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가시가 있는 장미, 그러나 아름답다(1)
민후가 식객전쟁 촬영을 위해서 김채은의 밑에서 수강을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났다. 3개월 동안 민후는 많은 변화를 거듭하였다. 그는 많은 것을 맛보고, 느끼기 위해 노력하였다.
보이는 거라면 일단은 한번 입에 넣어야 성미가 풀렸고, 그것을 음미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자 첫날, 수강생들이 내놓은 화려한 작품에 김채은이 핀잔을 놓았던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확실히 맛을 음미하자는 생각으로 음식을 느끼려 노력하자, 그것의 맛이 확 하니 느껴졌는데 너무 삶은 것은 너무 물렀고, 덜 삶은 것은 딱딱했다.
예를 들어 라면에 비유하면 쉬웠다, 라면은 1분 차이의 불 조절이 그 식감이 확연히 달라지지 않는가.
그처럼 많은 음식을 먹고 씹어보자 민후도 요리사로서 그것들의 조리과정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보이는 대로 많이 먹는 것은 아니다.
딱 한 젓가락. 그 이상은 먹지 않는다.
사람의 입은 첫 숟가락에서 가장 다양한 맛을 느끼고, 숟가락으로 떠먹는 횟수가 증가할수록 점차 무뎌지기 시작한다.
첫 숟가락만으로도 그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꿩 요리 손질 및 요리법, 경단 만들기, 일반적인 채소를 채 치는 방법, 그리고 소고기 해체하는 방법 등등을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배웠다.
소고기 해체는 부위별로 그 소를 나누는 것이었는데, 김채은으로서는 가르쳐줄 수 없는 사항인지라 따로 해체 전문가에게 의뢰하여 2주간 배웠다.
아무래도 소고기를 다루는 것의 경우, 실제로 촬영하는 동안 그것을 해체할 수는 없었기에 일부분만 배우고, 나머지는 편집 과정을 통하여서 이미 해체된 소고기를 놓을 예정이었다.
그는 다른 요리는 몰라도 자신이 배운 것들을 만지는 솜씨는 일류급 요리사 못지않은 실력이 나온 상황이었다. 김채은은 사실 2개월 반을 그가 수강했을 시 더는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표하였다.
그러나 민후는 더욱 완벽한 한 컷을 위해서 4개월을 꼬박 채우겠다고 하였다.
“많이 드세요, 어르신.”
오늘은 조금 특별한 날이었다. 김채은은 3개월 동안 지내보니 의외의 인물이었다. 차가운 성격과는 다르게 그녀는 속내는 꽤 따뜻한 여인이었다.
결국, 겉으로 보이는 차가움은 강해 보이기 위한, 다른 요리사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한 위장에 불과했다.
그녀는 양로원과 보육원에 상당한 지원을 하고 있었고, 더불어서 2개월에 한 번씩은 양로원이나 보육원을 일주일에 걸쳐 순차적으로 돌면서 음식을 대접하고는 하였다.
그리고 그중 대접을 하면서 필요한 일손은 학원에서 자원을 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생각보다 상당한 사람의 이들이 참여하고 있었고, 군말하는 이들도 없었다.
김채은의 숨겨진 것 중 더욱 놀라운 것은 특별 지도실의 수강생들에 있었다.
민후가 본 김채은은 특별 지도실 수강생들을 악독하게 다뤘다. 자신이 내준 과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윽박지르고, 소리를 쳤다. 그러나 수강생들은 한마디 투덜거리지도 않았다.
그 때문에 의아한 민후가 ‘괜찮아?’ 하고 물었을 때, 그들은 ‘전부 자신들 잘되라고 하는 소리’라고 하면서 얼버무리고는 했는데, 그들과 차츰 친해지니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김채은이 가르치는 특별 지도실의 수강생들은 형편이 어려운 이들이었다. 대학생 혹은 사회인인 그들은 실제로 대회를 준비할 수 있는 여건이 아예 받쳐주지 않는 것이다.
대회에 참가하고 경력이 쌓여야 좋은 곳에 취직할 수 있는 것이 요리계의 현실이다. 이제 그것은 당연한 코스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작 돈이 없어서 요리 대회 준비도 하지 못하는 이들을 김채은은 지원을 받은 것이다.
물론 아무나 지원을 받는 것은 아니었다. 상당한 실력의 소유자에 열정의 빛이 보여야 했고, 그에 한해서 특별 지도실의 수강생들은 무료로 수강을 받는 것이다.
그들이 하루에 만지는 요리 재료나 김채은의 이름값을 먹이면 그들의 월 수강료는 70만 원을 넘을 것이다. 그런 것을 모두 지원하는 김채은은 상당히 멋있는 여성이었고, 다시 생각하게 되는 발판이 되었다.
“읏차! 많이 드세요.”
민후는 서빙에 한창이었다. 각종 전 요리와 더불어서 테이블 당 삼계탕이 놓여 있었으며, 어르신들을 위해서 막걸리와 더불어서 간식거리도 준비하였다.
“어머님, 많이 드세요.”
“아유, 젊은 총각이 참 잘생겼네.”
양로원 대부분 이들이 민후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아무래도 TV를 자주 보시지는 않는 듯싶었고, 하물며 42.195㎞가 아직은 케이블 TV에서 무료 방영을 하지는 않고 있었기에 극장에 가셨거나 인터넷으로 보시지 않은 이상 보기 힘든 게 사실이었다.
어머님이 민후가 기특한 듯 얼굴을 어루만지며 하는 말에 민후는 능청스레 웃는다.
“어머님도 아직 이팔청춘이신 데요, 뭘. 크- 아깝다, 아까워. 만약 제가 20년만 나이 들었어도 한번 데려가 보려고 힘써 보는 거였는데요.”
“내가, 소싯적엔 남자들깨나 울렸지.”
“하하하.”
재치 있는 민후의 입담에 어르신들의 걸걸한 웃음소리가 퍼졌다. 채은도 자신 본인도 모르게 그런 민후를 보면서 웃고 있었다.
그녀는 남성적인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강해 보여야 했다. 다른 남자 요리사들에게 뒤처지지 않게 위해서는 말이다.
그녀는 사실 요리를 좋아하는 평범한 요리사였다. 대학생 시절, 요리 관련 학과를 다녔었고, 실습을 나간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받았던 충격은 상당했다. 여자 요리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호텔 내의 이들은 그녀를 대놓고 무시했다. 무거운 것을 가져오라고 일부러 시키고 그것을 들지 못하자, 그것도 못 드냐면서 핀잔을 주면서 대놓고 그녀의 실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모습이었다.
일반적인 대부분의 요식업 계통 이들이 상당수 그러했다. 여자 요리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 대해서 깨닫고 그녀는 집에 돌아가서 종일 울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이러한 차가운 여성이 아니었다. 온화하고 쾌활하였으며 남을 배려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들이 계기가 되었다. 그는 다른 남자 요리사들에게 뒤처지지 않을 실력을 향상시키기 시작했다. 그와 더불어서, 머리를 짧게 커트하고 목 쪽에 문신을 했으며 냉담하게 말하는 방법을 연습했다.
처음 실습을 갔던 당시의 자신은 단지 어리숙한 실습생이었다. 그러나 차가운 목소리를 가지고 피나는 노력 끝에 남성 요리사들보다 뛰어난 실력을 갖추게 된 그녀를 무시할 수 있는 남자들은 많지 않게 되었다.
그 후로 계속 그녀는 이렇듯 짧은 머리카락 남자다운 바지 차림을 본인도 모르게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짧게 쳐진 커트 머리. 그녀는 다시 민후를 보았다.
그와 자신의 머리카락의 길이가 비슷할 것이다. 그녀는 작은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다시 여자로서의 욕정이 샘솟고 있었다.
사랑받고 싶었다. 남성적인 이미지가 아닌, 여성적인 이미지로 강민후라는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그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좋겠다, 그가 자신에게 ‘보고 싶어’라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그가 자신이 힘들 때 안아주면서 ‘괜찮아, 내가 있잖아.’ 해줬으면 좋겠다.
그녀는 자신의 끓어오르는 여성으로서의 본능을 어찌할 줄을 몰랐다. 그러면서도 요즘은 자주 거울을 보게 된다.
그가. 이렇듯 선머슴같이 하고 다니는 자신을 좋아해 줄까 한다. 언제 좋아하게 된지는 잘 모르겠다. 그는 지켜볼수록 매력적이었다. 누구보다 뛰어났고, 누구보다 열심이었으며 누구보다 다정한 남성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물질적인 욕심은 가지지 않은 자였다. 21세기 시대, 돈이 곧 최고라는 세상에서 그는 남들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 본질 자체가 김채은이라는 이마저도 녹여버릴 만큼 무척 멋진 남성인 것이다. 그를 그녀는 사랑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민후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평하고 평소와 다름없다.
“원장님, 식사하셔야죠. 빨리 오세요. 전부 기다리잖아요.”
“응.”
자신에게 다가와서 오늘 함께 온 수강생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을 가리키며 민후는 그녀를 이끌었다. 민후의 옆에 앉은 그녀다. 민후가 삼계탕의 닭 다리를 뜯어서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는 시늉을 했다.
“닭다리느으은……!”
“안 돼!”
“내 거야!”
그러자 다른 수강생들이 앙칼진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민후가 장난스레 웃으며 그녀의 일회용 접시 위로 그것을 올려놨다.
“원장님 거.”
민후가 채은에게 닭 다리를 건네자 다른 수강생들은 수긍 어린 모습이다. 곧 그들이 때늦은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민후는 아쉽게도 이 자리에 자주 참석하지는 못하였다. 아무래도 자신은 바쁜 이였기 때문에 일주일간, 총 5차례 치러지는 자원봉사에서 딱 두 번 시간이 날 때만 참여할 수 있었다.
그래도 와서 이렇게 돕고 놀아보니 상당히 재미도 있고 보람도 컸다. 하물며, 함태웅 대표는 민후가 발달장애 센터에 자원봉사를 갔을 때나 혹은 이렇듯, 다른 이들에게 선의를 베풀 때마다 손뼉을 쳐주고는 한다.
‘비즈니스를 아는 녀석 같으니!’라고 하면서 말이다. 아무래도 배우들은 이미지가 중요했다. 이미지가 그대로 그들의 무기였고, 민후는 단순한 선의로 한다는 것이 자신의 이미지를 좋게 만드는 것인지라 일거양득이 되는 상황이었다.
“민후야, 그보다 한윤하 씨는 언제 오는 거야?”
“점심 조금 지나고 온다고 했어요, 곧 올 거예요.”
“크- 한윤하를 실제로 보게 되다니…….”
식사를 하던 도중, 한윤하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윤하가 이곳에 방문하기로 되어 있는 실정이었다. 민후와 윤하는 현재 ‘천사의 손’이라는 전국적으로 분포된 자원봉사 단체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회원수만 해도 20만 명을 웃돌 정도로 많았으며 더불어서 ‘천사의 손’의 가입자들은 월 1만 원에서 시작해 다양한 금액을 후원하고 그 돈을 통해서 돈이 남을 시에는 광고도 찍고, 또 기부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민후와 윤하가 함께 적십자 광고를 찍은 적이 있었고, 민후의 경우 42.195㎞를 통해 좋은 이미지를 선보였으며 더불어서 두 사람이 자원봉사에 꽤 취미가 있는 것을 알기에, ‘천사의 손’ 측에서 홍보대사로 권유를 하였으며 두 사람은 흔쾌히 수긍한 바가 있었다.
현재 민후가 벌어들이고 있는 돈의 약 5%도 매월 ‘천사의 손’에 기부되는 중이었으며, 같은 홍보대사인 한윤하와는 그 때문에 자주 연락을 취할 수 있는 방편이 생긴 것이다.
민후의 경우 한윤하를 꽤 마음에 두고 있었기에 그녀와 연락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에게는 좋은 일이었고, 이번에 이 일에 관련하여서 ‘요즘 이렇게 음식을 대접하고 있다, 올 의향이 있느냐.’라고 물으니 그녀는 당연히 오겠다고 입장을 표하였다.
“근데 나는 예쁜 여자들은 다 성격이 개떡 같을 줄 알았는데, 한윤하 씨는 마음씨도 곱고 얼굴도 예쁘고…… 크-”
수강생 중 특별 지도실에서 수강 받는 김진영이라는 스물다섯의 형이 있었다. 그는 작은 감탄을 흘렸다.
“꼭 그렇지만은 않아. 얼굴도 예쁜데, 마음씨도 예쁜 사람들이 있지.”
올해 스물두 살이자 요리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요리 대회 준비 및 호텔 쪽 입사를 노리는 김지민의 말이었다. 그녀는 마치 자신을 말하듯 말하며 요염한 입 모양으로 닭고기를 우아하게 뜯었다.
“흠, 우리 지민이는 마음씨도 예쁘지, 배려심도 크지, 얼굴도 예쁘지. 근데 몸이 좀…….”
진영이 칭찬을 하듯 말하다가 마지막 말에 말끝을 흐렸다. 지민은 예쁜 얼굴상이었다. 단, 살을 뺀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상당히 통통한 몸매의 소유자였다. 그에 지민이 젓가락을 들어 올려 보였다.
“잘못했어, 오빠가.”
그가 단숨에 꼬리를 만다.
민후는 호박전을 단숨에 입에 넣어 씹고는 휴대폰이 울리자 다급하게 휴대폰을 꺼냈다. ‘한윤하’라고 적혀져 있었다. 도착했나보다.
“도착했어?”
-응. 근데 옮길 게 조금 많아, 도와줘요.
그녀의 목소리에서 장난스러운 울음이 느껴졌다. 민후는 휴대폰을 끄고는 몸을 일으켰다.
“윤하 왔다는데 좀 도와줘야 할 거 같아요. 옮길 게 많다네요.”
그의 말에 자리에 앉아 있던 자원봉사자들이 전부 일어났다. 민후가 양로원의 입구 쪽으로 향하자 밴이 주차되어 있었는데, 밴 내부를 보자 상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번 지원은 한윤하도 ‘천사의 손’이라는 홍보대사가 아닌 개인적인 지원이었다.
“밴은 어떻게 타고 왔어?”
“상자에 누워서?”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십니까! 실물로 보니 대단히 미인이십니다! 하하.”
그녀가 장난스레 웃었다. 그녀는 몇 달간 못 본 사이에 더 예뻐졌다. 머리는 조금 더 길렀으며 밝은 갈색으로 염색도 했다. 다른 이들이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이면서 그녀를 보고는 작은 감탄을 하였다.
그들에게는 그녀만 한 여신이 없을 것이었다. 확실히 한윤하도 요즘 인기를 한층 끌어안고 있는 여성으로 얼마 전 남성이 가장 좋아하는 여자 연예인 순위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확실히 그녀는 남성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두루 갖췄다. 청순한 외모, 매력 있는 웃음, 착한 성격과 쾌활함. 그 어떤 남자가 반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도 반했지.’ 하고 민후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선망의 대상이자 남자들이 손잡아보고 싶은 연예인인 한윤하는 민후를 좋아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우리 원장님이셔, 인사드려.”
“네, 안녕하세요.”
채은이 앞서 그녀에게 인사하자 민후가 소개해줬다. 윤하가 머리카락을 귀 뒤로 습관적으로 넘기면서 고개를 숙여 보였다.
“좋은 일 하신다고 해서 와봤어요. 짐이 조금 많은데.”
그녀는 민망한 표정으로 밴을 가리켰다. 확실히 밴은 발 디딜 곳도 없이 꽉 차 있었다. 정말 누워서 오기라도 한 것인지, 그녀가 무사히 온 것이 용할 정도로 말이다.
곧 양팔을 걷어 올리고 모두 그것을 나르기 시작하였다. 어른들이 좋아하는 국수나 박하사탕 등 다양한 것들이었다.
“읏차!”
그녀도 상자 하나를 들었다. 상당히 무거운 것인지 낑낑거렸다. 그 모습을 본 민후는 서둘러 자신이 들었던 것을 내려다 놓고는 후다닥 그녀에게 달려갔다.
“무슨 여자가 이런 걸 들어.”
“나 힘 세에-”
윤하가 민망하게 웃었다. 민후가 대신 들어주었다. 자신도 남자는 남자인가 보다. 자신이 마음에 둔 여자가 힘들어하는 기색을 보니 참을 수가 없었다.
“이야, 민후 운동 좀 했나 봐? 팔 근육 좀 봐.”
“에헴, 내가 운동 하나는 열심히 하지.”
“오, 다시 봐야겠는데.”
그녀가 민후의 팔을 만져보면서 빙긋 웃는다. 민후도 장난스레 농담을 던졌다. 한편, 나르는 것을 도운 채은은 그 모습을 발견하고는 순간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도 여자의 직감이라는 것이 존재하였다. 민후의 얼굴에서는 평소 찾아볼 수 없는 감정이 존재하였다. ‘안돼…….’그녀는 믿기 힘들었다. 그 감정은 한윤하에게서도 나타나는 듯싶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무척 잘 어울렸다. 그것이 더욱더 자신의 심장을 후벼 팠다. 민후는 여자에게 큰 관심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 때문에 언제든 자신에게 기회는 있을 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민후와 윤하는 서로 감정이 있으나 공식적인 사랑을 나누지 않는 것일 뿐. 서로에게 좋아하는 마음이 엿보였다.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자신을 여자로서의 감정을 느끼게 한 유일한 남성이었다. 그 남성이 다른 이를 좋아한다는 것. 그것은 그녀에게 참을 수 없는 슬픔으로 몰려왔다.
채은은 아직도 어른거렸다. 양로원에서 두 사람은 본인들도 모르게 서로에게 끌려서 꼭 붙어 다녔다. 민후의 웃음이 지워지지를 않았다. 그녀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몸을 일으킨 그녀는 한숨을 내뱉으면서 문과 멀지 않은 곳 옆쪽에 달린 거울을 바라보았다.
짧은 머리카락, 거친 이미지를 위한 메이크업, 도드라지는 붉은 립스틱의 입술, 찢어지고 체인이 달린 스키니진 청바지, 런닝화, 어두운 느낌이 나게 하는 티셔츠.
‘이런 모습이니…… 날 좋아할 리가 없잖아.’
그녀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떨어져 내렸다. 그녀는 주저앉았다. 이래서는 안 되었다. 강민후를 한윤하라는 여성에게 빼앗기기 싫었다.
한참이나 울던 그녀는 심정을 가다듬고 몸을 일으켰다. 검은색의 아이라인이 턱선까지 내려왔다. 그녀는 그것을 손으로 닦아내었다.
‘변해야 해, 내가…….’
라고 생각한다. 몇 년을 이렇듯 차가운 이미지로 살아왔다. 그러나 이젠 그러지 않아도 된다. ‘김채은’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더 이상 자신을 무시할 수 있는 요리사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여전히 이렇듯 냉담하게 산 이유는 어느덧 담배를 습관처럼 피우듯, 습관 같은 익숙함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버려야 했다. 좋아하는 남자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말이다.
* * *
지이잉.
민후는 자신의 차를 타고 수강을 받기 위해 학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제 수강을 받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다음 달부터는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게 되는 셈이었다.
휴대폰이 진동하자 그는 빨간불이 멈췄을 때, 잠시 열어 확인하였다. ‘원장님’의 생일, 5일 전’이라고 적혀져 있었다. 처음 그녀를 대면하기 전에 컴퓨터로 검색해본 적이 있었다.
그녀도 나름대로 요리방면에서는 상당히 인지도 있는 여성이었기 때문에 검색하면 바로 프로필 사진과 정보가 뜨면서 생년월일도 확인할 수 있었다.
선뜻 자신을 가르쳐주겠다고 나선 사람이었고 생년월일이 수강을 받는 때와 겹쳐서 챙길 수 있으면 챙기자는 생각에 생일을 저장해놓았었다.
“뭘 선물해 드리는 게 좋을까.”
그녀를 통해서 얻은 것도 많았고 두 사람 사이도 상당히 좋아진 편이어서 선물을 해도 이상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배우는 입장에서 선생님께 선물 하나쯤은 괜찮을 것 같았다.
단지, 그녀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고민하는 민후였다.
학원으로 온 민후는 일단은 전혀 모른 척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오늘도 평소보다 15분 정도 일찍 왔다. 몇 사람이 와 있었는데, 지민과 진영이었다.
두 사람. 요즘 상당히 뭔가 냄새가 났다. 이렇게 일찍 오는 것도 그랬고, 자신이 들어오면 당황하는 기색도 그랬고, 그러나 모른 척해주었다.
한창 젊은 나이에 두 사람이 연애하는 것은 당연하였고, 숨기고 싶어 하는 이들을 놀려서 좋을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원장님은요?”
“잠시 나가신 거 같던데.”
진영이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는 어기적거리면서 지민과 거리를 벌려서 민후에게 다가왔다.
“하, 하하. 이제 보니까 참 잘생겼네.”
“그런 거 같아요. 저도 거울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요.”
괜히 할 말 없어서 어색하니 딴소리를 하는 그다. 잠시 앉아서 오늘 배울 것에 대해서 앞서 이론으로 공부를 하기 위해 노트와 책을 펼쳤다.
막 읽으려는 때 문이 열리면서 인기척이 들려 고개를 틀었다가, 동시에 특별 지도실 실습실 안에 있던 모두가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안으로 들어온 이는 분명 여성이었는데, 처음 보는 여성인가 싶었다. 그러나 자세히 살피니 아니었다. 4㎝의 굽이 있는 하얀색 구두에 꽃무늬가 그려진 무릎 정도까지 오는 치마. 하얀색 블라우스를 치마 안에 넣음으로써 깔끔함을 연출하였다.
이러한 여성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한 이는 다름 아닌 김채은이었다.
더욱 놀란 것은, 그녀의 짧은 머리카락이 아닌, 긴 웨이브의 머리카락이 자리 잡고 있었고, 따뜻한 느낌의 여성스러운 화장을 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조, 존나 예쁘다…….”
진영이 순간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함께 굳어 있던 지민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를 쏘아보았지만, 그는 넋이 나간 듯싶었다. 민후 역시도 잠시 넋이 나갔었다.
처음 사진으로 접하였던 그 모습? 아니, 그 모습보다도 더욱 아름다웠다. 여성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난 그녀는 진심으로 아름다웠다. 비교하자면 한윤하와 옆에 나란히 서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왜? 이상해?”
그녀는 진영의 중얼거림을 듣지 못한 것인지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민후를 보면서 민망한 듯 웃어 보였다. 그 미소조차도 평소의 표정과는 달랐다.
어색함이 느껴지는 미소였으나 그 미소는 본래 그녀가 가지고 있던 그 미소일 것이다. 조작된 것이 아닌 평소 그녀의 웃음.
“아니요. 되게 예쁘신데요.”
“맞아요, 원장님. 너무 예뻐요.”
“대, 대바악…….”
여전히 진영은 놀란 모습을 추스르지 못하나 보다. 예쁘다는 말에 그녀는 안도한 듯싶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다른 이의 ‘예쁘다’라는 소리보다는 민후의 ‘되게 예쁘신데요’라는 말의 의미가 무척이나 컸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기분이 좋았다. 오랜만에 느껴본다. 여성으로서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기쁘기는 말이다.
“머리는…….”
“아, 이거 가발이야. 좀 갑갑해.”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귀여운 표정으로 머리를 긁었다. 곧 하나둘 다른 수강생들이 안으로 들어오면서 그녀의 그 모습을 확인하고는 전부 얼음이 되었다.
그들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김채은의 자태에 놀라고 있었다. 하물며, 그녀의 평소 모습과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평소 그녀의 모습은 거친 미소년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렇듯 여성스럽게 꾸미고 보니 그녀는 천상여자 같았다. 얼굴에서는 품위와 더불어서 단아함이 느껴졌다.
물론 걷는 것 하나하나, 표현 하나하나는 아직 거칠고 차가운 투가 크게 남아 있었으나 몇 개월 익숙해지면 나아질 것이었다.
“선생님, 이건 뭐예요?”
“응? 아…… 무, 문신 지우려고.”
그녀의 옆에 꼭 붙어서 세심하게 그녀를 살피고 있던 지민이 그의 목 뒤에 붙어 있는 파스 비슷한 것을 발견하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조심스레 말했다.
그녀는 문신까지도 지우자고 생각하고 방금 병원을 다녀온 것이었다. 만들 때는 쉬웠지만 지우기 위해서는 열 번을 넘는 횟수 동안 시술을 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고통이 상당했으나 그녀는 오늘도 꿋꿋이 참아냈다. 다 강민후를 얻기 위해서였다. 여성의 심리로써 남자가 문신한 여자를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아프겠다…….”
“조금. 자, 수업 시작해야지.”
짝짝.
그녀는 정신이 나간 듯한 수강생들을 손뼉을 치면서 일깨워주었다. 곧 평소와 다를 바 없이 그녀는 수업을 시작하였는데, 수강생들이 상당히 낯설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녀가 평소의 말투와는 다르게 부드러운 어조를 구사하려고 노력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잘 어울렸기에 그것을 가지고 뭐라고 하는 간이 부은 이는 없었다.
수업이 끝이 나고 고개를 숙여 보이고 나서는 민후를 보면서 그녀는 빙긋 웃었다.
‘그래, 이렇게 바뀐 나를 좋아하게 될 거야…… 전부 아름답다고 하잖아…….’
그녀는 남성들의 심리를 알고 있었다. 아름다움에 끌리는 이들이 대다수였고, 민후도 자신이 아름다워졌으니 호감이 상승했을 거라고 여겼다.
그녀는 그가 나선 자리를 보면서 작은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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