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장 잘 있어, 논스톱. 안녕, 42.195㎞! (11/51)

5장 잘 있어, 논스톱. 안녕, 42.195㎞!

어느덧 이번 연도 한 해가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3월부터 방영을 시작하였던 논스톱 5는 성공적인 시청률을 기록함으로써 명실공히 이번 연도 최고의 시트콤으로써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었다.

한 해가 끝나가면서 MBS 방송 연예 대상시상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지고 있었다. 방송 연예대상은 본래는 코미디 대상이라는 코미디 부문으로 한정하여 시상했으나 2001년부터 MBS 방송 연예대상으로 명칭을 바꿈으로써 코미디 프로와 예능, 오락프로그램 시트콤까지도 시상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한편, 논스톱 5 팀에게는 예상외의 막대한 임무가 떨어졌다. 논스톱 5팀의 출연진들은 이번 연도 방송 연예대상의 자리에서 축하공연을 펼치게 될 것이었다.

현재 논스톱 5팀 중 한 사람이 시트콤 부문 신인상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거의 확실해진 상황이었다.

일단 시트콤에서 논스톱 5가 단연 으뜸이였으며 연기력으로써 검증된 신인들도 대거 있었고 이번 연도에 인기를 크게 확보하였던 이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신인상은 김민준, 강민후, 구민정, 홍수민. 이렇게 네 사람으로 좁혀진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추후 투입된 맴버들인 이선훈이나, 한윤하, 이정민, 조정인 등등의 경우는 신인상을 받기에는 아직 끌어낸 인기가 부족하다 할 수 있어서였다.

민정의 경우 귀여운 외모와 엉뚱한 이미지, 이정민과의 로맨스로 꾸준히 사랑을 받았고, 홍수민의 경우 하진우와의 로맨스와 더불어서 얼렁뚱땅 사차원이자 푼수 역할로 큰 사랑을 받았다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김민준은 보헤미안으로 독특한 캐릭터를 소화해내어 인기를 누볐으며 민후의 경우 민정을 짝사랑하는 역할로써 많은 여자의 애간장을 녹였다.

이 네 사람 중에서도 더욱 수사망을 좁히자면 일단 김민준과 강민후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받을 확률이 꽤 크다고 할 수 있었다.

일단 현재 논스톱 5에서 가장 인기가 큰 캐릭터는 두 사람이었고, 연기력도 두 사람이 다른 신인 배우들보다 훨씬 뛰어난 편에 속하였기 때문이다.

실상 민후는 본래의 시상자를 알고 있었다. 본래의 시트콤 부문 남자 신인상은 김민준이 받게 된다.

그러나 현재는 자신이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본래 막동이 배역을 맡았던 이보다 민후가 더욱 그 캐릭터를 크게 살렸으며 좋은 연기력으로 사람들의 호평을 받는 중이었다.

때문에 실질적으로 두 사람의 경쟁이 될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MBS 방송국 측에서 논스톱 5 출연진들에게 축하공연을 준비시킨 만큼 출연진 배우들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논스톱 5의 촬영이 끝이 나면 곧바로 MBS 방송국에 마련된 연습실로 가서 열심히 연습해야 했다.

그들은 이번에 Summer Night라는 뮤지컬 그리스의 삽입곡을 부르게 될 것이었다.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노래였으며 논스톱 5의 출연진 숫자가 꽤 있었고 추가적인 안무 팀을 투입시켜 짧은 뮤지컬 형식으로 진행할 예정이었다.

민후는 MBS 연예 대상에서 논스톱 5 출연진들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사실이 확정이 난 순간부터 연습을 시작하기 1주일 전부터 미리 연습에 들어갔다.

연습 날부터 시작해도 한 달이라는 여유의 시간이 있었지만 민후는 더욱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었고, 더욱 잘하고 싶었으며 인정받고 싶었다.

실상 논스톱 5에는 가수 출신인 이선훈이나 이정민이 있었으며 구민정도 논스톱 5에서 OST를 부름으로써 큰 이슈를 샀고, 앨범을 발매해도 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민준의 경우도 가수 정도의 실력이라고는 할 수는 없으나 일반인으로 치면 꽤 잘하는 수준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 반면 노래에는 큰 실력이 없던 민후는 그들에게 뒤처지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 때문에 Summer Night 뮤지컬 시나리오를 구해놓고 동영상을 보면서 계속해서 홀로 연습에 들어갔다.

그 덕택인지는 몰라도 첫 연습 날에 민후는 노래 실력만큼은 다른 이들에게는 뒤처지나 노련한 동작과 부드러운 몸짓으로 그들을 가르쳐주는 강사에게 호평을 받았다.

강사는 특별히 유명 뮤지컬 단원의 팀에서 속출되어서 초빙되었다. 아무래도 MBS 연예대상의 축하공연이라는 것이 전국적인 방송을 타는 것이었기 때문에 방송국 측에서도 준비에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민후는 과한 욕심까지는 부리지 않았다. 그건 바로 Summer Night의 메인 자리였다.

Summer Night는 댄니라는 남자와 샌니라는 여자가 여름방학 동안 바닷가에서 만나게 되어 사랑을 키우게 되나, 여행을 끝으로 헤어지게 되고 개학을 하고 학교로 돌아와 친구들에게 서로의 이야기를 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뮤지컬이었다.

경쾌하고 재밌으며 유혹적인 가사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곡이었다. 이것의 댄니와 샌니는 이정민과 구민정이 맡았다.

두 사람은 논스톱 5에서도 연인으로서 큰 활약을 벌였고 또 노래 실력도 뛰어난 만큼 메인으로써의 자질이 충분했다.

하나 아쉬운 것은 민후도 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으나 실력이 받쳐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무척 한탄했다. 자신이 준비되지 않아서 하지 못하게 된 것이 있다는 것은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과도 같았고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번 연예 대상시상이 끝나고 내년이 되면 곧바로 노래 연습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요즘은 드라마나, 영화 등등 가수를 주제로 하기도하고 다르게는 배우들이 직접 OST를 불러서 이슈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노력하여서 노래 실력도 갖춰두는 것이 좋을 것이 전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MBS 연예대상 시상식이 3일 코앞으로 다가왔다. 코앞으로 다가온 만큼 논스톱 5의 출연진들은 연습에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었고, 오늘은 밤늦은 시간까지도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다른 출연 배우들은 모르겠지만 민후는 근래에 하루에 4시간씩의 숙면만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면 괜찮은 숙면 시간이었다.

다른 ‘톱’이라는 이름이 붙는 배우들이나 가수들은 하루에 3-4시간 푹 자기도 힘든 게 사실이다. 단, 스케줄 장소로 이동하는 차량에서 잠을 잘 수는 있었지만 어디 그게 잠이겠는가, 잠시 쉬는 것일 거다.

그만큼 배우라는 직업은 생각보다 힘든 직업이다. 다행인 점이 있다면 신체적 영단을 통해서 민후의 경우 4시간 자도 6-7시간은 잔 것처럼 개운하다는 것이었다.

밤이 되자 출출해진 배우들이 야식을 시켰다. 밤중에 야식이라, 여배우들에게는 치명적인 음식이었다.

그러나 그들도 고생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매니저들은 아주 조금의 양만 먹을 것을 말하면서 허락하였다.

소속사 대표들에게는 매니저들이 융통성 있게 숨긴다고 말하고 말이다. 야식의 메뉴는 보쌈이었다. 그것을 보자마자 남자 배우들보단 여자 배우들이 눈이 돌아갔다.

배우들은 연습실에서 둥글게 둘러앉아 강사님과 함께 앉아 있었는데, 그녀들은 음식이 펼쳐지자마자 침을 꼴딱꼴딱 삼켰다.

“맛있겠다.”

“오랜만이야…… 탱탱한 고기…….”

그녀들의 눈에서 광채가 나는 것 같았다. 남자 배우들은 쓴웃음을 짓는다, 그나마 여배우들보단 남자 배우들이 잘 먹는 편에 속한다.

여자 배우들의 식단표를 보면 대단했다. 견과류 몇 알, 사과 반 조각, 닭 가슴살 샐러드, 토마토, 고구마 등등의 식단으로 이루어졌는데 일반 남성이 한 끼에 먹을 만한 양을 하루 세 번을 나눠 먹는다고 보면 된다.

그 때문에 그녀들이 눈이 돌아가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리고 그중 한윤하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윤하와는 부쩍 적십자 광고 촬영 이후 더 친해진 것 같았다. 민후는 하루를 멀다 하고 볼수록 그녀에게서 호감을 느껴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그녀는 마음씨마저도 좋았고, 연기력도 뛰어났으며 열심히 하는 모습도 컸다.

그 때문에 민후와 닮았다는 말이 많을 것이다. 그와 더불어서 한윤하도 민후에게 큰 관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민후의 노력하는 모습에 크게 반한 바가 있었다.

그가 하루하루 촬영장에 오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모습과 더불어서 누군가와도 잘 어울리고 친근감 있는 모습에 그녀는 민후가 좋아지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짝사랑의 기분이었다. 그러나 조금 우스운 것이 그녀는 민후가 자신에게 호감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민후도, 그녀도 자신들의 마음을 서로 밀고 있었다.

아직 이래서는 안 된다, 이래서는 안 된다 하고 주문을 외우고 있는 것이다. 혹여 정말 두 사람이 비밀 교제를 한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최근에 그것이 들통난다고 가정해 본다.

시청자들은 더 이상 웃음으로 받아주지 않을 것이다. 두 사람은 열애설을 좋은 이미지로 순환시켰다. 그러한 상황에서 실제 연인 사이라고 발각된다면?

아마도 그들은 집중적인 공격을 받을 것이다. 시청자들을 감쪽같이 속였다고 비난받을 것이고, 그 수단을 ‘봉사’라는 것으로 이용했다는 것에 아마도 언론이 들썩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CF이든, 드라마든, 영화든 뭐든 스케줄은 끊기게 될 것이고 쌓아 놓은 모든 탑이 무너질 것이다.

연예인은 단 한 번의 실수만으로도 스크린에서 쉽게 사라질 수 있었다. 그리고 만약 재기한다고 가정하면 그 재기하는 인원은 그 일이 터지기 전 전국에서 알아주던 연예인이었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점차 그를 그리워하게 되고 찾기 마련이며, 그 타이밍에 복귀하면 된다. 하나, 신인 배우들에게는 그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한번 가라앉으면 그대로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올라올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 때문에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마음이 있어도 그것을 보이지는 않았다.

만약 정말 서로를 미칠 듯이 사랑하게 되고 만날 마음이 생긴다면 그때서는 그나마 교제를 시작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배우로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나, 나도 메밀면 먹고 싶어…….”

“난 무말랭이이…….”

“난 쌈장…….”

여배우들이 입을 삐죽 내밀고 아카펠라를 하는 것인지 대사를 이어간다. 그 모습에 주위의 배우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메밀면이든, 무말랭이든, 쌈장이든 그것들은 즉 나트륨이고 이 시간에 먹으면 얼굴이 탱탱 부을 것이다.

때문에 그것들은 먹지 못하는 불쌍한 여배우들이다. 특히나 한윤하는 ‘넣을까? 말까? 먹을까? 말까?’ 하면서 갈등하는 모습에 무척 귀엽게 느껴지는 민후였다.

야식이 끝이 난 후에 아쉬워하는 여배우들을 뒤로하고 다시금 연습이 진행되었다. 연습은 새벽 1시까지 진행되고서야 끝났다.

이번 연도의 끝을 알리는 날이 다가왔다. 그만큼 시청자들은 각종 시상식과 더불어서 제야의 종소리에 모든 시선이 향해 있을 것이었다. 실상 신인상의 경우 모든 신인 배우들이 탐낼 만한 상임이 확실하였다.

신인상을 탔다는 것은 데뷔하자마자 주목을 받았다는 뜻이기도 하였으며 방송 관련 관계자들의 이목을 끌 수 있다는 점이기도 하였다. 때문에 이번 MBS 연예대상 시상식에서도 많은 이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논스톱 촬영팀은 같은 차량에 탑승하여 함께 MBS 연예대상 시상식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논스톱 5의 여배우들은 꽤 값나가 보이는 드레스와 액세서리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그들 사이에서는 은밀한 경쟁이 치러지고 있었다.

남자 연예인들은 대부분 그렇지 않지만, 여자 연예인들의 경우 협찬이라는 것에 자신의 자존심을 거는 이들이 대단히 많았다. 만약 자신이 1백만 원짜리 유명한 브랜드의 협찬을 받은 옷을 입었다고 가정한다. 한데, 옆에 120만 원짜리 협찬을 받은 여자 연예인을 보면 배 아파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이런 일들 때문에 연예계에는 비화가 많았다. 같은 걸그룹 출신이라고 할지라도 멤버마다 인기는 천차만별이다. 인기가 좋은 이들에게는 보통 좋은 협찬이 들어오기 마련이나 그렇지 못한 멤버에게는 좋은 협찬이 들어오긴 힘들었다.

그 때문에 걸그룹 사이에서 왕따들이 나오는 것이고 서로를 무시하려 하고 헐뜯고 하기 마련이었다. 실제로 TV에서나 들리던 연예인들의 이런 소문은 사실이었다.

그나마 논스톱 5의 출연 여성들의 경우는 조금 양호한 편에 속하였다. 그렇기는 하지만 소심하게나마 자신의 협찬을 과시하는 모습도 보이긴 한다.

예를 들어 지금 홍수민이 하고 있는 행동처럼 말이다. 평소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는 습관이 그녀는 없었다.

윤하가 가지고 있는 습관이었는데, 왠일로 그녀가 계속 귀 뒤로 머리카락을 넘기나 했더니, 값비싸 보이는 귀걸이가 착용되어 있었다.

“어머, 수민아 이거 XX사 거 아냐? 이거 나도 차보고 싶었던 건데…….”

“네, 언니. 이번에 시상식 때문에 매니저가 특별히 신경 써서 협찬받아줬어요.”

“우와, 예쁘다.”

민정이 알아달라는 듯한 그녀의 행동에 맞장구쳐줬다. 그러면서도 그녀도 팔을 수민의 시야 앞쪽으로 내보이듯 휘휘 젓는다. 민정의 팔에는 작은 금빛의 손목시계가 채워져 있었다.

그녀도 내심 수민이 그런 식으로 나오자 자신이 협찬받은 시계를 과시하는 것이다. 그것에 수민이 역시나 맞장구를 친다. 그 모습이 아예 양말도 협찬받았으면 벗어서 보여줄 기세다.

“이거 시트콤이냐?”

“실시간 시트콤이요.”

민준이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어이없어하며 웃다가 옆에 앉은 민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도 장난스레 받아쳤다. 남성들의 경우는 크게 신경 쓰지는 않는 스타일이었다. 민후도 물론 오늘 협찬을 받은 것이 있었고 꽤 값나가는 것인 줄 안다.

아무래도 시상식이었기 때문에 신인 배우들이라고 할지라도 많은 사람에게 알릴 수 있는 때였기 때문이다. 아마 시상식이 나가면 ‘누가 누가 찼던 귀걸이!’하고 각 매장에 쫙 깔리게 될 터이다.

민준과 민후는 꽤 평범하게 입고 왔지만 두 사람이 같은 색깔, 같은 구두를 착용하였고, 헤어스타일도 비슷했다. 맞추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로 인해서 자신들도 모르게 돋보일 것이었다.

시상식장에 도착하였다. 수많은 팬이 막고 있는 경호원들의 틈에서 비명을 질렀다. 논스톱 5팀은 팬들에게 인사를 하기에 바빴다. 자신들이 아직 고개를 빳빳이 들고 손을 흔들어 주면서 빙긋 웃기만 할 때가 아니었다.

그리고 민후의 경우 최강호이던 시절, 그런 행위는 절대 하지 않았다. 팬 한 사람 한 사람을 누구보다 소중히 여겼으며, 될수록 많은 이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보이기도 하였으며 많은 이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다.

국민 없는 국가란 없다는 말이 있듯이 팬 없는 스타란 존재하지 않았다. 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위해 이곳에 와주었다는 것은 그만큼 값진 시간을 썼다는 것이었고 민후는 그에 대한 최선의 예의를 보여주기 마련이었었다.

그 때문에 최강호가 많은 이들에게 ‘국민배우’라는 이름으로 불리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시상식장으로 들어서자 벌써 수많은 연예인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논스톱 팀은 따로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공개된 좌석은 뒤쪽 2층에서 내려다볼 수 있도록 되어 있었으며 철저하게 사진 촬영과 동영상 촬영 등을 경호원들이 통제할 것이다. 소리를 지르려는 이들 역시도 통제를 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내로라하는 톱스타들이 참석한 자리였다. 마음 같아서는 민후든 다른 신인 배우들이든 벌떡 일어나 그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현재 시상식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서 카메라가 돌고 있는 실정이었다. 정확하게 9시 15분에 진행이 될 예정이었다.

곧 9시 15분이 되자 MC를 맡은 두 남녀가 진행하기 시작하였다. 부드러운 진행을 이어가는 두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상당히 알아주는 MC들이었다.

두 사람은 첫 시작을 각 연예인들의 주위를 돌면서 오늘의 의상 등에 대한 컨셉을 물으면서 심심함을 달래주었다.

곧이어서 본격적인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오늘 축하공연은 논스톱 5에서만 진행하는 것은 아니었다.

DJ BOC라는 랩 가수들의 신나는 공연 역시도 준비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또한, 낮에 이미 공연에 대한 리허설은 끝난 상황이었다.

10시쯤에 논스톱 5팀은 출연자 대기실로 이동하여서 옷을 탈의한 후 갈아입고는 축하공연의 무대에 서면 되었다.

민후는 진행되는 시상식에 집중하였고, 10시 가까이 되자 민준이 가자는 듯이 턱짓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시상식장을 뒤로하고 남녀가 각각 대기실로 흩어졌다.

민후와 민준에게로 의상 팀이 의상을 건네고 그것으로 갈아입었다. 민후는 가죽 재킷과 스키니한 바지, 민준의 경우 검은색 와이셔츠에 면바지 등 편안한 차림이었다.

그리스라는 뮤지컬 자체는 대학생들의 사랑 이야기를 꾸민 것이기에 그 의상을 맞춘 것이다.

곧이어 대기실에서 나와 여성 배우들과 합세하고는 시상식장으로 이동했다. 무대 뒤편으로 서고 촬영 스태프에게 OK 신호를 보냄으로써 준비 완료를 알렸다.

MC에게 그것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자, 시청자 여러분! 2004년도가 현재 한 시간밖에 남지 않은 상황입니다!”

“아쉬움도 많았고 행복했던 일도 많았던 2004년도. 아쉬운 부분 있으시죠? 그것을 달래주기 위해 준비된 축하공연이 있습니다.”

“논스톱 5팀의 뮤지컬 ‘그리스’입니다!”

MC들의 진행과 더불어 다른 스타들의 박수갈채가 퍼졌다. 민후와 일행들이 시상식으로 나섰다. 꺼졌던 조명 불빛이 탁하니 켜지면서 메인인 구민정과 이정민을 둥근 조명이 잡아냈다.

“Summer loving 해질녘에.”

“Summer loving 황홀하게.”

두 사람이 부드럽게 첫 운을 떼었다. 그리스는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쉬운 춤동작과 더불어서 댄니와 샌니의 친구들이 춤동작과 노래를 부르는 두 사람에게 우스운 말들을 던지면서 한층 그 재미를 더한다.

공연 중 민후가 자신의 파트에서 이정민의 어깨 위로 손을 올려 보였다. ‘야야, 키스했냐?’라고 하면서 자연스레 다른 사람의 파트로 넘어갔다. 서로의 친구들이 핸니와 댄니에게 갖은 질문을 던지면서 즐기는 뮤지컬이 바로 그리스였다.

마지막은 이정민과 구민정이 중앙에서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그들의 친구들이 두 사람의 이어진 사랑을 축복해주는 것으로 끝이 난다. 많은 스타들이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이 축하공연을 위해서 한 달간 고생을 한 그들에 대한 격려의 박수였으며 이 공연은 어쩌면 대부분이 신인인 논스톱 5의 인원들을 다른 스타들에게도 알릴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였다.

박수갈채를 받으면서 그들은 연신 선배들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다가 다시 무대 뒤쪽으로 이동하였다.

무대 뒤쪽으로 이동한 그들은 대기실로 다시 뿔뿔이 흩어졌다. 그들의 얼굴에는 땀이 가득하였지만 웃음도 가득하였다.

아무래도 전부 가수가 아니라, 배우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실상 그들이 뮤지컬을 준비한다는 것에 많은 걱정을 하였었다.

그러나 성공적으로 끝났고 많은 선배의 격려의 박수를 받아낼 수 있었다.

흩어졌던 논스톱 5의 인원들이 서둘러 옷을 다시 갈아입고 시상식장으로 들어와 ‘논스톱 5’라고 써진 자리에 앉았다.

그들이 앉아 있자 생방송 관계상 시간을 맞춰야 하는 것이기에 시간이 조금 남자 MC들은 곳곳을 돌면서 농담을 한마디씩 던지고 있었다. 논스톱 5팀에도 그들은 찾아왔다.

“논스톱 5, 정말 이번 연도 대단했던 시트콤이었죠. 어- 그런데 왜 이렇게 땀을 흘리세요?”

그는 능청스럽게 웃으면서 묻는다. 그러면서 민후에게 마이크를 슬쩍 건넸다.

“더, 덥네요.”

“이야, 12월인데 덥다니, 강민후 씨가 많이 긴장했나 봐요. 하하하! 이, 이거 저만 웃긴가요? 아, 알겠습니다. 시상식을 진행하도록 하죠.”

그러나 그의 장난스러운 말과는 다르게 다른 스타들의 큰 호응이 없자 그가 머쓱하게 웃으며 다시 시상식장으로 올라갔다. 다시금 차츰 하나둘 시상이 치러지기 시작하였다. 민후나 다른 논스톱 5의 팀원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신인상에 쏠려 있었다.

시트콤 신인상의 경우 남녀에게 각각 한 상씩 수상이 된다.

어느덧 신인상 시상이 다가왔다. 이미 후보들의 경우는 통보가 된 상황이었고 당연하게도 그중 민후도 껴있었다. 논스톱 5의 후보자들이 큰 관심을 보이면서 스크린에 집중했다.

거대한 스크린에서는 민후가 나오고 있었다.

-극 중 과거 국민아역 막동이로서 출연한 적이 있으나 현재는 단역배우 출신인 잘난 척만 심한 역할을 잘 소화해낸 강민후! 그런 그도 때로는 가슴 아픈 짝사랑으로 많은 이들을 애달프게 하고, 눈물짓게 만들었다.

스크린에서는 민후가 출연하여서 열연하였던 분량이 주마등을 보듯이 쫘르륵 스쳐 지나가고 있었으며 묵직한 음성이 설명을 이어붙이고 있었다.

논스톱 5의 후보들이 계속해서 거론되고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려 있는 상황이었다. 신인상. 첫 시작을 위한 걸음으로써 타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았다.

“정말 쟁쟁한 신인 배우 분들인데요, 발표하겠습니다.”

여성 MC가 신인상 수상자의 이름이 적힌 용지를 펼쳤다. 그녀는 그것을 확인하고는 빙긋 웃었다.

“축하드립니다. 2004년도 남자 신인상 시트콤 부문 수상자 강민후 씨입니다.”

짝짝짝짝!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민후는 순간 참았던 숨을 턱 하니 뱉어낼 수밖에 없었다. 옆에서 씁쓸한 미소로 민준이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민후는 몸을 일으켜서 시상식을 위해서 앞으로 나섰다.

MC가 설명을 덧붙였다.

“배우 강민후 씨는 이번 연도 논스톱 5로써 첫 데뷔를 하였지만, 그와는 다른 상당한 연기력을 선보여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바가 있습니다. 또한, 극 중 구민정을 좋아하는 동생 역할로 나온 그는 많은 여심을 흔들기도 하였었는데요. 수많은 분들이 강민후 씨의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에 한 표를 던졌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나선 민후에게로 MC가 꽃다발을 건네주었다. 그것을 건네받은 민후는 빙긋 웃으면서 마이크가 꽂혀 있는 거치대 앞에 섰다. 수상 소감이었다.

“어- 이렇게 좋은 상 아직 미숙한 저인데 저에게 주셔서 너무나 감사하고 누구보다 먼저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고, 김택일 담당 PD님 촬영 감독님, 음향 감독님, 민준이 형……(중략)……감사합니다.”

수상 소감을 마친 민후가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시상식에서 내려왔다. 그의 얼굴로 절로 웃음이 솟는다. 강호이던 시절 수많은 상을 받아본 적이 있던 그였다.

그러나 그 당시는 이름의 값이 꽤 있었다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신인상을 단숨에 따냈다는 것은 그가 그만큼 노력하여 얻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축하한다.”

“축하해-”

다른 이들의 축하에 민후는 빙긋 웃었다. 민준이 쓴웃음을 짓는 것에 민후는 본인도 모르게 미안한 표정을 지었나 보다. 민준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다.

“뭐 죄지었냐? 에휴, 나보다 어린 녀석한테 지고 더 분발해야겠네.”

실상 거의 두 사람이 남자 부문으로는 신인상 수상이 유력했고, 실제로 본래 시상했던 그였기에 민후로서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나 어찌 보면 그만큼 자신이 경쟁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이고 더 깊은 연기력을 선보였다는 뜻이기도 하였다.

곧이어 여성 시트콤 신인상 수상이 이어졌고, 민후는 자신의 앞으로 신인상 트로피를 놓고는 기쁜 마음으로 수상식을 감상했다.

* * *

2004년도의 남자 시트콤 부문 신인상!

그것을 가져간 민후는 그것을 계기로 사람들이 다시 한번 강민후라는 배우가 누구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논스톱 5팀의 인원들은 민후가 상을 타간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분명 처음 그들은 강민후라는 배우를 너무나도 크게 무시하였었다.

그렇지만 가면 갈수록 그가 보이는 노력은 자신들이 따라갈 수 있을까하고 엄두가 날 정도였고 때로는 그가 걱정이 되기도 할 정도였었다.

그만큼의 노력을 쏟아부은 것이 바로 민후였다. 그 때문에 그들은 신인상을 빼앗겼다는 것보다는 당연하다는 반응이었다.

한 해가 스쳐 지나가고 있는 만큼 논스톱 5도 거의 끝나가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3월 초에 종영 예정이었다. 그러나 민후에게는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는 때였다.

42.195㎞. 그것이 이젠 코앞으로 다가왔다.

다음 달 2월이면 캐스팅을 하기 시작할 것이다. 현재도 캐스팅을 위해서 영화사에서는 실력 있는 젊은 연기자들을 찾고 있다고 소문을 내는 중이었다.

캐스팅이 코앞으로 다가온 만큼 민후도 박차를 가하였다. 그는 이미 머릿속으로는 논스톱 5가 끝나면 어떻게든 42.195㎞를 찍을 테닷! 하는 다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때문에 캐스팅을 피나는 노력으로 준비한 것이기도 하였다. 헬스클럽에 도착한 민후는 옷을 벗었다. 몸으로 자리 잡았던 근육이 눈에 띄게 사라졌다.

조금 야윈 몸이었다. 그러나 매일매일 러닝머신을 밥 먹듯이 뛰어주었으니 다리의 근육만큼은 실제 마라톤을 하는 인원처럼 튼실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는 논스톱 5를 촬영할 때는 강민후로서 살아가고 있었지만, 촬영이 끝나고 집에서든 헬스클럽이든 유원이로서 살아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물론 실제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극 중 ‘유원’이라는 다섯 살짜리 자폐증을 앓는 역할의 모습을 흉내 내고 다닌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사소한 것들만 바꿔 나갔다.

가령 젓가락 집기라든가, 혹은 말투 같은 사소한 것.

극 중의 유원이는 다섯 살 지능을 가지고 있다. 물론 다섯 살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몸이 성숙해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 어린아이들의 말투가 있었고 그것은 위압감보다는 자신을 웅크리고 떼를 쓰는 듯한 목소리가 있었다.

때문에 그는 그것을 매일같이 연습하였다.

그리고 틈만 나면 ‘유원이 다리는 백만 불짜리 다리. 끝내줘요!’ 중얼거리기도 하였다. 오죽하였으면 매니저 정수가 ‘네가 만약 이 역할 떨어지면 내가 가서 엎어버릴게. 이렇게 노력한 녀석을 떨어뜨린다는 게 말이 되냐?’라고 장난스레 말했다.

실제로 민후는 부단한 노력을 가하는 이유가 있다. 아무래도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웃음이나, 액션 이런 것이 아닌 감동을 주기 위해 제작되는 휴먼 드라마였기 때문에 그만큼의 실력이 받쳐주고 어쩌면 그만큼의 인지도가 있어야 할지도 몰랐다.

실상, 민후는 신인상 한 개를 수상했다. 그러나 그것은 감독에게는 턱없이 부족한 것일지도 몰랐다.

42.195㎞의 감독은 문정흠이라는 사람이었다. 민후도 한 번 작품을 같이 한 적이 있었는데 민후가 그를 보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문정흠도 감독 중에서 상당히 성공한 인물이었다. 그런 그를 보고 혀를 내두른 이유는 그도 민후 못지않게 노력하였다는 것이고, 침착한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아닌 것은 아니라고 딱 말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주관이 강하며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하물며 톱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배우일지라도 1분이라도 늦으면 대놓고 심기가 불편한 티를 팍팍 낸다.

그럼에도 배우들은 그와의 작품을 하고 싶어 했다. 그가 수많은 작품을 흥행시킨 경력이 있는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배우든, 감독이든 성공은 두 존재에 따라 달렸다. 감독은 어떠한 스크린을 잡아내고 어떻게 스태프들을 이끌며 어떤 식으로 배우들을 이끄는지에 따라 화면이 달라지고, 배우는 얼마만큼 감독을 따라주고 연기하고, 노력했는지에 따라서 흥행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계에서 이런 말이 있기도 하다. ‘준비되지 않은 미숙한 배우는 문 감독 근처에 얼씬도 거리지 말라.’ 그냥 우스개 그의 작품에 캐스팅되고 싶어서 갔던 연기자가 거침없이 탈락하자 흘리는 헛소리 같은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그렇듯 확실한 성격의 딱 잘라 말하는 성격의 문정흠 감독에게 민후가 캐스팅이 되고 싶다고 하는 것은 가소로워 보일 수도 있었다. 그 때문에 그는 이렇게 부단한 노력하는 것이고 내심 소문이 나길 바랐다.

이곳 헬스클럽은 황제 소속사뿐만 아니라 다른 소속사의 연예인들도 오고는 하였으며, 관계자들도 간혹 오기도 한다. 또한, 트레이너가 연예인 헬스트레이너로 상당히 유명한 사람이었다.

독종 같은 민후의 성격에 트레이너가 되레 반해서 근래에 대화도 많이 나누고 친해지고 있었는데, 유명한 트레이너인 만큼 자신이 PT를 해주면서 그 연예인들에게 민후의 이야기를 해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소문이 나서, 관계자들 혹은 사람들에게 ‘얼마 전에 신인상 받은 강민후라는 녀석 있지 않냐, 정말 미친놈처럼 열심히 하더라. 그리고 아직 캐스팅되지도 않은 42.195㎞라는 영화를 준비하려고 몸까지 만들어놨다더라. 참 대단하지 않냐?’라고 이야기가 들어갔으면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소문은 문정흠에게까지 도달하기를 바란다. 그래야 자신의 최종 목표가 이뤄지는 셈이다. 이미지가 부족하다면 소문으로 그 이미지를 채우고자 하는 민후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윤하와의 스캔들이 터졌던 것으로 민후가 어찌하여 그 센터에 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기사에 실린 바가 있었다.

42.195㎞라는 영화의 캐스팅을 준비하기 위함이라고 기사에 그것은 실렸다.

어찌 보면 다른 관계자들에게는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 수도 있는 기사였으나 정작 그 영화의 감독을 맡은 이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아, 어떠어떠한 배우가 내 작품의 캐스팅을 위해서 이렇게 부단한 노력을 하였구나.’하고 한 번쯤은 유심히 쳐다보게 될 것이니 말이다.

민후는 평소와 다름없이 러닝머신 위에서 한 시간 반을 뛰었다. 그러나 실제로 마라톤 선수들이 뛰는 것을 감안하면 많이 뛰었다고 할 순 없다.

실제 아마추어 선수들의 목표는 42.195㎞를 3시간 만에 완주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것을 서브쓰리로 불리는데 이것은 그들에게 이루고자 하는 꿈이자 희망이었다.

이 정도의 기록을 위해서 하루가 멀다 하고 몇 시간씩 달리기만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만큼 마라톤은 보는 것과는 다르게 녹록지가 않다.

실제로 가정해본다. 흔히 군대서든 학교에서든 3㎞ 달리기를 통하여서 체력검정을 많이 한다. 그 체력검정에서 1등급, 혹은 특급을 받기 위해선 3㎞를 12분 30초 안에 돌파해야 한다.

그 12분 30초를 돌파하기 위해 뛰는 이들은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목이 말라 타들어 가 괜스레 침만 계속 뱉어대고 머릿속으로는 ‘아…… 포기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계속 들고, 온몸의 힘이 빠지고 당장 죽을 것 같다.

그런 것은 아마추어도, 프로 마라톤 선수들도 42.195㎞를 3시간 내로 뛰는 것은 정말 힘든 것이다.

그 때문에 이 작품이 한편으로는 겉멋만 든 골빈 배우들에게는 캐스팅되고 싶은 의지가 없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 영화를 촬영하는 때만큼은 그 배우도 그만큼의 거리를 목표로 두고 뛰며 연기를 해야 하니 말이다.

그리고 민후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너무나도 하고 싶은 욕망으로 들끓었다.

참 매혹적인 작품이지 않은가, 자폐증을 앓는 청년이 달린다. 자신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자신의 어머니의 행복을 위해서 달린다.

다섯 살 지능, 초코파이와 짜장면에 환장하고, 얼룩말을 좋아하며 얼룩무늬를 보면 사족을 못 쓰는 바보 같은 아이가 어머니의 행복을 위해서 달린다는 내용. 정말 가슴 뜨겁게 만드는 내용이다.

하물며 이 영화 42.195㎞는 감동을 주제로 한만큼 전국의 수많은 이들의 감동을 샀다. 전문가들이든, 네티즌들이든 총 평점이 9점을 넘어섰으며 관객 수는 500만 이상을 동원한 흥행작이었다.

민후로서는 뼈를 깎는 고통이 있다고 한들 정말 꼭 해보고 싶은 작품이었다.

샤워실로 들어가 미지근한 물로 땀에 흠뻑 젖은 몸을 씻고 나온 민후다. 옷을 갈아입고 카운터 앞에 서 있는 연예인 전문 헬스 트레이너인 강준호가 빙긋 웃었다.

“도옥- 한 놈.”

그렇게 말은 하지만 그는 민후가 상당히 대견하다는 모습이었다. 수많은 연예인을 트레이너 한 그였지만 민후와 같은 독종을 보기 힘들었다. 그리고 그런 독종들은 대부분이 현재 대한민국 내로라하는 배우들이었다.

간혹 자신들의 배역에 맞게 몸을 만드는 배우들이 있었다. 그중 임경우도 있었다.

임경우는 작년에 개봉했던 영화 중 프로 레슬러 선수 중 역도산이라는 인물의 실화를 그린 영화에 참여하였었는데, 그는 그 영화 촬영을 위해 3개월 만에 15㎏을 불리고 나타났다. 그리고 촬영이 끝난 후에는 다시 2개월 만에 감량했다.

그만큼 그가 미친 듯이 노력했다는 뜻이었다. 이렇듯 트레이너 강준호가 보는 독하게 사는 배우들은 전부 성공한 이들이었고, 민후도 그럴 것이라 확신한다.

“수고하세요.”

“들어가라.”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인 민후가 밖으로 나섰다. 차량에 오르자 오늘도 스케줄 하나 건지기 위해 뛰어다녔던 정수가 어느새 돌아와 밴에 올라 있었다.

* * *

영화 캐스팅의 경우 시트콤보다는 훨씬 큰 신중함을 가하기 마련이다. 당연하였다. 시트콤은 빠르고 간결하게 휙 하니 지나가지만, 영화는 한 장면 한 장면 현실처럼 생동감 있게 잡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2월이 되었다. 영화 42.195㎞의 본격적인 캐스팅을 위한 준비에 감독과 제작사가 준비에 나선 상황이었다. 정수가 얼마 전 42.195㎞를 노리고 있는 배우들에 대한 정보를 가져다준 적이 있었다.

그 안에는 젊지만 쟁쟁하고 강한 연기자들이 대거 있었다. 물론 게으르고 겉멋 든 연기자들은 없었지만, 대한민국에도 꽤 열정 있고 강한 의지의 연기자들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였다.

강한 경쟁자들이 많아진 것에 민후도 조금 긴장을 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실정이었다.

현재 어머니 역할이나, 유원의 동생 역, 코치 역할의 이들은 캐스팅이 완료된 상황이었다. 최종적인 캐스팅은 주연 유원이 역할만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오디션은 크게 다를 바 없이 1차 서류전형, 2차는 오디션을 보게 되고, 3차 일대일 면담 후 캐스팅될 것이었다.

현재 신인 배우들의 오디션도 진행되고 있었고 문 감독이 관심 있는 배우들에게 출연 제의를 던지며 일대일 오디션을 보기도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럼에도 캐스팅이 아직 치러지지 않은 이유는 그만큼 신중을 기한다는 이야기와도 같았다.

현재 민후는 42.195㎞의 오디션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는 수월하게 서류 전형을 합격하였다. 2차인 오디션은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민후가 이제껏 논스톱 5 촬영을 진행하면서 한편 다른 배움을 잠시 멈추고 유원이 역에 매진하여 연습하였다.

“참, 얼마 전에 다른 매니저들하고 통화하다가 그 이야기도 들었다.”

정수는 어떤 이들이 캐스팅을 시도하고 있나 조사하던 도중 들었던 이야기가 문득 떠오른 듯싶었다. 민후가 의아한 듯 관심을 보였다.

“이번 작품에 임의진 선생님께서 캐스팅되셨잖아. 캐스팅되시고 전체적인 시나리오를 받으셨나 봐. 그리고 검토하시고 문 감독님한테 말하기를.”

임의진의 이야기가 나오자 민후는 크게 흥이 동했다. 그녀는 오랜 시간 배우로서 자리 잡았고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였다. 마흔 살이 넘어간 그녀는 1980년부터 첫 연기를 시작한 베테랑 배우였고, 작품을 사랑하는 열정도 크고 노력도 커서 많은 후배의 롤모델이 되고 있는 여성으로 충분히 ‘선생님’이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은 여성이었다.

“임의진 선생님이 딱 시나리오를 보시고 나서 그 자리에서 눈물을 닦으셨대. 그리고 문 감독한테 전화를 해서 ‘나 이 작품 정말 열심히 하고 싶다. 이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야 하는 작품이다. 또 그만큼 문 감독도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자신을 이 영화에 캐스팅해 줘서 고맙다.’라고 했대. 선생님 매니저랑 나하고 선후배 사이여서 들었어. 그리고 임의진 선생님도 네 얘기 들었었나 봐. 꽤 기대가 크시대. 오늘 심사위원으로도 오시고.”

“아…….”

민후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원의 어머니 역할을 맡게 된 여성이 눈물까지 흘렸다. 그만큼 그 작품의 완성도가 높고 대단하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실제 42.195㎞의 흥행률이 민후의 개입으로 어찌 변할 줄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500만 흥행을 감안 하면 실상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1천만 관객을 넘겼다는 작품들에 비해서는 흥행이 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셈이다.

그러나 감독들을 얼마만큼 흥행시켰는지에 대한 요소로 보는 것보다는 얼마만큼 좋은 작품을 냈는지를 보는 게 우선인 사람들도 있었다. 단순 재미가 좋아 천만 관객이 된 것과 좋은 작품성을 보여 성공한 작품.

물론 좋은 작품성이나 더 낮은 흥행률을 기록하기는 하였지만, 이 작품을 무시하지는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실제로 500만 역시도 대단한 수치인 것은 사실이었다.

어느덧 오디션장에 도착했다. 오디션 대기실로 들어가기 전 민후는 큰 호흡을 들이쉬었다가 내뱉었다. 실질적으로 이 작품에 캐스팅되면 그는 연기력으로 크게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논스톱도 분명 흥행하였고, 민후에게 신인상을 안겨준 작품이기는 하지만 이 영화 자체는 배우와 감독에 따라 달라질 영화였고, 신인인 강민후를 이름 있는 배우로서 만들어줄지도 모르는 영화였다.

그가 문고리를 잡고 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대기실 앞쪽에서 긴장된 기색으로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 보였다. 그중에는 이름 좀 있다 싶은 신인 배우들도 보였다.

실상 어느 정도 흥행한 배우들이야 일대일 오디션을 볼 수 있지만, 신인 배우들은 이런 형식의 길을 꼭 거쳐야 했고, 민후도 그러했다. 그만큼 아직 그가 신임이 부족하다 할 수 있었다.

민후도 이번 연도 신인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기 때문인지 얼굴조차도 알려지지 않은 많은 신인 배우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특히나 다른 신인 배우들은 그의 의상을 보고는 작은 감탄을 하였다.

민후는 짧은 반바지에 티셔츠 그 겉으로는 패딩을 입고 있었다. 유원이의 이미지를 맞춘 것이다.

그만큼 그는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쓴 것이다. 많은 이들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지만 민후는 전혀 그 시선을 받아주지 않았다.

그는 눈을 감고 이미지를 그려보기 시작했다. 어떤 식으로 해야 그들에게 새로운 느낌을 주고 흥미를 돋을 수가 있을까. 어떤 식으로 해야 그들에게 ‘아, 괜찮다’ 싶은 느낌을 줄 수 있을까 한다.

그리고 곧 그는 해답을 찾아냈다. 해답을 찾은 그는 손가락을 투둑투둑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섯 살 지능을 가진 유원이. 그의 연기를 지금 시작하는 것이다.

아니, 연기를 시작한다기보다 민후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유원이 되기로 결심하였다. 그의 행동에 정수는 순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그가 이제까지 자신이 노력한 것을 현재 시험에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민후는 아무리 연기했어도 막상 심사위원들 앞에서 실수할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

그는 불안한 시선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엄지와 집게손가락을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관계자가 다가와 민후에게로 번호표를 달아주었다. 그러자 민후는 마치 유원이처럼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면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관계자는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으나, 민후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느덧 그의 순서가 돌아오고 민후는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면서 민후는 생각했다. 다섯 살 지체 장애인 소년이 넓은 공간에 보호자 없이 있으면 어떤 모습을 보일까.

그는 심사위원들을 슬쩍 눈으로 훑었다. 문정흠 감독, 임의진 선생님, 제작사 관계자와 시나리오를 쓴 극작가가 함께 앉아 있었다.

그들은 어색하게 걸으면서 들어오는 민후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곧 민후는 불안정한 시선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기호 157번. 은유원이라고 합니다!”

심사위원들은 그의 첫 등장에 상당히 흥미가 동하는 분위기였다. 들어오면서부터 연기를 시작하다. 이것 하나는 흥미가 동했으며 문정흠 감독이나 임의진 선생님은 특히나 그를 유심히 살폈다.

문정흠 감독의 경우 강민후라는 배우가 캐스팅을 위해서 복지센터로 찾아가 장애인들을 살펴본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바가 있었다.

또 얼마 전에는 한 관계자를 통해서 요즘 강민후라는 배우가 캐스팅을 위해서 체중감량을 하고 있다는 말까지 들었다.

조금 황당한 소리였다. 캐스팅에 붙었다는 것도 아니고 캐스팅을 보기 위해서 노력을 한다는 것은 말이다. 만약 도루묵이 되면 어쩌겠다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만큼 자신감이 크나 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문 감독은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는 마라톤을 할 때 사람들이 입는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 운동화에 짧은 반바지와 반팔 운동복. 문 감독은 신중하게 민후의 이력서 부분에 ‘운동복을 입고 옴’이라고 썼다.

그와 더불어 그의 신체를 살펴봤다. 배우들은 몸이 건실한 편이다. 어깨가 벌어졌고, 허리는 잘록하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옷을 입었을 때 예쁘다는 핏을 만들기 위해 운동하기 때문이다.

하나 민후는 상당히 야위었으나 다리만큼은 튼실하였다. 그가 캐스팅을 위해 운동한다는 소식을 접했던 그로서는 더욱 흥미가 동해 또 한 번 ‘몸을 만들었음’이라고 적었다.

“재밌네요, 연기를 하면서 들어올 줄은 몰랐거든요. 이거 어떻게 제시를 해야 하나.”

임의진이 그를 보면서 흥미가 동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어떤 식의 제시를 해볼까 하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었다. 캐스팅을 준비 중인 배우들에게는 중요한 장면만 따로 프린트하여서 건네졌다.

그것을 랜덤으로 제시하면 연기를 하면 된다.

심사위원들이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 것을 제시할지에 대한 의논이었다. 심사위원들은 민후라는 배우가 들어오자마자 큰 관심이 생겼다.

일단 그의 동작 하나하나가 자신들이 연상시켰던 유원이라는 인물의 행동과 많이 닮아 있었고, 어색함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그가 그만큼 유원이라는 역할을 맡고 싶어 노력하였던 것이 보이는 듯했다.

곧 이야기 끝에 신을 선택하였다. 지하철에서 얼룩무늬 스커트를 입은 여성의 엉덩이를 유원이 만지게 되고 이로 인해 유원이 체격 건실한 남성에게 폭행을 당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알게 된 임의진이 남성을 다급히 제지하게 되는 장면이었고, 폭행을 당하면서 불안에 떨던 유원이 슬픔과 아픔을 표현하는 부분이 있었다.

42.195㎞라는 영화의 최고의 명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 장면이다.

“제가 오디션 상대가 되어드릴게요.”

의진은 빙긋 웃었다. 일단 그가 준비해온 것들은 충분히 만족스러운 것이었고 심사위원들은 제대로 보고 싶었다. 또 어머니 역인 임의진이 여기 있었다.

임의진이 대본을 읊기 시작했다. 자신의 아이가 맞고 있는 모습을 본 의진이다. 그녀는 다급하게 남성을 막는 목소리를 낸다.

“왜 이러는 거야! 왜! 왜 남의 애를 때려! 남의 아들 왜 때려! 무슨 일인데 우리 아들을 왜 때리는 거야!”

그녀는 단순히 앉아서 대본을 읊는 것뿐이었지만 20년을 연기한 만큼 노련하게 읊었다. 화나고,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운 목소리였다.

민후는 마치 조금 전까지 맞았던 이처럼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여 소리친다.

“우리 아이에게는! 장애가 있어요! 우리 아이에게는! 장애가 있어요! 우리 아이에게는 장애가 있어요!”

“유원아! 그만해, 유원아.”

“우리 아이에게는 장애가 있어요! 우리 아이에게는 장애가 있어요! 우리 아이에게는 장애가 있어요! 장애가 있어요!”

그녀는 놀란 음성으로 그를 진정시키려 한다. 미안한 감정이 몰려든다. 그러나 민후는 멈추지 않았다. 계속 그 말만 반복하고 있었지만, 그것에는 많은 뜻이 담겨 있는 듯하였다.

임의진이든 다른 심사위원들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 봤습니다.”

끝났다는 이야기가 들리자 민후는 목소리를 멈췄다. 그는 불안한 듯 시선을 움직였다. 그러더니 한편으로 가서 갑자기 뽀옹 하는 소리를 입으로 냈다.

“방구! 방구는 나가서!”

“큭.”

“하하하!”

그의 재치 있는 행동에 심사위원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 역시 유원이 연기하는 장면 중 하나였다. 계속 반복된 오디션에 지루했을 그들에게 잠시 웃으라고 보여준 행동이었다.

문정흠은 그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손동작마저도 마치 자신이 원하는 컨셉의 모습이었다. 하나, 너무나 쉽게 그를 자신이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이 영화는 자신이 심혈을 기울인 영화였으며 제작사 역시도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단순히 오디션장에서 좋은 평을 받았다고 신인상 한 번 받은 배우를 캐스팅할 수는 없었다.

“상의 한번 벗어줄 수 있나?”

문 감독은 잠시 진중하게 그를 살피다가 한 말이다. 그러자 민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상의를 벗고는 하의까지 벗으려 한다. 마치 정말 유원이가 된 것처럼 바보스럽게 말이다.

“아니, 하의는 됐어요.”

의진이 말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정흠은 그의 신체를 살폈다. 일단 아무리 근육을 빼냈다 하더라도 그 형태는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형태마저 보안하기 위해 노력한 모습이 몸 군데군데에서 보이고 있었다. 또 튼실한 정강이를 보면 영화를 찍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아직 목마른 사슴처럼 부족했다.

“사실 이야기 많이 들었지. 캐스팅되고 싶어서 안달이나 연습하는 녀석이 있다고. 근데 너무 무모한 거 아닌가. 캐스팅되지 못하면 어쩌려고?”

“유원이, 유원이 이 역할 너무 하고 싶어요! 캐스팅해 주세요!”

그의 말에 민후는 간절한 표정을 보인다. 어린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스스럼없이 보여주는 표정으로 말이다.

“그만큼 자신이 있나? 하루에 실제 42.195㎞를 뛰어다녀야 할 수도 있어.”

조금 과장되게 말하는 그다. 그러나 민후는 할 수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흠은 곧 ‘후-’ 하고 한숨을 쉰다. 머리가 많이 복잡해진다.

열정도, 노력하는 자세도, 또 마라톤을 소재로 한 영화이지만 끊임없이 달리는 것도 잘할 친구일 것 같았다. 그렇지만 신인이었다.

그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갈등의 기로에 섰다.

현재 실력 있는 배우 중 이름 좀 날린 친구와 얼마 전 일대일 오디션을 보았다. 잘생겼고, 연기도 뛰어나다. 입증된 배우인지라 흥행률이나 작품은 보장이다.

그리고 신인 배우 강민후. 입증되지는 않은 배우인지라 흥행률, 작품성 보장은 못 한다. 그러나 도 아니면 모라고 한 번 터뜨리면 신인 배우들은 크게 터뜨리기 마련이다.

스크린에 얼굴이 크게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현실감을 더하기 때문이다. 그는 머릿속으로 도박을 할지, 아니면 안정적으로 입증된 배우를 쓸지 갈등한다.

오디션이 끝났다. 민후는 나가는 순간까지도 유원이 역할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가 문고리를 잡으면서 중얼중얼한다.

“유원이 다리는 백만 불짜리 다리-!”

그러자 그 소리를 듣고 빙긋 웃은 의진이 말한다.

“몸매는?”

문고리를 잡았던 그가 그 목소리에 몸을 휙 하니 돌려 헤벌쭉 웃으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끝내줘요오-!”

“수고했어요-”

“네에.”

대답을 한 후 민후는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온 민후는 ‘후-’ 하는 긴장된 목소리를 뱉어냈다. 그는 밴으로 향하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옆에서 함께 걷던 정수가 웃음을 흘렸다.

“민후야, 너 지금 걷는 게 유원이 같다?”

너무 몰입했던 것인지 연기를 안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음에도 본인도 모르게 그렇게 행동했나 보다. 그가 머쓱한 표정을 짓는다. 부디 자신이 캐스팅되기를 그는 간절히 바란다.

* * *

문 감독은 아직도 깊은 갈등에 서 있었다. 어느 정도 흥행률을 보장한 인지도 있는 배우이냐, 실력이 뛰어나고 노력이 강한 신인 배우 강민후이냐.

실상 현재로서 문 감독은 서서히 강민후라는 배우에게 그 표가 기울고 있었다. 임의진. 42.195㎞의 주요 인물을 맡고 있는 유원의 엄마 역인 그녀도 강민후와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실상, 벌써 하루에 수십 ㎞씩 달리기 위해 노력했던 배우이고, 그가 오디션장에서 보였던 연기력이 무척 좋았다고 한다. 그와 더불어서 그의 연기력은 마치 정말 유원을 보는 것처럼 생동감이 있었다고 하였다.

임의진은 실력 있는 중역 배우이기도 하였지만 오랜 시간 배우 생활을 한 만큼 문 감독 못지않게 다른 이를 파악하는 능력이 우수한 편이었다.

그리고 문 감독의 경우도 강민후라는 친구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그도 사람이었던지라 자신의 작품을 위해서 캐스팅이 되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수개월을 연습하고 체중을 관리하였다는 민후라는 인물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는 없었다.

캐스팅은 감독의 주관적인 선택이었지만 그 주관적인 선택 뒤에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더불어서 그 배우에 있었고, 민후는 신인 배우이지만 높은 점수를 문 감독에게 딴 상태였다.

그러나 역시나 한 가지 계속 걸리는 것이 입증되지 않은 신인 배우라는 점이었다. 때문에 오랜 시간 고민하던 그는 결국 강민후라는 배우를 만나 보기로 결정했다.

일대일 면담이었다. 그러나 그는 한번 진짜 그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 때문에 우습게도 그는 강민후의 매니저에게 자신 본인의 사무실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운동장에서 만나자고 하였다.

금빛 고등학교라는 곳의 운동장이었다. 강민후의 매니저는 알겠다고 답하였다.

그리고 운동장으로 향하는 민후는 웃음이 흐를 수밖에 없었다. 문 감독이 보고 싶은 게 무엇인 줄 알았다. 실질적으로 오디션장 내에서는 보일 수 있는 연기가 한계가 있었다.

그곳에서 백날 뛴다고 하여도 말 그대로 제자리걸음이었다. 그 때문에 그곳의 연기입증은 한계가 존재한다.

문 감독은 아마도 민후의 달리는 모습이 보고 싶을 것이었다. 민후는 충분히 이해한다. 감독은 배우만을 데리고 가는 것이 아니다.

그의 등 뒤로는 제작사가 있었고 스태프들이 있었다. 그런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 이의 신중함에 민후는 악담보다는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금빛 고등학교로 향하는 민후의 차림은 저번과 마찬가지로 운동복이었다. 10㎞든 20㎞든 뛸 준비가 되어 있었다. 행여 감독인 그가 만족하지 못한다면 만족할 때까지 달려줄 것이다.

예전에 한 엔터테인먼트 소속사 대표가 마음에 드는 신인 가수가 있었지만, 계약으로 인해 갈등을 빚은 적이 있었다. 그 때문에 소속사 대표는 깊은 갈등을 겪던 중 그의 열정과 실력을 보기로 결정하였다.

그는 대뜸 그 가수 A 씨를 불러놓고 말한다. ‘춤춰라, 네가 보일 수 있는 가장 좋은 춤을 내게 보여줘라’라고 언급한다.

그에 그 가수 A 씨는 그의 앞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근데 아무리 춤을 춰도 소속사 대표는 ‘거기까지’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한 시간이 지나도 그는 계속 지켜보았고, 두 시간이 지났을 때도 그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A 가수는 죽을 것 같았다. 그러나 너무나 가수가 되고 싶었고, 쓰러질 것 같은 다리이지만 후들거리면서 어기적거리더라도 계속 춤을 추었다.

2시간 30분이 되던 째에 엔터테인먼트 대표는 ‘그만하라’라고 말하고는 그의 어깨를 두들겨주었다.

A가수는 결국 그 엔터테인먼트의 자랑스러운 소속원이 될 수 있었다. 대표는 2시간 30분 동안 그의 춤을 첫 번째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1시간이 지났을 때는 그의 체력을 검증하였고, 2시간이 지났을 때는 그의 끈기를 확인하였다.

결국 그 모든 것을 얻어낸 아무 보증 없던 신인가수 A는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라고 불리는 그곳에 소속되었으며 현재는 아시아를 넘나드는 월드 스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문 감독도 어쩌면 이렇듯 민후를 시험하기 위해 부르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시험이라면 환영하는 민후였다.

누구보다 강하고, 누구보다 끈기 있으며 누구보다 좋은 연기력을 가진 배우 강민후였으니 말이다.

금빛 고등학교로 왔다. 일요일이었던지라 학교에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차를 받치고 내려서 운동장 쪽으로 향하자 운동장의 철봉 근처의 벤치에 앉아 있는 문 감독을 볼 수 있었다.

민후는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이며 그에게 후다닥 달려갔다. 그가 오자 문 감독은 자신의 옆자리를 툭툭 쳤다.

민후가 앉았다.

“날씨가 아직 춥네.”

“뛰긴 좋은 날씨죠.”

따뜻한 캔 커피를 내미는 문 감독의 말에 민후는 받아 들면서 빙긋 웃었다. 그가 잠시 민후를 보았다. 오디션장에서는 그의 진짜 모습을 보지 못하였다.

새삼 다시 한번 그의 연기력에 감탄한다. 그는 오디션장에서 그 분위기마저도 유원이스럽게 이끌었었고, 이렇게 멀쩡할 때 보니 그 분위기 자체가 너무나도 달랐다.

분위기 자체를 이끄는 배우는 쉽게 찾을 수 없는 진주 같은 존재들이다. 있다면 오랜 시간 연기를 한 중역 배우들이나, 노역 배우들에게서 자주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어린 친구가 분위기 자체를 이끈다는 것에 새삼 놀라웠으며 멀쩡한 모습의 그의 눈에서는 열정과 하고 싶다는 욕망이 함께 돋보였다.

“내가 어떤 사람인 줄 들었지? 난 한 번 아니면 아닌 거고 맞으면 맞는 거야. 자넨 나하고 작품 하다가 기절할 수도 있어.”

그는 조금 과장을 섞어서 한 말이다. 그러나 그만큼 자신과의 작품이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는 거였다. 아닌 거는 아닌 거고 맞는 건 맞는 거다.

그만큼 자신이 아니다 싶으면 민후는 수십 번, 수백 번을 반복해서 달려야 할 수도 있었다. 맞는다면 한 컷에 끝나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하고 싶나?”

“예.”

민후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에 문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며 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평소 같았으면 민후가 담뱃불을 붙여줬겠지만 실상 끊은 지 몇 개월 되었다. 42.195㎞를 대비해서이다. 대단한 정신력이라 할 수 있다.

오랜 시간 피워온 담배를 작품 하나 때문에 끊어낸다는 것이 말이다.

“후- 그럼 한번 뛰어봐. 맞는지 아닌지는 뛰는 거 보고 판단하지.”

그는 연기를 길게 뿜어내면서 그를 돌아보았다. 민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검지와 중지 손가락을 불안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원이의 불안해하는 모습을 손가락 두 개로 항시 그는 표현하곤 한다.

발달 장애 보호센터를 다니면서 한 자폐증을 앓는 이가 보이는 습관을 그는 따라 하고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다시 유원이가 되었다.

“달린다, 달리기 재밌어.”

그는 그렇게 밝게 웃고는 다짜고짜 달리기 시작하였다. 그는 2개월 정도 단순히 뛰기만 하면서 체중 감량을 하다가 2개월이 지난 시점에서는 유원이처럼 달리는 방법을 연습했다.

유원이는 항상 불안하다. 초조하고, 모든 것이 낯설며 하나하나 민감한 것에도 큰 반응을 보인다. 그는 고개를 계속 좌우로 흔들면서 뛴다. 그의 표정은 그저 달리는 것이 좋다는 표정이다.

그는 쉴 새 없이 운동장을 돌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그 옆에 서 있던 정수가 자연스레 문 감독의 옆에 앉았다.

“자네가 맡은 저 친구, 어떻다고 생각하나. 매니저라고 해서 입에 발린 소리는 집어치우고.”

정수는 문 감독에게 쉴 새 없이 전화를 걸었었다. 이 배역을 꼭 따내고 싶어 하는 민후를 위해서 덤벼든 것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렇게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그에게 물었다. 문 감독도 박정수가 상당히 유능한 매니저인 것을 대강 들은 바가 있어 알고 있었다. 그의 물음에 박정수는 픽 하고 웃었다.

“말이 필요한 친구가 아닙니다. 그냥 보시면 됩니다.”

분명 칭찬을 늘어놓을 만도 하였지만, 그는 그렇게 답했다. 정말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그럼 강민후라는 배우가 어떤 배우인지 알게 된다.

정수도 그를 지켜보면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오히려 배우기도 하였다. 정말 그는 지켜보기만 하여도 어떤 친구인지 딱 하니 답이 나온다.

민후는 계속 달렸다. 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달렸다. 그는 실제 마라토너처럼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달렸다.

물끄러미 보던 정수가 가방에서 생수병 하나를 꺼내서 똑 하니 땄다.

생수병을 딴 그는 종이컵에 가득 따라서 민후에게로 건넸다.

“무울- 물!”

유원은 물을 받고 좋아하면서 단숨에 들이켜고는 운동장에 버렸다. 문 감독은 그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뛰는 자세. 엉성한 자세다. 그의 시선 처리는 매우 만족스러우며 뛰면서 보이는 행동 하나하나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느려지지 않는 속도는 오랜 시간 그의 노력을 보여준다.

“내가 봐도 조금 우습긴 하네. 마라토너 선수 뽑는 것도 아니고.”

계속 달리는 민후를 보다가 그는 실소를 흘렸다. 마치 상황이 배우가 아니라 마라토너 선수를 뽑는 것 같았다. 실상 몸을 만드는 것은 캐스팅된 후에 하여도 충분하였다.

그러나 여기에서 문 감독은 자신을 만족시킬 수 있는 의지와 끈기, 그리고 자세를 보고 싶었다.

한 시간 반 정도를 뛰었을 때였다. 문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갑자기 민후가 오자 그와 맞추어 옆에서 뛰기 시작했다.

“안 힘드나?”

“안 힘들어, 유원이 안 힘들어.”

그의 물음에 민후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도 사람인지라 심장이 터질 것 같았고 호흡은 가빠졌다. 당장 멈추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는 마른침을 연신 꿀꺽꿀꺽 삼켰다. 힘들지 않다고 민후는 말해도 그의 얼굴로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그는 계속 뛰고 있었고, 그 모습을 함께 달리며 문 감독은 지켜보았다.

두 바퀴 정도를 같이 뛰던 문 감독이 헥헥거리며 양 무릎 위로 손을 짚고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젊은것들은 못 따라가겠다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며 민망한 듯 웃더니 다시 민후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1시간 55분이 경과 되었을 때였다. 민후의 속도는 변함이 없었다. 신중하게 계속 페이스를 유지한 결과였다.

그는 잠시 물끄러미 보다가 민후가 자신의 곁으로 오자 말했다.

“그만 뛰어도 되네.”

그의 말에 민후가 우뚝 멈춰 섰다. 그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2월이었다. 날씨가 춥다. 그러나 그는 흠뻑 땀에 젖어 있었다. 그를 보면서 피식 웃은 문 감독은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내일 사무실로 오게. 계약서 작성하지.”

“네, 네!”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이 가져왔던 짐을 챙겼다. 그러면서 정수를 보고는 피식한다.

“정말 말보다는 지켜보는 게 나은 친구야.”

“그렇죠?”

정수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는다. 곧 문 감독은 ‘감사합니다!’라고 외쳐대는 민후를 등 뒤로 하고는 운동장을 벗어났다. 운동장을 벗어나는 그의 표정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가득했다.

‘저 정도면 괜찮겠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싶은 친구다. 그리고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정수는 민후에게로 달려가 그대로 그를 껴안았다.

“해냈어! 해낸 거야! 하하하!”

“크윽, 형 숨 막혀요!”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매니저 정수다. 민후는 자신의 몸이 땀에 젖어 흠뻑 젖었음에도 대수롭지 않게 안기는 정수를 떼어놓으려 하였다.

정수가 그의 얼굴을 양손으로 잡았다.

“문 감독이 누군지 알아!? 기성 배우들도 같이 작품 하기 힘든 사람이고! 그 감독을 네가 만족시킨 거야!”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연신 웃었다. 민후도 그를 보면서 기뻐했다. 민후는 신인으로서는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이다. 그만큼 문 감독은 기성 배우들도 같이 작품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이었다.

오랜 시간의 노력이 지금 이곳에서 빛을 발휘하고 있었다. 강민후는 42.195㎞에 캐스팅되었다.

민후는 사무실로 찾아가 문 감독과의 이야기 후에 계약서를 작성하였다. 그는 연신 당부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을 작품이다. 그러니 캐스팅된 만큼 ‘죽어도 된다’라는 다짐으로 임해달라고 말이다.

물론 민후는 그럴 생각이었다. 한 작품을 하여도 그 작품에 모든 것을 올인할 사람이 바로 그였다. 그리고 문 감독은 한 가지 사항을 더 언급하였다.

만약 촬영 중 민후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계약이고 뭐고 파기해 버리겠다는 일종의 협박과 같은 말이었다. 민후는 이마저도 개의치 않고 받아들였다.

문 감독이 자신을 만족하지 못할 리는 없었다. 아마 그럴 일은 평생을 가도 없을 것이었고, 말 그대로 강민후는 신인 배우이지만 42.195㎞라는 많은 실력파 배우들이 겨냥하고 있던 작품을 따낸 당찬 배우가 된 것이다.

“작품 하나 얻었다고 잘되는 건 아니야. 앞으로 어찌 될지는 너 하기에 달린 거지. 뭐 그런 작품 하나 했다고 톱배우 되고 누가 떠받들어주고 그런 건 아니잖아?”

소속사의 대표실에서 함태웅이 커피 한 잔으로 입술을 적시며 말했다.

민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함태웅은 그가 캐스팅 확정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무척이나 놀랐다.

실상 함태웅도 그가 시나리오를 받고, 그 시나리오에 대해서 겁내는 사람인가, 아니면 부딪치는 사람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문 감독의 시나리오를 제시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라톤이라는 소재는 언급했듯, 게으르고 겉멋만 든 배우들은 기피 하는 소재였다. 그런데 민후에게서 부딪치는 신인 배우로서 꼭 필요한 자세가 보였다.

그와 더불어 갑자기 체중 관리를 시작하던 녀석은 캐스팅에 대한 준비에 들어가더니 놀랍게도 문 감독의 작품에 당당하게 캐스팅되었다.

문 감독의 작품은 황제 소속사 내의 이들도 항상 침을 흘리던 작품이다. 작품성이면 작품성, 흥행이면 흥행, 모든 것이 완벽했다.

다만 그것을 얻는 조건으로 그만큼 배우는 고된 촬영을 하여야 했지만, 고진감래라고 고생 끝에 낙이 오는 결과이기 때문에 많은 배우들이 얻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 작품 42.195㎞의 경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재이기 때문인지 제작 전에도 꽤 큰 관심이 쏠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실력파 배우들의 경우 자신들의 실력을 다시 한번 관객들에게 입증시킬 기회였기에 유독 문 감독 작품 중에서도 경쟁률이 강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걸 이제 겨우 시트콤 하나 끝내가는 애송이가 따온 것이다. 참으로 대견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에게 고분고분 좋은 말 하지 못하는 것은 그가 자만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정수에게도 항상 이른다. ‘최고로 인기 좋은 배우는 될 수 있지만, 국민의 마음을 흔드는 배우가 될 수 없을 수도 있다’라는 말이었다.

유독 찾아보면 팬들도 엄청나게 많지만 안티 팬도 무척 많은 배우들이 있으며, 그와 반대로 팬들이 무척 많지만 안티 팬도 없는 배우들이 있다.

태웅은 민후가 그러한 배우가 되었으면 해서 항시 정수에게 그 말을 읊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듯 태웅이나 정수로부터 은근히 많은 힘을 받아내고 있는 민후의 경우 확실히 황제 소속사에 든 일이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도 같다 할 수 있다.

“이제 시트콤도 거의 끝나가겠다. 끝나자마자 바빠지겠구만.”

“네.”

태웅의 말에 민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트콤이 끝나면 6개월 정도의 여유로운 시간이 생긴다. 그 시간 동안 광고나, 인터뷰 등을 하고 그와 더불어서 42.195㎞의 본격적인 연습에 돌입할 예정이었다.

* * *

-2004년도 시트콤 부문 신인상 수상자 강민후 영화 42.195㎞ 은유원 역으로 캐스팅되어…….

(중계일보 유가희 기자)

2004년도를 웃음바다로 빠트렸던 시트콤 논스톱 5가 서서히 그 끝을 향해 달리고 있는 시점이다. 이번 연도 시트콤 부문 남자 신인상을 수상한 강민후의 다음 작품이 알려져 화제다.

강민후는 42.195㎞라는 마라톤을 소재로 한 실화 영화에 캐스팅되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신인인 그가 문정흠 감독과 함께 손을 잡았다는 것이다.

문정흠 감독은 평소 꼼꼼한 성격에 배우들을 보는 눈이 매우 높은 편에 속한다. 그러한 문정흠 감독이 신인 배우인 강민후를 캐스팅한 것에 의해서 사람들은 많은 의견을 내놓고 있었다.

한편 강민후의 캐스팅에 앞서서 문정흠 감독은 비화로써 ‘그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마라톤을 소재로 한 만큼 캐스팅에 앞서 그에게 운동장을 뛰어보라고 시켰다.’라고 독특한 방식으로 캐스팅에 관한 오디션을 진행한 것이 화제다.

또한 문정흠 감독은 달리는 내내 그에게서 어떤 것이든 이겨내겠다는 의지와 ‘아, 저 배우면 되겠다.’라고 생각을 하였다고 말하였다. 한편, 신인 배우 강민후는 현재 논스톱 5의…….

민후는 논스톱 5의 마지막까지 함께 할 수 있어 종방까지도 출연할 예정이었다.

이제 정말 논스톱 5는 몇 회 남지 않은 실정이었다. 1년간 진행되었던 촬영이었고, 민후나 다른 배우들도 첫 출발을 끊은 작품이기도 하였다.

신인 배우들의 대거 출동이었지만 흥행 시청률을 낸 논스톱 5. 그에 앞서 다른 배우들도 무척 아쉬운 것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나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다른 촬영장과는 다르게 정말 친구처럼, 형, 오빠처럼 너무나도 재밌게 촬영을 했고, 배우들도 스태프들도 정이 많이 든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배우들은 오랜만에 의기투합하여 촬영팀 인원들의 한 끼의 식사를 자신들이 직접 대접하기로 마음을 먹고는 출장뷔페를 불렀다.

괜스레 돈 자랑을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누구도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스태프들은 그들에게 연신 ‘잘 먹겠다’ 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스태프들이 어느 정도 식사를 하고 난 후,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하고 다니던 배우들도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일 처리를 하느라 늦게 온 담당 PD 택일이 들어왔다.

“PD님, 이쪽으로 오시죠.”

“아, 왜 이렇게 또 사람을 부르나-”

그는 배우들이 손짓하자 귀찮다는 듯 장난스레 웃으며 음식을 받아서 그들의 자리로 왔다. 그의 마중 편에 앉은 택일의 접시를 보면서 민후가 빙긋 웃었다.

“왜 이렇게 조금 받으셨어요. 이런 날 흔치 않은데.”

“너희들이 이렇게 돈 쓰는 날 흔치 않다 이거지?”

“하하.”

“네에-”

택일의 장난스러운 말에 배우들이 웃음을 흘렸다.

“그보다 이건 누가 생각해낸 거야?”

“바로 접니다.”

민후가 손으로 가슴을 팡팡 쳤다. 실제로 배우 중에 이렇듯 촬영이 끝나갈 때쯤이나, 끝난 후 식사를 대접하는 배우들이 많았다. 그중에는 실상 젊은 배우들보다는 중역이나 노역 배우들이 상당히 많았다.

민후는 실상 강호였던 것을 따지면 자신도 노역 배우가 되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노역 배우들과 젊은 배우들의 마인드가 달랐다.

중역이나 노역 배우들의 경우 대부분이 배고픈 시절을 이겨낸 배우들이다. 그 당시의 배우는 무척 힘들었고 고되었으니까.

그 때문에 스태프들이나 혹은 작품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소중함이 현재의 젊은 배우들보다 애틋했다.

실상 요즘의 젊은 배우들은 꿈보다는 ‘화려해서’ 연예인을 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전부 그렇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중역 배우들이나 노역 배우들이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 자체가 깊다는 것이었으며, 칠순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연기를 위해서 하루가 멀다 하고 공부하는 배우들도 무척 많다고 할 수 있었다.

“42.195㎞ 열심히 하고, 문 감독 그 양반 악평이 자자하던데. 뭐, 알아서 잘 하겠지.”

택일은 민후를 보면서 말한다. 그도 이쪽 방면에서 일하고 있기에 문 감독에 대한 소문을 들은 바가 있었고, 확실히 일반 감독들보다 촬영하기에 힘든 감독이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리고 민후의 경우 신인 배우에 캐스팅된 것이었는데, 택일은 문 감독이 그를 뽑은 이유를 대충 이해할 것 같았다. 자신이 민후를 아끼는 것처럼 곧 있으면 문 감독도 강민후라는 배우를 아끼게 될 것이다.

논스톱 5의 마지막 촬영 날이 다가왔다. 마지막 촬영인 만큼 배우들은 일찍 나왔다. 촬영할 화의 제목은 ‘안녕, 논씨네’였다. 마지막 회인만큼 멋지고 좋은 장면들도 많았는데, 커플마다 키스 신이 있었다.

이정민과 구민정의 경우 에스컬레이터에서 키스 신을 하게 된다. 오랜 시간 연명 되었던 커플의 키스 신이고 그 때문에 애틋하다.

그리고 조정인과 김민준의 경우도 키스 신이 있었다. 이 당시 김민준은 군대에 간 상황으로 설정이 잡히고 면회를 가는 조정인과 휴가를 나가 그녀를 놀라게 해 주려는 민준이 엇갈리게 되고,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이 키스 신을 하게 된다.

그리고 홍수민과 하진우 커플의 키스 신 역시도 존재하였으며, 한윤하와 이선훈의 키스 신도 있었다.

한윤하와 이선훈의 키스 신을 보면서 민후는 미간을 찌푸렸다. ‘왜 이렇게 오늘따라 NG가 많이 나는 거야.’라고 그는 중얼거렸다.

공항의 두 사람의 키스 신에서 민후는 못내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연기인 것도 알았고, 또 한편으로는 그녀가 현재 자신의 여인도 아니었지만, 괜스레 마음 한구석이 허- 하다.

아마도 그 ‘허-’ 한 기분이 어쩌면 민후만 키스 신이 없어서일지도 몰랐다. 민후는 마지막 화에서는 대한민국을 누비는 톱배우가 되었다고 표현되며, 실상 가장 성공한 캐럭터로 끝나지만 정작 연애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마지막 회 부분에서 민정에게 ‘괜찮아, 누나. 난 누나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걸.’ 하고 애뜻함을 장식한다.

모든 촬영이 끝이 나고 배우들이든 스태프들이든 수고했다는 마지막 말을 아끼지 않았다. 민후는 배우들에게 연락하자는 말과 더불어 다른 스태프들에게도 다음에 뵙겠다는 말과 휴대폰 번호를 교환하였다.

정말 논스톱 5는 민후에게 뜻깊은 촬영이었다. 첫 CF도 찍게 해준 시트콤이고, 신인상도 거머쥐게 해주며 출발의 기점이 되어준 시트콤이다.

촬영이 끝나자 김택일 PD가 외쳤다.

“자! 사진 한 장 찍읍시다!”

그의 말에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우르르 앞으로 몰려들었다. 마지막 촬영 신은 공항의 한윤하, 이선훈 커플의 키스 신 장면이었고, 공항의 촬영장 가운데로 모든 이들이 몰려들었다.

민후는 자신의 옆에선 민준과 진우와 어깨동무를 다정하게 걸쳤고, 뒤쪽으로는 촬영 감독님이 어깨 위에 손을 얹으셨다.

“하나, 둘, 셋!”

“스마일!”

모두가 카메라를 보면서 빙긋 웃었다. 아쉬움도 많았고, 즐거움도 많았던 논스톱 5의 촬영이 완전히 끝이 났다. 매번 촬영할 때마다 느끼는 민후지만, 끝은 항상 시청자들뿐만이 아니라 배우들도 아쉬웠다.

논스톱 5. 영원히 기억에 남을 강민후의 첫 번째 데뷔작이 완전히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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