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촬영 시작. 미스터 권. 권영훈
밥차 부부는 한 주 동안 슬픔과 아픔을 겪고, 바로 그다음 주부터 다시 촬영장에 나왔다. 스태프들은 많은 격려를 해주기 위해 노력하였고 그들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 말 한마디조차도 조심해서 하였다.
그리고 어느덧 시간이 차차 흐르고 두 사람의 얼굴에서도 다시금 미소를 찾아볼 수가 있게 되었다. 어쩌면 이번 일은 촬영장 내의 스태프들과 배우들 감독까지도 돈독함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안타까운 것은 한 젊은 여성의 죽음이라는 것이 계기가 되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현재 촬영은 중반부까지 진행이 되었으며 아직도 갈 길은 무척이나 멀다고 할 수가 있었다. 어느덧 1월 말을 달리고 있는 실정이었는데, 추운 날씨 때문에 안에서의 촬영이 많아진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주로 요리 대결을 펼치는 요리 대회의 화면을 잡는 데에 주력하고 있었으며 심사위원들이 평가하는 모습과 민후나, 용주가 극 중 역할이 되어 요리하는 장면을 찍는 데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었다.
오늘은 인찬이 황복으로 다시 한 마리의 학을 만들게 되는 장면을 촬영한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은 그를 비난하며 그의 음식을 먹기를 거절한다.
심사위원들은 과거 인찬이 운암정을 두고 이원과 붙을 당시 인찬의 황복 회를 먹고 독에 중독이 되었던 적이 있던 이들이다. 그 때문에 거부를 하는 것으로 시나리오는 잡혀 있었다.
그리고 오늘의 경우는 기자 한 사람과 덧붙여서 엑스트라가 오고 특별한 인사가 오게 된다.
그 특별한 인사는 다름 아닌, ‘미스터 권’이라고 불리는 이였다. 현재 버즈 알 아랍 호텔에서 수석총괄주방장을 맡은 그는 휴가 기간 자신의 본국에 온 것이었는데, 그가 촬영장에 오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송준기 선생님께서 작품을 구상하시면서 미스터 권과의 이메일을 주고받았던 적이 있다고 언급하였다.
송 선생님은 미스터 권을 통해 정보를 얻은 것이라 할 수 있었으며 다른 자료 조사와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여 식객전쟁이라는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마침 휴가를 나와 있던 미스터 권은 송 선생님의 권유를 받고 이곳에 방문 예정이었다.
미스터 권. 권영훈은 대한민국 요리사 중에서는 우상으로 꼽히는 이였다. 실상 민후가 알고 있는 김채은도 권영훈과 두고 따지자면 한없이 그 인지도가 낮고 부족한 편이다.
그만큼 권영훈은 인지도가 큰 편에 속하였으며, 하물며 알 아랍 호텔에서의 수석총괄주방장을 맡고 있었다. 김채은은 과거 조리장으로서 제의를 받았었다. 그러나 수석총괄주방장과는 그 급이 달랐다. 총괄주방장은 말 그대로 각 분야를 전부 통솔하고 담당하는 이라는 뜻이었으며, 더불어서 알 아랍 호텔의 경우 세계 각국의 요리사들이 밀집된 곳이었다.
그곳에서 대한민국의 사람이 수석총괄주방장을 맡고 있다는 것은 나라에서도 기뻐할 만한 사실이었으며 더불어서 대한민국 요리사들의 우상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촬영은 일단 엑스트라들과 배우들을 그 안에 껴놓은 상황에서 요리 대회의 배경을 롱숏을 통해서 잡을 것이었다. 롱숏을 통한 촬영이 끝난 후에는 엑스트라들은 분명 출연을 하나, 각 배우를 웨이스트 숏과 클로즈업 기법 등 갖은 기법을 활용하여서 배우 중심으로 요리하는 장면을 포착할 계획이었다.
“OK! 20분 쉬었다 갑니다. 엑스트라 분들 늦지 않게 오세요.”
“미스터 권이면 배우급으로 치면 톰 크루즈 정도 되나?”
“우리나라에서는 그 정도 급은 되지 않을까요.”
배경 중심으로의 촬영이 끝이 나고 잠시 쉬었다 간다는 말에 쉬기 위해 이동하면서 용주와 대화를 나누었다. 실상 두 사람도 몇 개월씩이지만 요리를 배워 본 이들이었기 때문에 촬영장에 권영훈이 온다는 사실에 많이 긴장하고 있었다. 만약 촬영 중 온다면 그가 직접 자신들이 요리하는 장면을 지켜본다는 것이 아닌가.
괜히 떨려서 실수하지는 않을까 하는 작은 걱정을 한다.
“그보다 생각은 해 봤어? 용호상박. 난 아직 들어가기에는 부족해서 못 들어갔지만 너 정도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용주가 말하는 용호상박은 배우들의 모임을 일컫는 것이었다.
민후가 알고 있는 배우들의 모임은 총 세 종류가 있었다. 그 첫 번째 중 하나가 바로 용호상박. 용주가 며칠 전부터 들어가기 위해 애를 썼지만 결국 들어가지 못한 모임이었다.
배우들의 모임 중 세 가지 중 하나로 불리는 용호상박은 젊고 연기력이 좋으며 관중들에게 인지도를 받고 있는 젊은 배우들의 ‘더욱 높은 자리를 두고 겨룬다.’라는 의미의 모임이었는데, 젊지만 대한민국에서 상당한 이슈를 가졌던 젊은 배우들이 주로 소속되어 있었다.
하물며 그중 도원빈과 송수현도 껴있을 정도로 그 급이 높은 수준에 이르는 편이었다. 그 자리에서 대부분 정보공유나 혹은 친목을 다지는 행위를 하는데, 젊은 배우들은 많으나 의외로 들어가기 까다로웠다.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는 배우는 모임에 낄 수 없으며, 혹여 용호상박 소속원이라고 할지라도 물의를 일으키면 자체적으로 모임과 연락이 끊기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그와 모임에 든 이들의 친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만의 나름 엄격한 규율이라고 할 수 있었으며, 열애설 정도는 봐주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두 번째로 진배모.
진배모는 주로 마흔을 넘어선 중역 노역 배우들이 상당했으며 모두가 실력파 배우들로서 용호상박보다 그 스케일이 거대한 편이었다. 그러나 규율은 용호상박처럼 까다롭지는 않았다. 다만, 서로서로 존중하고 예의를 갖춰야 했으며 과거 최강호이던 시절 민후도 이 모임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민후는 사실 처음 모임에 든다는 것에 의아함도 있었지만 실제로 진배모 같은 배우들이 많은 모임에 들게 되면 득을 볼 것이 많았다.
각종 작품 관련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으며 덧붙여서 노역 배우들로부터 조언을 들을 수도 있었고, 또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기 마련이었던지라 실보다는 득이 훨씬 많은 편이었다.
민후도 진배모 모임에 참석할 당시에는 상당히 즐겁게 임했던 적이 많았다.
세 번째, 연사모. 연기자를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뜻이었다. 연사모는 다른 언급된 모임보다는 일반인들에게 거의 대중화된 모임이었다. 이 안에는 가수이지만 배우 생활도 함께 하는 배우들이나, 혹은 연사모에 들고 싶은 이들이 들게 되는데 특별히 따지는 것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대부분 젊은 연기자들이 모임을 하고 있었는데, 실상 용호상박이나 진배모 회원들에 비하면 그 연기력이 무척 떨어진다고 할 수 있었다. 용호상박과 진배모의 경우 대한민국을 휘어잡을 법한 스타들이 대거 있는 것에 반면, 연사모의 경우는 한참 신인이며 또한 배우로서의 삶보다는 인기를 얻기 위한 연기자를 걷는 이들이 많은 듯싶었다.
그래도 실상 언급했듯 언론에 가장 잘 알려진 모임은 연사모라고 할 수 있었다.
사실 민후도 상당히 고려하는 중이었다. 용호상박. 실제로 용주는 들지 못하였다. 아직 경험이 부족하였고, 또한 인기도 낮은 편에 속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모임에서 누군가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 황당할 수도 있었지만 그만큼 비밀스러운 정보도 공유되고는 하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었으며 그로 인해 검증된 배우를 받는 편이다.
현재 민후는 긍정적으로 고려하는 중이었다. 용호상박. 진배모에는 뒤처질지 모르나 현재 민후의 나이 대에는 들기에 적합하였으며 다른 배우들과도 친목을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번 컷은 두 사람의 손과 움직임을 집중적으로 포착할 거야. 그냥 평소처럼 요리하면 된다. 그러면서도 대회라는 것에 긴장감이 옭매여 있듯이. 잘 알았지?”
진 감독이 민후와 용주에게 다가와서 한 말이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촬영이 재개되었다.
주위의 카메라들이 민후와 용주를 집중적으로 촬영을 하기 시작하였다.
민후는 정말 평소처럼 요리한다고 가정했다.
<도마 위로 팔딱거리는 신선한 황복이 올라와 있다. 인찬은 결의에 찬 표정으로 황복을 본다. 자신을 몰락시킨 황복. 그러나 그는 자신이 그 당시 제독을 잘못하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옆의 마을 이장이자 자신에게는 항상 자신을 믿어주는 형인 호성을 부른다.
“형.”
“응?”
“나 다시 시작할 수 있지?”
“그럼.”
“내가 최고 맞지?”
“그럼, 니가 최고야.”
“그래, 그 이야기가 듣고 싶었어.”
자신은 최고다. 인찬은 머릿속으로 계속 되뇐다. 그는 칼을 한 자루 쥔다.
“인찬아, 주최 측에 이야기해서 재료 바꾸자. 다른 무슨 방법이 있을 거야.”
인찬은 그의 말에 빙긋 웃으면서 잡혀 있는 자신의 손에서 그의 손을 걷어낸다.
“아니야, 할 수 있어.”
“아, 글쎄 안 된다니까.”
호성은 막는다. 분명 자신도 인찬이 최고의 요리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찬으로 하여금 복어 독에 중독되었던 이들이 있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본인은 보지 못하였던 것이고, 이원이 꾸민 일이었으나 실제로 그것을 알지 못하는 호성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재료 바꾸자.”
“내가 최고야. 형이 그랬잖아, 내가 최고라고.”
그는 크게 심호흡을 한다.>
심호흡을 쉰 민후는 황복을 내려다보았다. 머릿속으로 인찬의 심정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였고, 어느덧 그는 강민후라는 배우가 아닌 김인찬이라는 자신을 최고의 요리사라고 굳게 믿는 이가 되어 있었다.
그의 손이 노련하게 황복의 머리를 제거한다. 지느러미를 제거하고 껍질을 단숨에 벗겨낸다. 그의 손이 황복을 회를 치기 시작하였다. 최대한 얇고 정갈하게 그 크기를 맞춘다.
민후는 땀이 흘렀다. 옆에 서 있는 호성 역인 은표가 땀을 닦아준다.
그러던 중 때마침 도착한 인원들이 있었다. 바로 송준기 선생님과 권영훈이었다. 촬영장으로 들어온 그들은 촬영팀 인원들이 숨을 죽이고 촬영에 집중하고 있자 최대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진 감독.”
“아, 선생님 오셨습니까. 이 친구가 미스터 권인가요?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권영훈을 본 진 감독은 이채를 띠며 권영훈에게 악수를 청했다. 실제로 진 감독도 그를 잘 알고 있었다. 현재 소문에 의하면 나라에서 알 아랍 호텔에 있는 그를 다시 본국으로 돌아와서 요리를 해주면 안 되겠냐고 요청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국가마다 그 나라를 대표하는 요리사들이 있기 마련이고, 대한민국에서는 미스터 권이 그러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그가 본국으로 돌아오기를 정부에서는 깊이 바라고 있다고 아는 사람들은 아는 이야기였다.
“촬영 중에 와 버렸네요.”
“예, 잠시. 모니터 좀 하겠습니다.”
진 감독은 양해를 구했다. 현재 촬영 중이었던지라 말이 길어지지 않았다. 진 감독은 집중하여서 모니터를 확인하였고, 절로 그 뒤쪽에 서 있던 권영훈과 송준기 선생님도 모니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저 친구 갈수록 실력이 늘어.”
“흐음…….”
송준기는 화면을 보면서 민후를 다시 보더니 삐뚤어진 안경을 맞추면서 본인도 모르게 감탄하여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에 권영훈도 모니터에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정교하고 차분하다. 그러면서도 노련함이 숨어 있어. 수년 동안 배웠나? 아니다, 그럴 수는 없어. 저 사람은 수개월만 배웠다고 했어.’
권영훈도 다소 놀란 모습으로 화면을 보다가 촬영을 하는 민후를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손의 움직임이나 섬세함 등이 상당히 대단한 친구였다.
몇 년간의 경력이 있나 하고 생각해 보지만, 그것은 아닐 것을 잘 안다. 그리고 흘려들은 것으로 강민후라는 배우가 총 트레이닝 받은 기간은 4개월.
그러나 그 4개월을 저것만 죽도록 연습한 것도 아닐 것이다. 식객전쟁이라는 시나리오에 다양한 요리들이 적혀있다고 하니 말이다.
그는 자신의 턱을 어루만졌다.
‘대단한 친구네, 저 친구.’
그는 작은 감탄을 한다. 배우 중에서 요리에 천재성을 가진 이가 있을 줄은 몰랐다. 실제로 4개월에서 계산을 하여서 2개월을 배웠다고 그는 가정해 본다.
그러나 그 2개월의 과정 중 강민후라는 배우의 스케줄을 고려하고, 연습을 종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안 선다.
자신 본인도 만약 그렇게 바쁘게 생활하면서 연습했다고 가정하면 몇 개월 만에 저 정도 실력이 나왔을까 하는 의문이 설 정도였다.
그가 본 강민후라는 배우는 요리에 큰 천재성을 가진 이였다.
실제로 민후의 능통함의 영단과 독종성 강한 노력이 이루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후우…….”
한 마리의 학을 멋들어지게 완성해낸 그는 인찬인 것처럼 ‘해냈다’라고 여기면서 깊은숨을 내뱉는다.
“OK! 좋아! 이야, 한 컷에 나왔네, 한 컷에!”
진 감독은 감탄하면서 손뼉을 쳤다. 용주도, 민후도 한 컷에 나올 만큼 잘해주었다. 특히나 민후의 손놀림은 프로 못지않았기에 만족하였다.
“읏차! 난 강민후다, 나는 강민후다.”
이것은 민후에게 실제로 있는 습관이다. 어쩌면 민후에게가 아니라 강호에게 있었던 습관이었다. 그는 촬영이 끝나면 남들이 들리지 않게 자신의 이름을 되뇐다.
스스로가 그 극 중 역할이라고 생각하던 것에서 벗어나 자신으로 돌아오기 위함이었다. 대단한 경지라고 할 수 있었다.
몇 번 중얼거린 그는 모니터를 확인하기 위해 움직이려다가 송준기 선생님과 덧붙여서 권영훈, 그리고 기자를 볼 수 있었다.
기자는 딱 한 사람만 촬영장 출입을 허용했다. 촬영에 지장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강민후라고 합니다.”
먼저 그는 서둘러 다가가 송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권영훈을 보았다. 권영훈은 그가 내민 손을 맞잡으면서 방긋 웃어 보였다.
“복장이 잘 어울리네요?”
그의 말에 민후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옆에 서 있던 여성 기자가 영훈에게 묻는다.
“권 셰프님께서 조금 전에 강민후 씨의 요리하는 모습을 유심히 보는 것 같던데.”
그녀는 기자답게 날카로운 눈썰미를 가진 여성이었다. 그에 권영훈은 헛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기사를 써갈 정보를 얻으려고 할 줄이야. 하는 생각이 스친다.
“어떻던가요?”
“흐음.”
그는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민후를 보았다. 민후는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채은에게 인정받은 실력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최고로서 꼽히는 이가 앞에 있었다. 그의 평가가 궁금하다.
“대단합니다. 듣기로는 4개월? 맞나요? 교육받았던 기간이? 4개월 동안 저 정도의 손의 움직임이 나오기는 쉽지 않습니다. 되레 보고 저도 놀랐어요. 상당한 경력의 요리사를 보는 것 같았거든요.”
“그렇군요.”
민후는 작은 웃음을 지었다. 그에게 극찬을 받는 것이었다. 기자는 빠른 손놀림으로 메모장에 그것을 적어나갔다.
“송준기 선생님께서 강민후라는 배우가 영화를 크게 살려준다고 오는 내내 입에 달고는 하셨어요. 그래서 저도 크게 기대했었는데 저도 많이 놀랐습니다.”
“감사합니다.”
민후는 그의 칭찬에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권영훈은 만족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그의 손을 흘끗 보았다.
손은 깨끗했다. 요리사의 정석이다. 단, 놀라운 건 4개월 동안 그가 다친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다쳤는데 여물었을 수도 있으나, 깊게 베인 상처의 경우 몇 개월이 지나도 그 흔적이 조금 남아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것은 손에 각별한 신경을 쓰면서도 저 정도의 실력을 냈다는 것이다.
‘호텔에서 만났다면 크게 키워보고 싶었을 거야. 그렇지만 배우라는 직업이니…….’
그는 민후나 다른 배우들과 인사를 마치고 촬영장을 둘러보면서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만약 호텔에서 민후가 이제 막 들어온 신입이었다면 그의 실력을 보고, 자신이 크게 키우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싶다.
-식객전쟁 영화 촬영장에 대한민국 최고의 요리사로 손꼽히는 미스터 권, 식객전쟁 원작가 송준기 만화가 방문해…… (이동은 기자)
한국 만화계의 거장 송준기 만화가의 작품 식객전쟁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에 벌써 많은 이들의 관심이 뜨겁다. 하물며, 강민후는 요리를 배우는 과정에서 독특함과 자신만의 개성을 보임으로써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으며, 얼마 전 촬영장에 송준기 만화가와 미스터 권, 권영훈이 함께 방문하였던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우연히도 두 사람이 방문하였을 때는 배우 강민후가 요리하는 모습이 촬영되고 있던 시점. 그 모습을 본 미스터 권, 권영훈은 그에 대한 극찬을 해 보였다. ‘실제로 몇 개월의 트레이닝 동안 이루기 힘든 경지이다. 대단하다.’ 등의 반응을 보였으며 덧붙여서 송준기 만화가는 강민후라는 배우에 대해서 ‘멋지고 어린 친구지만 존경스럽기도 한 친구인 것 같다.’라고 표현하였다. 배우 강민후는 권영훈 셰프와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송준기 만화가와는 안면이 있던 사이로 평소 그를 알고 있었던 송준기 만화가는 그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한편, 그의 이로 인하여 더욱 큰 기대가 모이는 가운데 그의 요리 실력은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진호범 감독의……(생략).
* * *
식객전쟁 영화 촬영이 어느덧 마무리되었다. 촬영이 끝난 시기는 5월 말. 개봉은 일부러 늦추기로 하였다. 추석 연휴 시즌에 맞춰서 개봉하는 것으로 합의가 끝난 상황이었으며 민후에게는 몇 개월간의 쉴 수 있는 기간이 생긴 것과도 같았다.
식객전쟁의 홍보에 관련하여서 뛰어다니는 일은 개봉 한 달 전에 하여도 충분한 실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민후는 결국 결단을 내렸다. 고려하고 있었던 용호상박, 그곳에 소속되기로 한 것이다. 용주를 통하여서 주선자가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했다. 주선자가 누구인지 현재는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주선자와 만나는 것이기는 하였지만 그렇다고 민후가 용호상박에 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확정된 상황은 아니었다. 아마도 오늘 이야기를 통해서 진행될 것 같았다.
약속 장소는 룸카페였다. 적절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민후나 상대방이나 유명 인사였다.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만 얼굴을 잘 숨기면 별 탈 없을 것이었다.
매니저와 함께 들어온 민후는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한 상황이었다. 룸카페 안으로 들어오니 깔끔한 신사복을 입은 아르바이트생과 더불어서 앞쪽에서 기다리는 이가 있었다.
정수가 기다리던 이를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였어?”
“형님, 안녕하세요.”
매니저는 정수에게 최대한 깍듯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수도 매니저들 사이에서는 그 인지도가 상당한 인물이었고, 수준급의 실력을 갖춘 이다.
“형, 누구 매니저인데요?”
“궁금해? 궁금하면 네가 가서 확인해봐.”
정수는 상당히 놀란 기색이었다. 때문에 민후는 누구의 매니저이기 때문인가 싶어 물었지만, 그는 장난스레 웃었다.
“바로 옆방에 저희도 자리 잡아놨어요. 오랜만에 저희도 대화 좀 나눠요.”
상대측 매니저는 정수를 보고는 설레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그도 매니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기에 매니저 사이에서 인지도가 높고, 젊은 편에 속하지만 대단한 실력을 갖췄다고 평가되는 정수와의 만남이 기쁜 듯싶었다.
민후는 안내받은 룸 앞에 섰다. 그리고 커튼을 걷어내고 들어간 민후는 상당히 놀란 기색이 되었다.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이였으며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도원빈이라고 부른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많이 놀라신 거 같네요.”
그는 빙긋 웃으며 맞은편 자리를 가리켰다. 민후도 마스크와 모자를 벗고는 어안이 벙벙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보고는 헛웃음 지었다.
실제로 도원빈은 무척 바쁜 인사다. 자신보다도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제 막 서른이 된 그는, 서른이라는 나이에 비해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배우였다.
그런 그가 주선자로서 이 자리에 나왔다는 것에 의아했다. 주선자로서 활동할 만큼 그는 한가한 사람이 아닐 것이니 말이다.
“사실 강민후 씨가 용호상박에 들어오고 싶다고 해서 제가 나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시시회 이후, 오래간만에 뵙고 싶기도 했고요.”
그는 빙긋 웃으면서 벨을 눌렀다. 곧 종업원이 들어왔다가 흠칫 놀란 기색이다. 도원빈은 아까 전 얼굴을 확인하고는 크게 놀랐고, 두 번째로 들어온 이가 강민후라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라는 것이다.
이 지역이 연예인들을 숱하게 볼 수 있는 곳이기는 하였으나 도원빈이든, 강민후든 이름이 가벼운 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는 시원한 카페모카 한 잔 주세요.”
“어? 이거 저하고 입맛이 같은데요? 하하, 이야- 통했어요.”
도원빈은 그의 말에 방긋 자신의 잔을 어루만지며 장난스레 말했다.
“아시죠? 철저히 쉿.”
“예, 알겠습니다. 쉿. 대신 가실 때 사인 한 장씩만 해주시고 가세요.”
“아, 요즘 그런 거 되게 많이 하던데요. 연예인분들 사인을 가게에 걸어놓기도 하고. 같이 찍은 사진 액자로도 하고.”
“그렇죠. 가끔 ‘누가 누가 앉은 자리’라고 하기도 하던데.”
도원빈의 부드러운 어조에 민후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직원은 들켰다는 듯이 어색하게 웃고는 밖으로 나섰다. ‘직원이 잘생겼네요.’ 하고 민후는 장난스레 말했다.
“강민후 씨가 용호상박…… 흠, 이제 말은 놔도 되겠죠?”
그는 말을 이으려다가 어색함을 느끼고는 물었다. 당연했다. 그가 연기도, 나이도 현재로서는 자신보다 훨씬 선배였다.
“민후 네가 용호상박에 들어온다고 해서 상당히 놀랐다.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하고. 그래서 내가 나온다고 했지.”
그는 빨대로 휘휘 유리잔의 내용물을 젓고는 한 모금 입을 축였다. 그는 시사회 당시 만난 이후 현역으로 입영을 하였다가 부대 내에서 축구를 하던 도중 십자인대 파열로 인하여서 전역을 하게 되었다.
도원빈은 실상 강민후라는 친구와 이렇듯 둘만의 자리를 마련해보고 싶었다. 기대가 많은 친구였고, 아직도 머릿속에 프롭 총을 들고 총검술을 하는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과거 한석민 감독과의 술자리에서 술을 마시다 문득, 한석민 감독님께서 도원빈에게 강민후라는 엑스트라와 눈이 닮았다고 말씀하였고, 그 친구가 배우가 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데뷔하게 될 것이라고 여겼는데, 그것이 사실이 되었다고 언급한 적이 있었다.
그만큼 강민후는 도원빈 그만이 기대했던 것이 아니라 그를 만났던 상당한 이들이 기대하였던 인물인 것이다.
그 때문에 민후가 용호상박에 들어온다는 소식을 접하였을 때 자신이 일부러 시간을 내어 그를 만나러 왔다.
그와 친해지고 싶었다.
“어디 보자. 네가 작품 세 개째에 논스톱 시청률은 13% 이상. 이 정도면 시트콤 중에서는 흥했다고 할 수 있고, 42.195㎞는 600만 관객 돌파. 첫 영화에서 말이지.”
그는 계산하듯 말한다. 아마도 용호상박의 조건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번 작품 식객전쟁. 총 작품을 세 개 했네? 앞서 두 작품은 흥했고, 이제 개봉할 건 시간이 좀 더 차차 흐르면 알겠지만.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워낙 모임원들이 깐깐해 자기들이 정수기인 줄 알아.”
도원빈의 재치 있는 농담에 민후는 ‘쿡’ 하고 웃어버렸다. 정수기로 비유할 줄은 몰랐다. 그러나 확실히 깐깐하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모든 배우가 들 수 있다면 그 희소성이 떨어질 테고, 용호상박이라는 이름이 무색해짐이 사실일 것이다. 하물며 도원빈이 소속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스케일의 짐작이 가능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