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42.195㎞를 위하여 달린다(1)
논스톱 5가 시청자들의 아쉬움 속에서 종영되었다. 촬영이 끝난 후 종방연이 이어졌으며 정이 들었던 촬영팀, 배우들, 담당 PD와 다음을 기약하며 아쉬운 이별을 고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논스톱 5가 끝났지만 민후에게는 더욱 중대한 작품이 남아 있었다. 42.195㎞. 실상 이제까지는 오디션 준비에 박차를 가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현재는 오디션에서 당당히 합격하여 캐스팅된 상황이었으며 촬영은 이번 연도 10월부터 이뤄지기 때문에 촬영 준비를 철저히 해야 했다.
현재 민후에게로 주어진 시간은 6개월이었다. 그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민후는 피나는 노력을 통해서 42.195㎞라는 영화를 완벽하게 해내고 말 것이었다.
제작사 측에서는 아무래도 마라톤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보니 전문 트레이닝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제작사 측에서 민후에게로 전직 마라토너 선수이자 현재는 코치로 활동하고 있는 우지욱이라는 분을 붙여주었다.
우지욱이라는 마라토너는 대한민국의 각종 마라톤 대회에서 각종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지만 가장 그가 크게 이뤘던 업적은 바로 사하라, 고비, 아타카마에서 치러진 마라톤이었다.
그는 울트라마라톤 선수였다. 울트라마라톤 선수라는 의미는 42.195㎞를 넘어서는 거리를 달리는 이들이었으며 서울에서 부산까지 달리기도 하며 일본으로 가정하면 도쿄에서 아오모리까지 달리는 식의 이들이었다. 울트라 마라톤의 경우 두 가지가 존재했다. 특정 거리인 50㎞나 100㎞를 달리거나 혹은 특정 시간 동안 예를 들어 24시간 혹은 48시간. 정해진 시간 동안 더 많이 달리는 이가 승리하는 형식의 마라톤이다.
그런 그는 현재 마흔 살이라는 나이를 맞이해있었으며 후배 양성에 대한 힘을 기울이고 있었고, 작가로서도 유명했다.
수많은 마라토너 아마추어들의 롤모델 중 한 사람이 바로 우지욱 그였는데, 그에게 트레이닝을 받는다는 것은 민후에게는 축복과도 같은 일이었으며 그만큼 그가 가르치는 것만큼 부응할 생각이었다.
우지욱과 트레이닝을 받기로 한 곳은 양재천 조깅 코스였다. 영동 2교에서 시작하여서 과천 시계 주암교까지 달리면 3.77㎞를 달릴 수 있으며 왕복하면 7.5㎞가량 된다.
영동 2교 입구에서 민후는 우지욱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아직 추운 날씨인지라 패딩을 입고 왔으며 스포츠용 선글라스와 자전거 한 대를 이끌고 왔다.
그는 민후를 보자마자 방긋 웃으면서 악수를 청했다.
“아이- 이거 반가워.”
그는 평범한 중년 남성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그의 다리를 내려다보니 튼실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다리로 사하라도 아타카마도 내달렸다는 것을 생각하니 괜스레 대단하다 느껴진다.
민후는 자신이 노력파여서는 그런지 몰라도 노력을 하는 이들을 보면 대강 그들 대부분이 좋아 보였다. 특히나 마라토너들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3시간 만에 42.195㎞를 쉽게 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그만큼 페이스 조절을 위해서 노력하고, 달리고 반복하였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웬만한 노력 없이는 불가능했다. 하물며, 앞의 우지욱의 경우 울트라 마라토너로서 그 거리를 정하고 달리지 않는 ‘울트라’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이였다.
그리고 실상 그를 트레이닝해 줄 우지욱도 기대가 꽤 있었다. 문 감독과는 그가 마라톤에 대해서 조사하기 위해 우지욱을 직접 찾아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고 그로 인해 어느 정도 안면이 쌓인 바가 있었다.
그러다 얼마 전에 그에게로부터 ‘강민후’라는 배우를 트레이닝 해줄 수 있겠냐라고 제의했다. 그는 고민해보겠다고 하였다. 실제로 배우들을 트레이닝 해본 적은 없는 그였기에 많은 고민이 들었다. 그는 인터넷을 뒤져서 강민후라는 배우에 대해서 알아본 바가 있었는데, 기사에 떡 써 있었다.
강민후라는 배우가 42.195㎞라는 영화를 위해서 5개월간 연습했다고 말이다.
그는 이 정도면 ‘아- 이 친구는 될 놈이구나.’ 했다. 실상 배우는 다루기 까다롭다. 가르치는 것조차도 그랬으며 하물며 괜히 트레이닝을 하다가 다치면 자신이 난처해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그리고 마라톤은 애들 장난이 아니다.
왜 마라톤을 하는 곳에 항시 구급차가 비치되어 있겠는가. 페이스 조절을 하지 못하고 쓰러지는 이들이 일쑤였으며 뜨거운 해와 싸워 이겨내지 못한 이들이 수두룩하였다.
탈진 증세로 사망하는 이들까지 존재한다. 웬만큼 독기가 없는 배우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민후는 어느 정도 마라톤에 대한 노력성이 보였다.
5개월 동안 연습한 것이 있다고 하니 그가 충분히 자신의 트레이닝에 따라올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하여서 우지욱이 그를 맡기로 결정한 일이다.
“반갑습니다, 코치님.”
민후는 최대한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는 머쓱하게 웃으면서 민후를 살폈다. 그도 상의는 위에 패딩에다가 바지는 반바지, 운동화를 신고 왔다.
그는 야윈 감이 없지 않아 있어 보였다. 마라톤을 할 때는 작은 몸무게가 효율적이었다. 몸이 가벼워야 오래 뛸 수 있었고 체력 소모가 적으니 말이다. 몇 개월 동안 캐스팅을 위해 노력하였다더니 사실인 듯싶었다.
“마라톤을 시작하기 전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아나?”
“스트레칭…… 아닐까요?”
“그렇지! 잘 아네!”
그의 물음에 민후는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우지욱 코치는 손가락을 따악 퉁기면서 스트레칭 자세를 취하면서 그를 이끌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둘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두 사람이 함께 입을 모아서 온 몸의 긴장된 근육들을 풀어주었다. 우지욱은 재차 스트레칭의 중요성에 대해서 침을 튀기면서 설명하였다.
장시간 달려야 하는데 스트레칭을 소홀히 하면 큰일 날 수도 있었다. 자칫 잘못하다 몸이 긴장해서 쥐가 날 수도 있었고 힘이 풀려 삐끗할 수도 있었다.
스트레칭은 꼭 해야 하는 것이었다.
“일단은 자네가 얼마나 달릴 수 있는지 파악해 봐야 할 것 같아. 무리는 하지 마. 기본적인 거리 측정이니까.”
“예.”
“자, 가자. 출발.”
민후의 대답에 자전거 위로 오른 우지욱이 말했다. 민후는 곧 달리기 시작하였으며 우지욱이 그의 옆에서 나란히 자전거로 그를 이끌어주었다.
만약 민후가 속도를 빨리 내면 ‘천천히, 좋아…… 천천히’라고 계속 언급하면서 그의 페이스를 잡아주는 데에 여력 하였으며 그가 뛸 수 있는 최대치를 확인하려 했다.
민후는 한 시간 반 정도 달리자 몸에서 땀이 비 오듯이 나는 것을 느꼈다. 신체적 영단의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몸으로 강한 압박감이 조여오고 있었다.
2시간째 뛰었을 때는 심장이 미친 듯이 펌프질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더욱더 신중한 호흡을 하기 시작하였다. 마라톤에서의 호흡은 그 어떤 운동 때보다도 중요하였다.
올바른 호흡은 경직된 근육을 빠르게 이완시켜주고 에너지 소비량을 줄여준다, 혹여 잘못된 호흡으로 달리게 될 시 충분한 산소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아 젖산이 근육에 쌓이고 피로감과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게 된다.
‘잘 뛰네?’
42.195㎞를 3시간 만에 돌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우지욱은 문득 스친다. 3시간 만에 42.195㎞는 말 그대로 아마추어 마라토너 선수들에게는 꿈만 같은 일이었다. 그 거리를 3시간 만에 돌파하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뛰는 선수들이 허다했다.
그런데 지금 옆에서 달리고 있는 민후가 잘하면 서브쓰리를 달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우지욱은 생각이 스쳤다. 물론 지금 당장은 불가능했다.
아무리 잘 뛰어도 결국 페이스 조절이 되지 않아 중도 포기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페이스 조절을 시키고 그것을 연습시킨다면 충분히 서브쓰리라는 놀라운 수치를 달성할 것 같았다.
“생각보다 잘 뛰네. 꾸준히 노력하면 성적도 좋아질 것 같고 연기에도 더 도움이 될 거야.”
그러나 그뿐, 그는 더 이상 칭찬을 하지 않았다. 그도 다른 이를 가르치는 방식을 안다. 너무 과한 칭찬은 오히려 자만을 부른다. 적당한 칭찬이 중요하였다.
민후는 500㎖짜리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실제로 러닝머신으로 뛰는 것과 많이 다른 느낌이다. 하물며 42.195㎞를 실제로 뛴다고 가정해보면 3시간 만에 뛰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더욱 빨리 지칠 것 같았다.
확실히 우지욱이 해줬던 것처럼 페이스 조절이 필시 필요할 것 같다. 저번에 문 감독의 앞에서 운동장을 돌았을 당시에는 실상 빠른 속도 보다는 유원이를 연기하면서 그것을 의식하며 뛰었다.
그때 사실 페이스를 조절하던 오늘보다도 훨씬 힘이 들었었고, 죽기 살기로 캐스팅되고 싶은 욕심에 뛰었던 것이다.
“코치님, 자폐증 청년이 마라톤을 하는 것처럼 연기하며 뛰어도 뛰는 데에는 크게 지장이 없을까요?”
“흠…….”
우지욱은 그의 말에 잠시 골똘히 생각했다.
“어떤 방식으로 뛰는 건지는 난 잘 모르겠지만, 자폐증으로 뛰는 청년도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을 것 아니야, 연기를 위해서 달리는 것이기도 하니까. 그렇게 달려보면서 노하우를 한 번 터득해 봐. 어떤 식으로 연기하며 뛰어야 에너지 소모가 적은지 그런 식으로.”
“아, 감사합니다.”
그의 조언에 민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민후는 일단 목표로 최대한 오랜 시간 지치지 않는 체력을 목표로 두고 있다. 실제로 영화 촬영을 하면 미친 듯이 달리게 될 테니까.
그와 더불어서 오늘 목표가 하나 더 생겼다. 유원이처럼 달리면서 노하우가 있어야 했다. 실상 자신이 유원이처럼 달린다는 것은, 그것에 집중하고 있어 더욱 에너지 소모가 크게 일어날지도 몰랐다.
민후는 그 부분을 보완하여 달려야했다.
우지욱 코치가 민후를 지도해주는 시간은 하루에 5-6시간 정도 되었다. 우지욱 코치는 민후를 코치할수록 욕심이 생겨났다. 그는 대단한 체력의 소유자였으며 페이스 조절도 줄곧 잘 따라와 주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크게 그가 욕심이 난 이유가 그의 열정 때문이었으며 그가 친근하게 다가와 주기도 해서였다. 그는 만나지 못하는 날에도 문자나 전화로 ‘식사는 하셨나요, 코치님?’ 하면서 안부를 여쭙기도 하고 마라톤에 대해서 궁금한 점을 물어보기도 하였다.
또 녀석은 트레이닝이 있는 날이면 항시 자신보다 일찍 와서 스트레칭을 모두 끝내놓고 주변을 몇 바퀴 돈 후 몸을 가볍게 풀어놓고 그를 맞아주었으며, 코치를 받는 내내 궁금한 것은 수시로 물어보고는 하였다.
그리고 민후의 경우 유원이처럼 달리는 노하우를 따라 하기 위해 연습했다.
첫째 날은 그의 거리 측정을 위해서 평소처럼 달렸다지만 바로 다음 날부터는 민후는 유원이처럼 달리는 법을 연습하며 노하우를 깨우치기 위해 노력을 가하였으며, 집에 돌아가서는 42.195㎞의 대본을 계속 확인하면서 유원이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하는 것에 대한 연습을 시작하였다.
오죽했으면 그는 밥을 먹으면서도 대변, 소변을 누면서도 집에서 일상적인 생활을 할 때면 웬만해선 유원이처럼 행동하고 말하고는 하였다.
그의 유원이처럼 행동하는 것은 하루하루 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오늘 같은 경우는 민후가 개인적으로 임의진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다.
민후는 문 감독님으로부터 임의진 선생님이 적극 추천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바가 있었으며 그로 인해서 캐스팅되자마자 그녀의 번호를 정수를 통해 알아내어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면서 통화를 하였다.
그녀는 민후를 실제로 만나보고 싶어 했고, 오늘 민후가 때문에 그녀를 직접 찾아가는 것이었다.
그녀가 자주 가는 헤어숍으로 민후는 차를 끌고는 향하였다. 사전에 연락은 하고 가는 것이었다. 혹여 엇갈린다면 서로가 바쁘기 때문에 큰일이니 말이다.
헤어숍으로 들어서자 임의진 말고도 다른 연예인들도 꽤 눈에 띄었다. 민후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그러다 그는 우뚝 멈춰 섰다.
본래 42.195㎞에 출연하였던 유원이 역할을 맡았던 배우 송수현도 헤어숍에 있었기 때문이다. 곧 그는 그에게도 꾸벅 인사를 해 보였다.
“안녕하세요.”
“어, 그래. 안녕.”
송수현은 민후의 인사에 거울로 그의 얼굴을 한 번 확인하고는 한 번 다시 휙 고개를 틀어 답변하였다. 송수현은 실력 있고, 촉망받는 젊은 배우였다.
그는 젊은 나이임에도 무색하고 좋은 연기력을 선보이고 있었으며 평판도 상당히 좋은 축에 속하는 배우였다. 아마도 문 감독이 언급하였던 기성 배우 중 한 사람이 바로 송수현일 것이다.
민후는 송수현과 일대일 경쟁을 한 것이었고 그 승리를 가져가게 된 것이다. 그러나 민후는 미안한 마음이 들거나 찔리는 것이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것은 본인 스스로의 힘으로 일궈낸 것이다. 배우 계에도 약육강식은 존재한다. 강한 놈이 살아남고 그러지 못한 놈은 결국 죽기 마련이다. 단지, 이번 42.195㎞에서는 먹이를 민후가 가져갔을 뿐이다.
수현은 민후에게 상당히 관심이 있는 것인지 그를 계속 흘끔흘끔 보고 있었다. 그러나 민후는 개의치 않아 했다. 오늘 자신이 온 목적은 임의진 선생님이었으니 말이다.
“선생님.”
“어, 민후 왔구나.”
그녀는 패션 잡지를 보고 있었는데 민후가 오자 눈에 띄게 화색을 띠었다. 실제로 가수들이든, 배우들이든 연예인들의 대부분이 패션 잡지를 자주 본다.
그리고 민후도 그러하였다. 이유는 요즘 세대의 패션 감각을 깨우치기 위함이었다. 연예인들은 국민을 대표하는 패션 디자이너와 같았다. 어떤 배우가 입고 나온 옷을 보면 ‘저 옷 이쁘다!’ 하는 이들이 꽤 많다.
그리고 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좋게 보여야 하기 때문에 패션에 무지한 연예인은 거의 없는 편이었으며 민후도 매달 나오는 패션 잡지들을 매번 보고 있었다.
“되게 반가워. 와, 연기할 때하고는 완전 딴판이네.”
민후는 그녀의 말에 그저 빙긋 웃었다. 그녀가 민후를 이끌었고, 곧 자리에 앉았다.
“선생님, 커피 좀 가져다드릴까요?”
헤어숍 직원이 다가와 물었다. 그녀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줄래?”
“네.”
“여기 커피 한 잔 추가요.”
송수현이었다. 그는 머리를 모두 끝낸 것인지 능청스럽게 다가오면서 직원에게 말한다.
“선생님, 저도 좀 앉아도 될까요?”
“그럼, 호호! 이거 원수들이 서로 만나버렸네.”
그녀는 재밌다는 것인지 입을 막으면서 웃었다. 수현은 머쓱하게 웃었다.
“원수는요. 그냥 제가 패배자일 뿐이죠.”
“어머, 얘,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내가 늘 말했지, 오늘 하지 못했다고 해도…….”
“‘다음 날 더 좋은 작품이 들어올 수도 있다.’ 크게 마음에 담아두고 있진 않아요. 단지, 이 친구한테 저도 궁금증이 크네요.”
그녀가 주로 하는 말인 듯싶었다. ‘오늘 하지 못했다고 해도 다음 날 더 좋은 작품이 들어올 수도 있다.’ 좋은 말이었다. 캐스팅에 떨어진 후배 배우들을 격려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말일 것이다.
민후는 강호였던 시절 안타깝게도 의진과는 한 번도 같은 작품을 해본 적은 없었다. 몇 번 마주쳐 눈인사나 해보고 그녀의 숱한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말이다.
수현은 민후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궁금한 게 당연했다. 문 감독과의 일 대 일 이야기를 나눈 후 자신과 다른 신인이 유력한 후보로 올라왔다고 들었고, 기사를 확인하여 그것이 강민후임도 알아챘다.
그러나 데뷔작이 논스톱 5라는 시트콤이었다.
시트콤을 처음 찍었고 다른 작품도 없는 친구가 실상 문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을 순 없을 거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며칠 후 문 감독으로부터 안타깝게도 다음을 기약하자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는 화가 나기보다는 놀라웠다. 문 감독님이 섣부른 판단을 했을 리는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그 신인 배우가 문 감독을 만족시킬 만하였다는 것이다.
때문에 인터넷으로 녀석에 대해서 검색도 해보고, 매니저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소문도 들어봤는데, ‘악착같이 연기하는 녀석’이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그에 피식하고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언제 한 번 실제로 만나보고 싶었는데 여기에서 이렇게 만나게 되었다. 실상 의진과 같은 헤어숍을 다니고 있는 수현의 경우 의진과 안면이 있는 사이였고, 의진도 그가 42.195㎞의 주연으로 오디션을 본다는 것에 상당히 괜찮은 배우라고 여겼었다.
그러나 민후가 오자 확 하니 생각이 바뀌었다. 민후가 정말 적합한 아이라고 여겨진 것이다.
“선생님, 그래도 너무하셨어요. 제가 얼마나 선생님이랑 같이 작품 하고 싶었는데…….”
“호호, 우리 수현이 맛있는 거 사줄까?”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투정 부리는 아들을 달래는 어머니를 보는 모습이다. 민후는 쓴웃음을 지었다. 수현도 문 감독에게 임의진이 수현보다는 그래도 민후가 좋다, 라고 의견을 말했음을 알았다.
실상 어쩌면 이것은 사람 간의 관계인지라 서운할 법도 하건만 이럴 때는 냉정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한 사람의 캐스팅으로 100여 명 정도의 인원이 성공하느냐 못하느냐가 달린 것이었으니 말이다.
의진과 수현 두 사람은 모두 민후를 살피기에 바빴다. 의진은 연기를 하던 때와 지금 그의 모습은 완전히 딴판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일단 그는 무척 의젓해 보였으며 그때와 분위기 자체가 너무나도 달랐다.
그리고 좋은 눈빛을 가졌고 오랜 시간 42.195㎞를 준비했다더니, 조금 야위어 있었다.
그리고 수현도 의진과 비슷하게 그에 대해서 느꼈다. 단지, 그의 튼실한 다리를 보고는 ‘독하네…….’라고 생각한다.
그도 기사에서 그가 캐스팅을 위해 몇 개 월간 노력을 하였다는 사실을 봤다. 때문에 무모하기는 한 것 같지만 그래도 좋은 관념을 가진 녀석이라는 판단이 선다.
“시나리오 검토해 봤지?”
“네.”
시나리오는 민후가 주연으로 캐스팅되자마자 건네받을 수 있었다. 묵직한 시나리오를 민후는 단 3일 만에 전부 읽어버렸다. 스크린에서 보았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는데, 상당히 재밌었고 값졌다.
시나리오는 그중 유원과 어머니. 이 두 사람을 중점적으로 표현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유원은 자폐증 청년이지만 엄마를 위하여서 달리고, 어머니는 유원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친다.
물론 이 시나리오에는 등장인물들의 갈등 역시도 존재한다. 유원이 달리는 것이 어머니의 ‘강압’ 때문일까 하는 의혹이다. 그러나 결국 유원이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만은 다르지 않은 사실이다, 라고 시나리오는 표현한다.
역시나 좋은 작품이었고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자신도 이 시나리오를 읽은 후에 꽤 여운이 오래 남아 있었다.
“어땠니?”
“정말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시나리오였어요.”
“나하고 같은 생각을 했구나. 나 정말 이 작품 너무 잘하고 싶어, 이런 기분 오랜만이야. 꼭 해내고 싶어. 그래서 너 하고도 만나고 싶었던 거고.”
그녀는 자신의 양손을 가슴 위로 손을 올렸다. 그녀는 설레하고 있었다. 이런 작품을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것에 말이다. 이 작품을 하는 동안 그녀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자폐증을 앓는 이들의 어머니의 심정이 되는 것과 같았다.
이 마음을 다른 이들에게도 크게 전해주고 싶었다. 배우는, 돈과 인기를 목적보다는 이렇게 배역 하나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 본질을 파악하는 이들이 정말 참된 배우였다.
“선생님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도 욕심이 크게 나요. 또 잘하고 싶어요.”
민후는 그녀 못지않게 자신도 이 작품에 많은 것을 걸겠다는 굳은 다짐을 보였다. 그녀는 그에 안심하였다. 한 사람만 잘한다고 해서 좋은 작품이 나오진 않는다.
모든 배우들이 잘해줘야 좋은 작품이 나오기 마련이었고 이 작품의 특성상은 더욱 그러하다고 할 수 있었다.
민후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그녀나 수현도 그랬던 것인지 시간이 꽤 흘렀다. 시간이 흐르고 그녀는 스케줄이 있다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했으면 한다. 나도 기대가 컸던 작품이야. 그런데 내 작품을 당차게 가져간 사람이 못하면 내가 씁쓸할 것 같다.”
둘이 남자 송수현이 한 말이었다. 그는 민후를 전혀 원망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단지 자신이 맡지 못한 작품을 민후가 최고로 이끌어주었으면 하는 표정이었다.
그런 점을 본다면 확실히 수현도 됨됨이가 되어 있는 배우라고 할 수 있었다. 민후는 그에게 걱정 말라는 말과 함께 꼭 기대에 부응하는 결과를 놓겠다는 말을 하였다.
곧 수현도 스케줄이 있는 것인지 ‘다음에 밥 한 끼 하자-’라는 말을 하고는 헤어숍을 나섰다. 민후도 곧 우지욱 코치님의 트레이닝을 받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민후는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점차 몸이 더욱 빠르게 마라토너처럼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리의 근육은 튼실해져 가고 있었으며, 폐활량도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었다.
캐스팅을 위한 준비일 당시에는 하루 1시간 30씩 뛰었지만 우지욱 코치와의 트레이닝 시에는 하루에 3시간을 뛰는 것은 기본이었다. 물론 뛰면서 한 시간을 뛰면 10분을 쉬어주고를 반복하면서 훈련 중에 임하고 있었다.
또한 그는 자폐증을 앓는 이처럼 뛰는 방식에 대한 노하우를 터득해가고 있었다. 자폐증을 앓는 이도 불안한 시선 처리가 있지만, 그 동작이 커서는 안 되었다.
불안하듯 두리번거리는 것 같아도 불필요한 동작은 최소화하여야 하였다. 그리고 달리는 동안에는 그는 말을 전혀 하지 않고 표정과 몸짓으로 어떠한 연기를 하고 있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트레이닝 외에도 민후는 발달 장애센터에서 자폐증을 앓는 이들을 지켜보았던 것처럼 발달 장애 전문학교 등을 다녀오면서 더욱더 관찰하였다.
자폐증을 앓는 이들도 결국 사람과 같았다. 비슷해 보이지만 모두 스타일이 달랐다. 자신들의 불안함을 표현하는 스타일도 전부 다르다는 것이다.
그만큼 민후로서는 모든 자폐증을 앓는 이들의 성향이 다른 것을 확인하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중에 있었다. 그리고 자폐증을 앓는 이들은 이렇듯 스타일은 다르나, 대부분 갇혀있듯이 사람들과도 만남을 무서워하지만 대부분의 이들이 순수하고 호기심이 무척 강하였다.
그런 자폐증을 앓는 이들을 하루하루 볼 때마다 민후는 새로운 것을 깨닫고 더욱 이해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오늘의 경우는 실제 42.195㎞의 영화의 실화의 주인공인 박형진 군을 만나러 가기로 하였다.
박형진 군은 정말 대단한 이였다. 그는 2001년 자폐를 딛고 춘천 마라톤 대회에서 서브쓰리를 달성한 경력이 있으며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일 당시에는 비장애인을 통틀어서도 대한민국에서 최연소로 철인 3종 경기를 완주하였다.
비장애인은 곧 일반인을 속하는 말이다. 그러한 일반인들보다도 더욱 우수한 성적을 최연소로서 그는 거두어낸 것이다.
그는 많은 자폐성 장애를 가진 이들의 희망이 되고 있었으며 실제로 박형진 군의 어머니는 수많은 장애인 복지센터, 전문학교 등에서 수많은 강의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폐증을 앓는 이들의 어머니들 사이에서는 무척 대단한 존재로 꼽히고 있었다. 일단 그녀처럼 아들을 위해 헌신하기는 쉽지 않았으며 또한 자신의 아이가 자폐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믿고 응원해주는 사람은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물며, 박형진 군은 자폐증을 앓는 이이지만 일반인도 하기 힘든 기록을 깨면서 수많은 이슈를 얻어냈고 그로 인해 장애인 복지 광고나, 각종 인터뷰 등을 통해서 수익을 낸 부분이 있었다.
그 부분에서 절반이 넘는 금액을 박형진 군과 어머니는 전액 장애인들을 위하여서 기부하였다. 정말 대단한 두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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