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그 배우들을 연기하라!
“작품 세 개면 나이치고 대단한 거지. 이 정도로 봤을 때. 1차 기준은 합격인 거 같다.”
그는 빙긋 웃어 보이면서 다시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1차 기준은 합격한 거 같다는 의미는 다음으로 봐야할 것도 존재하는 것이었다.
“우리 모임의 뜻은 알지? 용호상박. 젊은 배우들이 서로 뒤처지지 않고 겨룬다는 의미야. 또 그만큼 젊지만, 실력 있는 사람들이야, 전부. 그 때문에 2차 심사도 봐. 조금 황당하지? 모임에 드는 데 2차 심사까지 있다는 게.”
확실히 민후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던지라 그 부분은 다소 황당하였다. 모임에서 2차 심사까지 있을 줄이야. 실상 용주는 아마도 1차에서도 들지 못했나 보다.
그 때문에 2차에 관련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어렵진 않아. 배우들끼리 2차 심사까지 가게 되면 돌면서 로테이션을 돌려. 두 명이서 심사를 보게 되고, 심사 주제는 그들이 자신들이 연기했던 범위에서 정해. 예를 들어, 내가 태극기 펄럭이며를 찍었을 때의 그 당시 역할을 너에게 제시하는 거지. 그리고 이번에 로테이션 결과 나온 사람은…….”
그는 마지막 말에서 일부러 뜸을 들였다. 민후의 기색을 살폈다. 민후도 바짝 입술이 탔기 때문에 카페모카를 입으로 살짝 축였다. 달콤함이 입안에서 감돌자 그나마 긴장이 해소되었다.
“강동훤, 유승범.”
강동훤, 유승범. 두 사람 모두 대한민국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는 ‘톱’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이들이다. 일단 강동훤의 경우 데뷔를 ‘그녀를 믿어보세요’라는 작품으로 한 경력이 있으나 본래 모델 출신이다.
그러나 모델 출신임에도 그는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냈다. 반항아답지만 한 여자를 깊게 사랑하는 모습을 담은 영화, ‘허스키의 유혹’, 사형수이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슬픈 과거를 가지고 있는 남자 역할을 표현해낸 ‘너와 나의 행복했던 시간’, 조선 시대의 무사 역할을 소화해낸 ‘그 형사’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소화한 경력이 있는 배우였다.
특히나 그는 나이에 비한다면 연기력도 좋고,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는 배우이지만 실제로 대한민국에서 조각 미남 다섯 사람 중 한 사람으로 뽑히는 이가 바로 강동훤이라는 배우였다.
최고의 비율, 좋은 연기력. 또한, 재벌가의 자녀라는 사실 또한 갖추고 있는 그는 독특하고 재밌는 성격, 그러면서도 의외로 유치한 감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유승범. 강동훤이 조각 미남 다섯 중 한 사람이라면 유승범이라는 배우는 엄청나게 잘생겼다는 느낌은 부족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는 수많은 여성팬들과 더불어서 남성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는 패셔니스타로도 유명한 한편, 평소 까칠한 성격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출연한 영화를 보면 모두 개성이 강했다. 실제로 민후가 보았을 때 강동훤과 유승범을 두고 본다면, 연기력은 유승범이 우위라고 할 수도 있었다.
하물며 그의 매력은 끝이 없었다. 괜히 남성 배우임에도 남자 팬들도 상당수 보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현재까지의 대표작으로는 ‘품행 없음’이라는 작품을 둘 수 있겠거니와 액션 판타지인 ‘아라한 대작전’에서도 주연 역을 수월하게 소화해낸 배우이며 갖은 작품에 출연한 바가 있는 배우다.
“어- 난 개인적으로 용호상박 모임에 네가 들어오는 건 환영이야. 오히려 좋은 일 같아. 그렇지만 용호상박 멤버들은 아직은 너무 이른 나이 아니냐는 말이 많아. 스물네 살. 당연히 그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는 것 너도 이해할 거야.”
민후는 그의 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나이로 보자면 자신은 너무나도 어렸다. 보면 용호상박도 젊은 배우들이 주축을 이룬 것 같지만 스물 후반이나 혹은 서른 후반까지의 나이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에 비하면 자신은 이제 스물 중반밖에는 되지 못하며 사회로 쳐도 초년생이었다. 그 때문에 그들의 그런 우려의 목소리는 충분히 가능했다.
“그러니까 이 두 사람을 연기로 확 사로잡아 버려. 20대이든 30대이든 일단은 연기력이 좋으면 먹고 들어가니까 무슨 소린지 알지? 이런 말해 주는 건 말했지만 난 너랑 친해지고 싶어서 그러는 거다.”
도원빈은 빙긋 웃었다. 도원빈에 대해서 알려진 사실로는 그는 평소에도 무척 온화하고 남을 배려하는 성격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물며 상당히 많은 기부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리고 민후도 그와 친해진다는 것은 환영이었다. 그라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었다. 충분히 함께 연기 인생을 헤쳐 나갈 의미가 존재한다 생각된다.
시간을 확인한 도원빈은 쓴웃음을 지었다. 스케줄 시간이 다가온 것 같았다. 이런 작은 시간도 쪼개는 데에도 힘이 들었을 것이다.
“말 몇 마디 했다고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냐. 이제 내가 말해 줄 건 대강 다 말해 준 거 같고, 두 사람 연락처는 매니저를 통해서 확인하면 돼. 빨리 나가야 아까 그 직원 사인도 해주고, 사진 찍어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머쓱한 웃음과 미안한 표정을 함께하였다. 그러면서 자리에서 함께 일어났다. 그와 헤어지고 민후는 밴에 올랐다.
“여기 있다.”
정수가 연락처를 건네주었다. 강동훤과 유승범의 매니저 연락처였다. 그 외에도 도원빈에게서 듣지 못하였던 이야기를 정수가 해주기 시작했다.
강동훤, 유승범. 두 사람의 작품 중 선택사항은 민후에게 있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하였던 작품 중 원하는 작품을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하물며 그 작품 전체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만족할 만한 분량만 보여주면 되는 것이었으며 기한은 1주일이었다.
1주일 내로 자신들을 만족시킬 만한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다.
민후는 강동훤의 작품으로 ‘너와 나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영화를 선택하였다. 이 영화는 부유한 가정형편을 가졌으나 성폭력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 세 번의 자살시도를 하게 되고, 그러던 중 고모인 수녀를 통해서 사형수를 만나러 갔다가 일어나는 멜로 영화였다.
그리고 민후가 하게 될 역할은 사형수 역인 이윤수였다. 이윤수라는 역할은 자살을 세 번 기도했던 여성 인유정과는 다른 인물이었다. 그는 가난했고 배고팠으며 어린 시절이 크게 불우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벌였던 범행이 살인이 되고 사형수로 남게 되었다. 그런 두 사람의 사랑을 그린 이 영화는 멜로로 친다면 상당히 좋은 관객 수를 내었다.
멜로 영화가 300만 관객을 넘기는 힘들다. 그러나 이 작품은 넘었다. 작품성과 더불어서 배우들의 연기력이 좋았다는 평가가 큰 바가 있다.
민후는 너와 나의 행복한 시간을 틀어놓은 상태에서 TV 앞에 앉았다.
그의 앞으로는 노트북이 놓여 있었다.
그는 너행시를 두 번을 보았다. 첫 번째에서는 이 영화의 진행과 흐름 방식에 대해서 느끼기 위해 보았으며 두 번째에서는 감정전달이 가장 잘되는 부분을 찾아내었다.
두 번째를 보았던 민후는 빨리 감기를 돌리면서 자신이 생각해낸 부분을 눈으로 보고, 자신이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적고 대사 부분도 어떤 식으로 할지에 대해서 적었다.
그가 선택한 너행시에서의 윤수를 연기할 신은 자신이 죽였던 이의 어머니가 면회를 오는 장면과 덧붙여서 마지막 사형집행 전, 그가 애국가를 부르는 장면 두 가지였다.
이 두 장면에서 가장 큰 감정이 이입되었으며 또한 그를 통해서 자신도 가장 또렷하고 확실하게 자신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고 민후는 생각하였다.
그다음으로는 유승범의 ‘품행 없음’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역시나 과정은 같았다.
민후가 너행시와 덧붙여 품행 없음이라는 영화를 선택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너행시는 강동훤의 현재까지의 작품 중 인간의 내면적인 요소를 가장 잘 표현하였다고 할 수 있었으며 그의 감정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처음 그는 분노한 모습을 표출하고 차라리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더 이상 세상은 자신에게 필요치 않고, 세상도 자신을 필요치 않는다고 여긴다.
그러나 자신을 매주 목요일마다 수녀와 함께 찾아오는 여성에 의해 세상이 살아가 볼 만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며 그가 선택한 장면에서는 차갑고 냉정하기만 모습을 보였던 윤수가 자신이 죽였던 이의 어머니를 만나자 겁을 내보이면서 사죄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차가웠던 연기와 대조되는 모습을 보이고, 마지막 사형집행이 되는 모습에서는 극도의 두려움과 덧붙여서 안타까움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품행 없음.
품행없음은 흔히 쉽게 표현하자면 과거의 일진물이었다. 현재에는 아저씨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요즘 흔히 말하는 노는 물을 표현한 이야기이다.
극 중 유승범은 정말 불량 학생 같은 소름 끼치는 연기력을 내보였고, 한편으로는 강한 척하지만, 겁에 질리고, 좋아하는 소녀 앞에서는 다른 청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이야기를 보여줌으로써 젊은 배우이나 좋은 연기력을 선보였다고 호평을 받았다.
그렇다고 위의 작품이 모두 엄청난 흥행을 거뒀다고는 할 수는 없으나 연기력이 돋보였다고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주일간 너행시와 품행 없음이라는 영화의 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극 중 그 역할이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였다. 기간은 무척이나 짧았으며 덧붙여서 두 가지 역할을 함께 준비한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하물며 두 가지 역할 모두 초반, 중반, 후반으로 나눠서 끝까지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중 일부분만을 빼내어 연기해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민후의 연기력이 가장 큰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동훤아, 전화 왔다.”
동훤은 강남의 한 헤어숍에서 머리 손질을 받고 있었다. 매니저가 건네는 휴대전화로 그는 발신자를 확인했다. 승범이 형이었다.
“예, 형.”
-오늘 강민후라는 배우하고 만나기로 했다며? 아마 상당히 놀랄 거다.
승범은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깜짝 놀랄 것이라는 말에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승범과 민후는 어제저녁 만났었고, 민후는 그가 연기하였던 신을 선보였다.
그중 한 신은 불량스러움을 보일 수 있을 만한 신이었고, 한 신은 마지막에 그가 싸움하게 되는 신이었다. 승범은 어제 그의 연기를 보고는 아직도 그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는 목소리였다.
“그렇게 잘해요?”
-잘한다는 말은 안 했는데? 못해서 놀랄 거라고 할 수도 있는 거지.
동훤도 강민후라는 친구에게 꽤 관심이 갔다. 일단 도원빈이 그가 들어온다는 이야기에 상당히 화색을 보였으며 괜찮은 친구라고 입방아에 올렸었다.
또 승범이 말은 그렇게 하지만 연기를 못하는데 이렇게 자신에게 전화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곧 통화가 끝나고 그는 시간을 확인하였다. 한 시간 뒤에 노래방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연기를 보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시선이 차단돼야 했고, 그 소리도 새어나가지 않으면 더욱 좋았기 때문에 선택한 장소다.
헤어 손질을 모두 끝내고 그는 매니저와 함께 밴에 올랐다. 밴에 오르고 노래방에 도착했다. 그는 모자에 마스크를 꾹 눌러쓰고 매니저와 함께 8번 방으로 들어갔다.
8번 방으로 들어가자 강민후가 있었다. 그는 최대한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 인사했다. 그는 그가 오기 전까지도 필사적으로 연습을 하고 있었다. 일단 동훤은 자신이 형이었고, 덧붙여서 연기 선배이기도 했기에 인사를 가볍게 받고는 소파에 앉았다.
민후는 그의 앞에 섰다.
“이 부분을 심사받고 싶습니다.”
민후는 동훤에게 프린트되어 있는 종이를 건넸다. 그것을 확인한 동훤은 ‘역시…….’ 한다.
상당히 연기하기 어려운 대목이지만 잘만 한다면 무척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어려운 대목이어도 실력에 따라 다르다는 것.
그만큼 민후는 자신이 있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었다.
“일단 한번 보자.”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생수를 집어서 입을 한 번 축였다. 매니저도 그와 가까운 곳에 앉아서 배우 강민후에게 시선을 집중하였다.
민후는 잠시 눈을 감고는 극 중 윤수가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이미지 트레이닝도 수십 번, 영화를 보면서 되돌려 감아보았던 것도 수십 번이며 연습도 시간이 날 때마다 항시 했다.
그는 주위로 다른 이들이 있다고 떠올렸다. 극 중의 모니카 고모, 여자 주인공, 교도관. 그리고 테이블에 앉아 있는 나이 든 초라한 행색의 노부인.
민후는, 그리고 윤수는 눈을 떴다. 그의 앞으로 선명하게 보이듯이 한다. 안으로 들어서자 의아한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곧 그녀는 손을 부르르 떨면서 윤수를 먹이기 위해 가져왔던 떡을 감싼 천을 푼다. 그러나 손은 떨린다.
자신의 딸을 죽인 이를 용서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 화내지 않으리라. 그를 용서하리라. 수십 번, 수백 번을 다짐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쉽게 되지는 않았다.
윤수는 그녀를 보자마자 도망을 치려고 한다.
“으으으…….”
그는 밖으로 나서려고 한다. 그러나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다. 누구에게든 그는 차갑게, 그리고 세상에 미련 없는 겁 없는 사형수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한낱 초라한 행색의 노부인 앞에서 그는 잔뜩 겁에 질렸다.
‘왜 죽였니!? 응! 왜 죽인 거야! 왜 돈 많은 사람 돈 뺏으려고 죽이는 거였으면서 가난한 내 딸은 왜 죽인 거야!? 응!?’
윤수가 죽인 것은 파출부였다. 그리고 그가 본래 살인 장소로 갔던 이유는 부잣집에서 강도 행위를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는 파출부도 죽였다.
“으흐흑!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으흐흐흑!”
그는 겁먹은 강아지처럼 고개를 연신 숙여 보이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진심으로 그녀에게 미안했다. 누구보다 그녀에게 미안했다. 소중한 그녀의 누군가를 빼앗았다. 자신의 이 손으로 빼앗았다.
그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사형수인 그를 두려워하게 하는 것은 현재는 그것뿐이다.
‘내, 내가 이러지 말았어야지 했어. 이러지 말아야지……. 흥분하면 안 되는데……. 난, 난 너를 용서하러 왔다, 윤수야. 너를 용서하러 왔어……. 자주 오마…… 명절 때도 오고, 시간이 날 때마다 오마. 자주 오진 못해도 노력하마……. 그때까지…… 제발, 그때까지 죽지 말아라. 윤수야, 응?’
“크흑, 흐흐흐흑.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흑,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녀는 부드럽지만 떨리는 손으로 민후의 머리를 쓰다듬듯이 한다. 그는 더욱더 눈물이 솟구쳤다. 용서라는 단어는 쉽지 않다. 하물며 죽음이라는 앞에서는 말이다.
그렇지만 자신에게 죽지 말라고 한다. 자신에게 빨리 죽지 말라고 한다.
그는 하염없이 울 수밖에 없었다.
“크흑, 흑! 이, 이 정도면 이 부분은 됐다고 생각합니다.”
한참을 울던 윤수는 어느덧 강민후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여운이 가시지 않아 울음이 올라온다. 강동훤은 그를 넋을 잃고 보고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
옆의 매니저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흠, 다음 장면은 담배 한 대 피우고 보자.”
강동훤은 담배를 품에서 꺼내 불을 붙여 깊게 한 모금 빨았다. 민후가 감정을 추스를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다.
엄연히 자신이 확인한 다음 장면은 무조건 사죄하고 울고 하는 장면과는 달랐다. 방금 보았던 부분보다 더욱 많은 감정을 내포하고 있었다.
공포, 욕망, 그리움, 슬픔, 후회. 너무나도 다양한 감정이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어쩌면 눈물을 흘린다는 부분은 연기하는 부분이 같으나 그 극 중 역할이 처하게 되는 상황이 다시 바뀌는 것이었다.
“후우우.”
강동훤은 감정을 추스르려고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는 민후를 위아래로 훑었다. 자신에 비하면 작았지만 180㎝를 넘어서는 키에 작은 얼굴, 다부진 체격이 좋아 보였다.
덧붙여서 그가 조금 전 보았던 연기는 대단했다고 할 수 있었다. 유승범이 전화를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치이익.
그는 재떨이에 담배를 끄고는 다시 물 한 모금을 마셔서 입안에 감도는 니코틴의 향내를 지웠다.
준비를 끝냈던 민후는 이미 다시 머릿속에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 떠올리고 있었다.
수갑을 차고 있는 자신, 그리고 윤수의 앞으로는 교도관 네 사람이 앉아 있다. 그들의 뒤쪽에는 자신을 위로하던 신부님이 서 계셨다. 신부님은 마지막 말을 남기라고 하셨다.
마지막 말을 남기면서 활짝 웃었다. 부정적이던 삶이 긍정적으로 바뀌었기에 그나마 후회는 조금 덜 수 있었다. 눈이 오면 슬프다는 것보다는 기뻐야 한다는 사실조차도 알 수 있었다.
신부님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이 좋아했던 그 여자, 그 여자가 보이지 않는 투명 유리의 뒤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유, 유정 씨…… 제, 제가 보이죠. 여기 있죠?”
그는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나 웃는다. 마지막 가는 길. 그녀에게 자신의 말을 전할 수 있었다.
“유정 씨, 제 얼굴 까먹으면 안 돼요. 유정 씨는 머리 좋으니까 까먹으면 안 됩니다.”
그의 입술은 바르르 떨렸고, 얼굴도 당장이라도 살려달라고 빌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운명이 바뀌지 않음을 안다.
“정말 고마웠습니다. 사랑합니다. 누나……! 사랑합니다!”
그는 결국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아낸다. 사랑한다. 자신은 죽어버리는 게 낫다고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죽음보다는 사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저 여자 때문이다. 그녀를 만나서 죽기 전 그나마 행복했다.
교도관들이 그를 앉힌다. 사형집행 전, 커튼이 쳐지고 그는 가쁜 숨을 내뱉는다.
“후우후우후우…… 동에 흑 물과 백두우우…… 산…… 이…… 마아르고…… 크흐흑! 무, 무무, 무서워요……. 애국가를 불렀는데도 무서워요.”
윤수는 자신의 목을 옭아맨 밧줄을 보고는 죽음이 다가왔음을 안다. 그는 애국가를 부름으로써 모든 두려움을 떨치려 했다. 그러나 쉽게 되지 않았다. 그녀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다시금 하늘을 보고 싶었다. 풀벌레 우는 소리, 겨울에는 식당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증기도 보고 싶었다.
“크흐흑.”
그러나 교도관들은 ‘집행’이라고 말한다. 버튼이 눌리고 그의 몸이 떨어진다.
“억…… 꺼억. 꺽!”
그는 고통스럽다. 죽음이 다가왔다. 머릿속으로는 유정이 스치고, 지난날의 일들이, 후회가 물밀 듯이 지나간다.
민후의 연기가 끝이 났다. 실상 복면을 쓰고 사형집행이 되어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을 영화에서는 커튼을 침으로써 교도관들도, 또한 관객들도 보지 못하고 상상하게 한다.
그러나 민후는 그 표현까지도 적절하게 해냈다.
모든 연기가 끝나고 강동훤은 다시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어 불을 붙였다.
실제로 그가 본 연기력은 용호상박 내에서도 견줄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뛰어났다. 물론 진배모로 간다면 다른 이야기이겠지만 강민후는 이제 겨우 스물네 살이었다. 사실 42.195㎞를 통해서 이미 그의 연기력을 본 바가 있었다. 그러나 스크린에서의 장면은 내용이 이어진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는 다른 남이 연기하였던 것을 풀어나가는 것이었다.
동훤이 보았을 때의 민후는 무척 훌륭하게 풀어냈다. 만약 자신이 아니라 그가 영화를 맡았으면 어땠을까 하고 의아할 정도였다. 요리사마다 요리하는 손맛이 다르듯이 배우마다 연기하는 그 맛이 다르고, 영화 전체의 느낌에 다른 느낌을 부여한다.
강민후는 자신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자신보다도 좋은 연기력을 보였다.
동훤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덩달아 매니저도 함께 일어섰다.
“연기는 잘 봤다. 연락이 아마 따로 갈 거야. 스케줄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겠어.”
그렇게 말하며 동훤은 그의 어깨를 툭 치고는 빙긋 웃은 뒤 노래방을 빠져나갔다.
“동훤아, 저 강민후라는 배우 뭐하는 놈이냐……. 우와 소름 돋는다, 소름.”
“너무 연기를 잘하네요. 그런데 또 저 나이에 저런 연기력을 보여도 밑 보일 일도 많을 텐데.”
한편으로는 동훤은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스물넷. 아직 너무나도 어린 나이였지만 어떠한 이보다도 진정성이 담긴 연기를 할 줄 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시기, 질투, 분노를 표출하는 이가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문제의 해결은 아마도 민후가 풀어야 할 과제가 아닐까 싶다.
* * *
민후는 자신에게 복식호흡 방법과 발성 연습을 가르쳤었던 이가 있는 학원으로 왔다. 그를 가르쳤던 이는 과거 가수 출신이었다. 꽤 인지도가 있던 실력파 가수였지만 요즘은 TV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었다.
그가 운영하는 학원은 수강생이 많았고, 덧붙여서 과거 가수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믿을 수 있다는 보증 때문인지 상당한 이들이 배우기를 청하는 장소였다.
현재 시각이 수강생들이 있을 시간은 아니었다. 그 때문에 한적하였고, 중년의 남성이지만 단발머리를 멋들어지게 소화해낸 이승용을 만날 수 있었다. 이승용은 민후를 무척 반겨주었다.
곧 승용과 보컬 지도실로 이동하였다. 승용은 피아노 앞에 앉았다.
“복식호흡은 꾸준히 해줬다면 됐을 것 같고 발성이나 좀 보고 싶은데. 자.”
띤!
그는 그렇게 말하며 피아노 건반 하나를 눌렀다. 무슨 신호인지 알기에 민후는 자연스럽게 복식호흡을 하면서 목소리를 냈다.
“아-”
띤!
“아--!”
띤띤띤.
그는 단순히 입 밖으로 소리를 내뱉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 위를 지나쳐 소리가 뒤쪽으로 간다고 생각하며 그 소리를 뱉어냈다.
띤띤띤띤띤.
“아아아아아아아-!”
민후의 소리는 맑고 좋았다. 이승용이 관심을 두고 볼 정도로 말이다. 하물며 발성법과 복식 호흡법을 가르치는 데에 소요된 시간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다.
호흡법을 가르치고 발성법을 가르치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다. 단지 배운 이의 노력에 따라서 확연히 차이가 생기게 되고 타고난 신체적인 구조에 따라서 발성법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런 것을 생각한다면 복식호흡은 무척 빼어난 편이었으며 발성조차도 좋았다.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로 민후를 보았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 된 것 같았다.
바이브레이션을 오늘 가르쳐도 될 것 같았다.
“아무래도 네가 그만큼 바쁜 사람이니까 진도는 빨리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아.”
그 말은 즉, 민후가 배우고 싶다던 바이브레이션을 가르쳐주겠다는 대답이었다.
“자, 들어봐.”
띠-
그는 다시 피아노 건반 하나를 쳤다. 소리가 낮게 울렸다. 그다음으로 음이 더 높은 건반을 쳤다.
띤-
그리고 연이어 번갈아서 천천히 치기 시작했다.
띠띤띠띤띠띤띠띤.
그리고 곧 소리는 빠르게 퍼졌다. 띠띤띠띤띠띤- 반복적으로, 그리고 승용의 목소리도 함께 나왔다.
“어. 아! 어. 아! 어. 아! 어. 아!”
낮은음과 그보다 조금 더 높은 음이 계속해서 반복되면서 부드럽게 바이브레이션이 진행되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대충 감이 오지?”
바이브레이션은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대개 바이브레이션을 하게 되는 이유는 호흡이 부족할 때였다. 호흡이 부족할 때를 위해서 바이브레이션을 하게 되는데, 간혹 멋을 위해서 사용하는 이들도 찾아볼 수 있었다.
“예.”
“자, 건반에 맞춰서 해보자.”
그는 처음에는 무척 천천히 그를 이끌었다. 그리고 조금은 더 빠르게 쳤다. 그러나 충분히 연습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따라갈 수 있는 속도였기에 민후는 무난히 따라갔다.
남자의 상징 흔히 목젖이 낮은음을 낼 때 밑으로, 조금 더 높은 음을 낼 때 위로 솟구치는 것을 느낌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바이브레이션이 부드럽게 진행이 된다면 목젖은 쉴 새 없이 움직이게 될 것이다.
“계속 천천히 연습하다가 익숙해질 때쯤이면 빠르게 해봐. 그리고 만약 스스로 괜찮게 잘 되고 있다고 생각되면……. 흠, 다음에는 한두 시간 정도 시간을 내줄 수 있을까?”
“네.”
민후는 흔쾌히 수긍했다. 이승용은 가볍게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에 돈을 바라는 것도 아니었으며 다른 무언가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러한 그가 자신을 성심성의껏 가르쳐주니 그 정도 시간은 자신도 줄 수 있었다.
“그럼 그땐 발성이나 바이브레이션도 괜찮아질 테니 노래를 두고 한 번 연습해 보자고.”
그는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열정적인 수강생인 민후였기에 그를 가르치는 맛이 쏠쏠했다. 또 하나, 요즘 한창 떠오르는 추세의 배우였기에 관심도 컸다.
민후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학원을 나섰다. 다음에 뵐 때는 약소한 것이나마 들고 찾아봬야 할 것 같았다. 매일 빈손으로 오기 미안했다.
막차에 타려는데 전화가 울렸다. ‘도원빈’이라고 적혀 있었다. 실상 두 배우에게 심사를 보았지만, 연락이 없던지 일주일이나 지났다. 그러나 그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언젠가 때가 되면 연락이 올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보세요.”
-축하드립니다, 강민후 씨. 오늘부로 용호상박 모임의 멤버로서 당당히 들어오셨습니다.
전화를 받자 도원빈의 장난스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민후는 내심 자신하고 있었던 부분이었기 때문에 웃음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감사합니다.”
-동훤이하고 승범이가 갑자기 너를 심사하고 나더니 적극적으로 바뀌었단 말이야. 걔들도 네가 모임에 들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
“아, 그래요?”
민후는 빙긋 웃었다. 자신의 연기력 때문일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일지는 몰라도 그렇다는 것은, 그들도 자신과 친해지고 싶다는 의미이기도 하였다.
그들과 친해지는 것은 무척 좋은 것일 거다. 하물며 민후는 지금 현재 배우 계에서 크게 친한 이들이 부쩍 많지는 않았다. 있다면 논스톱 5 때의 이들이나 혹은 이용주 정도나 될 것이다.
그 때문에 용호상박에서 친목을 도모할 생각을 하면 벌써 많은 것을 쟁취하듯이 한다.
밴에 오른 민후는 스케줄 장소로 이동하면서도 조금 전 이승용에게 배웠었던 바이브레이션을 공부하는 것에 전념하였다. 이제 이런 소리에도 익숙해진 정수는 어느덧 콧노래를 부르며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