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진정한 요리사, 밥차 부부
진 감독은 언급했듯이 괴짜 같은 사람이었다. 그러하여진 진 감독은 대본 리딩과 더불어서 서로 간의 친목을 도모하게 될 장소를 의외의 곳으로 잡았다.
다름 아닌 채은의 학원이었다. 시간은 9시부터 12시 반까지였는데, 채은의 양해도 구한 상황이었으며 특별 지도실에서 9시에 모두가 만날 예정이었다.
대충 그의 생각을 짐작한 민후는 밴을 타고 이동 중이었다. 아마도 오늘 그 자리에서 자신은 요리하게 될 것이며 상대배역인 이용주 역시도 그러할 것이다.
민후가 스물셋의 무척 젊은 배우의 축에 속한다면 이용주라는 배우는 이제 갓 서른이 된 한창 뜨고 있는 신인배우였다. 잘 생기지는 않았으나 개성이 강한 얼굴과 엉뚱한 성격으로 꽤 두꺼운 고정 팬들을 사로잡고 있는 남성이었다.
그러한 이용주는 주인공인 김인찬을 맡게 될 강민후가 대역 없이 간다는 사실이 그 역시도 트레이닝을 받은 바가 있었다. 물론 민후만큼은 아니었고, 본래 받아야 할 기간인 2개월을 받은 셈이다.
실상 민후보다 그의 배역은 작은 편에 속하는 것이 당연하였으며 요리하는 장면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또 부족한 부분은 대역을 사용할 것이었다.
어떠한 이는 대역을 사용하고 어떠한 이는 안 쓴다는 것이 조금 걸리는 일이기는 하였으나 대역을 쓸 일도 몇 번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
“흐음…….”
민후는 노트북으로 이번 영화에서 출연하는 ‘여자 기자’ 역할을 맡은 여인의 프로필을 보고는 낮은 신음을 흘렸다. 여인은 젊은 여성이었으며 자신 또래로 추정되었다.
검색해보니 사진은 뜨나 신인배우였다. 알기로는 데뷔를 뮤직비디오 출연으로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민후가 낮은 신음을 흘리는 이유는 낯이 익었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본 것 같은 외모였다. ‘어디서 봤더라…….’ 하고 그는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잘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이 정도까지 기억을 못 하는 것을 보니, 하루 만나고 스쳐 지나갔던 인연으로 추정이 되었다.
어차피 가서 만나게 되면 해답이 풀릴 것이다.
곧 밴이 학원의 주차장에서 멈춰 섰는데, 민후는 이미 먼저 도착해 있는 밴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하얀색의 밴이었는데, 그 차량도 이제 막 도착한 것인지 시동 꺼지는 소리가 들린다.
곧 차에서 내린 여성을 본 민후는 눈살을 찌푸렸다. 가까이서 보니 더욱더 낯이 익었다.
이내 민후도 차에서 내렸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그녀는 민후에게 자연스럽게 ‘선배님’ 호칭을 붙였다. 작년 말에 데뷔하였고, 아마도 그녀의 대표작은 이번 작품인 식객전쟁이 될 듯하다.
민후는 그녀가 자신보다 한 살 어린 것을 검색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는 어색하게 웃었다.
“내가 선배고 나이도 많으니까 말 놔도 되지?”
이젠 제법 노련한 배우티가 나는 민후였다. 그의 물음에 그녀는 당연히 된다는 듯이 큼지막한 눈을 깜빡거리며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그런데 우리 어디서 본 적 있나?”
함께 특별 지도실로 올라서면서 그가 묻자 그녀가 안타깝다는 목소리였다.
“역시 선배님은 저를 기억 못 하시네요.”
“응? 역시 그렇다는 건 우리 만난 적 있지?”
민후는 그녀의 말을 듣고는 확실히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확실히 자신과 그녀는 구면이었다.
그녀가 빙긋 웃더니 묻는다.
“저기요, 아까 하셨던 말 정말 도움이 크게 될 것 같아서요. 그리고 이 분야에 어느 정도 아시는 분 같은데…… 어디서 커피 같이 마실래요?”
“어어……!? 학원!?”
“예! 맞아요, 선배님.”
민후는 눈을 크게 뜨면서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켰다. 어디서 본 것인가 하였더니 자신이 과거 어머니가 끊어준 연기학원에 갔다가 자신의 연기를 보고 가장 많은 질문과 덧붙여서 학원이 끝나고 자신에게 관심을 보였던 여성이었다.
어느덧 고등학생이었던 그녀도 시간이 점차 흐르자 상당히 성숙해졌다. 그 당시에는 한낱 애기 같았던 모습이었는데 말이다.
물론 민후도 그런 식으로 말할 외적 나이를 갖춘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야, 이렇게 다시 보게 되니까 무척 반갑네.”
“저도 반가워요, 선배님.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죠. 히힛.”
민후가 머리를 두들기면서 이제 기억났다는 듯 제스처를 취하자 그녀가 장난스레 웃는다.
“아직도 저를 그렇게 냉정하게 거절하셨던 선배님의 모습이 잊히지 않아요.”
“그, 그땐 내가 좀 바빠서 그랬지.”
“장난이에요- 어쩌면 제가 여기까지 온 것 중에 선배님 덕이 무척 컸어요. 선생님이 추천해주셨던 학원, 정말 잘 가르쳐주더라고요. 따봉!”
그녀는 장난기가 많고 활발해 보였다. 고등학생 시절, 수줍게 자신에게 ‘커피’ 한 잔을 권유했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실상 김하나는 그 덕분에 지금 이곳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권유해주었던 학원은 자신이 그 당시 다니던 학원과 상당한 차이를 보였으며 더불어서 학원의 원장 선생님께서 무척 친절했고, 본래 배우려는 의지가 강했던 학생 김하나는 성실히 배워서 차근차근 배우로서의 길을 밟아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우연히 첫 작품을 자신을 여기까지 인도해 준 것에 한몫 단단히 한 강민후와 함께 하게 된 것이다.
실상 그녀는 그 당시에 느꼈다. 아니, 어쩌면 학원 내에서 그의 연기를 본 수많은 이들이 알아챘을 것이다. 강민후는 몇 년 내에 상당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연기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몇 년이 지난 현재 완전한 사실이 되어있는 상황이었다.
함께 계단을 밟고 특별 지도실로 오자 먼저 도착해 있는 이는 없었다. 있다면 채은이 원장실에 있다가 인기척에 밖으로 나왔다.
“이 학원 원장님이셔.”
“아, 안녕하세요.”
하나는 민후의 소개에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인다. 그녀는 순간 채은을 처음 보자마자 위압감을 느꼈다. ‘무슨 학원 원장이 이렇게 예뻐?’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민후는 그녀를 거부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문신을 지우기 위해 병원에 다니고 있었으며 더불어서 가발도 착용하고 있었다. 머리가 어느 정도 길면 아예 단발머리를 유지하며 가발 착용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두 사람은 그 일이 있기 전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서로를 대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강민후의 생각일지도 몰랐다. 채은은 이렇게 민후를 보게 되니 가슴이 뛰고 좋기도 하면서도 씁쓸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마음을 강민후는 아마 모를 것이다.
하나둘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그중에는 원작 식객전쟁을 각색하여서 시나리오를 쓴 시나리오 작가도, 그리고 제작사 측의 관계자도 있었으며 의외로 송준기 선생님도 참여하셨다.
배우로는 이용주와 이은표, 지상호가 있었다. 이은표와 지상호의 경우 중년의 배우들로서 주연보다는 조연으로의 비중이 큰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번 시나리오를 훑어보았을 때 두 사람은 재미를 더하기 위하여서 ‘라면’을 가미했다.
지상호는 극 중 우중거 역을 맡고, 이용주의 극 중 역할인 이원을 보조하게 되는 역할인데 인찬을 보조하는 이은표가 맡은 호성과 군대 선후임 사이였다.
하물며 우중거는 라면에 목숨이라도 바친 것처럼 행동하기도 하며, 또한 군대에서 호성이 끓여주었던 라면의 맛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다면서 재미있는 시나리오를 만들어내는 인물들이다.
그 외에도 숯장이였으나 현재는 정육점 사장님이 된 덕기 역의 우진이나 이원의 조부 역으로 나오는 구진태 선생님도 계셨다.
민후는 들어오는 이마다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인사를 드렸다. 특히나 구진태 선생님의 경우 수십 년 경력의 배우셨다. 물론 그 인지도가 큰 편은 아니었으나 오랜 시간 연기자라는 수식어를 다셨던 분인 만큼 예의를 갖추는 것이 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송준기 선생님도 함께하셨는데, 선생님께선 진호범 감독과 함께 들어오셨다.
“앉을 데도 없는 이곳에서 제가 뵙기로 청한 이유를 대충 감 잡으셨으리라 믿습니다.”
진호범 감독은 인사말과 더불어서 다른 이야기들을 하다가 그들을 둘러보면서 뱉어냈다. 다른 이들도 대충 짐작했다는 모습이었다.
역시나 장난기 가득하고 사차원적인 성격의 진 감독! 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 요리사분께서는 앞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짓궂은 표정으로 두 사람을 ‘요리사’라고 호칭하였다. 그러다 진 감독이 한편에 서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채은을 보았다. 채은은 따로 연락을 받은 것이 있었던 듯싶었다.
그녀는 요리 재료를 두 사람 앞에 준비해주었다. 민후는 빙긋 웃었다.
오늘도 이곳에서 자신의 요리를 뽐내게 될 것이다. 하물며, 4개월 전 진 감독과 송 선생님의 경우는 자신이 만들어낸 육사시미를 먹었던 기억이 있었다.
두 사람 때문에 더욱 기대가 큰 편이었다. 4개월 동안 민후가 더욱 일취월장한다는 이야기는 수시로 들을 수 있었다, 하물며 기사에서 민후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전해왔는데,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황복 요리를 위해서 어판장에서 일했다는 사실이었다.
한창 뜨고 있는 배우가 어판장에서 일한다? 그것은 정말 신선한 일이었다. 대개 자존심이 강한 배우가, 나쁘게 표현하면 비린내가 강하게 풍기고 투박해 보이는 일을 하는 이들이 있는 그곳에서 일을 배운다는 것이 말이다. 그러나 좋게 말하면 그들의 노하우도 배우고 하물며 칼을 만지는 실력도 익힌다. 무척 기특한 것이었다.
민후에게 주어진 재료는 황복과 더불어서 꿩이었다. 그리고 용주에게는 닭 요리가 주어졌다. 민후에게는 두 가지의 요리가, 용주에게는 한 가지의 요리가 돌아간 이유는 아무래도 용주가 더욱 부족할 수밖에 없기에 한 가지 요리에 전념해서 만족시키라는 의미였다.
그를 나름 배려한 것이다. 하물며 이중의 모든 이들은 민후가 4개월간 트레이닝 받고, 용주가 2개월간 트레이닝 받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실상 어찌 보면 용주는 민후에 의해서 안 좋은 점수를 받을지도 몰랐다.
어떤 배우는 4개월간 하였는데, 어떤 배우는 2개월간 하였다. 영화가 잘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섰을 때 민후의 노력이 훨씬 엿보인다.
하지만 민후가 대역 없이 한다고 나가기로 한 것은 진 감독과 민후의 의지였다. 꼭 그 의지를 용주도 따를 필요는 없었으며 그것을 강요했다면 아마도 대부분의 배우가 ‘이원’ 역을 멀리했을지도 모른다.
곧이어 민후와 용주가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칼과 재료가 놓인 싱크대 앞으로 섰다.
송 선생님이 작게 웃으며 옆의 진 감독에게 말한다.
“마치 지금 인찬과 이원의 대결이 보이는 것 같아요. 하하.”
“그렇죠. 뒷모습이 그럴싸해요.”
두 사람은 빙긋 웃었다.
곧 두 사람의 요리가 시작되었다.
민후는 노련하게 황복 손질을 시작하고 덧붙여서 용주도 닭 요리를 시작하였다. 민후의 손이 빠르게 움직이면서 노련하게 황복을 요리하여 한 점 한 점 올려놓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곧 완성된 한 마리의 학.
그것을 한편에 올려놓은 민후는 그것이 보이지 않게 감췄다. 그리고 곧 채소를 손질했다.
탁탁탁탁!
채소를 손질하는 그의 손놀림과 소리가 호텔 주방장에서 나는 소리 못지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이들은 작은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용주의 경우도 2개월뿐이었지만 최선을 다해서 배운 덕택에 닭 요리만큼은 능숙하게 해낼 수 있었다.
곧 완성된 요리를 두 사람이 그들 앞에 놓았다.
“우와…….”
“어머…….”
“이게, 이게 배우 두 사람이 만든 거라고?”
용주와 민후가 앞으로 내놓은 음식을 보면서 그들은 진심으로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몇 개월간의 트레이닝을 했으니 어느 정도의 결과물은 나와야 당연하였다.
그렇지만 막상 이렇듯 요리라는 것을 예술로써 승화시킨 두 사람의 노고에 진실 된 박수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짝짝짝짝.
민후의 것도 용주의 것도 상당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프로 중의 프로인 채은이 보았을 때 용주도 2개월간 배운 것치고 훌륭한 솜씨라고 할 수 있으나 민후에게는 미치지 못할,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닭의 생김새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삶아진 닭은 껍질이 군데군데 상해 있었다. 그만큼 필요한 시간보다 많이 삶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 부분에서 채은은 점수를 먹이는 대회 과정이라면 감점을 주었을 것이다.
그에 비해서 민후가 만들어낸 두 요리는 자신에게도 9점 10점을 받을 만큼 훌륭했다.
만들어진 음식을 곧 옹기종기 서 있던 이들이 시식하기 시작하였다. 그들 모두 만족한다는 모습들이었으며 열댓 명 정도 되는 인원들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만들어낸 음식은 모두 싹싹 비워졌다.
“아, 너무 맛있는데?”
“아쉽다, 아쉬워.”
맛있다고 감탄을 하는 이들을 보면서 민후는 요리사의 마음을 백 번, 천 번 이해하고 있었다. 남들이 자신이 만든 음식을 먹고 맛있다고 해주면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뿌듯했고 자부심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기분은 민후뿐만이 아니라 용주 역시도 느끼고 있는 듯싶었다.
두 사람이 트레이닝을 받았던 ‘요리’에 대해 오늘 온 이들은 모두 감탄하였다고 할 수 있었다. 곧 특별 지도실에서 내려온 그들은 이론 수업 실로 이동했다.
대본 리딩과 앞으로의 촬영 진행 방향에 관한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함이었다. 이론 수업 실에서 역시나 민후는 두각을 드러냈다. 시나리오는 언제나 그렇듯 머릿속에 또렷이 각인되어 있었고, 몸짓 없이 입으로만 하는 대본 리딩에서도 그는 두각을 드러내어 큰 관심을 받았다고 할 수 있었다.
사람들 모두가 이번 영화 식객전쟁의 주연을 맡게 된 젊은 배우 강민후에게 상당히 만족하는 모습이었으며 그들의 그러한 시선에 민후는 자부심을 느끼고 노력하였던 것만큼의 성과를 얻어낸 듯하다.
* * *
식객전쟁은 대한민국 최고의 맛을 낼 수 있는 요리사들의 대결구조를 그린 영화였으며, 그 안에는 잔잔한 에피소드와 더불어서 눈시울을 붉힐 만한 이야기들도, 그리고 교훈들도 곁들여진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었다.
조선 시대 최고의 요리사로 불리던 대령숙수의 칼이 발견됨으로써 열리게 되는 대회를 통하여 일구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극 중 민후가 맡게 된 역할인 김인찬은 천재 요리사였으며 더불어서 그의 할아버지께서는 대령숙수의 제자 중 한 사람으로서 표현되기도 한다. 더불어 대령숙수에게 독주를 준 장본인이기도 하지만, 뜻 있는 의미를 담아서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할 것이었다.
게다가 인찬의 라이벌로 나오게 되는 이용주가 맡은 임이원이라는 역할 역시도 오랜 시간 칼을 잡아 온 최고의 요리사 중 한 사람으로서 현재 운암정을 차지한 사람으로 나오게 되는데, 욕심 가득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무엇이든지 하는 야망을 품은, 쾌활하고 정직한 사나이 느낌의 인찬과는 반대되는 성향을 가진 인물로서 흔히 ‘악역’이라고 표현할 수 있었다.
용주의 할아버지 역시도 대령숙수의 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것으로 펼쳐지며 어찌 보면 식객전쟁에서 그리고 싶은 것은 대령숙수의 제자였던 이들의 손자들의 대결을 그린다고 할 수 있었다.
현재 촬영은 왕성하게 진행되고 있었으며 당연하게도 민후는 바쁜 촬영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져 버렸다. 잠을 못 자는 것은 당연지사였으며 부족한 잠을 가끔 쉬는 시간에 밴에서 쪽잠을 잘 수도 있건만 그는 여전히 노래 연습에 매진하고 있었다.
노래를 연습한 지 수 개월이 지났다. 이젠 노래를 하겠다, 하면 저절로 몸이 인지해 본인도 모르게 스스로 복식호흡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으며 발성도 무척 또렷해지고 발음도 정확해졌다.
때문에 다음 주에는 바이브레이션에 대해서 배우고 연습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자, 민후 씨는 가소롭다는 듯이, 그러면서도 자신의 진가를 보여주겠다는 듯이 하면 돼. 무슨 소리인 줄 알지?”
“예.”
진 감독, 그리고 민후와 용주가 나란히 함께 서 있었다. 극 중 인찬이 수년 만에 운암정을 찾게 되고 극 중 이임원과 대치를 하게 되는 장면을 그릴 컷이었다.
실상 시나리오상 인찬과 이원이 운암정을 두고 요리 대결을 펼쳤을 당시, 이원이 인찬이 준비한 황복 회에 황복 독을 넣어서 심사위원들을 독에 중독되게 하여 인찬이 부득이하게 운암정을 나가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인찬은 그 사실을 현재까지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이원의 경우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이 이기고자 했던 인찬을 그렇게라도 이겼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또 그를 억누르기 위해서 다시 운암정으로 돌아오라는 제의를 하게 되는 신이다.
“그리고 용주 씨는 거만하게. 잘 알지? 거만하게. 후우, 날씨도 덥고 하니까 두 사람 모두 고생하는 건 아는데, 이번 컷에서 빨리 끝내고 쉬자. 밥도 먹고 해야지.”
“예.”
“옙.”
이용주는 아직 얼굴을 크게 알리지 않은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단역으로 생활하였기 때문인지 상당히 노련한 연기력을 선보이고 있는 형님이었다.
하물며 민후가 그라는 배우에게 점수를 준다면 10점에서 8점 정도를 주고 싶었다. 상당히 그는 자신이 맡은 역할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물론 민후만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는 수시로 공부를 하는 모습도 보였으며 나름 자신만의 방식으로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노력을 하곤 했다.
그 때문에 꽤 좋아하는 형이 되었고, 그 때문인지 두 사람은 크게 친해졌다고 할 수 있었다.
“한 큐에 가자.”
“예, 형.”
실상 나이가 많아도 배우들끼리는 ‘선배님’이라는 호칭을 줄곧 쓰고는 하였다. 그런데도 민후가 이렇듯 ‘형’이라고 호칭하는 이유는 그만큼 그와 자신이 많이 친해졌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도 상당히 지쳐있었다. 어느덧 10월에 접어들었지만, 아직 그 열기가 남아 있었으며 오랜 시간 지속된 촬영에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다.
곧 촬영이 시작되었다.
<인찬은 어린 시절 운암정에 수백 개가 깔린 장독대의 한 곳 뚜껑 안쪽에 ‘최고가 되자’라고 적어놓았었다. 그는 그것을 열어보면서 과거의 추억을 회상했다.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이 운암정을 나서고 그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고 가끔은 이곳이 그리울 때가 많았다.
“대령숙수의 칼이 발견되었대. 그거 원래 운암정 물건이잖아. 우리 그거 찾아오자.”
이원은 뻔뻔하게도 누명을 씌워서 인찬을 운암정에서 쫓아놓고 ‘우리’라는 호칭을 자연스럽게 사용했다. 인찬은 그를 돌아보며 의아한 목소리로 묻는다.
“날 부른 이유가 그거였어?”
“운암정의 후예가 대령숙수의 칼을 찾는다, 멋있고 의미도 크지. 사람들은 내가 운암정의 칼을 가졌으면 해, 도와줄 거라 믿어. 운암정으로 돌아오라는 이야기야. 내 밑에 들어와서 주방을 맡아. 그게 네 소원이었잖아.”
이원은 그를 배려하는 듯하면서도 그의 심기를 긁고 있었다. 자신의 밑으로 돌아오라. 한때 운암정을 두고 최고의 요리사로서 거듭났던 인찬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시장에서 채소 장사나 하는 장사꾼이 된 실정이다.
그런 그를 대놓고 비하하고, 자신이 손써줄 테니 밑으로 들어오란 이야기였다. 그러나 인찬은 고개를 젓는다.
“내 소원은 최고의 요리사가 되는 거야.”
“운암정 주방을 맡는다는 건 최고의 요리사가 되는 거야, 그걸 내가 도와줄게.”
그의 말에 인찬은 실소를 흘렸다. 대놓고 자신을 비하하고 있었다. 그에게 도움을 받을 만큼 자신은 나약하지 않다.
“너 혹시 딴생각하는 거 아냐? 방송국 근처에서 얼쩡거리면서 요리계에 관심 두지 마. 그게 내가 아는 최소한의 요리사의 양심이야.”
그는 이제야 이빨을 드러냈다. 그에게 자신의 밑에 들어올 생각이 없으면 대회에 참가하지 말란 엄포였다. 그도 인찬의 뛰어난 실력을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하는 존재가 천재 요리사인 인찬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에 그를 비난하듯 한목소리다.
“난 양심에 어긋난 짓 한 적 없어.”
“너 혹시 일부러 독을 쓴 거 아냐? 운암정 주인이 되려고 사람 목숨까지 칼날 위에 올려놓은 거 아니냐고.”
“말 함부로 하지 마.”
계속된 그의 도발에 인찬 역시도 참을 수 없었다.
그의 목소리 역시 좋게 나올 수는 없었다.
“그래, 극한의 맛이 필요했겠지. 미식가들 입맛을 홀리려면 독 정도는 써야…….”
“난 요리 대회 나갈 생각이 없어.”
결국, 이원은 인찬의 자존심을 크게 건드렸다. 이젠 참을 수가 없었다.
나갈 생각 없다는 그의 말에 이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러나 곧 이어진 인찬의 말에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근데 생각이 바뀌었어, 내가 누군지 보여줄 거야. 내가 최고라는 거 너한테 확인시켜 줄 거야.”
“너 지금 실수하는 거야.”
결국, 두 사람은 이렇듯 대치하게 되었다. 이원은 또 한 번 엄포를 놓지만, 인찬은 가소롭다는 듯이 실소를 흘린다.
“네가 날 이곳으로 부른 게 실수야.”
그는 분에 찬 이원을 뒤로하고는 추적추적 운암정을 빠져나간다.>
“그래도 빨리 끝났다. 자자, 이제 밥들 먹자고!”
세 번의 촬영 만에 끝이 났다. 어느덧 촬영장 내로 코를 자극하는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기고 있었다. 스태프들의 얼굴로 화색이 돌았다.
밥차에서 식사가 모두 완성이 된 상태였고 스태프들은 주린 배를 붙잡으면서 어서 빨리 먹고 싶어 했다.
실제 촬영장에서는 도시락, 혹은 밥차를 통해서 식사를 하게 되는데 스태프들이든, 감독이든 밥차를 줄곧 선호하는 편이다.
물론 엑스트라들이 상당수 투입되는 경우 도시락을 먹는 것이 나았다. 하물며 도시락이 가격도 더 싼 편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밥차의 경우 도시락보다 훨씬 맛이 좋았고 뜨끈뜨끈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 점에서 진호범 감독은 우수한 편이었다. 스태프들이나 배우들을 챙기기 위해서 항상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그였기에 진 감독은 나름 스태프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가끔은 고생하는 이들을 위해 사비로 음료수도 돌리기도 한다.
민후도 줄을 섰다. 스태프들은 고생한 배우들에게 앞서 받으라고 줄을 양보해주었다. 이럴 때마다 민후는 미안하기도 하였지만 그들의 호의를 무시하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고 자신에게만 한정된 호의가 아니라 모든 배우에게 한 것이라 자신도 그들의 권유에 그렇게 했다.
“이야…….”
솔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푸면서 민후는 군침을 삼켰다. 배식하시는 밥차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민후에게 그릇 한가득 제육볶음과 오이지무침, 김치찌개를 퍼줬다.
두 분 음식 솜씨가 무척 좋았다. 그 때문에 스태프들은 줄곧 밥을 먹으면서 ‘내가 먹었던 밥차 솜씨 중 최고다!’라고 말하기 일쑤였으며 민후도 이런 맛난 밥차의 음식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맛이 좋았다.
민후는 용주와 마주 앉았고, 그 주위로 다른 스태프들도 함께 착석하였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민후는 스태프들과 사이가 무척 좋았고, 용주도 좋은 편에 속했다.
“크, 진짜 맛있다. 우리 마누라 솜씨보다 좋은데?”
“그러게요. 어떻게 100인분을 하는데 이렇게 맛있는지.”
카메라 감독의 감탄에 카메라 팀원 중 한 사람이 덩달아 말했다. 민후도 제육볶음을 한 젓가락 크게 떠서 입에 넣었다. 달콤하면서도 매콤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또 아삭 씹히는 채소는 너무 물지도 않았으며 적당하였다.
민후도 요리 공부를 상당히 했고 식감에 대해 알게 되었기에 상당한 요리 솜씨임을 진즉에 깨우칠 수 있었다.
민후는 가득 퍼진 음식들을 먹고 게 눈 감추듯이 먹고 있었고, 다른 스태프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느덧 진 감독이 자리에 합석하였다.
“진짜 내가 앞으로 영화 찍으면서 밥차는 꼭 이분들만 부른다.”
“그, 그걸 다 드시게요?”
“그럼, 별로 많지도 않구먼.”
진 감독이 받아온 음식을 보고 민후가 작은 감탄을 했다. 그의 식판에는 밥과 반찬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장난스레 웃는다. ‘내가 왜 마지막에 받는 줄 알아? 남아서 많이 받거든!’ 하고는 말이다. 이제야 그가 왜 마지막에 항상 받는 줄 알았다. 스태프들을 배려한 것이 아니라 많이 먹고 싶어서였다.
“입에는 맞아요?”
배식을 끝낸 밥차 부부가 스태프들의 주위를 돌면서 물었다. 두 분은 무척 좋은 사람들이었다. 항상 배식이 끝나면 오늘 입에 맞지 않았던 것은 없는지, 맛있게들 먹고 있는지 묻고는 한다.
더불어서 간혹 속이 안 좋다거나 몸이 안 좋은 스태프, 배우가 있으면 죽을 끓여 주시고는 하였다.
“아우, 우리 어머님 아버님 음식 솜씨는 최고예요, 최고!”
“많이들 들어요.”
스태프들은 그런 두 사람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실상 식사라는 것은 고된 일을 하는 스태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였다. 쉬는 시간을 마련해주기도 하며 고픈 배를 채워줌으로써 힘을 내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런 밥차의 음식 맛이 좋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었다.
‘밥차계의 진정한 요리사이시지.’
현재 요리 관련 영화를 촬영하고 있어서 민후는 사소한 요리라도 맛을 보면 음미하려 느끼듯이 요리를 하는 이들을 보아도 그러한 반응을 보였다.
민후가 본 두 분은 이 방면의 최고의 베테랑 요리사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물며 그 마음가짐조차도 덕이 베여 있어서 음식이 더욱 맛있는 것이지 않은가 싶다.
“맛은 괜찮아요?”
“아유, 우리 어머님 아버님, 제가 두 분 때문에 미치겠습니다.”
두 분이 민후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진 감독의 등 뒤에서 그녀가 묻자 진 감독이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입안에 우물우물 음식물을 씹으면서 ‘미치겠네’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두 분은 그런 그의 모습에 입에 맞지 않는가 싶었다. 그러나 곧 진 감독은 어머니의 손을 양손으로 어루만졌다.
“어머님, 아버님! 왜 이렇게 음식 솜씨가 좋은 거예요! 안 되겠다. 지금 당장 저랑 ‘영원히 함께’라는 명목으로 계약서 씁시다!”
정말 쓸 수만 있다면 쓰고 싶다는 의지가 보인다. 물론 장난스러움도 보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하, 뭐 우리야 20년이 넘도록 밥차만 끌고 다닌 사람들이니까 맛은 당연히 좋겠지.”
아버님이 털털하게 웃어 보이셨다. 그 웃음에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보였다.
“아이구, 우리 어머님 아버님 앉으세요. 좀 쉬셔야지.”
진 감독은 두 사람에게 앉으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배식도 끝났으니 잠시 쉬었다 가라는 뜻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다가 그러기로 하였다. 스태프들의 식사가 끝이 나려면 먼 것 같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두 사람이 민후의 바로 옆자리를 좌우로 차지했다.
“흠흠, 거 사실 우리 집 딸내미가 대학생인디, 그 강민후 씨 팬이라더라고.”
두 분이 이야기라도 한 듯 함께 민후의 옆자리에 앉은 이유가 드러났다. 이런 부분에서는 서로 대화도 나누지 않고 장단이 잘 맞는 두 분이셨다. 그에 민후는 귀여우신 모습에 웃었다.
“사인 한 장 해드릴까요?”
“사인은 약하지.”
“그럼, 그럼.”
사인을 해드리면 되겠지 하던 생각을 하였으나 두 분은 ‘약하다’라는 표현을 썼다. 민후는 고개를 갸웃했다.
“동영상 정도는 찍어줘야지.”
“그렇지.”
그 말이 끝나자마자 아주머니가 준비했다는 듯이 품속에서 휴대폰을 꺼내 드셨다. 요즘은 휴대폰이 상당히 좋게 나오기 때문에 동영상 화질도 좋은 편에 속했다.
휴대폰을 꺼내 드신 아주머니는 민후에게로 그것을 넘겨주었다. 머쓱한 표정을 지은 민후다.
“우리 딸내미가 곧 생일인데, 생일 메시지 하나 해줬으면 좋겠어.”
“메시지요?”
두 분은 꽤 집요하셨으며 꼭 동영상을 찍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실상 동영상을 함부로 찍는다는 것이 난감한 사항이었다.
“에이 한번 찍어드려, 두 분 덕택에 우리가 이렇게 배가 부른데.”
“하하, 정말 진 감독님 배는 많이 부르네요.”
“그렇지? 임신 22개월!”
‘배가 부른데’라고 하면서 진 감독은 자신의 배를 한껏 부풀리면서 두들겼다. 정말 배가 남산만큼 거대하다고 할 수 있었다. 잠시 망설이던 민후는 곧 동영상 버튼을 누르고 영상을 찍었다.
“따님 이름이?”
“영미, 김영미.”
“안녕하세요, 영미 씨. 저 배우 강민후라고 합니다. 하핫! 정말 영미 씨의 부모님 두 분 모두 너무 훌륭하신 분이세요. 일단 두 분 덕택에 저희 스태프들이 항상 배부르게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오호잇! 영미 씨!”
“밥 진짜 맛있어요! 따봉!”
민후는 그렇게 말하면서 카메라로 다른 이들을 한번 쓱 하니 흩었다. 그들이 힘껏 소리쳤다. 민후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저 또한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영미 씨 곧 있으면 생일이라고 들었습니다. 생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사, 사랑합니다.”
민후는 팬 서비스로 왼손으로 반쪽짜리 하트를 만들어 보였다. 곧 동영상 촬영을 종료하고 아주머니에게 건네드리자 두 분께서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식사를 하는 동안 두 분과 이야기를 어느 정도 나눴다. 두 분은 이렇게 밥차를 운영하시는 것을 좋아하시고 있었다. 실상 촬영지는 매일 바뀌게 되고, 그 때문에 밥차를 운영하시는 두 분께서는 전국 곳곳을 도시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것으로 하여금 일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여행하는 것 같은 기분도 낼 수가 있어서 무척이나 행복하시다고 하신다.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하고 또한 최고로 좋은 맛을 내기 위해 노력하며 만족해하는 두 사람은 어찌 보면 최고의 요리사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은가 싶다.
* * *
11월에 접어들면서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나마 기승을 부리던 모기떼와 더위가 사그라졌기 때문에 촬영하기에는 적합한 날씨라고 할 수 있었다.
“컷! 수고들 했어!”
오늘도 한 컷을 끝내고 나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민후도, 모든 스태프도 의아해했다. 그들은 도시락을 배식받았다. 물론 촬영 기간 밥차를 부르는 것으로 계약이 되어있어도 상황에 따라 도시락을 먹을 수도 있기는 하였지만 벌써 3일째 밥차 부부가 보이시지 않고 있었다.
스태프들은 첫날 둘째 날은 묵묵히 도시락을 먹었다. 왜 밥차가 안 오냐면서 자신들이 진 감독에게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그러나 셋째 날인 오늘은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진 감독은 두 분을 무척 아끼고 좋아했다. 그런 진 감독이 두 사람을 일부러 부르지 않는 건 아닐 것이었다.
“아으…… 도시락 맛대가리가 없어.”
어느덧 함께 앉아서 식사하던 진 감독이 나무젓가락을 내려놓으면서 인상을 잔뜩 찌푸리셨다. 그는 생수병을 집어 들어 벌컥벌컥 물을 마셨다.
다른 이들도 솜씨 좋은 두 분의 음식 맛에 그사이 맛 들인 것인지 밥을 많이 뜨지 못하는 것 성싶었다.
민후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묻기로 하였다. 어쩌면 자신만의 궁금증이 아니라 촬영장 전체 인원의 궁금증일 것이다. 하물며 혹시 두 분 중 누가 아픈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감독님, 그런데 요즘 밥차 하시는 두 분이 안 보이시네요.”
민후의 조심스러운 말에 물을 마셨던 진 감독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평소의 장난기 가득한 표정이 아니다. 대충 자신과 둘러앉은 이들도 식사를 끝낸 것을 확인한 그가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입에 물고는 불을 붙였다.
“후우…… 에이, 되도록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두 분도 말하지 말아 달라고 했고. 근데 이건 뭐, 말해도 죄인, 안 해도 죄인이지, 내가.”
그는 그렇게 한탄하면서 다시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빨아들였다.
“그 두 분 따님 있잖아, 영미 씨.”
“아, 그 대학생이라는 따님이요?”
한 달 전쯤 민후가 동영상을 촬영하여서 생일 축하를 해주었던 적이 있었기에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이들은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얼마 전 죽었다고 하더라고. 원래 유방암 말기였다고 그러더라.”
“아…….”
진 감독의 입에서 나온 말에 순간 함께 앉아 있었던 이들이 모두 놀란 표정이 되었다. 그들은 순간 너무 놀라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러다 용주가 운을 뗐다.
“아직 대학생이라고…….”
“대학생이었는데 몇 개월 전에 갑자기 픽 쓰러지더니 판정받았대.”
진 감독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민후를 바라보았다.
“민후한테 생일 메시지를 그토록 권유하셨던 이유가 그거이지 않았을까 싶어.”
민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기분이었다. 그 당시 자신이 난감해하면서 찍었던 영상이 두 부부에게는 금쪽같은 사랑하는 딸을 위해 보내는 마지막 편지였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이래서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또 두 분도 말하지 말아 달라고 하더라. 제사 끝나고 다음 주부터 다시 나오시겠다고. 참 대단하지 않냐? 두 분도 참 힘드실 텐데 우리 일에 지장 생길까 봐 그러시고.”
어찌 보면 딸의 죽음 앞에서 냉정한 부모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려오는 사실이었다. 딸의 죽음 앞에서도 자신들이 맡은 바의 일을 해내려고 하는 그들의 가슴은 얼마나 찢어지겠는가.
하물며 진 감독도 얼마 전에 안 사실이었고 그 말을 듣고 다소 충격을 받았다. 병원비로 모아두었던 돈도 대부분 탕진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도 항상 촬영장에서는 웃으며 스태프들을 챙기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현재는 진 감독과 함께 앉아 있는 이들만 들은 소식이었지만 곧 스태프들 사이로 전염병처럼 이 이야기가 퍼지게 될 것이었다. 덧붙여서 현재 그 이야기를 들은 배우들이든, 스태프든 입에서 끊임없는 한숨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하루 만에 스태프들 사이로 그 이야기가 퍼져나갔다. 촬영장 분위기가 상당히 무거워졌다. 이 때문에 진 감독도 말하지 않으려고 했었지만, 그것을 숨긴다는 것도 버거운 일임이 사실이었다.
어두운 촬영장 분위기임에도 촬영은 지속하였다. 그러던 중 한 스태프가 의견을 냈다. 어쩌면 ‘밥차’라는 두 글자는 자신들에게 밥을 제공하고 대신 돈을 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두 분은 다른 분들과는 남다르신 분들이었고, 또 스태프들도 그것을 느끼는 이들이 많았다. 그 때문에 후원금을 모으자는 이야기였다.
후원금은 당연하게도 자율이었다. 그리고 스태프들은 작은 몇천 원의 돈이라도 냈으며 돈을 모으고 보니 200만 원 남짓의 금액이 모였다.
오늘의 경우는 촬영이 오전에 끝나게 된다. 그리고 오늘 영미 씨의 장례식 마지막 날이었기에 직접 진 감독이 장례식장에 방문하여서 전달하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민후도 정수에게 오후 스케줄이 있는지를 물었다. 민후가 그간 밤샘 촬영에 쉴 새 없이 지속된 촬영으로 일부러 오후는 쉬게 하려고 잡지 않았다고 했다.
민후는 진 감독과 함께 장례식장에 가겠다고 의사를 밝혔으며 몇몇 스태프들도 촬영 끝나면 식장에 가기로 했다.
밴이 장례식장으로 도착하였다. 앞서 도착한 진 감독이 차에서 내리고 민후도 뒤따라 내렸다.
“카메라 감독은 언제 와 있었대? 올 거면 말 좀 하지.”
진 감독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주차된 아반떼 차량을 보고는 한 말이다. 곧 장례식장으로 올라갔다.
식장으로 들어서자 야윈 얼굴의 두 분을 볼 수 있었는데, 진 감독과 민후를 보고는 상당히 놀란 표정이셨다.
일단 두 사람은 예의를 갖춰서 영정 사진에 절을 하고, 두 분께 절을 했다.
슬쩍 식장을 둘러보니 이미 대여섯 정도 되는 스태프들이 와있었으며 영미의 친구로 보이는 학생들이 와 있었다. 그들은 민후의 등장에 다소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이구, 영미야. 너 좋아하는 강민후 씨 오셨다.”
아주머니는 영정 사진을 보면서 웃으시면서도 눈물을 닦으셨다. 영정 사진 속 영미라는 이가 빙긋 웃는 듯하다.
진 감독은 슬쩍 두 사람에게 스태프들이 모은 돈을 조심스레 내밀었다.
아버님이 그것을 확인하시더니 놀란 표정으로 진 감독과 민후를 보았다.
“스태프들이 약소하게나마 모았습니다. 장례식 비용에 보태 쓰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 아니, 진 감독님!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큰돈은…….”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다시 진 감독에게 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진 감독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맛있는 밥 먹은 스태프들이 하나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에 보탠 것입니다. 거절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그 말에 결국 아버님은 진 감독에게 다시 그것을 건네지 못하셨다. 민후와 진 감독은 자리 한편을 지켰다.
식장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였는데, 그중에는 다른 촬영팀 인원들이 보이기도 하였으며 놀랍게도 눈에 익은 배우들도 참석하는 모습이 들어왔다.
실상 수년 전에 끝난 영화의 촬영팀 스태프들도 상당했는데, 안타까운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달려온 듯 보였다.
두 분의 ‘맛있는 밥’과 ‘마음’에 이젠 고인이 된 김영미 양을 많은 이들이 애도하고 함께 슬퍼해 주고 있었다.
단지, 맛있는 밥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하시고 자신이 하는 일에 또렷한 자부심을 가진 두 분을 좋아하는 이들이 방문하는 것이었으며 민후도 두 분을 보면서 배운 것이 무척이나 많았다.
작은 일이고, 어쩌면 남들에게는 하찮아 보일지도 모르는 일일지라도 최선을 다한다면 결국 그것은 돌아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