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나를 보내다
영화 42.195㎞는 장애인 영화로 한 획을 그으면서 기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최종적인 42.195㎞의 관객 수는 667만 관객이었다. 기존의 배우 송수현이 연기했을 때보다도 50만 관객이 늘어난 상황이었다.
하물며, 민후는 42.195㎞를 통해서 각종 상을 수상하였으며 남우주연상을 타내는 기염을 토해냈다. 이제 겨우 데뷔 2~3년 차의 배우가 남우주연상이라니. 명실공히 그는 이제는 ‘신인 배우’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게 된 것이다.
하물며 42.195㎞는 최우수 작품상을 타내고 그 외에도 각종 상을 더러 받았으며 국내뿐만이 아니라 해외에도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일본과 더불어서 홍콩, 대만, 말레이시아 등에 수출하기로 결정된 사항이 있었으며, 해외에서도 상당한 호평을 받았고, 일본에서 시사회를 했을 때는 상영이 끝난 후 기립 박수를 받을 만큼 그 인기가 대단했다.
특히나, 다른 나라들을 제외하고 일본에서의 반응이 좋았는데, 오죽했으면 일본의 TBS측에서 42.195㎞에 대한 판권을 사겠다라는 의견을 밝혔으며 제작사와 합의한 후에 판권이 판매된 상황이었다.
TBS 측은 영화가 아닌 스페셜 드라마로서 제작할 것이라고 의사를 밝혔는데, 벌써 방영 전임에도 일본 일도가 꽤 뜨거운 반응이 일어나고 있었다.
하물며 민후의 경우는 무릎탁도사에 나옴으로써 국민에게 더욱 큰 호감을 건네고 그들에게 자신이 어떠한 배우인지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들은 강민후가 그토록 노력하는 배우라는 것에 다양한 반응을 보였으며 그를 응원하는 이들이 부쩍 늘어갔다. 하물며, 팬카페의 인원들도 급격한 상승을 맞이했다고 할 수 있었다.
어느새 민후의 나이가 23살이 되었다. 논스톱을 할 당시 20살이었으며 끝나고 42.195㎞에 참여했을 때 21살 10월경이었다. 그리고 개봉 후 42.195㎞의 홍보 및 각종 인터뷰 등에 임하면서 생활하다 보니 어느덧 23살이라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이젠 42.195㎞의 인기가 한층 꺾이고 슬슬 새로운 작품을 준비해야 하는 때가 된 것이다. 민후에게로 건네지는 작품의 수는 꽤 많았다. 아무래도 남우주연상을 받았으며 42.195㎞라는 작품을 통해서 많은 감독들과 방송 관련 관계자들에게 그 얼굴을 알린 셈이다.
하물며 원체 신인 배우라고 불리던 당시에도 ‘미친 듯이 노력하는 신인이 있다’라는 소문이 들렸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그를 탐내고 있었다.
하지만 민후는 그에 심사숙고하여 검토하고 있었다. 분명 그는 어떤 배역이든 배우는 가려서는 안 된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쏟아지는 작품들 중에서 무조건 하겠다고 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 중에서 그가 원하는 작품이자, 작품성 있고 또한 만족할 만한 작품을 건져야 맞는 것이었고, 현재 그는 ‘식객전쟁’이라는 작품을 1순위로 두어 후보로 두고 검토하고 있었다.
식객전쟁은 말 그대로 한국 요리사들의 싸움을 담은 영화였다. 요즘 식당가를 가면, 한식보다는 양식이나 일식 등이 사람들에게 더욱 인기가 컸다.
그러나 이 영화는 한국 고유의 맛과 더불어서 한국 요리사들의 실력을 낱낱이 파헤치기도 하며, 유명한 만화가이신 송준기 선생님께서 그리신 원작 만화이기도 하였으며 스토리가 상당히 탄탄한 내용이었다.
하물며 민후는 한식, 양식, 중식에 복어 조리사, 제과제빵 자격증까지 취득해 놓은 상황이었다. 보라, 앞서 노력하여서 준비해놓으니 요리 관련 작품이 들어와도 민후는 걱정 따위 없었다.
이미 자신은 식객전쟁을 한다면 누구보다 훌륭하게 해낼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 것이다. 단지, 아직은 검토 중일 뿐이었으며 실상 민후는 식객전쟁이 어떤 성적인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민후와 최강호가 사고를 당했던 때가 봄이었다. 4월. 그리고 그것이 바로 올해였으며 식객전쟁은 내년쯤에나 개봉될 것이었다. 그 때문에 그 흥행성을 알지는 못한다.
시간은 정말 무색하게도 빠르게 흘러가 버렸다. 현재 2월경이었다. 2개월 후면 민후는 자신의 앞에서 자신이 죽는 것을 지켜봐야만 하였다.
최강호는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던 명품 국민배우였다. 사람들이 모두 그를 아꼈으며 그도 그 기대에 부응하던 이였다. 그의 죽음은 혼자만의 죽음이 아닐 것이다.
민후는 자신의 죽음이 다가오는 만큼 마음의 준비를 하는 실정이었다. 애석하게도 그의 죽음에 자신은 관여할 수가 없는 현실이었다.
죽음을 맞이하는 그는 본디 강민후가 되어버린다는 사실만은 그도 알고 있었다. 하나 그가 죽는다는 생각은 결국 공허함과 씁쓸함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단지 의문이라면 이번에 그의 죽음이 어떤 식으로 풀어질지에 대한 것이었다. 강호는 분명 민후와 술을 걸치고 대리운전 기사의 운전 하에 차를 타고 가다가 트럭으로 하여금 사망하게 된다.
그러나 강민후와의 술자리는 이번에는 없을 듯하였다. 어떤 식으로든 결국 그는 죽게 될 운명이기는 하였다. 그 방식은 운명이 정할 것이다.
오늘의 경우는 황제 소속사의 모든 이들이 모이는 날이었다. 이런 날은 일 년에 딱 두 번 정도밖에 없었다. 소속사의 직원들이나 매니저들이 모이기도 하였지만, 모든 배우가 참석하는 자리이기도 하였다.
실제로 이런 일은 흔치 않았다. 원체 바쁜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제 소속사에서는 오랫동안 내려왔던 전통이며 한 번 이 자리에 참석한 배우들은 모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서 여전히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었다.
소속사의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술을 즐기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상당히 유쾌하고 얻을 것이 많은 자리였다.
하물며 이번에 남우주연상을 받은 떠오르는 배우 강민후의 경우 그들과의 입지를 단단히 굳힐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할 것이었다.
“역시 황제 소속사의 클래스는 남달라.”
정수는 벌써 침이 꼴딱꼴딱 넘어간다는 모습이었다. 그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 있었다. 황제 소속사의 회식 장소는 서울 일대에서도 유명하기로 소문난 ‘치이익 한우 전문점’이었다. 1인분에 7만 원을 호가하는 한우고기만을 판매하는 곳으로 상당히 비싼 편에 속하였다.
그렇지만 황제 소속사는 과감하게 이곳의 예약석을 통째로 빌려버렸다. 소속사의 직원들 숫자와 배우들 숫자를 고려하면 50여 명을 넘어선다.
그들 모두가 1인당 1인분 이상과 냉면, 밥, 술 등을 예상하면 어마어마한 금액이 예상된다. 그러나 함태웅 대표는 이미 2차 장소인 노래방도 예약을 끝내놓은 상태였으며 2차에서는 양주를 마신다고 하니 그 클래스가 대단하다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배우들의 경우 황제 소속사의 이들의 대부분이 이름 있는 배우들인지라, 상당한 수입량을 올려서 그러려니 하겠지만 일반 매니저들이나, 직원들에게는 군침이 도는 이야기임이 사실이었다.
장소에 도착하고 예약석으로 향하였다. 민후는 30분 일찍 온 편이다. 평소에도 이렇듯 어디를 가든 누구보다 앞서 오는 그였지만 오늘은 조금 특별한 이유가 껴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예약석으로 올라오자 누군가 보였다.
그는 안경을 끼고 책장을 넘기면서 한 자리를 잡고는 앉아 독서를 하고 있었다.
최강호, 바로 그였다. 민후는 예상했던 사실이었다. 지금의 자신도, 그리고 최강호도 본래의 습관을 이렇게 물들여놓은 상황이었다.
하물며 최강호의 경우 나이가 들고, 국민배우라는 이름으로 불림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누구보다 앞서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실천함으로써 후배 배우들에게 더욱 깍듯한 대접을 받을 수가 있었고, 그를 존경하며 롤모델로 삼은 이들이 한두 사람이 아니다 할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잠시 먹먹한 가슴을 진정시킨 민후는 최대한 큰 소리로 인사해 보였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틀어 민후를 보고는 빙긋 웃었다.
“백만 불짜리 연기력을 가진 친구 아닌가.”
그는 안경을 벗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민후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자리에 앉아서 그의 인사를 받을 만도 하건만 우렁찬 그의 인사 소리에 그는 한껏 부응해주었다.
곧 민후는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책을 덮은 그는 민후를 유심히 살폈다.
‘태웅이 말이 맞았구나.’
강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태웅은 우스운 소리로 저번에 한 번 둘이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눌 때 소속사에 그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친구가 있음을 밝혔고, 행동하는 것조차도 똑 빼닮았다는 친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었다.
그리고 강호는 그가 자신과 마주친 적이 있던 신인 배우 강민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민후에 대해서 더욱 유심히 살펴보았다.
하물며 42.195㎞도 최대한 집중하여서 감상하였는데, 대단한 연기력을 가진 친구였다. 하물며 태웅이 말하기를 매일 어디를 가든 누구보다 앞서는 친구라고 하였는데, 그 부분도 똑 닮아 있어서 혹시나 오늘도 자신처럼 일찍 오려나 싶었더니 이렇게 만나게 되었다.
자신과 같은 방식의 패턴을 살아가는 사람이라, 하물며 강호는 오늘 민후를 보고 있자니 낯설지가 않았다.
오랜 시간 알아온 것처럼 친숙한 기분이다.
“영화 되게 잘 봤네. 42.195㎞. 연기력이 대단하더구먼.”
“하하, 감사합니다. 저도 선배님 작품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보았습니다.”
민후는 그의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듯이 말하며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실은 선배님께서 저의 롤모델이시거든요.”
“아아, 그런가. 이거야 원, 나이 마흔 넘어서야 성공한 배우가 뭐 배울 게 있다고 롤모델이라니. 하하.”
그는 멋쩍게 웃었다. 실상 최강호는 단숨에 떠오른 별은 아니었다. 본래 처음 오디션을 보았을 때 대부분 이들은 그에게 재능이 없다며 다른 길을 알아보라며 악평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는 끈질겼고 남과 다른 노력을 가졌다. 그것 하나로 그는 스물과 서른의 나이에는 조연배우로 사는 삶을 가지면서 겨우겨우 생계를 이어갔고 마흔에 들어섰을 때야 인정받기 시작한 배우가 되었다.
물론 현재의 민후의 경우 그동안 쌓아 놓은 노하우를 통해서 빠른 시간 단기간 상승했다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의 강호의 경우 오랫동안의 혹독한 싸움을 이겨낸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민후와 강호는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민후는 조금 우스웠다.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것이 태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창 이야기를 나누던 민후는 문득 생각한다. 과연 지금의 강호는 행복할까 하고 말이다. 차라리 그랬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실상 자신의 속마음을 본인도 모른다. 과연 행복할까?
그 때문에 그는 슬쩍 물어본다.
“행복하시겠어요. 많은 국민분들이 국민배우라고 불러 주시니까요.”
그의 물음에 강호는 잠시 그를 보고는 말이 없었다. 그는 잠시 머릿속으로 생각해 보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행복하지. 나같이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가 알았겠어, 나 같은 사람이 국민배우라는 이름으로 불릴지.”
그의 행복하다는 목소리에 민후는 속으로 안도했다. 그래도 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줘서 고마웠다. 행복하다면 그걸로 되었다. 그러나 그는 곧 민후를 보고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즐겨보지 않은 건 조금 후회가 되네. 세상엔 분명 볼 것도 많고, 들을 것도 많은데 말이야. 자넨 아직 젊으니 시간이 되면 여행도 다녀오고 하게나.”
민후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부분이 아쉬웠다. 확실히 자신도 쉰다섯이라는 나이를 맞이했을 때 자주 그 생각이 들고는 하였다.
물론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하여서 후회는 크게 없었다. 있다면 아내를 떠나보냈다는 점이나 될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여행을 많이 다녀보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 다른 이들처럼 놀아보기도 해도 좋았을 텐데 하고는 생각하고는 하였을 뿐이다.
강호는 민후와 자신이 닮았다는 것을 알기에 한 충고였다. 그가 부디 한 번쯤은 모든 것을 털어놓고 즐겨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민후도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는 자신의 모든 것을 한 번 훌훌 털고 잠시 즐겨볼 것이었다.
하나둘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강호는 연륜이 흐르는 황제라는 소속사의 간판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배우들에게 먼저 다가서 인사를 하고 웃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민후도 마찬가지였다.
그에 방금 전, 강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가 민후의 인사를 받게 된 함태웅이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뭐지?’
두 사람이 마치 아버지와 아들 같은 모습이다. 너무나도 하는 행동이 판박이여서 드는 생각이다. 곧 회식 자리가 이어지기 시작하였고 민후는 선배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다른 이들도 그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
다른 쟁쟁한 배우들을 이기고 남우주연상을 받은 민후는 당연히 이번 회식에서 돋보일 수밖에 없음이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어느덧 술자리가 무르익어 하나둘 사람들의 얼굴로 웃음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 * *
4월 12일.
아직도 머릿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최강호, 자신의 강의에 강민후라는 학생이 들어왔었고 자신의 강의에 대해 반박을 하였다. 그러나 강의가 끝난 후 죄송하다고 자신의 뜻을 전한 그와 술을 한 잔 했다.
그리고 돌아가는 그들을 덮친 것은 다름 아닌 트럭이었으며 강호는 저승사자와 마주할 수 있었고, 민후로서의 새로운 삶을 대신 사는 것으로 하여 18살 강민후가 되어 병원에서 깨어났었다.
오늘이 바로 4월 12일. 그날이었다. 최강호가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운명의 날이라고 할 수 있었다. 8시. 오늘의 경우 특별한 스케줄이 없었던 민후는 멍하니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평소의 그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평소였다면 쉬는 날이었으니 보컬 트레이너를 찾아가서 자신이 그동안 노력한 것에 대한 성과를 보여주고 다른 것을 배워왔을 것이며 집에서 한참 독서와 노래 연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아무리 그라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이 죽는다는 것은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는 괴로운 일임이 사실이었다.
어쩌면 이것은 새로운 삶을 얻게 된 강민후가 받아야 할 당연한 값일 수도 있었다.
최강호가 사고를 당하는 시각은 11시경이었다. 그 후가 될지 아니면 전이 될지, 같은 시간에 사고를 당할지는 민후는 알 수 없었다.
그는 복잡한 머리 때문인지 눈을 감았다. 차라리 어서 빨리 오늘 하루가 지나갔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눈을 잠시 감았다가 뜬 민후는 자신이 깜빡 잠이 들어버린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어느덧 시각은 11시를 넘어선 상황이었다. 그는 놀라 벌떡 몸을 일으키고는 바깥을 바라보았다.
바깥에서는 자신들이 사고를 당했던 날처럼 추적추적 비가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민후는 서둘러서 거실로 가서 TV를 틀었다. TV를 튼 그는 순간 머리가 뭔가 둔탁한 것에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속보로써 밑쪽으로 ‘국민배우라고 불리는 최강호,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배우 강민후가 타고 있던 차량이 전봇대 들이받고…….’라고 떠오르고 있었다.
민후는 서둘러서 뉴스 채널로 돌렸다.
뉴스에서는 사망 현장과 더불어서 화면의 바로 우측 위쪽으로 그의 사진과 함께 중개를 하고 있었다.
-배우 최강호 씨의 차량이 사고를 당한 현장입니다. 사고 전 최강호 씨는 술을 마신 것도, 다른 특별한 일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현재 경찰은 사인을 조사하고 있는 중이며, 큰 외상은 없는 것으로 보아 심근경색으로 인하여서 운전 도중 사망하고 전봇대를 들이받았다고 추측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배우 최강호 씨는 119구급대원들이 도착하였을 당시 이미 사망한 것으로 밝혀져 있으며……(생략).
“결국…… 죽은 건가.”
민후는 털썩하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다. 결국, 그는 죽었다. 아마도 TV에서 나오는 심근경색이 맞을 것이었다. 그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죽는 것을 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얼마 전 강호에게 ‘행복하시겠어요.’라고 물었을 당시, 그의 웃음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러나 바꿀 수 없는 운명이었으며 돌이킬 수조차도 없었다. 그는 숨이 턱 하니 막히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에게 하소연할 수도, 이 답답한 심정을 말할 수도 없는 자신이었다.
단지, 이젠 차갑게 식어버린 최강호가 강민후가 되었다는 사실을 자신 혼자서만 영원히 품고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만이 존재하였다.
최강호의 죽음은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엎을 만큼 큰 이슈가 되었다. 그는 다른 연예인들처럼 비운의 삶을 살다가 죽은 것도 아니었으며 자신의 삶을 평소처럼 살아가다가 갑작스러운 심근경색으로 인하여서 사망하였다. 경찰은 그의 사인이 심근경색이라고 확실하게 단정 지었다. 평소 건강한 몸을 유지하였던 최강호였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심근경색을 그도 피해갈 수는 없었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국민들은 애도의 물결을 보내고 있었다. 하물며 각 인터넷은 그의 살아생전 일구었던 것들과 그의 노력 인생에 관하여 더불어서 살아생전 많이 부족하다고 항상 말하고는 하였던 그가 죽어서도 부족해할 것 같다, 라고 많은 이들이 눈시울을 붉혔다고 할 수 있었다.
하물며, 최강호가 방송연예과 교수로 재직하였던 인덕대학교의 최강호의 제자 중 서소윤이라는 4학년 여학생이 있었다. 과대표였고 예쁜 얼굴과 더불어서 착한 성격, 리더십으로 하여금 강호도 무척 예뻐하던 학생이었다.
그녀가 만든 동영상이 이슈로 떠올랐다.
그녀는 최강호의 죽음을 실감할 수 없었으며 더불어서 교수였던 그는 따뜻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듯싶었다.
그녀는 강의를 하는 강호, 다른 아이들과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은 그의 모습, 영화 등 각종 드라마에 나오는 그가 스쳐 지나가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배포하였다.
특히나 마지막 사진이 가장 큰 화제였다. 방송연예과 학생들이 스케치북 하나에 그를 생각하는 마음을 적은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살아 있는 영혼으로 다른 이의 누군가의 몸에 들어온 민강호는 그것을 보고는 눈물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자신을 이토록 사랑해줬다는 것에 고마웠고 대견스러웠다.
다시는 최강호로서 그 아이들과 만날 수 없다는 것이 한탄스럽기도 하였다. 그의 장례식장으로 수많은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벌써 수천 명이 넘는 인원들이 그의 아쉬운 죽음을 달래주고 있었다.
소속사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함태웅과 몇몇의 배우들이 함께 장례식장에 자리를 잡고 지키고 있었다. 다른 배우들은 따로 방문할 예정이었으며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있었다.
임경우는 멍하니 영정 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가버리면 어떻게 하나, 이 몹쓸 사람아. 난 누구를 보고 살아가라고.”
그는 술을 꺾어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곧 비워진 술잔을 채운 것은 다름 아닌 그의 눈물이었다. 그는 결국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면서 고개를 떨구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가면 난 누굴 보고 달리라고, 이 양반아.’한다.
항상 차가운 모습이지만 그 속내만큼은 따뜻한 함태웅은 울음을 참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와도 참 두터운 친분이었다. 함태웅은 술잔을 꺾어 단숨에 들이켜고는 한숨을 토해낸다.
‘고맙네, 나 같은 사람 때문에 이렇게 울어줘서.’
민후는 그런 그들을 보면서 보이지 않는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가슴은 울고 있었지만,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고맙다, 라는 인사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많은 조문객이 올려놓은 새하얀 국화꽃이 보였다. 조문객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었으며 연신 최강호라는 배우를 애도하는 중이었다.
자신은 너무나도 행복했던 사람이지 않았는가 싶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자신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발걸음을 해주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이 헛되이 살지 않은 인생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자신의 죽음을 직접 지켜보고 그 과정을 본다는 것은 이런 기분일 줄 몰랐다.
그는 여전히 끊이지 않는 발걸음의 이들을 보고 있었으며 그중에는 자신의 전 부인이었었던 이채화도 있었다. 그녀는 현재 평범한 회사원과 재혼을 한 상황이었으며 하루하루 행복해 보이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볼 때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한편, 가슴이 아프기도 했던 강호였었다.
안으로 들어오는 그녀의 얼굴은 야위어 있었다. 오기 전부터 그녀는 쉴 새 없이 울었던 것 같다. 그녀는 식장에 들어오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으려 했다.
다른 이들이 그녀를 부축해 주었다. 자리에 앉은 그녀는 쉴 새 없이 계속해서 울었다. 서러운 듯 우는 그녀를 보는 민후는 씁쓸했다.
‘왜 그렇게 우는 거냐, 채화야. 잘해준 것도 없는 나인데.’
자신이 얻고 싶은 배움의 길만 택했다. 그 때문에 외로워져서 떠난 그녀인데 무엇이 그렇게 애통하고, 그렇게 미안하다는 건지 모르겠다. 민후는 앞에 놓인 소주잔을 집어 들어 잔을 꺾어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아이고, 이 녀석아. 왜 이렇게 일찍 가버린 거야.”
강호에게는 현재는 부모님이 계시지 않았다. 아버지는 일찍 여의었다. 그때문이라도 그는 빠르게 철이 들었던 것 같았다. 어머니는 10년 전 암으로 인하여서 돌아가셨다.
그 때문에 핏줄이라고는 형인 최강태만 남아 있었다. 조문객들을 맞던 그는 결국 눈물을 터뜨려버렸다. 가장 미안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자신의 형이었다.
30대까지도 단역배우에 그쳤던 그는 마땅한 형편이 되지 않았을 때가 많았고, 강태가 그를 도와주었다. 어머니의 암 수술 때도 누구보다 힘썼던 것이 강태였다.
‘그런 생각이나 하고.’
민후는 자신을 문득 한탄했다. 그는 머릿속으로는 한편 자신이 남긴 것으로 하여금 형이 행복해졌으면 한다. 그가 자신의 돈을 가지고 행복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그러기를 바란다. 참 한심한 자신이었다.
민후는 하루를 꼬박 그 자리에서 강호의 자리를 지켰다. 다른 이들이 안 가냐고 물으면 그는 ‘자신의 롤모델’이었다라고 말함으로써 그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앉아 있었다.
하루 사이에 수많은 이들이 다녀갔다. 그리고 자신처럼 가지 않는 이들이 상당히 있었다.
그중 임경우도, 이채화도 있었다.
민후는 꽤 술을 많이 마셨다. 물론 정신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마신 것은 아니다. 웬만한 주량가들보다 신체적 영단으로 주량도 세진 그였기에 멀쩡했다.
그는 채화에게로 다가갔다. 그녀는 멍하니 최강호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저 강호 선배님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그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그녀의 잔에 술을 따라주며 한 말이다. 그녀는 의아한 모습이었다. 그는 강호와 헤어지고서도 그와 연락을 주고받던 사이였다.
그러나 이렇듯 젊은 친구와 친하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친하다 싶은 것을 말하자면 증명할 여건이 충분했다. 그러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위해 그녀의 앞자리에 앉은 것은 아니다.
“저희 그이…… 강호 씨하고 친하셨나요?”
“예. 생각보다 많이요.”
그녀는 말을 정정하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민후는 확고하게 답하였다. 실상, 자신이 친하다고 하여서 다른 이들이 확인할 방도는 없었다. 더불어서 자신은 강호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그 증거의 제시는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강호가 좋아했던 것이라든지, 혹은 어떤 것을 싫어했는지 등등을 말할 수가 있었다.
민후는 천천히 그녀의 잔에 술을 따라줬다. 맑은 소주가 잔에 따라졌다. 그는 잠시 채화의 얼굴을 살폈다. 그녀도 많이 늙었다. 그런데 자신은 이젠 젊어졌다.
어쩌면 이것은 최강호이자 강민후가 받아야 하는 합당한 결과일지도 몰랐다. 누군가는 그러하였다. 죽은 자보다 남은 자들이 더욱 힘이 든다고 말이다.
그리고 민후는 오늘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또한, 남은 자보다도 죽어서도 그들을 지켜보는 일이 더 힘든 일임을 말이다. 그들의 슬픔을 민후는 입 밖으로 내뱉지도 못한 채 영원히 가져가야만 했다.
‘내가 강호다, 최강호.’
이 몇 글자를 그는 영원히 하지 못한다. 이제 그는 강민후로서 살아야 한다. 젊고 건강하며 두뇌 회전 빠른 젊은 민후의 몸을 얻은 대가일 것이다.
“전에 한 번 술을 마시면서 최강호 선배님한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채화는 천천히 운을 떼는 그의 입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의 자취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사실 제가 여자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어쩌다 이야기가 그런 식으로 흘러갔는지는 모르지만 이채화 씨 이야기가 나왔었어요. 저는 사실 채화 씨 이야기를 하시길래 물었어요, 원망스럽지 않냐고 오히려.”
민후는 자신의 잔에 소주를 가득 붓고는 단숨에 들이켰다. 쌉싸름한 알코올이 목을 타고 뜨겁게 파고 들어갔다. 그는 힘겹게 웃었다.
“그렇지만 제 물음에 강호 선배님은…… 자신의 잘못이었고 오히려 채화 씨가 다른 사람이라도…….”
그는 마지막 말에서 목이 메었다. 자신의 진심을 민후로서 그녀에게 전하는 것조차도 이렇게 힘이 들지는 몰랐다.
“행복했으면……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흑, 으흐흑! 흑!”
민후의 마지막 말에 그녀는 다시 울음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이채화가 기억하는 강호라는 남자는 완벽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부단한 노력을 가하는 그는 자신을 외로이 만들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멋지고 대단한 사람이었으며 정이 많고 너그러운 이였다. 그는 죽어서 마저도 자신을 이토록 넓은 가슴으로 안아주고 있었다.
민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답답했던 가슴속 한구석이 뻥 뚫리는 것을 느꼈다.
때마침 임경우가 초췌해진 얼굴로 바깥으로 걸음을 하려 하고 있었다. 민후는 뒤따라 나왔다. 경우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담배를 입에 물었다.
“후…… 담배도 안 피우는 친구가 왜 따라 나왔어.”
민후는 완전히 담배를 끊었다. 그 발판은 42.195㎞가 되었지만, 그는 차라리 끊어버리는 것이 낫다, 라고 생각하였고, 완전히 끊어버린 것이다. 경우는 담배 연기를 뿜어내면서 연신 한숨을 뱉어냈다.
“그보다 자네 최강호 형님하고 그렇게 친했었나? 나는 몰랐는데.”
“……예, 많이요.”
“섭섭하네, 그런 이야기도 안 해주고. 나쁜 사람 같으니.”
경우는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서로가 가장 친했던 사이였으며 존중했던 이들이기도 하였다. 경우는 그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는 것에 심기가 불편해지는 듯하면서도 그가 그리워져서 다시금 울음이 치솟아 오르려고 한다.
그는 참기 위해 가쁜 숨을 몰아쉬다가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다시금 한 모금 빤다.
“최강호 선배님한테 임경우 교수님은…… 정말 좋은 친구였어요.”
담배를 내뱉는 그를 보면서 민후는 말을 떼었다. 그의 이슬이 가득 맺힌 눈동자가 민후에게로 향했다. 민후는 머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예전에 교수님이 강의 때 그러셨죠? 임경우 교수님은 라이벌을 최강호 선배님으로 두고 계속 달리시고 있다고. 최강호 선배님도 마찬가지였어요. 매일 저하고 만나서 술 한잔하면.
오늘은 임경우가 뭘 했느니, 어떤 작품에 캐스팅되었느니 그 이야기밖에 하지 않았어요.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최강호 선배님한테 임경우 교수님도…… 지고 싶지 않은 대상이었을 거예요.”
“그런가……?”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담배 한 모금을 빨았다. 손의 떨림이 더욱더 커졌다. 그는 결국 눈물을 흘렸다. 그는 눈가를 닦아냈다. 그 말의 의미는 가장 큰 친구였다는 의미이기도 하였다. 그는 먼 허공을 바라보았다.
“아아, 제자 앞에서 이게 무슨 꼴인지, 원.”
눈물을 닦아낸 그는 애써 웃어 보였다. 강호에게도 자신의 마지막 인사를 강민후라는 이름으로 대신 전해주었다. 그는 자신의 형인 최강태에게도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그에게 무척 고마워했었다고, 못난 동생을 이끌어준 그가 술자리에서 매일 같이 눈시울을 붉혔었던 강호였다고 말이다. 강태는 그의 말에 영정 사진 앞에서 무릎을 꿇고는 오열을 터뜨렸다.
민후는 억지로 치솟아 오르는 눈물을 참아냈다. 그는 최강호를 대신해 강민후로서 다른 이들에게 그의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있었다. 심근경색으로 가버린 것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그였지만 그는 진실 된 강호의 마음을 사람들에게 알림으로써 그들의 공허한 가슴을 채워주고 있었다.
하루를 꼬박 강호의 장례식장에 있었다. 집 앞에 거의 다다른 민후는 깊은 공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매스컴은 최강호의 죽음에 대한 보도와 더불어서 각종 프로는 최강호가 일전에 남겼었던 업적과 그의 인생에 관련하였던 것들을 방영함으로써 그의 죽음에 대한 깊은 애도의 뜻을 남기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가장 밝았던 별. 그것이 사라졌다. 대부분 프로그램이나 뉴스는 그렇게 보도를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민후는 이제는 빨리 훌훌 털어버려야 했다.
그는 머릿속으로 오늘만 슬퍼하기로 다짐한다. 자신은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이제 겨우 42.195㎞라는 작품으로 도약을 시작하였을 뿐이다. 이곳에서 슬픔에 얽매여서 가슴을 치고 있는 것은 그에게도 옳지 않았다.
하물며, 그는 생각한다. 최강호의 껍데기는 죽어버렸지만 실제로 죽음을 맞이한 것은 강호가 아니라 강민후였다. 그의 몸속으로 강호가 들어왔고, 그의 영혼은 현재 이 세상에 없었다.
강호의 죽음보다는 민후의 죽음이라는 표현이 더욱더 옳았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는 자신을 반갑게 맞이해 주는 어머니를 볼 수 있었다. 오늘이 한 달에 딱 두 번 있는 어머니의 휴일이셨다. 카페는 두 번째 수요일과 네 번째 수요일에 휴업한다.
현재 어머니가 운영하는 가게는 더욱더 번창하고 있었다. 하물며, 42.195㎞가 방영되고 더욱더 많은 손님이 몰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며 어머니는 얼마 전에 머그잔 50개를 가져오시더니, 15,000원 구매 상당의 손님들에게 줄 것이라고 민후에게 사인을 해달라고 한 바가 있었다.
어머니 식의 이벤트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가게를 확장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민후는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그녀를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반갑게 맞이해 준 어머니는 그가 오자마자 식사를 차려줬다. 그녀는 맛있게 구운 꽁치를 살을 발라서 민후가 뜬 숟가락 위에 얹어주었다.
평소 어머니가 알고 있는 민후는 꽁치를 좋아했다. 그러나 강호는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편이었다. 그녀는 연신 민후만을 발라주고 정작 자신은 김치에, 찌개로만 밥을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어머니가 안다면 어떨까. 이 안에 민후가 아닌, 실제로는 최강호의 영혼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실상 그녀의 아들 강민후는 죽었다는 사실을 알면 말이다.
그녀에게 미안했다. 민후의 꿈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은 그의 몸을 얻었다. 그러나 자신이 젊게 되어 즐거운 점도 분명히 존재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 때문에 죄책감이 수시로 들고는 하였으며 특히나 어머니가 자신을 챙기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러했다.
“어유, 그런데 최강호라는 그 양반 어쩐다니…… 장례식장에 사람 많지?”
“응…….”
그녀도 민후가 강호의 장례식장을 다녀온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건 강민후의 장례식이었어…… 엄마.’ 하고 말이다. 괜스레 강호의 이야기가 나오자 목이 멘다.
“물 줄까?”
어머니가 민후의 표정이 굳자 고개를 갸웃하며 냉장고에서 보리차를 꺼내어 유리잔에 가득 따라주었다. 민후는 그녀가 따라준 보리차를 한 모금 마셔 입을 축였다.
“그래도 그 양반이 부모님 일찍이 여의었다며? 차라리 다행이지, 자식 죽은 꼴 보는 부모는 가슴이 무너져.”
그녀의 말에 민후는 억지로 움직이던 숟가락이 멈췄다. 어머니도 만약 민후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가슴이 무너져 내려서 며칠을 끙끙 앓으셨을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또 저려온다. 이제 강민후의 어머니는 최강호의 어머니가 된 것과 마찬가지였다. 처음 그녀는 자신에게 낯선 어머니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는 어머니의 온정을 자신에게 느낄 수 있게 해주었으며 그는,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다, 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녀가 상처받지 않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본래의 민후에게 사죄하는 의미로써 그녀는 누가 뭐래도 자신이 지킬 것이고 사랑할 것이었다. 그 때문에 말하고 싶었다. ‘걱정마라, 너희 어머니.’라고 말이다.
그는 어느덧 설거지를 하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면서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행복할 것이었다. 어머니도 본인 자신도 말이다.
그래야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을 본래의 강민후가 활짝 웃지 않겠는가.
그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왔다.
방으로 들어온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머릿속으로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껍데기가 되어 버렸던 강호의 죽음, 그러나 실제로는 강민후라는 존재의 죽음이자, 강민후가 되어버린 자신.
이것은 정말 오늘 하루까지만 반복될 생각이었다.
내일부터는 그는 일체 이 일에 대한 죄책감을 최소화하고 평소처럼 다시금 자신의 일을 시작할 것이었다. 자신은 아직도 갈 길이 험난하였다. 그 때문에라도 더욱더 굳은 마음을 가져야 하였다.
그리고 이렇듯 강해지는 이들은 그뿐만은 아니었다. 강호를 친구로 두었던 임경우도, 그를 믿고 도와주었던 함태웅 대표도, 그를 사랑했었던 이채화도, 그리고 형인 최강태마저도 그들은 어느덧 그를 잊기 시작하면서 강해질 것이고, 언론도 차츰 최강호라는 배우가 있었다고 말하면서 그에 대한 아쉬움을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결국, 사람은 잊히게 되어 있다. 단, 얼마만큼의 업적을 남겨서 지금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느냐가 중요했다. 작가든, 화가든 그들은 죽어서야 작품이 알려져 유명해지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배우는 아니었다. 스크린에서 사라지면 오랜 시간 기억에 남기는 힘들었다. 그 때문에 지금 살아 있는 이 순간만큼을 가장 값지게 살아야하는 것이 배우였다.
내일부터 다시 강민후는 모든 것을 털고 일어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