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최고의 소속사, 황제
얼마 전 한 신문사에서 주최한 설문이 있었다. ‘올해의 가장 기대되는 신인’이라는 주제의 설문이었다. 놀랍게도 그 설문에서 민후는 3위를 차지하는 영광을 안을 수 있었다.
현재 그가 하는 방송 관련 일은 딱 하나 논스톱밖에는 없는 실정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그가 3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그만큼 좋은 일이었다.
일단 설문에 관한 기사가 나갈 것이고, 강민후라는 배우가 3위에 올랐다는 것을 그들이 알지 않겠는가. 그로서는 무척 기쁜 일이었고, 앞으로 추후 나아가 1위는 물론, 더욱 좋은 모습을 사람들에게 선보일 생각이었다.
논스톱 5팀만큼 촬영 분위기가 좋은 촬영팀이 있을까. 민후는 아마 찾기 힘들 거다, 라고 말하고 싶다. 논스톱 5는 정말 촬영 분위기가 좋았다.
항상 웃음이 떠나가지를 않으며 배우, 스태프들 너 나 할 것 없이 서로가 존중하며 아끼고 농담도 던지며 즐거운 촬영을 하고 있었다.
과거 혼자만 딸랑 동떨어져 있던 민준 역시도 스태프들이나 배우들에게 변화된 모습으로 다가가기 시작하면서 더욱더 활기찬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오늘도 촬영장에서는 웃음이 떠나지를 않았다. 다른 배우들의 장난기 어린 말에 스태프들은 배를 잡고 넘어갈 정도였다.
민후도 그 틈에서 배를 잡고 웃고 있었다. 현재는 쉬는 시간이었다. 앞으로 30분 정도는 더 쉴 수 있었다. 옆에서 누군가 툭 하고 건들었다.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민준이었다.
그는 담배를 쥐는 시늉을 하면서 흡연장 쪽을 엄지로 가리켰다. 민후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그를 따라나섰다.
이젠 두 사람이 제법 친해졌다. 이렇게 담배도 줄곧 같이 피우고는 하였으며 특히나 민준이 민후를 챙기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자신의 아둔함을 깨달았다.
어째서 그를 미워하였는가. 그것은 오로지 자신의 심술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의 심술로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말도 안 되는 짓을 한 자신을 한탄하게 된 그다.
민후가 그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자 깊게 한 모금 빨아 마시고 내뱉은 그는 피식하고 웃었다.
“아 나, 진짜 내가 촬영 감독님 때문에 미친다니까.”
“큭, 저도 웃겨 죽겠어요.”
그는 조금 전 촬영 감독이 하였던 농담이 생각난 듯하였다. 실질적으로 촬영장 분위기가 좋은 건 배우들이 큰 한몫을 하긴 하였지만, 스태프들도 단단히 한몫했다 할 수 있었다.
실상 자신이 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람이 편하게 농담을 던질 수도 웃을 수도 있기 마련이다. 본래의 스태프들은 배우들에게 그렇게 편하게 대하지 못한다.
때문에 항상 대부분의 촬영장은 웃음기보다는 진지한 목소리가 크게 퍼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곳 논스톱 5의 촬영장은 배우들이 그런 그들의 관념을 깸으로써 서로가 어울릴 수 있는 분위기를 자아냈기 때문에 서로가 잘 버무려져 어울릴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촬영장이 너무나도 활기차도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다. 화려한 액션이나, 혹은 웃음보다는 그 화면과 슬픔을 담아내려는 촬영장은 웃음이 많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이곳 촬영장은 ‘시트콤’을 촬영하는 것이었다. 주된 목적이 ‘시트콤’이라는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을 촬영하는 것이었으니 괜찮았다.
“민후 너, CF 들어왔다며?”
“예.”
민준이 히죽 웃으면서 그의 어깨를 툭 쳤다. 민후가 멋쩍게 웃었다. 그의 말대로 첫 CF가 들어왔다. CF는 신인 배우들에게는 무척 값진 것이었다. 간혹 보면 확 하니 한 번에 뜬 신인 배우가 CF를 다수 찍어내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특이한 케이스였다. 신인 배우가 그렇게 팍하고 뜨면서 CF를 찍는 일이라는 것은 신인 배우 중 20명 중 한 사람이 될까 말까 한 일일 것이다.
그만큼 CF라는 것은 신인 배우들에게는 무척 따내기 힘든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민후에게 들어온 CF는 다름 아닌 ‘하루 우유’라는 CF 광고였다.
다음 주 촬영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아마도 CF를 촬영하기 위해서 그 시나리오대로 한참을 연습해야 성미가 풀릴 그이지 않나 싶다.
“이제 CF도 들어오고 슬슬 너도 소속사 정해야지 않냐.”
그의 말에 민후는 작게 웃으면서 대답하지 않았다. 민준은 심드렁한 표정이다.
“우리 소속사 들어오라니까? 내가 추천해줄게. 너 오디션 보고 하면 100% 붙는다.”
민준이 자신의 가슴을 땅땅 치면서 하는 말이었다. 이 전에도 몇 번 민준이 소속사가 필요하면 자신의 소속사를 알아보라고 권유를 하였다.
그리고 얼마 전에 어떠한 소속사에서 함께 일할 생각 없냐며 권유를 하였었다.
그러나 민준의 소속사나, 따로 스카우트을 한 소속사나 대부분 신인 배우들이 많은 소속사였다. 물론 그렇다고 인지도 없는 소속사는 아니었다.
그러나 민후는 노리고 있는 소속사가 있었다. ‘황제’ 그것이 그가 노리는 소속사의 이름이었다. 수많은 배우가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본래의 강호도 그 소속사의 일원이었다.
그가 굳이 다시 그 소속사를 가려는 이유는, 그 소속사의 본질 때문이었다. 소속사 자체가 강민후라는 존재와 너무나도 어울렸다.
일단 소속사 안으로 들어가면 눈에 가장 띄는 명패가 떡하니 걸려 있다. ‘실력이 밥 먹여준다’라는 명패였다.
소속사의 대표인 함태웅이라는 인물은 화려한 외모나 인기보다는 실력과 노력을 통하여서 배우가 된 이들을 줄곧 뽑고는 하였다.
그 때문에 설사 조연배우라고 할지라도 실력과 노력이 받쳐준다면 황제라는 소속사에 들 수 있었고, 실제로 수많은 실력파 조연 배우와 주연 배우를 대거 보유하고 있는 ‘황제’였다.
그렇다고 황제라는 소속사 자체가 대한민국에서 최고다! 라고만 할 수 있는 소속사는 아니었다. 그와 견줄 크기의 소속사는 대한민국에 꽤 있었다.
그러나 소속사의 선택은 매우 신중해야 하는 일이었으며 강호였던 시절 세 번의 소속사를 옮긴 경험이 있었던 그로서는 자신 본인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어주고 자신과 가장 걸맞았던 소속사가 바로 황제라는 소속사였다.
황제는 조금 특이하게도 오디션을 1년에 딱 한 번만 진행하였다. 그들은 대부분 오디션보다는 소속되어 있지 않은, 혹은 다른 곳에 소속되어 있으나 계약 기간이 만료되어 가고 실력이 출중한 배우들을 섭외하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1년에 한 번씩 있는 오디션의 경우도 떨어지는 이들이 많았다. 소속사에서 스카우트이 아닌 오디션을 본다는 것 자체가 아직 드라마나, 혹은 영화에서 큰 비중을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완전한 신인이라는 뜻이었고 그런 그들의 대부분이 실력이 좋을 리는 거의 없었다.
그 때문에 1년에 한 번 치러지는 오디션에서 최종적인 합격을 한두 명 받아내면 많이 받는 것이었다.
민후도 황제의 오디션 일정을 물론 알아보았다. 민준의 말처럼 자신도 이젠 소속사에 슬슬 들어야 할 때가 되었다.
오디션이 다음 달부터 1차 서류심사를 시작하게 되는데, 우연인지 얼마 전 임경우 교수가 자신의 소속사를 거론하였는데, 그도 황제 소속의 이였다.
그는 오디션 한번 보라고 말하면서 추천을 해준다고 언급했다. 때문에 더욱 좋은 점수로 오디션에 임할 수 있을 것이었다.
“아직은 그렇게 불편한 게 없어서요.”
“으유, 이 여유로운 녀석.”
민후는 그의 자신의 소속사를 제의하는 말에 태연하게 말했다. 민준은 그에 황당했다. 소속사를 두고 이렇게 여유롭게 두고 생각하는 녀석은 처음 본 것이다.
치이익.
민후는 재가 모두 타버린 담배를 재떨이에 비볐다. 막 들어가려는데 휴대폰이 진동했다. 그가 의아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꺼내어 발신자를 확인하였다.
‘세상에 하나뿐인 엄마’
라고 떴다. 한창 일하실 시간에 전화가 오자 의아했다. 그가 전화를 받자 어머니의 정겨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아드으으을.
정겨운 어머니의 목소리에 듣자마자 웃음부터 나왔다.
-촬영장이 건국대학교 맞지?
“응, 근데 그건 왜…….”
뚜뚜뚜…….
민후는 촬영장의 위치를 물어보는 어머니로 인해서 고개를 갸웃하였다. 그녀에게 되물으려고 하자 전화가 꺼졌다. 그가 의아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내려다보곤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받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어머니가 전화하셔놓고 위치만 물어보시더니 뚝 끊으시네요.”
민후의 답에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이어서 두 사람이 함께 다시 촬영장 안으로 들어갔다.
촬영장에서는 촬영을 하다가 커플이 되어버린 촬영팀의 막내 지훈과 논스톱 5의 막내 시나리오 작가에 대한 연애담이 퍼지고 있었다.
“그래서 누가 고백했다는 건데?”
“그야 제가 했죠.”
“하하하하! 이 자식, 남자네? 남자였어!”
지훈이 민망한 표정으로 답하였다. 촬영팀 인원들은 지훈과 막내 시나리오 작가 김민지를 원을 그리고 둘러쌓은 상태로 쩌렁쩌렁 웃어 보였다.
민지라는 막내 시나리오 작가는 예쁜 얼굴은 아니었지만 귀여운 얼굴과 아담한 체격을 가지고 있는 이였다. 그녀가 민망한 표정으로 혀를 내밀고는 웃었다.
“처, 첫 키스는 했어? 안 했어!?”
민후와 민준도 담배를 피우고 와 어느새 그 대열에 합류한 상태가 되었다. 긴장 어린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지훈이 민망한 표정으로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했다.
“저, 저희 나이가 몇 개인데. 다, 당연히.”
“고러취!”
“너희 나이가 몇 개인데? 하하 그, 그럼 나이에 걸맞게 나쁜 짓도……?”
“음향 감독님!”
머리가 훌러덩 벗겨지고 체격이 튼실한 마흔 중반의 음향 감독의 도를 넘어선 농담에 민지가 버럭 소리쳤다. 그가 멋쩍은 표정으로 ‘내, 내가 좀 속도를 높였나?’라고 말하자 주위에서 작은 야유가 퍼졌다.
그렇게 두 사람의 흥미진진한 연애담을 귀담아듣고 있을 때였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그러나 촬영팀 인원들 전부가 두 연인의 귀여운 연애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어 그 소리를 듣지 못했고, 곧 누군가 민후의 팔을 때렸다.
착!
“아야!”
“이놈이 엄마가 왔는데, 모른 척하네!?”
“응?”
“음……?”
자신의 팔을 때린 누군가로 인해 의아한 모습으로 고개를 돌렸던 민후가 익숙한 얼굴의 어머니가 계시자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함께 일하는 아주머니 한 분과 이번에 새로 뽑았다는 젊은 바리스타 남성도 함께 있었다.
남성은 큼지막한 박스를 들고 있었고, 아주머니도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어머니는 바닥에 들고 왔던 박스를 내려놓고 민후를 때렸나보다.
“호호호, 안녕하세요. 저 강민후 어머니예요.”
갑자기 등장하신 어머니는 공손하게 주위의 이들에게 인사해 보였다. 순간 다 같이 모여 웃고 있던 촬영팀 인원들도 공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안녕하세요. 담당 PD인 김택일이라고 합니다.”
가장 정신을 빠르게 차린 것은 담당 PD였다. 그가 침착하게 인사했다. 어머니가 입을 막고는 웃으셨다. 잘 확인하니 어머니는 평소와 다르게 특별히 신경 써서 꾸미고 오셨다.
“호호! 네에, 반가워요. 다름이 아니라 저희 모자란 민후 이렇게 잘 대해주시고 보살펴 주시고 해서 너무 감사해서 간식 좀 가져왔어요.”
간식이라는 말에 촬영팀 인원들의 얼굴로 활기가 돋았다. 항상 배고픈 이들이 촬영팀 인원들이다. 끼니를 제때 하지 못하기 일쑤이기 마련이다.
하물며 한 컷의 촬영이 일찍 끝나 쉬고 있기는 했지만 뭘 주문해서 먹기에는 시간이 애매해서 단순히 쉬고 있던 그들이기에 반가운 소식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일하는 분들이 박스와 봉지를 열었다. 그 안에는 어머니가 가게에서 직접 내리신 커피나, 생과일주스 스무디 등등이 들어 있었고, 봉지에는 와플이나 베이글 같은 빵이 들어 있었다.
“하하하, 민후가 부족하다니요. 연기도 잘하지, 잘생겼지, 싹싹하지. 근데 저한테는 예의가 없네요. 하하하!”
가장 장난기가 많은 촬영 감독님이 웃으면서 한 말이다. 어머니는 그 재치 있는 농담에 재미가 있으신 것인지 ‘호호’ 웃으신다.
곧 간식들이 개인에게 돌아가고 촬영팀 인원들이 ‘잘 먹겠다’라는 인사와 함께 자리를 잡고 앉아 즐기기 시작하였다.
“엄마, 바쁠 텐데…….”
촬영팀 인원의 숫자가 숫자이다 보니 만드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더불어서 금전이 들어갔을 터였다.
“우리 아들 기 살려주려고 그랬지. 그리고…….”
어머니는 빙긋 웃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다. 그러면서 말끝을 흐리더니 민후의 귀에 슬쩍 입을 가져와서 말씀하신다.
“광고료가 그렇게 짭짤하잖니.”
“흠…….”
그녀의 말에 민후는 낮은 신음을 흘렸다. 물론 어머니의 장난인 것은 알았다. 상당히 기분 좋았다. 여자 친구가 남자 친구의 직장에 왔을 때 이것처럼 기쁠까. 아니, 이것이 훨씬 더 기쁘고 다시 한번 어머니에 대해서 되새기게 될 것이었다.
민후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커피를 건네면서 빙긋 웃는 어머니의 모습에 고마움을 느낀다.
* * *
민후는 한양대학교에서도 인기가 좋았다. 선배는 물론 같은 학년의 동기들에게도 인기가 좋았으며 교수들에게도 애교스럽고 활기찬 예의 바른 모습 덕택에 인기가 좋은 편이었다.
그는 배우에 있어서 모든 대인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것이 좋다, 라고 여기고 있었다. 특히나 일반적인 생활 속에서도 자신의 성격과 더불어서 주변 인물들과의 친목을 유지해야 하였다.
배우는 사람들에게 사생활까지도 보일 수 있었다. 숨기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한들 숨길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었다.
그 특정 배우를 좋아하는 이들은 그 배우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하물며 어떤 안 좋은 습관이 있는지를 알기까지 원한다.
그 때문에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그 배우가 ‘성격도 좋은데 학우들과도 잘 어울리고 교수님들께도 싹싹하다’라는 이야기가 들어가기 마련이었다.
또 민후에 대한 기사를 쓸 때도 ‘강민후 군, 학교에서도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고 모범생이다’라고 써줄 것이 분명하였다. 배우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람은 외로우면 좋지 않았다. 배우도 그랬다. 인생을 살아가는 전반적인 목적은 서로 어울리기 위함이지 혼자서는 즐거움도 없었다. 그도 학우들이나, 선배, 교수님들과 어울리는 생활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민후는 여럿의 친구들과 더불어서 교내 식당으로 왔다. 교내 식당의 좋은 점은 다름 아닌 싸고 맛이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한양대학교는 상당히 훌륭한 편이었다. 2,500원의 가격이면 돈가스도 먹을 수 있었고, 다른 음식들도 많이 맛볼 수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실제로 김민준 씨는 어떤데?”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아이 중 과대표 아이가 있었다. 여자아이였고 예쁘게 생긴 외모와 더불어서 리더십, 그리고 좋은 성적으로 교수님께 기대를 받는 아이였다.
한수진이라는 아이였는데, 그녀도 논스톱 5를 즐겨보고 있었고, 다름 아닌 김민준의 열혈 팬이었다.
“조금 도도한 형이야. 시크하기도 한데, 재밌을 땐 재밌으셔.”
“진짜-? 어떡해, 너무 멋있겠다아-”
그녀가 밥 먹다 말고 양손까지 모아가면서 민준에 대한 이미지를 그렸다. 민후가 장난스레 ‘내가 멋있다고?’라고 말하자 그녀가 피식하고 웃는다.
주위에 함께 밥을 먹던 남자아이들이 혀를 찬다.
“쯔쯔, 여자들이란.”
“그러니까 말이야. 그보다 민후야, 혹시 구민정 씨는 어때? 예뻐?”
“흐음…….”
“허이구, 여자나 남자나 똑같지, 뭘.”
결국 다른 남자아이들도 예쁜 여자 배우에 대해서 질문한다. 민정은 강남을 휘어잡던 5대 얼짱답게 요즘 인기를 끌어모으는 중이었다.
그녀는 귀여운 외모와 엉뚱한 이미지로 사랑받고 있었다. 현재 계속해서 앞으로의 진행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얼마 후면 진후와 김지현, 두 사람이 하차하고 새로운 이가 투입될 것이었다. 그 투입되는 인원 중 가수 활동을 하는 이가 있었다.
이정민이라는 사람이었다. 독특한 보이스와 더불어서 뛰어난 가수였다. 또한, 개성 있는 얼굴과 작은 키. 유머러스한 성격에 담당 PD가 그의 캐스팅을 고려하는 중이다.
현재 캐릭터 하나가 더 구상된 상황이었는데, 쪼잔한 녀석에 추후 구민정이 좋아하게 될 남자 캐릭터가 바로 이정민이 캐스팅되면 맡게 될 역할이다.
민후가 알고 있는 미래의 상식선에선 이정민이 캐스팅되어 민정과 달달한 로맨스를 보여주는 것으로 안다.
하나 안타깝게도 강민후인 본인 자신은 민정을 짝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을 보며 슬퍼하는 역할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민후의 캐릭터가 죽지는 않는다. 그의 한 여자에 대한 짝사랑 로맨스에 수많은 누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게 되는 그였으니 말이다.
“안녕하세요. 사인 한 번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지금 이 처럼의 상황처럼 말이다. 대부분 민후에게 다가와서 인사를 건네고 사인을 요구하는 이들은 선배들이 많았다. 요즘 대학교가 선배들이 후배들을 바싹 잡는 편이다.
그러나 누님들의 지지를 열렬히 받고 있는 편인지라 그런 걱정은 없었다.
민후가 능청스럽게 사인을 해주자 그녀가 악수를 청했다.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아 준 민후는 빙긋 웃었다.
“식사 맛있게 하세요.”
“네에-!”
그녀의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팬 하나는 기가 막히게 다룰 줄 아는 그였다.
“부, 부럽다…….”
조금 전 민후에게 다녀갔던 여성이 3학년 대표 얼굴로 알려진 여인이었다. 함께 앉아 식사하던 남자들이 부러운 눈빛으로 그를 본다.
그러나 민후는 태연하게 식사하고, 학과대표인 수진은 ‘저게 대체 뭐가 이쁘다는 거야.’ 하면서 중얼거린다.
“아, 맞다. 내가 아까 임 교수님한테 여쭐 게 있어서 잠시 갔었거든? 근데 오늘 ‘황제’라는 소속사 이사인가? 그 사람 온다더라. 통화하면서 언제 언제 오라고 말 하시는 거 들었거든.”
“황제?”
황제라는 말에 민후가 가장 먼저 반응을 보였다. 그가 다음 달 오디션을 시작하는 황제라는 소속사를 노리고 있었기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고 보면 아마도 임경우의 초청 하의 강의인 것 같았다.
임경우라는 배우 역시도 황제 소속사의 일원이었고, 대표와도 연이 깊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사’라면 아마도 ‘이상명 이사’를 말하는 것 같았다. 이상명 이사는 신인 배우들에 대한 트레이닝과 더불어서 그들이 스크린으로 성공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인물이기도 하였다.
황제 내에서도 상당한 힘을 잡고 있는 인물이었다.
‘좋은데?’
민후는 돈가스 하나를 쿡 찍어서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잘하면 여기에서 어느 정도 점수를 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팍하니 스친다.
점심을 먹은 후 임경우의 강의에 들어온 민후였다. 임경우의 옆에는 이상명 이사가 서 있었다. 그는 안경을 낀 서른 중반의 남성이었다. 키는 174㎝ 정도 되었으며 다부진 체격과 더불어서 날카로운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항상 멀쩡한 안경을 치켜 올려 고치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는 학생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둘러보면서 안경을 바로 잡았다. 이 중에서도 미래에 대한민국을 밝히게 될 배우가 있을지도 몰랐다.
사람의 미래는 모르는 것이었다. 때문에 이상명 이사는 어떠한 이든 소홀히 보지 않고 침착하게 관찰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리고 그중 눈에 익은 이가 한 사람 보였다.
강민후라는 이였다. 요즘 논스톱 5라는 시트콤에 출연 중인 사람이었다. 이상명은 황제라는 소속사가 실력이 밥 먹여준다는 것을 붙잡고는 앞으로 나아가는 곳이었기 때문에 그조차도 자신의 실력을 향상시켜 그것 하나로 성공한 케이스였다.
그는 여러 드라마나, 시트콤, 영화, 뮤지컬, 연극까지도 흥미가 동하면 만약 연극이 서울과 정반대 방향의 지역에서 한다고 해도 꼭 가서 보고 마는 성미였다.
논스톱 5는 신인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였는데 우려완 다르게 상당히 노련한 연기력을 보이는 배우들이 많다 하여서 본 적이 있었다.
그중 그의 눈에 저 강민후라는 아이가 가장 눈에 들어왔었다. 시트콤의 짧게 촬영되는 모습에 반면 그는 흡입력 있는 연기력을 선보였다. 또한 싱크로율도 거의 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에 관심이 어느 정도 있었는데, 이 학교 학생인 줄은 모르고 있던 그였다.
그러나 그는 그가 있든 말든 크게 개의치 않았다. 흥미가 있다고 한들, 아직 그는 더 지켜봐야 하는 이름이었다.
“오늘은 조금 특별한 손님을 모셨습니다. 사실 강의를 하는 게 요즘 너무 귀찮아서 말이죠.”
그는 능청스럽게 웃음으로 시작했다.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잠시 강의실로 퍼졌다. 웃음이 그쳐지자 그는 이상명 이사를 보았다. 그가 자연스레 한 발자국 앞으로 나왔다.
“저 임경우가 소속된 소속사인 ‘황제’의 신인 배우와 더불어 연기 트레이닝 및 대부분의 관리를 맡고 있는 이상명 이사님입니다. 오늘 귀찮은 저를 대신해 강의해 주실 분이죠.”
짝짝짝짝!
“황제래…….”
“크- 역시 임 교수님.”
황제라는 소속사가 최고는 아니지만 웬만한 중간 크기의 소속사보다는 훨씬 좋은 곳이라는 소문이 자자하였다.
하물며, 그 안의 배우들 대부분이 대단한 실력을 소유하고 있었기에 학생들은 크게 관심이 동할 수밖에 없었다.
이상명은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로 뒷짐을 진 상태로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당장 스크린에 나서도 될 정도로 미남 미녀분들이 정말 많네요. 이거 탐이 납니다.”
그는 장난스럽게 첫 운을 떼었다. 학생들은 그의 말에 관심을 집중했다. 시선을 끌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잘 보이기 위해서인지 서둘러 거울을 보는 여학생도 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저희 소속사 ‘황제’는 실력파 배우들 위주로 배우분을 뽑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뭐, 임경우 교수님의 제자 분들이니 실력 하난 좋겠죠.”
그는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학생들이 여느 때보다도 그의 강의에 집중하였다. 물론 임경우라는 교수도 실전으로는 최고의 이였고,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이였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의 배우를 꿈꾸는 이들은 실질적으로 소속사의 관계자들이 바라는 배우에 대해서 궁금하기 마련이었다.
이상명 이사가 신인 배우 관리를 맡고 있다고 하니 그에게서 많은 정보를 얻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강의를 시작하였다. 민후는 물론이요, 모든 학생이 그의 강의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오디션에서 준비된 것이 없는 자는 오지도 말라, 하고 말하고 싶습니다. 요즘의 배우들도 연기력 하나로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빠른 상황 판단력과 어떤 연기가 주어져도 그 자리에서 뚝딱 해낼 수 있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확실히 이상명 이사가 하는 말 하나하나가 맞는 말들이었다. 그리고 민후가 실천하는 것들과도 비슷한 것들이 참으로 많았다.
그는 학생들에게 오디션에서 사랑받는 노하우 등이나, 혹은 갖춰야 할 자세 등을 고루고루 설명해 주었다.
수업시간이 지났다.
쉬는 시간. 그러나 특별하게 모신 강의인 만큼 임경우는 한 시간은 이론수업. 그리고 한 시간은 실기수업을 해달라고 청하였었다.
실기시험에서 이상명은 신인 배우들을 트레이닝 하는 안목으로 하여금 임경우 교수와 함께 연극영화과 학생들의 연기력 향상을 도울 생각이었다.
민후는 동기들과 함께 흡연장에 왔다. 10분이란 쉬는 시간은 담배 한 대 피우고 물 한 잔 마시고 화장실 갔다 오면 끝나는 짧은 시간이다. 담배에 불을 붙인 그가 깊게 빨아들였다.
“크- 좋다, 좋아. 역시 황제 소속 관계자는 달라. 쏙쏙 들어와, 쏙쏙.”
“그럼 뭐 하냐, 아무리 노력해도 너나 나나 발전이 없는데.”
친구 두 녀석이 하는 말에 민후는 쓴웃음을 짓는다. 그는 두 사람에게 ‘정말 노력하면서 발전 없다고 하는 거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괜히 녀석들 상처를 주고 싶진 않았다.
만약 그들이 조언을 구한다면 그때 한번 따가운 일침을 가해줄까 생각 중이다.
담배를 모두 피우고 안으로 들어가려다 임경우 교수와 이상명 이사를 마주쳤다.
“담배는 몸에 안 좋다-”
라면서 임경우가 능청스레 말한다. 사실 본인도 흡연자다. 웃으라고 한 소리다. 그 소리에 민후와 친구들이 밝게 웃었다. 민후가 앞서 고개를 살짝 숙여 예의를 취하고는 그들을 지나쳤다.
임경우가 이상명 이사의 담배에 불을 붙여줬다.
“한 친구가 낯이 익네요.”
“민후?”
“예.”
이상명의 물음에 임경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담배 연기를 허공에 뿜었다.
“한번 눈여겨봐. 저 녀석, 좋은 배우가 될 제목 같으니까.”
임경우가 이런 말을 해주다니, 그것도 학생한테 말이다. 흔한 일은 아니었다. 이상명이 궁금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저 녀석 우리 소속사 들어왔으면 좋겠어. 정말 열심인 녀석이거든, 또 실력도 대단해. 한번 연기 하는 걸 본 적 있는데 웬만한 중역 배우 저리 가라야. 그래서 사실 다음 달에 황제 오디션 한번 해보라고 했어, 추천서도 써준다고. 그러겠다고 하더라고.”
“흐음.”
상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턱을 어루만졌다. 임경우라는 배우가 소속사에 추천까지 할 정도라면 더욱더 흥미가 동하게 된다.
임경우라는 배우 자체가 가진 이름이 컸고, 그가 관심을 두는 아이라면 다른 아이들보다도 월등히 뛰어난 아이라는 뜻이 되었다.
‘강민후라…….’
논스톱 5를 통해서 흥미가 생기긴 했으나 아직 지켜보자는 단계였던 그가 경우의 말에 더욱더 당기기 시작하였다. 어차피 다음 시간은 연기를 볼 수 있을 터이니 기대가 되는 상명이었다.
쉬는 시간이 끝이 나고 학생들이 강의실로 돌아왔다. 임경우와 이상명 이사 역시도 돌아와 앉았다. 실기수업의 경우 이 안의 아이들을 전부 봐주기에는 시간이 촉박하였다.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라면 10명 정도 인원의 연기밖에는 보지 못할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이 안의 모든 분의 연기를 봐주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요.”
그의 말에 학생들은 이해한다는 표정이다. 이 안의 이들을 한 시간 내로 전부 봐줄 수는 없을 것을 그들도 인지하였다. 하물며 용기가 없어서 해보라고 해도 나와서 해보지 못할 이들이 수두룩할 것이었다.
“제가 그냥 랜덤으로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출석부를 들어 올렸다. 공평하게 랜덤으로 뽑는 것이 좋았다.
“신현준 학생, 강태욱 학생, 이미연 학생, 김민정 학생, 이현인 학생, 박정훈 학생, 이종탁 학생, 강현수 학생, 송수화 학생…….”
그는 마지막 부분에서는 조금 전 임경수의 말이 떠올랐다. 공평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그도 매우 구미가 당기는 일이었다. 작은 갈등이 생기다가 그는 나지막이 말한다.
“강민후 학생. 모두 앞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저…… 교수님, 전 안 해도 될까요……?”
“예, 그러셔도 됩니다. 음…… 박하현 학생.”
강현수라는 아이가 손을 들어서 어색하게 웃으며 한 말이다. 자신의 연기에 자신감이 없는 아이였다.
자신의 연기에 자신감이 없는 이들은 그만큼 노력이 없는 이들이고 실력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이상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학생을 불렀다.
앞으로 10명의 사람은 주르르 나열하고 섰다.
“10명의 학생에게 저는 갖가지 다른 제시어를 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앞에 선 학생들을 보면서 한 말이다. 아이들이 갑작스러운 대본 변경에 대처할 수 있는 자세를 보기 위해 다른 제시어를 내는 것이다.
“빵집에서 도둑이 빵을 훔치고 달아난다. 주인이 그를 잡기 위해 쫓는다.”
제시어가 상당히 난해한 제시어였다. 신현준이라는 남자아이가 잠시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뛰는 시늉을 하면서 외친다.
“거기서! 이 도둑놈아!”
그는 버럭 외치며 뒤쫓는다. 그의 연기를 평가해주고 지도해줄 임경우와 이상명 이사가 묵묵히 그의 연기를 보다가 끝나자 그의 등을 이상명이 두들겼다.
“아주 잘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문제가 무엇인 줄 아시나요?”
다른 학생들도 어느 정도 그의 문제를 확인한 것 같았다. 눈에 확 하니 뛸 정도로 어색한 표정 연기였다.
화가 난 건지 울겠다는 건지 아니면 연기를 보이는 것이 민망하다는 건지 갖은 표정이 복합적으로 표현되 었었다.
스크린에서 절대 저런 표정 연기는 나올 수도 있어서도 안 되었다.
“이 신현준 학생의 경우 단순히 도둑을 쫓아가는 것인데, ‘더 좋은 연기를 보이고 싶어. 어떻게 하지?’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친구들인, 선배들인, 후배들 앞에서 이렇게 도둑을 쫓는 자신을 연기하며 창피해했습니다. 배우가 사람들한테 연기하는 데 창피해 한다는 건 치명적인 단점이라는 사실을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학생.”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확실히 그의 말에는 강한 설득력이 존재하였다.
연기하는데 민망해한다? 그런 자들은 배우가 될 수 없다.
쉽게 영화로써 표현하자면 지체 장애인 같은 것을 표현한 영화에서 감독한테 ‘창피해서 못 찍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것 없는 것이다.
이상명 이사는 계속하여서 앞으로 나온 학생들에게 상당히 난처한 것들을 제시어로 냈다. 그럴 때마다 학생들 한 명 한 명한테서 문제점이 발견되었고, 그와 임경우 교수는 그것을 지적하여서 학생들에게 세심하게 설명해주었다.
마지막 민후의 차례가 되었다. 강의실 내의 학생들도 임경수도, 이상명 이사도 그에게 거는 기대가 있었다.
학생들의 경우 논스톱 5라는 시트콤에서 한참 열연 중인 그였기에 기대하는 바가 컸으며 이상명 이사는 임경우가 추천하였다는 그 말에 관심이 크게 갔다.
그는 이제까지의 제시어보다 조금 어려운 것을 제시하기 위해 잠시 입을 닫고는 생각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자폐증을 앓는 이가 자신의 어머니를 방 안에서 갑작스러운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것을 보게 된다.”
학생들과 임경우 교수의 표정이 ‘흥미’를 가득 머금었다. 일단 자폐증을 앓는 이의 연기라는 것이 상당히 힘든 일임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돌연사.
민후는 잠시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한참을 눈을 감고 생각하였고, 이상명 이사는 자신이 제시한 것이 상당히 어려운 것이었기에 그것을 양해해 주었다.
눈을 뜬 민후는 빙긋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냈다. 이런 제시어의 경우 극히 자신만의 판단력으로 연기해야 했고 그는 자신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떠올려 내었다.
그는 창피함 따위는 없었다. 이상명의 말처럼 연기를 하는 데 창피함 따위를 갖는 행위는 그 연기를 보는 모든 이들에게 해서는 안 되는 짓이다.
그는 시선을 불안하게 두면서 손가락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움직이면서 어머니의 앞에 앉는다.
“어, 어, 엄마, 배고파, 바, 바, 밥져.”
그는 맨바닥에 앉아서 앞에 돌연사하신 어머니가 있다고 가정한다. 그는 시선을 이리저리 계속 움직인다. 돌연사하신 어머니가 반응할 리는 없었다.
그는 흔드는 연기를 했다.
“밥져어, 바압, 바압.”
그는 한참을 그녀를 흔든다. 그러나 반응이 없자 의아한 표정이다. 그는 잠시 불안한 모습으로 방을 이리저리 움직인다. 민후는 발달 장애의 경우 사람의 죽음에 대한 인지가 일반적인 사람들보다는 늦을 거라고 판단하였다.
그 현실성을 생각하여 연기하는 것이다. 그는 다시 한번 주저앉아 어머니를 흔든다.
“바압 줘. 그만 자아아. 엄뫄, 그만자아.”
그는 계속 흔든다. 일어날 때까지 흔들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미동도 없다. 그제야 그는 무언가 이상함을 인지한다. 그러고는 이상한 소리를 낸다.
“끄으으윽! 밥져어어! 엄뫄아아! 밥져어어어! 으으윽! 배고파악. 밥져어어!”
그는 자폐증을 앓는 이의 슬픔을 그의 괴성과 더불어서 표정으로 표현한다. 그는 계속 어머니를 흔든다. 그러나 일어나지 않는 그녀에게 ‘배고파’라고 아우성을 친다.
그는 자신의 몸을 가누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며 몸을 이리저리 움직인다.
“바압바압바아아압! 엉엉!”
그는 끝내 배고프다 아우성치다 눈물을 흘린다. 임경우는 그의 연기를 보고는 충분히 만족하는 표정으로 작은 웃음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다른 학생들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민후를 보고 있었다.
물론 연극영화과이기 때문에 그의 연기는 실제로 몇 번 본 적이 있는 학생들이다. 그러나 이번 제시어는 ‘자폐증’이라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연기와는 다른 연기가 있어야 하였고, 강민후가 보인 연기는 넋을 잃고 볼 정도로 훌륭하였다.
특히나 어머니가 죽었다는 것을 가정하에 ‘엄마 죽으면 안 돼! 죽지 마아!’라는 대사보다 ‘바압, 배고프단 말야!’하는 것이 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
그리고 이상명 이사 역시도 무척 흡족한 표정이었다.
‘좋은 연기력이다. 상황 판단력, 연기력, 사람의 시각, 청각을 끌어들이는 것 모든 것 하나 빠질 게 없어.’
연기를 끝낸 민후는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아직도 자신 스스로가 한 연기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그는 훌쩍이면서 눈물을 닦아낸다. 이상명 이사는 그의 등을 두드리면서 빙긋 웃으며 학생들을 보았다.
“저는 개인적으로 만족하였는데, 다른 학생분들은 어땠습니까?”
“좋았습니다.”
“최, 최고였습니다.”
이상명 이사의 물음에 다른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해줬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었다. 그는 더 이상의 칭찬은 없었다. 또 그에게 더 이상 뭐라고 할 말은 없었다.
‘황제’ 소속사에 꼭 오라는 말 등을 할 생각도 없었다. 그저 연기를 봤으니 된 거고 자신은 속으로 만족할 뿐이다.
강민후라는 학생한테 더한 칭찬을 계속 보인다면 그저 자만심을 부르는 것일 거라는 생각 때문에 그는 이 정도의 호평으로 마무리하는 것이다.
어차피 다음 달이면 ‘황제’의 오디션에서 만나게 될 아이였다.
모든 학생을 다시 자신들의 자리로 돌려보낸 이상명 이사는 몇 마디 더 조언을 해주고는 시간을 확인한 뒤 학생들의 박수갈채를 받은 후 임경우 교수와 함께 강의실을 나섰다.
민후도 본인 스스로가 좋은 연기를 펼쳤다고 생각하지만, 이상명 이사가 별말 없다고 실망하는 기색은 없었다. 그의 본래 성격을 그도 누구보다 더 잘 알았고 그의 표정이 이미 만족하였음을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 * *
하루 우유의 CF 광고에 앞서서 민후에게 CF 촬영팀으로부터 대본이 날아왔다. 어떤 식으로 광고가 진행될지 민후가 어떤 식의 컨셉인지 나와 있었다.
우유라는 것의 CF는 화려할 필요도 없었고 깊은 뜻을 담을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하루 우유 측에서 강민후라는 배우를 CF 모델로서 잡은 이유는 이제 갓 20살 대학생인 그의 풋풋함을 우유에 접목시키기 위함이었고, 민후는 개인적으로 그들이 탁월한 생각을 했다고 판단한다.
자신을 캐스팅한 것은 그들에게는 무척 잘한 일이라고 말이다. 민후는 CF 촬영에 앞서서 계속해서 시나리오를 확인한 바가 있었다.
<친구들과 축구를 하고 온 듯 보이는 강민후는 축구복을 입은 상태로 집 안으로 ‘엄마’를 부르면서 들어온다. 집으로 들어온 그는 집 안 내부의 방문을 열어젖히며 어머니를 찾는다.
그러나 어머니는 계시지 않는다. 민후, 배를 문지르면서 부엌으로 향한다. 그는 라면을 먹을까 하여서 싱크대 위쪽의 선반의 문을 열어본다. 그러나 라면이 없었다.
전기밥솥을 열자 안에 지어진 밥도 없었다.
“엄마아…….”
그는 울상을 짓는다. 집에 먹을 것이 없는 것 같으니 어머니가 그리워진다는 음성이었다. 그는 냉장고로 향한다. 냉장고의 문을 열려던 그는 어머니가 남긴 메모지를 확인한다.
-엄마, 동창회 다녀올게.
그는 울상을 지으며 ‘씨잉’이라고 소리 내고는 냉장고의 문을 연다. 냉장고의 문을 열자 빼곡히 차 있는 ‘하루 우유’라는 상표가 붙은 우유들이 쭈르륵 나열되어 있고, 빵도 함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루 우유를 발견하자 그의 얼굴로 혈색이 돈다.
“엄마…….”
하루 우유로 꽉꽉 채워 넣은 냉장고를 보면서 그는 어머니의 마음을 느끼는 듯 잠시 하루 우유를 매만지다가 양손으로 열어젖혀 한 손으로 거침없이 들이켠다. ‘크-’ 하는 소리를 내면서 입가에 묻은 하얀 우유를 닦아낸다.
내레이션 : 항상 어머니들의 마음은 똑같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당신의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은 미소 짓게 만듭니다. 오늘도 하루 우유는 당신 자녀의 건강을 위해 노력합니다. 하루 우유.>
대본은 확실히 우유 광고인지라 과장이 꽤 많은 편이었다. 실제 상황이었다고 가정한다면 집에 오자마자 어머니가 없으면 라면이나, 밥을 찾는 게 아니라 냉장고부터 열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우유를 가득 채워 넣지는 못한다. 우유는 유통기한이 짧으니 말이다. 단지 우유를 가득 냉장고에 채워 넣음으로써 이것이 어머니의 마음 같은 하루 우유이다, 를 표현한 것과 같았다.
유치하였지만 광고는 이런 식의 맛이 있어야 좋았다. 집 안에는 현재 아무도 없었다. 어머니는 함께 일하는 분들 대접을 한다며 늦게 오시고, 오늘 민후의 경우 논스톱 5의 촬영 분량이 적었던 편이라 어제 미리 촬영해놓은 바가 있었다.
집이 텅텅 비니 연습하기 좋았다.
그는 대뜸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눈을 감고는 머릿속으로 확인했던 시나리오의 이미지를 그림으로써 이미지 트레이닝을 잠시 실시했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끝낸 민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미지 트레이닝은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으며 대본을 꼼꼼히 체크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촬영장의 모습도 익힌 후에 이미지 트레이닝 하면 더욱 탁월하였다. 만약 누군가 CF나 혹은 드라마 속에서 자신의 집 안에서 연기를 한다고 가정한다.
무엇이 필요할 것 같은가. 자신의 집이라고 가정이 된 상태였기에 어디에 어떤 물건이 놓여 있는지 알아야 했다. 만약 대본에 강민후는 ‘수화기를 집어 든다’라고 적혀져 있는데 정작 수화기의 위치를 모른다면?
두리번거리면서 찾을 것이다. 말이 되는가? 자신의 집에 수화기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니 말이다. 물론 이것은 촬영장 내부를 확인해야만 그 연기가 수월해진다.
그러나 방문을 연다고 적힌 것의 경우 방문은 집에 들어오면 확 하니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기에 그나마 찾기 쉬운 것이었다.
단지 망설임 없는 움직임을 위해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것이었으며, 선반을 여는 이미지, 전기밥솥을 열어보는 이미지 등을 머릿속에 그려본 것이다.
머릿속에 그려본 그는 한번 실현해보았다.
“엄마아!”
그는 집에 계시지도 않은 어머니를 찾으면서 대본의 상황을 따라 해 보았다. 그의 실제 집이었기에 방 구조는 누구보다 더 잘 알았다. 방의 곳곳의 문을 열어젖히면서 그는 어머니를 찾았지만 안 계신다.
그는 자연스럽게 주방으로 이동하여서 선반을 열어보고 밥솥을 열어본다.
그러다 냉장고로 향하더니 메모지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보고 울상을 짓는 연기를 하고는 냉장고를 연다.
실제로 안에는 반찬을 담은 밀폐 용기와 음료수, 어머니가 끓여놓은 보리차와 가게에서 가져온 커피 등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우유가 가득 담긴 것처럼 그는 작은 미소를 지으면서 ‘엄마……’라고 중얼거린다.
한번 동작을 취해본 그는 부드러운 진행을 위해서 계속 그것만 반복해서 연습했다. 실제 대부분의 광고는 30초에서 길어봐야 1분이 될까 말까 한 무척 짧은 것이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타는 방송이기에 더욱 현실감을 더하고 시청자들의 구미가 당길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광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수십 번을 반복해서 찍어도 만족이 안 되는 것이 광고라고 할 수 있었으며 실제로 많은 연예인이 가장 꺼리는 광고 중 하나는 라면 광고였다. 본인이 라면을 먹는 장면을 찍어야 한다면 정말 계속 먹어야 했다, 쉬지 말고.
특히나 맛있는 라면을 먹듯이 연출해야 했기에 이미 배는 빵빵 한데 계속 먹어야 하니 힘든 것이다.
우유도 마찬가지로 먹는 광고다. 그러나 라면이든 우유든 어떤 음식이든, CF 감독의 마음에 들게 하면 되는 것이니 연기자의 실력에 따라 좌우된다 할 수 있었다.
민후는 2시간을 넘게 연습하고 그나마 만족하고는 이번에는 논스톱의 대본을 꺼내 들었다. 광고 촬영은 10시에서 6시 사이까지 진행되고 만족하지 않으면 계속 촬영될 것이고, 8시부턴 논스톱 촬영이 있었다.
그는 매회 방영을 하는 논스톱이었지만 집에 오면 매일같이 다음 날 하게 될 대본을 외우고, 익히고, 연습하고를 반복했다. 그의 피나는 노력은 정말 대단하다 할 수 있었다.
2시간가량을 연습하니 어느새 어머니가 돌아오셨다. 시간이 꽤 된 것을 확인한 민후는 그제야 씻고는 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 * *
광고 촬영 시작 시간은 분명 10시였다. 그러나 민후는 7시에 기상하고는 어머니가 차려준 아침을 먹은 후 곧장 자신의 차를 타고는 촬영장으로 향하였다.
그는 저번 배우들과의 리딩 때처럼 박카스를 들고는 촬영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 박카스 한 박스에 그렇게 비싼 돈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하물며 민후의 경우는 매니저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스스로가 촬영팀 인원이나 CF 촬영 감독에게 자신을 광고하는 것이 좋았다.
CF 촬영장에 도착하니 이제 겨우 8시 반이었다. 8시에 촬영팀은 출근하기 시작한 것인지 현재도 촬영 준비에 한참이었다. 그리고 이번 하루 우유 CF를 담당하게 된 CF 감독인 ‘김재현’은 오늘 아침 일어나자마자 한숨을 쉬면서 일어났다.
강민후라는 배우가 이미지도 좋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컨셉도 맞았기 때문에 하루 우유 측에 이야기하고 캐스팅을 한 것은 자신이었지만 장시간의 촬영을 감수하고 계약을 맺은 것이다.
오늘 끝날 것이라는 보장이 없는 상황이었으며 잘하면 3일 내내 촬영해야 할 수도 있었다. CF 감독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기성 배우들과 신인 배우의 차이를 확연히 깨우칠 수 있었다.
기성 배우들은 촬영장을 꿰뚫어 보며 CF 촬영 시 자연스러운 촬영이 가능했다. 그러나 강민후라는 배우는 신인 배우였다.
물론 논스톱 5에서 노련한 연기력을 보이는 신인 배우라고 자리 잡고는 있으나 CF와 시트콤은 엄연히 다른 세계였다.
수많은 신인 배우가 처음으로 찍는 CF에는 난관에 부딪힌 이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표정 관리가 안 되었던 이들도 많았으며 계속된 촬영에 지친 모습의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김재현은 그런 그들에게 중얼거리기를 ‘돈 벌기가 쉬운 줄 아나……’라고 들리지 않게 하곤 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아! 연예인? 개네 뭐 광고 하나만 찍어도 수천, 수억 원씩 들어온다며?’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소속사나 다른 것 기타 등등을 떼면 몇억까진 떨어지지는 않았으며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돈 번다는 것은 연예인들도 녹록지 않은 것이다.
촬영팀 인원들은 CF 촬영에 앞서 배우가 움직일 동선을 만들고 있었다. 동선을 제작하는 이유는 배우가 쉽게 그곳을 따라 움직여 카메라가 잡기 수월하기 위함이다. 화살표를 그리는 형식으로 주로 하는데, 간혹 신인 배우들은 이런 동선조차도 긴장해서 까먹곤 한다.
CF 감독은 그 동선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들을 꼼꼼히 확인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신인 배우 강민후라고 합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그는 고개를 돌렸다. 대본을 한 손으로 말아 쥐고 동선을 살피던 김재현 감독이 의아한 표정이다.
그는 시계를 확인했다. 8시 3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무척 빨리 온 편이다. 그는 크게 인사를 한 번 하고는 재현에게로 다가왔다.
“감독님,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일찍 왔네요? 에너지가 넘쳐서 좋습니다.”
김재현은 걱정과는 다르게 작은 웃음을 지었다. 민후가 박카스 하나를 따서 그에게 건넸다.
띠리릭.
“이거 쭈욱 들이켜세요, 감독님.”
“싹싹하네.”
그는 빙긋 웃으며 박카스를 들이켰다. 오늘 고된 촬영을 하려면 이런 것쯤 하나는 먹어줘야 했다. 민후는 그의 빈 병까지 받아들고는 곧 다시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이면서 다른 촬영팀 인원들에게 다가가서 박카스를 내밀었고 연신 고개를 숙이면서 ‘신인 배우 강민후 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신인 배우 중 이렇게 열정적인 이들이 간혹 몇 있기는 하였기 때문에 크게 관심을 두진 않는 재현이다.
모든 촬영팀 인원들을 종횡무진하며 인사를 하였던 민후는 인사가 끝나자마자 날카로운 눈으로 촬영장을 훑어보았다. 현재 촬영장의 세팅은 끝난 상태이고, 조명이나 동선을 파악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냉장고의 위치나 선반, 전기밥솥. 그리고 자신이 서서 우유를 벌컥벌컥 마실 동선이 표시된 위치까지 확인하였다.
그는 잠시 눈을 감고 동선을 그려 또다시 이미지 트레이닝을 실시하였다. 오늘 일찍 온 이유는 잘 보이려는 속셈도 있었지만, 어제 연습하긴 하였어도 촬영장의 모습을 모르고 한 것이었기 때문에 눈으로 확인한 후 이미지 트레이닝이라도 하기 위해 일찍 온 것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눈을 감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쉬지 않았으며, 세팅이 완료되었을 때 30분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30분 쉬고 곧바로 촬영 들어간다.”
감독의 말에 촬영팀 인원들이 뿔뿔이 제각각 흩어졌다. 김재현 감독도 기지개를 쭉 켜면서 ‘오늘 드럽게 피곤한 하루겠구만.’하면서 담배를 한 대 피우러 가기 위해 움직이려다가 촬영장 쪽으로 움직이는 강민후를 볼 수 있었다.
촬영 세팅이 끝이 나자마자 아까부터 이상하게 눈을 감고 있어서 ‘서서 자나?’하고 우스운 생각을 했던 그였다.
민후는 안으로 들어가는 듯하면서 문을 여는 듯한 행동과 더불어서 선반을 열어보고, 전기밥솥을 확인하고 냉장고를 열어보는 행위를 하였다.
‘그래도 다른 골 빈 신인 배우들보단 낫나 보네.’
재현은 피식 웃었다. 그래도 아무 준비 없이 온 건방진 신인 배우들보단 낫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곧 밖으로 나섰고, 민후는 쉴 새 없이 계속해서 그 동작들을 30분간 반복하였다.
10시가 되자 흩어졌던 촬영팀 인원들이 다시 돌아오면서 촬영이 시작되었다. 민후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자신이 노력한 만큼에 대한 결과만을 보여주었다.
그는 노련하게 움직였다. 안으로 들어오면서 엄마를 찾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실제 자신의 집에 들어온 학생의 모습이었다.
그와 더불어 그는 동선 파악까지도 정확하게 해냈다. 김재현 감독이 그 모습을 보면서 작은 신음을 흘릴 정도였다.
실력 있는 기성 배우들 같은 움직임이었다. 사물을 보는 시야 능력, 잡아내는 능력, 카메라의 위치에 대한 각도를 잡아야 할 부분까지도 모두 완벽하게 해내고 있었다.
처음 촬영된 컷에서는 조금 부족한 부분이 보이기는 했으나, 민후는 계속 빠르게 CF를 자신의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흡수력은 놀라운 것이었으며 김재현은 자신이 우려했던 것과 다르자 기뻤다.
민후라는 이는 신인 배우인지라 CF 촬영에 대해서 무지할 거라고 판단했고, 초반부터 NG는 물론이요, 실수를 연신 발휘하여 감독인 본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첫 출발도 좋았고, 계속 반복 촬영할수록 더 좋은 장면, 더 좋은 대사가 나오고 있었다.
오늘 총 이십 번 정도의 주어진 시나리오대로 반복된 촬영을 하였고, 만족스러우리만치 좋은 컷이 많았기 때문에 김재현 감독은 상당히 흡족한 표정이었다. 현재 시각은 4시 반이었다.
이쯤에서 김재현 감독은 촬영을 끝내도 되겠다, 라고 판단했다. 최고로 좋은 장면을 잡아내기 위해 반복되는 촬영이 CF였지만 이미 자신이 예상했던 최고의 장면을 신인 배우를 데리고 불과 6시간 만에 뽑아낸 것이다.
오늘 만족스럽지 못하면 밤 9시까지도 촬영할 생각이었는데, 오히려 강민후라는 신인 배우 덕에 집에 일찍 들어가 토끼 같은 새끼들과 여우 같은 마누라를 일찍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강민후 씨 덕택에 촬영이 일찍 끝났네요. 이거.”
그는 슬쩍 민후에 대한 작은 칭찬을 뱉었다. 그가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며 외쳤다.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목소리도 좋고 연기도 좋고.”
다른 촬영팀 인원들도 표정이 꽤 좋았다. 강민후라는 배우가 그들의 눈에 좋게 보였다. 만약 오늘 촬영에서 많은 실수를 했다면 크게 인사하는 모습도, 열정에 찬 모습도 꼴불견이었겠지만 잘해줬으니 좋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거 촬영도 일찍 끝났는데, 밥이나 한 끼 하러 갈까요?”
“네!”
민후로서는 환영할 일이었다. 김재현 감독이 하루 우유의 CF만 찍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다방면으로 많은 CF를 찍는 회사와 계약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 그와의 식사라면 정보도 얻어낼 수 있었고 혹여 김재현 감독이 다른 CF에도 자신을 섭외해 줄 수 있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그는 이것이 다 자신의 노력 덕택이라고 판단한다. 잘하면 몇 시간 노력한 것으로 광고 한 편 더 찍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는 싱글벙글, 김재현 감독이 하는 말마다 열정과 패기 어린 목소리로 대답하며 그의 뒤를 따랐다.
* * *
하루 우유 촬영 당시 수월하게 해낸 민후의 행동은 정말 탁월한 것이었다. 전날 피나는 노력 덕택에 김재현 감독의 신의를 살 수 있었지 않은가.
강민후는 최고의 배우가 되기 위해선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소문이 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 소문은 가벼운 소문 따위가 아니었다. ‘어떤, 어떤 배우 정말 독종이라며?’라는 식의 소문을 나는 것을 강민후는 원하였다.
그냥 열심히 한다와 다른 특정 단어가 붙는 경우는 달랐다. 열심히 하는 것은 신인 배우들에게는 당연한 몫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독종’ 같은 수식어가 생겨서 감독들이나 방송 관계자들에게 떠돌면 그들은 한 번쯤은 강민후라는 배우에 대해서 돌아보게 되기 마련이었다.
현재도 강민후는 논스톱 5의 촬영팀 인원들에게 ‘정말 대단한 녀석이다’라고 찬사를 받고 있었다. 자신의 촬영이 없어도 매일매일 촬영장에 나와 촬영방식을 공부하고, 쉬는 시간에는 종류를 불문한 책을 계속해서 읽는 그는 그들에게 ‘감탄’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렇게 차츰 한두 사람씩 늘어 가다 보면 언젠가 각종 영화, 드라마, CF 등등 다양한 방면의 관계자들이 그의 소식을 들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현재 황제 소속사의 오디션 1차 서류전형이 수월하게 합격한 상태였다. 2차는 당연하게도 면접을 보는 자리로써 자신의 연기를 선보이는 자리였다.
연기의 제시는 불투명하였다. 그들이 재료를 던질 것이고 그것을 강민후가 얼마나 노련하게 요리하는지가 중점이었다.
보통의 오디션을 보는 경우는 대부분 1차 서류전형, 2차 면접 및 연기심사. 3차. 트레이닝 및 육성 4차 데뷔 가능성 및 연기력 검토 후 데뷔 등으로 치러진다.
서류전형은 웬만한 이들은 대부분 합격하는 부분이었고, 2차에서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 그리고 2차까지 합격한다고 하더라도 연기 트레이닝을 거쳐야 하였으며 마지막 데뷔 가능성과 더불어서 그들이 키운 이가 얼마나 성공할지에 대해서 갈린다.
성공할 가능성이 큰 이들의 경우 소속사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소속사의 도움을 상당히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가능성이 적은 이들은 그대로 그 소속사와 끝나거나 혹은 묻히기 마련이라고 할 수 있었다.
민후의 경우 일단 트레이닝을 어떻게 할지는 모르나, 데뷔 가능성 같은 경우 그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사항이다.
현재 그는 이미 배우로서 활동 중이었고, 인기도 차츰 올라가는 실정이었다. 이 정도만으로도 황제 측 소속사에서는 그에게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그에게 상당한 지원사격을 가할 것이었다.
2차 면접 및 연기심사가 바로 코앞으로 다가온 실정이었기 때문에 민후는 당연하게도 평소보다 더욱 큰 노력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황제라는 소속사 자체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그곳 소속사의 소속이었던 본인이 누구보다 더 잘 안다고 할 수 있었다. 자신의 겉멋에 취해서 자만하는 이들은 무조건 탈락, 연기력이 미흡한 이들도 봐주는 것 없이 오로지 탈락. 준비 안 된 이들 탈락. 이미 배우로서 활동한다고 하더라도 열정이 없어 보인다면 탈락.
갖은 이유로 오디션을 보는 이들은 탈락하게 된다. 그나마 민후에게 좋은 점이 있다면 최강호로서 그도 황제의 오디션에서 심사위원으로 꽤 자주 심사를 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다른 심사위원들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연기자를 바라보는지, 어떠한 것에 황제 측 관계자들이 좋아하는지 누구보다 알차게 꿰고 있었다.
그것 하나만큼은 누구보다 자신한다 할 수 있었다.
그는 집에서 컴퓨터 한글 프로그램으로 그들의 예상 질문이나 갖은 제시어를 떠올렸고, 그와 더불어서 그들이 싫어하는 점들도 적어 내려갔다.
그중 조금 독특한 것이 있다면 함태웅 대표가 더러운 것이나 지저분한 옷차림새를 무척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심사하는 오디션장에 가벼운 옷차림으로 온 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신경을 쓴 것이겠지만 그는 완벽을 선호하는 사람이었다. 또한 성격은 얼마나 까칠하고 차가운 사람인지 그와 첫 대면 하는 사람들은 심기가 많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그와 친해지면 괜찮은 사람이기는 하였으나 첫 대면자들은 그를 무서워하게 되기 마련이며 오디션 심사 도중 함태웅의 독설로 울면서 뛰쳐나간 연기 지망생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강민후는 프린트물에서 함태웅과 이상명 이사를 동그라미 친 후 별표를 그러고는 ‘주의 인물’이라고 적었다.
최강호일 당시 함태웅과 무척 친하였으나 지금은 강민후로서 그를 대면하는 것이다. 그가 또 어떤 독설로 공격해올지 몰랐고 이 부분도 감안 하여야 하였다.
그리고 얼마 전 강의에서 본 적이 있던 이상명 이사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이는 준비되지 않은 이였다. 만약 어떤 연기를 시켰는데 ‘그건 제가 잘 모르는 건데……’라고 하면 가차 없이 탈락이었다.
물론 연기자들의 상식선을 벗어난 것을 제시어로 두진 않는다. 그런데도 잘 못 하겠다고 하면 그건 그들의 마음가짐 자체와 준비가 없음을 알고 이상명은 가차 없이 탈락시키는 것이다.
그는 꽤 쾌활한 성격이었으나 까탈스럽고 모든 것을 두루 갖춘 연기자를 찾는다는 것은 함태웅 대표와 잘 맞았다. 때문에 그러고 보면 소속사에서도 두 사람이 두터운 친분을 과시했던 것으로 안다.
민후는 자신의 프린터 한 것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되새기기 시작하였다. 그는 황제라는 소속사의 오디션을 ‘전쟁’이라고 생각하고 임하기로 하였다.
만반의 준비가 필요했다. 적과 싸울 뛰어난 두뇌도, 재빠른 신체도, 또 하다못해 싸울 수 있는 물품까지도 말이다.
황제 소속사는 강남구에 위치하여 있었으며 고층빌딩의 한 층을 차지하고 있었다. 한 층을 사무실로 낸다고 하여도 어마어마한 자금이 들어가는 건물이었다.
그러나 그 사무실에서 황제 소속사는 너무나도 태연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민후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갔다. 5층이 황제 소속사가 있는 바로 그곳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수많은 연기 지망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순간 민후를 보고는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그들도 강민후라는 배우를 알고 있는 이들이 상당하였으니 말이다.
엘리베이터를 중심으로 앞쪽으로는 곧바로 업무 처리가 가능한 투명한 유리문이 있었으며 엘리베이터의 좌측으로는 연기 지망생들의 연기 지도가 가능한 장소가 마련되어 있었고 그 앞으로 꽤 긴 줄이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소속사의 풍경에 민후는 작은 미소를 지었다. 소속사에는 갖은 배우들의 영화 포스터나, 드라마 포스터와 화보 사진이 걸려 있었으며 그중 눈에 익은 이도 있었다. ‘최강호’였다.
민후가 조금 기대되는 바가 소속사에 들어오게 되면, 본래의 자신과 함께 이 소속사에 있다는 것이었다.
일단 현재를 살고 있는 강호는 강민후라는 이와 친분을 쌓아도 되나 본래의 그 본인과는 관계를 쌓으면 좋을 것이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사람이 가장 알지 못하는 것이 바로 자신 본인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만큼 어쩌면 강민후도 본인 자신에 대해서 완전히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본인이 앞에 있게 된다면 그것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자신이 어떤 식의 방식으로 살아가는지 알 수 있었고, 고칠 것은 고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새로 오셨죠?”
신입사원이라는 목걸이형 사원증을 찬 이가 다가왔다. 민후도 잘 알고 있는 이였다. 김만근이라는 청년으로 올해 스물다섯 살 정도 될 것이었다. 민후는 본인도 모르게 작게 웃었다.
그러자 그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개의치 않고 그의 한쪽 가슴팍에 번호를 붙여주고는 다른 이들에게로 다가갔다.
그 모습을 보며 민후는 ‘녀석’ 한다. 막상 소속사에 오니 무척 반가웠다. 아는 얼굴 한명 한명, 익숙한 모습 하나하나까지 말이다.
어느덧 줄이 꽤 많이 줄어들었다. 역시나 민후는 자신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았다.
“흐흐흑!”
19살 정도 되는 앳된 얼굴의 소녀가 오디션장에서 나오자마자 눈물을 터뜨리면서 뛰어가는 모습이 들어왔다. 다른 이들의 얼굴로 긴장한 기색이 역력히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방금 그 여자아이를 제외하고도 어떤 젊은 남성은 욕설을 하고 나오기도 하였고, 표정이 좋지 않게 오디션장을 나서는 이들이 많았다.
함태웅이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그것만을 위해 달릴 자신이 없다면 헛짓거리하지 말고 딴 거 알아봐라. 내가 봤을 땐 재능은 없다’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대부분 많은 이들이 그의 이 말에 큰 상처를 받기 마련이다.
그러나 함태웅이 냉정하고 나쁘다고 말할 이들도 있겠지만 그는 현실적인 대답을 해준 것이다. 연기로써 성공할 가망이 없는 이들은 차라리 빨리 접고 새로운 것에 노력하는 것이 나았다.
소속사의 관계자들 특히나 함태웅은 누구보다도 배우의 성공 가능성을 보는 안목이 뛰어나다. 물론 그가 무조건 맞는 것은 아니나. 그는 그 나름대로 소질이 없는 이들에게 시간 낭비 그만하고 다른 것을 위해 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의 말투는 분명 차갑겠지만 본질은 그들을 위해서 한 말이다.
어느덧 민후의 차례까지 근접했다. 오디션을 보는 이들마다 족족 안 좋은 반응이었기에 되레 주위의 이들로부터 긴장한 기색이 역력히 보였다. 그러나 긴장해서 좋을 것이 없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강민후는 침착하게 심호흡을 내쉬었다.
그의 차례가 되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디든 첫 시작은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신인 배우 강민후라고 합니다!”
그는 패기 있고 열정 있는 목소리로 쩌렁쩌렁 외쳤다. 그러면서도 안의 이들을 살폈다. 정중앙에 함태웅 대표와 이상명 이사가 함께 앉아 있고 좌측 끝에 황제 소속사 주요 관계자, 그리고 우측 끝에는 실력파 연기 배우 중 한 사람인 류승진이라는 배우가 앉아 있었다.
류승진이라는 배우는 주로 조연을 많이 맡는 배우였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는 최고의 노력파 배우이자, 실력을 갖춘 배우이기도 하다고 말이다.
그만큼 조연배우로서 출연 빈도가 잦았던 그이기도 하지만 그는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배우 중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주연 배우로서도 발탁이 되기도 한 이례가 있었는데 그는 노련한 연기력으로서 웬만한 톱배우들 못지않은 시청률을 만들어낸다.
이렇듯 배우는 무조건 인기만 높다고 배우는 아니었다. 민후도 류승진이라는 배우를 무척 아꼈던 후배로 두었는데 그는 그 본인 못지않게 독서를 꾸준히 하였고 갖은 노력으로 배우가 되었다.
그는 잘생긴 얼굴도 아니다. 아니, 순전히 못난이 얼굴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의 연기력 하나는 알아주기에 많은 이들이 류승진 하면 ‘아-! 그 연기 되게 잘하는 배우!?’ 하고는 한다.
“옆에 사무실인데 누가 그렇게 시끄럽게 고함치랬지?”
민후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심사위원들에게 고개를 숙여 보인 후 들은 첫 마디는 함태웅의 날카로운 소리였다. 그는 생수를 한 모금 마시고는 그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위아래를 훑었다.
흔히 볼 수 있는 무협지로 치자면 절대 고수라는 존재의 살기 어린 눈빛을 보는 것만 같았다.
실상 민후는 알고 있었다. 본래 연기 지도실로 쓰이는 이곳의 방음효과는 확실하다는 것을 말이다. 자신이 이렇게 크게 소리친다고 해도 사무실에까지 들리지는 않는다.
연기 지도실과 사무실이 가까운데 방음처리도 되지 않았겠는가. 하물며 이 건물은 강남에서도 비싸기로 소문난 건물이었다.
민후는 그의 그런 말에도 불구하고 긴장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대게 오디션을 보는 이들 중 대기실에서도 긴장했다가 함태웅의 날카로운 그런 지적의 말을 들으면 목소리든 움직임이든 사시나무 떨듯이 떨기 마련이다.
그러나 민후는 끄덕도 없었다.
‘저 친구가 그런 말에 기죽을 친구는 아니지.’
이상명 이사는 피식 웃었다. 그는 함태웅 대표에게 강민후라는 흥미로운 친구가 온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다른 심사위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유는 한 번 사람들이 흥미를 가지게 되면 괜스레 그가 하는 연기마다 하는 행동마다 더 잘해 보이기 마련이었다.
그것을 억제하고자 그는 민후의 놀라웠던 연기력을 자신만 기억하고 있었다. 단지 현재 함태웅이 임경우가 제출한 추천서를 이력서와 함께 확인한 바가 있었다.
임경우라는 배우를 누구보다도 더 잘 아는 그였다. 쉽게 추천서를 내줄 이는 아니었으며 그 본인도 자신이 소속된 소속사의 기본 틀을 알고 있기에 그 점을 감안 하여서 추천서를 냈을 거라고 태웅은 생각한다.
“요즘 시트콤에 나오는 그 친구네요.”
류승진이 빙긋 웃으면서 민후를 흥미로운 눈으로 보았다. 그는 평소에도 성격 좋고 남을 배려하는 씀씀이가 컸다. 함태웅과는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진 인물이다.
그러나 류승진은 함태웅도 아끼는 배우였고, 그러기에 함태웅도 그를 충분히 배려한다. 그러나 함태웅에게 자신의 소속사에 들고 싶다는 마음을 보이는 연기 지망생에게는 배려할 여유가 없었다.
자신이 이곳의 대표였으며 자신의 권한에 의하여 그들이 선택되는 것이다. 대표인 그는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기도 하였으며 연기 지망생들을 뽑음으로써 수익을 내는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철저하고 누구보다 냉정하며 누구보다 성공 여부를 확인하려 한다.
“그 논스톱인가 그거? 뭐, 볼 것도 없더구만.”
함태웅도 꽤 흥미를 가지고 본 시트콤이 논스톱이다. 그러나 예상외의 신인 배우들의 상당한 실력의 연기, 라고 쓰여 있던 기사는 났지만 딱 그뿐이다. 물론 그도 앞의 강민후라는 이는 꽤 괜찮은 연기를 펼쳤다 생각한다.
짧은 시간 그 정도 연기력이라면 흥미가 생긴다. 그러나 시트콤으로 확인했기에 실제 그의 연기력은 가늠하지 못했다. 때문에 그가 들어왔을 때 사실 그도 조금 흥미를 가졌다.
그러나 한 번 어떤 반응을 보이나 확인하기 위해 톡 쏘았더니 긴장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편안한 미소로 심사위원들과 하나하나 눈을 마주치는 여유로움까지 보였다.
그에 논스톱을 거론하면서 중얼거렸음에도 그마저도 그는 가벼운 웃음으로 넘긴다. 자신이 출연하는 작품에 대한 비난을 참지 못하는 이들도 있기 마련인데, 그는 자신이 일부러 공격하는 것을 아는 듯한 모습이었다.
함태웅은 이력서를 훑어보는 듯하다가 그것을 그대로 덮어버렸다. 오늘만 수십 장을 넘게 본 이력서가 지루하였다.
“뭘 잘하나?”
그는 이력서보다는 그에게 묻기로 하였다. 이것도 하나의 공격이었다. 이런 질문에 대부분의 연기 지망생들은 말끝을 흐리며 자신이 잘하는 한두 가지의 것을 지목한다. 연기면 연기, 뭐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그러나 말끝을 흐린다는 것 자체가 자신 본인이 내세울 게 없으니 뱉어내는 것이다. 그것은 즉 준비되지 않은 자이다.
오디션에서 가장 싫어하는 존재 1위, 준비되지 않은 자들. 그런 대답이 나올 때마다 함태웅은 들을 가치도 없이 내보냈다. 그는 그렇게 칼 같은 사람이다.
“시키는 건 다 잘합니다.”
“하하하, 젊은 친구가 패기가 넘치네요.”
그러나 민후는 빙긋 웃으면서 당당하게 말했다. 정말 본인은 스스로 시키는 건 다 잘했다. 만약 오늘 뭔가를 시켰는데 못했다고 해도 내일이면 오늘보단 나아질 것이다.
자신이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24시간을 들여서 종일 연습할 사람이 바로 그 강민후였다.
류승진은 그저 그 모습에 신선했던지 웃는다. 당당한 이들도 간혹 있기는 했지만 스스로의 입으로 ‘다 잘합니다.’ 하는 이들은 쉽사리 보이지 않는다.
반복되는 오디션을 계속 보는 심사위원들로서는 그가 말한 대사가 흥미로운 것이었다. 또 함태웅은 순간 피식하고 웃을 뻔했다. 그는 ‘어쭈, 해보자 이거지?’ 한다.
“요즘 좋은 노래 많던데, 하나 해보지.”
“옙! k스치는 바람에 k 그대 모습 보이면 난 오늘도 조용히 그댈 그리워하네- k 난 너를 못 잊어 k난 너를 사랑해.”
실상 민후는 노래는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추후 시간이 나면 노래도 어느 정도 연습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취약점 중 하나인 노래를 시켜버렸다.
그러나 그는 당당했다. 최선을 다해서 노래를 불렀다. 그의 실력은 딱 일반인 중에서 평범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이상명이나 류승진이나 그들은 재밌다는 듯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반주도 없는 곳에서 너무나도 열심히 하는 모습에 그들은 작은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역시나 함태웅은 제외하고 말이다.
“노래 더럽게 못 하는데? 다 잘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는 퉁명스러운 말투였다. 그러나 민후는 기죽지 않았다. 또 빙긋 웃을 뿐이다. 실제로 민후가 이제까지 만났던 담당 PD나 CF 촬영 감독 두 사람이 무척 온순한 편이었던 것이다.
실제 영화감독들이나 혹은 드라마 감독들, 갖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PD들 등 그들의 대부분의 성격이 불같았으며 그럼에도 출연자들이 그들의 성격을 받아주는 편이었다.
그들이 주최하는 것이고 이끌어가는 것이며 그들로 통해서 좋은 작품이 나오기 때문이다. 함태웅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더 좋은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자신만의 스타일로 나오는 거다.
함태웅은 더 이상은 그를 공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다. 자신이 뱉어내는 말마다 그는 여유롭게 받아치고 있었다. 그는 일단 한 번은 자신의 마음을 샀다고 여긴다.
“하긴 뭐, 연기할 사람이 노래 잘해봤자 뭔 소용이야, 연기나 한번 보도록 하지. 음…….”
그는 잠시 생각했다. 이 녀석은 재밌는 제시를 해도 잘 해낼 것 같았다. 일단은 그는 가볍게 가자고 생각했다. 그는 갑자기 승진을 보더니 빙긋 웃었다.
“류승진, 배우 류승진을 한번 표현해봐.”
강한 것이었다. 류승진을 연기해보라니. 민후는 잠시 생각했다. 다른 심사위원들이 상당한 흥미를 가진 얼굴이다. 어떠한 배우를 연기해 보라고 한다.
그런데 그 배우는 이제까지 너무나도 많은 작품을 출연하였던 인물이다, 류승진은 특히나 그랬다. 그는 너무나 다양한 방면으로 캐릭터를 연출했다.
그런 그의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을 표현해볼까? 아니, 그것은 잠시 그 역할이 된 그일 뿐, 진짜 류승진이 아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상식선에서 류승진을 생각해봤다.
그리고 곧 그는 답을 내렸다.
“함 대표님.”
“뭐?”
자신의 이름도 붙이지 않고 ‘함 대표’라고 칭하자 함태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민후는 이내 히죽하고 웃었다. 그 웃음에서 그의 부름에 답했던 태웅이 눈살을 찌푸리며 그 표정을 지켜보았다.
그 웃음은 뭔가와 닮아 있었다. 그리고 곧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승진은 웃을 때 독특하게도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해맑게 활짝 웃는다. 모난 얼굴의 그였지만 그 매력적인 웃음에 반하는 여성들도 꽤 있을 정도다.
그리고 현재 강민후라는 이의 얼굴에서는 그와 흡사한 미소가 연출되고 있었다.
“아까 그 강민후라는 지망생 되게 괜찮지 않았어요? 전 되게 마음에 들던데. 연기도 잘하고 패기도 좋던데요?”
민후는 이 오디션이 끝난 후의 상황을 가정하여서 류승진을 연출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류승진을 연기하는 것은 그의 대표적인 웃음과 더불어서 이 오디션이 끝난 후의 모습뿐이다.
많은 얼굴을 가진 배우를 실제로 연기한다는 것은 강민후로서도 힘든 일이었고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내 연기했다.
함태웅이 피식 웃었다.
그러나 곧 빠르게 지운다.
‘똘똘한 머리구나.’
아마 웬만한 이들은 류승진의 인상 깊었던 장면의 배역을 연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류승진이 아니다. 이렇게라도 류승진을 연기했고 또 그 웃음을 따라 하려고 했던 것은 분명 독특하고 기발한 것이었다.
“고작 류승진이라는 배우를 연기하라는데 그게 끝인가?”
그러나 역시 함태웅은 또 퉁명스럽게 물었다. 민후는 차근히 설명했다.
“류승진이라는 배우분은 대단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작품에 출연하였던 분입니다. 그리고 그중에는 악역도 좋은 역도, 주연도 있었죠. 수많은 역할을 해낸 류승진이라는 배우의 그 보인 모습보다는 실제 모습을 연출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는 게 없으니, 이렇게라도 따라 할 수밖에요.”
“그렇지, 그렇지. 하하.”
류승진은 그에 빙긋 웃었다. 참신하게 난처한 제시어를 모면한 민후라는 배우가 승진은 마음에 상당히 든 듯싶었다.
함태웅은 자신이 프린트해 온 연기 지망생들에게 제시할 짧은 각종 드라마나 혹은 영화 등등의 독특한 신이 적혀져 있는 용지를 훑어보았다.
그중 하나가 가장 인상 깊었다. ‘왕의 광대’라는 영화의 한 신이었다. 두 명의 광대가 뜻하지 않게 왕의 앞에서 공연을 하게 되는데,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그것을 지켜보던 연산군이 그 공연을 보고는 즐거워하여 광대를 궁궐에 들이게 된다.
그리고 광대들은 저잣거리에 떠도는 소문을 통하여서 총신들의 소문을 광대로서 웃음화 시키려 한다. 그것에 왕은 미친 듯이 좋아한다.
왕이 좋아하는 장면. 그 미친 웃음기를 민후에게 그는 제시하려 한 것이다.
그는 민후에게로 자신의 앞에 놓여있는 용지를 집어서 내밀었다. 그가 다가와 확인하였다.
‘연산군 연기라…… 왕의 광대? 재밌네.’
민후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 겨우 스무 살에게 근엄한 왕의 모습을 담을 것을 말하는 함태웅이다. 역시 함태웅이다 싶었다. 웬만한 민후 또래의 이들은 이것을 보기만 한 것으로 흉내 내지는 못할 것이었다.
이것을 웬만한 이들이 연기하려면 오랜 시간 노력이 필요할 터였다. 물론 민후에게도 피나는 노력이 필요할 배역이다. 그러나 남들보다는 더욱 부드러운 진행을 할 수 있다 자신한다.
현재 이 왕의 광대라는 시나리오의 작품은 개봉하지도 않은 영화였다. 그럼에도 이 한 신의 시나리오가 이곳에 와 있는 이유는 류승진도 그 ‘왕의 광대’에 출연하는 인물로 캐스팅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혹여 오디션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이것을 가져온 것이었고 딱 좋은 상황에 쓰이게 되었다.
민후는 눈앞에 광대들이 춤을 추고 있다고 가정한다. 제시된 신은 광대들이 전국 팔도의 실력 있는 광대들을 모두 모아 총신이라고 불리는 자의 소문으로 들리는 악행을 연기하는 것이었다.
광대 중 한 사람이 연산군으로 가장한 광대에게 황금 두꺼비를 건네고 두 사람의 재치 있는 입담에 왕은 웃어 젖힌다.
“으, 으헤헤헤! 으하하하하하하!”
민후는 곧 연기를 시작했다. 머릿속으로 모든 이미지는 그려졌다. 이제 심사위원들에게 자신을 보여줘야 하였다. 그는 미친 듯이 웃었다. 나는 왕이오, 그러나 미쳐가고 있느니. 그는 이 순간 미쳐가고 있는 연산군이 되었다.
그는 다짜고짜 심사위원들의 앞으로 절을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면류관을 쓰고 있다고 가정하여 그것을 양손으로 곱게 벗으면서 절을 하며 그들에게 건네듯이 한다.
“받아주시옵소서!”
시나리오는 이 대목에서 ‘왕이 광대처럼 목소리를 내리깔며’라고 표현했다. 민후 역시도 그와 같이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앞의 심사위원들은 말없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를 볼 뿐이었다.
그들은 말이 없었으나 민후는 광대가 마치 앞에서 자신에게 말하듯이 웃는다.
“아하, 요오론 거?”
광대는 양손으로 여성의 몸매를 형상시키면서 말하고, 민후 역시 그것을 똑같이 만들듯이 한다. 그는 히죽 웃으면서 연기를 계속한다.
이내 광대가 ‘좋구나!’ 하면서 꽹과리를 치기 시작하자 민후도 함께 춤을 추듯이 오디션장을 종횡무진 미친 듯이 뛰어다니기 시작하였다.
심사위원들의 시선이 상당히 놀란 듯싶었다. 상명의 경우 이미 그의 연기를 본 적이 있기에 작은 웃음을 지었고, 승진이나 다른 관계자는 헛웃음을 지었다.
저것이 스무 살 청년의 연기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시나리오에는 연산군이 한 총신에게 술을 따라 준다고 적혀 있었으며 광대들이 보였던 광대놀이의 그 이야기의 주제가 바로 그라고 적혀 있다.
찔린 것이 있던 총신은 몸을 부르르 떤다.
민후는 근엄한 목소리로 묻는다.
“왜 찔리는 것이 있더냐. 으잉? 찔리는 것이 있는 게야, 네 녀석이.”
미친 왕.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엄하고 다가갈 수 없게 만드는 힘을 가진 최고의 권력자 왕. 그 두 가지를 민후는 너무나도 능통하게 해냈다.
연기를 끝낸 그는 한참이나 씩씩거리고서야 심사위원들의 표정을 살폈다. 역시나 함태웅은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다른 심사위원들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강민후라는 존재에게 충분히 만족한다는 표정이었다.
“어-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잘 봤습니다, 강민후 군.”
상명은 태웅의 눈치를 살피고는 시계를 확인했다. 10분이나 더 지연되었다. 그러나 그 10분 지연된 동안 심사위원들은 매우 만족했다. 민후가 꾸벅 고개를 숙여 보였다.
“신인 배우 강민후였습니다!”
그는 이번에도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함태웅이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다른 심사위원들은 기분 좋은 미소로 ‘하하하, 마음에 드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가 나서고 마치 멈춰있던 마네킹처럼 표정 변화 없던 태웅이 숨을 크게 내쉰다.
“저 녀석 연기 좀 하네.”
상명은 그의 말에 헛 웃었다. 태웅의 성격상 대놓고 앞에서 감탄하기에는 그랬고, 그 때문에 녀석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린 것이다. 태웅은 다소 놀란 표정으로 민후가 나간 문 쪽을 잠시 보았다.
괜찮은 연기자인 정도가 아니라 상당한 수준급의 실력을 갖춘 녀석이다. 웬만한 중역 배우들 못지않은 실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다른 오디션 참가자가 들어왔을 때에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