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배우 강민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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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장편소설
1장 가시가 있는 장미, 그러나 아름답다(2)
민후는 채은의 생일이 코앞이 된 상황에서 무슨 선물을 할까 하고 고민을 하다가 다른 수강생들도 채은의 생일파티를 준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수강생들은 채은에게 무척이나 고마워하고 있었다. 그녀는 누구보다 좋은 사람이었다. 돈이 없어 ‘경쟁’도 하지 못하는 자신들을 인정해주었으며, 더불어서 그 ‘경쟁’을 할 수 있는 돈을 지원해준 여성이었다.
그녀는 툭 하니 ‘유명해지면 김채은이라는 여자 요리사 덕분이었다고 해.’라고 언급하기도 하였지만 실상 그녀가 원한 것은 그것이 아님을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단지 안타까웠을 뿐일 것이다. 자신이 무척 하고 싶은 것이 존재한다. 그러나 금전적인 면에서 할 수가 없다. 이만큼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물며 그녀의 학원에서 벌어들이는 돈은 생각보다 상당하였으며, 서울 일대에 퍼져있는 학원은 이젠 전라북도, 부산, 인천 등 차근차근 전국적으로 그 규모를 넓혀갈 예정이었다.
그녀에게 분명 적은 돈이었지만, 그것보다는 스스로 그런 그들을 가르쳐주었다는 것은 물질적으로 본인에게 가벼워서가 아니라, 그들이 성공했으면 하는 생각 때문일 것이었다.
그 때문에 수강생들은 그녀를 스승으로서 아끼고 사랑했으며 더불어서 ‘생일’이라는 것을 ‘빌미’로 하여서 그녀에게 보답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여기에서 하는 건 어때?”
“여기요? 그건 좀 그렇지 않을까요? 아래층에 다른 수강생들도 있는데…….”
지민의 의견에 이형식이라는 스무 살 앳된 아이가 한 말이다. 확실히 다른 이들은 수업 중인데 이곳에서는 생일파티를 한답시고 시끄럽게 굴 수는 없었다.
“음…… 어디가 좋을까나.”
“노래방으로 하자. 요즘 노래방 대형 룸도 되게 좋아. 또 시끄럽다고 뭐라고 하지도 않을 테고.”
“그거 괜찮은데?”
민후가 맞장구를 쳤다. 노래방이라. 되게 괜찮은 것 같았다. 시끄러운 소리가 새어가지도 않을 것이었으며 생일파티를 하면서 놀기에도 적합한 장소이지 않은가 싶었다.
“내가 한번 알아볼게.”
“알아보는 건 네가 알아보는 거지만 돈은 모으는 거다.”
민후의 말에 진영이 ‘흐음’ 하는 소리와 양 팔짱을 끼면서 한 말이다. 그들은 아직 ‘수강생’ 신분이었다. 대학생이거나 혹은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이들이다.
그 때문에 그들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여서 그나마 가장 형편이 넉넉한 민후가 노래방을 빌리는 가격이나, 혹은 생일파티에 들어갈 금액을 내겠다는 소리이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그 뜻을 간파한 진영은 그럴 수는 없다는 모습이었고 다른 이들도 민후에게 ‘돈을 내달라’라는 식의 모습은 없었다.
참 괜찮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 해산!”
학원의 수강이 끝이 나고 학원 바로 뒤쪽 주차장에서 모여서 잡담을 나누었던 수강생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일단 민후가 시설 좋은 노래방을 알아보고 다른 이들이 꾸밀 수 있는 물품을 구매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돈은 1인당 2만 원씩 모아서 그 돈으로 노래방이나 물품 등을 사고 선물은 개인이 사기로 하였다.
노래방을 꽤 좋은 곳으로 잡았다. 대형룸 빌리는 가격만 4시간에 10만 원 가까이 된다. 그러나 그만큼 시설은 좋았다. 크기도 무척 넓어서 20여 명을 수용하여도 될 정도였으며 노래방 한편에는 피아노가 설치되어 있을 정도였고, 드럼이나 통기타 같은 물품 역시도 함께 있었다.
간혹 밴드에서 연습하기도 하고, 프러포즈에도 자주 사용되는 방이라고 하였다.
민후는 다른 수강생들과 함께 서로 준비해온 선물들을 보았다. 민후는 운동화를 준비하였다. 베이지 색상의 귀여운 운동화였다. 10만 원 미만의 가격이었고 그녀에게는 이런 운동화쯤 수천 켤레는 살 수 있는 능력이 있겠지만 가격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난 휴대폰 고리…….”
그리고 그중 다른 이들이 몇만 원대의 선물들을 내보일 때, 지민은 민망한 표정으로 멈칫하면서 귀여운 곰 인형의 줄 고리를 내보였다. 2천 원을 주고 산 것이었다.
실상 재정적으로 그녀가 가장 어려웠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그녀였다. 그러나 실제로 다른 수강생들은 알지 못하고 있었고, 채은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아무리 값이 나가지 않아도 몇만 원대의 선물을 사 들고 온 다른 수강생들 때문에 부끄러워졌다. 자신은 편지 한 장에 휴대폰 고리 하나였다.
그런 그녀의 표정을 남들보다 민후는 빠르게 읽었다.
“우와, 너 보는 안목 의외로 좋다.”
“네?”
“되게 귀여운데, 이거? 그치?”
민후의 칭찬에 그녀는 의아했다. 다른 이들도 그녀가 사 온 휴대폰 고리를 발견하고는 ‘하하, 예쁘다.’ 하면서 웃고 있었다. 다른 이들도 그녀의 주머니 속사정이 좋지 않음을 인지한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안목을 칭찬하는 이들로 기분이 좋아졌다. 마치 자신이 생일 선물을 받은 듯한 기분이다.
“다녀와요, 형.”
채은을 데리러 가는 것은 진영이 하기로 하였다. 민후가 가고픈 욕심도 있었으나 괜히 밖에 나섰다 알아보는 이가 있으면 큰일이었다. 20분 정도가 지난 후, 안대를 찬 채은이 들어섰다.
노래방은 일부러 학원과 멀지 않은 곳으로 잡아놨었고, 학원에서 안대를 채워서 이곳까지 차를 태우고 데려왔다.
대기하고 있던 인원들이 그녀가 들어서자 그녀의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생일 케이크는 민후가 들고 있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김채은 원장님, 생일 축하합니다.”
안대를 벗은 그녀는 어두운 분위기에 환하게 그 빛을 발하고 있는 촛불과 더불어서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인 민후를 볼 수 있었다. 그녀는 활짝 웃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축하해 주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만큼은 행복했다.
생일파티는 성공적이었다. 그녀는 수강생들이 건네준 선물과 편지를 한 아름 받고는 기뻐했다. 그리고 물론 그중 강민후의 축하가 그녀에게는 가장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생일파티가 끝이 나고 원장실로 돌아온 그녀는 설레는 기분으로 가장 먼저 민후가 준 선물을 풀어보았다. 수강생들이 포장지에 싸여 있는 것은 나중에 열어보라며 만류를 해서 당장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러지를 못하였다.
그녀는 민후가 준 종이 가방에서 포장지에 싸진 상자를 꺼내었다. 커터칼로 조심스레 포장지를 연 그녀는 그 내용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운동화였다.
아담하고 귀여운 색상의 운동화였다. 자신의 집에는 이런 운동화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렇지만 무척 뜻있는 운동화이지 않은가 싶다. 그녀는 가슴 쪽으로 끌어와 꽉 껴안았다.
그리고 막 편지를 보려다가 고개를 저었다. 다른 수강생들도 자신에게 선물을 준비했다. 그런데 민후가 건넨 선물만 받고는 좋아한다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났다. 그녀는 다른 선물들, 편지들을 앞서 확인했다.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웃음이 지어졌다.
그리고 그것의 마지막은 강민후의 편지였다.
그녀는 민후의 편지를 확인하였다.
-사랑하는 김채은 원장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김채은 원장 선생님. 선생님의 제자 강민후입니다. 아직도 첫 대면이 잊히지 않아요. 선생님의 첫 모습은 사실 많이 충격이었습니다. 하하, 그, 그렇다고 화내시지는 마세요. 나쁜 의미는 아니니까요. 처음 무척 차갑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되게 하더군요. 그리고 선생님의 차가운 성격에 톡 쏘는 말투에…… 기분이 나빴단 적도 있었지만, 오히려 오기를 부리게 만들 때도 있더군요. 선생님 덕분에 이렇게 무사히 배워낸 것 같습니다. 이제 학원에서 수강을 받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너무나 뜻깊었고 선생님과 다른 수강생들을 알게 되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선생님을 존경하는 제자 강민후가.
(추신): 운동화를 고르기에 앞서 선생님의 사이즈를 몰래 확인했습니다. 그렇다고 변태는 아니에요.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참…… 지금 모습이 너무 아름다우세요. 보기 좋아요.
“하아…….”
그녀는 그가 자신에게 준 편지를 가슴에 꽉 안았다. 너무나도 기뻤다. 그리고 자신을 설레게 하였다. 그러다 문득 그녀는 너무나도 기뻐하는 자신을 거울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의 말처럼 자신과 그는 이렇게 스스럼없이 만날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곧 그의 수강은 끝이 날 것이었다.
그렇기에 용기를 내야만 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용기를 내지 않는다면 한윤하에게 되레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이 섰다. 그녀는 문자를 작성했다.
-내일 시간 있니?
그녀는 조심스럽게 문자를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언제요?’라고 왔다. 그녀는 다른 생일 선물을 해달라고 조심스럽게 보냈다. 민후는 의아하다는 문자를 보냈으며 그녀는 내일 학원에 11시까지 와줄 수 있냐고 물었다.
민후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문자가 끝이 나고 그녀는 휴대폰을 품에 넣으려다 떨리는 손을 느낄 수 있었다. 너무 긴장했다. 사랑을 앞두고 고백하려는 여자의 심정이 이런 것일 줄은 몰랐다.
머리가 새하얘지고 그가 자신을 거부하면 어쩌냐 하는 걱정으로 머리가 가득 찼으며, 반대로 그가 자신을 받아주었을 때 서로 사랑해 나가는 모습을 생각하면 행복했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워서도 몇 시간이나 그 생각 때문에 뒤척이다가 겨우 잠에 빠져들었다.
토요일이었기 때문에 민후는 11시에서 2시 사이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2시 이후에는 진호범 감독과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되어 있었다. 호범으로서는 그가 이제 영화를 촬영하는 데 충분할지에 대한 궁금증이 있을 것이었다.
11시에 학원으로 도착한 민후는 6층으로 올라갔다. 주말이었기 때문에 학원은 조용했다. 대부분의 학원 중 주말반을 운영하는 곳이 꽤 많았다.
그렇지만 그녀가 운영하는 학원은 평일에 강사들이 쉴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빴고, 따로 주말반 강사를 쓸 의사도 없었기 때문에 평일 근무만 하고 주말에는 이틀 모두 쉰다.
6층으로 올라오자 그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민후를 본 그녀는 심장이 덜컥하고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막상 그와 대면하니 많이 떨렸다.
“안녕하세요.”
실제로 민후는 개인적인 시간을 내준 것이었다. 분명 그는 꽤 바쁜 사람이었지만 자신을 가르쳐주는 그녀를 위해서 몇 시간을 낼 수 있는 예의는 갖추고 있는 사람이었다. 하물며 다른 선물이 받고 싶다 하는 그녀였고, 그 부분이 자신도 궁금하기는 하였는데, 그녀는 곧 그의 인사를 받아주고는 고개를 돌려 어딘가를 응시하였다.
그곳에는 살아 있는 황복이 있었다.
황복을 본 민후는 의아한 표정이었다.
“네가 해준 요리가 먹고 싶어서.”
빙긋 웃으면서 하는 말이다. 민후는 작은 웃음을 지었다. 그는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채은에게는 이 요리는 무척 값진 것이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황복을 요리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의 민후에게 어쩌면 자신은 빠져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가 황복을 잡는 기간 동안 그와 자신의 관계가 상당히 개선되었으며 좋아졌다. 어쩌면 황복이라는 것은, 채은에게만큼은 그에 대한 마음이 싹트기 시작한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내가 바쁜 시간 뺏은 건 아니지?”
“괜찮아요, 오전에는 스케줄 없어요.”
민후는 빙긋 웃으면서 곧 탈의실로 들어가 조리복과 조리모를 착용하고는 나왔다. 손까지 깨끗하게 씻은 민후는 살아서 팔딱거리는 황복을 잡았다.
황복을 잡은 그는 노련하게 손질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녀에게 황복을 선보임으로써 인정을 받은 후에도 몇 차례 손의 감각이 무뎌지지 않게 하려고 간혹 값싼 횟감을 통해서 그 감을 잃지 않기 위해 연습을 하였던 바가 있었다.
그는 둥그런 접시 위에 한 마리의 학을 능숙하게 펼쳐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채은의 얼굴로는 작은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민후는 그때보다도 더욱 실력이 늘어난 것 같았다.
미묘한 차이이기는 할 테지만 그 미묘한 차이마저도 프로들의 세계에서는 크나큰 점수를 받게 되기 마련이었다.
학을 완성한 민후는 그녀에게 자신의 작품을 내보였다.
“완성.”
“잘했어.”
그녀가 방긋 웃었다. 요리가 완성되고 두 사람이 함께 자리에 마주 앉았다. 두 사람의 앞으로는 황복으로 만들어진 학과 더불어서 초장, 고추냉이 장이 놓여 있었다.
민후는 첫 젓가락을 그녀에게 양보했다. 그녀가 가장 먼저 첫 점을 집어 들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 처음 봤을 때 그렇게 차가워 보였어?”
그녀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그는 ‘음?’ 하였다. 그러다 자신이 편지에 처음 보았던 당시 차가웠지만 갈수록 따뜻했고 적었음을 알고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처음엔 그랬는데…… 지금은 되게 좋은 분인 거 누구보다 잘 알아요.”
“그래? 나도 네가 좋은 남자라는 거 알게 됐어.”
그녀에게서 이상한 낌새가 생겨났다. 민후는 의아한 모습이었다. ‘좋은’ 부분은 모르겠으나 ‘남자’라는 부분에서 평소와는 다른 무언가를 느꼈다. 그녀는 입으로 회를 가져가 오독 씹고는 한참을 음미하고는 넘겼다.
“이 황복, 한 달 만에 네가 요리해냈을 때 나 무척 놀랐는데. 멋지기도 하고…….”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난감했다. 오늘 고백하리라 크게 다짐을 하기는 하였지만, 막상 입 밖으로 뱉으려 하니 그게 잘되지 않았다.
하물며 민후의 경우는 그녀의 낌새가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실상 민후는 그녀가 갑자기 다른 이미지로 변신을 하자 무언가 계기가 있을 거라고 여기고 있기는 하였다.
사람은 계기 없이는 쉽사리 변하려 하지 않는다. 가령, ‘나 오늘부터 다시 변해야지!’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민후는 그 계기가 ‘남자’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던 중이다.
“제가 원래 뭘 해도 좀 멋있죠.”
민후는 낌새는 느꼈으나 모르는 척하며 자신도 한 점을 집어 입으로 가져와 오물오물 씹었다. 고소하고 깔끔한 맛이 좋았다.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황복만을 음미하였다.
서서히 학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을 때였다.
“한윤하 씨랑 많이 친해?”
“음…… 예. 제 생각에는 많이 친한 것 같아요. 일단 공감대도 많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말하지만, 저하고 비슷한 점이 되게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친해진 것 같아요.”
민후는 한윤하의 이야기가 나오자 신이 난 모습이었다. 물론 자신 딴에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채은은 확실하게 느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심장이 또 한 번 덜컥 내려앉는다. 그리고 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민후가 자신의 남자가 되었으면 한다. 자신을 사랑해주었으면 한다.
그를 위해서 변한 자신이다. 짧은 머리카락을 감추기 위해 가발을 착용하고, 딱딱하고 불편한 구두도 신게 되었다. 하물며 목 뒤의 문신도 큰 고통과 흉터를 감수하면서도 그를 위해서 지우고 있었다.
그것이 그녀의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얻고 싶었다.
“많이 좋아해, 한윤하 씨?”
“음, 예. 좀 좋아…… 예?”
그녀는 조심스럽게 한윤하에 대한 감정을 물었다. 민후는 태연하게 대답을 하려다가 질문의 뜻을 이해하고서는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평소와는 확실히 달랐다. 표정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지금 표정은 초조함과 더불어서 깊은 감정이 깃들어있었다. 사람들은 그 감정을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런 민후가 당황하는 이유는 그 표정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었다. ‘설마…….’ 하고 그는 생각한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변화.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자신에게 부드러워진 그녀. 어느 한순간 자신에게 누구보다 다정하고 친절해진 여인.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 자신이라는 사실 같았다.
그는 옆에 놓인 물이 들어있는 투명한 유리잔을 들어 한 모금 입을 축였다.
“예…….”
그는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채은은 소중한 자신의 스승이었다. 하물며 남부럽지 않은 여성이기도 하였다. 민후가 이렇듯 대답을 한 이유는 그녀가 최대한 작은 상처를 받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대답은 오히려 여성을 더욱더 애간장 태우고, 상처를 받게 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하물며 자신의 소중한 스승인 그녀를 잃고 싶지는 않은 민후였다.
그러나 그의 대답에 그녀는 픽 하고 웃었다.
“그런데 나도 널 좋아해…….”
그녀는 평소의 자신처럼 날카롭고 당당하게 말했다. 결국, 그녀의 입에서 나와 버린 ‘좋아해.’라는 말에 민후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은 한윤하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분명 그녀도 좋은 여성이었으나 자신의 마음을 번복할 수는 없었다.
물론 간혹 좋아하는 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의 고백에 흔들리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민후는 아니었다. 자신의 감정을 번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물며 한윤하. 그녀도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것을 알고 있는 민후였다. 말을 안 하는 것뿐이지, 이미 서로서로 무척 아끼고 있었다.
“전…….”
“나도 한윤하 씨만큼 너에게 잘해줄 수 있어. 네가 힘들면 내게 기대게 해줄 수도 있고. 맛있는 것도 많이 해줄 수 있어. 네가 싫어하는 게 있다면 고칠 수 있어. 좋아해, 아주 많이. 네 덕에 이렇게 다시 변했는걸.”
그의 입에서 나오려는 말을 직감적으로 눈치챈 그녀는 다시 한번 자신의 진심을 담아 말했다. 민후는 머리가 순간 새하얘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는 번복하지 않는다.
“죄송합니다. 전 선생님을, 선생님 이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결국 그의 입에서 떨어진 말에 그녀는 가슴을 맞은 것처럼 그곳이 턱 하니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 결국 그는 변하지 않았다. 자신을 좋아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확고하였다.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눈빛이 그에게서 보였다. 그녀는 모든 것을 다 잃은 듯이 슬펐다. 그러나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래? 결국, 이렇게 되었네.”
그녀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태연한 모습이었다. 민후는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하물며 함께 앉아 있는 이 자리가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잠시 두 사람은 말없이 침묵만을 지켰다. 먼저 입을 뗀 것은 시간을 확인한 채은이었다.
“가봐야 할 시간 아니야?”
민후는 그제야 시간을 확인했다. 지금 나가면 어느 정도 여유롭게는 도착할 수 있었다. 항상 여유로운 시간을 지키는 그였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녀는 빙긋 웃었다. ‘괜찮아, 나는.’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였다.
“어서 가봐야지. 나도 이거 치우고……. 으아! 오늘은 친구들이나 만나서 노래방도 가고 술도 한 잔씩 마시면서 스트레스나 풀어야겠다.”
그녀는 하늘 높이 쭉 기지개를 켰다.
“그럼…….”
민후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마음에 걸리기는 하였으나 자신이 이곳에 남아 있다고 할지라도 대답은 번복되지 않는다.
덧붙여서 차라리 지금 이 자리에 자신이 없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서기도 한다.
그는 나서기 전 그녀를 잠시 돌아보았다. 자리에 씁쓸하게 앉아 있는 그녀의 뒷모습이 보인다.
잠시 그 모습을 보던 민후가 밖으로 나섰다.
그가 나서고 그녀는 젓가락으로 남은 황복 회를 쿡쿡 찔렀다.
“결국, 나 차였네? 오늘은 머리도 더 예쁜 거로 했는데……. 화장도 미용실 가서 받았는데. 구두는 발이 아플 정도로 예쁜 거 신었는데, 결국 나 차였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러다 툭 하고 테이블 위로 떨어지는 자신의 눈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그가 좋았다.
모든 것을 다 줄 만큼 강민후라는 아이가 좋았다. 자신보다 네 살이나 어린 남성이었지만 그에게서 많은 것을 느꼈고, 보기만 하여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을 그에게서 느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여성을 사랑한다. 그리고 결국 구차하게 자신은 오늘 차이고 말았다. 참았던 눈물이 모두 터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울음을 막을 새도 없었다.
“흑, 흐흐흑! 흐흐흑! 흑흑!”
자신의 모든 것을 변화시켜서라도 얻고 싶었던 남성이 떠나갔다. 그녀는 한참이나 그 자리에서 울었다.
* * *
민후의 수강이 끝이 났다. 실질적으로 그가 4개월간 배운 것은 영화에서 나온 것들을 제외하고도 무척 많았다. 영화에서 나오는 것들의 연습은 이미 3개월에 접어들었을 때 거의 막바지였으며 실질적으로 남은 시간 동안은 다른 것을 배우고, 또한 더욱더 노련해지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수차례 가했다고 할 수 있었다.
채은은 그 일이 있고 난 뒤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하였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한 것이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보면서 민후는 무척이나 미안하고 가슴이 아팠다.
내보이는 것보다도 태연한 척하는 것이 더 힘든 것임을 안다. 그러나 민후는 그렇다고 그녀에게 다른 위로의 말을 건넬 수는 없었다. 그것은 어쩌면 자신을 좋아했던 여자에게 베푸는 동정심 따위로 보일지도 모르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와아아!”
짝짝짝짝.
촬영은 2주 후부터 본격적으로 들어가게 된다. 다른 배우들과는 내일모레 자리를 가지게 되고, 그 자리에서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될 예정이었으며 대본 리딩과 더불어서 이어질 촬영에 관한 이야기가 진행될 것이다.
민후는 현재 한국 맛있는 요리 경연대회에 참석하여 있었다. 참석한 이유는 조리사 자격으로 참석한 것이 아니라 응원을 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이번에 채은이 가르쳤던 수강생들이 전부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전부 예선을 제치고 본선에서 상당한 힘을 발휘했다.
보통 대학교에서의 요리 대회를 앞두고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요리법이나, 혹은 팀별로 요리를 만들게 되는데, 그 연습과정이 한 달에서 두 달 사이였다.
그러나 채은은 그들에게 4개월간의 시간을 부여하였고 공부를 시켰으며 수강생들도 모두 필사적으로 배웠다. 그 덕에 놀랍게도 채은이 가르쳤던 수강생들이 이번 한국 맛있는 요리 경연대회에서 순위권을 수상하게 되었다.
하물며 우승을 차지한 이는 다름 아닌 여성이자 수강생 중 어린 나이에 속했던 통통한 체격의 김지민이었다.
지민의 우승에 수강생들과 채은은 무척 기뻐했다. 더불어서 대회 개최 측은 강민후가 요리 대회에 관전자 입장으로 참석한 것을 알고 그에게 권유했다. 시상식 시 올라와 줄 의향이 있냐고 말이다. 실상 민후에게는 우승자가 누구인지 이미 전달된 상황이었고, 자신과 함께 요리 공부를 하였던 동생 지민이 우승을 하였기에 흔쾌히 수긍하였다.
“우승자 김지민 양에게 꽃다발과 더불어서 100만 원 상당의 독일제 칼 세트와 200만 원 상당의 상금. 꽃다발이 수여됩니다.”
은상은 진영이, 동상은 김민국이라는. 역시나 수강자 중 한 사람이 받게 되었고, 우승자 시상에서 관계자의 말과 더불어서 민후가 단상으로 올라갔다.
다른 수강생들은 상당히 놀란 모습이었다. 전혀 들어보지도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며 민후도 사실 본의 아니게 시상하게 된 것이다. 칼 세트는 따로 주최 측에서 그녀의 집으로 배송해 주는 것으로 알고 있었고, 상금 역시도 계좌로 쏴줄 것이다.
민후는 그녀에게 꽃다발과 더불어서 1등 금메달, 그리고 200만 원이라고 적힌 큼지막한 그것을 건네주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그녀는 그것을 받고 무척이나 기뻐하였다. 상금 200만 원은 생활비에 보태어 어느 정도 여유를 찾을 생각이었다.
어느덧 대회가 끝이 나고 사람들이 하나둘 나서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수강생들과 더불어서 채은까지 한자리에 모였다.
“잘했어.”
“감사합니다, 민후 오빠. 뭐예요, 귀띔이라도 해주지.”
“갑자기 주최 측에서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해서 한 거야.”
민후는 쓴웃음을 지었다. 물론 주최 측에서 부탁한 것이긴 하지만 매니저인 정수와도 상의한 후에 한 일이었고,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도 흔쾌히 수긍하였다.
수강생들과 채은은 요리 대회에서 상당한 실력을 펼침으로써 오늘 대회에 온 기자들로부터 플래시 사례를 받을 수밖에 없었으며 그중 민후도 껴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강민후 씨를 가르쳤던 김채은 요리사의 제자들이 대회를 휩쓸다라. 이거 느낌 좋은데?”
지나가듯 하는 기자의 말을 들으며 민후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느덧 스케줄 시간이 되어간다. 민후는 채은에게 조심스레 다가갔다. 그녀는 역시나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했다.
“조심히 들어가.”
“예, 먼저 가볼게요.”
그는 다른 수강생들에게도 인사를 해 보이고는 자신의 밴으로 이동하였다. 이동하는 그의 뒷모습을 채은은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렇지?’
그녀는 여전히 좋아하는 감정을 버리지 않았다.
두 사람이 서로를 좋아하고는 있으나 서로에게 다가가지는 못하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을 말하는 날이 언제일지 정해지지 않았다.
채은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런 여성이었다. 그날 한번 크게 울었으면 된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그녀는 그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