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송석우와 함께 액션 연습을 하다
이해를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왔다 갔다 하였다. 무엇이 괜찮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곧 함태웅 대표가 민후의 앞으로 무언가를 던져주었다.
그곳에는 ‘의형제다’라고 적혀져 있었다.
“한번 살펴봐.”
“예.”
함태웅의 말에 민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시나리오의 시놉시스 부분을 먼저 확인하였다. 일단 모두 훑어보기에는 이 안에서 무리가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남파공작원 역할인 서지원과 국정원 요원 출신인 김한규. 두 사람이 우연히 함께 일하면서 그려 나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였다.
감독은 재작년에 ‘영화는 영화’라는 작품으로 흥행을 거둬들여서 부쩍 뜨고 있는 감독인 ‘이훈’이라는 감독이었다.
“어때?”
“재밌을 것 같아요.”
“그거 말고, 송석우 선배님이랑 한번 해보는 거.”
함태웅 대표의 이어진 말에 민후는 다소 놀란 표정이 되었다.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으나 확실시되는 말과도 같았다. 시나리오로 읽어보았을 때 송석우가 주연이고, 자신이 그 부분을 받쳐주는 영화는 아니었다.
두 배우가 당당히 주연으로서 연기해야 하는 작품이었다.
민후로서는 환영이었다. 물론 이제까지의 시나리오들을 계속 검토하고 있었지만 메리트 있는 작품은 없었다. 덧붙여서 이 영화는 액션 영화였다.
현재까지 민후가 해보지 못한 새로운 장르의 도전이었다. 실제로 민후는 액션 영화의 섭외를 준비 중이기도 하였다. 또 얼마 전에는 도원빈이 ‘앞집 아저씨’라는 작품에 캐스팅 되었고 자신도 노리려고 했었으나 나이가 너무 맞지 않아 포기했었다.
하물며 송석우와 함께 진행하는 영화라면 흥행률은 어느 정도 보장이 된 상태였으며 그와의 촬영이 상당히 기대되었다.
송석우는 주로 인간적인 미를 영화에서 잘 표현하며 실제로도 가끔 보면 배우 같지는 않은 사람이다. 일반적인 아저씨라고 보는 것이 맞다고 해야 할까.
간혹 다혈질의 성격을 볼 수는 있으나 그의 심기만 건드리지 않으면 되는 것이었고, 평소에 주위 사람을 무척 잘 챙기는 것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참 잘생겼다. 그치, 함 대표?”
민후가 잠시 뜸을 들이자 송석우가 ‘같이하자-’는 듯 잘생겼다고 칭찬 하였다. 그가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으나 자신 쪽에서도 철저하게 시나리오를 검토해보아야 했다. 그것은 함태웅이나 송석우도 알고 있을 것이다.
“검토해보고 신중히 생각하겠습니다.”
“다른 젊은 애들 같았으면 내가 하자고 하면 번뜩 ‘하겠습니다, 선배님!’ 했을 텐데, 역시 틀려. 내가 안목이 남다르다니까.”
송석우나 함태웅이 그러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민후 왜 너하고 같이 작품 하고 싶은지 아냐?”
“글쎄요…….”
민후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자신도 굳이 이렇게 함께하고 싶다는 이유가 궁금하였다. 그러자 석우가 민후의 얼굴을 손등으로 어루만졌다.
“뽀송뽀송하네. 참 잘생겨서-”
그의 농담에 민후는 씨익 웃으면서 ‘감사합니다.’라고 하였다. 한편으로는 ‘어쭈? 송석우-’ 했다. 그가 민후의 어깨를 두들겼다. 실상 자신은 이미 이 영화를 하겠다고 확정 지은 상황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훈 감독은 지원 역할을 맡을 배우를 구하고 있었고, 송석우에게도 괜찮은 후배 있으면 소개해 달란 말을 하였다.
송석우는 그러겠다고 하였다. 그러던 중, 요즘 한창 뜨고 있는 민후에게 호감이 생겼다. 덧붙여서 소속사 내에서도 평판이 좋았으며 가장 그에게 흥미가 동한 이유는 그의 연기력 때문이었다.
잘생긴 얼굴로 배우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얼굴도 잘생겼거니와 연기력도 좋은 것 같았다. 때문에 함태웅 대표에게 그에 관해서 물으니 평소에 누구 칭찬은 죽어도 잘 안 하는 함대표가 의외로 민후의 칭찬을 늘어놓았다.
확실히 민후는 함태웅이 보았어도 칭찬받아 마땅한 인재였다. 그 때문에 더욱 흥미가 동했고, 그를 데려가자고 마음을 먹은 것이다.
“민후, 밥 먹었나.”
“아직입니다.”
“그럼 가자, 밥 먹으러. 태웅이 쏙 빼놓고.”
“서운합니다, 형님.”
“왜 내가 우리 민후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데 그 자리에 끼려고 해. 이 사람아, 짜장면이나 시켜 먹어-”
민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웅이 장난스럽게 말하자 송석우가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대표실 내부의 냉장고에 붙어 있는 중국집 스티커를 가리켰다.
두 사람이 함께 밖으로 나서려는데, 함 대표가 비서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짜장면 곱빼기로 하나만 시켜. 단무지 많이.”
그 목소리를 들은 민후는 헛웃음 지었다.
석우는 민후를 골목길 쪽으로 인도했다. 그를 따라간 민후는 후진 곳으로 가자 고개를 갸웃하였다. 그리고 곧 그가 들어간 곳은 무척이나 허름한 국밥집이었다. 그 가게의 규모 또한 무척 작았다. 손님도 한 테이블도 없었다. 물론 아직 점심시간 전인지라 그러려니 하는 생각을 하였다.
자리에 앉자 송석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따, 우리 이모 또 어디 갔나?”
그는 조금 목소리를 높여서 말했다. 그러자 안쪽에 있었던 노부인이 나왔다.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그녀는 석우를 보자마자 그의 등을 따악! 때렸다.
“왔냐, 이놈아. 요즘 좀 잘나간다고 발걸음이 뜸해-?”
그녀는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라고 불리는 석우에게 욕을 스스럼없이 했다. 민후는 당황한 기색을 보였으나 석우는 헛웃음 지었다.
“이모, 나도 이제 낼모레면 쉰이오. 근데 이놈이 뭐요, 이놈이.”
“그래 봤자 나한테는 애기다, 애기.”
“국밥 두 그릇만요.”
“쪼매만 기다리라.”
그는 능청스럽게 국밥 두 그릇을 시켰다. 두 사람의 대화하는 것을 들어보니 상당히 오래된 친분인 것 같았다. 석우가 민후를 보고는 피식 웃었다.
“왜, 랍스타나 뭐 레스토랑 같은 그런 밥이라도 사줄 줄 알았어?”
“아닙니다.”
민후는 빙긋 웃었다. 그런 건 오히려 자신이 손사래 쳤을 것이다. 자신도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일단 사람이 없으므로 좋았고, 오래된 건물에 인테리어는 칙칙하였지만 그것이 이 가게의 매력일 것이다.
“한국인은 밥을 먹어야 해. 내가 여기 온 지 20년 됐다. 무명 시절에는 그냥 먹고 가고 그랬어.”
그는 장난스레 웃었다. 배고프던 시절. 그를 이곳에서 지탱시켜주었다는 말 같았다. 그만의 추억인 것 같았다. 민후는 빙긋 웃었다.
곧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이 두 그릇 나왔다. 민후는 국물을 떠먹어보았다. 진국이라는 말이 이 말일까. 여느 집들과는 다르게 깊은 맛이 났다.
식욕을 돋웠다.
그는 단숨에 밥을 말아서 먹기 시작했다. 어느덧 송석우도 이야기할 틈도 없이 국밥을 게 눈 감추듯이 비우고 있었다.
“하이구, 유명해지든 아니든 밥 먹는 건 어째 20년이 지나도 똑같이 그렇게 허겁지겁 먹냐.”
“우리 이모도 20년 지나도 말이 거친 건 여전하다니까. 음식 맛 좋은 것도 여전하고. 아직 정정해.”
“그럼 이놈아, 내가 이 장사 해서 애들 전부 대학 보내고, 지금도 내 앞가림은 내가 해.”
이모가 주문하지도 않은 피순대를 가져왔다. 송석우는 능청스럽게 그것을 집어 먹고는 히죽 웃었다. 민후도 피순대 위로 새우젓을 올려서 맛을 보았다.
“맛있냐?”
“예, 되게 맛있어요.”
“멀쩡하게 잘생겼네.”
“그럼 나는 멀쩡하게 못생겼나?”
“알면서 뭘 물어?”
“허이구.”
밥을 먹으면서도 이어지는 두 사람의 대화에 민후는 연신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어느덧 아주머니는 의자에 앉으시더니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송석우와 민후는 잠시 이번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송석우도 액션 관련한 영화는 거의 이번이 처음이다. 그 때문에 그도 새롭게 도전한다는 생각으로 임하려고 한다고 들었다.
민후도 아직 확정은 되지 않았으나 액션 영화이니만큼 혹독한 촬영을 예상했다.
식사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송석우는 이모님이 아직도 꾸벅꾸벅 졸고 있자 눈치를 살폈다. 그러고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모, 계산하고 갑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금고 버튼 하나를 눌러서 열었다. 무척 익숙했다. 여전히 아주머님은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민후는 천하의 송석우가 나쁜 짓이라도 하려는가? 하였다.
그러나 되레 그는 지갑에 있는 돈 전부를 꺼내어서 금고에 교묘하게 집어넣었다.
“빨리 나와, 자식아.”
그러고는 들킬세라 그를 바쁘게 이끌었다. 밖으로 나온 그는 담배 하나를 물며 불을 붙였다.
“사람은 은혜를 입었으면 베풀 줄 알아야 해. 무슨 말인지 알지? 자고로 그런 거 모르는 자식들은 내가 아끼는 녀석들이 없어. 저 가게, 솔직히 지금 힘들어. 근데 난 저 가게가 사라지는 꼴은 못 보겠다.”
그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담배 연기를 후, 하고 불었다. 민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이 그만의 인간적인 매력일 것이다.
“그리고 너를 내가 끼워준 만큼 너도 은혜를 알아야 한다.”
그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민후는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담배 한 개비를 다 피우고 막 바닥에 던져 끄려는 찰나였다. 아주머니가 밖으로 나왔다.
“이, 이 씨불 놈이 또, 또!”
“튀어!”
“야이누마! 돈 가져가!”
송석우가 후다닥 골목을 나서는 쪽으로 뛰었다. 민후도 정작 덩달아 뛸 수밖에 없었다. 연세가 있으신 아주머님은 당연하게도 조금 쫓아오는 듯하시다가 외치신다.
“조심히 들어가, 이누마!”
“이모, 빨리 들어가.”
그를 배웅하는 그녀의 모습이 마치 아들을 대하는 것 같았다. 송석우가 골목을 빠져나오고 밴에 오르기 전 민후에게 말했다.
“네가 작품 나하고 하는 거로 나는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예, 선배님.”
“조심히 들어가고. 다음번에는 네가 한 번 사라.”
“예.”
민후는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그리고 곧 멀지 않은 곳에 주차된 자신의 밴에 올랐다. 정수는 흥분에 찬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송석우와 민후가 함께 작품을 하게 되다니, 그것도 석우의 권유로 말이다. 그도 상당히 기쁜 듯싶다.
“무슨 이야기 했냐?”
“그냥요. 사람 사는 이야기……?”
민후는 피식하고 웃었다. 영화 이야기를 하기도 하였고, 실상 그냥 밥을 먹는 자리였지만 그가 들은 이야기라면 사람 사는 이야기 정도이지 않은가 싶다.
인간적인 배우 송석우, 그래서 그가 사랑을 받을 것이다.
‘의형제다’ 영화의 시나리오를 모두 검토해보았다.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서지원은 언급했듯이 남파공작원이다. 김한규는 그들을 쫓는 국정원의 인물.
지원은 통칭 ‘그림자’라고 불리는 당의 이와 접선하게 되고 그를 도와 사람을 죽이는 일에 동참한다. 그러던 중 불시의 국정원 이들의 현장습격이 그림자는 지원이 배신을 했다고 생각한다.
총격전 끝에 그림자는 도망가고 지원도 몸을 숨긴다. 결국, 배신을 했다고 판단된 지원은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총격전 끝에 수많은 부하를 잃은 김한규는 파면 당한다.
두 사람 모두 버림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것은 시골이었고,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으나 조사를 하기 위해서 일을 동행하며 자신들도 모르게 서로에게 우정을 느끼고 진심을 느끼게 되며 결국 ‘의형제’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사람들이 된다는 의미였다.
일단 민후와 송석우. 두 사람 모두 액션이 상당히 필요했다. 현재 민후는 이미 차기작으로 ‘의형제다’라는 영화로 확정 짓고 계약을 한 상황이었다.
역시나 트레이닝은 필요했다. 기초적인 준비 기간은 한 달이었다. 다른 여느 영화와는 조금 달랐다. 그 한 달 동안은 일단 기본적인 체력을 익히고 서로 배역에 대한 공부와 시나리오를 외우는 기간이라고 할 수 있었으며, 액션 신은 그 틀을 한 달 동안 집중적으로 배우며 틀을 배우는 것이 끝나면 촬영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촬영이 시작되면 그때그때 촬영될 분량에 액션을 확실하게 맞춰보게 될 것이다.
한 달 동안 민후는 쉴 새 없이 바빴다. 그는 인터넷에 수시로 ‘북한’이라고 쳐서 검색을 해보기도 하고, 그들의 말투를 흉내 내어 보기도 하였다.
덧붙여서 체력 관리에 더욱더 큰 박차를 가하였다. 지원은 조금 호리호리하여야 했다. 남파공작원 지원. 그는 엘리트 간첩이다. 덧붙여서 빠른 몸놀림을 보일 수 있는 캐릭터가 필요했고 다행히도 민후는 그와 정확히 부합했다.
골격은 크지만 호리호리한 몸매를 소유한 그였기 때문이다. 한 달 동안 그는 시나리오조차도 완전히 외웠고, 이미 머릿속은 지원이 되고 있었다.
간첩이나 가족을 사랑하는 이. 간첩 같지만 결국 한 사람의 인간적인 내면을 가지고 있는 모습, 서지원은 그러한 역할이었고, 그것에 녹아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한 달이라는 기간이 지났을 때, 민후는 송석우와 함께 스턴트맨들이 있는 그들의 연습실에서 만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함께 무술 감독실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오자 무술 감독이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이렇게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송석우 씨.”
“뭘 또 저 같은 사람 가지고 영광이랍니까. 하하, 내가 좀 잘생기긴 했지?”
그는 능청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무술 감독은 전문석이라는 분이셨다. 수많은 액션 영화에서 무술 감독을 담당하신 경력이 있으신 분으로 수많은 액션 영화 촬영장에선 전문석 무술 감독을 찾기 마련이었다.
때문인지 그는 민후와 석우를 보았다고 해서 크게 놀라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는 앉을 것을 권유했다.
두 사람이 앉자 그는 간이 냉장고에서 오렌지 주스를 꺼내 컵에 담아 두 사람의 앞으로 내려놓았다.
“제가 생각하는 이번 ‘의형제다’라는 영화의 액션은 두 분이 확연히 다른 액션을 표현할 예정입니다.”
“어떤 식으로요?”
석우가 오렌지 주스를 단숨에 반 컵을 들이켜고는 물었다.
“국정원 사람과 북한의 엘리트 간첩. 전혀 비슷할 수 없는 사람들이죠. 송석우 씨의 경우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아슬아슬한 액션이에요. 뭐, 국정원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호신술이나 유도 등의 무술은 익히고 있겠죠? 그렇지만 실제로 시나리오를 읽어보면 아슬아슬해요. 그렇듯이 강하지만 움직임이 많으면서도 상대방을 어떻게든 제압하기는 하는 흔히 우리나라의 형사들 같은 몸놀림을 표현할 겁니다.”
석우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전문석 무술 감독이 민후에게 시선을 틀었다.
“민후 씨는 말 그대로 북한의 엘리트 간첩입니다. 움직임은 절제되면서 간결하게. 말 그대로 빠르고 강하게 한 번에 친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민후 씨가 많이 힘들 거예요. 간결하고 빠르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아요. 아무리 합을 맞춰 봐도 다치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그래도 다행이 민후 씨를 보니까 운동은 자주 하시는 것 같네요.”
민후도 그의 이야기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전문석 감독은 그 외에도 두 사람에게 어떤 식의 액션을 하게 될 것이고, 어떤 식으로 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와 연습시간 등을 말해 주었다.
“참, 시나리오 읽어보니까 송석우 씨 뛰는 장면이 참 많아요. 그것도 전속력으로…….”
“에이씨, 담배 끊어야 하는데 잘 안되네요.”
전문석 무술 감독이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끝을 흐렸다. 42.195㎞처럼 페이스를 유지하며 뛰는 것이 아니라, 전속력으로 달리는 신들이었다. 그 때문에 송석우의 경우 나이도 있었고 담배도 오랫동안 피웠던 터라 전속력으로 뛰면 상당히 힘들 것이다. 하물며 반복되는 촬영이 이어질 테니 벌써 머리가 새하얘진다는 모습이다.
“이건 핑계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다른 배우들처럼 근육질 몸매가 아닌 것은 다 인간미를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그 점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무술 감독님.”
“하하하, 입담이 좋으시네요.”
“진짭니다. 응? 진짜야. 사람들은 나의 이런 배를 좋아한다니까?”
그가 믿지 않자 옆의 민후를 툭 치면서 다시 말한다. 자신의 불룩 나온 배를 양손으로 만지면서 말이다. 그의 재치에 두 사람이 빙긋 웃었다. 아마도 동작들을 익히면서 심심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한 달간 배우는 방식은 사람을 두고 그 합을 맞춰보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연습하게 된다. 스턴트맨에게 개인적인 동작을 배우고 그것을 연습하고, 액션 신은 일부러 몰아서 촬영할 것이었으며 몰아서 촬영할 때, 촬영 전 이미 익숙해진 개인 동작을 사람을 둠으로써 합을 맞춰서 내보일 것이다. 민후는 당연하게도 자신이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때에 갔다. 10시쯤에 나오니 스턴트맨들이 운동을 하고 있었다. 강당을 빙글빙글 돌면서 달리기를 하면서 체력을 다지고, 윗몸일으키기나 혹은 각종 무술 연습 등을 하면서 체력단련을 하고 있었다.
스턴트맨들도 배우였다. 액션 배우. 그들도 액션이 들어있는 영화에서 엑스트라일 뿐이지만 화려한 몸놀림으로 영화를 더욱 살게 만드는 장본인들이었다.
숨겨진 보석 같은 이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자, 이렇게 치고 빠지고 옆으로 피하면서 턱을 빠르게 훅! 하고 주먹을 막으면서 꺾기.”
“예.”
“한번 해보세요.”
스턴트맨 중 경력 10년 차의 고명현이라는 인원이 있었다. 체격이 조금 있었고 턱수염을 기른 사내였다. 헤어스타일은 무척 짧았으며 자칫 보면 둔해 보일 것 같은 인상이었지만 그는 누구보다 빠르고 주먹이 강해 보였다.
민후는 그의 지도를 집중적으로 받고 있었다. 현재 연습하는 동작은 총격전 이후 지원과 한규가 다시 만나게 되는 장면이었다. 현상금을 위해서 축구 경기를 하는 불법 체류자인 베트남 인원들의 우두머리를 잡기 위해 갔다가 베트남 인원들에게 석규는 호되게 당하게 된다. 그때, 그 모습을 본 지원은 선의적으로 그를 돕게 되는 장면이다.
그는 빠른 주먹과 발로써 그들을 제압하고 돌려보낸다. 그 빠른 주먹과 발을 지금 보여야 했다.
민후는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그려보았다. 자신의 앞으로 자신을 둘러싼 이들이 공격해 들어오고 있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치고 빠지고, 옆으로 빼면서 턱을 가격하고 들어오는 팔을 잡아채 꺾어낸다.
민후가 천천히 눈을 떴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 절제된 동작. 신속함. 한 번에 보내버리는 강렬함.
후웅.
탁!
슈웅.
퍽!
후웅.
찻!
그는 자신의 앞으로 그들이 있다고 생각하고 주먹을 휘두르고 피하고 꺾는 행동을 빠르게 행했다.
어색한 동작이었지만 고명현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빨랐고 강했으며 신속했다. 하물며 생동감이 강했다. 그는 정말 자신의 앞에 적들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물론 어색했지만 조금 전 30분 동안만 자신에게 배우고 몸을 움직이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의 모습이다.
“잘하네요.”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태권도, 검도, 유도 유단자라고 했던가?”
“단은 없지만…… 사정상 단을 못 땄습니다.”
사람은 ‘사정상’이라고 말하면 그 부분을 캐려고 들지는 않는다. 실질적으로 단은 없지만 민후는 단이 있는 이들보다 더욱 강력하고 빠르다고 할 수 있었으며 심사를 본다면 단숨에 딸 수 있다.
“생각보다 빨리 끝날 수 있겠네. 장면이 살겠어. 오늘은 일단 이 부분만 계속 연습해 봐요.”
“예!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민후는 최대한 예의 바르게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그에 고명현은 ‘뭐 그렇게까지야…….’ 하면서 무안한 듯 뒷머리를 긁적거린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어린 친구가 예의 발라.’ 하면서 픽 웃는다.
아직 송석우는 도착하지 않았다. 민후가 일찍 온 편이었고, 두 시간 후쯤이야 올 것이다.
스턴트맨들은 자신들끼리 영화 동작의 합을 맞춰보기 시작하였다.
후욱!
춥!
타탓.
슉슉!
그리고 민후는 신경 쓰지 않고 집중하며 쉴 새 없이 연습을 반복하였다.
한 시간을 연습하고 10분 쉬고, 한 시간을 연습하고 10분 쉬고를 반복하였다. 갈수록 정교한 동작이 나오고 있었지만 민후가 보았을 때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주위의 스턴트맨들은 의아한 표정이다.
“명현이 형님, 저 친구…… 저번 주부터 배웠어요?”
“뭔 소리야. 오늘부터 오기 시작했잖아.”
“근데 동작이…….”
“좀 잘해, 저 친구.”
슈욱.
타탓!
턱!
신체적 영단과 능통함의 영단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 아마도 액션에서인 것 같았다. 능통함의 영단이 그 동작들을 빠르게 익히고 흡수하며 신체적 영단이 일반인들보다 많이 지치지 않는 체력을 줌으로써 장시간의 연습이 가능했다.
덧붙여서 그 어떤 스턴트맨보다도 빨리 움직이는 그의 모습은 사무실에서 밖으로 나왔던 무술 감독 전문석이 감탄을 흘릴 정도였다. 그러나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이제까지 가르친 배우 중에서 저런 움직임을 가진 배우가 있었나……? 촬영팀 인원들이 고생하겠네.’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마도 카메라 팀이 고생 좀 크게 할 듯싶었다. 그의 움직임이 무척 빨랐다. 카메라가 쫓아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것보다 훨씬 빠르다면 감독인 ‘이훈’은 환영할 것이다. 그만큼 더욱 현실감을 주고, 강한 느낌을 줄 것이니 말이다.
“여어! 안녕들 하신가, 친구들!”
20분 정도 늦게 온 송석우는 강당으로 들어오면서 활기차게 양팔을 벌려서 그들에게 인사했다. 스턴트맨들이 꾸벅 인사를 해 보였다. 아무래도 송석우가 바쁜 인사였기에 20분 때문에 크게 뭐라고 하는 이는 없었다.
“자, 오늘 저에게 가르쳐줄 것은 무엇입니까!”
그는 슉슉 허공에 잽을 날렸다. 그 모습에 그를 직접 가르칠 무술 감독 전문석이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민후는 송석우에게 고개를 숙임으로써 인사를 하고는 다시 연습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20분 정도 연습을 했을까. 그는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 5월, 게다가 이 정도 연습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한 스턴트맨이 다가와서 민후에게 수건을 건네주었다.
“정말 열심히 하시네요. 그리고 저 개인적으로 강민후 씨 팬이에요. 연기 짱짱맨!”
“짜, 짱짱맨?”
짱짱맨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는 민후였지만 빙긋 웃으며 그가 준 수건으로 땀을 한껏 닦았다. 그는 생수병을 따서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송석우 선배님과 전문석 감독님을 보았다.
“이렇게 따악! 따악!”
“아니, 그렇게 무작정 휘두르는 게 아니라. 엉성하면서도 전문적인 호신술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하라니까요.”
“아니, 그게 말처럼 쉽게 되나.”
민후가 보아도 송석우는 전문석이 가르쳐준 무술이고 뭐고, 일단 몸이 안 움직이면 휘두르고 보았다. 전문석 무술 감독이 심드렁한 목소리를 내자 송석우도 고개를 한껏 치켜세우고는 말했다.
“이 배 좀 보시라고요, 이 배 좀! 이 배를 가지고 어떻게 내가 그렇게 움직이나, 이 사람아.”
그러면서도 송석우는 전문석이 크게 기분 나쁘지 않게 장난스럽게 자신의 배를 앞으로 쭉 내밀며 튕겼다. 그러자 전문석 무술 감독이 헛, 웃어버렸다.
주위의 스태프들이 그 모습을 보고 키득키득 웃었다.
그러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흘리던 전문석이 정색을 하면서 소리쳤다.
“쓰읍, 이 새끼들이!? 구경났어!? 30분 뒤에 동작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확인한다.”
“네!”
전문석 무술 감독의 외침에 그들은 군기가 바짝 든 군인들처럼 크게 외쳤다. 민후는 피식 웃고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휘둘렀을까. 전문석 감독이 스턴트맨들에게 만들어진 동작을 취해보라고 행하였다. 알기로는 며칠 전부터 전문석 감독의 지도로 동작을 만들고 다듬고 있는 중으로 안다.
짝짝!
“두 분 잠시 멈추시고 한번 보세요. 두 분이 지금 배우고 있는 액션입니다. 먼저 강민후 씨 액션부터입니다. 지금 배우고 있는 것을 이어서 계속 붙이면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그는 손뼉을 치면서 두 배우의 연습을 잠시 멈추게 했다. 송석우는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바로 주저앉아서 숨을 헉헉거리며 지켜보았고, 민후도 물을 한 모금 마시면서 그를 숨죽여 바라보았다.
전문석이 앞으로 나서자 스턴트맨들은 짜놓았던 시나리오대로 연습했다.
극 중 김한규가 잡혀 있어야 할 곳에 대역으로 다른 스턴트맨이 묶인 듯이 속박되어 있고, 한 스턴트맨이 소품용 칼을 들고 다가서는 것으로 연출하였다.
그 순간, 전문석이 나타나 칼을 쳐내면서 그 팔을 꺾어버린 후 안면을 주먹으로 가격한다. 그리고 다른 이의 머리채를 잡아채 뒤로 끌어내 눕혀버리고는 속박된 스턴트맨들을 둘러쌓은 이들을 가격한다.
그들이 흩어지며 전문석을 둘러쌓는다. 그들과 함께 뒤로 물러난 그가 자신을 향해 뻗어오는 칼을, 팔을 이용해 팔뚝을 강하게 내려쳐서 제압하고 앞쪽으로 숙인 고개를 발로 차버렸다.
그리고 뒤쪽에서 들어오는 팔을 잡아채 강하게 꺾고는 안면을 빠르게 두 번 강타시키고, 다리를 걷어차서 가볍게 넘어뜨린다.
“후우.”
한숨도 쉬지 않고 몸을 빠르게 움직였던 전문석 무술 감독은 그제야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 모습에 민후도 송석우도 감탄 어린 표정이었다. 어째서 무술 감독은 ‘전문석이다’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액션 영화 촬영장에서 그를 찾는지 알 수 있었다.
덧붙여서 실제로 그의 주먹은 닿지 않았음에도 스턴트맨들은 가격당한 것처럼 생동감 있게 움직였다. 강한 주먹에 맞은 듯이 뒤로 고꾸라지고 발길질에 치인 듯이 고통스러워하고 만족할 만한 장면이었다.
“자, 이제 송석우 씨.”
스턴트맨들이 다시 포지션을 잡았다. 송석우의 경우 가스총을 들고 그들을 위협하고, 혹시나 진짜 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를 제압하려는 이들이 엉거주춤한다. 결국, 가스총인 것이 들통 나게 되고 싸우게 되는 장면이었다.
전문석은 정말 가스총을 발포한 것처럼 프롭 권총을 쥔 자세에서 움직이다가 자신에게 접근해오는 이의 멱살을 양팔로 잡아서 끌어와 주먹으로 가격했다.
첫 장면만 보아도 그와 민후가 행해야 할 자세가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었다. 극 중 지원이었다면 멱살을 끌어와 시간을 끄는 것보다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하고 꺾어버림으로써 단숨에 제압했을 것이다.
덧붙여서 송석우가 연기해야 할 것은 화려함은 크게 없었다. 쉽게 말하자면 ‘개싸움’을 보듯이 한다. 그러면서도 엎어치기 등의 유도 기술 등을 사용하기도 하며 어쩌면 이것이 실제 싸움에서는 현실감이 더욱 클 것이다.
한 사람을 패대기치고 한 스턴트맨의 공격에 바닥으로 넘어지는가 싶던 전문석 감독이 주위에 있는 것을 집어서 그대로 공격에 나섰다. 그의 몸 곳곳에는 빈틈이 보였다.
스턴트맨들이 여럿이서 그를 꽉 잡았다. 그러나 전문석은 도망가기 위해 몸부림을 쳤고, 그대로 전문석이 넘어지니 다른 스턴트맨들도 우르르 넘어졌다.
“한마디로 개싸움이구먼, 개싸움.”
송석우는 이제야 자신이 어떤 액션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고는 피식 웃었다. 전문석은 결국 밀려들어 오는 스턴트맨들에게 제압당했다.
“나와, 새끼들아! 나한테 원한 있나. 왜 끝났는데도 바짓가랑이를 잡고 안 놔줘.”
전문석이 연기가 끝났음에도 자신에게 손길을 거두지 않아 바지가 내려와 반쯤 벗겨지게 한 스턴트맨에게 장난스럽게 발길질을 했다. 그는 숨을 ‘후!’ 하고는 한 번 크게 내뱉었다.
“이해되셨죠?”
짝짝짝.
“우리 전 감독님, 캬- 기가 막히네, 기가 막혀.”
송석우가 칭찬을 아끼지 않자 전문석이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스턴트맨들도 하나둘 몸을 일으키고 민후와 송석우도 다시 연습에 몰두하려는 때였다. 문이 열리면서 들어온 이로 인해 시선이 틀어졌다.
“신 짜오! 신 짜오!(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누군가 베트남어를 하면서 들어왔다. 민후의 경우 이번 영화에서 베트남어가 등장하자 어느 정도 기본 회화 정도는 외워두었다.
들어온 이는 다름 아닌 박창석이었다. 그는 대한민국의 명품 배우 중 한 사람이다. 물론 주연을 맡을 정도로 비중은 크지 않으나, 큼지막한 머리 크기. 그러면서도 옆집 아저씨 같은 느낌을 주는 그는 의외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존재다.
이번 의형제다에서 불법 베트남 체류자들의 우두머리, 즉 방금 민후와 석우가 연습하고 있는 신에서 나오던 현상금이 걸린 이로 출연하게 된다.
역시나 큰 비중은 아니지만 독특한 캐릭터가 무척 눈에 띈다.
그렇게 들어온 박창석은 매니저와 함께 들어왔는데, 그와 매니저의 양손에는 큰 크기의 수박이 들려 있었다.
“어이구, 저 주세요. 되게 무겁네.”
눈치 빠른 스턴트맨 몇 사람이 다가서 수박을 대신 들어 주었다. 이제야 팔이 가벼워졌다는 듯이 팔을 만지던 그가 송석우에게 가장 먼저 다가갔다.
“신 짜오, 자오 나이 아잉 테 나오?(안녕하세요, 어떻게 지내세요?)”
“미친놈이…… 한국말로 해, 시끼야.”
“흠, 형님 잘 지내셨어요?”
“그럼.”
“송석우 씨가 형님이에요?”
“예.”
“하, 하하하!”
“하하하하.”
송석우를 지도해주기 위해 그의 옆으로 갔던 전문석 감독이 박창석이 석우에게 ‘형님’이라고 호칭하자 놀란 듯 물었다. 그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자, 창석은 잠시 화를 내야 할지 뭐라 말해야 할지 어색하게 웃다가 그 웃음소리가 커졌고, 문석도 미안했던 듯 덩달아 웃었다.
“어쩐 일이냐.”
“5월인데 날씨도 푹푹 찌고, 이맘때 나오는 수박이 얼마나 비싼지 스턴트맨들한테 가르쳐주려고요. 허험!”
창석이 스턴트맨들 들으라는 듯이 크게 외쳤다. 스턴트맨들은 수박에 적혀져 있는, 떼 있지 않은 가격표를 보고는 웃어버렸다.
“런 더우 띠엔 충 또이 갑, 또이 라 강민후(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강민후입니다).”
“흠…… 이, 이 친구 베트남어 좀 하네? 으, 으하하?”
민후가 다가가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보이며 그의 장난에 맞장구쳐주듯이 하였다. 그러나 짧은 베트남어인 안녕하세요, 정도밖에 아직 모르는 창석은 이해하지 못해 웃을 뿐이었다.
스턴트맨들이 재빠르게 수박을 썰어왔다. 반가운 손님이 왔고, 먹을 게 생겼으니 잠시 쉬자고 전문석도 판단한 듯싶었다. 수박을 썰어온 스턴트맨들은 쟁반에 담아 배우들이 강당의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앉은 곳에 가져다주었다.
송석우가 수박을 몇 입 베어 물었다.
“거, 천천히 좀 드쇼, 형님. 하이고, 영화 한 편 찍으면 수억 원씩 받아 묵는 사람이 왜 이러는지 몰라. 흐히히!”
창석은 고유의 웃음을 지었다. 눈이 없어지고 광대가 위로 올라갔다. 턱수염이 두드러져 보였으나 귀여운 이미지였다. 민후도 그의 재치 있는 말에 웃었다.
“아따, 그래도 참 맛나네. 민후 많이 먹어라.”
“예.”
“근데 넌 왜 쓸데없이 수박을 사 와서……. 에이씨, 나도 언제 한 번 내야겠네.”
“거참, 정말 돈도 많이 버는 분이 왜 이렇게 아끼시나.”
창석은 그가 쓸 데만큼은 확실히 쓰는 사람인 것을 모르고 하는 말일 것이다. 민후는 그 모습을 직접 보았기에 알고 있었다.
“인마, 난 죽을 때 전부 사회에 기부하고 갈 거야, 자식아.”
“헐씨구, 그때야 성인군자 소리 들으면 퍽이나 좋겠소.”
“너 근데 솔직히, 나하고 민후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왔지?”
“으히히, 들켜 부렸네?”
박창석은 다시 매력적인 웃음을 지어서 이 민망한 상황을 무마하려 하였다. 그에게는 인맥이 중요했다. 실제로 주연은 맡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의 주위에는 수많은 톱배우들이 있었고 그들과 인지도도 두꺼웠던 터라, 수많은 이들이 영화에서 괜찮은 배역이 있다 싶으면 창석을 추천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번 영화에서 창석이 추천된 것도 석우가 한몫했다.
그러나 민후가 보았을 때 부끄러워할 일은 없어 보였다. 자신이 하고 싶은 배우의 길을 위해서 이렇게라도 발 벗고 뛴다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노력이었고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수박을 먹으면서 잠시의 휴식이 끝나고 창석은 또다시 들를 곳이 있다면서 몸을 일으켰다.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예에, 다음에 또 봅시다잉.”
그는 털털하게 웃어 보이면서 스턴트맨들에게 인사를 해 보이고는 연습장을 나섰다. 송석우가 중얼거린다. ‘속 편한 새끼, 누구는 여기서 죽어라 액션 연습하는데, 누구는 에어컨 바람 쐬러 가네.’ 하면서 장난스레 말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말투에서 ‘톱배우’라는 말은 무색하나 배우로서의 큰 자부심을 가진 창석을 아끼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다시금 연습이 재개되었다. 모든 이들이 잠깐의 달콤했던 휴식에 만족하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민후는 액션 연습을 하면서도 여느 누구와 다름없이 열정을 보였다. 일찍 나와서 함께 체력단련을 받고, 미흡하다 싶으면 연습시간이 지났음에도 남아서 연습하고는 하였다.
그리고 연습 10일 차 정도가 되었을 때였다.
민후는 불만 켜지고 모두가 퇴근한 연습실에서 혼자 연습을 하고 있었다.
수웅!
탓!
슈웅!
찻!
그의 몸은 하나둘 맞춰가고 있는 동작들을 능숙하게 해내고 있었다. 빠르고 간결한 주먹은 정말 북한의 엘리트 요원 못지않다고 할 수 있었다. 한창 연습에 몰두하다 보니 9시가 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요즘은 헬스클럽을 1주일에 두 번 정도만 가고 있었다. 이곳에서도 운동은 충분히 한다. 덧붙여서 안쪽에는 헬스 기구들도 있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보충을 하고는 하였으며 주로 액션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연습하고 있는데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빼꼼 들어왔다.
“민후야.”
“아, 선배님.”
송석우였다. 그는 강당 내를 두리번거렸다. 누가 있나 없나 확인하는 것이다. 정수는 밴에서 자고 있었고, 다른 인원들은 전부 퇴근한 상황이다.
전문석도 항시 8시면 퇴근하는 편이었으며 간혹 연습이 부족하거나 하면 남아 있지만 자주 있는 일도 아닌 듯싶었고, 밤에 촬영이 있을 때는 모든 인원이 나가기 때문에 밤은 거의 비는 것과 같았다.
고개를 빼꼼 내밀었던 석우는 편안한 운동복 복장이었다. 그는 무안한 듯 엉덩이를 긁적긁적 긁으면서 다가왔다.
“흠, 사람들 전부 퇴근했어?”
“예.”
“넌 왜 안 가고.”
“전 아직 부족한 것 같아서요.”
“허이구, 내가 봤을 때는 날아다니더구먼. 아주 그냥, 젊은 게 좋다니까.”
송석우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확실히 민후는 연습이 더 필요할까 싶을 정도로 대단했다. 예상했던 진도보다 빠르게 나가고 있었지만 민후가 바짝 뒤쫓고 있어서 스턴트맨들이 오히려 당황할 정도다.
그런데도 이렇듯 필사적인 것은 더욱 멋있고, 화려한 컷을 위해서라고 할 수 있었다.
“선배님은 어쩐 일로 오셨어요?”
“나야, 뭐…… 밤중에 심심하기도 하고. 몸도 찌뿌둥한 것이.”
부끄러운 듯이 그가 말을 이리저리 돌렸다. 민후는 작게 웃었다. 자신이 보았을 때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서 온 것 같았다. 석우는 전문석이 집중적으로 지도를 해줌에도 불구하고 쉽게 따라가지를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전문석 감독이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턱턱 치는 것을 몇 번 보았고 그럴 때마다 송석우는 ‘아니, 내 배가 이렇게 남산만 한데…….’ 하면서 웃어넘겼다. 그러나 그 웃음 뒤에서는 못내 미안함과 씁쓸함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막상 연습을 오는 것은 부끄럽고 하니 남이 없는 시간에 온 것 같았다. 어쩌면 집에서 하는 것도 괜찮겠지만 민후가 항상 밤늦은 시간까지 연습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온 것이다.
아무래도 자신의 연습 동작을 보았던 사람이 그나마 자신이 연습하는 걸 보아야 잘못된 점을 어느 정도 지적을 받지 않겠는가.
덧붙여서 다른 이와 함께 하는 연습이라면 더욱 의욕이 솟지 않을까 싶었다.
“에이씨! 그래, 새끼야! 연습하러 왔다, 연습하러. 아이, 새끼 참! 그렇게 실실 웃기는.”
송석우는 변명을 둘러대다가 결국 자신의 본심을 밝혔다. 머리를 긁적거린 그가 곧 민후에게 몇 마디 툭툭 던지더니 민후를 잠시 지켜보고는 다른 쪽으로 가서 혼자 연습에 들어갔다.
그러다 뭔가 이상한 것 같으면 민후에게 다가왔다.
“야야, 민후야. 이거 한번 봐봐라. 전문석 감독이 이리 차지 않든?”
석우가 누군가에게 발차기하듯이 시늉한다. 민후는 문석이 가르쳤던 부분을 기억해내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렇게 보다는 미는 느낌이 강했던 것 같아요. 이런 식으로요.”
“오, 잘하는데? 그냥 내가 지원이 역할 할까? 슉, 팍! 슉, 팍! 아자!”
그는 차라리 빠른 움직임이 낫겠다는 듯이 슉슉하면서 허공에 자신 딴에는 빠르다고 생각되는 듯이 주먹을 날렸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숨을 헉헉거렸다.
그 모습에 민후는 빙긋 웃었다. 최강호일 때도 느꼈지만 석우라는 배우는 능청스러움이 크고, 어떤 것을 가르치면 잘 따라가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렇게 남모르게 하는 연습이 무척 컸다.
덧붙여서 자신이 하는 연기에 대한 만족도를 크게 하고 싶어 하는 배우였기 때문에 항상 노력하지 않는가 싶다.
“흐랏차차!”
석우가 누군가를 바닥에 내팽개치는 듯한 동작을 취하는 것을 봐준 민후는 다시 자신의 연습에 들어갔다. 빠르게 주먹으로 허공을 치고,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하는 동작을 취하다가 석우의 귀여운 행동이 생각나 픽 하고 웃어버렸다.
두 사람의 연습은 12시나 되는 밤중까지도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