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매니저는 가족이다
영화 의형제다의 촬영이 다가오고 있었다. 민후와 송석우가 행했던 개별적인 액션 장면도 거의 끝난 상황이었다.
이훈 감독은 이들의 성취도를 보기 위해 직접 연습실에 들렀다. 그는 감독치고는 꽤 젊은 편에 속했다. 올해 서른두 살이었다.
이훈 감독이 온다는 소식에 전문석 무술 감독은 어제 그 합을 대충 맞춰보게 하였다. 아무래도 허공에 휘두르는 것보다는 스턴트맨들을 두고 하는 것이 이훈 감독에게 더욱 좋게 보일 것이었다.
하루 동안 맞춰보는 것인지라 어색한 연출도 존재하였지만, 동작은 배우들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기에 스턴트맨들만 날리는 주먹에 훅훅 잘 떨어져 나가주면 어느 정도 커버가 되었다.
먼저 송석우의 액션이 이어졌다.
탓!
“크윽!”
찻!
“악!”
퍽!
그는 둔한 듯하면서도 의외로 날렵하게 하나둘 제압을 해나가는 모습을 연출하였다. 이훈 감독은 그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러면서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는 모습이었다.
송석우의 액션이 끝이 나고 민후의 차례가 되었다. 석우가 찌뿌둥한 몸을 기지개를 한껏 켜면서 이훈 감독의 옆에 섰다.
“이 감독, 보면 아마 깜짝 놀랄 거다.”
“예?”
“일단 한번 봐봐.”
이 감독이 고개를 갸웃하자 석우는 민후 쪽을 가리켰다. 포지션을 취하지 않고 지켜보는 스턴트맨들은 의미심장한 미소였다. 마치 자신들이 그 성과를 보이는 것인 양 뿌듯해하고 있었다.
곧 민후의 몸이 바람처럼 움직였다.
후웅!
탁!
퍽!
가장 먼저 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팔을 밑쪽으로 강하게 내리치면서 안면을 거세게 가격하듯 하였다. 스턴트맨이 그대로 바닥을 굴러 기절한 시늉을 한다.
후웅!
척!
턱!
우둑!
그리고 곧 안면을 노리고 들어오는 주먹을 팔을 들어 피해내고는 막은 팔을 이용해서 잡아채어 그대로 꺾어버렸다.
“끄아아악!”
바닥을 나뒹구는 이를 뒤로한 채 앞쪽에서 달려오는 이의 가슴팍을 손날로 강하게 내리치면서 단숨에 제압하고는 자신의 안면을 한 대 후린 이의 명치에 주먹을 단숨에 꽂고 고개가 숙여진 틈을 타 주먹으로 강하게 쳐올렸다.
“컥!”
“하아 하아 하아.”
한 스턴트맨이 재빠르게 품속에서 프롭 총을 꺼내어 발포하려고 하였다. 민후의 손이 재빠르게 허공 쪽으로 쳐내면서 그의 목을 가격함으로써 숨통을 막히게 하고는 캑캑거리는 그의 안면을 거세게 한 번 가격하고 바닥에 눕혔다.
“이야아아!”
어떠한 이가 뒤에서 덮쳐오려는 순간이었다. 몸을 가볍게 틀어 피해낸 그가 짧고 굵게 턱을 가격했다. 모든 동작을 완료한 민후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빠르고 간결하게 움직인다는 것은 짧은 시간이지만 그만큼 에너지 소비가 큰 듯싶었다.
이훈 감독은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의 동작이 너무나도 빨랐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헛 웃으며 박수를 쳤다.
“수고하셨습니다, 강민후 씨.”
“감사합니다.”
“이거, 참 나도 같이 고생했는데, 민후만 칭찬받고. 에이씨, 서러워서 이거 살겠나.”
송석우가 두 사람의 대화에 땅을 차듯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이훈 감독이 아차 하고는 ‘송석우 씨도 잘하셨습니다.’라고 말하자 ‘이제 말하면 뭐하나, 이 양반아.’ 하면서 짓궂게 웃었다.
본격적인 영화 촬영은 3주 뒤부터 시작된다. 지금 현재 액션 동작들을 모두 익힌 만큼 곧바로 액션 장면부터 차례대로 찍기 시작할 것이었으며 모든 액션 신이 촬영되면 김한규와 서지원의 일상적인 이야기들과 마찰, 갈등 등을 촬영하기 시작할 것이다.
* * *
용호상박의 모임에 와있는 민후였다. 처음 뵈었을 때의 멤버에서 몇 사람씩 바쁜 사람들은 빠지고 새로 보는 얼굴들이 생기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건상진이라는 배우와 안지현이라는 여배우가 있었다. 건상진이라는 배우는 ‘말죽거리 잔혹’이라는 영화나 ‘짐승’, 혹은 드라마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베테랑 배우였으며 인지도가 컸으며 주로 액션 연기를 자주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안지현의 경우 열여덟 어린 나이에 데뷔한 경력이 있는 여성 배우였으며 대표작은 ‘엽기적인 여자’라는 작품으로,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상당히 큰 인지도를 일구어낸 여성이었다.
일단 안지현의 경우는 아름다운 외모와 덧붙여서 꽤 큰 키.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남성들이 좋아하는 얼굴상이었기 때문에 큰 인기를 얻는 중이었다.
“이야, 민후 술 잘 마시네.”
“감사합니다.”
일차적으로 식사 및 정보공유를 하였다. 당연하게도 용호상박의 인원들은 대부분이 민후가 의형제다 영화를 준비 중이고, 곧 촬영에 들어가는 것을 알고 있었다.
건상우의 칭찬에 민후는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이며 웃었다. 그는 꽤 인기가 높아졌다. 다름 아닌 술을 잘 마신다는 이유에서였으며 항상 마지막에 멀쩡하게 남아 있는 사람은 거의 민후라고 할 수 있었다.
한 번은 술고래로 유명한 한정우와 술로 붙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부쩍 한정우와도 친분을 둔 바가 있었다.
“다음 주부터 촬영 들어간다며? 그것도 송석우 선배님이랑. 이야기 술술 잘 풀리네.”
“잘 풀리긴요. 참, 액션 연기의 대명사 하면 건상진 선배님이라고 들었습니다. 말죽거리 잔혹 찍을 때 대단했다고 하던데, 액션 할 때 중요한 점 좀 가르쳐주시면 안 될까요?”
민후는 초면이었음에도 건상진과도 매우 빠르게 친해지고 있었다. 그의 말에 ‘이것 봐라? 사회생활 잘하는데!? 내가 그때 쌍절곤으로 최고 먹긴 했지!’ 하면서 웃어 젖혔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냐. 스스로가 열심히 노력하고 또 가장 중요한 것. 안 다치는 게 가장 중요한 거야. 네가 다쳐봐. 팬들이 얼마나 가슴 아파하겠어.”
짝짝짝.
“우리 상진이 형님, 오늘 명언 하나 하신다, 명언. 그보다 연훈이도 원래 그 작품 노렸었다며? 근데 어쩌냐. 하하하! 민후는 추천받아서 들어갔다는데! 하하하!”
“에이씨! 술맛 떨어지게 무슨 그런 이야기를 하고 그래요, 형님!”
탁!
오연훈이 거칠게 입으로 가져갔던 잔을 테이블 위로 내려놓았다. 어찌나 거칠게 내려놓았는지 시끄럽던 주위가 조용해질 정도였다. 유승범은 다소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연훈은 용호상박 내에서 가뜩이나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강민후이자 어린 녀석에게 그 배역을 빼앗겼다는 것에 사실 심드렁해 있는 상황이었다. 몰랐었던 민후는 아까 전부터 자신을 심드렁하게 바라보던 그의 시선을 이제야 이해할 수가 있었다.
오현훈은 첫날 때도 그랬지만 선배에 대한 예의가 상당히 없었으며 자만심이 강한 편이며 다혈질적인 성격이 심했다. 덧붙여서 이 용호상박 모임에 오면서 그의 뒷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여자를 상당히 좋아하여서 여자 배우 중, 특히 신인배우 중에서 손대지 않은 이가 없다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한마디로 그 평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유승범도 평소 한가락 하는 성격이었다. 당혹했던 듯싶었던 기색이 붉게 변했다. 웃으면서 장난으로 던진 말에 너무나도 과민 반응이었다. 어쩌면 심기를 건드린 것은 그이기는 하였으나, 선배인 승범으로서도 그의 그러한 행동은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일이 커질 것 같아지자 평소 온순한 도원빈이 술잔을 탁! 하니 내려놨다.
“둘 다 뭐 하는 거야? 여기가 너희 둘 싸우라고 있는 자리야!? 오연훈! 선배가 장난 좀 친 거 가지고 그렇게 대놓고 개념 없이 나와야겠어!? 그리고 승범이, 장난을 쳐도 적당히 그 선을 봐라.”
“죄송합니다, 형. 괜히 저 때문에…….”
유승범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선배인 도원빈에게 미안한 기색을 보였다. 승범도 성격이 무척 온순한 편은 아니었기에 웬만해선 건드리는 이들이 없었다.
그러나 그도 분명 자신의 잘못은 알고 있었고 분위기를 흐린 것과 선배인 그의 앞에서 이런 행위를 한 것에 대한 사과를 하고 있었다.
“야, 오연훈! 넌 이 새끼야, 왜 대답이 없냐.”
그러나 오연훈은 아니었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인상을 잔뜩 구긴 채 딴청을 피우듯이 했다. 보다 못한 건상진이 나섰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연훈은 눈을 다른 쪽에 둔 채 도원빈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죄송합니다, 형님.”
“그게 지금 죄송하다는…….”
“아이, 왜들 그래, 정말. 오랜만에 봤는데 이렇게 싸울 거야?”
“그만들 좀 해요.”
건상진이 되레 화가 치민 것 같았다. 실상 다른 이들도 오연훈이 너무 과민하게 반응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의 표정이 ‘내가 뭘 잘못했어!’라는 표정임을 알았다.
그러나 자신들끼리의 싸움은 좋을 것이 없었다. 결국, 여자 연예인들의 만류에 건상진이 자리에 앉았다.
차츰 분위기가 밝아지기 시작했다. 오연훈만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르면서 거칠게 들이켜고 있었다. 건상진과 이야기를 나누며 웃던 민후가 죽일 듯이 자신을 보는 그의 표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소로운 새끼.’라고 그 표정은 말하고 있었다.
민후는 곧 그 시선을 무시했다. 그의 표정이 민후도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덧붙여서 처음 자신과 김민준의 마찰을 떠오르게 했다.
그러나 확연히 김민준의 그 눈빛과는 달랐다. 민준은 자신을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기는 하였으나, 그렇다고 저렇게 죽일 듯이 보지도 않았고 가소롭다는 듯이 웃지도 않았다.
그것은 그 내면적인 문제일 것이다. 한 번에 바짝 떴다가 현재 한창 뜨고 있는 추세의 오연훈이었다. 그런 그의 평상시에 가지고 있던 내면이 바로 저러한 모습일 것이다.
그렇기에 현재 도원빈이나, 다른 용호상박의 주축이 되는 이들이 요즘 오연훈의 저러한 껄끄러운 행동에 모임 내에서도 상당히 골칫거리로 두고 있는 실정이었으나 일단 지켜보고 있었으며 계속된 충고와 조언에도 고치려는 경향이 없다면 내보낼 생각이었다.
한창 놀고 있을 때, 슬쩍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왔다. 그는 다름 아닌 오연훈의 매니저였다. 매니저들이 전화가 오거나 중요한 일이 있으면 들어와서 배우들에게 알려주고는 하였기에 크게 신경을 쓰는 이들은 없었다.
“형, 내일 7시부터 촬영 시작인데 이제 그만…….”
“아이, 씨발! 저리 안 꺼져? 내가 알아서 해. 기분도 X같아 죽겠는데.”
“그래도…….”
“뒈질래, 진짜?”
민후도 자신도 모르게 그를 의식하고 있었나 보다. 아직 한창 젊어 보이는 스물 중반 정도의 매니저가 그에게 귓속말로 뭐라고 하자 오연훈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인상이 한껏 찌푸려졌다.
뭐라고 한소리를 하는 것 같았으나 시끄러운 소리에 파묻혀 잘 들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면서 다시 술잔을 꺾었다.
어느덧 시간이 2시가 되었다. 하나둘 취기가 오르기 시작하였고 슬슬 마무리되어가는 듯싶었다. 민후는 화장실에 가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슬슬 자신도 가야 할 시간이 되었고, 자리도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밖으로 나왔다가 민후는 오연훈의 매니저가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난처하다는 모습이었다.
“오연훈 선배님 매니저이죠? 무슨 일 있어요?”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매니저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캐물을 생각은 없었다. 단지, 오연훈이라는 개차반 같은 이의 밑에서 일하는 그가 얼마나 고생할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박카스라도 하나 있으면 주는 건데.’ 하고 그는 아쉬움을 가졌다.
“민후야, 슬슬 가야지?”
“그래야죠. 내일 스케줄도 있고.”
“여어, 김태곤이! 자라나는 우리 새싹.”
매니저의 이름이 태곤인 듯싶었다. 정수가 빙긋 웃으며 그의 볼을 어루만졌다. 귀염상의 얼굴이었고, 피부가 애기 피부처럼 좋은 이었다. 그는 쭈욱 늘어나는 볼에 ‘으으’ 하더니 손을 놓자 귀엽게 웃어 보였다.
“넌 안 들어가냐? 시간도 좀 되고 했는데.”
“그게…… 들어가긴 해야 하는데. 에휴, 아니에요.”
“얼굴이 반쪽이네. 하긴, 무슨 고생이냐, 니가.”
정수가 배우들이 있는 곳을 보았다. 연훈을 겨냥한 눈짓인 것 같았다. 배우들 사이에서도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지만, 매니저들 사이에서도 오연훈이 성격이 좋지 않다는 말이 많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그저 넘겼다. 정수는 밴에 시동을 걸어놓고 기다리겠다고 먼저 나섰다. 화장실에 다녀왔던 민후도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오연훈은 없었다.
“연훈이는 어디 갔데?”
“글쎄. 매니저랑 어디 가던데. 알아서 들어가겠지.”
다른 배우들은 그렇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매니저와 함께 갔으니 걱정할 필요는 거의 없는 것이다. 민후도 그러려니 하고 가게 앞에서 그들과 인사를 꾸벅하여 보였다.
“민후, 주차장에 차 받쳐 놨어?”
“예. 전 조금 일찍 와서요.”
다른 배우들은 가게와 조금 먼 곳에 주차해 놨다. 아무래도 시간대가 한창 붐빌 때였고, 술 가게 자체가 장사가 무척 잘되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0시쯤에 왔을 때도 민후가 주차할 곳 빼고는 없었고, 평소 일찍 오는 성격 탓에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조심히 들어가라.”
“예, 들어가세요.”
인사를 해 보인 민후는 주차장으로 향하였다.
자신이 타고 온 밴이 주차된 곳으로 이동하려던 민후는 멈칫했다.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오연훈과 그 매니저인 김태곤. 그리고 그 자리에 의외로 정수가 껴있었다.
민후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정수가 왜 껴있나 싶었다. 그런데 상황이 이상한 것 같았다. 오연훈은 당장이라도 정수의 멱살을 쥐어 잡고 한 대 때릴 기세였다.
사태가 이상한 것을 알고는 민후는 서둘러 앞쪽으로 다가섰다. 그들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들도 주위를 의식하고 있다.
“이봐, 매니저 양반, 가던 길 가라고. 짜증 나니까.”
“지금 저 치려고 하셨습니까? 한 대 치십시오, 예? 쳐볼 테면 치십시오. 내일 기사에 대문짝만하게 ‘톱배우 오연훈, 강민후 매니저 폭행’이라고 1면 장식하게 해줄 테니.”
“이 씨발! 매니저 새끼가 앞뒤 못 가리고.”
다가설수록 그들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상황이 이상했다. 정수는 평소에 결코 저럴 사람이 아니었다. 하물며 ‘기사’를 운운하면서 누군가를 위협할 이도 아니다.
몇 년간 함께하였던 민후이니 그것은 보장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낀 김태곤이라는 매니저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형, 전 괜찮으니…….”
“이런 멍청한 놈아, 뭐가 괜찮아. 넌 맞고 사는 게 좋아?”
“보자 보자 하니까, 진짜.”
오연훈이 정수에게 손을 뻗었다. 머리채라도 쥐어 잡을 모양새였다. 어느새 다가온 민후가 정수의 앞을 가로막았다. 정수의 말 한마디에 민후는 사태를 이해했다.
‘맞고 사는 게 좋아?’라는 말. 이것 때문이다. 아마도 어떤 식으로일지는 모르나 오연훈이 김태곤을 때리는 장면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후배인 매니저가 아무리 톱배우라지만 맞고 산다는 것에 정수는 참을 수가 없었을 것이고. 그것은 민후가 보았어도 나섰을 것이다.
“그만 하세요, 선배님.”
민후가 정수에게 뻗어오려는 손 바로 앞으로 나서 가로막았다. 오연훈은 민후의 등장에 다소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야, 이 새끼야! 매니저 교육 똑바로 안 해?”
“저보다 형이십니다. 또 옳고 그름을 확실히 아시는 분이기도 하고요.”
되려 민후에게 욕설을 하는 그다. 정수는 황당하다는 듯이 양 팔짱을 끼고 그를 노려보았고 오연훈은 콧방귀를 뀌었다.
“얻다 대고 선배한테 그렇게 말하라고 배웠지? 요즘 나간다는 애들은 그렇게 싹수를 밥…….”
그는 검지를 뻗어서 민후의 이마를 치려 하였다. 민후는 그 손을 팔을 이용해서 내리게 하였다. 그가 ‘어쭈?’ 하는 표정이다.
배우 계는 좁았다. 특히나 이름 있는 배우들 사이에서는 더욱 그러하였다. 그 때문에 선후배가 확실한 것이고, 아무리 자신보다 그 인지도가 낮은 배우라고 할지라도 막대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행했다가는 언젠가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많은 이들이 멀리하게 되고, 관계자들조차도 외면하게 될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번 상황은 아니었다. 자신들 쪽은 크게 잘못한 것이 없었다. 정수의 난입? 분명 남의 일에 낀 것일 수도 있으나 폭행하는 장면을 보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덧붙여서 민후의 경우도 잘못이 없는 상황이기에 오연훈이라는 배우에게 ‘이 새끼야, 저 새끼야’ 들을 필요도 그의 신체접촉에 쉽사리 응할 필요도 없었다.
“그만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이 이상은 용납하지 못합니다, 선배님.”
민후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의 주먹이 날아온다면? 피할 것이다. 계속 피할 것이다. 실상 민후가 보았을 때 지금 그는 주먹을 휘두른다고 한들 자신의 털끝도 건드리지 못한다.
일단 그는 거의 만취 상태에 가까웠으며 민후는 웬만한 이들보다 빠른 몸놀림을 갖추고 있었다. 덧붙여서 그런데도 지속된다면 자신은 주먹보다는 법적으로 나가도록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오연훈은 끝이다.
“아이, 혀, 형님! 그, 그만하고 가요. 예?”
“이, 이 씨발 새끼가…… 내가 장난친 건데 저 새끼들이…….”
보다 못한 태곤이 연훈의 팔을 잡아끌면서 말했다.
“맞아요. 저, 저희 형님이 원래 장난을 크게 치세요.”
“야, 태곤아, 무슨 장난으로 정강이를 구두 신은 발로 걷어차? 그리고 목을 때려? 니 목 부은 건 뭐로 설명할…… 하아…….”
태곤은 매니저로서, 또 한편으로는 월급을 받는 직원으로서 이 일을 무마시키고 싶었다. 맞는다는 것이 서러웠지만 이러다가는 자신이 맡은 배우도, 본인도 크게 망하고 말 것이다. 차라리 자신이 욕을 먹고 하는 것이 나았다.
정수는 한소리 하려다가 태곤의 표정을 읽고는 한숨을 쉬었다. 그저 후배 녀석이 안타까웠다. ‘어쩌다 저런 녀석을…….’ 하면서 그저 애꿎은 한숨만 쉬었다.
오연훈도 만취 상태이지만 머리는 돌아갔다. 정말 민후의 몸에 생채기라도 내는 순간 자신은 끝이다. 덧붙여서 주차장에 CCTV도 있을 것이다. 일이 불거져서 CCTV가 드러난다면 매니저를 때리던 모습, 또 민후를 폭행하는 모습이 만천하에 알려져 자신은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될 것이다.
그는 자존심이 강하다. 그러나 이번 일은 자신이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고 꼬리를 말았다.
“다음에 만나면 조심해라. 눈깔 내리고 다니고.”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못 이기는 척 태곤의 손에 이끌려 주차장을 벗어났다. 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주시하던 민후다. 그들이 사라지고 작은 숨을 뱉어냈다.
“더러워서 진짜. 씨발…….”
평소 욕을 잘 하지 않는 정수지만 이 참담한 현실에 욕을 뱉었다. 매니저는 그래도 자신이 맡은 배우랍시고 감싼다. 그 모습을 선배인 정수가 보는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고 기분 더러운 일임이 사실이다.
민후는 아무 말 없이 밴에 올랐다. 갑자기 피곤이 몰려왔다. 곧 운전석에 탑승한 정수가 한숨을 뱉었다.
“미안하다, 민후야. 근데 어쩔 수…….”
“형, 잘했어요. 아니, 저게 사람 새끼야? 같이 일하는 가족을 때리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
간혹 연예계 사이에서 어떠한 연예인이 매니저를 폭행했다는 루머가 돌기도 하고, 과거 한 번 그것이 기사화되어서 뜨겁게 달궈졌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수많은 매니저가 암묵적으로 발설하지 않고 있었으며 언급했듯이 매니저를 자신의 종 부리듯이 하는 이들도 꽤 있는 실정이었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귀찮다는 이유로. 또 월급을 자신이 준다는 식으로 그들을 ‘동료’라는 개념이 아닌 ‘일꾼’으로 보는 것이다.
민후도 ‘새끼’라는 단어는 잘 쓰지 않는 편이기에 그의 말에 정수가 한숨을 쉬면서 픽했다.
“그래도 난 너 같은 배우 만난 게 다행이다. 아니지, 내가 만약 저런 새끼 매니저였으면 나한테 매장당했어, 매장.”
정수라면 충분히 그럴 힘이 있을 것이다. 매니저는 어쩌면 배우의 밑일지도 모르는 존재다. 그러나 배우의 위에 선 매니저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들이 배우가 성장하고 유명세를 타니 말이다.
“이번 일 그냥 넘어가면 안 되겠죠? 태곤 씨를 위해서라도.”
“그럼 어떻게 하게?”
그의 말에 정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돌아보았다. 무척 민감한 사항이었다. 어떠한 기자에게 발설한다면 추측을 제공해낸 이를 통해서 소속사에서 제재를 가하고 법적인 조치를 준비할 것이었으며, 한순간에 배우 한 사람의 인격을 망치게 되는 일일 수도 있었다. 그 때문에 쉽게 건드릴 수는 없는 사항임이 사실이다.
“대표님한테 일러야죠.”
민후는 피식 웃었다. 실제로 함태웅 대표에게 앞서 가장 먼저 말하는 것이 바른 판단이라고 믿는 민후였다.
그 일이 있은 후 태곤으로부터 정수에게 문자가 왔었다고 한다. 사건 정황에 관해서 물어보니 스케줄이 있어서 계속 가자고 보채자 성을 내면서 때렸다고 한다.
그도 쌓인 것이 많은 듯 욕을 한껏 뱉어냈지만, 한편으로는 그저 눈감아 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수는 그러지는 못하겠다고 밝혔고, 태곤으로서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으나 차분히 그를 진정시키며 큰일은 없을 거라고 해주었다.
민후는 일어나자마자 소속사를 찾았다. 대표실로 들어온 그는 함태웅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제의 일에 대한 언급이었고, 모든 이야기가 끝나자 태웅이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이런 미친놈을 봤나. 인기 좀 얻으면 뵈는 게 없나. 어디서…….’ 하는 소리를 냈다.
한 소속사를 이끄는 대표로서 그도 용납할 수 없었다. 배우든, 매니저든 결국 한솥밥을 먹는 이들이었다. 그런데 배우가 조금 더 우위에 있다고 해서 짓밟는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한테 가장 먼저 와서 말해 준 거 정말 잘했다, 민후야.”
함태웅은 흥분을 조금 가라앉히고는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식어버린 커피로 입술을 적셨다. 확실히 너무나도 민감한 사항이었기 때문에 민후가 자신에게 가장 먼저 와서 말해 준 것은 무척 고맙고 잘한 일이라 생각했다.
“오연훈이 푸른 소속이던가?”
“예.”
“전화 좀 해봐야겠네.”
그는 수화기를 집어 들어서 전화를 걸었다. ‘황제’라는 소속사를 이끄는 함태웅은 연예계에서는 그 힘이 대단한 편이었다. 알기로 푸른 소속사의 대표와도 형 동생 하는 사이인 걸로 알고 있었다.
“응…… 현우야, 너희 소속사에 오연훈이라는 배우 있지.”
그는 차분히 이야기를 시작하며 민후에게 들었던 일에 관해서 설명해 주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가 태웅이 헛 웃으며 민후를 돌아보았다. ‘그놈이 그렇게 건방져?’라고 그는 말했다.
아마도 푸른 소속사 대표도 오연훈의 그 성격 때문에 골머리를 썩이는 듯싶었다. 그러나 현재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배우였기에 푸른에서도 주의를 시킬 뿐, 크게 어떻게 조취를 취하지 못했던 듯싶다.
곧 수화기를 내려놓은 그가 다시 소파에 앉았다.
“매니저 바꾸고. 단속 철저히 하겠단다. 한 번만 더 이런 일 있으면 계약 위반이든 뭐든 잡아서 내보낸다더라. 그 오연훈이라는 놈 하는 짓 보면 꼬투리 잡힐 게 한두 가지가 아닐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요렇게 생각한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보였다. 민후가 의아한 표정이다.
“3년. 3년 내로 일 터뜨린다.”
곧 그의 설명에 민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3년 내로 그 인기가 현저히 떨어지고 묻힐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함태웅은 오랜 시간 소속사 대표를 맡았던 인물이다. 오연훈이 지금은 한창 뜨고 있고, 시청자들에게는 좋은 이미지로 보이겠지만 이런 식으로라면 결국 그의 행동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하물며 벌써 안 좋은 이야기가 돌고 있으니 그 인기가 좋다고 한들, 차츰 관계자들이 그를 찾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고 민후는 확실히 함태웅에게 먼저 이 사실을 알리길 잘했다고 자부했다. 일단 매니저는 교체되고, 이번 일을 푸른 소속사도 가볍게 넘기지는 못할 것이다.
일단 다른 소속사의 유명한 배우에게 욕설하고, 신체적 접촉을 하려 했으며, 매니저를 폭행하는 장면을 다른 이들이 목격하게 된 상황이다. 만약 누군가 하나라도 발언을 한다면 소속사 측은 상당히 난처하게 될 것이었다.
민후가 이 정도로 일을 마무리 짓는 이유는 그 일에 자신이 연루된다면 자신도 적잖이 피해를 보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평소 두 사람이 ‘마찰’을 일으켰다고 허위 기사를 보도할 것이고, 더 크게 부풀려서는 ‘배우 강민후가 선배 배우인 오연훈에게 예의 없는 행동을 한 것으로 드러나.’라는 말도 안 되는 기사가 작성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 선에서도 오연훈은 크게 한 방 먹는 셈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내 욕 좀 실컷 하겠는데?’
푸른 소속사 대표에게 크게 한 소리 듣고 나면 오연훈은 ‘이 새끼가 일렀어?’라고 생각하면서 민후를 더욱 미워하고 곱씹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가 싸움을 건다면 피할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 수 있었다. 분명 그는 선배였고 현재는 민후보다 인기가 조금 더 많은 편이다.
그러나 민후는 그런 그를 제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말 그대로, 그는 사람을 잘못 건드린 것이다.
오연훈은 민후의 예상대로 푸른 소속사 대표실에서 현우에게 크게 혼날 수밖에 없었다. 푸른 소속사의 대표인 강현우는 그의 오만방자함을 꺾어야 한다고 여겼다. 그 때문에 더욱더 그를 강압하듯이 하였다.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있으면 정말 우리 측도 너 봐줄 수 없어. 그리고 쪽팔리지도 않냐? 너보다 몇 살이나 어린 애한테. 그리고 매니저 폭행? 너 나한테 한번 맞아볼래?”
“무슨 또 말을 그렇게까지 하십니까, 대표님.”
“미쳤어!? 네가 한 짓은 생각 안 할 거야!? 만약 강민후가 꼭지 돌아서 그대로 언론에 보도됐으면 넌 끝이었다고. 그리고 우리 소속사가 보는 피해는 어떻게 했을 건데!?”
강현우 대표도 화가 단단히 날 수밖에 없었다. 한 소속사의 이미지가 걸린 일이기도 했다. 정말 강민후라는 배우가 이성적으로 판단하였기에 자신 쪽에서 일을 끝낼 수 있지 아니었으면 감당조차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뻔뻔하게 토를 달자 그로서는 더욱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오연훈은 꼬리를 말았다. 어떻게 보아도 자신의 잘못이 확실하였다.
계속 생각 없이 행동하다가는 자신도 큰일이 날 수도 있었다. 그를 보면서 강현우 대표가 한숨을 쉬었다.
“나가 봐. 앞으로 잘해라, 응?”
“예.”
연훈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면서도 심기가 좋지 않다는 듯이 문을 거칠게 ‘꽝!’ 하고 닫았다.
“저, 저 씨발 새끼가.”
뒤에서 강현우 대표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소속사 직원들은 조용한 분위기에서 그를 곁눈질로 살피고 있었다. 정말 그는 소속사에서도 어찌 처리해야 할 줄 모르는 인물이었다.
“오늘부터 오연훈 씨 매니저를 맡게 된 신민규라고 합니다.”
문 앞에는 새로운 얼굴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산처럼 거대한 덩치에 험상궂게 강한 이미지였다. 또 매니저로서 상당히 일가견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가 대표실을 돌아보면서 실소를 흘렸다.
‘한번 제대로 강압해보겠다? 마음대로 하슈.’
자신이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이를 배치를 해 놨다. 그러나 그는 콧방귀를 뀌었다.
“따라와요.”
그는 매니저를 이끌고 밴으로 향했다. 밴에 오르자마자 그는 몸부림을 쳤다.
“씨발! 아오! 개 씨발! 강민후, 이 씨발 새끼!”
그는 시트에 발길질과 주먹질을 쉴 새 없이 날렸다. 그는 괴성을 터뜨리면서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밴에 올랐던 신민규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뭘 쳐다봐요!?”
“제가 들어보니 강민후 씨가 그래도 좋게좋게 나온 것으로 아는…….”
“뭐요? 그럼 나는 잘못했고, 그 자식은 성인군자다?”
“아닙니다.”
오연훈은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더 이상 매니저인 신민규에게 성을 내지 않았다. 단지 속으로 이빨을 빠드득 갈았다.
강민후가 조용하게 있을 거라는 자신의 예상과는 달랐다. 물론 그는 언론화시키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공격하고 강압할 수 있는 이유를 만든 것과 다름이 없었다.
‘이 건방진 새끼. 한번 해보자, 이거지?’
그는 오늘부터 강민후라는 배우와 천적이 되기로 하였다. 자신이 독기를 품으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줄 것이다. 강민후라는 배우가 죄송하다고 무릎 꿇고 사과하게 하리라 다짐했다.
“태곤이 그 녀석이 맞을 짓 하는 녀석은 아닌데…….”
그러면서도 그 모습이 한심했던 듯 신민규 매니저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그 작은 목소리가 들린 것인지 오연훈이 ‘운전이나 합시다.’ 하고 으르렁거렸다.
앞으로 신민규 매니저와 오연훈 사이에 일어날 일들이 불 보듯 뻔한 것 같았다. 아마도 수차례 마찰을 일으키게 되지 않을까 싶다.
* * *
푹푹 찌는 날씨였다. 오늘의 최고기온만 하더라도 32도 정도는 된다고 하니 촬영장 내의 불쾌지수가 급격하게 상승할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서 한참 액션 장면 촬영 중에 있었고, 그것이 요 근래에 반복되고 있었기 때문에 스태프들도 배우들도 매서운 더위와 싸움을 하느라 지쳐 있을 수밖에 없었다.
현재 찍을 컷은 불법 체류자들이 모여서 일을 하는 공장에서의 신이었다. 의형제다라는 영화에서의 대표적인 액션 장면이 들어가게 되고 두 사람 사이가 급격하게 가까워지는 계기를 만들기도 하는 신이었다.
김한규가 하는 일은 국제결혼을 하였던 여성들이 도망을 가면 잡아다 주고 사례금을 받는 일이었다. 그러나 도망친 이들 대부분이 남편의 ‘폭행, 폭언’에 견디지 못해 도망친 이들이다.
그 일을 함께하면서도 지원은 항상 마땅치 않아 하는 모습이 있었다.
이미 그 합은 충분히 연습실에서 맞춰본 바가 있었다. 덧붙여서 이곳 촬영장에서도 몇 번 맞춰봤다. 모든 준비가 끝이 나고 카메라들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베트남 여성의 손을 강압적으로 끌고 가는 한규를 보면서 지원은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그는 남파공작원이었지만 한규보다도 더욱 사람 같은 냄새가 나는 간첩이었다.
그가 한규를 온몸으로 밀쳤다.
“그만 좀 하십쇼! 사장님은 사람들이 전부 돈으로 보입니까!?”
“이 새끼가……!?”
바닥에 쓰러졌던 한규는 성이 난 것인지 벌떡 몸을 일으켜서 그의 멱살을 잡으며 안면을 한 대 때렸다. 결국, 두 사람이 마찰을 일으킴으로써 바닥에 구르고 주먹질을 하기 시작하였다.
빵-! 빵빵!
두 사람이 치열하게 싸움을 하고 있을 때, 요란한 클락션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타임홍이었다. 불법 체류자들의 우두머리이며, 저번에 한규를 위험에 빠트렸던 인물이기도 하다.
우르르 차에서 각종 연장을 챙긴 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원과 한규는 싸움을 멈추고 그들을 뒤로하고 몸을 돌렸다. 지원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일은 10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하다면서요.”
“그때 확실하게 못 끝냈으니까 그렇지.”
“괜찮겠어요?”
언제 싸웠냐는 듯이 두 사람은 태연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지원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한규를 보았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두 사람이 몸을 돌렸다. 타임홍이 손짓을 함으로써 공격 신호를 보냈다. 두 사람도 달려오는 열댓 명의 인원들을 향해 뛰쳐나간다.
후웅-
퍽!
“윽!”
“컥!”
뛰쳐나간 두 사람은 마주 오는 이들부터 가볍게 처리했다. 지원은 신속하고 빨랐고, 한규는 엉성한 듯하면서도 하나둘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규는 힘에 부친 듯 보였고 그럴 때마다 지원이 지원사격을 함으로써 그를 도왔다. 어느덧 지원이 타임홍의 부하들과 대면함으로써 그들을 하나둘 빠르게 제치고 있었다. 한규는 우두머리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타임홍과 격투를 벌인다. 그의 발길질에 넘어진 그는 자기의 주요부위를 거세게 잡는다.
“으, 끄아악!”
주요부위가 잡힌 타임홍은 괴성을 지르면서 안간힘을 쓴다. 그 틈을 타서 그의 팔을 뒤로 꺾으며 한규가 수갑을 꺼냈다가 한숨을 쉰다. 불현듯 머릿속에 지원의 말이 스친다.
‘사장님은 사람들이 전부 돈으로 보입니까!?’
이들은 불법 체류자들이다.
덧붙여서 타임홍은 이들을 이끄는 우두머리이다. 분명 그들은 법을 어겼고 추방 받아 마땅하나, 한 사람으로 생각하면 너무한 일이기도 할 것 같았다.
그는 허탈한 듯 그를 놔줬다.
“가, 가라고, 이 새끼야!”
“으응? 으럇!”
“크윽!”
기껏 선심 쓰듯 놔준 한규를 발로 뻥 차버리고 부하들의 부축을 받으면서 도망을 치는 타임홍이다.
“괜찮아요?”
모든 상황이 정리된 것 같아지자 지원이 다가서 묻는다. 넋이 빠진 표정의 그는 그를 올려다본다.
“안 괜찮아.”
“흐아! 덥다, 더워.”
누워 있는 송석우를 손을 뻗어서 일으켜 세우고 민후는 조심스럽게 먼지를 털어주었다. 한껏 액션 동작을 펼쳤더니 땀이 비가 오듯이 쏟아지고 있었다.
한편에 마련된 파라솔 밑 그늘에 들어가서 시원한 물을 한 잔 들이켜자 차를 타고 도망가듯이 타임홍 역할을 하였던 박창석이 자신의 주요부위를 잡으면서 인상을 찌푸리며 달려왔다.
“아이씨! 형님, 아무리 그래도 진짜로 잡으면 어떻게 합니까.”
“하하하, 어때, 좀 괜찮나? 아니, 난 리얼하게 하려고 집중하고 있었지.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 버렸네? 이 감독, 어때? 이번에 창석이 거시기 좀 잡을 때 화면 기가 막히게 나오지 않았어?”
창석은 쓰라려 죽겠다는 표정이다. 아까 전 주요부위를 잡는 신에서 실제로 세게 잡았나 보다. 그러나 송석우는 털털하게 웃으며 이 감독에게 물었다.
“아유, 이번 신 정말 리얼하던데요? 특히 창석 씨 표정이.”
“아휴, 아파라. 에이씨, 정말! 가뜩이나 쓸 일도 없어서 죽겠는데.”
“인마, 쓸 일 없으니까 이런 데라도 써야지. 하하하.”
창석은 자신의 바지의 지퍼를 끌러서 속 안을 들여다보면서 인상을 구겼다. 석우는 또 한 번 농담을 던졌다.
“배우분들, 날씨도 덥고 하니까 차에서 조금 쉬다가 오시죠. 어차피 이 부분은 거의 끝났고 정리 마치고 차에 오르는 신만 촬영하면 되니까요.”
이 감독의 말에 송석우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일단 살인적인 더위인지라 액션 신을 찍느라 땀을 흠뻑 흘린 배우들이 걱정되는 듯싶었다.
민후도 곧 자신의 밴에 올랐다. 밴에 오르자마자 후덥지근한 느낌이 강했고, 차츰 에어컨이 시원한 바람을 뽐내기 시작했다. 민후는 자신의 옷깃을 손으로 펄럭거렸다.
“휘유, 진짜 덥네.”
“뭐 시원한 음료수라도 가져다줄까?”
“괜찮아요.”
정수는 그가 흘리는 땀을 보면서 수건을 건넸다. 그러나 민후는 번거롭게 하고 싶진 않았기에 옆에 놓인 물을 얼굴에 가져가 열을 조금 식혔다.
“참, 태곤이한테 문자 왔다. 큭! 이 녀석, 우리 쪽이 조치 취한다니까 기겁할 땐 언제고 지금은 아주 그냥 살판났더라.”
그 일이 있고 난 뒤 꽤 된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전에 또 한 번 참석했던 용호상박 모임에서는 오연훈이 참석하지 않았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꽤 그의 사나운 눈초리를 받을 것 같기는 하였으나 오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민후는 그가 건네는 휴대폰의 문자 내용을 확인했다.
-지금 맡고 있는 분 완전 천사예요, 천사. 세상에 저 먹으라고 아이스크림도 사줬어요. 크- 오연훈, 걔는 꼭 뭐 사오래도 제 것만 쏙 사오라고 했는데. 아무튼 감사해요. 일도 나쁜 쪽으로 안 가고 저도 이제 매니저다운 대접 받는 기분이에요.^_^
문자 메시지를 확인한 민후가 픽 웃었다.
“오연훈은 요즘 어떻대요?”
“그 새끼? 뭐 전화해서 물어보니까 태곤이가 그러던데? 얼마 전에 매니저 하고 멱살 잡고 싸울 뻔했다고. 근데 또 소속사는 얼마나 황당하겠냐. 바꿔준 지 얼마나 됐다고. 근데 이야기 들어보니까 이번에 그 사람 맡은 매니저도 한 성깔 하더라고. 법적으로 나간다 하면서 노발대발해대니까 그 콧대 높은 오연훈도 당황한 거지. ‘톱배우 오연훈, 매니저 폭행’이라고 기사 한 번 떠봐. 또 그렇게 되면 태곤이 때렸던 것도 드러날걸? 결국, 돈 크게 주고 합의 보고. 이젠 쥐 죽은 듯이 성깔 죽이고 있다더라.”
“푸하핫! 하이구, 그러니까 사람이 왜 그렇게 성질머리가 더러운지. 쯔쯧.”
민후는 혀를 차 줬다. 돈을 크게 물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더러운 성질머리의 천하의 오연훈이 매니저에게 잡혀 산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한심했다. 애초에 함께 일하는 거 기분 좋게 웃으면서 일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3년도 긴 것 같네. 한 2년이면 묻히겠구먼.’
자신과의 마찰이 얼마나 되었다고 또 한 건 크게 하셨다. 물론 지금은 쥐 죽은 듯이 지내고 있다지만 언제 다시 다혈질 성격이 폭발할지 몰랐다.
2년 내면 그는 스크린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질 것 같았다. 빠르게 크게 한 방 터뜨리면 1년 내에도 매장당할 가능성이 컸다. 민후는 관심을 끄자고 생각했다.
스스로 말아먹는 길을 택한 녀석. 상대할 가치를 자신도 잃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