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나와 닮은 여인, 한윤하
민후를 지켜보기로 하였던 한 달이라는 시간을 채웠다. 박정수는 함태웅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대표실 앞에 섰다. 그는 옷매무새를 추스르고는 노크를 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인 그다. 함태웅이 앉으라는 제스처를 취하였고 그가 앉자 함태웅도 곧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정수가 그에게 할 이야기는 강민후. 현재 본인이 지켜보고 있는 이에 관한 이야기였다.
비서가 가져온 커피로 입술을 축인 그는 태웅을 보았다. 태웅의 표정은 이미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예상한다는 모습이었다.
태웅도 보았다. 강민후라는 아이를 말이다. 그는 현재 찍어내듯 나오는 신인 배우들과는 달랐다. 독기를 품고 배우가 되겠다는 아이들도 그를 따라가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타고난 천성으로 그렇게 태어났다. 처음 헬스클럽에서 그가 미친 듯이 계속 뛰기만 하는 것을 보았고, 첫날은 의아해했으며 둘째 날은 궁금해졌고, 셋째 날은 다른 이들이나 정수에게 물었다.
정수는 42.195㎞의 캐스팅을 위한 준비라고 밝혔다. 그에 태웅은 웃음밖에 나오지를 않았다. 보통의 저런 연습은 캐스팅 확정이 된 후 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민후에게는 캐스팅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더불어서 오디션을 보게 될 과정마저도 완벽하게 이루겠다는 모습이 엿보였다. 그래도 일단 며칠 안 갈지도 몰라서 지켜봤다.
그러나 그는 지켜보는 내내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유원이 역의 연습을 위해서 연기 지도실에서는 매일 자폐증을 앓는 이처럼 흉내를 내고 있다고 들었다. 트레이너인 박태민의 평도 무척이나 우수했다.
대단한 연기력이고 배우려는 의지가 누구보다 강하며 노력의 농도가 짙다고 태민은 표하였다.
태웅은 민후에게 만족하였다. 만약 한 달 지켜보고 건방진 녀석이거나 혹은 그 겉이 썩어버린 과일이라면 일단 썩어버린 겉을 도려내려고 하였다.
밴과 매니저를 붙여준다고 하여서 활동을 허가하는 것은 실상 아니었다. 모든 것은 소속사의 의지였다. 마음만 먹는다면 현재 민후가 일구어낸 논스톱 5를 제외하고는 그가 하려는 일들을 막을 수 있었다.
물론 그렇게 하면 마찰이 생기기는 하겠지만, 황제라는 소속사에는 그럴 힘이 충분히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썩기는커녕 과일은 탱탱하고 싱싱하였다. 지금 당장 세상에 내놔도 혼자서 무럭무럭 계속 자랄 녀석이었다.
“제가 맡겠습니다, 강민후.”
“그럴 것 같았지- 아아, 매니저 박정수가 탐내는 배우라니.”
태웅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빙긋 웃어 보였다. 정수의 저 열정에 찬 모습은 오랜만에 본다. 2년 전에 크게 한 번 데인 적이 있고 난 뒤로는 그의 열정 어린 모습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안타까워하고 있었는데, 강민후라는 신인 배우가 그를 다시 열정에 타오르게 만들어놓은 것이다.
“나도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야.”
함태웅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말은 그만큼 민후에게 관심이 크다는 것이다. 하물며 황제 소속사를 생각한다면 그들의 지원사격은 대단했다.
일단 소속사에 대선배들이 많았고 비중 있는 이들이 많았다. 만약 민후가 논스톱 5 이후 42.195㎞에 캐스팅되지 못하고 방황을 한다면 소속사에 소속된 유명 배우들의 영화에 끼워 넣기도 가능하였다.
워낙 유명한 배우들이 많은지라 감독들도 그 정도는 감수한다. 감독들은 톱배우들을 좋아한다. 그들과 계약하면 일단 어느 정도의 흥행성을 보장하니 말이다. 그만큼 톱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싶어 한 그와 더불어서 끼워 넣기로 조연으로 넣는 경우가 대부분의 소속사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끼워 넣기는 나쁜 의미가 아니다. 그 배우를 그곳에 조연으로 활동하게 하고 연기력을 입증받게 하여서 키워나간다는 의미였으니 말이다.
박정수와 함태웅은 민후에 대한 이야기를 꽤 오랜 시간 나눴다. 두 사람은 오랜만에 물 만난 고기처럼 그의 앞으로의 성장 방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민후의 매니저가 되기로 결심한 박정수는 달랐다. 그는 누구보다 빨랐고, 누구보다 열심히 했으며 누구보다 앞섰다.
민후가 촬영장에서 촬영을 진행하는 시간 사이에 하루에 2시간 정도 꼬박 그에게 말하고 어딘가를 다녀왔으며 다녀온 후에는 꼭 갖은 정보를 주었다.
매니저가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우스운 이야기다. 그러나 그의 행동이라면 타당했다.
그가 자리를 비운 이유는 자신 사적인 일이 아니었다. 그는 다른 배우들이 촬영장에서 촬영을 임하는 시간마다 그 자리를 지키기만 하며 따분한 시간을 보내는 다른 매니저들과는 달랐다.
방송국을 돌면서 강민후의 매니저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박카스 한 박스를 들고는 명함을 돌렸고 각종 프로그램 관계자, 기자들과 만나서 요즘의 연예계에 추세 등에 묻고 괜찮은 드라마나 혹은 괜찮은 배우들을 찾는 갖은 관계자들을 쉴 새 없이 만났다.
그는 강민후의 이름을 관계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발 벗고 나서 뛰었다. 그중 이미 강민후라는 이의 소문을 들은 이들도 벌써 몇몇 있었다.
이제 겨우 시트콤 하나 출연한 배우치고는 민후는 평판이 좋은 편에 속했다. 그러나 박정수는 예상한다. 2년 안에 그는 관계자들이 데려가지 못해 안달이 날 정도의 소문이 날 것이다.
‘정말 연기에 미친 녀석이다’라고 소문이 날 정도로 소문이 날 터이니 말이다. 박정수 덕분에 민후가 가지게 되는 인터뷰가 부쩍 늘어났으며 그와 더불어서 CF도 2건을 추가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대단한 일이었다. 하물며, 각종 드라마나 영화의 관계자들과 식사를 할 것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다. 민후는 그를 만난 것이 천생연분이지 않은가 싶다.
민후와 그는 비슷한 성향을 지닌 사람이었고, 서로의 노력에 그만큼 따라가고 있었다.
민후는 그가 가져오는 스케줄을 부담 없이 소화해냈고, 정수는 민후의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 때문에 남들보다 한두 시간 일찍 출근하고 더 늦게 퇴근하지만, 그의 그런 행동을 배려하고 그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을 때면 ‘괜찮다, 이게 내 일인데, 뭐.’ 하면서 얼버무리고는 했다.
최고의 조합이 이뤄진 것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정수는 민후의 집으로 그를 데리러 왔다. 그는 오전에는 스케줄이 없었다. 밤쯤 되어서야 논스톱 5의 촬영이 이어질 것이었다. 하물며 오늘 한양대학교의 개교기념일이라 휴강을 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정수가 찾아온 이유는 민후 본인 스스로의 스케줄 때문이었다. 그는 오늘 발달 장애 복지센터에 간다고 하였다. 개인적인 일이었지만 정수는 매니저로서 그를 데리러 온 것이다.
민후가 발달 장애 복지센터에 가는 이유는 자폐증을 앓는 이들을 관찰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이 음식 앞에서는 어떤지, 잘해주는 사람한테는 어떤지, 낯선 사람에게는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지를 조사하기 위함이다.
자신 스스로만 하는 연습은 한계가 있다. 현실감 있는 연기를 위해서는 실제로 그들과 마주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 민후의 생각이었다.
그 생각이 기특하기도 하고 오늘 논스톱 5의 촬영 시간까지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그들에게서 배울 것을 배울 생각의 민후가 정수는 참 대견하다 싶었다.
밴에 오른 민후는 일단 어머니의 가게로 가자고 말하였다. 정수는 내비게이션에 가게 이름을 검색하고는 출발하였다.
가게로 가는 이유는 민후가 발달 장애 복지센터에 간다는 말을 들으신 어머니가 그들이 먹을 간식을 준비하고 싶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현재 가게는 일반적인 카페보다 수익이 높은 편이다. 어머니의 성실한 마인드가 먹힌 것이다. 그리고 민후도 CF를 찍은 것이 있고, 꾸준히 촬영료가 들어오는 것을 어머니의 통장으로 넣고 있었다.
민후의 한 달 용돈은 18만 원이었다. 그가 벌어들이는 돈에 비해 적은 돈이었지만 그는 충분히 만족한다. 하물며 어머니는 여유로운 형편임에도 알뜰하셨다.
다만, 이럴 때는 누구보다 과감하셨다. 그런 어머니가 누구보다 좋은 민후였다. 어머니는 어려운 형편을 꾸려 오셨기 때문에 어려운 삶을 사는 이들을 도우려고 노력하신다.
쉬는 날에는 아파트 주민들과 자원봉사도 자주 가시고 있었고, 매달 몇만 원씩이지만 기부하는 금액도 있으셨다.
이런 어머니를 두고 있다는 것이 민후에게는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어느새 차량이 어머니의 가게 앞으로 도착하였다. 이제 오픈 시간인지라 사람은 안에 없을 것이었다. 어머니는 50여 명이 먹을 간식을 준비한다고 꽤 일찍 나섰었다.
밴에서 내린 민후와 정수가 잠시 간판 밑에 달린 플래카드를 보고는 가만히 그것을 보고 있었다. 민후는 민망한 듯 목을 긁적였고, 정수는 ‘하하…….’ 하면서 웃음을 흘렸다.
하얀색 배경에 검은색 글씨로 써진 플랜카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논스톱 5’의 막동이 강민후는 내 아들! 싸이 랜드 방명록에 글 남기실 시 아메리카노 한 잔이 무료!
그리고 마지막 글귀 옆에는 민후가 웃는 사진이 넙죽 그려져 있었다. 실상 요즘 바빠서 와보지 못했는데, 며칠 사이에 이런 것이 생겼다. 정수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어머니가 너를 많이 자랑스러워하시는구나.”
“그, 그런가 봐요. 하하.”
그는 어색하게 웃었다. 어머니의 깊은 사랑에 그저 감동보다는 먼저 당혹함을 먹은 민후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머니와 직원들이 보였다. 가게 수익이 좋아지고 있는 만큼 세 사람이었던 인원도 어느새 다섯으로 늘어 있었다.
평일에도 꽉 찰 때가 많다고 어머니는 피곤하신 듯하면서도 기분 좋은 미소로 말씀하실 때가 많다.
“우리 사장님 모자는 왜 이렇게 천사여, 천사. 둘 다 아주 그냥 퍼주면서 사네-”
들어오는 민후를 발견한 직원 아주머니가 장난스럽게 웃으시면서 하는 말이다. 어머니는 민후가 온 것을 발견하고는 곧이어서 간식들을 밴에 실어주기 시작했다.
저번 촬영장 때와 마찬가지로 빵과 음료수, 커피 등이 들어 있었다.
“넉넉하게 쌌으니까 민후 너도 먹고. 엄마가 너 먹을 건 특별히 잡곡 빵으로 된 거 넣었어.”
어머니가 재치 있게 말씀하신다. 채식을 하는 아들을 위해서 잡곡 빵이라니 그 사랑이 듬뿍 느껴진다.
민후는 어머니와 일찍 나와서 고생해준 직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는 다시 차에 올랐다.
오늘 민후가 가는 복지센터는 강동구에 위치하여 있는 곳이었다. 아무래도 장애인들 복지센터이기에 번화가 보다는 주택가의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복지센터의 앞에 도착했다. 시설이 꽤 좋았다. 앞으로 장애인들이 운동할 수 있도록 잔디가 깔려 있었고 규모도 꽤 큰 편에 속하였다. 밴을 주차하고 두 사람이 박스 하나씩을 들고는 장애인 복지센터 향했다.
복지센터로 들어가려는데 문 앞으로 앞치마를 두르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젊은 여성이 보였다. 여성은 무척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였으며 키가 172㎝ 정도 되어 보이는 여성이었다.
민후는 그녀가 이 센터의 선생님이라고 생각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민후가 ‘선생님’이라고 말하면서 인사를 하자 막 통화를 끊은 그녀가 의아한 표정으로 살짝 고개를 숙여 답하였다.
“저 선생님 아닌데…….”
그녀는 그러면서 수줍게 웃으면서 말했다. 민후가 아차 했다. 자신과 같은 자원봉사자인가 싶었다. 그녀가 갑자기 민후를 뚫어지게 보았다. 상당히 낯이 익은 얼굴인 것을 알고는 그녀가 ‘아-!’ 하는 소리를 내었다.
“가, 강민후 씨네요?”
“아, 네.”
그녀는 상당히 놀란 기색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사람들처럼 ‘여, 연예인이다, 우와.’ 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한편 박스를 들고 있는 정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여성의 얼굴이 무척 낯이 익었다. 어디서 본 것 같기는 하지만 잘 기억이 나지를 않았다.
분명 확실히 어디서 본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녀와 연이 깊지는 않은 듯 떠오를 듯 말 듯 하였다. 정수나 민후가 들고 있는 박스를 본 여성은 아차 하면서 복지센터의 문을 열어주었다.
민후가 살짝 고개를 숙여 감사의 뜻을 전했다. 센터로 들어가자 퀴퀴한 냄새가 물씬 풍겼다. 센터 내부는 생각보다 넓었다. 안에서 생활하는 이들의 나이는 불문이었다. 어린아이들부터 시작하여서 마흔 살을 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마흔 살의 이들도 실제 정신연령은 6-8세 사이의 지능밖에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어-! 마딨는 냄새닷!”
주위에 있는 이들 중 서른 중반의 나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성이 소꿉장난을 하고 있다가 풍기는 빵의 냄새에 민후 쪽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눈을 큼지막하게 뜨면서 마치 어린아이가 먹을 것을 받기 위해 애교를 피우 듯한 표정이다.
“안녕하세요.”
진짜 센터의 선생님들이 민후와 정수에게 인사를 했다. 여성들도 몇 있었으며 대부분 건장한 체격의 남성들이 주를 이루었다. 아무래도 발달 장애 센터이기 때문에 그들이 만약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면 여성들만의 힘으로는 제재를 가하는 것이 힘이 부칠 것이었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발달 장애 복지센터에는 이렇듯 건실한 체격의 남성들이 꽤 되었다.
“반갑습니다. 요즘 TV에서 자주 나오시는 모습 봤습니다.”
원장이 다가왔다. 민후와 정수는 들고 있던 박스를 건장한 체격의 선생님들에게 넘겨주었다.
그가 악수를 청했고 민후도 공손히 그 손을 잡고는 고개를 숙여 보였다.
“봉사활동 겸, 관찰을 좀 하고 싶으시다고요?”
“예.”
민후는 원장에게는 세세하게 설명해준 것이 있었다. 자신이 어찌어찌하여서 자폐증을 앓는 이들과 만나고 싶은지 말이다. 민후는 분명 목적을 두고 온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목적을 말하지 않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생각하였다. 그리고 원장도 흔쾌히 수락한 상황이었다. 기자들처럼 기사를 쓰기 위해 온 사람도 아니었고 순전히 그들의 생활 패턴에 대해서 알고 싶다고 하니 말이다.
그리고 민후는 쉬는 날이 되면 앞으로도 종종 이곳에 와서 장애인들과 소통을 할 예정이었다.
“아, 인사들은 하셨나요? 저희 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해주시는 ‘천사’ 한윤하 양 되십니다.”
때마침 앞에서 만났던 여성이 들어왔다. 원장의 얼굴에 웃음이 감돌았는데, 그는 자원봉사자인 그녀를 ‘천사’라고 호칭하였다. 그녀는 민망한 듯 웃었다.
“원장님, 천사라뇨.”
“어허허, 천사지, 천사. 매일같이 와서 이렇게 젊은 친구가 자원봉사라니, 얼굴도 천사같이 예쁘니 그 이름이 전혀 아깝지가 않지!”
원장은 그에 기특하다는 표정이다. 오늘뿐만이 아니라 앞의 아름답게 생긴 여성은 수시로 이 센터로 방문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정수의 경우 ‘한윤하’라는 이름을 듣고는 잠시 미간이 좁혀졌다.
이름을 듣자 더욱더 그녀에 대한 이미지가 생동성 있게 흘러나왔다. 그리고 곧 아차 싶었다.
누군가 하였더니 작년에 미스 빙그레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여성이었으며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현재 신인 여배우로서 활동하고 있으나 아직은 미미한 활동을 보이는 것으로 안다. 현재 나이는 민후와 동갑일 것이다.
“참, 우리 윤하 양도 연기 지망생이에요.”
“연기 지망생이요?”
정수가 눈치챈 것과는 다르게 민후는 아직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그녀를 자세히 살폈다. 그러고는 ‘아-!’ 하였다. 누군가 하였더니 민후가 아는 그녀는 논스톱 5에서 한솥밥을 먹게 될 친구였다.
그녀는 논스톱 5의 걸이라고 불린다. ‘걸’이라는 호칭은 시즌마다 논스톱에 등장한 새로 캐스팅된 여성들이 시청률을 올려줘서 붙는 호칭이었다. 한예지가 4의 걸인 것과 같은 이유였다.
그녀는 청순한 미모에 비율 좋은 몸매로 큰 이슈를 사게 되는 여성이었으며 연기력도 괜찮았다. 현재 김용재와 진후, 김지현이 하차를 가하고 가수 출신의 구민정과 러브 라인이 형성된 짠돌이 캐릭터의 이정민이 투입되었으며, 김용재 대신은 개그맨 출신의 뚱뚱한 체격의 정영돈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영돈의 동생 역할로서는 조정인이라는 개그맨 출신의 여성도 투입된다. 그녀는 정영돈과 남매 사이로 출연하고 정영돈은 ‘서울구겨어엉!’이라는 것으로 유행어를 내면서 시청자들의 좋은 반응을 받아내고 ‘조정인’의 경우 김민준과 러브라인을 형성하는데, 뚱뚱한 체격의 조정인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민준이 그녀를 좋아하고 두 사람 사이에 형성되는 러브 라인에 평소의 러브 라인과는 다른 신선함이 커서 시청자들이 주목하고 있었다.
인정의 경우도 현재 ‘고- 기!’라는 유행어로 한창 뜨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의 투입되는 멤버가 바로 한윤하와 더불어서 이선훈이라는 이였다.
이선훈은 ‘에픽’이라는 가수 그룹의 랩과 보컬을 담당하는 인물로 스탠포드 대학 출신의 똑똑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는 논스톱 5에서 수많은 외국어와 랩이면 랩 춤이면 춤, 모든 것에 능통하나 몸이 비실비실하다는 것을 캐릭터를 잡아 나오는데 유행어로 ‘실례지만 실례가 안 된다면 실례 좀 해도 될까요?’ 등을 들고나와 시청자들의 웃음을 사게 되는 캐릭터였다.
그리고 한윤하. 그녀의 경우 첫 캐스팅되고 출연 당시 청순한 미모로 주목을 받았으며 그 외모 뒤에 숨겨진 자신이 당한 것은 꼭 갚아주고 은혜를 입으면 갚고 마는 그런 캐릭터를 가지고 나오게 되는데, 그녀도 상당히 논스톱 5를 통해서 인지도를 높이며 거의 비슷한 시기에 투입된 이선훈과 러브 라인을 이어가게 되는 것으로 안다.
한윤하는 평판이 무척 좋은 편에 속하는 배우였으며 정수의 경우 매니저라는 직업 때문에 신인 배우들에게 관심이 많았고, 때문에 그녀를 한번 알아봤는데 이미 이름 있는 소속사에서 낚아채 간 상황이었다.
“사실 저도 다음 주에 논스톱 5 오디션 보러 가요.”
“아, 그래요?”
민후는 그녀의 캐스팅은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정수의 경우는 그 점까지는 모르기 때문에 꽤 관심 가는 표정이다.
그녀는 빙긋 웃으면서 귀 뒤로 머리카락을 넘겼다. 그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다. 그녀는 뭐랄까, 다른 여성 배우들과는 다른 느낌을 풍겼는데, 따뜻한 느낌이었다.
곧 선생님들이 시간을 확인하더니 점심을 준비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녀도 살짝 고개를 그들에게 숙여 보이고는 그들의 뒤를 빠르게 뒤따랐다.
민후와 정수는 이내 양팔의 옷소매와 바짓단을 걷어 올렸다. 그리고 그들은 곧바로 청소에 들어갔다. 민후는 청소를 하면서도 꼼꼼히 자폐증을 앓는 대상들을 꼼꼼히 살폈으며 그중 20대의 남성들은 더욱 유심히 확인하였다.
그들은 정말 어린아이 같았다. 입 옆으로는 침이 나오고 있었고, 눈은 이리저리 두지 못하며 낯선 그들을 조금 두려워하는 눈치였다.
쾌쾌한 냄새는 아무래도 대소변 냄새인 것 같았다. 그들 중에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고 함께 청소를 하는 선생님께서 설명을 해주셨다.
그 때문에 모든 문을 활짝 열고 청소를 했다, 한껏 청소를 하고 나니 맛있는 냄새가 솔솔 들어오기 시작했다. 민후와 정수가 가져온 간식은 점심을 먹은 후 3시에 따로 자폐증을 앓는 이들과 선생님들의 놀이시간이 있다고 한다.
그때 놀이를 하면서 먹을 예정이라고 하였다.
점심이 차려지고 플라스틱 식판에 음식이 담아졌다. 그들이 생활하는 곳의 옆쪽으로 이동하자 꽤 넓은 공간이 나왔는데, 긴 식탁이 세 줄로 나열되어 있었다.
그곳에 자폐증을 앓는 이들이 앉아서 밥을 먹기 시작했고, 민후와 정수의 것도 있었다. 민후는 음식을 먹으면서 계속 그들을 살피고 있었다. 흘리는 이들도 많았다. 특히나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집는 것이 일반적인 이들과는 달랐다.
그들은 집는다는 개념보다는 잡는다는 개념이었다. 주먹 쥔 손으로 숟가락과 젓가락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입에 계속 묻혀가면서 먹고 있었으며 계속 주위의 선생님들이 그들에게 신경을 쓰고 있었다.
민후의 맞은편에는 10대 소년이 있었는데, 그도 마찬가지였다. 얼굴 가득 밥알을 묻히면서 밥을 먹고 있었는데, 그는 젓가락으로 계속 콩나물무침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민후가 콩나물무침을 자신의 것에서 덜어서 그의 가득 퍼진 쌀밥 위에 올려줬다.
그것을 보고는 그는 경계 어린 표정을 짓더니 입안에 넣고 우물우물 씹고는 꿀꺽 삼키곤 밝게 웃는다. 민후도 작은 웃음을 지어줬다.
“그러면 못 써요. 반찬 투정하지 말고 골고루 먹어야죠.”
주위를 둘러보다 저절로 어느새 한윤하에게 시선이 가 있는 민후였다. 그녀는 하던 식사를 멈추고는 자리 한편을 잡고는 뚱뚱한 체격의 서른 초로 보이는 남성의 옆에 앉아서 밥을 떠먹여 주고 있었다.
“옳지, 잘 먹네.”
싫다는 듯 고개를 도리도리 젓던 남성이 입안 가득 야채와 밥을 넣고는 울상을 지으며 우물거리자 그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빙긋 웃어 보였다. 민후는 그 모습에 ‘아름답다’라고 생각했다.
그의 아름다움의 기준은 일반적인 사람과는 달랐다.
일반적인 남성은 그저 얼굴 예쁘고, 몸매 좋으면 ‘아름답다’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민후의 경우 얼굴도 예쁘면 좋겠지만 내면적 아름다움을 많이 보곤 했다.
연륜 때문인지는 모르나 겉에 홀리는 이들과는 조금 다르게 내면적 아름다움이 진짜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녀가 신인 배우라는 것을 가정한다면 나중에 연예인으로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할 때쯤에 그녀의 선행이 밝혀질 것을 대비한 비즈니스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민후가 본 그녀의 웃음은 진짜였다.
식사를 끝내고 먹은 자리를 치우기 시작했다. 설거지할 것이 많았고, 치울 것도 많았다. 민후와 정수도 거들었다. 식사를 끝내고 다시 청소를 했던 곳으로 돌아오니 어느새 또다시 어질러져 있다.
민후와 정수가 순간 서로를 마주 보았다. 두 사람은 아득하다는 표정이다. 그러나 그들을 탓하면 무엇하겠는가. 두 사람이 다시금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하고 어느새 그러다 보니 3시가 훌쩍 되어버렸다.
놀이시간에는 그들에게 동요를 불러주거나 숫자 맞추기 게임, 빙고 게임 등을 하면서 주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그리고 특별한 날에는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틀어주기도 한단다.
선생님들은 놀이를 하기 전 그제야 그들에게 간식을 풀어줬다. 생과일주스의 경우 속 안의 얼음은 녹았지만, 냉장고에 보관해둬서 먹을 만할 것이고, 커피도 아이스 커피 종류였기에 괜찮을 듯하다.
그리고 어머니가 일부러 자폐증을 앓는 이들이라기에 커피는 안 좋아할 것 같아 음료와 생과일주스 위주로 담았다.
조금 있는 커피는 대부분 선생님들이 마시게 될 것 같았다.
선생님들은 각자 맡은 것이 있는 것인지 여성 선생님들이 나와서 율동을 불러주고 있었고, 민후나 정수는 간식을 흘리는 자폐증을 앓는 이들을 챙기기에 바빴다.
“윤하 선댕님, 윤하 선댕니이임.”
자폐증을 앓는 이들도 예쁘다는 개념은 있었고, 윤하는 인기가 많은 편이다. 다른 선생님이 진행한 빙고 게임이 끝나자 서른 초반의 아까 그녀가 밥을 먹여줬던 뚱뚱한 체격의 남성이 떼를 쓰듯 한다.
그녀가 난처한 표정을 짓다가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앞으로 나선다. 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곧 양손을 쫙 펼쳐 삼각형 모양으로 만들어 보인다.
“곰 세 마리가 한집에 있어, 아빠 곰, 엄마 곰, 애기 곰. 아빠 곰은 뚱뚱해-!”
“떵떵해!”
“뜽뜽! 흐흐!”
“엄마 곰은 날씬해!”
“윤하 서생님처덤?”
날씬하다는 부분에서 음흉한 표정의 남성이 한 말이다. 그녀가 잠시 웃음이 터져서 멈추고는 다시 부른다.
“애기 곰은 너무 귀여워. 으쓰으쓰 자란다!”
“자라다!”
“자난다!”
자폐증을 앓는 이들이 밝게 웃으면서 몸을 이리저리 베베 꼰다. 그녀는 그 모습을 보고는 밝게 웃으며 다시 한번 부르고는 자리로 돌아왔다. 민후는 그 모습을 자신도 모르게 웃으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을 알아차렸을 때 그는 재빨리 표정을 수습했다. 웃는 것은 좋으나 너무 넋이 나가 있었나 보다. 강민후라는 삶을 살게 되면서 여성에게 호감이 가는 적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았다.
물론 그녀에 대해서 민후는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그녀의 이런 모습은 수많은 여성의 대시를 거부한 그에게도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실제로 최강호였던 시절. 그는 안타까운 일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는 서른 후반의 나이. 늦은 나이에 결혼하였으며 상대방은 일반인이었다. 그러나 일반인이었지만 집안 내력이 좋은 편에 속하였으며 그녀는 디자인 방면에서 유명한 서른 초반의 여성이었다.
민후는 실제로 돈, 혹은 재력을 보고 결혼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었다. 그녀의 내면적 아름다움에 취했다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성격도 착했고 예뻤다. 마음 씀씀이가 남들보다 컸으며 떡 하나가 있으면 그 떡을 남에게 줄 줄 아는 여성이었다.
그리고 민후도 그녀를 사랑했었다. 하지만 최강호는 그녀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그는 분명 좋은 사람이었다. 누가 봐도 그는 예의 있고 신사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아내에게만큼은 그러지를 못했던 것 같다. 민후의 성격 특성상 자신이 하려 한 것을 이루지 못하면 몇 날 며칠 걸려서 해내고는 만다.
또 뭔가를 얻으려 할 때가 아닌 때는 바쁜 촬영 때문에 밤샘 촬영을 하는 날도 무척 많았다. 아내에게는 그것이 커다란 외로움으로 다가왔었고 자신에 대한 무관심으로 다가왔다.
민후는 전반적으로 자신의 잘못이 컸음을 현재도 그 당시에도 인정했다. 때문에 한 번은 시간적 여유를 두고 그녀에게 혼신의 힘을 쏟을까 했다.
그러나 천성적인 것인지 그는 그것이 잘되지 않았다. 결국 결혼 2년 만에 외로움을 느끼던 그녀는 이혼을 요구하였고, 민후는 몇 번을 붙잡았으나 보내 주어야 했다.
두 사람은 아이가 있지도 않은 상황이었고, 그녀는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했다. 행복하게 살게 하기 위해 결국 보내 주어야만 하였다.
그 후로 일에만 전념하였으며 여성을 보는 눈도 더욱 까탈스러워졌다. 그리고 한 가지, 자신이 또 다른 여성을 만나게 되면 그때만큼은 천성을 벗어나 그녀를 위해 노력해 보이리라 생각했다.
자신의 결혼에 대한 희생자는 자신이 아닌, 자신의 아내였기 때문이었다.
최강호일 때에도 그 일이 있은 후 관심이 가는 여성은 없었다. 그러나 강민후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호감이 가는 여성이 오늘 생긴 것이다.
그러나 그 호감이 앞으로 어찌 될지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사랑으로 변할지, 그저 좋은 인상으로 남을지 말이다. 그리고 혹여, 사랑으로 변한다고 할지라도 그는 많은 고민과 내적 갈등을 보이게 될 것이다.
아직 그는 신인이었다. 신인 배우에게 연인은 좋지 않은 것이 당연하였다. 그리고 그녀도 연인이 된다는 것을 가정하였을 때 좋지 않았다.
어제 있던 스케줄이 다음 날 스캔들이 터지면 사라지기도 하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연예인들의 연애는 힘들었다. 어쩌면 연예인은 가장 외로운 직업일지도 몰랐다.
잘 살펴보면 알겠지만, 대부분의 연예인은 서른 중반쯤에 결혼한다. 배우로서는 그쯤의 나이가 되면 그 겉을 사랑하는 팬들이 아닌 연기와 인간성을 사랑하는 팬들이 많아진다.
그러나 그 전까지는 대부분 겉모습과 멋지고 예쁜 모습에 현혹되어 좋아하기 때문에 그 존재가 유부남, 유부녀가 되면 확 하니 팬들이 떨어져 나가는 일들이 허다한 것이다.
그 나이 때가 되기 전에는 웬만해선 대부분 사랑이라는 감정조차도 숨겨야 하는 혹독한 직업인 것이다. 그만큼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외롭고 고달픈 직업이다. 부자들이 실제로는 행복하지 못한 것처럼 연예인도 실제로 많은 돈과 인기를 가졌다고 한들 실질적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는 이들이 수두룩하다고 할 수 있었다.
놀이시간이 끝이 나고 민후는 다른 선생님께 다른 해야 할 일을 물었다. 그들은 아무리 그래도 현재 시트콤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민후에게 뭔가를 시키기에 꺼림칙하였다. 그들도 일반인이었고 연예인에 대한 편견이 컸기 때문이다.
그나마 윤하는 그들에게 큰 거리감을 두지 않았다. 실제 그녀는 현재 미스 빙그레 선발대회 우승과 뮤직비디오 촬영을 제외하고는 딱히 알려진 것이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저 이제 이불 빨래하러 가는데 같이 가실래요?”
예상외로 대답을 한 이는 윤하였다. 그녀는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른 이들이 어물쩍거리자 그것을 이해해냈다.
그녀의 말에 민후와 정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뒤쪽으로 나오자 물이 나오는 짧은 호스와 그 앞으로 고무대야가 크게 두 개가 있었고, 돌로 만들어진 빨래판도 보였다. 그리고 때를 빼기 위한 나무 방망이와 그 뒤쪽으로는 이불이나 속옷 옷 등을 걸 수 있는 빨래 건조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속옷을 빨겠다고 하면서 옷소매를 걷어 올리고 목욕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크기의 의자에 앉아서 물을 받은 고무대야에 세제를 풀었다.
속옷은 더러웠다. 자폐증을 앓는 이들의 소변 대변이 누렇게 묻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익숙하게 그것을 두들기고 짜고 털고를 반복하였다. 그 모습에 더럽다는 느낌이 아니라 오히려 ‘멋져’ 보인다.
그리고 민후와 정수에게 맡겨진 것은 이불들이었다. 그 역시도 배변물이 묻어나 있었다. 그러나 정수도 민후도 그것은 크게 개의치 않아 했다.
그들도 고무대야에 물을 받고는 세제를 풀었다. 손으로 주물럭거리기에는 힘들 것이니 두 사람이 함께 올라가 밟기 시작했다.
“어어. 형, 좀 천천히 움직이세요. 균형이 안 맞잖아요.”
누가 움직이면 푹 하니 다른 이가 서 있는 곳이 솟고 가라앉고를 반복했다. 마치 놀이기구를 타는 듯한 느낌이다. 오늘은 그나마 생각보다 날이 풀린 상황이었다.
그러나 차가운 물은 변함이 없었고, 물에서 발을 떼어내기 위해 계속해서 발을 움직였다.
그 모습이 재밌던 것인지 그녀는 입을 막고 웃어버렸다. 빨래를 끝내고 깨끗하게 짠 후 털어내어 널었다. 한 시간이 꼬박하고도 지났다. 그는 시간을 확인했다. 5시 15분이었다. 차를 타고 가면 정확한 촬영 시간에 도착할 듯싶었다.
늦는 것은 아니었지만 평소보다 늦게 가는 편이었다. 그러나 보람 있는 일을 하고 가는 것이니 괜찮았다.
모두 널고 나서 민후와 정수는 서둘러 선생님들과 원장님, 자폐증을 앓는 이들에게 인사를 해 보였다. 그중에는 윤하도 있었다.
“윤하 씨는 안 가세요?”
“저는 저녁 먹고 가려고요. 다음에 또 봐요.”
그의 물음에 그녀는 빙긋 웃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민후도 살짝 숙여 보였다. 다음에 꼭 보게 될 두 사람이었고 그것을 잘 아는지라 민후는 그곳을 빠져나왔다.
밴에 오르자 피곤함이 몰려왔다. 자폐증을 앓는 이들과의 하루가 이렇게 피곤할 줄은 몰랐다. 특히나 민후의 경우 그나마 신체적 영단 덕에 일반적인 사람들보단 덜 피곤하다 하지만 정수의 경우는 정말 피곤했다.
그러나 늦을지도 모른다는 급박감에 그는 정신을 번쩍 차리고는 차량을 출발시켰다.
* * *
새로운 멤버들의 투입으로 논스톱 5는 더욱 높은 시청률을 확보하고 있었다. 일단 이정민, 구민정, 그리고 강민후.
이 세 사람의 삼각관계 구도. 구민정과 이정민은 사랑한다. 그러나 처음 이정민이 그녀와 사귀게 된 계기는 명품 시계에 있어서였다. 결국, 쫌생이 캐릭터인 그는 돈을 목적으로 순진한 민정과 만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차츰 지날수록 그녀의 순수한 모습에 이정민이 더욱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강민후. 엉뚱하고 순진하며 귀여운 구민정이라는 누나를 처음에는 바보 같다고 여긴다. 그러나 시간이 차츰 지날수록 그녀의 그러한 면모를 점차 사랑하게 되고 그 후로는 이정민에게 이용을 당하는 그녀가 불쌍하게 느껴진다.
그 때문에 이정민과 강민후가 대치하는 장면도 몇 번 찾아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개그맨 출신 정영돈도 깔끔한 척 더러운 모습을 연출하는 것으로 웃음을 주며 시청률을 올리는 데 주력하고 있었으며 김민준은 특이한 보헤미안 캐릭터를 너무나도 잘 소화하여 현재 논스톱 5에서는 가장 뚜렷한 캐릭터로 자리를 잡지 않았나 싶었다.
배우들에게도 여성 캐릭터 한 사람을 더욱 영입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이미 전파된 상황이었고, 민후는 진즉에 그 상대방이 누가 될지 알고 있었다.
얼마 전에 만났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가 첫 출연 하는 화를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촬영장 내에서의 그녀의 모습은 어떠할지 말이다.
그리고 오늘이 한윤하, 그녀가 처음 촬영장에 촬영을 위해 오는 날이었다. 다른 배우들도 그녀에게 꽤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일단 논스톱 5의 간판 미녀인 구민정과 홍수민이 경계를 하는 모습이다.
논스톱 5는 새로운 멤버를 영입할 때마다 대본 리딩의 자리를 일부러 마련하였다. 호흡을 한 번 맞춰보라는 의미였다.
대본 리딩이 긴 시간이 걸리는 것은 아니었으며 그 사람의 장단점을 찾기 위함이었고 캐스팅된 이의 소개도 들어보기 위함이었다.
대본 리딩 장소로 당연히 민후는 일찍 왔다. 담당 PD인 택일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그가 오자마자 탁! 하면서 테이블을 치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는 씩씩거리면서 말했다.
“벌써 왔어!? 아니, 대체 왜 이렇게 일찍 오는 거야!? 응!? 그럼 일찍 왔으니 담배 한 대 피우러 가야지, 민후야.”
그러나 마지막 부분은 장난을 가득 담아 말했다. 담당 PD인 김택일과도 이젠 각별한 사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와 함께 담배를 피우러 가기 위해 흡연장 쪽으로 향했다. 흡연장은 각 층의 베란다 형식의 장소에 흡연을 할 수 있게 마련되어 있었다.
“참, 오늘 새로 캐스팅한 애 되게 괜찮다. 성격도 싹싹하고 예쁘고.”
담당 PD는 한윤하의 이야기를 꺼냈다. 막 엘리베이터를 지나칠 때 문이 열리면서 크고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PD님!”
“어? 어어, 어. 유, 윤하 씨 왔어? 일찍 왔네.”
그녀의 이야기를 하려다가 대뜸 옆에서 등장하자 그는 상당히 당혹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인사를 한 그녀는 이내 그의 옆에 선 익숙한 얼굴의 남자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인 뒤 버릇인 것인지 귀 뒤로 머리카락을 넘겼다.
“이렇게 또 뵙네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응? 두, 둘이 아는 사이야?”
민후는 윤하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말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으며 그녀가 논스톱 5에 캐스팅 확정될 것을 알고 있기도 하였다.
담당 PD 택일은 의아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민후가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전에 한 번 발달 장애 보호센터 갔다가 본 적이 있어요.”
“그랬어?”
“네, 네! 저, 저는 일단 들어가 있겠습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자 그녀는 어색했던 것인지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택일이 어디 쪽으로 가야 하는지 손으로 알려 주고는 다시 흡연장으로 이동했다.
그는 어째서 보호센터에 갔는지부터 그곳에서 만났다, 까지 이야기해 주었다. 택일이 감탄을 하였다.
“크- 싹싹하더라니, 그랬구나. 의외네. 그런데 민후, 너 그거 아니?”
택일은 작은 감탄을 흘리더니 담배 한 모금을 빨고는 뱉어냈다. 민후는 고개를 갸웃했다.
“윤하 양 처음 봤을 때 너랑 되게 느낌이 비슷하다고 생각한 거?”
택일은 자신이 그녀를 오디션장에서 처음 들어왔을 당시 느꼈던 점을 말하였다. 그는 그녀가 들어오고 민후와 느낌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특히나 두 사람의 눈은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절로 자신도 모르게 민후를 연상시켰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녀도 민후만큼은 아니었지만, 상당히 많은 것을 할 줄 알았었고 고등학교 재학 시절 성적도 좋은 편에 속했다.
하물며 미스 빙그레 선발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만큼 웃음은 무척 매력적이었다. 그녀의 웃음에는 청순함, 산뜻함, 부드러움이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웃음을 짓게 만든다고 할까. 자신의 웃음으로 남조차도 웃을 수 있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미스 빙그레 선발대회 우승자인가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말이다.
“그래요?”
민후는 예상외의 이야기였다. 실상 자신이 자신과 누군가 닮았는지는 잘 알아채지 못한다. 외모라면 모를까. 그러나 주변 인물들은 행동이 비슷한 이들과 말투가 비슷한 이들을 구분을 잘 해내는 편이었다.
담배를 모두 피우고 안으로 들어갔다. 민후와 택일이 각각 자리에 앉았고, 택일은 그녀를 보면서 빙긋 웃었다.
“연습은 많이 했나?”
“네!”
그녀는 밝고 활기차게 말한다. 이 모습도 민후와 닮았다. 노력이 있어야 자신감도 붙는 것이었고, 처음 민후와 대본 리딩을 할 당시에도 민후도 이처럼 자신감이 컸다.
그리고 더욱 우스운 것은 그녀가 갑자기 발밑에 있던 무언가를 꼼지락거리면서 꺼내었다. 그것을 본 택일은 ‘헙’ 하는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돌려 큭큭 거리며 웃을 수밖에 없었고, 민후도 헛바람을 뱉으면서 웃었다.
“피로 회복에 박카스가 되게 좋다고 하네요.”
그녀가 내미는 것은 다름 아닌 박카스였다. 확실히 이리 보니 닮은 것 같긴 하다. 민후는 조금 당황했다.
마치 자신이 취했던 모습을 리플레이해서 보는 느낌 같았다. 그녀는 손수 자신이 따서 민후와 택일에게 건네었다.
쿡쿡거리는 두 사람을 그녀는 의아한 모습으로 보았다.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그녀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며 얼굴의 곳곳을 만져보았다. 한참을 웃던 택일이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야, 박카스를 보니 내가 아는 누군가가 생각나서 말이지. 기분 나빠하진 말아줘, 그 친구 생각보다 되게 멋진 친구거든.”
윤하가 자신들이 그녀를 비웃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에 그는 빙긋 웃으면서 한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배우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들어오는 배우들과 작가들은 윤하가 주는 박카스를 받고는 한 번씩 민후를 돌아보았다. 그들도 뭔가 상황이 본 것 같은 상황이라는 모습이다.
배우들이 모두 모이고 대본 리딩이 시작되었다. 현재 한윤하와 같은 시기에 투입되는 이선훈은 이미 2주 전부터 촬영에 가담한 상황이었다.
작가들은 이선훈과 한윤하. 두 사람의 러브 라인을 만들어 진행할 예정이었으며 캐릭터도 이미 만들어 놓은 상황이었다.
윤하는 신인이지만 대본 리딩에 수준급의 실력을 선보였다. 김택일이 가장 만족스러운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고, 다른 배우들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윤하는 어쩌면 현재 이 논스톱 5 내에서 가장 신인일지도 몰랐다. 물론 연기로는 이선훈이나, 이정민, 정영돈, 조정인의 경우도 첫 출발이었지만 그래도 꽤 인지도가 있던 인물들이다.
그러나 윤하의 경우 미스 빙그레 선발대회 우승과 뮤직비디오 촬영밖에는 아직 이름을 알린 것이 없었고, 하물며 미스 빙그레 선발대회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도 천지였다. 그랬기에 거의 무명과 같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배우들은 그녀를 무시하거나 하는 경향은 보이지 못하였다. 그들은 강민후를 보고는 뼈저리게 깨달았다.
자신들이 그리 행동한 것이 곧 자만이었고, 신인이라 할지라도 숨은 잠재력은 자신들보다 뛰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윤하는 괜찮은 실력을 보여줬기에 배우들은 그녀로 인한 피해보다는 혹 자신보다 비중이 커질까 하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대본 리딩이 끝이 나고 김택일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기지개를 쭉 켰다.
“으으으-! 오늘 수고들 했어.”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했어요.”
배우들이 택일이나 작가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후도 자리에서 일어나 시간을 확인하였다. 인터뷰가 있었다.
다른 배우들이 밖으로 나서면서 윤하에게 큰 관심을 보이면서 몰려들었다. 예상했던 바였다. 그들은 엘리베이터에 오르면서도 그녀에게 큰 관심을 보였는데,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와 또박또박한 말솜씨로 답변을 해주고 있었다.
성격도 쾌활한 편이여서 다른 이들과도 어울리는 데에는 크게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주차장으로 가면서 윤하가 슬쩍 민후의 옆으로 다가왔다.
“민후 씨.”
“네?”
슬쩍 다가와 어색하게 웃는 그녀를 보았다. 어색한 미소가 귀엽게 느껴졌다.
“그때 물어보니 원장님께서 몇 번 더 오실 거라고 하던데…….”
“아, 네.”
민후는 빙긋 웃었다. 하루 지켜본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였다. 시간이 나게 되면 그때마다 틈틈이 갈 계획이었다.
“언제 가시나요?”
“음…… 아무래도 제가 딱히 정해놓은 날은 없어요. 그나마 간다면 주말쯤에 갈 것 같아요.”
“그 말은 쉬는 날에 주로 가신다는 거네요?”
민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표정이 밝아졌다. 두 사람이 같은 촬영을 임하고 있었으며 인터뷰나, 아주 간혹 들어오는 CF가 아니라면 스케줄은 거의 같았다.
그리고 윤하의 경우도 평일에는 바쁘게 논스톱 5의 촬영을 해야 할 것 같았고 앞으로는 주말에 자원봉사를 가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센터에 단체를 통해 지원해서 간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혼자 움직이고 있었다. 한 번은 단체에 지원해서 간 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혼자 가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얼마나 남자들이 치근대던지, 봉사를 하러 온 건지, 놀러 온 건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그녀 때문에 자원봉사를 지원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사람도 있었기에 그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서 자원봉사를 하러 다니는 것이다.
그러나 같이 일하는 사람과 함께 간다면 생각보다 괜찮을 것 같았고, 그녀도 강민후라는 사람에게 호감이 생겼다. 그녀가 매니저에게 센터에서 있었던 일들을 말해주자 강민후라는 배우의 평판이 지금 상당히 좋다고 말해주었다.
상승세를 한참 타고 있고 예의 바른 청년이라고 말이다. 확실히 윤하가 센터에서 보았던 그의 모습도 그러했다. 그 때문인지 호감이 갔고, 간다면 되도록 함께 센터에 방문하고 싶었다.
그리고 물론 그가 싫다고 해도 그녀는 혼자서라도 계속 방문할 예정이다.
“그럼 시간 맞을 때는 같이 가면 되겠네요, 저도 주말에 가니까.”
그녀는 마지막 부분에서 조금 민망했던 듯 조금 흐리며 말했다. 민후는 좋은 생각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가 안도의 미소를 짓는다.
“그럼 들어가세요.”
“예, 들어가요.”
민후는 밴에 올라 시트에 등을 기대었다. 운전석으로 오른 정수가 그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딱 캐스팅됐네, 그래. 인연인가보다 인연.”
“인연은요, 우연이죠.”
“우연이 인연 되는 거야, 자식아.”
정수의 장난스러운 말에 민후는 피식하면서 답했다. 그가 구시렁거리면서 말하고는 차를 출발시켰다. ‘인연이라……’라고 그는 들리지 않게 중얼거리더니 곧 자신의 가방을 꺼내어 책을 펼쳐서 독서를 시작하였다.
한윤하라는 캐릭터가 논스톱 5에 무난한 정착을 이루어내었다. 그녀는 아름다운 미모와 덧붙여서 웃는 모습이 무척 매력이 있어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았으며 그와 더불어서 복수심 강하기도 하며, 은혜를 입으면 그 은혜를 꼭 갚으리라 하고 수첩에 적는 모습에 많은 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청순함과 긴 생머리 흔히 말하는 남자들의 로망인 외모를 지니고 있어서 그 모습에 큰 한 몫을 더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와 더불어서 그녀와 민후는 개별적으로 지체 장애인 센터에서도 만남을 가졌다. 그리고 그녀가 만약 스케줄이 있거나 다른 일이 있으면 민후가 혼자 가기도 하고, 그녀가 혼자 갈 때도 있었다.
두 사람은 순전히 그 목적을 봉사나 혹은 인터뷰로 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민후와 그녀가 만나게 될수록 아무래도 촬영이 아닌 다른 일로 만나는 것인지라 두 사람은 꽤 빠르게 친해졌다.
나이도 같았기 때문에 친해지는 데에는 크게 무리가 없었으며 전화번호도 교환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민후는 크게 흑심을 드러내거나 하진 않았으며 자신이 마음이 가도 드러낼 일은 없을 것이었다.
아무리 관심이 간다 한들 그는 현재는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해야 했기 때문이었고, 그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이 함께 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지내던 도중 일이 하나 터졌다. 인터넷에 게시된 사진이 한 장 있었는데, 두 사람이 마주 보면서 웃는 사진이었다.
민후나 윤하는 봉사활동을 하는 중 보호자 중 누군가 찍고 블로그에 올림으로써 이것이 열애설로 붉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기자들은 그에 당연히 벌떼 같이 달려들 수밖에 없었다. 신인 배우들이 연애질이라니, 그들에게는 딱 좋은 먹잇감이었다.
-논스톱 5의 신인 배우로서 인기 끌어가고 있는 강민후, 한윤하 열애설에 휩싸여…….
(중계일보 유가희 기자)
많은 시청자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논스톱 5. 논스톱 5는 올해 3월부터 시청자의 우려의 목소리와 기대를 안고 첫 출발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우려와는 다르게 신인 배우들의 노련한 연기력으로 주목을 받으며 상당한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나갔다.
그와 더불어서 시트콤 특성상 하차와 캐스팅이 수시로 치러졌고 얼마 전 신인 여배우 한윤하가 캐스팅되어 등장을 하게 되었다. 한윤하는 극 중 청순한 외모와 순진한 여대생으로 나온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뭔가를 당하면 복수를 하려는 모습, 혹은 은혜를 입으면 갚으려는 모습을 보여 새로운 캐릭터를 선보여 관심을 끌게 되었으며 무난한 정착을 하였다.
그러던 중, 현재 논스톱 5의 주목받고 있는 신인 배우 강민후와 열애설이 불거지고 있는 실정이다.
얼마 전 한 블로그에 두 사람이 함께 만나서 웃는 장면이 게재되면서 많은 이들이 열애설을 주장하고 있는 중이다.
한편 강민후는 이번 연도 논스톱 5로 첫 데뷔를 한 신인 배우로서…… (중략).
그러나 자신들을 먹잇감으로 삼은 기자들은 오히려 그들을 배부르게 해주는 행위를 하는 것과 같았다. 민후가 소속된 소속사는 황제였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루머를 겪었던 배우들도 수도 없이 많았으며 거짓인 경우가 많았고, 이것들을 반대로 이용해 보고 성공한 적도 많았다.
두 사람은 정말 사심 없이 봉사활동을 위해 만났던 것이다. 그리고 실상 알아주기를 바라였던 것도 아니었다. 그 때문에 자신들이 열애설이 아니라고 밝히라면 밝힐 것은 너무나도 많았다.
일단 기사가 나자마자 센터로 기자들 몇몇이 간 것 같았는데 원장은 두 사람은 순수하게 봉사활동에 임하는 사람들이라고 인터뷰하였으며 다른 선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서 기자들은 ‘열애설 의혹’에 대해서 물으려 하였으나 되레 그들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고 두 사람이 서로에게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고 표하였다.
기자들은 그들에게 얻을 목적을 잃은 셈과도 같았고, 때문에 아예 다른 쪽으로 주제를 바꿔버렸다.
열애설은 단순 추측으로 밝혀지고 있고 두 사람은 순수한 마음으로 봉사활동에 임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양측의 소속사가 공식적으로 정확하게 밝혔다. 열애설이 절대 아닌 것을 밝혔으며 더불어서 바쁜 생활을 하는 두 연예인이 순수한 마음으로 임하는 봉사활동을 ‘기사로서 비하, 추측’ 하는 이들에게는 가차 없이 그 법적인 책임을 묻겠노라고 표하였다.
때문에 기자들은 더 이상 손댈 수가 없는 실정이다. 두 사람이 연애한다는 정확한 증거 자료도 없었고, 두 사람이 순수 자원봉사 목적이라는 이야기만 커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대부분의 기자들이 이젠 이슈를 살 것이 없기에 두 사람의 순수한 마음을 이슈로 띄우고 있었다.
이로써 열애설로 붉어졌던 것이 오히려 두 사람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되레 알리는 꼴이 되고 있었다.
열애설에서 여전히 그 의혹을 떨치는 시청자는 있을 수도 있었다. 그들이 숨기고 있다, 비밀 연애를 하고 있다 등의 추측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젠 거의 뒷전이 된 상황이었다.
만약 그들이 연애를 한다고 할지라도, 그 연애 장소가 발달 장애 복지센터라고 가정해 본다, 사람들이 그 두 사람을 어찌 볼 것 같은가. 사람들은 두 사람의 그러한 행동에 박수를 보낼 것이다.
오히려 기사는 두 사람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에 힘써지는 중이었으며 그들에게 겨냥되어 졌던 화살이 오히려 꽃을 피우는 상황이었다.
그와 더불어 정수가 내놓은 역으로 이용하는 비책의 결과가 곧 있으면 나오게 될 것이었다.
“조심해라, 이런 이야기 한 번만 더 나오면 나도 그땐 정말 엎어 버리는 수가 있어.”
“예, 죄송합니다.”
민후는 대표실 안에서 태웅의 으름장에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아무리 일이 좋게 흘러간다고 하더라도 열애설이 났다는 것은 소속사 대표로서 좋게 볼 수는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물며 민후나 그와 스캔들이 난 그녀나 두 사람 모두 신인 배우였다. 신인 배우에게 열애설은 독이었다.
그리고 만약 두 사람이 만났던 장소가 장애인 복지센터 같은 곳이 아니었다면 실제 교제 중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두 사람의 선행보다는 ‘열애설’에 목적을 두고 집중 공격을 나섰을 것이다.
이번은 운이 좋아 되레 역으로 좋은 반응을 얻는 것이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민후는 누구인지 짐작했다. 문이 열리고 정수가 들어왔다. 그는 태웅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 보였다. 태웅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어떻게 됐어?”
“그쪽에서도 한번 제의해볼까 하고 있던 참이라던데요? 아무래도 지금 이미지가 워낙 좋다 보니까 신인이어도 그 정도는 감수하겠다고 말하더라고요.”
정수는 태웅에게 그렇게 말하며 민후에게 V자를 보였다. 성공이었다. 정수는 두 사람이 역으로 천사 이미지로 오르는 이때 적십자나, 장애인 복지회, 등등을 알아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적십자와 광고를 찍기로 합의를 보고 오는 것이었다. 윤하 측 매니저나 소속사도 정수의 의견은 무척 좋게 받아들였다.
이미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계속 입을 다물면 작은 의심이 생길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때문에 과감하게 두 사람이 이렇듯 광고를 찍는 대범함을 보인다면 이슈가 되기도 할 테고, 두 사람도 좋은 일이었다.
정수가 민후와 대표인 태웅에게로 서류 봉투에 담긴 것을 건네었다. 적십자 광고의 CF 시나리오였다. 두 사람 모두 시나리오를 확인하였다.
<가파른 골목길에 그 길을 오르는 두 사람은 무척 힘이 들어 보인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그러나 그곳에도 가난한 이들이 사는 달동네로 불리는 곳이 존재한다.
“안녕하세요, 할머님-”
“안녕-”
계단을 오르는 강민후와 한윤하는 힘든 기색이 역력하였지만 오르는 길에 만난 머리가 쇠해진 할머니에게 인사를 한다. 그리고 윤하는 오르면서 발견한 작은 진돗개를 껴안으면서 활짝 웃는다.
계단을 밟고 올라간 두 사람은 허물어져 가는 집 앞에 도착했다.
“승민아, 수빈아-? 할머니이- 저희 왔어요.”
두 사람이 그곳에서 그들을 부른다. 할머님이 문을 열고 거동이 불편해 자리를 지키시지만 밝게 웃으며 반긴다. 어린 꼬마 신사 숙녀가 나와 두 사람에게로 붙는다.
민후는 주위의 지저분한 것들을 치우고, 망치질을 한다. 못이 떨어져 책상 위에 올려놨던 액자를 그곳에 걸며 민후는 활짝 웃으며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윤하는 주방으로 가서 설거지를 깨끗이 하고 음식을 준비한다.
함께 만든 음식을 먹은 후, 두 사람은 대야에 가득 물을 받아서 이불 빨래를 한다. 두 사람이 함께 이불 위로 올라가 밟는다. 힘들지만 두 사람의 얼굴에는 웃음이 한가득하다.
“누나-!”
“앗! 수빈이 너어-!?”
어린 숙녀 수빈이 물을 뿌리며 치는 장난에 윤하는 장난스레 웃으면서 수빈을 껴안는다. 수빈이 작은 비명을 지르며 방긋 웃는다. 어느새 승민도 물장난에 합세한다. 민후, 윤하가 아이들과 놀고 집안일을 끝냈다.
“할머님, 저희 이만 가보겠습니다.”
윤하와 민후가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님께 인사한다. 그녀가 손을 휘휘 이리로 오라는 듯 젓는다. 윤하가 다가가자 그녀가 박하사탕 두 개를 건네주며 빙긋 웃는다.
윤하도 활짝 웃는다. 계단을 내려가는 두 사람이 입안에 쏘옥 하고 박하사탕을 넣으면서 보람찼던 것인지 활짝 웃는다. 힘들었으나, 두 사람의 표정은 진심으로 즐거워 보였다.
내레이션 : 오늘 하루 그들에게 저희의 마음을 전하였습니다. 저희의 사랑이 그들에게 보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작은 손길이 그들에게 큰 도움으로 다가갑니다. 행복한 대한민국, 힘찬 대한민국 적십자가 응원합니다.>
시나리오는 상당히 훈훈하였고 만족스러웠다. 태웅도 그것을 읽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나리오를 훑어본 태웅은 곧 민후에게 몇 마디 더 주의의 말을 주고는 정수와 함께 그를 내보냈다. 정수와 함께 밴에 올랐다.
“그래도 다행이다, 잘못했으면 진짜 어휴…….”
실상 제대로 열애설이 터졌으면 정수도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것이다. 민후는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정수가 ‘뭘, 좋게 해결됐는데. 그리고 만약 연애를 해도 나한테 말하고 해라.’라고만 일러두었다.
적십자에서 넘겨준 시나리오는 적십자 광고의 분위기상 자연스러운 흐름을 원칙으로 하기 마련이다. 일을 하거나 혹은 음식을 차리는 등의 행동은 맞춰볼 필요가 없었다.
실제로 그 두 사람이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할 것이었고, 단지 CF 촬영팀 카메라가 두 사람을 밀착 취재를 진행할 뿐이다.
그리고 시나리오상 작은 조작은 필요했다. 아이들에게 두 사람을 향해 물을 뿌리라는 행동이나 할머님에게 두 사람에게 박하사탕 두 개를 건네라는 등의 연출은 있어야 하였다.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CF였으며 더불어서 너무 많은 연출과 노력이 들어가면 오히려 부자연스러워질 CF였다.
그 때문에 평소와 다르게 민후는 시나리오 전체적인 연습보다는 대본 연습을 주로 하였으며 시나리오도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변경될 것이었다.
민후와 윤하가 달동네의 입구 쪽에서 만났다. 밴을 주차장에 대고 온 두 사람은 곧 준비하고 있던 촬영팀 인원들과 감독들에게 인사를 하였는데, 두 사람의 손에는 각각 뭔가가 들려있었다.
민후가 들고 온 것은 아이들이 마실 수 있는 음료수였다. 그리고 윤하의 경우 과자를 들고 왔다. 두 사람은 정말 너무나도 묘하게 닮았다. 광고를 찍는 것이었지만 실제 그 집안의 할머님이나 아이들은 적십자의 후원을 받는 이들이었다.
또 광고에는 사연과 더불어서 그들의 이름이 나옴으로써 수많은 자원봉사자로부터의 지원을 받게 될 것이었다.
광고였지만 이것은 두 사람에게도 꽤 뜻깊은 일이지 않나 싶었다.
카메라맨들은 앞쪽과 뒤쪽으로 두 사람을 촬영하면서 걸었고, 감독은 뒤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민후와 윤하는 대본만을 맞춰본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고, 단지 올라가는 계단마다 시나리오처럼 강아지 한 마리가 있을 것이고, 할머님 한 분이 계실 것이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진행하면서 위로 올라갔다. 어느덧 집에 도착하고 그들은 노련하게 집안일을 하기 시작하였다.
집으로 들어온 민후는 촬영인 것을 잊었다. 집안 꼴이 말이 아니었다. 할머님은 거동이 불편하시고, 아이들은 아직 어리니 당연한 결과였다. 민후는 다리가 부러져 쓰러진 식탁을 하나 잡았다.
그는 망치를 들고는 식탁을 뚝딱뚝딱 고치기 시작하였고, 미연은 집안 내부 청소를 시작하였다. 3시간을 하고서야 어느 정도 정리가 끝이 났다. 두 사람은 그제야 한숨을 돌리고 할머님과 아이들을 두고 식사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광고인 것을 잊은 양 평소처럼 행동하였다. 그리고 윤하의 경우 아이들을 챙기는 데 급급하였으며 민후는 밥을 먹으면서도 할머님에게 아픈 곳은 없는지에 대해서 안부를 살폈다.
그리고 빨래를 하기 위해 빨랫거리를 한 아름 들고는 마당 쪽으로 왔다. 발달 장애 복지센터에서 한두 번 해본 것이 아니기에 윤하와 민후 두 사람 다 부드럽게 진행할 수 있었다.
빨래를 한 아름 대야에 넣고 두 사람이 바짓단을 걷어 올리면서 함께 그 위로 올라갔다. 두 사람의 이마로 땀이 한가득 흐르려고 하니 수빈이란 아이가 제작팀에서 일러준 것처럼 윤하에게 물을 뿌렸다.
“수빈이 너어-!”
그녀가 장난스레 웃으며 그녀를 꽉 껴안았다. 수빈은 차갑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곧 수빈을 도와주겠다는 것인지 오빠인 승민이 가담했다.
“하, 하하하!”
발버둥을 치다가 홀딱 젖어버린 승민을 보고는 민후가 웃음을 터뜨려버렸다. 연기가 아닌 진실 된 웃음이었다. 재밌었다. 그렇게 웃다가 민후와 윤하의 시선이 마주쳤다.
두 사람이 싱긋 웃었다. 어쩌다 이렇게 두 사람이 함께 광고를 찍게 되었는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좋은 쪽으로 일이 일단락되어 가고 있었고 지금 이 상황도 서로가 무척이나 즐거운 상황이었다.
두 사람은 빨래를 함께 널고 옷이 마르기까지 기다렸다. 할머님이 윤하와 민후 입으라고 옷을 주셨는데, 얼룩덜룩 꽃무늬가 있는 몸빼 바지였다. 서로가 일단 그것을 입었는데, 입은 모습을 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옷이 마르고 집안 정리가 끝난 것 같자 두 사람이 옷을 갈아입었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수빈이라는 어린 꼬마 아이가 민후의 손을 꽉 잡았다.
“오빠, 다음에도 올게.”
“약속해야 대.”
수빈의 말에 민후는 빙긋 웃어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어느새 해가 졌다. 할머님께서 두 사람에게 박하사탕을 건네주었다. 수빈과 승민이 집 앞으로 마중을 나와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었다.
두 사람도 맞추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오늘 되게 재밌지 않았어?”
“응, 수빈이하고 승민이 왜 이렇게 귀여워.”
두 사람은 내려가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어차피 이런 사소한 대화는 알아서 편집 처리가 될 것이다. 두 사람이 계단을 모두 내려오고서야 촬영이 끝이 났다.
불필요한 장면은 편집하여서 보기 좋은 장면, 예쁜 것들을 모아서 광고를 낼 것이다. CF 감독이 두 사람을 보고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 다 자원봉사를 열심히 하고 있다더니 정말 그런가 보네.”
CF 감독은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CF에서 두 사람이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면 어떻게 하나 하고 작은 걱정을 하였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능숙하게 해냈다.
CF 감독의 칭찬에 민후와 윤하가 빙긋하고 웃어 보였다. CF 감독은 편집을 끝내고 TV에 광고가 나가기 전 소속사에 연락을 취해주겠다는 말을 하고는 촬영팀을 이끌고는 돌아갔다. 민후와 윤하는 서로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각자의 밴에 올랐다.
“보기 좋더라.”
밴의 운전석에 오른 정수가 한 말이다. 그도 내심 지켜보면서 두 사람의 그런 모습이 정답고 한편으로는 대견하기도 했다.
그리고 민후의 경우는 인터뷰를 위해 시작된 센터의 자원봉사활동이 이렇게까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사람이 선의를 베풀면 복이 온다고 했던가, 만약 잘못됐다면 확실히 큰 타격을 입었겠지만 두 사람의 선의를 알아준 것인지 되레 세상은 자신들을 도와주고 있었다.
민후는 만족스러운 듯 작게 웃었다. 곧 밴이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