하루에 6시간 이상 배우에 관한 공부를 하는 분 계신가요?”
민후의 물음에 수강생 중 상당한 사람들이 손을 들어 올렸다. 물론 이중에 오늘 수업이 딱 끝나면 안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사람의 심리는 ‘자신이 노력하고 열정적이다.’라고 보이고 싶어 한다.
또 스스로 남들보다 더욱 노력하며 열심히 성실히 살아가고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보았나요? 여러분,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노력 열정이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자만하지 마세요. 실제로 수많은 이들이 이런 말을 하기도 합니다. 드라마에서도 나오기도 하죠. ‘난 끝이야. 아무리 노력해도 안 돼.’ 헛소리입니다. 세상에 이런 헛소리는 또 없습니다. 저는 그 사람에게 묻고 싶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노력해 본 적이 있어서 하는 말이야?’라고. 자신 딴에는 노력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아닌 거죠.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인지하는 것일 뿐입니다.”
실제로 자신은 누구보다 노력한다. 라고 자부하는 이를 붙잡고 진심으로 당신은 노력하고 있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확실하게 ‘예!’ 하는 이들보다는 우물쭈물하면서 ‘그럴걸요?’ 하는 이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것을 민후는 잘 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노력해도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한 책에서 자신이 그 분야에 성공하기 위해 하루에 네 시간만을 자고 온 시간을 그것에 쏟아부었다. 라고 한 저자가 있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을 해야 그것이 열정이고 노력이라는 것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 말을 끝내고 민후는 이번에는 ‘열정’이란 글자 옆에 ‘대가’라고 썼다.
“노력한 후에 대가. 실제로 모든 것을 행할 때는 대가를 바라고 합니다. 배우에 열정을 가지고 생활하는 이유도 배우라는 이름을 쟁취하고 싶어서이죠. 그리고 열정과 대가는 상당한 상관관계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민후는 능수능란하게 학생들을 이끌었다.
학생들은 하나둘 빠져들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노련한 학원 강사의 강의를 듣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강민후의 강의는 능숙했고, 요약되어서 그들의 귀와 머리를 채워줬다.
강의가 끝이 나고 그는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수강생들이 박수와 더불어서 환호 소리를 보내주었다. 오늘 하루의 수강은 무척 뜻깊은 것 같았다.
이 중 누군가는 배우가 될 것이고, 누군가는 결국 그 길을 포기하고 새로운 길을 걸으려고 할 테지만, 이 안의 모든 이들이 잘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진다.
강의가 끝나자마자 수강생들이 물밀 듯이 민후에게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사인이나 혹은 사진 촬영을 요구하였고 민후는 한 사람 한 사람 친절하게 응해주었다.
어느덧 강의가 끝날 시간인 것을 확인한 희해가 이론 수업 실로 왔다가 둘러싸여 있는 민후를 보고는 당혹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 강의 어땠니?”
실상 희해는 조금 걱정이 된 부분도 있었다. 그가 뛰어난 연기력을 소유하고 있다고는 하나 강의를 하는 부분에서는 부족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질문에 한 여학생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주었다. 물을 때마다 모든 이들이 좋은 반응을 보였다.
오늘 배운 것이 정말 많다고 하는 아이들도 찾아볼 수 있었다.
어느덧 사인과 사진 촬영이 끝난 수강생들이 이론 수업 실를 나서기 시작했다. 그들이 나서고, 민후도 밖으로 나섰다.
“정말 괜찮습니다, 선배님.”
희해는 굳이 민후를 배웅하고 싶다고 했다. 그가 밴에 오르기까지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의 뒤를 꿋꿋이 지켰다.
“다음에도 부탁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다음에도 이렇게 와서 강의해달라는 의미였다. 밴에 오른 민후는 빙긋 웃었다.
“네-”
오랜만의 강의여서인지는 모르지만 피곤한 것도 있으나 부쩍 성취감이 컸다. 오랜만에 최강호 교수가 강의를 펼친 것 같은 기분이다. 시간이 된다면 정말 한 번 다시 이 학원에 찾아와 강의를 몇 번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